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보는 남우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그제야 그녀도 입을 다물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우가 집에 들어서자, 집사가 도우미에게 뭔가를 지시하다가 그가 돌아온 것을 보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돌아오셨어요?”남우가 물었다.“아버지는요?”집사가 대답했다.“회장님은 서재에서 손님과 얘기 중이세요.”“또 손님이 오셨나요?”남우가 눈썹을 치켜뜨고는 덧붙였다.“요즘 손님이 끊이질 않네요.”“이 손님들은 M나라 메트로폴리탄에서 오신 분들이세요. 우리와 손잡으려고 온 것 같아요.”M나라의 메트로폴리탄은 남우도 들어본 적 있었다.북미의 세력으로 그들의 전 보스는 의학계에서 명성이 자자했지만, 은퇴를 했다. 그가 바로 황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헨리였다.메트로폴리탄이 스카이섬의 남씨 가문과 손잡으려 한다는 것은 유럽 쪽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남강훈과 지윤은 서재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 거실로 내려왔다. 남우는 차분하게 남강훈을 불렀다.“아버지.”“메트로폴리탄의 지윤.”“이쪽은 내 아들, 우남이야.”지윤이 가벼운 목 인사를 하며 미소 지었다.“처음 뵙겠습니다.”남우도 미소로 화답했다.짧은 대화를 끝으로 지윤이 작별 인사를 했다. 남우는 집사더러 배웅하라 하고 그들의 뒷모습을 한창 바라봤다.“메트로폴리탄이 갑자기 손잡으려고 하는 데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남강훈은 소파에 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외부에 돌아다니는 소문이 진짜인가 보구나. 내부가 분열되고 있는 것 같다.”남우가 턱에 손을 괴고 사색에 잠겼다.“몇 달 나가 있으면서 보니 백제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어요. 푸조도 같이 춤추게 되겠죠.”푸조는 야망이 컸다. 혼자만 커지려 하면서 백제파마저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그러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북미로 접근해 메트로폴리탄도에도 침을 흘릴 것이다.남강훈이 찻잔을 만지며 물었다.“너는 어떻게 생각해?”남우가 그의 곁으로 가 앉으며 입을 열었다.“푸조가 무섭게 세력을 넓히고 있으니 언젠가는 스
"네, 알아요. 이모 귀찮게 하는 일 없을 거예요. 이모는 한태군 소식 알아낸 거 있으세요?"강유이의 물음에 지윤이 고개를 저었다."한태군 스카이섬에 있으니 본명을 쓰지 않을 거야. 데이비 렌지도 거기에 있으니 분명 다른 이름이나 신분을 사용하고 있을 거야."다른 신분을 사용했다면 조사해 내기 더욱 어려웠다.강유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편, 삼활구."그게 말이 돼? 그 늙은이가 바깥사람한테 삼활구를 인수하게 했다고?"영감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안색이 어두워졌다.삼활구는 블랙샷의 구역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남강훈은 삼활구의 관리를 블랙샷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남 씨 집안사람도 아닌 바깥사람에게 관리를 넘겨줬다니.남강훈이 무언가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아버지."그때 치지연이 갑자기 서재로 들어섰다. 그 모습을 본 영감은 손짓을 하며 사람을 내보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바쁜 거 안 보여?"하지만 치지연은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남우 그 자식이 돌아왔어요."영감은 그 말을 듣고도 차를 마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우가 돌아온 사실은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마침 삼활구를 인수한 그 사람을 데리고 온 자가 바로 남우라는 것도 알아냈다.남우는 영감의 딸보다 몇 살 어렸지만 어쨌든 남씨 가문의 후계자였다. 그리고 옆에 여자도 두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외부인에게 삼활구를 인수하게 한 걸 보면 남 씨 집안에서도 경계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지연아, 아버지가 생각해 봤는데 남씨 가문 도련님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다 되었잖니."영감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아버지는 네가 남우랑 결혼했으면 좋겠는데."영감이 치지연의 눈을 보며 말했다.치지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흥분해서 말을 늘어놓았다."저한테 남우랑 결혼하라고요? 그놈이 저한테 어떻게 대했는지 아버지는 몰라서 그래요. 항상 저를 난감하게 하면서 체면도 봐주지 않고
이튿날, 강유이가 반재언을 찾아갔다.문 앞에서 노크하려던 그녀는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보니 반재언이 한 남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그 사람 이름 강한이 확실합니까?""네, 조사해 보니 다들 남우 도련님께서 데리고 온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 회장님의 지시하에 블랙샷 구역인 삼활구를 인수했다고 했습니다."남자의 말을 들은 반재언이 눈을 가늘게 떴다.강한은 남우가 데리고 온 사람이다.만약 반재언이 남우가 한태군을 구해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그는 강한의 신분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이렇게 보면 강한은 틀림없이 한태군이었다."계속 조사해 보세요, 다른 쓸만한 소식이 있는지.""네, 알겠습니다."남자가 뒤돌아선 순간, 강유이는 얼른 벽 뒤로 숨었다. 그리고 문이 열린 순간, 강유이는 방금 반재언을 찾아온 사람처럼 문 앞에 섰다."오빠!"강유이를 본 남자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반재언을 바라봤다.반재언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떠났고 반재언이 강유이를 바라봤다."들었어?""아니, 나 이제 방금 오빠 찾아온 건데."강유이가 웃으며 말하자 반재언이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거짓말도 할 줄 모르네."반재언의 말을 들은 강유이가 어색하게 볼을 긁적였다."오빠, 태군 오빠 소식 알아낸 거지?""그런 것 같아, 하지만 아직은 얼굴 못 봐."반재언이 소파로 돌아가 앉으며 커피잔을 들었다."나 태군 오빠 얼굴 보려고 하는 거 아니야."강유이가 반재언의 옆에 앉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태군 오빠가 무사하다는 거 확인만 하면 돼.""걱정하지 마, 한태군 아주 멀쩡하니까."반재언이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지윤 이모가 남강훈이 메트로폴리탄이랑 동맹하는 거 허락했다고 하던데.""응, 남강훈도 남씨 가문의 미래를 생각해서 허락한 거야. 혼자 강적을 마주하는 것보다 힘센 파트너랑 함께하는 게 더 좋으니까."반재언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남씨 가문이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어르신이 치지연 아가씨를 도련님이랑 결혼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여자는 얇은 커튼 너머로 침대에서 내려오는 남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생각이라곤 1도 없는 여자랑 나를 결혼시키겠다고? 영감이 혼자 좋은 생각을 하고 있네."빗을 들려던 남우가 여자의 말을 듣곤 하찮다는 듯 웃었다."남 회장님께서 이미 거절하셨습니다.""아버지께서 다른 이에게 삼활구를 인수하게 한 일이 블랙샷의 자중지란을 일으켰나보네, 그래서 결혼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건가...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남편의 책임을 다 할 마음이 없는데.""정말 그렇게 되면 도련님 신분이 언젠가는 의심받게 될 텐데요…"다들 알고 있다시피, 남강훈의 아들은 남우 하나밖에 없었다.하지만 남우의 진정한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남강훈 말고 눈앞의 여자와 집사밖에 없었다.그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속셈을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남 도련님이 여자일 줄이야.곧이어 여자가 남우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거실에 앉아있는 남강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마 영감의 방문 때문인 듯했다."아버지, 영감이 결혼 얘기 꺼내서 그래요? 저도 괜찮은데 아버지 표정이 왜 그래요?""내가 그 혼사 거절했다, 하지만 미리 준비를 하고 왔는지 네 할아버지께서 했던 약속으로 나를 협박하더구나."일본에 있을 때, 남강훈의 아버지와 영감의 아버지는 절친이었다. 그래서 치 영감 집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남강훈은 아버지의 친구를 도와 그의 가족들을 스카이섬으로 데리고 왔다.그리고 남강훈의 아버지는 확실히 치 영감의 아버지에게 자손들이 생기면 결혼을 시키겠다고 약속했었다.하지만 남강훈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몇 년도 되지 않아 치 영감이 블랙샷을 이어받더니 진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강우가 남우의 신분을 잘 숨긴 덕분에 치 영감도 남우가 여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하지만 남강훈은 이 사실을 영감에게 알릴 수 없었다.남우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남씨 가문은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
한태군은 자신이 블랙샷을 너무 얕잡아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한태군의 말을 들은 남우가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한태군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남우는 그가 세심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흔적 없이 자신을 잘 감출 줄 알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원래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더욱 무서운 법이었다.만약 이런 사람을 적으로 만났다면 절대 도망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남우는 생각했다."영감 계획에 대해서는 걱정되는 게 없지만 그 집 딸이 더 머리 아플 것 같아요."한태군은 그 말을 듣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맞다, 제가 며칠 전에 식당에서 외지인 두 분을 만났는데,"남우가 머리를 한 손으로 받치더니 소파에 기대어 한태군의 반응을 살폈다."신분이 단순해 보이지는 않던데요, 보기에 남매 같더라고요.""남매요?"그 말을 들은 한태군이 물었다.남우가 다시 자세를 바꿔 다리를 꼬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사업을 하러 왔다고 하던데, 남자는 꽤 잘생겼더라고요. 여자는 일부러 자기를 위장한 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Z나라의 유명한 연예인이랑 닮았어요."한태군은 고민에 잠겼다. 그는 남우의 말이 정말인지 아니면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지를 생각했다.그리고 한참이 지나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도련님께서 왜 저한테 이런 말을 해주고 있는지 모르겠네요.""서로 잘 알고 꽤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사이일까 봐 그랬죠, 제가 신문을 못 본 것도 아니고."한태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강유이는 한태군이 실종된 뒤, 그와의 결혼 사실을 공개했다. 아마 그를 살려준 이에게 한태군의 신분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만약 강유이가 서울에 조용히 있었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남우가 그녀의 신분을 알아차리고 그녀가 스카이섬에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면 데이비 렌지도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강유이는 정말 한태군을 찾으러 온 것일까?남우는 그런 한태군을 보며 찻잔에 차를 부었다.
남우의 얼굴에 걸려있던 웃음기가 점차 사라졌다.한태군은 그녀가 대답하기 전, 외투를 챙겨 들고 일어섰다. 그는 남우가 허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한태군이 떠난 뒤, 남우가 소파에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그때, 여자가 다가와 남우 옆에 멈춰 섰다."도련님, 치지연 씨께서 레스토랑에서 만나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조급하긴."한편, 레스토랑 안.치지연은 레스토랑 전체를 예약했다. 밖에는 그녀가 데리고 온 무사 경호원들로 가득했다.그녀와 달리 남우는 여자 둘만 데리고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치지연이 자리에 앉아 거울을 들고 화장을 고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도련님, 나 도련님 엄청 오래 기다렸어."치지연이 립스틱 뚜껑을 닫으며 웃었다."룸살롱에서 일하는 아가씨 같아, 지연 씨한테 안 어울려."그 말을 들은 치지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하지만 그녀는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 웃었다."도련님, 우리 이제 곧 부부가 될 사이인데 이렇게 미래 와이프 체면도 안 세워줄 거야?"치지연의 말을 들은 남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내 와이프가 너처럼 생겼다면 나 매일 악몽 꿀 것 같은데.""너!"치지연이 화를 내려다 자기 아버지의 말을 생각하며 화를 억눌렀다."남우, 내가 너랑 결혼하겠다고 한 건 네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야. 아니면 너 혹시 그쪽으로 안 되서 그래?"치지연이 무표정한 남우의 표정을 보더니 웃었다."설마 내가 맞춘 건가? 아니면 너 그동안 왜 옆에 여자도 두지 않은 거야? 설마 아직 여자랑 못 자 본 건 아니지?""지연 씨, 말씀 가려서 하시죠."그때, 남우 뒤에 있던 여자가 말했다."왜? 찔려서 그래?"치지연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남우를 바라봤다."남 도련님같이 이렇게 여리하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기 힘든 꽃미남을 어느 여자가 거절하겠어?""나한테 여자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여자가 있다고 해도 당신한테 알려 줄 의무는 없는 걸로 아는데."남우의 말을 들은 치지연은 아무 말도
치지연은 도끼로 자신의 발등을 찍은 격이 되었다.남우가 이렇게 경계심이 높은 사람일 줄이야.하지만 치지연이 이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 술에 무언가가 들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 밖에 되지 않았다.그 사실이 발각되면 남우는 절대 치지연과 블랙샷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그런 생각을 하며 치지연은 남우의 손에서 와인잔을 건네받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이제 됐어?"치지연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전부 비워내더니 말했다."주량이 대단하네."남우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그리곤 등 뒤의 여자에게 새로운 와인을 들고 오라고 했고 여자가 새 와인 한 병을 들고 오더니 뚜껑을 열었다."왜, 어디 불편해?"남우가 다시 깨끗한 와인잔에 와인을 부었다. 점점 몽롱해지는 치지연의 표정을 본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나는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치지연이 이를 악물더니 말했다.자신의 몸에서 점점 약효를 발휘하는 약을 느끼며 치지연은 이렇게 많은 양을 쓰지 말 걸 하는 후회를 했다.남우는 그런 치지연을 막지 않고 혼자 묵묵히 술을 들이켰다.여자도 이상함을 알아차리곤 남우를 바라봤다."역시 지연 씨가 준 술에 문제가 있었던 거네요.""재미없게, 그냥 한 번 찔러본 건데..."남우가 와인잔을 흔들며 말했다. 사실 그녀는 술에 대해 예민하지 않았다, 술에 약이 들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치지연의 수단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그리고 그 술에 무엇이 들어갔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치지연은 다른 남자에게도 이런 방법을 많이 쓰곤 했다.스카이섬에서 좀 잘생긴 남자라고 하면 모두 치지연의 초대를 받아 이튿날 그녀의 침대에서 일어나야 했다.그리고 치지연은 그 사진들을 이용해 남자를 협박해 자신의 남자로 만들었다.그녀는 남자들을 사랑하는 건 아니었다. 마치 수집하듯 잘생긴 남자를 수집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그 남자에게 와이프가 있든 여자친구가 있든 치지연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스카이섬의 남자들 사이에서 이름이 자자한
강유이에게 뺨을 맞은 치지연은 멈칫하다 곧 표독스럽게 강유이를 쏘아봤다."이 년이 감히 날 때려!"화가 난 치지연은 경호원을 부르려고 했지만 방금 전 자신이 그들을 떨궈냈던 것이 생각났다."감히 우리 오빠를 건드려?! 내가 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것 같아?"강유이가 손목을 만지며 말했다.반재언은 강유이를 자기 옆으로 끌어당기더니 바닥에 넘어져 흐리멍덩한 눈빛을 하고 있는 치지연을 보며 말했다."치지연 씨 불편한 것 같은데 얼른 사람 불러서 집으로 가시죠."말을 마친 반재언은 강유이와 함께 치지연을 지나쳐 갔다.치지연은 화가 나 온몸이 떨렸다. 다행히 그때 그녀의 경호원들이 도착했다.그들은 반재언과 강유이를 막아섰고 치지연을 부축해 일으켰다."아가씨."치지연이 일어서 두 사람을 보며 씩씩거렸다."저 남자는 나한테 남겨주고, 저 여자 제대로 혼 좀 내줘."그 말을 들은 반재언이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에게 가까이 오는 남자들을 바라봤다.두 사람을 둘러싼 경호원들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반재언을 제압하려고 했으나 반재언이 먼저 경호원의 팔을 잡고 뒤로 꺾었고 경호원이 고통에 바닥으로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그 모습을 본 다른 경호원들은 그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반재언은 강유이를 옆으로 밀어내더니 경호원들과 싸우기 시작했다.하지만 경호원들은 반재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반재언은 실력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급소만 공격했다. 게다가 방어도 잘했기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들어도 그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실력도 대단하고 잘생긴 반재언을 보니 치지연은 그에게 더욱 반하게 되었다. 약효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더욱 반재언을 가지고 싶어졌다.그때, 옆에 혼자 남은 강유이를 발견한 그녀의 눈빛이 다시 표독스럽게 변했다.반재언은 강유이를 무척 아끼고 있는 듯했다.치지연은 소리 없이 강유이 뒤로 다가가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 푸른 칼을 들고 그녀에게 휘둘렀다."계속 그렇게 나온다면 이 여자 얼굴 오늘 못 쓰게 될지도 모르는데."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