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칫하던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연기를 보라고 한 거지 나만 보면 어떡해.”한태군이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연기도 너도 모두 놓치지 않을 거야.”눈을 반짝이던 강유이는 차갑게 얼어붙은 손으로 슬며시 그의 몸을 더듬었다. 그러자 그가 인상을 쓰며 그의 손을 잡았다.“어허? 나쁜 거 배웠네?”그녀는 의기소침했다.“손 시리단 말이야.”한태군은 그녀를 더욱더 껴안으며 그녀의 볼에 입술을 지분거리며 물었다.“추워?”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한태군은 그녀에게 얼굴을 묻었다.“그럼 따뜻하게 해 줄까?”그때 정신을 차린 강유이는 급히 그의 얼굴을 바로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수작 부리지 마. 여기는 촬영장이야.”그는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사람을 뭐로 보는 거야?”그때 강유이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 통의 문자였다. “공주님이라네?”한태군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납작한 배를 지그시 누르며 대뜸 물었다.“그럼 우리는 언제 공주님을 만나?”그녀는 얼굴을 붉혔다.“그건...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잖아.”그는 흐뭇하게 웃었다.“그래, 나도 분발해야지.”그때 갑자기 밖이 너무 시끄러웠다.강유이는 한태군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검게 물들어져 있었다. 제작진은 촬영을 중단하고 소품을 챙겨 대피하고 있었다.강유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눈이 오려나?”인상을 찌푸린 한태군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방 감독이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폭설이 내릴 것 같으니 서둘러 산 아래로 대피해야 해요.”한태군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감독님!”그때 스텝이 허겁지겁 달려왔다.방 감독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왜 그래?”스텝, “차량 중 한대가 고장 났는지 시동이 걸리지 않아요.”“내가 가 볼게.”방 감독은 그 스텝의 뒤를 따르며 주변 사람들에게 외쳤다.“서둘러.”“네!”강유이는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미니 버스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제작진이 타고 있던 차였다.다른 출연진들은 하나둘 자리를
한태군이 다가오며 말했다.“저도 남을 거예요. 한 명 더 탈 수 있어요.”그러자 방 감독이 급히 만류했다.“그건 안 돼요. 스태프와 함께 먼저 떠나세요.”“괜찮아요. 제가 남아서 도울게요.”강유이도 덧붙였다.“저도 남아서 도울 거예요.”방 감독은 고뇌에 빠졌다. 하지만 먹구름은 점점 더 짙어져 이미 머리 위를 뒤덮기 시작했다.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그는 신속히 상황을 정리했다. 두 명의 스태프만 남기고 나머지 제작진들은 모두 밴에 올랐다.한태군이 미니버스의 운전석에 올라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아마 엔진이 고장 난 것 같아요. 주변에 숨을 곳도 없으니 오늘 밤은 차 안에서 지내야 할 것 같네요.”방 감독은 고개를 돌려 스태프들에게 물었다.“다들 먹을 건 있어?”“오늘 빵과 물을 챙겨서 하룻밤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예요.”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오늘 밤은 차에서 잘 버텨 봅시다.”같은 시각, 다른 이들은 이미 산기슭의 민박집에 도착했고 멀리에서 강유이의 밴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방 감독을 포함한 나머지 스태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감독님은?”“감독님과 몇 명 스태프들은 아직 현장에 남아있어요.”“폭설이 올 텐데 이렇게 되면 꼼짝없이 그곳에 갇히게 되잖아요”방 감독은 전체 스태프를 이끄는 리더였기에 현장에 남아 수습하려는 의도를 모두 알고 있었다.그러던 중 누군가가 입을 뗐다.“강유이 밴이 크지 않나요? 감독님도 현장에 남으셨는데 고작 두 명만 타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다른 스태프도 태울 수 있잖아요?”“그건 공공차량이 아니잖아요. 태워주지 않아도 할 말은 없죠.”문제를 제기한 여배우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대단한 부자네요. 분명 태울 수 있는데 스태프들을 나 몰라라 해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촬영은 어떻게 해요?”소파에 앉아 있던 민서율은 그녀를 아니꼽게 흘겼다.그때 주계진이 나서며 그녀에게
그러다 그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폭설은 언제쯤 지나갈까요?”스태프가 고개를 저었다.“그건 잘 모르겠지만 다섯 명이 차 안에 있으면 하룻밤은 버틸 수 있을 거예요.”민서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계진은 보란 듯이 웃으며 여배우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어머, 난감하게 되였네요? 방금 누가 자신만만하게 그런 부끄러운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그 여배우는 화를 삼키며 자리를 피했다.주계진은 팔짱을 끼며 비웃었다.감히 내 앞에서 고상을 떨어?깊은 밤, 눈은 점점 더 세게 내리고 있었다.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차 안은 조명이 켜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패딩 차림으로 한곳에 모여서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두 명의 스텝은 이미 잠들었고 그 옆에 앉은 방 감독은 보온병을 품에 안고 대본을 보고 있었다.한태군은 어깨에 기댄 강유이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무서워?”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오빠와 함께 있으면 하나도 무섭지 않아.”한태군이 웃으며 그녀를 쓰다듬었다.“너를 어떡하면 좋아.”보온병을 열고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 방 감독은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아마 내일 아침까지 내릴 모양이에요.”한태군이 그를 바라보았다.“통신만 두절되지 않는다면 위치추적을 해서라도 우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그가 한숨을 쉬며 뚜껑을 닫았다.“그러길 바래야죠.”문뜩 강유이가 물었다.“감독님은 예전에 이런 상황을 겪은 적 있나요?”방 감독은 웃으며 대답했다.“물론 이보다 더 나쁜 상황도 있었어요. 지금은 그저 폭설일 뿐이죠.”그는 안경을 닦으며 한탄했다.“17년 전에 감독이 된 지 얼마 안 되었던 때 해외로 화산 다큐멘터리를 촬영 간 적 있어요.”“외국 제작진들은 죽음을 무릅쓰며 촬영하더군요. 보다 더 생동감 있게 찍기 위해 화산에 가까이 접근하던 그때 화산이 폭발했고 사방으로 튀는 용암 때문에 산불이 일기 시작했죠.”강유이는 얼어붙었다.“그리고 어떻게 되었나요?”방 감독은 침묵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눈 내리는 밤은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웠다. 모두 잠이 들었지만, 한태군만이 아직 깨어있었다.강유이를 품에 안고 있는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고 있었다.그의 품에서 조금 뒤척이다 달콤하게 잠이 든 그녀의 모습에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꼭 껴안았다.한태군은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강유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옆에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신경 쓰이게 하고 있다. 그러니 더욱더 안심할 수 없었다....서울, 병원.진예은은 한밤중에야 깨어났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반재신에 의해 도로 제자리였다.“움직이면 안 돼. 푹 쉬어야 해.”그녀는 난감해하며 말했다.“하지만 화장실은 가야 하잖아?”반재신은 침대 밑에서 요강을 꺼냈다.그녀는 어이없어하며 되물었다.“이걸 쓰라고?”눈썹을 치켜세우던 반재신이 뭔가를 눈치채고 물었다.“부끄러워서 그래? 도와줄까?”“나가 있어.”진예은이 요강을 받아 들고 말했다.하지만 반재신은 요지부동이었다.진예은이 애원했다.“보고 있으면 내가 너무 부끄럽잖아.”반재신은 팔짱을 끼며 낄낄거렸다.“더 한 것도 봤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차라리 참다가 죽는 게 낫겠어.”“알았어, 나가 있을게. 해결하고 있어.”반재신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그녀의 화 난 모습이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았다. 하지만 멀리 가지 않고 문 앞에 서 있었다.진예은은 요강을 살며시 침대 밑에 내려놓고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기척을 느끼고 문을 열고 들어선 반재신은 화장실에서 걸어 나오는 그녀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진짜 말 안 들어.”침대로 돌아온 그녀가 말했다.“여자는 출산하면 걸을 수 있다는 걸 몰라?”반재신이 다가오며 물었다.“이젠 안 아파?”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침대에 누웠다. 너무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들킨 기분이었다.반재신은 의자에 앉으며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퇴원하면 산후조리도 해야지?”그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산
방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8시 30분쯤, 드디어 지원팀이 현장에 도착했고 모두 차를 타고 민박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갔다. 그제야 다른 스태프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주계진은 강유이에게 다가갔다.“드디어 돌아왔네요. 밤새 얼마나 걱정했는데요.”강유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고작 폭설인데 걱정할 게 뭐가 있어요.”그러자 그가 소리 내 웃으며 말했다.“남편이 곁에 있으니 세상 종말도 두렵지 않겠죠?”그들은 옷을 갈아입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친 후 아침 식사하러 식당으로 갔다.강유이는 따뜻한 우유 한잔으로 온몸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주계진이 강유이에 다가오며 주위를 살폈다.“남편은 아침 먹으러 왜 안 와요?”강유이는 빵에 버터를 바르며 대답했다.“감독님과 함께 방에서 아침을 먹고 있어요.”“유이야.”멈칫하던 강유이는 고개를 돌렸다. 민서율이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예의상 미소를 지었다.“서율 오빠.”주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민서율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민서율은 그런 그를 무시하고 아예 없는 사람 취급했다.“무사한 걸 보니 마음이 놓이네.”그녀가 뭐라 말하려는데 아침을 먹던 주계진이 끼어들었다.“무사하든 안 하든 당신과 무슨 상관이에요?”강유이가 그의 발을 밟았다.민서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두 분 식사하세요.”말을 마친 민서율은 자리를 피했다.강유이는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촬영이 시작되고 민서율은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한태군 때문일 수도 있었고 그날 밤 연회에서 있었던 일 때문일 수도 있다.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주계진이 물었다.“뭐죠? 아쉬운 거예요?”강유이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뭘 아쉬워한다는 거죠?”주계진이 소리 내 웃으며 말했다.“이 친구를 보내기 아쉬워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한 가지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민서율은 인기가 장난 아니에요. 솔로 여자 연예인들에게는 특히요.”“유이 씨가 유부녀이긴
차진주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서율 씨와는 무슨 관계예요? 서율 씨는 아무나 침 흘리는 유부녀를 좋아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요.”둘은 그저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침 식사를 마친 후, 강유이와 주계진은 식당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나오고 주계진은 휴대폰만 보고 있는 강유이를 친절하게 안으로 잡아끌었다.하지만 그들의 이 모습을 누군가가 도촬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함께 엘리베이터에 들어갈 때까지 말이다....서울.아기를 보러 신생아실을 찾은 진예은은 유리를 통해 인큐베이터 속의 작고 소중한 아이를 보았다. 그녀의 심장이 녹을 뻔했다.“예은아.”고개를 돌린 그녀가 살짝 멈칫했다.“어머님.”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너무 귀엽지?”진예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너무 귀여워요.”고개를 돌린 강성연이 진예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자신이 낳은 아이를 직접 보는 것은 엄마로서 여자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란다. 너도 느꼈지?”진예은의 눈이 촉촉이 젖어들었다.그녀도 그 순간을 느꼈다.“재신의 딸을 낳아줘서 고마워. 예은아.”진예은은 자리에 얼어붙은 채 강성연을 바라보았다.강성연은 아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예은이가 재신이의 옆에서 끝까지 함께 해주면 좋겠어.”입술을 깨문 진예은은 아기를 보았다. 이 작고 소중한 아이는 구속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의 결실이기도 했다. 어떻게 그런 아이를 두고 떠날 수 있을까?강성연은 대뜸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아이 이름은 생각해 둔 게 있어?”진예은이 고개를 저었다.“아직이요...”“그럼, 내가 대신 생각해 볼게.”강성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애칭으로 희망이 어때?”...한편,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이 고의로 와이프를 살해했다는 죄명으로 서준수를 체포했고 조사하기 위해 경찰서로 데려갔다.취조실에 앉아 있는 서준수는 혐의를 부인했다.“바람피운 것은 맞지만 와이프를 살해하지
“너는 항상 마음에 안 들지?”품에 안은 아기를 그에게 들이밀며 강성연이 말을 이었다.“그럼, 딸에게 네가 원하는 이름을 말해 봐. 애가 웃으면 네가 지은 이름으로 하고 울면 희망이로 할 거야.”반재신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애가... 알아들어요?”그녀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알아듣는지 못 듣는지는 상관하지 말고 얼른 말해봐.”아기를 바라보던 반재신은 자신도 이름을 지어본 적 없어서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는 진예은을 보았다.그이 시선에 진예은은 멈칫했다.“왜 날 보는 거야? 난 희망이보다 더 예쁜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겠어.”팔짱을 끼며 고심에 빠지던 반재신이 말했다.“반희망은 너무 촌스러워요.”그러자 강성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누가 이름이 반희망이랬어? 이름은 반희야.”반재신, “반설은요?”강성연, “?”진예은도 이마를 짚었다.“반설보다는 반희가 나아. 반희로 해.”반희, 흔하지 않고 간지 나 보였다.하지만 반재신은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반명?”강성연과 진예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여자아이에게 명을 붙이겠다는 거야?”“반설명.”반재신은 아기를 내려다보며 덧붙였다.“밝고 청량한 의미로 괜찮지 않아?”진예은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디가 밝고 청량하다는 거지?반재신은 아기의 볼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이것 보세요. 웃고 있잖아요.”강성연은 입을 삐죽였다.“왜 마침 웃는 거야. 그래. 희망이는 없던 걸로 해.”그때 진예은이 제안했다.“애칭을 희망이로 하시면 되죠.”멈칫하던 강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것도 나쁘지 않아. 그럼, 애칭을 희망이로 해.”강성연이 떠나고 나서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신생아실로 돌아갔다.침대에 비스듬히 기댄 진예은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어떻게 온 거야? 바쁘지 않아?”의자에 앉은 반재신이 대답했다.“회사가 딸보다 중요해?”그녀는 말이 없다.반재신이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며칠 후면 퇴원할 수 있겠지?”진예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
다음날, 나연은 남편이 바람피우고 폭력을 행사한 증거, 심지어 아들을 납치하여 집을 떠나도록 협박하는 등 모든 증거 자료를 법원에 제출해 이혼 의사를 밝혔다.변호사도 서준수가 와이프를 살해하려 것보다 중요한 증거를 제출했다.이점은 나연도 몰랐던 사실이다. 깜짝 놀란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 그가 나를 죽이려 했다고요?”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남편분은 심윤의 씨와 함께 있다가 의식을 잃은 당신을 구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는 오히려 당신을 죽이려 했고 시신을 훼손하려고도 했어요. 누군가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당신은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나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동안 이런 사악한 남자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었다.그녀의 남편은 애인을 위해 그녀를 죽이려 했다.싸울 생각이 없었던 그녀였지만 맨몸으로 나간다 해도 이제는 기어코 이혼하리라 마음먹었다.하지만 이 말을 듣고 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깊게 심호흡하던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원래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정을 봐서 모두 양보하려 했는데 무정한 남편을 보니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겠어요.”법원에서 마침내 판결을 내렸다.이혼을 선고하고 아들의 양육권과 고동 명의로 된 주택은 모두 여자에게 주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에게 25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게 했다.법에서 돌아온 나연은 스토리에 1000자가 넘는 글을 올리며 마침내 이혼할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을 알렸다. 글은 신속하게 퍼졌고 검색어에까지 올랐다.#후속편도 있을 줄이야. 어떻게 이런 쓰레기를.#결혼 후 공동명의로 된 재산이 있는데 알몸으로 내보내려 이유가 더 많이 벌어서라니.와이프를 살해하려 했는데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방 내부는 어두웠다.바닥에는 빈 맥주 캔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고 방 전체가 술 냄새로 가득했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서준수가 우울한 얼굴을 하고 벽에 기대어 앉아있다. 이혼 심의에 대한 법원의 메시지가 휴대폰 화면에 떴다. 10통 이상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