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래.]그 단어 하나가 머릿속을 텅 비게 만들었다.잠시 후, 나는 내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이때 강유형이 욕설을 내뱉으며 말했다.“저 자식,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그는 다시 진정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에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빠르게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공기가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내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나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잠시만 혼자 있고 싶어요.”강유형과 강진혁은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더는 말없이 문을 닫고 나갔다.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내가 왜 울고 있는 걸까? 그가 그렇게 쉽게 헤어지자고 한 말 때문일까?아니면 내가 이렇게 기다렸음에도 나를 보러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 때문일까?나는 진정우를 기다렸고 그는 왔지만 나는 결국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그저 긴 잠에 빠졌을 뿐인데 겨우 사흘 동안 못 봤다고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걸까?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혹시 나를 구하는 과정에서 크게 다쳐서 나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걸까?아니면 그가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걸까? 아니면 그의 가족, 특히 그 유명한 진씨 가문이 나 같은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머릿속은 온갖 상상으로 뒤엉켰지만 나는 스스로를 억누르며 생각을 멈췄다.이럴 때일수록 직접 확인하는 게 나을 테니까.하지만 그가 전화를 꺼둔 탓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그 순간, 문득 진소영이 떠올랐다. 나는 그녀와 시차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전화를 걸었다.“언니!”진소영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언니?”그녀가 다시 불렀다.“잘못 걸었어. 미안해, 자는데 깨웠지?”내 목소리에 감정을 숨기려 애썼다.내가 지금 처한 상황을 그녀가 알게 된다면 분명히 걱정할 것이다.“아니에요
뉴스?무슨 뉴스?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내가 깨어난 이후로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고 문 앞에 있던 강유형과 강진혁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무슨 뉴스야?”내가 직설적으로 묻자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아마도 나한테 뭔가를 숨기려는 듯했다.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다 들었으니까 숨기지 말고 제대로 말해줘.”강진혁은 짧게 한숨을 쉬고 핸드폰을 꺼냈다.강유형이 말리려는 듯 보였지만 내가 강한 눈빛으로 제지하자 그도 말없이 물러섰다.“이미 알게 된 이상 차라리 직접 확인하고 진정우랑 제대로 얘기하는 게 나을 거야.”강진혁이 말하며 핸드폰을 건넸다.핸드폰 화면에는 웹 기사 캡처가 떠 있었다.[희귀한 황금 혈액형 연인, 여자 친구가 800cc의 피로 남자 친구를 구해줌. 이제 내 피가 당신의 몸속에 흐르고 있어요.]로맨틱한 제목과 함께 내가 강유형의 손가락을 잡고 응원하던 사진이 실려 있었다.그저 힘내라는 뜻에서 손을 잡았던 순간이었지만 제목과 사진이 더해지니 마치 우리가 생사를 함께하는 연인처럼 보였다.“이 뉴스 언제 올라온 거야?”나는 강진혁을 보며 물었다.“3일 전이야. 네가 수혈을 끝내고 바로 올라왔어.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와 있었고 진정우도 이미 와 있던 상태였어. 진정우가 아마 이걸 봤던 게 분명해.”그 순간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강진혁은 내 표정이 안 좋아지는 걸 눈치채고 조용히 덧붙였다.“바로 사람을 시켜 이 뉴스는 삭제했어. 지금은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없어.”그게 무슨 소용일까.진정우는 이미 이 기사를 봤을 텐데 말이다.나는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는 건 상관없었지만 진정우만큼은 아니었다.그가 아무리 나를 믿고 있더라도 이 사진과 제목은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다.“이 일은... 내가 진정우한테 직접 설명할게.”강유형이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이런 일은 설명할수록 더 복잡
“그럼 돌아가. 하지만 지금 네 상태로는 혼자 갈 수 없어.”강유형이 단호하게 말했고 잠시 침묵하다가 강진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형, 지원이랑 같이 가줘.”강진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았어.”나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아무리 거절해도 그들이 날 혼자 두고 갈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 너는?”나는 강유형의 머리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며 물었다.“난 여기 남아서 신지태 나오면 같이 갈 거야.”강유형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신지태가 낯선 곳에서 그런 일을 겪고 나왔는데 아무도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허전할까. 하지만 강유형의 지금 상태로 남아 있는 것도 신지태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네가 이 상태로 있으면 신지태가 더 죄책감 느낄 텐데.”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괜찮아. 사고 얘기는 꺼내지 않을 거니까.”강유형은 단호히 답했다. 더는 설득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지태 오빠, 경기 다시 뛸 수 있을까?”이번에는 강진혁이 대답했다.“아직 몰라. 구단 쪽 반응도 봐야 하고 Q클럽의 태도에 따라 다를 거야.”문득 진정우가 떠올랐다. 이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줄 사람은 진정우일 텐데 지금은 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나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꺼내 귀국 비행기표를 예약하기 시작했다.“내 것도 같이 예약해 줘.”강진혁이 말하기 전까지는 그의 표까지 예약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말하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그럼 여권 정보 줘.”강진혁은 여권을 건네는 대신 휴대폰을 꺼내 들고 말했다.“이미 예약했어. 두 장.”그의 말에 잠시 놀랐지만 그는 이어 말했다.“짐 챙겨. 한 시간 뒤에 공항으로 가자.”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 멈췄고 강진혁이 먼저 강유형을 향해 말했다.“머리 다친 건 별일 아니지만 이제 몸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해. 네 몸 상태가 예전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는 걸 잊지 마.”그의 말
“솔직히 말해봐, 너 윤지원이랑 해봤어?”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와 막 들어가려던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문틈 사이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강유형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지원이가 먼저 다가왔지만 난 관심 없었어.”“강유형, 그렇게 사람 깎아내리지 마. 윤지원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미인이야. 꽤 많은 사람들이 윤지원을 노리고 있다고.”말하는 사람은 강유형의 친구 신지태였다. 그는 나와 강유형의 10년 감정을 지켜본 증인이기도 했다.“너무 익숙해서 그래.” 강유형이 눈썹을 찌푸렸다.내가 14살 때 강씨 집안으로 보내졌고 그때 처음으로 강유형을 만났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앞으로 강유형과 결혼할 거라고.그 후로 우리는 함께 살았고 어느새 10년이 흘렀다.“그렇지. 너희 둘은 낮에는 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얼굴 보고 밤에는 집에 와서 같은 식탁에서 밥 먹고. 아마 상대방이 하루에 몇 번 화장실 가는지까지 다 알겠어.”신지태가 농담을 던지고는 혀를 찼다. “지금은 오래 보면 정든다는 시대가 아니야. 남녀 사이엔 그래도 신선함이 있어야 하지.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그런 느낌, 그래야 감정이 생기고 자극적인 법이야.”강유형은 침묵했고 신지태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듯했다.“그래서 너 윤지원과 결혼할 거야?” 신지태의 질문에 내 숨이 멎는 것 같았다.강유형의 부모님은 우리에게 혼인신고를 하라고 하셨다. 그는 좋다고도, 싫다고도 하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묻지 않았다. 그러니 신지태가 나 대신 물어본 셈이다.강유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신지태가 웃었다. “결혼하기 싫어?”“...그건 아니야.”“그럼 결혼은 하고 싶은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는 거지?” 신지태와 강유형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았다.“지태야, 이런 말 들어봤어?” 강유형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뭔데?”“먹자니 맛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강유형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강유형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고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물렀다. 굳이 보지 않아도 내 안색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어디 아파?”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나는 말없이 그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 목구멍에 맺힌 쓴맛을 삼키며 말했다. “나랑 결혼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아주머니한테 말씀드릴게.”강유형의 미간 주름이 더 깊어졌다. 그는 내가 그와 신지태의 대화를 들었다는 걸 알아챘다.난 목이 메어 말을 잇기 힘들었다. “난 내가 먹자니 맛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존재가 될 줄은 몰랐어, 강유형...”“모든 사람들 눈에는 우린 이미 부부야.” 강유형이 내 말을 끊었다.‘그래서 뭐? 그 사람들 때문에 나랑 결혼하려는 건가?’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가 나를 사랑해서, 나와 평생을 함께 보내고 싶어서 결혼하는 거였다.‘탁’하는 소리와 함께 강유형의 손에 든 펜이 닫혔고 그의 시선이 내 손에 든 혼인 신고서에 머물렀다. “다음 주 수요일에 혼인신고 하러 가자.”이 말은 내가 듣고 싶었 거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가슴이 아팠다. 그것도 아주...난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강유형, 억지로 할 필요 없어. 나도 그럴 필요 없고.”“윤지원!” 그가 날카롭게 내 이름을 불렀다.나는 움찔했고 고개를 들어 그의 짜증 난 듯한 눈과 마주쳤다.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고 혼인 신고서를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턱이 굳어졌다. “이리 줘.”나는 움직이지 않았고 분위기는 더욱 팽팽해졌다.몇 초 후, 그가 일어나 내게로 왔고 내 앞에 서더니 한숨을 살짝 내쉬며 말했다. “지태랑 한 얘기는 그냥 농담이었어. 넌 왜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야?”정말 농담이었을까?“너도 알잖아. 남자들에게 체면이 얼마나 중요한 거.” 그의 손이 내 팔을 잡더니 천천히 내려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혼인 신고서를 빼앗아 갔다.“앞으로는 남의 말 함부로 믿지 마.” 그가 돌아서서 혼인 신고서를 서랍에 넣고 옆에 있
하루 종일 이 문제를 고민했지만 오후에 그가 나를 부를 때까지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난 그를 따라나섰다.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그에게, 그리고 퇴근 후 강씨 집안으로 돌아가는 일에 익숙해져 버렸다.“왜 말이 없어?”돌아가는 길에 강유형이 내 기분이 좋지 않음을 눈치챘는지 먼저 물었다.나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강유형, 우리 그냥...”뒷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휴대폰이 울리면서 차량 디스플레이에 이름 없는 번호가 떴고 강유형의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그가 긴장했다.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이미 재빨리 차량 스피커를 끄고 블루투스로 전환했다. “여보세요... 네, 지금 가고 있습니다.”통화 시간은 짧았다. 그는 전화를 끊고 나를 보며 말했다. “지원아, 급한 일이 생겨서 집에 데려다줄 수가 없겠어.”사실 그가 말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나를 내버려두고 갈 거라는 걸. 이미 처음이 아니었으니까.그래도 그가 말하기 전까지는 나를 먼저 데려다줄 거라고 기대했었다.가슴 한구석이 갑자기 텅 비어 아파왔고 나는 서운함을 억누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강유형의 턱이 굳어졌다. 그는 대답 대신 밖을 보며 말했다. “저기서 내려줄게. 택시 타고 돌아가.”설명조차 해주지 않고 이미 다 결정해 놓은 듯했다. 그러니 내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더 묻고 떼를 쓰는 건 스스로 망신당하는 일일 뿐이다.“집에 도착하면 전화... 메시지 보내.” 강유형이 당부하는 사이 핸들은 이미 돌아가 도로변 임시 주차장에 멈춰 섰다.나는 가방을 꼭 쥐고 차에서 내렸다.내가 예민한 게 아니다. 그가 발신번호를 본 후의 이상한 반응부터 차량 스피커로 통화하지 않으려 한 것까지, 이미 예감이 왔다.다만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을 뿐이다.어떤 일들은 묻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그대로 두고 자기 위안을 할 수 있으니.“조심해서 가!” 서두르는 와중에
평생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성추행 혐의로 경찰서에 끌려올 줄이야.그날 내가 부딪힌 건 고작 열일곱 살의 미성년자였다. 그 녀석은 내가 자기를 더럽게 만졌다고 우겼고 내가 아무리 부인해도 소용없었다.“어디를 만졌다는 거죠?” 경찰이 꼼꼼하게 물었다.조태혁이라는 소년은 나를 노려보며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더니 허리 아래를 가리켰다. “여기요, 여기... 이 여자가 다 만졌어요.”‘개소리하지 마, 이 자식아!’나는 욕설을 내뱉을 뻔했다. 강유형 같은 미남도 못 만져본 내가 겨우 털도 다 안 난 꼬맹이를 만진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경찰이 다시 나를 쳐다보자 난 그가 묻기도 전에 먼저 부인했다. “전 그 애를 만지지 않았어요. 그저 실수로 부딪쳤을 뿐이에요.”“술 드셨나요?” 경찰의 눈빛이 의미심장했다.이 사회에서 남자가 술에 찌들어 사는 건 정상이지만 여자가 술을 마시면 대부분 품행이 의심받게 된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셨어요.”“얼마나 드셨죠?” 경찰의 이 질문이 지금 상황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맥주 한 병이요.”경찰은 믿지 않는 눈빛을 보였다. 난 즉시 내 친구 안리영이 증인이 돼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꼬맹이와 내가 다투고 있을 때 안리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출혈 중인 산모를 구하러 병원으로 긴급 소환됐다고.난 경찰의 의도를 이해하고 다시 한번 설명했다. “전 취하지 않았어요. 술 핑계로 이 꼬맹이를 건드릴 이유도 없고요.”경찰은 내 말을 기록하고 조태혁을 바라봤다. “저 여성분께서 만졌다고 확신해요? 거짓말이나 무고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당연히 확실하죠” 조태혁은 정말 고집불통이었다. 나는 화가 나서 일어나 그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조태혁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누나, 왔어?”그가 미성년자니 당연히 보호자를 불렀을 거다. 나는 그의 가족에게 설명하려고 고개를
내 손이 아플 정도로 꽉 잡혔다. 분명 그가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이게 질투인 걸까?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이 스치는 순간 강유형은 내 손을 놓았고 그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윤지원, 내가 한마디 했다고 이렇게 복수하려는 거야?”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으니까.“아니 난...” 설명하려는 내 말은 도중에 끊겼다.“너 정말로 그 녀석을 만졌어? 정말로 그곳을?” 강유형의 턱이 굳어졌고 그의 눈에는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무서운 빛이 서렸다.이런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는데 역시 질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순간 내 마음속의 불편함이 많이 사라졌다. 그가 나를 여전히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만약 그가 나를 단순히 여동생이나 친구로만 여겼다면 내가 다른 남자를 만졌다고 해서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아니야.” 나는 다시 한번 부인했다.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태혁이 안에서 나왔고, 나를 향해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변태 아줌마, 또 우리 매형 꼬시려고?”사람 성격 쉽게 안 변한다더니 정말 그랬다.조태혁이 나를 바라보는 그 비열한 표정은 전생에 무슨 원수라도 졌나 싶을 정도였다.이쪽으로 걸어오는 남매를 보면서, 특히 조나연의 그 순수한 모습과 그녀가 강유형을 만졌던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손을 들어 강유형의 팔을 감쌌다.하지만 그의 근육이 순간 굳어지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또 거짓말이지.” 조나연이 조태혁의 귀를 꼬집으며 다가왔다.그녀는 우리 앞에 서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유형 씨, 지원 씨, 정말 미안해요.”“네 잘못 아니야.” 강유형이 조태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에 또 이런 짓 하면 아무도 널 구해주지 않을 거야.”“흥.” 조태혁이 불만스럽게 강유형을 흘겨보았다. “당신이 누군데요? 뭔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해요? 당신이 우리 새 매형이 되겠다면 말 들을게요.”“조태혁!”조나연이 꾸짖으며 그를 한 번 더 때렸고 조태혁은 피하며 말했다. “누나, 저 사람
“그럼 돌아가. 하지만 지금 네 상태로는 혼자 갈 수 없어.”강유형이 단호하게 말했고 잠시 침묵하다가 강진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형, 지원이랑 같이 가줘.”강진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았어.”나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아무리 거절해도 그들이 날 혼자 두고 갈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 너는?”나는 강유형의 머리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며 물었다.“난 여기 남아서 신지태 나오면 같이 갈 거야.”강유형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신지태가 낯선 곳에서 그런 일을 겪고 나왔는데 아무도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허전할까. 하지만 강유형의 지금 상태로 남아 있는 것도 신지태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네가 이 상태로 있으면 신지태가 더 죄책감 느낄 텐데.”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괜찮아. 사고 얘기는 꺼내지 않을 거니까.”강유형은 단호히 답했다. 더는 설득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지태 오빠, 경기 다시 뛸 수 있을까?”이번에는 강진혁이 대답했다.“아직 몰라. 구단 쪽 반응도 봐야 하고 Q클럽의 태도에 따라 다를 거야.”문득 진정우가 떠올랐다. 이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줄 사람은 진정우일 텐데 지금은 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나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꺼내 귀국 비행기표를 예약하기 시작했다.“내 것도 같이 예약해 줘.”강진혁이 말하기 전까지는 그의 표까지 예약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말하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그럼 여권 정보 줘.”강진혁은 여권을 건네는 대신 휴대폰을 꺼내 들고 말했다.“이미 예약했어. 두 장.”그의 말에 잠시 놀랐지만 그는 이어 말했다.“짐 챙겨. 한 시간 뒤에 공항으로 가자.”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 멈췄고 강진혁이 먼저 강유형을 향해 말했다.“머리 다친 건 별일 아니지만 이제 몸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해. 네 몸 상태가 예전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는 걸 잊지 마.”그의 말
뉴스?무슨 뉴스?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내가 깨어난 이후로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고 문 앞에 있던 강유형과 강진혁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무슨 뉴스야?”내가 직설적으로 묻자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아마도 나한테 뭔가를 숨기려는 듯했다.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다 들었으니까 숨기지 말고 제대로 말해줘.”강진혁은 짧게 한숨을 쉬고 핸드폰을 꺼냈다.강유형이 말리려는 듯 보였지만 내가 강한 눈빛으로 제지하자 그도 말없이 물러섰다.“이미 알게 된 이상 차라리 직접 확인하고 진정우랑 제대로 얘기하는 게 나을 거야.”강진혁이 말하며 핸드폰을 건넸다.핸드폰 화면에는 웹 기사 캡처가 떠 있었다.[희귀한 황금 혈액형 연인, 여자 친구가 800cc의 피로 남자 친구를 구해줌. 이제 내 피가 당신의 몸속에 흐르고 있어요.]로맨틱한 제목과 함께 내가 강유형의 손가락을 잡고 응원하던 사진이 실려 있었다.그저 힘내라는 뜻에서 손을 잡았던 순간이었지만 제목과 사진이 더해지니 마치 우리가 생사를 함께하는 연인처럼 보였다.“이 뉴스 언제 올라온 거야?”나는 강진혁을 보며 물었다.“3일 전이야. 네가 수혈을 끝내고 바로 올라왔어.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와 있었고 진정우도 이미 와 있던 상태였어. 진정우가 아마 이걸 봤던 게 분명해.”그 순간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강진혁은 내 표정이 안 좋아지는 걸 눈치채고 조용히 덧붙였다.“바로 사람을 시켜 이 뉴스는 삭제했어. 지금은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없어.”그게 무슨 소용일까.진정우는 이미 이 기사를 봤을 텐데 말이다.나는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는 건 상관없었지만 진정우만큼은 아니었다.그가 아무리 나를 믿고 있더라도 이 사진과 제목은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다.“이 일은... 내가 진정우한테 직접 설명할게.”강유형이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이런 일은 설명할수록 더 복잡
나는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래.]그 단어 하나가 머릿속을 텅 비게 만들었다.잠시 후, 나는 내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이때 강유형이 욕설을 내뱉으며 말했다.“저 자식,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그는 다시 진정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에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빠르게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공기가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내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나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잠시만 혼자 있고 싶어요.”강유형과 강진혁은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더는 말없이 문을 닫고 나갔다.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내가 왜 울고 있는 걸까? 그가 그렇게 쉽게 헤어지자고 한 말 때문일까?아니면 내가 이렇게 기다렸음에도 나를 보러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 때문일까?나는 진정우를 기다렸고 그는 왔지만 나는 결국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그저 긴 잠에 빠졌을 뿐인데 겨우 사흘 동안 못 봤다고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걸까?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혹시 나를 구하는 과정에서 크게 다쳐서 나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걸까?아니면 그가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걸까? 아니면 그의 가족, 특히 그 유명한 진씨 가문이 나 같은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머릿속은 온갖 상상으로 뒤엉켰지만 나는 스스로를 억누르며 생각을 멈췄다.이럴 때일수록 직접 확인하는 게 나을 테니까.하지만 그가 전화를 꺼둔 탓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그 순간, 문득 진소영이 떠올랐다. 나는 그녀와 시차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전화를 걸었다.“언니!”진소영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언니?”그녀가 다시 불렀다.“잘못 걸었어. 미안해, 자는데 깨웠지?”내 목소리에 감정을 숨기려 애썼다.내가 지금 처한 상황을 그녀가 알게 된다면 분명히 걱정할 것이다.“아니에요
“지원아!”강유형이 손을 뻗어 나를 붙잡았다.나는 그의 머리에 감긴 붕대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와 함께 들어온 강진혁을 향해 말했다.“정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그러자 강진혁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야? 어떻게 알아?”“확실한 건 아닌데 그냥 느낌이 그래요.”나는 힘없이 대답했다.“전화했더니 바쁘다면서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어요.”나는 이유를 설명했다.“그럼 다시 전화해 봤어?”강유형이 물었다. 사실 다시 걸어보진 않았다.진정우가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했으니, 나는 그냥 기다리고만 있었다.“내가 걸어볼게.”강유형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한참 후, 진정우의 목소리가 들렸다.“강 대표님.”바로 내 앞에서 전화했기에 대화가 또렷하게 들렸다.“정우 씨, 지금 어디예요?”강유형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비행기 안이에요.”진정우의 대답에 내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강유형이 나를 힐끗 보며 다시 물었다.“비행기? 어디로 가는 중이죠?”“귀국 중입니다.”이 짧은 두 글자에 내 심장은 쥐어짜이는 듯했다. 나는 강유형의 휴대폰을 낚아채며 말했다.“정우야, 무슨 일 생긴 거야?”아무 대답이 없자 내 손은 떨리기 시작했다.“말 좀 해봐. 무슨 일 있는 거야? 지금 어디에 있어?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거지.”그가 깨어난 나를 보러 오지 않은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바빠도 이런 일에는 반드시 와야 하지 않나?“아니야. 거짓말 안 했어.”진정우가 차분하게 답지만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못 믿어. 전에 나 속인 적 있잖아.”그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래, 나는 거짓말쟁이야. 하지만 이번엔 아니야. 못 믿겠으면 사진 보내줄게.”전화가 끊기고 곧 내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그는 비행기 좌석에 앉은 자신의 사진과 함께 비행기표 사진을 보내왔다.그가 진짜 귀국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보러 오지
강진혁이 내가 사흘 동안 의식 없이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강진혁이 사흘 동안 이곳에 있었다면, 전화로 곧 오겠다고 했던 진정우도 이미 왔었을 것이다. “물 좀 마셔.”강진혁이 컵을 건네며 말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진정우는 어디 있어요?”그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일단 물부터 마셔.”그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목이 점점 더 아파졌다. “아직 안 왔나요?”“아니.”그는 침대 옆에 앉으며 대답했다.“왔었어.”“그럼 지금은 어디 있어요?”내가 의식이 없던 동안 그는 당연히 내 곁에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내가 벌이라며 그를 보지 않겠다고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걸까?“떠났어. 아마 널 다치게 한 사람들을 처리하러 간 것 같아.”그가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정말 진정우밖에 없네. 깨어나자마자 걔부터 찾고.”그의 농담에 약간 안도했지만 떠오르는 위험한 상황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혼자 갔나요? 언제 떠났는데요?”“정확히는 모르겠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널 구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라면 그 문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강진혁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는 진정우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 같았다.내가 알던 진정우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을 뿐인데 그의 진짜 정체를 알고 난 후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이렇게 영향력을 발휘하다니. 문득 강유형이 내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너 정말 진정우에 대해 다 알아?”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그를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아는 듯했다.나는 강진혁이 건넨 물을 몇 모금 마시며 물었다.“오빠도 진정우의 정체를 알고 있었어요?”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보다 조금 더 일찍 알았어.”“근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요?”그렇게 묻고 나니 스스로가 우스웠다. 내 남자 친구의 진짜 정체를 왜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지원아, 이유가 있을 거야. 직접 만나서 이
수혈을 과도하게 한 탓인지 나는 깊은 잠에 빠져 한참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꿈속에서 누군가가 계속 내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다.“지원아, 꼭 조심해야 해. 다치거나 피를 흘리면 아무도 널 구할 수 없어.”“왜 그렇게 많은 피를 준 거야... 그러다가 죽으면 어쩌려고.”“바보 같은 년, 누가 너더러 피를 주라고 했어?”“지원아, 제발 날 구해줘. 나... 너무 추워.”꿈속의 목소리는 부모님, 진정우, 그리고 강유형이었다.나는 뭐라도 대답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러다 꿈속 장면이 멈췄고 강유형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그의 몸에서 피가 끝없이 흘러내렸다.나는 겁에 질려 소리쳤다.“강유형! 강유형!”손을 뻗어 그의 상처를 막으려 했지만 아무리 막아도 피는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공포에 몸이 떨리며 나는 그를 계속 불렀다.“강유형! 강유형!”“지원아, 일어나. 제발 정신 좀 차려!”급한 목소리와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눈을 뜨자마자 나는 거친 숨소리를 내쉬었다. 꿈속에서 느낀 공포가 여전히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지원아.”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돌리자 강진혁이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악몽이라도 꿨어?”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빼려 했다.강진혁은 내 손을 놓아주며 물었다.“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나는 목이 칼에 베인 듯 아파 말을 내뱉는 게 너무 힘들었다.“너와 유형한테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내가 안 올 수 있겠어?”강유형의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며 꿈속 장면과 현실에서 그가 위급했던 모습이 겹쳤다.나는 아픈 목소리로 물었다.“강유형... 어때요?”강진혁은 다행히도 평온하게 대답했다.“이미 깨어났어. 너를 몇 번 보러 오기도 했어. 하지만 쉬게 하려고 내가 다시 병실로 돌려보냈어.”그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제가 그렇게 오래 잤다고요?”창밖을 바라보니 날이 밝았고 사고가
평소 병원에서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30분은 걸리는데 이번엔 단 몇 분 만에 결과가 나왔다.의사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좋습니다. 지금 바로 수혈을 진행해야 합니다. 대략 400cc에서 600cc 정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괜찮아요. 더 필요하다면 더 해도 돼요.”강유형이 내 탓에 다친 것은 아니지만 그가 과다 출혈로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나는 의사의 안내로 옷을 갈아입고 응급실로 들어갔다.나는 구급 침대에 누워 있는 강유형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핏기가 없었고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의사가 그가 언제든지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말한 생각에 나는 마음이 불안해졌다. 나는 그의 옆으로 걸어가 그의 새끼손가락을 가볍게 잡으며 속삭였다.“강유형, 꼭 버텨야 해. 힘내.”그는 스스로 생명줄을 놓아서는 안 되었고 나는 그의 생명을 이어주기 위해 수혈을 해야 했다.나는 그의 옆 침대에 누웠고 날카로운 바늘이 내 팔을 찔렀다. 붉은 피가 투명한 관을 따라 그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얼마나 많은 피를 뽑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버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피가 계속 빠져나가자 나는 점점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졌고 졸음이 밀려왔다.나는 이것이 혈액 손실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수혈을 멈출 수 없었다. 강유형을 살리려면 내 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이미 600cc나 뽑았습니다.”한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하지만 환자의 혈압과 호흡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더 계속 수혈해야 합니다.”주치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고 그가 말을 꺼내기 전에 나는 대답했다.“더 뽑아주세요. 괜찮아요.”“더 뽑으면 윤지원 씨가 실신할 수 있습니다.”의사가 나를 보며 경고했다.“아니에요. 지금 제 상태는 아직 아주 좋아요. 정말 괜찮아요. 더 뽑아주세요.”아마도 내가 너무 집착해서 그런 것 같았기에 의사는 주치의에게 물었
우리는 마침내 구조되었다.구조대원 중 한 명은 신지태를 만나러 갈 때 나를 태워준 운전기사였다.나는 그가 진정우의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차가 심하게 찌그러져서 차를 절단해야만 강유형과 운전기사를 구출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와 강유형의 핸드폰도 함께 찾아냈다.“어? 이 전화 아직도 통화 중이네요.”그는 핸드폰을 내게 건네주었다.하지만 그건 내 핸드폰이 아니라 강유형의 것이었다.나는 전에 이 핸드폰으로 진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가 전화를 끊지 않았던 것일까?나는 혼란스러운 상태로 핸드폰을 받아 들여다보니 통화가 막 끝난 상태였고 통화 시간은 67분 12초로 표시되어 있었다.진정우가 계속 전화를 끊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강유형과 내가 나눈 대화를 들었을까?하지만 강유형과 나는 별로 중요한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안도했다.깊이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나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검사 결과 나는 가벼운 상처를 입었지만 강유형과 운전기사는 매우 위중한 상태였다.강유형은 과다 출혈로 인한 쇼크 상태였고 운전기사는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의식이 없었다.셋 중에서 내 상태가 가장 양호했다.이는 전적으로 강유형이 끝까지 자신의 몸으로 나를 보호했기 때문이었다.“강유형 씨의 가족이나 보호자가 계십니까?”의사가 다가와 물었다.우리는 낯선 나라에 있었고 지금 이 순간 강유형의 가족은 그의 곁에 없었다.나는 결국 나서야 했다.“제가 가족입니다. 강유형 씨의 상태는 어떤가요?”의사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현재 환자가 과다 출혈 상태입니다. 문제는 환자의 혈액형이 매우 희귀한 RhD 음성, RhNULL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병원에는 이 혈액의 재고가 전혀 없어서 즉시 수혈하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보호자께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의사가 강유형 씨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말한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그의 혈액형이 RhNULL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혹시 같은 혈
강유형과 헤어진 이후로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를 바라본 건 처음이었다.지금 그는 바로 내 앞에 있었고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차가 뒤집힐 때 나를 안고 보호해 준 사람이 그였고 나 때문에 이렇게 심하게 다쳤을 것이다.“강유형, 말 좀 해봐.”내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내가 말을 걸어도 그는 점점 더 잠에 빠질 뿐이었다.“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하고 싶은 말 다 해봐. 우리가 헤어진 후에 무슨 생각 했는지... 조나연 얘기도 좋고, 얼마 전 네가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말해도 좋아.”나는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잠이 든 건가 싶어 다시 불렀는데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지원아, 난 정말 널 사랑했어.”나는 숨을 멈추고 그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고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넌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여자야. 너를 본 이후로 다른 여자는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만 보였어. 그 어떤 설렘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그는 미소처럼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계속 말했다.“이런저런 여자들이 나한테 고백도 하고 출장 중엔 누군가는 옷까지 벗고 내 침대에 들어와 있었던 적도 있었어. 하지만 난 말하지 않았어. 네가 걱정하고 상처받을까 봐.”“나는 항상 너를 지키고 싶었어. 그래서 어떤 여자를 만나도 손끝 하나 대지 않았어. 그들이 너무 더럽게 느껴졌거든. 내가 그들을 만지면 너까지 더럽혀질까 봐.”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가 다시 말했다.“조나연 일이 벌어진 것도 나도 모르게 빠져버린 함정이었어. 조나연은 겉으로 너무 잘 꾸며져 있었어. 아마 하늘이 일부러 우리를 방해한 거겠지...”그가 한참 힘을 주어 눈꺼풀을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항상 강하고 당당했던 그가 이렇게 무기력해진 모습은 처음이었다.“우리 운명이 거기까지였나 봐. 아마도 서로 진심이 부족했나 보지. 우리는 하늘도 어쩌지 못할 운명이었겠지.”나는 그의 말을 받아줬다.강유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