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연서 내 소홀함 때문에 입원한 거잖아. 그러니까 내 책임이 커."남우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반재언이 그녀를 안았다."걱정하지 마, 나 여기 있잖아.""네 도움 필요 없어."남우가 이마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느끼며 시선을 옮겼다."생각 잘해, 예은이 아이도 가지고 있는데 연서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알면 너 정말 그거 감당할 수 있어?"반재언이 그녀의 턱을 들고 물었다.반재언의 말을 들은 남우가 멈칫했다. 그녀는 이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임산부는 자극받는 것을 가장 금기시했다. 그리고 진예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반재신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그럼 어떻게 도와줄 건데?""가족이잖아, 뭐 어려운 일도 아니지."반재언이 웃으며 말했다.남우가 반재언을 보다 그의 손을 치워냈다."또 나 가지고 놀려고 그러는 거지?""내가 너 가지고 놀고 있는 것 같아?""예은 씨 언젠가는 연서 일 알게 될 거잖아, 어떻게 속일 수 있을 것 같아?""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연서 마음을 열었다는 거야. 이걸로 퉁 치는 거지."그 말을 들은 남우가 팔짱을 끼더니 웃었다."그럼 내가 연서 데리고 전경으로 갈게, 우리 연서 다 나은 다음에 예은 씨한테 돌려줘야지.""응."반재언이 웃으며 대답했다."맞다, 서준수라는 사람 조사 좀 해줘, 그 사람 뒤에 누가 있는지도 알아봐 주면 좋고."다시 병실로 돌아가려던 남우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등을 돌렸다."찾아주면 상 주는 거야?"반재언이 개구진 얼굴로 물었다."있겠니?"남우가 도도하게 말을 하곤 병실로 들어갔다. 반재언은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저녁 9시 반, 빈해 별장.반재신의 차가 마당에 도착했을 때, 방의 불이 모두 켜져 있었다. 그는 마당에서 한참 서성이다 안으로 들어섰고 아주머니께 진예은이 이미 잠들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반재신이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방으로 들어서자 진예은이 남겨준 무드등이 켜져 있었다.반재신이 침대 옆에 앉자마자
담뱃재가 그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뜨거워질게 분명한데 그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그때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신윤의가 보낸 문자였다.-재신 씨, 내일 시간 되나요? 제가 새로운 치료법을 연구해냈는데, 재신 씨와 그 치료법의 방식에 대해 설명해 드리려고요.”반재신의 눈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가 손에 든 담배를 축축한 흙이 담긴 재떨이에 비벼껐다.한편, 한참이 지나도 반재신이 답장이 없자 심윤의는 기분이 상했다.등 뒤에 있던 남자가 그녀를 껴안으며 물었다.“윤의야, 누구랑 문자 보내고 있는 거야?”심윤의가 휴대폰 화면을 끈 후 얼굴에 남아있던 언짢음을 지웠다.“환자 가족한테 내일 치료법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고 문자 남겼을 뿐이야.”그녀가 뒤로 돌아 남자를 껴안았다.“준수 오빠, 인기 검색어 건은 어떻게 됐어?”서준수가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걱정하지 마. 너를 위해 그 검색어 순위 조작하는데 무려 육천이나 썼어. 내일 인기 검색어 일위에 네가 원하는 게 올라가 있을 거야.”그녀는 마음속으로 엄청 기뻤지만, 겉으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서 사모님한테 타격이 심할 텐데. 그분은 오빠 와이프잖아. 걱정 안 돼?”서준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 여자는 그냥 정신병자일 뿐이야. 그 여자가 미친 것 때문에 재산 분할에 문제가 생겨서 그렇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 쫓아냈을 거야. 하지만 걱정 마 윤의야. 그 여자가 아무리 맨몸으로 쫓겨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쳐도 나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버릴 수 있으니까.절대 그 미친년이 우리 둘 사이에 방해가 되지 못하게 할게.”다음날, 심윤의는 레스토랑 룸에 앉아 반재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거울을 꺼내 정성껏 화장한 얼굴을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했다. 그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남자들은 시각적 동물이다. 자신은 서준수 와이프의 심리치료사를 맡으면서도 충분히 서준수를 유혹해냈다. 때문에 반재신은 더욱 자신
심윤의의 손이 막 그의 몸에 닿으려던 그때.반재신이 그녀의 손을 피하며 스스로 휴지를 뽑아 바지를 닦아냈다. 그의 얼굴에는 그 어떤 기쁨도 분노도 찾아볼 수 없었다.“심윤의 씨는 이런 쪽에 능한 것 같네요.”심윤의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어떤 쪽을 말씀하시는 거죠?”반재신이 그녀를 쳐다보며 답했다.“남자 꾀는 거.”그녀의 표정이 살짝 흐트러졌다. 미소도 전보다 더욱 부자연스러웠다.“오해하신 것 같아요. 재신 씨…”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담백하게 피식 미소 지었다.“지금 여기에는 우리 둘밖에 없는데 오해할 게 뭐 있겠어요. 심윤의 씨가 만약 저한테 마음이 있는 거라면 제가 기회를 드리지 못할 것도 없죠.”심윤의는 순간 심장이 철렁였다. 그의 반응이 그녀의 예상을 벗어났다. 그가 이렇게 빨리 걸려들 줄 몰랐던 것이다.‘하, 역시 남자들이란 다 똑같아.’이렇게 되면 그녀가 굳이 공을 들여 그를 유혹할 수고를 안 들여도 되었다.그녀는 일부러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재신 씨는… 약혼자가 계시잖아요.”반재신이 피식 웃었다.“아직 결혼도 안 한 약혼자일 뿐이죠.”심윤의는 흥분되는 마음이 주체되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으니 그녀도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재신 씨, 저랑 같이 잠깐 방으로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제가 곁에서 옷 갈아입는 걸 도울게요.”반재신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전혀 알 수 없었다.“그러죠.”심윤의는 그를 데리고 방으로 올라갔다. 문이 닫히는 그 순간, 심윤의가 그에게 바싹 다가갔다.“재신 씨, 제가 옷 벗겨 드릴게요.”반재신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벗어야 할 건 내가 아니죠.”심윤의의 볼이 붉어졌다. 그가 이렇게 조급하게 나올 줄 몰랐다. 역시 남자들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걸 선호했다.심윤의는 그의 앞에서 옷을 벗었다. 그녀가 손을 펴자 옷가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그녀가 노
서준수의 와이프가 눈을 희번덕이며 말했다.“네가 날 때렸잖아. 내 몸에 남은 상처는 전부 네년 때문에 생긴 거야. 이렇게 증거가 확실한데 감히 나를 모함하려고 해? 경찰서에까지 와서 건방을 떨어?”“내가 먼저 때렸어? 아니면 그쪽 사모님이 먼저 사람을 때렸어? 왜, 아이한테 손을 댄 건 폭력이 아니야? 아이는 사람으로도 안 쳐주는 건가?”남우의 눈빛이 살벌했다.서준우 와이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녀가 남우한테 한 걸음 다가가더니 남우의 뺨을 때렸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걸레 년이 내 남편을 꾀어낸 것도 모자라 내 남편의 자식까지 낳았는데, 내가 네년을 때리는 게 뭐 어때서?”옆으로 살짝 돌아간 남우의 볼에 빨간 손자국이 생겼다. 남우가 기가 찬 듯이 헛웃음을 짓다가 고개를 돌려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저기요 경찰관 아저씨, 당신 처제가 지금 나한테 주먹을 휘둘렀는데, 이건 그냥 넘어가나요?”경찰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여긴 내 구역이야.”서준우 와이프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들었어? 남우라고 했나? 외국인 주제에 감히 서울에서 나대다니. 너 오늘 나한테 죽을 줄 알아.”서준수 와이프가 다시 한번 남우의 뺨을 내리치려고 손을 들어 올렸다.그때, 남우가 다리 한쪽을 번쩍 들고 그녀에게 발차기를 날렸다.경찰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감히 경찰서에서 사람을 때려? 너희, 저년이 뭘 잘못했는지 똑똑히 가르쳐 줘.”경찰 두 명이 다가와 남우를 제압했다. 그런데 그때, 취조실 문이 벌컥 열렸다. 경찰은 문 앞에 나타난 남자를 확인하고 아연실색했다.“구… 국장님.”국장이 경찰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곧바로 발로 남자를 차버렸다. 서준수 와이프마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가 힘겹게 바닥에서 일어나며 해명했다.“국장님… 저 여자가 순순히 협조하지 않아서 저희가 어쩔 수 없이 그런 겁니다.”국정이 흐트러진 제복을 정리하며 말했다.“너 내 귀는 장식인 줄 알아? 위에서는 너한테 승진할 기회를 주었는데, 네
서준수 와이프는 기자들 앞에서 울며 호소했다. 그녀는 남우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때문에 그녀가 법망을 피해 갔다고 말했다. 또 남우는 자기 가정을 깨트린 상간녀고, 자기 남편과 몰래 사생아까지 낳아다며 울부짖었다.‘상간녀가 본처를 폭행’이라는 막장 드라마 한 편이 순식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진실을 알 리 없는 네티즌들은 남우에게 온갖 폭언을 날렸다. 그 수위가 너무 심해 듣기조차 힘들 정도였다.그 시각,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뭐라고 욕하던 관심 없는 남우가 연서를 데리고 병원에서 나왔다. 두 사람이 막 병원 입구를 지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물병을 던졌다.남우가 빠르게 연서를 끌어안고 피했다.“저 여자가 바로 그 뻔뻔한 상간녀야. 드디어 나왔네!”“그 상간녀 여기 있어요!”한 무리의 사람들이 병원 대문을 둘러싸고 있었다. 거기에는 기자들도 섞여 있었다. 남우와 연서는 곧바로 사람들에게 포위당했다. 누군가가 달걀을 뿌리며 소리쳤다.“상간녀와 그 딸은 당장 죽어버려!”남우가 얼른 연서의 앞을 가로막았다.달걀이 남우의 머리에 부딪히며 터지더니 끈적한 내용물이 그녀의 머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남우의 눈빛이 살벌했다. 그녀는 애꿎은 주먹만 꽉 움켜쥐었다.기자가 사람들을 밀어내며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아가씨, 남의 가정을 깨뜨린 원인이 뭔가요?”“당신이 서 사모님한테 폭력을 행사한 이유는 본처 자리를 빼앗기 위함인가요? 서 사모님을 밀어낸 후 딸을 데리고 그 남자와 결혼할 목적입니까?”남우가 기자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바로 그때, 연서가 갑자기 소리쳤다.“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나쁜 사람들이에요. 남우 언니는 상간녀가 아니란 말이에요!”순간 그곳에 있는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남우 역시 놀란 표정으로 연서를 돌아보았다.연서가 울며 말했다.“아저씨들 다 나쁜 사람이에요. 남우 언니는 잘못하지 않았단 말이에요. 그 나쁜 아줌마가 먼저 우리를 때렸어요. 우리는 그
기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하지만 서 사모님이 본인 입으로 직접 말씀하셨는데…”반재언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당장 인터넷 여론을 확인해 보시죠.”기자들과 남은 사람들이 하나둘 휴대폰을 꺼내 확인한 후 놀라 얼어붙었다. 인터넷 여론이 180돌 뒤바뀐 것이다. 인기 검색어 일위에 엄청난 반전이 올라있었다.공원 CCTV에 사건의 전말이 모두 찍혀있었다. 서 사모가 미친 사람처럼 여자아이를 때리자 그걸 본 남우가 그녀에게 발차기를 날린 것이다.서 사모는 기자들 앞에서 한 번도 자신이 아이를 때렸단 말을 한 적 없었다. 그저 자신이 맞았다는 사실만 말했었다.네티즌들의 의견이 양쪽으로 갈리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서 사모가 맞은 건 자업자득이라고 했고, 소수의 사람은 서 사모가 상간녀의 딸을 때린 건 잘못이 아니라고 두둔했다. 상간녀의 딸은 동정할 필요도 없다면서.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충격 기사가 터졌다. 맞은 아이의 정체가 공개된 것이다. 아이는 반씨 가문 둘째 도련님의 약혼녀 조카였다. 서 사모를 두둔하던 사람들마저 더 이상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못했다.조금만 인터넷을 뒤져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반재신 약혼녀의 조카는 영국인이었고, 친부모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었다. 그런데 어떻게 서준수 상간녀의 딸이 될 수 있겠는가?이로써 서 사모는 완전히 반씨 가문과 척을 지게 되었다.반재언이 남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아직 내 여자한테 더 궁금한 게 남았나요?”아무도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진예은의 조카라는 정체도 공개된 상황에 누가 더 이상 거짓이라는 의심을 할 수 있을까?반재언의 눈빛이 살벌해졌다.“오늘 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겠습니다.”그의 경고에 기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자신들의 흙빛 앞날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빈해 별장.진예은도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를 확인했다. 동영상 속에서 연서가 맞고 있었고, 심지어 ‘사생아’라는 누명까지 쓰게 되었다. 그녀는 너무 화가 나 몸이 부들부들 떨렸
남우는 연서의 눈을 바라보며 이어서 말했다.“그러니까 연서도 앞으로 언니처럼 강해져야 해.”연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꼭 그럴게요.”연서의 방에서 나온 남우는 반재언이 복도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는 뒷짐을 지고 그에게 다가갔다.“당신이 연서를 위해 준비한 방, 연서가 엄청나게 마음에 들어 했어.”반재언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마음에 들면 됐어.”남우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보기와는 다르게 꼬마 아가씨의 취향을 잘 알고 있네?”그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더니,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나중에 미래의 우리 딸을 위해서라도 미리 잘 연습해 두면 좋으니까.”그녀가 흠칫 놀라더니 순식간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너…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누가 너랑 아이를 낳는대?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뭐야.”그녀가 도망치려 하자 반재언이 한발 빠르게 그녀를 벽으로 몰아세웠다. 그녀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그녀의 숨결과 그의 뜨거운 숨결이 한데 어우러져 열기가 피어올랐다.그의 어깨에 올려진 남우의 손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곧바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나른해져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반재언의 입술이 떨어지고 그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젖은 입술을 훑어냈다.“아직도 인정 안 할 거야?”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풀려 있었다.“뭘 인정해?”“네가 나한테 흑심이 있다는 거.”남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 그런 적 없거든. 분명 네가!”그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맞아. 확실히 난 흑심이 있어.”남우의 얼굴에 열기가 확 올랐다. 그녀가 애써 그의 노골적인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비켜, 샤워하러 갈 거야.”그가 갑자기 그녀의 귓가에 바싹 다가가며 말했다.“샤워하고 날 기다려 줄 거야?”잔뜩 화가 난 남우가 그의 어깨를 깨물어 버렸다.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녀 역시 있는 힘껏 문 건 아니었다. 지난번과 비기면 어느 정도 봐줬다고 할 수 있었다.그가 소
“네가 아이 낳는 거 빼고 할 줄 아는 게 뭔데?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거만해져서 내 머리 위에서 놀려고 해? 네가 아이만 낳으면 내가 속도 없이 네 비위나 맞춰줘야 해? 네가 머리가 잘못되어도 군말 없이 네 수발이나 들으라고?”서 사모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서준수, 넌 꼭 지옥에 떨어질 거야!”서준수가 잡고 있던 그녀의 얼굴을 뿌리쳤다. 그 반동에 여자가 바닥에 쓰러졌다.“누가 지옥에 갈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내키지 않으면 당장 이혼 협의서에 사인해.”그가 이혼 협의서를 그녀한테 던졌다.“아들 양육권은 네가 가져도 좋아. 대신 그 조건으로 넌 나한테서 위자료 한 푼도 갖지 못할 거야.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야. 만약 이것까지 거절하면 진짜 아무것도 없이 쫓겨날 줄 알아.”서준수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서 사모는 멍한 표정으로 이혼 협의서를 바라보았다. 온몸의 힘이 쑥 빠져나가고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내가 눈이 삐었지. 저런 남자와 결혼을 하다니.’집에서 나온 서준수는 곧장 심윤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알지 못했다. 몰래 그의 뒤를 쫓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걸.심윤의는 자신의 몸을 꽁꽁 감싼 후, 문을 열었다. 상대가 서준수인 것을 확인한 그녀가 다 쉰 목소리로 말했다.“오빠가 여긴 어쩐 일이야?”서준수가 입구에서 그녀를 덥석 끌어안더니 연신 뽀뽀를 해댔다.“보고 싶어서 왔지. 윤의야, 이제 곧 이혼하게 될 것 같아. 그러면 당장 너와 결혼할 수 있어.”그가 그녀의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려 했다. 문득 어제 자신이 겪었던 처참한 수모가 떠오른 심윤의가 그를 밀어냈다.서준수는 그녀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가 갑자기 자신을 거부하자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윤의야, 설마 후회하는 거야?”“아니…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래.”서준수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그에게서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그럼 쉬고 있어.”그가 막 돌아서려는데 심윤의가 그의 등을 끌어안았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