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재언 그놈 운이 좋았어."남우가 이를 물고 말했다.방으로 돌아간 남우는 얼른 샤워하곤 피가 묻은 바지를 세탁기 안에 던져넣었다.머지않아 시월이가 방으로 들어왔다."도련님, 생리예요?"하인들은 절대 남우의 옷과 방을 정리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남우의 방은 드나들 수 없는 금지의 구역이었다.그랬기에 남우의 방과 옷을 정리하는 이는 집사와 시월이의 몫이 되었다.생리대도 시월이가 몰래 그녀에게 가져다줘야 했다."옷 세탁기 좀 돌려줘,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남우가 침대 위에 누워 핫팩을 배에 대고 말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시월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세탁기를 돌리러 갔다.침대 위에 누운 남우는 생각할수록 억울했다.반재언의 말도 안 되는 수작질에 걸려든 것이 자신의 소홀함 때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한편 남우의 옷을 씻으려던 시월이가 인기척을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누굽니까?"그러자 반재언이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시월 씨 예민하시네요."시월이는 무의식적으로 티가 나지 않게 피가 묻은 남우의 바지를 가렸다."도련님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세탁기 돌리러 왔죠."반재언이 손에 들려있던 외투를 세탁기에 집어넣으며 말했다."저한테 맡겨주시면 됩니다."시월이는 여전히 경계심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여기는 남 도련님 옷이에요?"반재언이 세탁기 안을 힐끔 보더니 물었다."네.""남 도련님 옷은 하인들이 정리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굳이 시월 씨한테 이런 걸 시키는 거죠?"반재언의 물음에 시월이는 얼어버리고 말았다.그녀도 반재언이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시 그는 이런 사소한 점도 놓치지 않았다.남 씨 집안의 하인들도 의아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저 남우가 다른 이가 자신의 물건을 건드리는 것을 싫어할 뿐이라고 생각했다."도련님께서 다른 분이 자기 물건을 건드리는 걸 싫어해서요."시월이도 결국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하인들까지
"유이 너 일부러 그랬지?"반재언이 갑자기 돌아보더니 강유이에게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강유이가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내가 머 알아낼까 봐 무서워?""아니, 오빠 머 조사하려고?"강유이가 고개를 저으며 계속 넘어가려 애썼다.반재언은 연기를 하는 강유이를 보며 웃었다. 그녀의 연기는 꽤 괜찮았으나 그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유이야, 내가 너 엄청나게 아끼는 거 알지?""당연하지, 오빠가 나한테 제일 잘 해주잖아."강유이가 반재언 옆으로 가더니 팔짱을 꼈다.그 말을 들은 반재언도 따라 웃었다."그럼 나 속이는 거 잘못했다는 생각 안 해?"그 말을 들은 강유이는 할 말을 잃었다.반재언이 정말 무언가를 알아차린 걸까?"유이가 오빠를 이렇게 못 믿을 줄 몰랐네, 한태군 편들어주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다른 사람 편까지 들어주고. 나 너무 속상해."반재언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그는 은연중에 강유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오빠, 그 말은 좀 심하지."강유이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러면서도 말은 안 하네.""내가 오빠를 속이려는 게 아니라…"사실을 털어놓으려던 강유이는 반재언이 눈썹을 들썩이는 모습을 본 순간,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오빠, 지금 나 떠보는 거야?""바보는 아니네."강유이는 웃음을 터뜨리는 반재언을 보며 그가 무언가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도 이제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쉽게 사실을 털어놓을 리 없었다."네가 말 안 해도 나 알아볼 수 있어."반재언이 고개를 숙이곤 울적해 있는 강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런데 나를 떠봤던 거야?""다음에 다른 사람이 너 떠보면 안 넘어가게 하려고 연습시켜 준 거지."반재언의 말을 들은 강유이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그 후, 강유이는 남우에게 반재언이 그녀의 신분을 알아봤을 수 있다는 것을 감히 말하지 못했다.스카이섬으로 온 지도 반 달이 지나 강유이는 채찍을 더욱 익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그때, 주계진이 강유이에게
하시호는 치지연의 뒤에 서서 그녀가 화를 내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아프긴 했지만, 그도 치지연이 너무 급하게 굴고 있다고 생각했다."아가씨, 푸조 씨 뜻은 아직 때가 아니니 침착하게 기다리라고 한 걸 겁니다.""아직 때가 아니면 도대체 언제 그때가 오는 건데!"치지연이 하시호의 옷깃을 잡았다."네가 말했잖아, 내가 아버지 자리만 물려받게 되면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그런데 내가 푸조한테 의탁했는데도 푸조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남우는 몇 번이고 내 머리 위에 올라타서 무시하고 쓰레기 같은 너희는 도움조차 주지 못하고 계속 나한테 참으라고 했잖아!"화가 나서 소리치는 치지연의 말을 들으며 하시호가 주먹을 쥐었다."쯧쯧, 지연 씨 화가 많으시네."그때 데이비 렌지가 사람들을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섰다."당신이 뭔데, 이건 우리 집안일이니 바깥사람이 끼어들 필요 없습니다."치지연의 말을 들은 데이비 렌지가 웃었다."그렇게 급하게 구니 큰일을 못 하죠, 그래서 남씨 가문 도련님이 치지연 씨를 안중에도 두지 않은 겁니다. 치지연 씨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날뛰고 있었으니.""지금 나를 비웃는 겁니까?"치지연이 화가 나서 물었다."하시호, 서서 뭐 해? 저 사람 당장 끌어내지 않고!"하지만 하시호는 치지연의 말을 듣고도 가만히 서 있었다.데이지 렌지가 여유롭게 소파에 앉으며 다시 입을 뗐다."저는 치지연 씨가 가주가 되어서 블랙샷이 불쌍해요, 이렇게 생각도 없고 자기 뜻대로 행동할 줄밖에 모르는 여자가 정말 블랙샷을 이끌 수 있겠어요?""그게 무슨 뜻이야?!"데이비 렌지가 화가 난 치지연을 보다 다시 하시호에게 말했다."블랙샷을 살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시호 씨. 당신만 원한다면 블랙샷을 당신한테 맡겨서 관리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치지연이 놀라 하시호를 쏘아봤다."네가 감히? 하시호, 너 블랙샷이 키운 개일 뿐이야 그런데 감히 주인 머리 위에 올라타겠다고?"치지연의 말을 들은
그 말을 들은 치 영감이 자조적으로 웃었다."제가 호랑이 새끼를 키워서 결국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네요.""치지연이 블랙샷을 물려받은 뒤, 푸조에게 의탁했어."이어지는 남강훈의 말에 치 영감이 멈칫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물었다."저를 원망하지 않으십니까?""내 자네 아버지와 친구 아닌가, 자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네랑 블랙샷을 나에게 맡겼고 나도 그러겠다고 약속했지. 자네가 푸조를 따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자네 아버지 대신 실망했지."치 영감은 남강훈의 말을 들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남강훈의 눈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남씨 가문은 블랙샷에게 모든 것을 내어줬지만 치 영감이 현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푸조의 유혹에 넘어가 남씨 가문을 배신할지 고민했던 것이었다.하지만 결국 그를 해친 이는 그의 사람이었고 그를 살린 이는 자신이 적으로 여겼던 사람이었다."하지만 당장 배신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으니 남씨 가문과 끝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 아닌가. 나도 자네의 멍청한 선택을 탓하지 않을 테니 몸 추스르게.""그럼 지연이는…"치 영감이 말을 하다 멈췄다.남강훈은 그 말을 듣더니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지연이도 똑똑하다면 마지막까지 가지는 않겠지, 이게 다 자네가 지연이를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워서 그래."…무장에서 돌아온 강유이는 남우가 키우고 있는 도마뱀에게 고깃덩이를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죄책감을 느꼈다."도마뱀 꽤 귀엽네요.""그럼 한 번 만져볼래요?"남우가 웃으며 묻자 강유이가 거절했다."그건 필요 없을 것 같아요.""왜요, 무슨 할 말 있어요?"남우가 고깃덩이를 박스 안으로 넣으며 물었다."제 동영상 봤죠? 남우 씨한테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겠죠?"강유이가 어색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그것 때문에 그래요? 동영상도 이미 사라졌는데 저한테 무슨 일이 있겠어요?"강유이는 반재언이 자신을 떠본 사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을 털어놓는다면 맞을 것 같
"그걸로 비밀 하나 사는 거, 밑지는 장사는 안될 것 같은데요."남우가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이건 남의 돈을 편취하는 겁니다.""반 도련님, 이건 돈을 편취하는 게 아니라 기껏해야 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우가 반재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말했다.반재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남우를 바라봤다. 그녀를 동물에 비긴다면 여우라고 하는 것이 제일 적당할 것 같았다. 그녀는 충분히 교활하고 똑똑했다.그녀는 남자의 책임감과 특유의 수단과 계략을 가지고 있었다.수십 년 동안 신분을 숨기면서 사람들의 탄복과 경외심을 받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었다."뭘 하는 거야?"남강훈은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반재언의 어깨에 손을 걸친 남우를 보게 되었다.두 사람의 거리는 무척 가까웠지만 남강훈이 보기에 자신의 ‘아들’이 마치 반재언을 놀리고 있는 것 같았다."그냥 얘기 좀 나누고 있었어요."남우가 반재언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나는 또 네가 반 도련님을 두고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지."그 말을 들은 반재언이 웃었다."회장님, 저희 그냥 얘기 좀 나누고 있었어요.""이놈 대신해서 얘기할 필요 없어요, 맨날 맞을 일만 찾아서 하는 놈이라."남강훈이 말을 하며 남우를 방으로 쫓았다.남우는 그런 남강훈을 보다 여유롭게 방으로 들어갔다."회장님, 무슨 걱정이라도 하고 계신 겁니까?"반재언이 남강훈의 뜻을 알아차리고 물었다.그 말을 들은 남강훈은 지팡이를 짚은 채 반재언의 옆으로 와 마당의 꽃을 보며 입을 뗐다."반 도련님 모르는 척할 필요 없어요, 우리 남우 신분을 알게 된 거죠?"반재언은 그런 남강훈을 보며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전에 한태군이 저희 집에 머무르고 싶다고 했을 때, 거절하려고 했던 이유도 그놈이 우리 남우 신분을 알아차릴까 봐 그랬던 건데 그놈이 결국 알아냈습니다. 두 분이 오신다고 했을 때도 이 사실을 숨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남강훈이 진지하게 말했다.
"아버지, 제가 해결할게요."남우가 입을 닦으며 말하자 남강훈이 그녀를 불러세웠다."반 도련님이랑 같이 가."남강훈의 말을 들은 남우가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머지않아 상회 앞에 검은색의 차 몇 대가 멈춰 섰고 남우와 반재언이 내렸다. 남우는 수트를 정리하더니 반재언을 한 눈 바라봤다. 그녀는 남강훈이 왜 반재언까지 보낸 건지 알 수 없었다.상회 안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사람들이 한데 엉켜 싸우고 있었고 하시호는 소파 위에 앉아 여유롭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처음 맛보는 권력의 맛에 그는 천천히 정신을 잃고 있었다."다들 멈춰!"남우가 사람들을 데리고 상회로 들어서자 그제야 사람들이 멈췄고 혼란스러웠던 상황도 잠시 중지되었다."비싼 수트 입으니 그나마 봐줄 만 하네. 치지연이 웬일로 월급을 올려줬대?"남우가 하시호를 보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하시호가 멈칫하더니 음험한 눈빛으로 남우를 바라봤다."남 도련님, 블랙샷 사람이 여기에서 죽었으니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해 줘야 할 것 같은데.""맞습니다,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블랙샷 사람들이 하시호를 따라 화를 내며 말했다.반재언이 남우를 바라보자 남우가 의자 하나를 끌어내더니 그 위에 앉았다."사람이 여기에서 죽었다고 해서 제 사람이 죽였다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당신들이 죽인 게 아니면 누가 죽였겠습니까? 오늘 어떻게든 우리 형제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합니다!"블랙샷 사람 하나가 흥분해서 말했다."그럼 시체 데리고 와, 내가 한 번 볼게."하시호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 남자를 보며 말했다.그러자 누군가가 시체를 담은 검은 주머니를 들고 나왔다.남우가 등 뒤에 선 사람을 보자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체에게 다가갔지만, 시체를 보기도 전, 한 남자가 막아섰다."뭘 하시려는 겁니까?""당연히 시체 검사하려는 거지.""시체 검사? 자기가 법의인 줄 아나 봐. 지금 시체를 훼손하려고 하는 거지!"그 말을 들은 남우가 웃었다."무슨 일이든
"그럼 새벽이잖아, 어제 누가 당직이었지?"남우가 상회의 직원에게 물었다.그러자 직원들이 뒤에 서 있던 야윈 남자를 바라봤고 남자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도련님, 어제 제가 당직이었는데 저는, 싸우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그 말을 들은 블랙샷 사람이 소리쳤다."상회 사람들이 지금 은폐해 주고 있는 겁니다!""은폐? 블랙샷 사람들이 새벽에 우리 상회에 온 건 구역 침입에 속하는 거 아닌가? 우리 상회 사람들이 발견하고 싸움을 했다고 해도 그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우리 상회 사람들도 싸우는 걸 못 봤는데 갑자기 시체가 나타난 걸 보면 사람이 죽은 뒤에 우리 상회까지 온 건가?"남우가 일어서며 말하자 하시호가 화를 냈다."남우, 시체가 남 씨 상회에서 발견되었고 증거가 확실한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CCTV 돌려봐."남우가 말하자 직원이 모니터링 실로 갔다.하지만 하시호는 두려울 게 없다는 얼굴이었다.그리고 머지않아, 그 사람이 모니터링 실에서 나왔다."도련님, CCTV 영상이 모자란 곳이 있습니다."그 말을 들은 남우가 고민에 잠겼다.그러자 하시호가 웃었다."왜요, 영상이 없나 보죠. 상회 사람들 아주 못 돼먹었네요, 일은 벌여 놓고 누가 조사할까 봐 미리 동영상을 삭제했나 보네요."사라진 동영상 속에 무언가 찍힌 게 확실했다.그리고 상회 동영상을 건드릴 수 있는 이는 상회 내부 사람밖에 없었다.동영상이 사라졌으니 시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블랙샷이 이 점을 물고 있는 걸로 보아 그들이 준비하고 온 게 틀림없었다. 남우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남씨 상회의 결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확신했던 것이다.그때, 반재언이 상회의 직원을 보며 물었다."어제 싸우는 소리 못 들은 거 확실해요?"반재언의 말을 들은 직원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혼자 당직을 섰던 겁니까?""저 말고 보안 요원 3명도 있습니다."직원이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남우는 즉시 해당 보안 요원 3명을 데
"도련님, 저희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세 명의 보안 요원과 직원이 끌려가면서 소리쳤지만, 남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시호를 바라봤다."진실을 원한다고 했지, 우리 상회에서 사실을 은폐해 주고 있다고? 걱정하지 마. 내가 저 사람들 끝까지 심문해 낼 테니까.""도련님이 뒤에서 무슨 짓을 할지 저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하시호가 이를 물고 말했다."내가 무슨 수작질을 부린다는 거야, 내가 꿈에서 저 사람들에게 블랙샷 사람을 죽이라고 했을까 봐? 너희가 나더러 범인을 찾아내라고 한 거잖아. 그쪽에 붙어먹었다고 해서 우리 가문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정말 나를 화나게 했다가는 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몇 명 더 죽일 수도 있어. 여기에서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남 씨 상회는 이름에 조금 영향을 받겠지만 블랙샷은 아니잖아.""그게 무슨 뜻이에요?"하시호가 멈칫하더니 물었다.그러자 남우가 하시호에게 다가가 그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치 영감 죽인 거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내가 이 비밀을 말해버리면 블랙샷 사람들이랑 치지연이 네 말을 들을 것 같아?"하시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창백했다.치 영감의 일을 남우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사실 치 영감의 시체를 찾지 못해 하시호는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 그는 현장으로 가봤지만 벼랑으로 떨어져 타버린 차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하시호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했기에 그 누구도 알아차렸을 리가 없었다.그리고 그가 그날 치 영감을 속여 밖으로 불러냈다.차 안에는 그와 치 영감 둘 밖에 없었고 그가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벼랑 앞에 차를 세운 뒤, 치 영감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준비해 뒀던 약으로 치 영감을 쓰러지게 한 뒤, 사람을 트렁크에 넣었다.그리고 차를 벼랑 아래로 밀어 사고 현장을 만들어 냈다.시체를 찾지 못한 이유로 그는 잠도 잘 자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일을 남 씨 집안 잘못으로 돌리고 블랙샷 사람들과 치지연으로 하여금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