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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Author: 꽃길
“오빠.”

나는 전화를 받으며 조용히 강진혁을 불렀다.

“유형이가 다 얘기해줬어. 너 괜찮은 거 맞지?”

강진혁의 목소리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괜찮아요. 그런데 오빠를 귀찮게 해드리게 됐네요.”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예의를 갖춘 말투로 대답했고 강진혁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차분히 말했다.

“편하게 생각해. 여기선 무조건 안전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네.”

나는 짧게 대답하며 통화를 마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강진혁은 통화를 끊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괜히 겁먹지 마. 절대로 너한테 아무 일 없을 거야.”

하지만 정말 그럴까? 헤르나가 날 목표로 삼았다는 건 이미 명백하다. 이번에 진정우와 다른 사람들이 완전히 그를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그가 풀려나는 순간 나는 다시 위험해질 게 뻔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을 말해봤자 소용없기에 나는 짧게 대답하고 넘겼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 그리고 집에는 집사 아주머니가 와서 밥도 하고 정리도 해주실 거야.”

그는 마지막 당부를 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 나는 휴대폰을 강유형에게 건넸고 그는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형 집에 새 휴대폰이 있어. 하나 가져다줄게.”

나는 휴대폰 없이 지내는 건 불편했고 연락이 안 돼서 안리영이 걱정하며 신고까지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잠깐만 기다려.”

강유형이 집 안쪽으로 가서 서랍을 열더니 익숙하게 새 휴대폰 두 대를 꺼내왔다.

“여기서 하나 골라.”

“좋아.”

“심 카드는 갖고 있지?”

“응, 있어.”

“내가 끼워줄까?”

“아니야, 내가 할게.”

나는 짧게 대답했다. 내 짧은 말투 때문인지 강유형은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 이 집 한번 둘러볼래? 아니면 내가 안내해 줄까?”

“바쁘다며. 할 일 하러 가.”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고 강유형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네가 편하게 둘러봐. 사실 나도 여기 두 번밖에 안 와봤어. 전부 다 보진 못했거든.”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고 강유형은 내 반응에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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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무겁게 발을 떼며 앞으로 걸어갔다. 신지태가 나를 부축하며 문 앞까지 데려다주었지만 안으로 들어가기 전 이미 누군가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그 사람의 품에는 검은색 상자가 안겨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과 혼란이 서려 있었다. 나는 그 상자를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신지태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나를 더 단단히 부축했지만 그마저도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온몸의 감각이 무뎌졌다. 나는 다시 정신을 붙잡으려 애쓰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 안쪽,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용설아를 한눈에 그녀를 보았다.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저 등 뒤로 느껴지는 깊은 절망과 슬픔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걸 알 수 있었다.그 순간, 발이 땅에 박힌 듯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신지태도 함께 멈춰 섰고 우리 둘 다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용설아는 천천히 몸을 돌렸고 그녀의 두 손 위에는 검은색 상자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대로 시야가 흐려지며 쓰러질 뻔했다.용설아는 내 앞까지 걸어와 조용히 말했다.“이건 진정우가 남긴 마지막 부탁이에요. 그가 원했던 대로, 지원 씨가 직접 그를 데려가 주세요. 두 분이 가장 좋아했던 그곳에 묻어달라고 했어요.”나는 그녀가 들고 있는 상자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지난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그와 함께 걸었던 들판,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던 약속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살자고 했던 말.그러나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나에게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그를 그곳에 묻어달라는 마지막 부탁 말이다.‘이건, 나보고 죽으라는 말이야?’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상자를 노려보았다.“왜 나를 기다리지 않았어?”작은 상자 하나에 다 담길 리 없는 그를 떠올리며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왜... 기다려주지 않았어, 진정우?”“정우는 지원 씨가 그 순간을 직접 마주하지 않길 바랐거든요.”용설아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힘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정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16화

    강유형과 신지태 오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고 그들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하게 물었다.“둘 다 몰라?”나는 머릿속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몸을 일으키려 애쓰며 말했다.“그럼 내가 직접 찾아갈게...”그 순간, 신지태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나를 붙잡았고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왜 그래?”“지원아, 이제 받아들여야 해. 진정우는... 더 이상 없어.”강유형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나도 알아.”그러면서도 어설프게 웃으며 덧붙였다.“그래서, 그를 보러 가려고 해. 조용히 곁에 있고 싶어서.”그 순간, 신지태의 손끝에 힘이 들어가면서 살짝 아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내 팔을 더 강하게 움켜잡았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오빠, 너무 아파.”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지원아... 진정우는... 없어. 더 이상 볼 수 없어.”그 말에 나는 얼어붙은 듯 멈춰 섰고 눈앞이 흔들렸지만 나는 애써 강하게 말했다.“아니, 난 볼 수 있어. 그러니까 가게 해 줘.”“지원아!”신지태가 단호하게 나를 불렀지만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 하며 애타게 말했다.“제발, 가게 해 줘.”그 순간, 강유형이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볼 수 없어. 그는 이미... 화장됐어.”그 순간, 내 손이 허공에서 멈춰 섰고 나는 서서히 강유형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온몸이 얼어붙은 듯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강유형.”신지태 오빠가 낮게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여전히 내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지원아... 진정해.”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그 말이 거짓이길 바랐다.“그 말, 거짓말이지...? 진정우... 진짜 아니지?”신지태 오빠의 눈이 더 붉어졌다.“지원아, 울고 싶으면 울어.”나는 울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지면서 몸이 떨렸고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15화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만 용설아가 울컥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진정우!”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진정우를 바라보았다.그의 눈꺼풀이 희미하게 감겼고, 긴 속눈썹은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침대 밖으로 내려와 있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진정우...”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믿을 수 없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진정우, 진정우... 아직 말 다 못했잖아. 계속해. 좀 더 말해줘...”그러나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결국에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듯 그의 얼굴을 애타게 쓰다듬고 코끝을 맞대고, 눈가를 스치고, 볼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끝내 그의 입술을 조심스럽게 맞췄지만 아무리 닿아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이제 그는 더 이상 나를 보며 “지원아, 장난치지 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정우야... 제발 날 버리지 마. 난 이제 너밖에 없어...”나는 끝내 외쳤다. 그러나 그 순간, 내 안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이 절망은 부모님을 잃었을 때보다도 더 깊고 아팠다. 어릴 적에는 '죽음'이라는 게 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지만 지금은 너무도 분명했다.이제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부를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걸.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몸을 흔들며 울었지만, 그저 눈물만 그의 차가운 얼굴 위로 떨어질 뿐이었다.그렇게 내 정신은 서서히 희미해졌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차가운 병실 침대에 혼자 누워 있었다.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그리고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어젯밤의 어둠과 그 속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던 진정우의 얼굴.모든 순간들이 스치면서 몸이 경련하듯 떨려왔고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가슴이 너무 아팠다.“지원아, 괜찮아? 어디 아파?”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강유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신지태의 목소리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14화

    “수술 실패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용설아 씨가 의사의 팔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나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목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의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용히 말했다.“안으로 들어가 보세요.”그 말만 남긴 채 그는 가려 했지만 용설아 씨는 여전히 그의 팔을 놓지 않았다.그때, 옆에 있던 간호사가 대신 설명했다. “환자의 후두부 뼈가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우리는 최대한 봉합을 시도했지만 뇌출혈이 멈추지 않고 있어요. 출혈 부위도 여러 군데라...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그 순간, 용설아 씨의 손이 스르르 풀렸다. 마치 모든 힘이 빠져나간 듯, 그녀는 휘청거리면서도 애써 몸을 가누며 안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서더니, 나를 돌아보면서 다가와 내 팔을 붙잡고 천천히 일으켰다.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병실 안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다. 너무 밝아서 오히려 눈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침대 위에는 수술복을 덮고 누워 있는 진정우가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산소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고 머리는 하얀 붕대에 감겨 있었다.나는 그를 마주하는 게 두려워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그때, 용설아가 조용히 말했다.“지원 씨,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세요. 안 그러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그녀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지만 나는 그 말이 얼마나 큰 의미를 담고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용설아는 이미 현실을 받아들인 듯했다.그녀가 나를 데리고 침대 앞으로 다가가자, 나는 마침내 진정우의 얼굴을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그는 눈을 감고 있었고 평소에 그가 잠들었을 때처럼, 조용하고 평온해 보지만 지금의 이 고요함은 나를 두렵게 했다.“정우야...”용설아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나는 그의 손을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용설아 씨가 다시 말했다.“정우야, 정신 차려. 지원 씨가 왔어.”그 순간, 그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13화

    “정우는...”나는 입을 열었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용설아는 이미 내가 묻고 싶은 것을 아는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지원 씨는 그가 군인이었다는 것만 알지, 어떤 임무를 수행했는지는 모르셨죠?”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는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극비 특수 요원이었어요. 3년 동안 국제 작전에 투입되어 전 세계를 장악하려던 거대 조직을 무너뜨렸죠. 지금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브라운이나 헤르나는 그 조직의 잔당에 불과해요.”나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정우는 임무를 마친 후 전역하고 평범한 삶을 살기로 했어요. 하지만 이번에 신지태 씨 사건을 통해 그 조직의 잔당이 다시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게다가, 그 조직의 남은 자들이 복수를 다짐했다고 해요. 그는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직접 정우를 건드리기 어려우니, 결국 그의 주변 사람들을 노릴 거라고 확신했어요.”용설아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게 그가 지원 씨와 헤어진 이유예요. 그리고 그의 진짜 정체와 배경이죠.”나는 입을 열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그에게서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혹시... 설아 씨는 그와 함께 싸운 적이 있나요?”내가 어렵게 물었지만 정작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진정우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게 신경 쓰였다.용설아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저는 그와 함께 싸운 적 없어요. 우리의 관계도 모두 거짓이었어요. 그가 그렇게 한 것도, 결국 지원 씨를 지키기 위해서였죠.”그녀의 표정에는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수술실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는 자신이 조사당할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원 씨와 헤어졌어도 여전히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저와 약혼을 발표하고 사람들이 저와 함께 있다고 믿게 만들었어요.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12화

    “진정우! 진정우!”나도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이 꽉 막힌 듯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힘이 빠져, 쓰러진 진정우에게 다가갈 수도 없었다.“진정우, 대답해! 제발 대답 좀 해봐!”용설아가 그를 안고 필사적으로 흔들며 애타게 외쳤지만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예전에는 함께 잠을 잘 때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깨고 늘 예민하게 반응하던 그가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브라운! 당장 구급차를 불러! 빨리!”용설아가 소리치는 순간, 그녀의 얼굴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그제야 얼어붙었던 내 머릿속이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시에 끔찍한 생각이 스쳐 가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간신히 힘을 짜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겨우 손을 짚으며 앞으로 기어가듯 움직이려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원아, 강유형!”바로 신지태였다.곧이어 여러 사람이 몰려들었고 신지태가 나를 붙잡아 일으켰다. 그는 내 시야를 가로막았고 그사이 진정우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었다.그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다리가 풀려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었다.겨우 입을 열어“진정우”라고 불렀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브라운은 체포되었고 강유형 역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그 어떤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쓰러진 진정우의 모습만이 반복해서 떠올랐다.병원 응급실 앞에서 나는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기다렸지만 수술실의 붉은 불빛은 꺼질 줄 몰랐다.지친 의사가 나오는 걸 보고 다급히 붙잡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 하나였다.“현재 응급처치 중입니다.”“이제 그만 묻고 그냥 기다리세요.”옆에서 용설아가 나를 가볍게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차분해 보였지만 진정우를 걱정하는 마음만큼은 나와 다르지 않았다.“후두부 뼈가 부서졌어요.”용설아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뭐라고요?”“정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11화

    스누커 공의 무게를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뼈까지 부러뜨리진 않더라도, 제대로 맞으면 살이 움푹 팰 정도의 충격을 줄 수 있는 물건이었다.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피하려 했지만 그 순간 강한 팔이 나를 감싸안았다.쿵! 쾅! 팡! 팡! 팡!사방에서 공이 날아들었고 나는 그 공 사이에서 회전하며 휘청거렸다.그러나 나를 안고 있던 진정우는 놀랄 정도로 빠른 반응 속도로 움직이며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그의 한쪽 팔이 단단히 내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나는 그에게 이끌려 쉼 없이 몸을 틀어가며 쏟아지는 공을 피해 다녔다.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내 눈앞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공들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갔다.어떤 것은 그의 손이나 팔로 튕겨 나갔고 어떤 것은 우리가 회전하면서 가까스로 비켜 지나갔다. 이게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이하면서도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브라운, 이제 그만해! 당장 멈추라고!”강유형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쏟아지는 공이 부딪히는 소리에 묻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공은 여전히 끝없이 날아왔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진정우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숨이 가빠지고 그가 나를 안고 움직이는 속도도 처음보다 확연히 느려졌다.“퍽!”바로 옆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그의 몸이 움찔하며 흔들리는 걸 보았다. 진정우가 공에 맞은 것이다.“진정우!”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그가 나를 안고 있는 이상, 나는 오히려 그가 회피하는 걸 방해하고 있었고 그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었다.그에게 도움이 될 순 없어도, 적어도 짐이 되지는 않아야 했다.“조금 있으면 널 밖으로 밀어낼 거야.”그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거의 속삭이듯 가까운 거리에서 들린 그의 목소리는, 우리가 헤어진 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익숙한 온기였다.그러나 감상에 젖을 틈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610화

    진정우가 수십 명에게 둘러싸인 채, 각자 앞에 스누커 공이 한 바구니씩 놓여 있는 걸 본 순간, 나는 브라운이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오늘 진정우를 인간 샌드백으로 만들 작정이었다.“브라운, 네가 진짜 남자라면 정정당당하게 1대1로 붙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남자냐?”용설아가 참지 못하고 그를 도발했다.“브라운, 이렇게까지 하면 쪽팔린 줄 알아야지. 소문이라도 나면 네 체면이 남아나겠어?”방금 상처를 치료받은 강유형도 가세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런 순간일수록 진정우를 위해 나서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브라운은 더 악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비록 그와 깊은 교류는 없었지만 나는 이 남자가 철저한 미친놈라는 걸 이미 깨달았다.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그는 더 하고 싶어 하는 성격이었다.“내가 남들한테 조롱당한 게 한두 번인 줄 알아? 이제 와서 그런 게 두려울 것 같아?”역시, 브라운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이건 공정하지 않아.”용설아가 끝까지 설득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공정하지 않다고? 그럼 너도 같이해.”브라운이 손짓하자, 용설아는 순식간에 끌려 올라갔다. 그러자 진정우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괜히 그를 자극해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자극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널 도와주겠어?”용설아는 그와 나란히 서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는 네 글자가 떠올랐다.‘천생연분.’그녀는 브라운의 속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저 그녀가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키려고 일부러 자극한 것뿐이었다.“브라운, 이건 너랑 나 사이의 문제야.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진정우가 단호하게 말하면서 용설아가 다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맞아, 원래는 걔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지. 하지만 어쩌겠어? 네 여자가 널 지키고 싶어 하는걸.”브라운은 비꼬듯 웃으며 혀를 찼다.“너희 둘 참 애틋하네, 그렇지? 우리 미녀 스누커 선수도 그렇게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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