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예은은 한번 헛기침하고 입을 열었다.“내 대본이 채택됐어.”“그래?”그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축하해. 여보. 그럼, 대작가가 되는 거야? 이러다 감독계까지 씹어먹는 거 아니야?”그녀가 얼굴을 붉혔다.“나와. 내가 쏠게.”반재신은 벌떡 일어났다.“진짜?”진예은은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반재신: “...”기백이 아주 하늘을 찌르겠는데?그는 입꼬리를 더더욱 높이 올리고 잽싸게 이불을 들치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하지만 반재신이 약속 장소에 왔을 때 예약 테이블에 여분의 2개 ‘훼방꾼’ 의자가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환희로 가득 찼던 그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이아영이 그를 발견했다.“네 남편이 온 것 같아.”진예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불렀어.”나더는 반재신을 처음 만났다. 그는 속으로 이 남자, 꽤 괜찮다고 감탄하고 있었다.반재신은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걸음을 옮겼다. 아주 신사다운 태도로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착석했다. 나더가 물었다.“한잔하실래요? 아님?”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운전해서 술은 됐고 커피 마실게요.”진예은이 매니저를 부르고 시럽을 뺀 블루마운틴 한 잔 시켰다. 그러자 반재신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내 취향을 드디어 기억했네?”진예은은 그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똑바로 앉기나 해.”반재신을 고분고분 자리에 앉았다.이아영은 턱을 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두 분 사이가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너무 부러워요.”반재신은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끄떡이며 긍정의 표시를 했다.진예은은 메뉴판을 보며 입을 열었다.“아이를 낳고 나니 좋아진 거야. 예전엔 이렇게 다정하지 않았어.”반재신: “...”이아영과 나더는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뭐라고? 아이가 있다고?”그들과 아직 얘기하지 않은 것이 생각난 진예은은 멎쩍게 웃으며 말했다.“전에 말할 타이밍을 놓쳤어. 임신 때문에 대학원이 미뤄졌던 거야.”이아영은 믿을 수 없었다.“전혀 아이를 낳은 몸으로
나더는 의아했다.“왜요?”“어떤 남자가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했어요. 남자는 자존심이 강해서 자주 아내를 데리고 외출했고 사람들의 찬사를 즐겼어요. 남자가 있는 곳이면 그의 아내는 언제나 함께였죠. 그렇게 화려한 세상에 눈을 뜬 아내는 남편보다 더 젊고 다정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결국 새로운 남자와 떠나 남편은 버림받고 말았어요.”“풉!”나더는 마시던 술을 그만 뿜고 말았다. 반재신은 종이를 건넸다.눈이 휘둥그레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더를 보던 진예인과 이아영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그 후 나더는 더 이상 나대지 못했다.내내 정신을 딴 곳에 팔고 있는 모습이 마치 반재신이 말한 이야기가 그의 부모에게 닥칠 미래일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돌아가면 아버지와 한번 진지하게 얘기해 봐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나더였다.진예은은 반재신에 속삭였다.“제법 그럴듯하게 지어내네?”그는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와이프가 작가잖아?”식사 도중 반재신은 화장실로 갔다. 복도에서 빨간 머리 여자와 부딪혀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그 여자는 급히 휴대폰을 주워 돌려주며 사과했다.“죄송해요. 고의는 아니었어요.”오늘 기분 좋았던 반재신은 그녀의 잘못을 추궁하지 않았고 휴대폰을 건네받았다.“괜찮아요.”그리고 화장실로 향했다.그 여자는 멀어지는 반재신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는 상대에게서 훔친 지갑을 들고 자리를 떠났다.화장실에서 나온 반재신이 일행에게로 돌아갔고 식사를 마치자, 돈을 지불하려던 그는 주머니가 텅텅 비어있음을 발견했다.진예은이 난감해하며 말했다.“됐어. 내가 쏜다고 했잖아.”“그게 아니고.”반재신이 말을 이었다.“지감이 없어졌어.”이아영은 흠칫 놀랐다.“지갑이 없어졌다고요?”진예은도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챙기지 않은 건 아니야?”“챙겼어. 주민등록증과 여권 모두 안에 들어 있어.”그때 그의 뇌리에 하나의 장면이 스쳐 지났다. 아마 그때인 것 같다...“노트북 있어요?”그는
이아영과 진예은은 서로 바라보았다.여기는 영국이고, 영국의 법은 그렇게 엄격하지 않았다. 절도는 경찰에 체포되더라도 실제 기소 자격이 없었다. 많아야 그저 며칠 동안 감금되는 수준이었다.골치 아파하는 경찰들의 표정에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익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상대가 상습범이고 여러 차례 잡혀도 또 범죄를 저지르곤 해서 애를 먹고 있었다.반재신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돈은 됐고 주민등록증과 여권은 반드시 돌려받아야 해요.”경찰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대답했다.“그럼, 이 애의 주소를 알려 드릴게요.”세 사람은 경찰서에서 걸어 나왔다. 차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나더가 물었다.“어떻게 됐어요? 찾았어요?”이아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여기 경찰은 일을 왜 이딴 식으로 해요? 출동하는 사람은 없고 우리가 직접 찾아야 한대요.”나더는 익숙하다는 듯 말했다.“다 그렇지 않나요? 중대한 범죄가 아니면 경찰들은 절도 같은 사소한 사건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요. 또한, 각 지역의 경찰서는 인력 부족 상태여서 출동이 어렵죠. 큰 사건이 발생하면 그들도 고생이고 상급을 위해 일하는 처지라 이해하자고요.”진예은은 씁쓸하게 웃었다.“경찰이 주소를 알려줬으니, 상대가 돈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주민등록증과 여권만 돌려받으면 돼요. 아마 거절하지 않을 거예요.”이아영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더는 종이에 쓰인 주소를 네비에 찍었다. 그가 시동을 걸려다가 주소를 다시 확인하더니 흠칫 놀랐다.“여기는 요양원인데 여기가 확실해요?”진예은과 이아영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요양원이요?”차는 네비가 이끄는 주소에 도착했다. 교외의 어느 한 마을, 시 중심만큼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짙은 이국 분위기를 풍겼다.종잇장의 주소는 요양원이었다. 이 요양원은 규모가 크지 않았고 시설도 낡아 보였다. 정원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이가 있는 어르신들이었다.진예은이 안으로 들어서자, 수녀 한 분이 걸어나왔다.“무슨 일이세요?”
침묵하던 빨간 머리 여자애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버렸어요.”반재신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뭐라고?”“버렸다고! 여자를 때리게요? 때려봐요!”여자애는 얼굴을 들이밀며 건방을 떨었다.반재신을 진짜 손을 들어 올렸다.그때 진예은이 급히 그를 제지했다.“진정해. 다들 보고 있잖아.”주위를 둘러보던 반재신은 마을의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나더의 손을 뿌리친 그 여자애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여기에서 나를 털끝이라도 건드리면 당신들이 시비를 걸어서 경찰서에 잡혀갔다고 말할 거예요.”“너무 건방진 거 아니야?”보다 못한 이아영이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분명 네가 지갑을 훔쳐서 우리가 돌려받으러 온 거잖아. 그런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가 시비 건다고 하는 거야?”“내가 훔쳤다는 증거 있어요?”여자애는 실소를 터뜨렸다.“너...”이아영이 뭔가 말하려는데 진예은이 제지했다. 그녀는 아주 침착했다.“만약 우리에게 증거가 있다면?”여자애는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못 믿겠다는 눈치로 대꾸했다.“그럴 리 없어요.”“그럼, 진짜 미안하게 됐어. 우리에겐 네가 도둑질하는 장면이 찍힌 파일이 있어. 여기 주소는 경찰이 우리에게 알려준 거야. 경찰들은 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들도 살아있는 증거야.”할 말을 잃은 여자애는 주먹을 쥐더니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때 수녀님이 다가왔다.“미아, 이들의 말이 진짜야? 또 사고 쳤어?”미아라는 여자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수녀님은 그녀의 앞에 다가가며 말했다.“나와 동생이랑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왜 또 그런 짓을 했어?”그녀가 대답했다.“제 일이고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수녀님이 인상을 찌푸렸다.“어떻게 해결할 건데? 만약 동생이 이 일을 알면 어떡할 거야?”“그 애에겐 말하지 말아 주세요.”“내가 말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을 했으면 인정해야 하는 거야.”말을 마친 수녀님은 몸을 돌려 반재신과 진예은을 바라보았다.“정말 죄송해요
진예은도 그를 따라 찾기 시작했다.이아영도 들어가려 하자 나더가 그녀를 잡았다.“넌 또 왜 이래?”고개를 돌린 이아영이 그를 바라보았다.“둘이서 찾으면 오래 걸리잖아요. 당연히 가서 도와야죠.”말을 마친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쓰레기더미 속으로 들어갔다.겉옷을 움켜쥔 나더도 그들을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고민에 빠지던 그는 겉옷을 벗어 바닥에 고이 내려놓고 코를 움켜쥔 채 찾기 시작했다.“젠장! 찾고 말겠어!”악취를 견디며 지갑을 찾고 있는 진예은은 헛구역질을 한 후 다시 행동을 재개했다. 그러다 이아영과 나더도 돕고 있는 것을 보고 감격했다.오랫동안 쓰레기를 뒤진 반재신은 숨을 너무 참은 탓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깨끗했던 셔츠는 이미 오물에 얼룩졌다. 살면서 이렇게 초라한 모습 이긴 처음이다.하지만 꼭 찾아야 한다.그곳에는 여권과 주민등록증을 제외하고 제일 중요한 것이 들어있다.참다못한 나더는 밖으로 나가 오바이트를 했다.이아영이 그에게 종이를 건넸다.“괜찮아요?”건네받은 그는 종이의 향기 덕분에 울렁거림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괜찮아. 이렇게 힘든 것을 참고 있는 그가 너무 대단한 것 같아.”남자대 남자로 이미 진 것 같았다.“조금 쉬세요. 전 계속 찾아야겠어요.”이아영이 몸을 돌리려는데 수녀님과 미아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수녀님은 마을의 주민 3명과 함께였다.“우리도 도울게요. 오늘 버린 것들은 모두 여기에 있을 거예요. 하루라도 늦었더라면 정말 늦어버릴지도 모르잖아요.”이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부탁할게요.”모두 찾기 시작하고 미아도 함께하려는 데 이아영이 제지했다.“넌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어. 또 말썽을 부리면 어떡해?”“당신...”미아는 뭐라 대꾸하려고 했지만, 수녀님 앞이어서 감히 그러지 못했다.2시간 동안 쓰레기를 뒤졌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쓰레기양은 너무 방대했고 누구도 어느 곳에 버렸는지를 알 수 없었다.진예은은 멀지 않은
하나는 쓰레기 더미에 올라가 앞발로 헤집기 시작했다. 마치 이미 찾은 것 같았다.주인이 말했다.“강아지는 후각이 뛰어나죠. 아마 저 밑에 있을 거예요.”하나가 “멍 멍.” 짓자 주민 두 분이 재빨리 다가가 쓰레기 더미를 팠다.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되어 쓰레기 더미 속에서 비교적 새것으로 보이는 지갑 하나가 나오고 주민이 들어 올리며 물었다.“이게 맞나요?”반재신은 다가가 주민에게서 지갑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진짜네?”지갑을 열어보니 돈만 빼고 주민등록증과 여권이 있었고 여권 뒤에 은행 금고의 열쇠도 그대로였다.이것은 진예은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녀에게 유산으로 남겨준 것이다. 진예은은 그것을 반재신에게 맡겼고 그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만약 잃어버린다면 진예은을 마주하기 미안해진다.그렇게 소중한 것을 찾게 되어서 참 다행이었다.반재신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고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러다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반재신!”“이봐요!”반재신이 다시 깼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뒤였다. 그가 깬 것을 보고 곁을 지키던 진예은이 벌떡 일어나 그를 살폈다.“깼어?”그가 물었다. “얼마나 잔 거야?”“오후 5시고 여기는 요양원이야. 수녀님이 우리더러 여기에서 쉬라고 했어.”침대에 걸터앉은 진예은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반씨 가문의 도련님이 쓰레기를 뒤지다 악취 때문에 쓰러졌다는 것은 아마 빅이슈일 거야.”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날 비웃어?”천천히 몸을 일으킨 반재신은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기댔다. “내가 여권 때문에 이런다고 생각했어? 비록 해외에서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면 절차가 시끄럽기는 하지만 그래 봤자 15일이면 해결되는 거야.”“그럼 왜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찾았어?”“그걸 잃어버렸다면 넌 날 나무랐을 꺼야.”그가 금색 열쇠를 꺼냈을 때 진예은은 흠칫 놀랐다. 그녀가 이것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황실 은행 금고의 열쇠이다.열쇠는 황실의 신분을 대표했고 하사품이기
진예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결혼한 뒤에는 우리 돈은 부부 공동재산이 되는 거야. 네가 내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하고 내가 와이프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당연한 거야. 그러니 다른 이가 너를 깔보게 될까 봐 걱정할 것 없어. 와이프를 맞이하는데 이 정도도 아까워한다면 결혼하지 말아야지. 와이프는 아이를 낳아주고 함께 여생도 걸어주는데, 내 돈을 쓰는 것을 꺼린다면 그냥 혼자 살아야 하는 거야.”진예은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지만 가슴이 더욱 아팠다.“난...”“이 말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너무 더러워서 먼저 씻어야겠어.”반재신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더 이상은 못 참겠어.”멈칫하던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샤워실이 있어, 내가 데려다 줄게.”진예은은 반재신과 샤워실로 향했다. 돌아서려는 그녀를 반재신이 뒤에서 안았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너도 냄새나니까 같이 씻어.”얼굴을 붉힌 진예은은 낮게 으름장을 놓았다.“미쳤어? 여기는 요양원이야.”“나도 알고 있어.”반재신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아무 짓도 하지 않을게.”반재신의 품에 안겨 샤워실 밖으로 나온 진예은은 얼굴이 발그레해서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다시는 반재신의 헛소리를 믿지 않겠다고 진예은은 다짐했다.그들은 그러다 복도에서 이아영과 나더를 딱 마주치고 말았다.이아영이 물었다.“어디 가는 거예요?”진예은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바디로션 향기를 맡은 나더는 헛기침을 하며 이아영의 어깨를 건드렸다.“너무 많은 것을 궁금해하면 안 돼.”말을 마친 나더는 반재신에 시선을 돌렸다.“수녀님이 우리더러 식사하라고 하던데 갈 거예요?”반재신은 품에 안겨있는 그녀를 보고 물었다.“갈 거야?”그의 품에서 벗어난 진예은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대답했다.“가야지. 수녀님의 호의는 거절할 수 없잖아?”그녀가 앞장섰다.입꼬리를 살짝 올린 반재신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멀어지는 그들 부부를 보던 이
“저 남자애가 남동생이죠?”그들을 바라보는 진예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미아는 남자애를 테이블 앞에 앉히고 뭐라고 말한 뒤 음식을 뜨러 갔고 남자애는 자리에서 기다렸다.남자애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진예은이 말했다.“설마 맹인인 건 아니겠죠?”나더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갔다.이아영이 낮은 소리로 나더를 향해 외쳤다.“뭐 하는 거예요!”나더는 남자애를 마주 보고 앉았다. 남자애도 그의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누나로 착각했던 것 같다.“오늘 저녁은 메뉴가 뭐야?”나더가 손을 휘저어보았지만, 남자애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진짜 안 보이는 거야?”남자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누구...”“내 동생한테서 떨어져요!”나더를 본 미아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녀는 식기를 거칠게 내려놓으며 외쳤다.“복수하려면 나한테 해요.”진예은과 반재신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팔짱을 낀 나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단지 인사만 하려는 거야. 그런데 왜 이렇게 겁에 질렸어? 내가 동생한테 네가 사실은 도... 읍!”이아영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누나 친구들이야?”남자아이는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아니야.”얼굴이 구겨진 미아는 나더가 방금 한 말에 충격받은 것 같았다.“모르는 사람들이야.”미아는 동생에게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챈 진예은은 남자애에게 다가가 몸을 내렸다.“네가 미아 동생이야?”미아는 즉시 경계했다.남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누나가 또 뭘 잘못했나요?”입술을 깨물고 있던 미아가 설명하려고 입을 연 순간 진예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니, 누나는 우리가 너를 해칠까 봐 경계하고 있는 거야. 아주 든든한 누나를 둬서 너무 부러운데?”그러자 남자애는 밝게 웃었다.“누나는 진짜 착한 사람이에요. 가끔 잘못을 저지를 때도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나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런 누나가 가끔 화가 나요.”시선을 떨군 미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