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반재신은 가우라는 그 ‘아가씨’에 대해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얼마 후, 소문은 널리 퍼져 강유이는 어느새 남씨 가문의 미래 ‘사모님’이 되어있었고 남강훈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서재에서 도자기를 닦고 있던 남강훈이 고개를 들었다.“어디서부터 퍼진 소문이야?”집사가 난감해하며 대답했다.“무관에서 도련님이 그 아가씨와 수련하는 것을 보고 다들 그쪽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두 사람 모두 여자인데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남강훈은 실소를 터뜨렸다.“상당히 잘못된 오해로군.”집사도 근심이 가득했다.“오랫동안 숨겨온 도련님의 정체를 누군가가 알아내게 될까 봐 걱정돼요.”남강훈이 도자기를 다시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언젠간 밝혀지게 될 것을 그저 잠시 숨기고 있을 뿐이야. 게다가 똑똑한 손님이 집에 있잖아.”“반재언을 말하는 건가요?”“그가 가우라는 아가씨에 대해 한 말을 기억해?”남강훈이 심호흡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아마 남우가 또 몰래 여장하고 돌아다닌 모양이야. 그러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 마주쳤으니 아마 눈치챘을 거야.”집사는 깜짝 놀라더니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도련님이 진짜 여자를 데려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남강훈은 백자기를 진열장에 넣으며 말했다.“지금은 이런 일에 대해 걱정할 때가 아니야. 남씨 가문이 스카이섬에 뿌리내리면서 2세대가 심혈을 기울였는데 이대로 다른 이가 파괴하게 내버려 둘 수 없어.”남씨 가문이 서남 지역의 세력과 섬에서 서로 간섭하지 말자고 협상했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언젠가 바뀌기 마련이라는 것을 집사도 알고 있었다.같은 시각, 훈련을 마친 강유이와 시월은 옆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남우와의 ‘소문’은 그녀에게 있어서도 난감한 일이었다.“내가 도련님을 곤란하게 한 건 아니겠죠?”시월이 미소를 지으며 안심시켰다.“아니에요. 그저 잠깐 궁금해하다가 흥미가 사라지면 다시 언급하지 않을 거예요.”그들에게는 남우는
한태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경계할 줄도 알고 나쁘지 않은데?”강유이는 그를 밀치며 자리에 앉았다.조명이 켜지면서 어둠이 사라졌다.한태군은 어두운색의 얇은 트렌치코트를 입었다. 바람 때문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그를 더 초췌해 보이게 했다.강유이는 그의 얼굴을 감싸며 물었다.“왜 이렇게 살이 빠진 거야?”한태군은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며 말했다.“네 생각하느라고 너무 애가 타서, 살이 빠진 거잖아.”그녀가 손을 빼며 얼굴을 붉혔다.“능글맞긴.”그는 그녀를 품에 안고 자리에 누웠다.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요즘 남우 씨와 훈련하고 있다고 들었어.”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것 때문에 온 거야?”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내렸다.“뭘 말하는 거지?”입술을 깨물던 강유이가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나랑 남우 씨와의 소문 때문이잖아?”한태군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러자 그녀가 놀라며 물었다.“왜 웃어?”그녀를 향해 돌아누운 한태군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혹시 내가 질투한다고 생각해서 설명하고 있는 거야?”그녀는 말이 없었다.한태군이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아직 내 감정을 이렇게 신경 쓸 줄은 몰랐네?”그녀는 몸을 돌리며 뾰로통하게 말했다.“나 잘래!”그는 그녀를 더욱 세게 안으며 그녀의 체온을 느꼈다.“그럼 자.”이윽고 그의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온몸을 파고들기 시작했다.전기 충격을 맞은 듯한 짜릿함에 강유이는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해?”그녀의 불평에는 어리광이 섞여 있었다.그가 웃음을 참으며 속삭였다.“쉬지 말라고 한 적 없잖아?”그의 눈빛이 짙어졌다.“너는 너대로 잠자면 되고 난 나대로 운동하는 거지.”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뻔뻔해!”한태군은 그녀의 턱을 들어 입술을 포갰다.그의 무자비한 입술 공격에 강유이는 맥없이 무너졌다.그들의 밤은
강유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입을 열었다.“...아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네요.”어젯밤에 그렇게 그녀를 탐하고서 질투까지 한다면 너무한 것이다.팔짱을 낀 남우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재미없네요. 연적 역할을 한번 맡아보고 싶었는데 말이죠.”강유이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미소만 지었다.같은 시각, 반재언과 한태군이 정원 저편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평온한 한태군의 표정에 반재언이 물었다.“유이가 남우 씨와 가깝게 지내는 게 신경 쓰이지 않아?”한태군이 시선을 거두며 대답했다.“신경 쓸 것 없지.”반재언이 눈을 가늘게 떴다.“이미 알고 있었어?”그는 고개를 돌려 반재언을 바라보았다.“뭘 말하는 거야?”“내가 뭘 얘기하는 것 같아?”모호한 대답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반재언의 수법이었다.충분히 신중하지 않고, 현명하지 않은 다른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은 그의 덫에 걸려들 것이다.한태군은 먼 곳의 두 사람을 힐끔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벌써 눈치챈 거지?”반재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대로라면 그의 예상과 일치했다.그는 가우에 대해 조사했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고 그저 얻어낸 정보가 DM의 주인을 건드렸다는 것뿐이었다.가우와 남우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더 깊게 파고들지 않았을 뿐.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동남아의 군주라 불리는 남강훈에게 한 명의 아들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그가 아들이 아니라면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진다.“오빠, 태군 오빠.”돌아오는 길에 강유이와 남우를 마주쳤다.그들에게 시선을 옮긴 반재언이 남우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그날 차 안에서 강유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떠올렸다.남우는 대부분 여자보다 키가 컸다. 몸매로 보나 용모로 보나 남자와는 거리가 있었다.그때 그 여자는 비슷한 몸매에 하이힐을 신고 있어서 그의 어깨까지 오는 키를 자랑했었다.비록 불빛이 어두워 선명하게 볼
분명 불을 뿜으며 화를 내는 그녀였지만 너무 귀여웠다.한태군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몸을 돌린 강유이가 남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저랑 갈 데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녀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남우도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보란 듯이 한태군을 한번 힐긋 바라보고는 강유이 뒤를 따랐다.한태군: “...”강유이가 남우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한태군이다.그들을 태운 차는 유유히 시중심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남우가 강유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강유이가 한숨을 내쉬었다.“태군 오빠와 저의 오빠 모두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이미 남우 씨의 신분을 의심하고 있을지도 몰라요.”남우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여장을 한 저의 모습을 본 당신의 오빠분이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그러자 강유이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언제요?”남우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그날 가우에 대해 언급한 날이요.”그녀는 드디어 모든 것을 깨달았다.남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오빠분은 이미 의심하기 시작한 상태고 한태군은 아직 모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되겠죠.”입술을 다문 강유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월은 시 중심의 대형 쇼핑몰 앞에 차를 댔다. 번화가인 데다 외국 손님들도 많았다.강유이와 남우가 차에서 내렸고 시월은 차에서 대기했다.쇼핑몰 여기저기에 명품 면세점들이 입점해 있었고 많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손님 대부분이 서구적인 이목구비지만 카운터 직원들은 동양인이었다.강유이가 물었다.“이 쇼핑몰도 남씨 가문의 소유인 가요?”남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모두 우리 가문과 손잡은 가게들이죠.”이때 앞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강유이와 남우도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거기에는 검은 옷차림의 경호원 두 명이 판매원 두 명을 바닥에 쓰러뜨리고 무력을 가하고 있었다.판매원의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렀고 얼굴은 구타로 심하게 부어있었다.나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는 그들에게 치지연이 노발대발했다.“처리 하지 않고 뭐 하는 거야!”경호원들은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곧 큰 몸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 주위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뒷걸음질쳤다.몇 명이 남우에게 덤볐다. 남우는 피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주었다. 양쪽에서 들어온 동시 공격에 그녀는 잽싸게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백 텀블링을 하며 뒤쪽의 기습을 제압했다. 그러자 그녀의 몸 뒤에서 또 한 명이 덮쳤다. 쓰러진 남자의 몸을 방패로 충격을 피하고 잽싸게 남자의 목을 비틀었다.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단번에 7~8명을 때려눕혔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치지연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시선에 잡힌 과일칼을 들고 남우에게 덤비기 시작했다.“죽어!”남우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그때 채찍이 날아와 그녀의 손에 들린 흉기를 떨어뜨렸다.치지연은 고통스러워하며 손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등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채찍을 손에 든 강유이가 유유히 걸어 나오자 치지연이 뒷걸음질쳤다.갑작스러운 공격에 충격받은 치지연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배은망덕하게 다른 주인을 따라갔으면 잠자코 있어야지 무슨 낯으로 남씨 가문의 영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 그런 너에게 채찍은 너무 약해.”그녀는 강유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채찍에 맞은 곳이 쓰라렸다. 마치 살이 찍기는 고통이었다.이를 악문 그녀는 불을 뿜으며 발악했다.“배신이 뭐가 어때서? 남씨 가문이 우리 아버지를 죽인 거잖아!”남우가 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너의 죄를 고백하는 거야?”그녀는 치지연에 다가가 몸을 내리며 턱을 치켜들었다.“치영강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우리 남씨 가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한번 착한 너의 부하 하시호에게 확인해 봐.”치지연은 고통스럽게 신음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남우의 시선이 좀 더 날카롭게 변했다.“백제파를 시켜 나를 처리하려 했지? 여기서 밀린 장부까지 끝장 봐?”급히 그
남우가 코를 찡긋거렸다. 그녀가 원했던 바이다.저녁, 서남 일대의 어느 유흥업소.남우가 부하들을 거느리고 쳐들어갔다. 그들은 부득불 가게 문을 닫아야 했고 그 소문이 재빨리 푸조의 귀에 들어갔다.별장은 불이 켜져 있었다.샤워가운을 입은 푸조가 느긋하게 야식을 즐기고 있었다.그의 옆에 있던 부하가 다급해하며 말했다.“간덩이가 붓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 영역을 침범하고 우리 사람까지 다치게 해요?”수저를 내려놓은 그가 냅킨으로 조심스럽게 입가를 닦았다.별장에 들어선 운소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푸조가 입안에 있던 생선 뼈를 신경질적으로 뱉으며 말했다.“치지연에 계속 이렇게 사고 치고 다니면 봐 주지 않겠다고 경고해.”...무관에서 훈련 중이던 강유이는 남우가 푸조의 유흥업소를 박살 냈다는 소문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약이 바짝 올랐겠는데요?”남우가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치지연이 더 약이 올랐죠.”푸조에게 망명간지도 얼마 안 되어 남씨 가문에 와서 말썽을 부리는 그녀를 가만 둘리 없었다. 그녀는 물불 가릴 게 없는 상황이긴 해도 푸조는 사리에 밝은 사람이다.이익을 중요시하고 야망이 있는 사람은 될수록 적을 만들어선 안 된다.이런 시기에 남씨가문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면 두 가문 모두 상당한 손해를 보게 된다.남씨 가문에는 아무 피해가 없을지 몰라도 스카이섬을 독식하려는 푸조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갑자기 강유이가 누군가를 불렀다.“오빠가 어쩐 일이야?”남우도 고개를 돌렸다.“한가하시네요.”반재언이 다가와 남우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는 도련님도 한가하네요.”그늘에 앉아 차를 마시며 훈련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꽤 지루한 일이었다.남우가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내 부하들의 견식을 넓힐 수 있게, 혹시 훈련하고 싶으신 건 아닌지요?”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강유이가 손에 땀을 쥐었다.반재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가 도련님과 한번 붙어보고 싶다면요?”훈련하던 이들이 이
“맞아요, 보기에는 왜소하고 여자처럼 생겼어도 얼마나 모진데요.”당했던 남자들은 그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혀를 내둘렀다.강유이는 오빠가 걱정되기 시작했다.하지만 그저 남우가 좀 봐주기만 속으로 바랄 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두 사람의 일대일 대결이 링 위에서 시작 되었다.남우는 빨리 끝내기 위해 처음부터 강하게 밀어붙였다. 공격을 피해 몸을 낮춘 반재언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자 남우가 몸을 비틀며 그의 팔을 잡고 그대로 힘을 실었다.반재언은 넘어지며 손바닥으로 땅을 짚어서 이내 다시 중심을 잡았다.그녀는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공격했다. 그녀의 손과 발이 너무 빠르고 강해서 반재언은 방어만 할 뿐이었다.보는 이들조차 긴장하게 했다.그녀의 공격을 피하긴 했지만, 그는 내내 피동에 처하고 있었다.남우가 냉소를 지었다.“잘 버티네요.”반재언은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뒤로 거듭 밀려나는 그에게 더는 후퇴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남우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덩달아 강유이의 심장도 오그라들었다.그때 잽싸게 옆으로 피한 반재언이 그녀의 다리를 잡았다. 몸이 기울어 급히 바닥을 잡고 지탱한 남우는 이런 기술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그를 본받아 두 다리로 목을 조이며 쓰러뜨렸다. 반재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팔을 움켜쥐며 그녀를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그녀가 힘을 쓸수록 팔에 심한 통증이 가해졌다.아래에서 관람하던 사람들은 약간 혼란스러워했다.겨루기에서 가장 피해야 하는 상황이 얽매이는 것이었다.한번 얽매이면 빠져나오기 힘들어 패배하게 된다.겨루기에서는 더더욱 그랬다.뭔가를 의식한 남우가 경직된 채. 가쁜 숨을 토해냈다.“놔요.”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먼저 놓으시죠?”그녀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그럼, 동시에 놔요.”반재언이 힘을 풀자, 남우도 그를 놓아주었다.몸을 일으킨 그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주려는 것 같았다.“비긴 거로 하죠.”그의 손을 쳐 낸 남우는 말이
"반재언 그놈 운이 좋았어."남우가 이를 물고 말했다.방으로 돌아간 남우는 얼른 샤워하곤 피가 묻은 바지를 세탁기 안에 던져넣었다.머지않아 시월이가 방으로 들어왔다."도련님, 생리예요?"하인들은 절대 남우의 옷과 방을 정리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남우의 방은 드나들 수 없는 금지의 구역이었다.그랬기에 남우의 방과 옷을 정리하는 이는 집사와 시월이의 몫이 되었다.생리대도 시월이가 몰래 그녀에게 가져다줘야 했다."옷 세탁기 좀 돌려줘,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남우가 침대 위에 누워 핫팩을 배에 대고 말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시월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세탁기를 돌리러 갔다.침대 위에 누운 남우는 생각할수록 억울했다.반재언의 말도 안 되는 수작질에 걸려든 것이 자신의 소홀함 때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한편 남우의 옷을 씻으려던 시월이가 인기척을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누굽니까?"그러자 반재언이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시월 씨 예민하시네요."시월이는 무의식적으로 티가 나지 않게 피가 묻은 남우의 바지를 가렸다."도련님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세탁기 돌리러 왔죠."반재언이 손에 들려있던 외투를 세탁기에 집어넣으며 말했다."저한테 맡겨주시면 됩니다."시월이는 여전히 경계심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여기는 남 도련님 옷이에요?"반재언이 세탁기 안을 힐끔 보더니 물었다."네.""남 도련님 옷은 하인들이 정리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굳이 시월 씨한테 이런 걸 시키는 거죠?"반재언의 물음에 시월이는 얼어버리고 말았다.그녀도 반재언이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시 그는 이런 사소한 점도 놓치지 않았다.남 씨 집안의 하인들도 의아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저 남우가 다른 이가 자신의 물건을 건드리는 것을 싫어할 뿐이라고 생각했다."도련님께서 다른 분이 자기 물건을 건드리는 걸 싫어해서요."시월이도 결국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하인들까지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