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하지만 서 사모님이 본인 입으로 직접 말씀하셨는데…”반재언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당장 인터넷 여론을 확인해 보시죠.”기자들과 남은 사람들이 하나둘 휴대폰을 꺼내 확인한 후 놀라 얼어붙었다. 인터넷 여론이 180돌 뒤바뀐 것이다. 인기 검색어 일위에 엄청난 반전이 올라있었다.공원 CCTV에 사건의 전말이 모두 찍혀있었다. 서 사모가 미친 사람처럼 여자아이를 때리자 그걸 본 남우가 그녀에게 발차기를 날린 것이다.서 사모는 기자들 앞에서 한 번도 자신이 아이를 때렸단 말을 한 적 없었다. 그저 자신이 맞았다는 사실만 말했었다.네티즌들의 의견이 양쪽으로 갈리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서 사모가 맞은 건 자업자득이라고 했고, 소수의 사람은 서 사모가 상간녀의 딸을 때린 건 잘못이 아니라고 두둔했다. 상간녀의 딸은 동정할 필요도 없다면서.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충격 기사가 터졌다. 맞은 아이의 정체가 공개된 것이다. 아이는 반씨 가문 둘째 도련님의 약혼녀 조카였다. 서 사모를 두둔하던 사람들마저 더 이상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못했다.조금만 인터넷을 뒤져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반재신 약혼녀의 조카는 영국인이었고, 친부모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었다. 그런데 어떻게 서준수 상간녀의 딸이 될 수 있겠는가?이로써 서 사모는 완전히 반씨 가문과 척을 지게 되었다.반재언이 남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아직 내 여자한테 더 궁금한 게 남았나요?”아무도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진예은의 조카라는 정체도 공개된 상황에 누가 더 이상 거짓이라는 의심을 할 수 있을까?반재언의 눈빛이 살벌해졌다.“오늘 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겠습니다.”그의 경고에 기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자신들의 흙빛 앞날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빈해 별장.진예은도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를 확인했다. 동영상 속에서 연서가 맞고 있었고, 심지어 ‘사생아’라는 누명까지 쓰게 되었다. 그녀는 너무 화가 나 몸이 부들부들 떨렸
남우는 연서의 눈을 바라보며 이어서 말했다.“그러니까 연서도 앞으로 언니처럼 강해져야 해.”연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꼭 그럴게요.”연서의 방에서 나온 남우는 반재언이 복도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는 뒷짐을 지고 그에게 다가갔다.“당신이 연서를 위해 준비한 방, 연서가 엄청나게 마음에 들어 했어.”반재언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마음에 들면 됐어.”남우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보기와는 다르게 꼬마 아가씨의 취향을 잘 알고 있네?”그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더니,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나중에 미래의 우리 딸을 위해서라도 미리 잘 연습해 두면 좋으니까.”그녀가 흠칫 놀라더니 순식간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너…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누가 너랑 아이를 낳는대?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뭐야.”그녀가 도망치려 하자 반재언이 한발 빠르게 그녀를 벽으로 몰아세웠다. 그녀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그녀의 숨결과 그의 뜨거운 숨결이 한데 어우러져 열기가 피어올랐다.그의 어깨에 올려진 남우의 손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곧바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나른해져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반재언의 입술이 떨어지고 그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젖은 입술을 훑어냈다.“아직도 인정 안 할 거야?”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풀려 있었다.“뭘 인정해?”“네가 나한테 흑심이 있다는 거.”남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 그런 적 없거든. 분명 네가!”그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맞아. 확실히 난 흑심이 있어.”남우의 얼굴에 열기가 확 올랐다. 그녀가 애써 그의 노골적인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비켜, 샤워하러 갈 거야.”그가 갑자기 그녀의 귓가에 바싹 다가가며 말했다.“샤워하고 날 기다려 줄 거야?”잔뜩 화가 난 남우가 그의 어깨를 깨물어 버렸다.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녀 역시 있는 힘껏 문 건 아니었다. 지난번과 비기면 어느 정도 봐줬다고 할 수 있었다.그가 소
“네가 아이 낳는 거 빼고 할 줄 아는 게 뭔데?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거만해져서 내 머리 위에서 놀려고 해? 네가 아이만 낳으면 내가 속도 없이 네 비위나 맞춰줘야 해? 네가 머리가 잘못되어도 군말 없이 네 수발이나 들으라고?”서 사모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서준수, 넌 꼭 지옥에 떨어질 거야!”서준수가 잡고 있던 그녀의 얼굴을 뿌리쳤다. 그 반동에 여자가 바닥에 쓰러졌다.“누가 지옥에 갈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내키지 않으면 당장 이혼 협의서에 사인해.”그가 이혼 협의서를 그녀한테 던졌다.“아들 양육권은 네가 가져도 좋아. 대신 그 조건으로 넌 나한테서 위자료 한 푼도 갖지 못할 거야.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야. 만약 이것까지 거절하면 진짜 아무것도 없이 쫓겨날 줄 알아.”서준수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서 사모는 멍한 표정으로 이혼 협의서를 바라보았다. 온몸의 힘이 쑥 빠져나가고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내가 눈이 삐었지. 저런 남자와 결혼을 하다니.’집에서 나온 서준수는 곧장 심윤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알지 못했다. 몰래 그의 뒤를 쫓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걸.심윤의는 자신의 몸을 꽁꽁 감싼 후, 문을 열었다. 상대가 서준수인 것을 확인한 그녀가 다 쉰 목소리로 말했다.“오빠가 여긴 어쩐 일이야?”서준수가 입구에서 그녀를 덥석 끌어안더니 연신 뽀뽀를 해댔다.“보고 싶어서 왔지. 윤의야, 이제 곧 이혼하게 될 것 같아. 그러면 당장 너와 결혼할 수 있어.”그가 그녀의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려 했다. 문득 어제 자신이 겪었던 처참한 수모가 떠오른 심윤의가 그를 밀어냈다.서준수는 그녀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가 갑자기 자신을 거부하자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윤의야, 설마 후회하는 거야?”“아니…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래.”서준수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그에게서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그럼 쉬고 있어.”그가 막 돌아서려는데 심윤의가 그의 등을 끌어안았
반재언이 피식 웃었다.“심윤의는 서 사모의 담당 의사였어. 때문에 심윤의에 대한 신임이 두텁겠지. 그 여자는 전혀 심윤의를 의심하지 않고 있을 거야.”남우가 실눈을 떴다.“내가 자기한테 욕 좀 했다고 감히 날 이렇게 모함해?”그녀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자신이 그 정도로 심윤의한테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악랄한 수법으로 자신을 모함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그 여자는 너만 타깃으로 한 게 아니야. 아마 가장 큰 목적은 연서였을 거야. 그 여자는 최종적으로 내 동생을 손에 넣고 싶었겠지.”남우가 흠칫 놀라더니 곧바로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심윤의는 반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마음에 들었던 거였다. 그래서 그날 별장에서 그렇게 당황하며 자기 말을 반박했던 것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었다.문득 뭔가를 떠올린 그녀가 의미심장한 어투로 말했다.“너희 형제는 생긴 게 닮은 것도 모자라 쓸데없는 여자들이 꼬이는 것까지 똑같네.”반재언이 소리 없이 웃더니 그녀의 의자 등받이로 손을 뻗으며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이제부터 네가 내 곁에서 그런 여자들을 막아주면 되겠네.”그녀가 고개를 휙 돌렸다.“네 동생 옆에는 진예은 씨가 떡하니 있는데도 그런 여자를 막아내지 못했잖아.”까놓고 말해서 두 사람의 외모가 여자들이 그냥 지나치기 아쉬울 정도로 잘생긴 것이다.반재언이 그녀의 얼굴을 다시 돌렸다. 그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내 옆에 남우 아가씨가 있는 한 감히 어떤 여자가 함부로 다가오겠어. 남우 아가씨가 다가오는 족족 날려버리면 그만인데. 안 그래?”남우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속셈에 넘어간 것을 느꼈다.“그…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왜 그 여자들을 날려버려.”반재언이 그녀를 확 잡아당겨 자신의 다리 위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의 턱을 그녀의 어깨 위에 기댔다.“나한테 쓸데없는 여자가 꼬인다고 걱정했잖아.”“안 그랬…”반재
서 사모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영상을 확인하기로 마음을 굳혔다.양우빈이 휴대폰을 그녀의 앞에 내밀었다. 휴대폰을 받은 서 사모가 떨리는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을 확인한 그녀는 그대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경악했다.“어떻게 이럴 수가…”그녀는 영상을 여러 번 돌려 확인했다.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서준수와 바람난 상대가 심윤의였다니!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입술만 달싹거렸다.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그 여자가…”심윤의는 그녀가 가장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지난 몇 년간 그녀와의 상담이 없었다면 그녀는 그 암흑 같던 날들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그녀는 심윤의를 ‘의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소울 메이트’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심윤의의 부탁이라면 그 무엇도 마다치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자기 남편과 바람난 상대인 줄 몰랐다.그녀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사모님, 저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산후 우울증 진단을 받고 왜 굳이 경상도에까지 가서 심윤의 씨한테 병을 보이셨죠? 서울에도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말입니다.”서 사모의 얼굴은 마치 피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그건 남편이 저한테 소개해 줬어요.”대답을 하는 순간 그녀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은 철저히 속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히스테릭하게 웃기 시작했다.“그랬군요. 그 둘은 진작 붙어먹었고 합심해서 지금껏 나를 속이고 있었던 거였어요.”그녀는 임신하고 아이를 낳은 후 서준수의 외도를 알고 산후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그리고 마침 그때, 서준수는 심윤의를 그녀에게 소개했다. 그는 선심을 쓰듯 그녀와 함께 경상도로 가서 상담을 받곤 했었다. 심지어 그가 먼저 그녀에게 경상도에서 지내면서 치료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었다.그녀는 그때까지만 해도 서준수가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그런 제의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
김 변호사가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서준수 씨는 결혼 기간에 외도를 했고, 사모님한테 가정 폭력도 행사했습니다. 그 탓에 사모님은 심각한 우울증을 얻게 되었죠. 만약 이 일로 법원에 고소하면 당신은 더 큰 손해를 입게 될 겁니다.”서준수가 흠칫하더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당신이 그 여자가 고용한 변호사면 왜 나를 도우려는 거죠?”김 변호사가 느긋하게 커피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사실 심윤의 씨가 저에게 당신을 도우라고 부탁했습니다.”서준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당신이 윤의와 무슨 사인데요?”“오해하지 마세요.”김 변호사가 미소 지었다.“저와 심윤의 씨는 아무 사이가 아니니깐요. 단지 심윤의 씨가 당신을 위해 이런 기회를 만들어냈고, 저는 자연히 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서준수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변호사의 말을 알아들었고, 표정이 제법 많이 풀어졌다.“그렇군요. 그럼 방금 당신이 소송까지 가면 나한테 큰 손해가 생길 거라고 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 손해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그는 절대 자신의 전 재산을 그녀에게 넘길 수 없었다.김 변호사가 그를 바라보았다.“만약 정말로 소송까지 가게 되면 서준수 씨는 절대 승소할 수 없을 겁니다. 와이프 분이 소송을 못 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서준수는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 미친 여자가 감히 이혼 소송을 하려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기껏해야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들의 양육권만 챙기고 빈손으로 나갈 거라고 생각했었다.그런데 그 미친 여자가 자기도 모르게 변호사를 찾아 이혼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심지어 자신의 전 재산을 빼앗을 생각을 해?그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변호사가 그의 표정을 살핀 후 싱긋 미소 지었다.“서준수 씨, 저한테 사모님의 마음을 단념시킬 방법이 있습니다.”서준수가 물었다.“그게 뭡니까?”“그녀가 가장 아끼는 건 그녀의 아들입니다. 아들에게 손을 쓰세요. 그러면 사모님도 기필코 협상할 겁니다.”변호사의 말에 서준수의 표정
남우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럼 지금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이 손은 누구 거란 말인가…’그녀는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켠 후, 천천히 그의 손을 들고 몸을 돌려 확인했다.그녀의 예상대로 반재언이 누워있었다!그녀의 움직인 탓에 잠에서 깬 반재언이 그녀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그가 그녀의 목 옆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괜히 뒤척이지 말고 빨리 자.”남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뻔뻔하게 여기서 잘 수 있어.”그녀가 연서의 방에서 자는데도 그가 따라 들어오다니!반재언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뭐라고 욕해도 돼. 난 너만 있으면 되니까.”남우는 그제야 이 남자가 얼마나 더 파렴치해질 수 있을지 깨달았다.하지만 큰 소리로 연서의 잠을 깨울 수 없었기에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낮은 목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네 방에 가서 자.”그녀는 절대 연서에게 그를 보여줄 수 없었다.반재언이 눈을 뜨더니 한 손으로 머리를 베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나랑 같이 내 방에 가서 자게?”남우의 몸이 흠칫 굳어졌다. 방 안이 어두워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목까지 새빨개진 그녀의 얼굴을 그에게 들킬 뻔했다.“꿈 깨!”반재언이 다시 그녀를 자신의 품에 껴안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됐어. 빨리 자. 아침이 되면 알아서 돌아갈 테니까”남우는 쏟아지는 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품에 기대 잠이 들어 버렸다.반재언이 시선을 내려뜨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었다.“피하는 것도 모자라, 내 옆에서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들어 버리다니…”그녀가 잠든 사이에 자신이 그녀를 안고 방으로 돌아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러는지.다음 날, 남우와 연서는 아래층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죽을 몇 술 뜨던 연서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더니 입술만 달싹거리며 쉽게 말을 뱉지 못했다.아이가 자신한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남우가 웃으며 물었다.“왜
진예은이 시선을 내려뜨렸다.“잘 알지는 못해요. 단지 그 여자가 진심으로 연서를 치료할 생각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남우가 말했다.“확실히 진심은 아니었어요. 그 여자가 연서한테 접근한 건 연서를 이용해서 예은 씨 자리를 빼앗기 위해서였어요.”진예은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연서를 이용해서 제자리를 빼앗으려고 했다고요?”“맞아요. 심윤의의 목적은 반지훈 도련님이었어요. 그 여자는 연서를 이용해서 연서가 당신과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끼치게 하려고 했어요. 아마 그 여자는 예은 씨한테 아이가 없어지면 자신이 더욱 유리해질 거로 생각했겠죠.”진예은이 입술을 깨물었다.문뜩 지난번 알 수 없는 유언비어의 문자가 왔던 게 떠올랐다. 보아하니 그것도 심윤의의 작품인 것 같았다.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온 반재신은 정원에서 꽃에 물을 주고 있는 진예은을 발견했다.그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진예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의 정장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 위에 걸쳐주었다.“왜 나와 있어.”“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일거리를 찾으려고.”진예은이 분수기를 내려놓고 그를 돌아보았다.“참, 오늘 밤 연서가 이리로 와서 잘 거야.”그가 멈칫거리더니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전경에서 안 자고?”진예은이 반문했다.“넌 연서가 쭉 전경에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반재신이 멈칫거렸다.“당연히 아니야.”진예은이 반재신을 빤히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심윤의는 네가 연서를 위해 찾은 의사였어. 네 덕분에, 너한테 흑심을 품을 여자가 연서와 어울리게 되었지. 지난 반 년간 연서가 어떤 지옥을 살았을지 모르겠어.”반재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는 언젠가 진예은이 그 일로 자신에게 따져 물을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작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연서 일은 순전히 내 잘못이야.”진예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넌 그 여자의 말을 믿을지언정 연서를 믿으려 하지 않았어.”“난…”반재신은 차마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로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