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는 그들에게 치지연이 노발대발했다.“처리 하지 않고 뭐 하는 거야!”경호원들은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곧 큰 몸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 주위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뒷걸음질쳤다.몇 명이 남우에게 덤볐다. 남우는 피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주었다. 양쪽에서 들어온 동시 공격에 그녀는 잽싸게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백 텀블링을 하며 뒤쪽의 기습을 제압했다. 그러자 그녀의 몸 뒤에서 또 한 명이 덮쳤다. 쓰러진 남자의 몸을 방패로 충격을 피하고 잽싸게 남자의 목을 비틀었다.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단번에 7~8명을 때려눕혔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치지연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시선에 잡힌 과일칼을 들고 남우에게 덤비기 시작했다.“죽어!”남우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그때 채찍이 날아와 그녀의 손에 들린 흉기를 떨어뜨렸다.치지연은 고통스러워하며 손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등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채찍을 손에 든 강유이가 유유히 걸어 나오자 치지연이 뒷걸음질쳤다.갑작스러운 공격에 충격받은 치지연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배은망덕하게 다른 주인을 따라갔으면 잠자코 있어야지 무슨 낯으로 남씨 가문의 영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 그런 너에게 채찍은 너무 약해.”그녀는 강유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채찍에 맞은 곳이 쓰라렸다. 마치 살이 찍기는 고통이었다.이를 악문 그녀는 불을 뿜으며 발악했다.“배신이 뭐가 어때서? 남씨 가문이 우리 아버지를 죽인 거잖아!”남우가 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너의 죄를 고백하는 거야?”그녀는 치지연에 다가가 몸을 내리며 턱을 치켜들었다.“치영강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우리 남씨 가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한번 착한 너의 부하 하시호에게 확인해 봐.”치지연은 고통스럽게 신음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남우의 시선이 좀 더 날카롭게 변했다.“백제파를 시켜 나를 처리하려 했지? 여기서 밀린 장부까지 끝장 봐?”급히 그
남우가 코를 찡긋거렸다. 그녀가 원했던 바이다.저녁, 서남 일대의 어느 유흥업소.남우가 부하들을 거느리고 쳐들어갔다. 그들은 부득불 가게 문을 닫아야 했고 그 소문이 재빨리 푸조의 귀에 들어갔다.별장은 불이 켜져 있었다.샤워가운을 입은 푸조가 느긋하게 야식을 즐기고 있었다.그의 옆에 있던 부하가 다급해하며 말했다.“간덩이가 붓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 영역을 침범하고 우리 사람까지 다치게 해요?”수저를 내려놓은 그가 냅킨으로 조심스럽게 입가를 닦았다.별장에 들어선 운소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푸조가 입안에 있던 생선 뼈를 신경질적으로 뱉으며 말했다.“치지연에 계속 이렇게 사고 치고 다니면 봐 주지 않겠다고 경고해.”...무관에서 훈련 중이던 강유이는 남우가 푸조의 유흥업소를 박살 냈다는 소문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약이 바짝 올랐겠는데요?”남우가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치지연이 더 약이 올랐죠.”푸조에게 망명간지도 얼마 안 되어 남씨 가문에 와서 말썽을 부리는 그녀를 가만 둘리 없었다. 그녀는 물불 가릴 게 없는 상황이긴 해도 푸조는 사리에 밝은 사람이다.이익을 중요시하고 야망이 있는 사람은 될수록 적을 만들어선 안 된다.이런 시기에 남씨가문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면 두 가문 모두 상당한 손해를 보게 된다.남씨 가문에는 아무 피해가 없을지 몰라도 스카이섬을 독식하려는 푸조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갑자기 강유이가 누군가를 불렀다.“오빠가 어쩐 일이야?”남우도 고개를 돌렸다.“한가하시네요.”반재언이 다가와 남우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는 도련님도 한가하네요.”그늘에 앉아 차를 마시며 훈련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꽤 지루한 일이었다.남우가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내 부하들의 견식을 넓힐 수 있게, 혹시 훈련하고 싶으신 건 아닌지요?”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강유이가 손에 땀을 쥐었다.반재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가 도련님과 한번 붙어보고 싶다면요?”훈련하던 이들이 이
“맞아요, 보기에는 왜소하고 여자처럼 생겼어도 얼마나 모진데요.”당했던 남자들은 그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혀를 내둘렀다.강유이는 오빠가 걱정되기 시작했다.하지만 그저 남우가 좀 봐주기만 속으로 바랄 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두 사람의 일대일 대결이 링 위에서 시작 되었다.남우는 빨리 끝내기 위해 처음부터 강하게 밀어붙였다. 공격을 피해 몸을 낮춘 반재언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자 남우가 몸을 비틀며 그의 팔을 잡고 그대로 힘을 실었다.반재언은 넘어지며 손바닥으로 땅을 짚어서 이내 다시 중심을 잡았다.그녀는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공격했다. 그녀의 손과 발이 너무 빠르고 강해서 반재언은 방어만 할 뿐이었다.보는 이들조차 긴장하게 했다.그녀의 공격을 피하긴 했지만, 그는 내내 피동에 처하고 있었다.남우가 냉소를 지었다.“잘 버티네요.”반재언은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뒤로 거듭 밀려나는 그에게 더는 후퇴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남우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덩달아 강유이의 심장도 오그라들었다.그때 잽싸게 옆으로 피한 반재언이 그녀의 다리를 잡았다. 몸이 기울어 급히 바닥을 잡고 지탱한 남우는 이런 기술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그를 본받아 두 다리로 목을 조이며 쓰러뜨렸다. 반재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팔을 움켜쥐며 그녀를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그녀가 힘을 쓸수록 팔에 심한 통증이 가해졌다.아래에서 관람하던 사람들은 약간 혼란스러워했다.겨루기에서 가장 피해야 하는 상황이 얽매이는 것이었다.한번 얽매이면 빠져나오기 힘들어 패배하게 된다.겨루기에서는 더더욱 그랬다.뭔가를 의식한 남우가 경직된 채. 가쁜 숨을 토해냈다.“놔요.”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먼저 놓으시죠?”그녀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그럼, 동시에 놔요.”반재언이 힘을 풀자, 남우도 그를 놓아주었다.몸을 일으킨 그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주려는 것 같았다.“비긴 거로 하죠.”그의 손을 쳐 낸 남우는 말이
"반재언 그놈 운이 좋았어."남우가 이를 물고 말했다.방으로 돌아간 남우는 얼른 샤워하곤 피가 묻은 바지를 세탁기 안에 던져넣었다.머지않아 시월이가 방으로 들어왔다."도련님, 생리예요?"하인들은 절대 남우의 옷과 방을 정리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남우의 방은 드나들 수 없는 금지의 구역이었다.그랬기에 남우의 방과 옷을 정리하는 이는 집사와 시월이의 몫이 되었다.생리대도 시월이가 몰래 그녀에게 가져다줘야 했다."옷 세탁기 좀 돌려줘,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남우가 침대 위에 누워 핫팩을 배에 대고 말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시월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세탁기를 돌리러 갔다.침대 위에 누운 남우는 생각할수록 억울했다.반재언의 말도 안 되는 수작질에 걸려든 것이 자신의 소홀함 때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한편 남우의 옷을 씻으려던 시월이가 인기척을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누굽니까?"그러자 반재언이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시월 씨 예민하시네요."시월이는 무의식적으로 티가 나지 않게 피가 묻은 남우의 바지를 가렸다."도련님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세탁기 돌리러 왔죠."반재언이 손에 들려있던 외투를 세탁기에 집어넣으며 말했다."저한테 맡겨주시면 됩니다."시월이는 여전히 경계심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여기는 남 도련님 옷이에요?"반재언이 세탁기 안을 힐끔 보더니 물었다."네.""남 도련님 옷은 하인들이 정리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굳이 시월 씨한테 이런 걸 시키는 거죠?"반재언의 물음에 시월이는 얼어버리고 말았다.그녀도 반재언이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시 그는 이런 사소한 점도 놓치지 않았다.남 씨 집안의 하인들도 의아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저 남우가 다른 이가 자신의 물건을 건드리는 것을 싫어할 뿐이라고 생각했다."도련님께서 다른 분이 자기 물건을 건드리는 걸 싫어해서요."시월이도 결국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하인들까지
"유이 너 일부러 그랬지?"반재언이 갑자기 돌아보더니 강유이에게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강유이가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내가 머 알아낼까 봐 무서워?""아니, 오빠 머 조사하려고?"강유이가 고개를 저으며 계속 넘어가려 애썼다.반재언은 연기를 하는 강유이를 보며 웃었다. 그녀의 연기는 꽤 괜찮았으나 그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유이야, 내가 너 엄청나게 아끼는 거 알지?""당연하지, 오빠가 나한테 제일 잘 해주잖아."강유이가 반재언 옆으로 가더니 팔짱을 꼈다.그 말을 들은 반재언도 따라 웃었다."그럼 나 속이는 거 잘못했다는 생각 안 해?"그 말을 들은 강유이는 할 말을 잃었다.반재언이 정말 무언가를 알아차린 걸까?"유이가 오빠를 이렇게 못 믿을 줄 몰랐네, 한태군 편들어주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다른 사람 편까지 들어주고. 나 너무 속상해."반재언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그는 은연중에 강유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오빠, 그 말은 좀 심하지."강유이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러면서도 말은 안 하네.""내가 오빠를 속이려는 게 아니라…"사실을 털어놓으려던 강유이는 반재언이 눈썹을 들썩이는 모습을 본 순간,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오빠, 지금 나 떠보는 거야?""바보는 아니네."강유이는 웃음을 터뜨리는 반재언을 보며 그가 무언가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도 이제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쉽게 사실을 털어놓을 리 없었다."네가 말 안 해도 나 알아볼 수 있어."반재언이 고개를 숙이곤 울적해 있는 강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런데 나를 떠봤던 거야?""다음에 다른 사람이 너 떠보면 안 넘어가게 하려고 연습시켜 준 거지."반재언의 말을 들은 강유이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그 후, 강유이는 남우에게 반재언이 그녀의 신분을 알아봤을 수 있다는 것을 감히 말하지 못했다.스카이섬으로 온 지도 반 달이 지나 강유이는 채찍을 더욱 익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그때, 주계진이 강유이에게
하시호는 치지연의 뒤에 서서 그녀가 화를 내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아프긴 했지만, 그도 치지연이 너무 급하게 굴고 있다고 생각했다."아가씨, 푸조 씨 뜻은 아직 때가 아니니 침착하게 기다리라고 한 걸 겁니다.""아직 때가 아니면 도대체 언제 그때가 오는 건데!"치지연이 하시호의 옷깃을 잡았다."네가 말했잖아, 내가 아버지 자리만 물려받게 되면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그런데 내가 푸조한테 의탁했는데도 푸조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남우는 몇 번이고 내 머리 위에 올라타서 무시하고 쓰레기 같은 너희는 도움조차 주지 못하고 계속 나한테 참으라고 했잖아!"화가 나서 소리치는 치지연의 말을 들으며 하시호가 주먹을 쥐었다."쯧쯧, 지연 씨 화가 많으시네."그때 데이비 렌지가 사람들을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섰다."당신이 뭔데, 이건 우리 집안일이니 바깥사람이 끼어들 필요 없습니다."치지연의 말을 들은 데이비 렌지가 웃었다."그렇게 급하게 구니 큰일을 못 하죠, 그래서 남씨 가문 도련님이 치지연 씨를 안중에도 두지 않은 겁니다. 치지연 씨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날뛰고 있었으니.""지금 나를 비웃는 겁니까?"치지연이 화가 나서 물었다."하시호, 서서 뭐 해? 저 사람 당장 끌어내지 않고!"하지만 하시호는 치지연의 말을 듣고도 가만히 서 있었다.데이지 렌지가 여유롭게 소파에 앉으며 다시 입을 뗐다."저는 치지연 씨가 가주가 되어서 블랙샷이 불쌍해요, 이렇게 생각도 없고 자기 뜻대로 행동할 줄밖에 모르는 여자가 정말 블랙샷을 이끌 수 있겠어요?""그게 무슨 뜻이야?!"데이비 렌지가 화가 난 치지연을 보다 다시 하시호에게 말했다."블랙샷을 살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시호 씨. 당신만 원한다면 블랙샷을 당신한테 맡겨서 관리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치지연이 놀라 하시호를 쏘아봤다."네가 감히? 하시호, 너 블랙샷이 키운 개일 뿐이야 그런데 감히 주인 머리 위에 올라타겠다고?"치지연의 말을 들은
그 말을 들은 치 영감이 자조적으로 웃었다."제가 호랑이 새끼를 키워서 결국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네요.""치지연이 블랙샷을 물려받은 뒤, 푸조에게 의탁했어."이어지는 남강훈의 말에 치 영감이 멈칫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물었다."저를 원망하지 않으십니까?""내 자네 아버지와 친구 아닌가, 자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네랑 블랙샷을 나에게 맡겼고 나도 그러겠다고 약속했지. 자네가 푸조를 따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자네 아버지 대신 실망했지."치 영감은 남강훈의 말을 들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남강훈의 눈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남씨 가문은 블랙샷에게 모든 것을 내어줬지만 치 영감이 현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푸조의 유혹에 넘어가 남씨 가문을 배신할지 고민했던 것이었다.하지만 결국 그를 해친 이는 그의 사람이었고 그를 살린 이는 자신이 적으로 여겼던 사람이었다."하지만 당장 배신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으니 남씨 가문과 끝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 아닌가. 나도 자네의 멍청한 선택을 탓하지 않을 테니 몸 추스르게.""그럼 지연이는…"치 영감이 말을 하다 멈췄다.남강훈은 그 말을 듣더니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지연이도 똑똑하다면 마지막까지 가지는 않겠지, 이게 다 자네가 지연이를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워서 그래."…무장에서 돌아온 강유이는 남우가 키우고 있는 도마뱀에게 고깃덩이를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죄책감을 느꼈다."도마뱀 꽤 귀엽네요.""그럼 한 번 만져볼래요?"남우가 웃으며 묻자 강유이가 거절했다."그건 필요 없을 것 같아요.""왜요, 무슨 할 말 있어요?"남우가 고깃덩이를 박스 안으로 넣으며 물었다."제 동영상 봤죠? 남우 씨한테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겠죠?"강유이가 어색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그것 때문에 그래요? 동영상도 이미 사라졌는데 저한테 무슨 일이 있겠어요?"강유이는 반재언이 자신을 떠본 사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을 털어놓는다면 맞을 것 같
"그걸로 비밀 하나 사는 거, 밑지는 장사는 안될 것 같은데요."남우가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이건 남의 돈을 편취하는 겁니다.""반 도련님, 이건 돈을 편취하는 게 아니라 기껏해야 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우가 반재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말했다.반재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남우를 바라봤다. 그녀를 동물에 비긴다면 여우라고 하는 것이 제일 적당할 것 같았다. 그녀는 충분히 교활하고 똑똑했다.그녀는 남자의 책임감과 특유의 수단과 계략을 가지고 있었다.수십 년 동안 신분을 숨기면서 사람들의 탄복과 경외심을 받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었다."뭘 하는 거야?"남강훈은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반재언의 어깨에 손을 걸친 남우를 보게 되었다.두 사람의 거리는 무척 가까웠지만 남강훈이 보기에 자신의 ‘아들’이 마치 반재언을 놀리고 있는 것 같았다."그냥 얘기 좀 나누고 있었어요."남우가 반재언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나는 또 네가 반 도련님을 두고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지."그 말을 들은 반재언이 웃었다."회장님, 저희 그냥 얘기 좀 나누고 있었어요.""이놈 대신해서 얘기할 필요 없어요, 맨날 맞을 일만 찾아서 하는 놈이라."남강훈이 말을 하며 남우를 방으로 쫓았다.남우는 그런 남강훈을 보다 여유롭게 방으로 들어갔다."회장님, 무슨 걱정이라도 하고 계신 겁니까?"반재언이 남강훈의 뜻을 알아차리고 물었다.그 말을 들은 남강훈은 지팡이를 짚은 채 반재언의 옆으로 와 마당의 꽃을 보며 입을 뗐다."반 도련님 모르는 척할 필요 없어요, 우리 남우 신분을 알게 된 거죠?"반재언은 그런 남강훈을 보며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전에 한태군이 저희 집에 머무르고 싶다고 했을 때, 거절하려고 했던 이유도 그놈이 우리 남우 신분을 알아차릴까 봐 그랬던 건데 그놈이 결국 알아냈습니다. 두 분이 오신다고 했을 때도 이 사실을 숨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남강훈이 진지하게 말했다.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