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이를 악물더니 시월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그러자 시월이 여유롭게 주먹을 피하더니 곧바로 훅을 날려 남자를 점점 뒤로 몰아붙였다. 남자는 자신이 전혀 여자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도망치려 돌아섰다. 하지만 곧바로 허리에 꽂힌 킥에 맞아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지갑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시월이 남자의 등을 밟더니 목덜미를 잡아올렸다.“눈이 삐었어? 감히 내 지갑을 다 도둑질하다니! 진짜 죽을라고!”그녀의 주먹이 다시 한 번 남자의 얼굴에 꽂혔다.겨우 그녀를 따라잡은 동훈은 눈앞에서 여자가 잔인하게 남자를 폭행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흉악한 모습에 동훈은 그 자리에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시월을 볼 때마다 자동으로 생성되었던 필터가 산산이 깨져버린 순간이었다.한편, 차량 한 대가 도장 입구에 정차되었다. 남우가 반재언과 함께 차에서 내린 후 도장 안으로 들어갔다. 제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씨 가문의 큰 도련님까지 왔다고?두 사람 외에 호형과 하준도 몇 박스나 되는 술을 들고 왔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재료를 사러 갔던 시월과 동훈이 한 사람씩 도장 안으로 들어왔다. 떠나기 전만 해도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던 동훈의 표정이 김빠진 고무풍선 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꽤나 많은 인원이 함께 모이다 보니 테이블 세 개를 붙여야 겨우 앉을 수 있었다. 가마도 양측으로 두 개나 준비되어 있었다. 기다란 상에 샤브샤브에 필요한 고기나 해물, 야채가 한가득 올라왔다.남우의 곁에 앉은 반재언은 좀처럼 먹지를 않았다. 그의 앞접시에 놓인 야채도 전부 남우가 대신 짚어준 것들이었다.“체면 차리지 말고 많이 먹어.”반재언이 피식 웃더니 그제야 젓가락을 들고 한입 맛보았다.그때 하준이 물었다.“누님, 이쪽 도련님과는 언제 결혼식을 올리세요? 당연히 저희들도 불러 주실 거죠?”종언이 그들을 쳐다보았다.당황한 남우가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앉아만 있자 시월이 먼저 말을 꺼냈다.“스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남우가 반재언 쪽으로 몸을 바싹 들이대며 물었다.“아까 종언이랑 무슨 말 했어?”반재언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웃기 시작했다.“우리 결혼식에 참석해 달라고 했지.”“참석한대?”“응, 한대.”남우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참지 못하고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했다.“난 또 둘이 말다툼이라도 하는 줄 알았어.”반재언이 그녀의 손을 입가에 가져가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몸 싸움을 할 걱정은 안 했어?”그녀가 정색하며 말했다.“설에 몸싸움을 하는 건 아니지.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몸싸움을 하는 건 너무 창피하잖아.”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우리 남우도 철들었네. 이런 말을 다 하고.”남우가 멈칫거리더니 그에게 잡혀있던 손을 빼냈다.“너 지금 나 돌려 깐 거지? 너 집에 가서 봐!”그때 반재언의 휴대폰이 울렸다. 소찬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그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재언 형, 한 해의 마지막 날인데 나와서 놀아야지. 골드 룸살롱에 혼혈 미녀들이 새로 들어왔는데 정말 끝내줘!”남우가 그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걸 확인한 반재언이 주저 않고 대답했다.“안 가. 집에서 내 와이프랑 있을래.”그가 전화를 끊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가고 싶어?”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나도 갈 수 있어?”“당연히 아니.”“어차피 이대로 집에 돌아가도 따로 할 일 없잖아. 미녀들 만나러 가자~”반재언이 그녀의 턱을 붙잡고 말했다.“나로는 부족한 거야?”남우가 그를 밀어냈다.“내가 어쩌다 이렇게 넓은 아량을 베풀어 네가 합법적으로 미녀를 볼 수 있게 해준 다는데. 싫어?”그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나 혼자 간다면 고려해 볼만하지.”남우는 차 안에 기사님이 있는 것도 고려하지 않고 곧바로 반재언을 향해 달려들었다.“반재언!”…골드 룸살롱.소찬은 술잔을 들고 바 테이블에 앉아 미녀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술을 들이키는 그때 짙은 화장을 한 여자
이 여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에 두드러기라도 나는 건가?조민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진지하게 대답했다.“지난번은 사고 같은 거였어요. 오늘은 그 정도로 안 마실 거예요.”조민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혼자예요?”“그럼 혼자지, 내가 둘로 보입니까? 근데, 그쪽 지금 내 친구 몸 위에 앉았어요.”소찬이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조민이 자신이 앉은 자리를 둘러보았다.“제가 당신 친구 몸 위에 앉았다고요?”소찬이 자기 잔에 술을 따르더니 씩 미소 지었다. 순간 그녀를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그래요. 알고 싶어요?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오늘 밤 쉽게 잠들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조민이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점점 더 호기심이 생기는 데요?”소찬은 그녀가 전혀 동요하지 않자 쯧 하고 혀를 찼다.“지금 엄청 센척하나 본데, 궁금하다면 알려줄게요. 얼마 전에 제 친구가 옥상에서 뛰어내렸거든요. 아주 처참한 몰골로 죽어버렸죠. 머리가 다 으스러졌었거든요. 그리고 지금 당신이 바로 그 친구가 앉아있는 자리에 앉아있어요. 지금 엄청 불쾌해 하고 있는데.조심해요. 이따 당신이 잠들었을 때 당신 침대 머리맡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으면 곤란할 테니까요.”그는 당연히 그녀가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오히려 조민이 웃으며 말했다.“공포 이야기도 할 줄 알아요?”“…”조민이 술잔을 내려놓았다.“당신 친구는 왜 뛰어내렸대요? 사람 인생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어차피 마지막엔 다 죽을 텐데, 뭐 하러 그렇게 빨리 가려고 했을까요?”소찬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그 말을 정말로 믿었다니!근데 문제는 전혀 겁을 먹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그가 자신의 잔에 술을 한잔 더 따르며 물었다. “무섭지 않았어요?”“뭐가 무서워요.”조민이 그를 바라보았다.“십 년 전에 그런 공포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었거든요. 그때는 진짜 무서웠는데, 십 년이 지나니까 그 마음도 무뎌지네요. 그리고 죽은 사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네가 가고 싶다면 같이 가줄게.”반재언이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기댔다.남우가 돌아서서 반재언을 마주 보며 물었다. “지난번에는 S 국에 같이 가자며?”그러자 그가 멈칫했다. “가고 싶어?”“네가 그랬잖아. 네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내가 네 친구들 만나는 거 선 넘는 건 아니지?”그가 실눈을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확실히 내 친구들만 만나보고 싶은 거 맞아?”남우가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넌 스카이 섬 사람들을 다 만나 봤잖아. 나만 파라다이스 사람들을 몰라. 반씨 집안 큰 도련님인 반재언의 와이프로서 성의를 표해야 하지 않겠어?”반재언이 웃음을 터뜨리며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를 훑었다.“알았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그가 그녀를 번쩍 안아 들더니 침대로 향했다.고작 열한 시 밖에 안 되었는데 거리는 제법 한적했다. 대부분의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오직 차량 몇 대만이 다리 밑으로 오고 가고 있었다.“봤죠? 저 오늘은 안 취한 다니까요.”차에 앉은 조민이 창문을 내렸다.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니 어쩐지 정신이 바짝 드는 것만 같았다.옆에 앉은 소찬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고작 취하지 않은 걸로 뭘 그렇게 우쭐거려요?”조민이 그를 돌아보았다.“그러고 보니 저 아직 그쪽 이름도 모르네요.”소찬이 대답했다.“알 필요 없잖아요. 어차피 앞으로 만날 일도 없을 텐데.”그녀가 몇 초간 멈칫거리더니 그에게 되물었다.“만약 다음에 또 만나게 된다면요?”소찬이 태연하게 대답했다.“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제 이름 알려줄게요. 물론 저는 그런 허황한 우연 같은 걸 믿지 않지만요.”서울은 제법 큰 도시였다. 그는 이렇게 커다란 곳에서 연락처도 모르고 아무런 접전도 없는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그런 꿈같은 일을 믿지 않았다.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차는 곧 조민의 집에 도착했다. 거실 불이 여태 켜져 있는 걸
민서율이 갑자기 조용해졌다.“최근 몇 년 사이에 넌 수많은 여자들을 만났었어. 그리고 지금의 강라라에 이르렀지. 하지만 아무리 그 여자가 강유이와 비슷한 얼굴이었다고 해도, 어떻게 단지 그 이유만으로 너를 그렇게까지 뒤흔들 수 있는 거야?”조민은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순간 자신이 십 년 동안 간직해온 마음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처음 민서율을 좋아했을 때, 민서율이 지고지순하게 강유이만을 사랑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때의 그는 강유이를 위해 묵묵히 뭐든 해주는 사람이었다.때문에 민서율은 정이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강유이가 결혼한 걸 알고 민서율이 한동안 침울해 있었을 때에도 그녀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이 그의 곁에 있어주었다. 그녀는 그의 곁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감싸주었었다.그때의 민서율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그녀는 믿었다. 언젠가는 그가 자신의 헌신을 알아줄 것이라고.하지만 그 결과는?그 믿음의 결과는 민서율이 부단히 여자친구를 바꿔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민서율은 그녀에게 우리 둘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절만을 남겼다.그 뒤로 그는 강라라를 만났다. 강라라와는 전에 만났던 여자들보다 제법 오랜 시간 만남을 이어왔다. 이유는 뻔했다. 강라라가 강유이와 비슷한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어느새부터인가 강유이의 스타일까지 따라 하고 있었다.민서율은 그녀가 강유이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강라라와의 교제를 선택했다. 그는 그 대체품 때문에 알고 지낸 지 십 년이 넘는 친구까지 배신했다.민서율이 조민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나를 좋아해서 강라라의 존재가 불만인 거야? 근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던 건데?”조민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갑자기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너,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어?”“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왜 그렇게까지 나를 관심했겠어. 내 곁에까지 남아주면서.”그녀는 순간 가슴이 너무 옥죄어와 울고만 싶었다. 이미 상처 날 만큼 상
선희수도 진작 아들과 조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었다. 거기다가 아들은 최근 웬 여우 같은 여자한테 홀린 상태였다. 그녀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서율이는 요즘 집도 자주 안 들어오고 있어요. 매일 밖으로만 나돌고… 에휴, 여자 하나 때문에 그 지경까지 되다니.”민준혁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꺼냈다.“됐어. 본인 스스로 한 선택이니까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되든 우리가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야.”선희수는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그래도 난 민이가 우리 집 며느리로 들어올 걸 기대했었는데..”그러자 조민의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 두 아이가 이어지지 않아도 집안끼리의 연은 끊기지 않으니까요.”…영국, 블루 마운틴 저택.강유이는 커다란 배를 끌어안고 정원으로 향했다. 그녀는 장미에 물을 주며 봄이 될 때 예쁘게 피어나길 기도했다.한태군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물뿌리개를 대신 들어주었다.“더 쉬어라고 했잖아.”그녀가 입술을 삐쭉거렸다.“나 매일 앉아있지 않으면 먹고 잠들기만 반복해. 이러다 몸에 사리가 나올 것 같아.”한태군이 미소 지으며 그녀를 대신해 꽃에 물을 주었다.“조금만 더 참아. 아이가 태어나면 다 괜찮아질 테니까.”“말이 쉽지. 오빠가 낳아 봐!”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내가 낳을 수 있으면 기꺼이 낳았을 거야.”강유이가 손바닥으로 배를 쓰다듬었다.“여기 있는 쌍둥이들 말이야. 남자아이일까, 여자아이일까?”한태군이 물뿌리개를 내려놓더니 무릎을 꿇으며 그녀의 배에 귀를 가져다 댔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나 방금 들었어.”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뭘 들었는데?”한태군이 소리 내어 웃었다.“말썽꾸러기 아들놈 하나랑 예쁜 공주님 하나라는거.”강유이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렇게 확신해?”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강유이의 어깨를 감싸며 집안으로 향했다.“어차피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니까, 한 명씩 맞추면 되지. 아들 하나 딸 하나면
한 남자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혹시 조민 씨 되시나요?”조민이 고개를 들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아버지가 마련해 준 맞선 상대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때문에 그녀는 혼자 밥만 먹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국 그 상대가 도착한 모양이었다.그녀가 미소 지었다.“네 맞아요. 앉으세요.”남자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에 세팅된 음식을 확인했다.조민이 웃으며 말했다.“죄송해요. 아무래도 설 연휴다 보니 이해는 하는데 30분이나 지나도 안 오셔서 저는 안 오실 거라 생각했거든요.”남자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가 반 시간이나 지각했다는 걸 돌려 말하고 있었다.“일 때문에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해요. 참, 조민 씨는 외국에서 통역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그녀는 젓가락을 놓지 않고 대답했다.“네 맞아요. 설 연휴가 지나면 다시 그쪽으로 돌아갈지 말지 고민 중이에요.”남자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미소가 걸려있었다.“또 외국에 나가실 생각인가요?”“상황 봐서요.”그렇게 대답한 조민이 고개를 들며 남자를 바라보았다.“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일 때문에 외국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국내에 계속 남아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유현성 씨.”유현성이 멈칫거렸다.조민이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그쪽만 괜찮다면 저는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비록 결혼 후 재산이 부부 공동 재산이라고 하지만 저는 독립적으로 재산을 관리하고 싶거든요. 그쪽이 번 돈은 그쪽이 관리하고, 제가 번 돈은 제가 직접 관리하는 거죠.아이 문제는 일단 저는 지금은 아이를 일찍 낳을 생각이 없어요. 앞으로 몇 년간 제 생활이 조금 안정되면 그때 가질 생각이에요. 물론 아이를 낳은 후에는 베이비시터가 봐줘야 하고요. 제 일에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깐요.”“잠깐만요…”유현성이 참지 못하고 그녀의 말을 끊었다.“우리 이제 만난 지 몇 분밖에 안 되었는데 다짜고짜 결혼부터 꺼내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조민이 의아한 듯이
조민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요. 서울에 레스토랑이 이곳 하나도 아닌데 우연은 정말 우연이네요.”조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하긴 서울에서도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니까 어쩌면 겹칠 확률이 제법 높을 수도 있겠네요.”소찬이 피식 웃었다.“조금 덜 유명한 곳에 갈 수는 없었어요?”“어차피 이젠 당신 이름도 알게 되었으니깐요.”조민이 싱긋 웃더니 먼저 걸어가 버렸고, 소찬이 혀를 찼다. 어쩐지 엄청 손해 본 기분이 들었다.반재언이 차를 몰고 오자 남우가 얼른 차에 올랐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가 차 문을 잠가버렸다. 소찬은 차 문이 잠기자 조수석으로 다가가 창문을 두드렸다.“지금 이거 무슨 뜻이야?”반재언이 그를 힐끗 바라보더니 씩 미소 지었다.“남은 시간은 우리 부부만의 시간이니까 너 알아서 돌아가.”“아니 그게 무슨…”반재언은 정말로 그 혼자만 남겨둔 채 시동을 걸고 쌩하니 떠나 버렸다. 소찬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아까 밥을 먹을 때만 해도 세 명이서 잘만 먹었는데 갑자기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며 버리고 간다고?하, 남자의 말은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더니!소찬은 허리에 손을 얹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멀리서는 조민이 자신의 차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조민이 차에 올라탄 후 막 안전벨트를 매는데 갑자기 조수석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차에 올랐다.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소찬을 바라보더니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그쪽 일행과 간 거 아니었어요?”“저쪽은 부부잖아요. 부부 사이에 껴서 뭐 하겠어요. 그리고 지난번에 그쪽이 제 차에 올라탈 때 저도 아무 말 안 했잖아요?”조민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출발했다.조민은 차를 거칠게 모는 스타일이었다. 가는 길 내내 소찬은 손잡이를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운전 좀 똑바로 할 수는 없어요? 제 목숨을 그쪽한테 맡기기는 싫다고요.”조민이 대답했다.“이거 평균 속도예요.”“지금 시속이 80이나 넘었어요. 어어어..! 제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