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이 첫째를 다시 유모차에 돌려놓았다.“동양인들 이름은 나도 잘 모르니까 네 아버지한테 도움을 요청해 보렴. 영문 이름이라면 내가 지어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당분간은 아버지께서 아이들 좀 봐주실 수 있으실까요?”그러자 한희운이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내가?”“네. 이대로라면 저와 유이 둘만의 시간이 아예 사라져 버릴 것 같거든요.”한태군의 말에는 어마어마한 원망이 섞여 있었다.그는 지금 반년 째 금욕 생활을 겪고 있었다. 최근에는 토끼 같은 자식놈들이 떡하고 버티고 있으니 아내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는 더더욱 힘들었다.강유이는 너무나도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 숨고 싶은 마음이였다.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게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결국 한희운 할아버지가 베이비시터 역을 맡게 되었다. 아이들이 없는 며칠 동안 한태군은 강유이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는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늦은 밤까지 혹사당한 강유이가 기진맥진하며 그를 원망했다.“아이들 밥까지 오빠가 다 먹으면 어떡해. 애들은 나중에 뭐 먹으라고.”그가 그녀를 품에 안으며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분유 먹이면 돼.”강유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나빴어. 아빠라는 사람이 어쩜 그래?”그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나쁘다니. 걔들이 말썽을 부린 탓이지 뭐!”그러자 강유이가 그의 품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오빠 지금쯤 아이들이 아버님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세 아이가 동시에 울음을 터뜨리기라도 하면 그만한 소란이 없을 것이다.한태군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어머니와 아버지가 잘 돌봐주실 거야.”…S 국, 외교부 청사.조민은 4개 국어에 능통했고 F 국 외교부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경력도 있었다. 또한 그녀는 외국어 학과를 졸업할 정도로 능력있는 사람이였기에 특별 전형으로 파격 스카우트된 상황이였다.그녀는 이곳에 온 지 며칠 되지 않
옷을 정리하던 조민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빠르게 표정을 관리하며 미소를 살짝 지었다.“괜찮아요. 마음만 받을게요. 고마워요.”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데니스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화장실로 들어간 조민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었다. 커피 자국은 물로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돌아가서 다시 빨아야 할 것 같았다.그치만 방금 그 데니스라던 남자는 너무 과하게 친절한 것 같은데 말이다. S 국 남자들은 다들 이렇게 열정적인가?오후 조민은 외투를 팔에 걸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때 차 한 대가 그녀의 앞에 멈춰 서더니 차창이 스르륵 내려갔다. 또 데니스 그 남자였다.“조민 씨 옷 더럽혀서 진짜 죄송해요. 제가 다른 맘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사죄의 의미로 사주고 싶어서 그래요.”조민이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애써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데니스 씨, 사과는 받아들일게요. 하지만 선물은 정말 괜찮아요.”“알겠어요. 어디 사세요?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제발 저한테 사과할 기회를 주세요.”조민은 잠깐 고민했다. 다 같은 직장 동료인데 계속하여 그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보기 좋지는 않을 것이다.그녀가 막 제안을 받아들이려던 그때, 등 뒤에서 갑작스러운 차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 뒤돌아 보았다.소찬이 운전석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고 그녀를 향해 말했다.“저기요,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누군줄 알고 차에 막 올라타요?!”“…”데니스가 뒤를 힐끗 바라보고 그녀에게 물었다.“조민 씨 친구예요? 지금 뭐라고 말씀하신 거죠?”데니스는 한국어에 조금 약했다. 조민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죄송해요. 제 친구가 데리러 왔네요.”그녀가 소찬이 탄 차로 걸어가 차에 올랐다. 그녀가 앉는 걸 확인하고 소찬이 차를 몰고는 그곳을 벗어났다.데니스는 멀어져 가는 차를 가만히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차 안, 조민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가 멈칫거렸다. 혹시 소찬이 온 건가?문 앞에 도착한 조민이 막 문을 열려던 그때 문밖에서 소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신 누구야?”곧이어 요란한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조민이 당장 문을 열고 나가보니 소찬이 누군가를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어찌나 빠른지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소찬 씨!”조민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복도 끝까지 쫓아간 그가 잔뜩 화를 내며 다시 그녀에게 돌아왔다.“휴대폰은요? 문자 확인 안 했어요?”그의 고함에 조민이 당황한 표정으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무슨 문자요?”그러자 소찬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너무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났다.“휴대폰 필요 없으면 가져다 버리는 게 좋겠어요. 제가 문자 보냈잖아요. 누가 노크해도 절대 문 열어주지 말라고요. 진짜 무슨 여자가 이렇게 겁이 없어요?!”그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남았기에 망정이지 이 여자 혼자 뒀다가는 정말로 큰일 날뻔했다. 이 여자는 정말로 세상의 흉흉함 같은 건 모르고 사는 것 같았다.조민이 잠깐 침묵하다가 그를 바라보았다.“고마워요. 이제 알겠으니까 소찬 씨는 먼저 돌아가 보세요.”“뭐요?”소찬이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이게 무슨 말인가? 정말로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이 호텔 치안이 엄청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제 말은 우선은 돌아가서 쉬시라고요. 제 일은 소찬 씨가 나설 필요 없이 제가 잘 알아서 할게요.”말을 마친 조민이 문을 닫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닫힌 문을 바라보며 소찬이 팔짱을 끼고 버럭 화를 냈다.“조민 당신 사태 파악이 안 되는 거야? 내가… 하 내가 또다시 당신 일에 끼어들며 내가 개다! 개!”그가 버럭 화를 내켜 성큼성큼 자리를 벗어났다.문 뒤에 기대 선채 소찬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는 걸 듣고 있던 조민이 문뜩 뭔가를 떠올리고 방문을 잠그고 걸쇠까지 걸어두었고, 또한 협탁 위에 놓인 신문을 접어 문틈 사이에 끼워 넣었다.늦은 밤에 잠든 조민은 누군가가 카드 키로 방문을 여는 듯
조민이 차 트렁크에 짐을 실은 후 고개를 돌려 매니저를 바라보았다.“고마워요. 하지만 더 이상 필요할 것 같지는 않네요.”“손님…”“혹시 무슨 일 생겼나요?”바로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에 조민이 고개를 돌렸다. 데니스가 차에서 내리더니 그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매니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데니스 씨.”조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두 분 아는 사이세요?”데니스가 웃으며 설명했다.“이 호텔 제 명의 하에 있는 호텔이거든요. 죄송해요. 조민 씨가 여기 머무르시는 줄 몰랐어요.”조민이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랬군요…”“무슨 일 있었나요?”데니스가 매니저한테 묻자 매니저가 솔직하게 사건을 털어놓자 데니스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일이 있었다니. 문제가 된 그 직원은 해고하는 게 좋겠네요.”“하지만 현재 호텔에는 일손이 많이 달리는 상황입니다. 해고하고 나면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고요.”매니저가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했다.데니스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손님한테 그런 불쾌한 기억을 남겨주고도 해고하지 않다니요. 그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그리고 오래된 경력직이었다면 과연 그런 잘못을 했을까요?”순간 할 말을 잃은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지금 가서 말을 전할게요.”매니저가 다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조민은 말없이 멀어져 가는 매니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때 데니스가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이런 일을 겪게 해서 죄송하네요. 이러면 어떨까요? 지난 며칠간 호텔에 머무르신 비용은 전액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사죄의 의미라고 생각해 주세요.”조민이 그를 바라보더니 마주 미소 지었다.“괜찮습니다. 호텔 영업도 쉽지 않죠. 데니스 씨가 이미 범인도 해고했으니 저도 더 이상 따지지 않겠습니다.”그녀가 차 트렁크를 닫으며 인사를 건넸다.“저 먼저 가볼게요. 점심에 회의가 있어서요.”데니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러세요.”조민이 탄 차가 멀어져 가
고개를 돌린 조민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휴게실에서 나오던 데니스가 조민을 발견하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조민 씨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요. 두 분은…”데니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아, 여긴 제 여자친구입니다. 방금 좀 싸웠거든요.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웠는데 그것 때문에 제가 화가 많이 나서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조민이 당황하더니 잠시 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저 연인 사이의 일이니 제가 오해하고 말고 할 게 있나요. 그럼 저는 다른 볼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혹시 지낼 곳은 찾으셨나요?”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조민이 걸음을 멈추고는 그를 돌아보았다.“그걸 어떻게 아시죠?”“최근 계속 호텔에서 냈잖아요. 그래서 아직 마땅한 집을 못 찾았겠다 생각했죠.”데니스가 그녀와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갔다.“제가 안 쓰고 비워둔 아파트가 하나 있거든요. 거기서 지내는 건 어떤가요? 집세도 절반만 받을게요.”조민이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제가 머물 집은 스스로 찾을 수 있어요.”그녀가 다시 몸을 돌려 가던 길을 재촉했다.데니스가 볼에 바람을 넣으며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한편, 헬스장에 도착한 다민은 소찬이 온몸에 땀을 뒤집어쓴 채 턱걸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가 웃으며 생수병을 땄다.“웬일로 오늘은 이렇게 부지런해?”그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기분이 안 좋아서.”턱걸이를 백 개 가까이 한 그가 지쳐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땀에 젖은 민소매가 울룩불룩 튀어나온 그의 근육에 철썩 달라붙었다.다민이 그에게 수건을 건넸다.“듣기로 요즘 어떤 여자와 가깝게 지낸다고 하던데. 연애라도 하는 거야?”그러자 소찬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그 여자 말은 꺼내지도 마! 생각만 해도 짜증 나려 하니까 말이야. 그런 여자와 연애? 나 진짜 그
소찬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렇게나 날 믿어요?”조민이 물건을 거실에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그를 돌아보았다.“어차피 당신도 내가 눈에 차지 않잖아요.”“…”보디워시를 꺼내들던 조민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이리스 향이라니. 이런 건 젊은 아가씨들이나 좋아하는 향이 아닌가?“왜 이 향을 고른 거예요?”그러자 그가 소파에 앉으며 대답했다.“당신이 뭘 쓰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냥 아무거나 산 것 뿐이예요.”그는 절대 사실대로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가 사 온 물건들은 전부 그가 직접 매장 직원한테 물어 일일이 소개받은 것들이라고.칫솔뿐만 아니라 양치컵 심지어 수건까지 전부 소녀스러운 디자인이었기에 조민은 갑자기 웃음이 새어 나왔다.‘됐어. 굳이 날 위해 수고스럽게 심부름까지 해준 건데.’“뭐 마실래요?”소찬이 곧은 자세로 소파에 앉아서는 대답했다.“아무거나요.”냉장고를 뒤적이던 조민은 다행히 미리 넣어두었던 커피 캔 두 개를 찾아낼 수 있었다.그녀가 캔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커피를 건네받은 소찬이 어쩐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나 정말 여기 들어와도 괜찮은 건가? 아무리 그래도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남자가 들어온다면!’그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알아차린 그녀가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왜 긴장하고 그래요?”그는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긴… 긴장은 무슨..! 내가 언제요.”당황한 모습에 조민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설마 내가 흑심이라도 품었을 까봐 겁먹었어요?”“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요. 겁먹기는 누가 겁먹었다고. 그리고 막상 일이 벌어지면 진짜 손해 볼 사람이 누군데요?”소찬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다 서둘러 시선을 옮겼다.‘이 여자 역시 너무 경계심이 없어!’그녀가 소파에 등을 기대더니 손에 들고 있던 캔 커피를 꽉 쥐었다.“어젯밤에 호텔 직원이 마스터키로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했었어요.”소찬이 곧바로 그녀를 돌아보았고 계속하여 말을 이어 나갔다.“다
명승희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래. 이 애들이 앞으로 네 막내 조카들이 될 거야.”그러자 여설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막내 조카가 뭐예요? 먹는 거예요?”멍승희가 소리 내어 웃었다.“하하. 얘는 어쩜 먹는 생각밖에 할 줄 몰라! 조카들은 당연히 먹으면 안 되지.”강유이는 천진난만한 꼬마 아가씨를 바라보며 부러운 듯이 말했다.“저한테도 딸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하지만 아들도 귀엽죠. 앞으로 이 애들이 공주님을 지켜줄 훌륭한 기사가 될 텐데요. 남편과 세 자식들의 보호를 받는 공주님이라. 정말 꿈에 그리는 모습이네요.”그때 여준우와 한테군도 정원 쪽으로 걸어왔다.아버지를 발견한 여설희가 활짝 웃음을 지었다.“아빠! 저 동생들이랑 놀고 있었어요!”여준우가 아이의 곁에 멈춰 서더니 커다란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동생들 좋아?”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명승희가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그럼 앞으로 설희가 자주 와서 동생들이랑 놀면 되겠다.”여설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정말 그래도 돼요?”“물론이지. 네 사촌 언니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렇지?”강유이도 곧바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공감했다. 연회가 시작되자 한태군이 유모차를 끌고 연회장에 나타났다. 강유이는 그의 팔짱을 끼고 나란히 서 있었다.여설희도 자기 부모의 손을 꼭 붙잡고 입장했다.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정연과 한희운은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까지 모두 도착하자 서둘러 술잔을 내려놓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우리 아가들 왔구나.”아이들은 유모차 차 안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회장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첫째와 둘째는 낯가림이 없어 괜찮았지만 유독 작고 연약한 막내만이 안아든 순간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정연과 한희운은 아이의 세찬 울음소리에 결국 웃고 말았다. 셋째가 울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두 집중되었다.강유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울음이
”아버지가 원래 그런 걸 좋아하셔. 마음에 들어서 정말 다행이야.”…며칠 뒤 S 국.이날은 외교부 직원들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들은 조민도 회식에 초대했고, 조민은 원래 참석할 생각이 없었지만 동료들의 열정적인 초대에 결국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퇴근 후 그녀는 직장 동료와 함께 회식 장소로 향했다.식당에 막 들어선 순간, 그녀의 눈에 데니스가 보였다. 데니스는 블루 계역의 캐주얼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확실히 눈에 띄는 외모였다.그녀는 두 여직원의 뒤를 따르며 테이블에 합석했다.옆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던 데니스가 술잔을 흔들며 조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조민 씨는 우리 회식에 처음 참석하시는 거죠?”곁에 있던 여자 통역사가 농담 섞인 말을 던졌다.“데니스 조민 씨한테만 너무 신경을 쓰고 있는 거 아니에요? 혹시 두 사람 뭔가 있는 거 아니에요?”데니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전 기쁠 것 같은데요?”그의 말은 충분히 노골적이였다.데니스는 자기 마음을 전혀 감출 생각이 없었다.조민이 미간을 찌푸리다가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미소 지었다.“데니스 씨는 참 말을 직설적으로 하시네요.”“제가 좀 원래 직설적이긴 합니다.”곁에 있던 여자 통역사가 조민의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어때요? 데니스와 잘 해볼 생각 있으신가요?”주변 사람들이 열렬하게 호응하며 그녀를 주시했다.조민은 그저 예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분간 업무 외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요.”“조민 씨는 일에는 엄청 진지한 타입이시네요.”“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사실 저는 자연스럽게 만나는 걸 더 추구하는 편이라서요. 저희 Z 국에서는 보통 자연스럽게 만나 점점 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만나는 걸 더 선호해서요.”데니스가 천천히 술을 들이켰다. 그는 더 이상 방금 전과 같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드디어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문뜩 조민은 맨 구석에 어떤 여자가 멍하니 홀로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시끌벅적한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