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이 이마를 짚었다.“너의 신분부터 이미 많은 주목을 받고 있어.”미모뿐만이 아니었다. 여우주연상에 반씨 가문의 아가씨란 신분은 기사를 접한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었다.강유이가 활짝 웃으며 대꾸했다.“그럼 다른 사람으로 분장하고 연기하면 되죠.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나인데 역할 놀이는 껌이죠.”강유이의 끈질김에 반지훈은 하는 수 없이 백기를 들었다.다음날, 지윤과 반재언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스카이섬은 비행기로는 직행이 어려웠다. 가까운 나라의 연해 도시에 도착해 배를 타고 가야 했다.여객선이 항구에 정박해 있다. 지윤이 여객선에서 내려 차에 기대선 반재언을 보고 말했다.“15분 후면 곧 출발할 거예요.”반재언이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하지 벌써 10시였다.그때 트렁크를 끌고 다가오던 강유이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오빠, 지윤 아줌마.”고개를 돌리던 지윤은 당황했다.“아가씨?”그녀를 본 반재언이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유행이 지난 헤어스타일에 껄렁한 옷차림은 영락없는 불량소녀였다. 특히 그녀의 진한 아이라인은 누구한테 맞은 것 같았다.목소리가 아니었더라면 자신 동생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아가씨, 이 옷차림은...”지윤은 그녀의 이런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강유이가 그들에게 다가서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어때 내 솜씨? 이 정도면 못 알아보겠지?”반재언은 그저 그녀에게서 트렁크를 건네받았다.“그만 가자.”강유이는 지윤의 팔짱을 끼며 반재언의 뒤를 따랐다.반재언은 2개의 일등 선실로 예매했다. 강유이와 지윤이 한방을 쓰고 반재언이 바로 옆방을 썼다. 휴식할 수 있는 침대와 음식, 커피 각종 디저트도 있었다.강유이가 몸을 일으켜 창밖을 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하늘이 맞닿아 있다. 바다는 유리구슬처럼 반짝반짝 빛났다.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닷냄새가 났다. 그리고 상공에는 갈매기들이 때때로 내려와 먹이를 잡고 있었다.그녀가 고개를 돌렸다.“아줌마, 언제면 스카이섬에 도착해요?”지윤이 침구를
그가 한태군을 바라보았다.“당분간 태군 씨에게 삼활구의 실권을 맡길 생각이에요.”한태군이 깜짝 놀랐다.“삼활구는 블랙샷이 관리하는 곳 아니에요?”그는 다시 찻잔을 들었다.“숨기진 않을게요. 블랙샷은 변심했고 그런 그를 까발리지 않은 것은 옛정 때문이에요. 하지만 은혜를 모르고 있으니 밟아줘야겠어요.”한태군이 웃었다.“저를 믿으시나요?”남강훈이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태군 씨가 데이비 렌지를 처리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아요. 그러려면 먼저 블랙샷부터 제쳐야 해요. 블랙샷은 푸조의 사람과 암암리에 내통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서지 않은 것은 푸조도 블랙샷에 사람을 심어서 내가 나서서 블랙샷을 처리하려 한다면 푸조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주는 꼴이 되죠. 그러면 그것을 빌미로 블랙샷을 이용해 나에게 반격하겠죠.”한태군이 말했다.“하지만 제가 나서도 회장님의 뜻이란 걸 알 테고 의심할 것 같은데요?”“그건 걱정하지 마요. 태군 씨는 강한 사람이고 남우의 손님이죠. 신분과 배경은 내가 이미 잘 만들어 놨어요. 태군 씨가 삼활구를 맡은 것이 내 뜻인지 아니면 남우의 뜻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섣불리 어쩌지 못할 거예요.”남강훈은 서두르지 않았다.“잘 해결하면 푸조도 태군 씨를 의식할 거예요.”한태군은 남강훈의 뜻을 이해했다. 스카이섬에서 데이비 렌지를 처리하려면 먼저 블랙샷을 흔들어야 했다. 그도 블랙샷에 대해 조사해 보았었다. 남강훈의 도움으로 스카이섬에서 꽤 잘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마련이다. 블랙샷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익에 눈멀어 남강훈의 은혜를 잊은 지 오래다.더 이상 누군가의 그늘 밑에서 살고 싶지 않아 푸조의 사람과 왕래하기 시작했다. 비위를 맞추며 아양을 떠는 블랙샷의 본심을 꿰뚫었던 푸조는 역이용하여 그의 신변에 사람을 붙였다.그는 남강훈이 정 때문에 블랫샷에게 모질게 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이 거래는 그의 손을 빌어 블랫샷속에 있는 푸조의 사람들을 처리 하려는 것이었다.
강유이가 이마를 짚었다.“태군 오빠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반재언이 그녀를 대신해 반찬을 집어주며 웃었다.“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면 아마 남씨 가문의 구역에 있을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그녀가 포크를 들고 막 케이크를 먹으려는데 일 층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모았다.무사 복장에 건장한 이 남자는 일본 쪽의 사람인 것 같았다. 그의 모습은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그는 밥상을 두드리며 종업원과 지배인을 삿대질하며 말했다.“우리 아가씨가 오늘 여기를 통째로 빌렸으니 다른 사람들은 당장 내쫓아.”지배인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억지로 그에게 다가갔다.“공간을 빌리려 한다면 적어도 하루 전에는 미리 예약하셔야 해요. 지금은 손님들도 있고 하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남자는 지배인의 멱살을 잡았다.“시끄럽고, 여기는 스카이섬이야. 여기서 장사를 하려거든 블랙샷에 대해 알았어야지. 감히 우리 아가씨를 능멸하려고 해? 여기를 부숴버릴까?”지배인은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점원 대부분과 가게, 외지 상인들은 모두 남씨 가문과 합작하여 장사하는 것이다. 말썽을 피우는 사람이 없으면 안심하고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말썽을 부려도 감히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로비의 일부 손님들도 감히 어쩌지 못하고 부랴부랴 식사를 마치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심기가 불편했지만, 재수 없다고 여기면서 화를 삵이기만 할 뿐이지 나서지 못했다.종업원이 2층으로 올라와 반재언과 강유이의 자리로 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죄송해요. 손님. 오늘은 이만 돌아가셔야 할 것 같아요. 돈은 받지 않을게요.”강유이가 반재언을 바라봤다.반재언이 눈짓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물었다.“저들은 무슨 사람들이죠?”종업원이 그를 아래위로 훑더니 외부인이라는 것을 보아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블랙샷 아가씨의 사람들이에요. 그녀는 블랙샷 보스의 딸이죠. 악명이 높기로 소문이 자자하지만, 회장님을 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죠. 오늘은 그녀가
남자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너...”“내가 소란 피우지 말라고 했잖아.”그때 여린 몸매의 한 여자가 걸어 들어오며 남자의 말을 끊었다. 남자는 한쪽으로 물러났다.“아가씨.”치지연이 고개를 들어 반재언과 시선을 맞췄다.그녀의 시선이 미세하게 떨렸다. 스카이섬에서 그녀는 이토록 듬직한 체격에 잘생긴 남자를 본 적 없었다. 전에 남씨 가문의 남우가 그중에서 제일 출중하다고 생각했었다.곱상하게 생긴 얼굴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가리기 힘들 정도였다. 자태도 너무 요염해서 마치 여우 같아 섬의 여자들이 그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했다.단지 남우 그 녀석은 너무 차가워서 속내를 좀처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녀와 만나기만 하면 싸우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버지에게 부탁해 회장님과 그들의 혼사를 추진해달라고 조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남우는 중요하지 않았다.눈앞의 이 남자는 남우보다 더 매력이 넘쳤다.치지연은 입술을 만지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가지 않으시겠다면 제가 한번 봐 드리죠. 그리고 잘생겼으니 아가씨와 함께 식사할 기회를 드릴게요.”그러자 강유이가 반재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네까짓 게 우리 오빠랑 식사하겠다고?”치지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못생긴 년이 말을 하네? 난 내가 선택한 남자를 얻지 못한 적이 없다고.”“아줌마, 밖에 나올 때 거울도 안 보시나 봐요?”강유이가 비웃었다.“나이도 많으면서 어딜 감히 침을 흘려?”치지연은 끽해야 26, 27살 정도인데 늙었다며 비웃음당했다. 마치 그녀의 정곡을 찌른 것 같았다. 누군가 그녀에게 그렇게 모욕한 적 있는 것 같기도 했다.그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좋게 말하니 안 되네? 빨리 올라가 저 못생긴 년을 잡아! 그리고 옷을 다 벗겨버려!”반재언이 강유이를 자신을 뒤로 숨겼다. 그의 표정도 매섭게 변했다.그들을 상대하기엔 반재신 혼자서도 거뜬했다.그들이 우르르 2층으로 향했다. 그때 어디선가 돌
반재언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걱정하지 마.”그의 시선이 마침 마주 보고 있는 남우와 마주쳤다. 그는 몸을 돌리며 옆에선 사람에게 뭐라 하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강유이가 반재언의 손을 잡고 말했다.“오빠, 우리도 다 먹었으니 이만 호텔로 돌아가자.”반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떠나려는데 검은 옷차림의 여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잠시만요. 저희 도련님께서 두 분을 뵙고 싶어 하세요.”강유이는 조금 긴장되었다. 처음 보았고 무슨 목적인지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반재언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토닥였다.“괜찮아.”반재언과 강유이는 그 여자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여자가 남우에게 다가가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도련님.”남우는 바둑판 앞에 앉아 한 손에 바둑알을 들고 그들을 관찰했다.“외부인?”강유이가 말하려는데 반재언이 선수 쳤다.“그래요. 여기에 온 목적은 작은 장사라도 할까 싶어서예요.”“그렇더라니.”남우가 바둑을 두며 자세를 바꿨다.“오자마자 치지연을 건드렸으니 장사하기엔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 같네요.”강유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분명히 그년이 먼저 괴롭혔잖아요. 회장님의 구역에서 막무가내로 행패를 부리는데 왜 그냥 보고만 있는 거죠?”반재언이 낮은 소리로 그녀를 말렸다.“유이야.”그제야 강유이는 가만히 있었다.오만하게 구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앞뒤 두서없이 막무가내로 날뛰는 년은 또 처음이었다. 이런 상황이면 누구나 격분했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오빠에게 침까지 흘리고 있다. 어림도 없다!남우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강유이를 바라보다 웃었다.“아가씨 말이 맞아요. 우리 남씨 가문이 미쳐 날뛰는 개 한 마리를 단손 못해 피해를 입혔으니 우리한테도 절반의 책임은 있어요.”강유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렇게 곱상하게 생긴 남자가 성격도 좋다고?그녀는 블랙샷이 이렇게 판을 치고 다니는 것은 남씨 가문이 어느 정도 묵인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만행을 허락한 적 없는데 왜
강유이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남씨 가문의 도련님이었네? 너무 어린 거 아니야?’그는 왠지 나이가 많을 것 같았다. 적어도 30대 40대는 되는 줄 알았다.남우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두 분 용기가 대단한 것 같아요. 여기에 오자마자 블랙샷을 건드렸으니, 당신들도 간단하지 않아 보여요.”그는 반재언의 옷차림을 자세하게 훑었다.“여기 섬 대부분 상인들은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걸치는 것과 착용하는 것들을 모두 명품으로 치장하죠. 돈 많은 상인일수록 더 인기가 높죠. 제 발로 찾아오는 거래처에 고급스러움까지 갖췄으니 말이죠.”“하지만 당신은 명품 하나 걸치지 않았어요. 원단을 보니 대부분이 제작이고 쉽게 접할 수 없는 디자인들이에요. 자사가 있거나 전문 제작이죠.”반재언이 눈을 가늘게 떴다.“역시 눈썰미가 좋으시네요.”그의 사복, 정장은 모두 제작한 것이고 이 제작사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회사였고 S나라에만 한정 수량을 풀기 때문에 귀빈들도 최소 1달 전에 예약해야 했다.그의 모든 옷은 세상에 오직 한 벌밖에 없는 것들이다.명품에만 국한된 안목은 진정한 재벌들이 명품 가방에 흥미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몇십억의 카르띠에 시계나 화려한 명품보다 평범함을 더 추구했다.그들 몸에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것들은 희소한 브랜드였고 대부분이 자체 제작에 명품보다 훨씬 비쌌다.남우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그러니 내가 손을 쓰지 않아도 당신이 손을 썼겠죠. 하지만 남씨 가문의 사람으로서 자기 집에 불을 지르게 놔둘 수 없잖아요?”반재언이 미소를 지었다.“동남아의 군주라는 아버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아드님도 이렇게 훌륭하신 줄은 몰랐네요.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으실 멋있는 분이세요.”“과찬이에요.”남우가 몸을 일으키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반재언이 키가 더 크긴 했지만, 아우라는 남우도 뒤지지 않았다.“제가 부하더러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라고 할게요. 그럼 두 분 안전하게 돌아가세요.”“고마워요.”반
그녀를 보는 남우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그제야 그녀도 입을 다물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우가 집에 들어서자, 집사가 도우미에게 뭔가를 지시하다가 그가 돌아온 것을 보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돌아오셨어요?”남우가 물었다.“아버지는요?”집사가 대답했다.“회장님은 서재에서 손님과 얘기 중이세요.”“또 손님이 오셨나요?”남우가 눈썹을 치켜뜨고는 덧붙였다.“요즘 손님이 끊이질 않네요.”“이 손님들은 M나라 메트로폴리탄에서 오신 분들이세요. 우리와 손잡으려고 온 것 같아요.”M나라의 메트로폴리탄은 남우도 들어본 적 있었다.북미의 세력으로 그들의 전 보스는 의학계에서 명성이 자자했지만, 은퇴를 했다. 그가 바로 황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헨리였다.메트로폴리탄이 스카이섬의 남씨 가문과 손잡으려 한다는 것은 유럽 쪽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남강훈과 지윤은 서재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 거실로 내려왔다. 남우는 차분하게 남강훈을 불렀다.“아버지.”“메트로폴리탄의 지윤.”“이쪽은 내 아들, 우남이야.”지윤이 가벼운 목 인사를 하며 미소 지었다.“처음 뵙겠습니다.”남우도 미소로 화답했다.짧은 대화를 끝으로 지윤이 작별 인사를 했다. 남우는 집사더러 배웅하라 하고 그들의 뒷모습을 한창 바라봤다.“메트로폴리탄이 갑자기 손잡으려고 하는 데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남강훈은 소파에 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외부에 돌아다니는 소문이 진짜인가 보구나. 내부가 분열되고 있는 것 같다.”남우가 턱에 손을 괴고 사색에 잠겼다.“몇 달 나가 있으면서 보니 백제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어요. 푸조도 같이 춤추게 되겠죠.”푸조는 야망이 컸다. 혼자만 커지려 하면서 백제파마저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그러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북미로 접근해 메트로폴리탄도에도 침을 흘릴 것이다.남강훈이 찻잔을 만지며 물었다.“너는 어떻게 생각해?”남우가 그의 곁으로 가 앉으며 입을 열었다.“푸조가 무섭게 세력을 넓히고 있으니 언젠가는 스
"네, 알아요. 이모 귀찮게 하는 일 없을 거예요. 이모는 한태군 소식 알아낸 거 있으세요?"강유이의 물음에 지윤이 고개를 저었다."한태군 스카이섬에 있으니 본명을 쓰지 않을 거야. 데이비 렌지도 거기에 있으니 분명 다른 이름이나 신분을 사용하고 있을 거야."다른 신분을 사용했다면 조사해 내기 더욱 어려웠다.강유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편, 삼활구."그게 말이 돼? 그 늙은이가 바깥사람한테 삼활구를 인수하게 했다고?"영감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안색이 어두워졌다.삼활구는 블랙샷의 구역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남강훈은 삼활구의 관리를 블랙샷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남 씨 집안사람도 아닌 바깥사람에게 관리를 넘겨줬다니.남강훈이 무언가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아버지."그때 치지연이 갑자기 서재로 들어섰다. 그 모습을 본 영감은 손짓을 하며 사람을 내보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바쁜 거 안 보여?"하지만 치지연은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남우 그 자식이 돌아왔어요."영감은 그 말을 듣고도 차를 마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우가 돌아온 사실은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마침 삼활구를 인수한 그 사람을 데리고 온 자가 바로 남우라는 것도 알아냈다.남우는 영감의 딸보다 몇 살 어렸지만 어쨌든 남씨 가문의 후계자였다. 그리고 옆에 여자도 두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외부인에게 삼활구를 인수하게 한 걸 보면 남 씨 집안에서도 경계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지연아, 아버지가 생각해 봤는데 남씨 가문 도련님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다 되었잖니."영감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아버지는 네가 남우랑 결혼했으면 좋겠는데."영감이 치지연의 눈을 보며 말했다.치지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흥분해서 말을 늘어놓았다."저한테 남우랑 결혼하라고요? 그놈이 저한테 어떻게 대했는지 아버지는 몰라서 그래요. 항상 저를 난감하게 하면서 체면도 봐주지 않고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