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이가 소방용 호스를 끄자 바닥의 치지연은 추위에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의 얼굴은 화장이 얼룩져 있었다.처음으로 다른 이에게 이런 대접을 받은 치지연이 한참 만에야 반응하고 소리쳤다."내가 너희 죽여버릴 거야!""내가 네 열을 내려줬는데 나를 죽이겠다고 하다니, 정말 배은망덕한 사람이었네."강유이가 허리를 짚으며 말했다."이제 그만, 여기에 오래 있으면 안 돼. 이제 떠나야 해."그때 반재언이 강유이의 등 뒤로 다가가 말했다.그 말을 들은 강유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반재언과 함께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몇 대의 차가 지하 주차장 출입구를 막아섰다. 그리고 차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왔다. 제일 앞에 선 남자는 다름 아닌 하시호였다.하시호는 참담한 꼴로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치지연과 바닥으로 나뒹굴어진 경호원들을 보게 되었다.외투를 벗어 치지연에게 다가간 하시호가 외투를 그녀에게 입혀줬다."아가씨, 어쩌다가 이렇게 되셨어요?"하시호의 부축을 받아 일어선 치지연이 표독스러운 얼굴로 강유이를 가리켰다."저년 죽여버려.""지연 씨, 굳이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 건가요?"반재언이 강유이를 자신의 등 뒤에 감추며 말했다."왜? 가슴 아픈가 보죠? 당신이 내 말을 듣고 내 남자가 된다면 저 여자 목숨 정도는 살려줄 수 있어요. 어때요?"치지연이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했다.반재언은 실력도 있고 얼굴까지 잘생겼기에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치지연은 생각했다.그리고 그가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녀는 반재언을 불구로 만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반재언의 얼굴과 그 능력만 남겨둘 수 있다면 그녀는 반재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다.반재언은 상대방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든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옆에 선 강유이가 걱정되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 둘을 괴롭히는 건 무슨 경우야?"강유이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너희
치지연은 갑자기 남우가 나타날 줄 생각도 못 했다. ‘왜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의 좋은 일을 망치려고 드는 건지!’"도련님이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끼어들지 말고 가."치지연이 식은땀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남우는 남 씨 집안의 후계자였기에 치지연의 아버지인 영감도 감히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 게다가 남우는 수단방법이 많은 사람이었다, 푸조의 사람들도 그의 이런 수단방법을 두려워한다고 들었다.그리고 남우가 데리고 온 사람들의 실력도 절대 하시호에게 뒤떨어지지 않아 아무리 사람이 많다고 해도 그들이 이길 수 없었다."너 내 약혼녀잖아, 그런데 길거리에서 이렇게 대놓고 남자를 빼앗고 있잖아. 그럼 네 약혼남인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남우가 팔짱을 끼더니 얄궂게 웃었다.그 말을 들은 강유이가 오히려 놀랐다.‘치지연이 남우의 약혼녀였다니, 남우가 이런 취향을 가졌을 줄이야.’남우의 말을 들은 치지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화가 났지만 화를 낼 수 없었다. 영감이 그녀가 남우와 결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시점에서 남우가 이것을 빌미로 치 영감을 찾아간다면 반재언은 살 수 없을 것이다.치지연은 반재언을 얻기 전까지 그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럴 리가, 네가 무슨 오해를 한 것 같아. 이 사람들이 먼저 나를 화나게 해서 좀 혼내주려고 했던 거야."치지연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개소리! 네가 먼저 우리 오빠 얼굴 보면서 침 흘렸잖아!"강유이가 일부러 판을 벌이려는 듯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곤 남우에게 다가가 말했다."남우 씨, 약혼녀가 남우 씨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어요. 오늘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남우 씨 몰래 바람을 피웠을 거예요.""저년이, 입 다물어!"치지연이 놀라서 강유이의 말을 끊었다.두 사람의 말을 들은 남우가 침묵을 지키다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그런 남우를 본 강유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약혼녀가 바람을 펼 생각을 했다는데 웃음이 나올까?’그때, 남우가 갑자기 강유이에게 다
"우리 남씨 가문 구역에서 이런 짓 하기 전에 나한테 물어본 적 있어?"남우가 치지연에게 다가가며 물었다."아니면 우리 아버지께서 블랙샷을 관리할 시간이 없어서 지금 남 씨 집안 구역에서 이렇게 기고만장하게 구는 거야?""지금 이 외지인들을 도와주겠다고?"치지연이 온몸을 떨며 물었다."남씨 가문 구역에선 우리 집 손님이니까 어떻게 처리할지도 우리가 결정해. 너희 블랙샷이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아니면…"남우가 말을 멈췄다가 담담한 눈빛으로 치지연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블랙샷이 이제 실력이 좀 있다고 생각해서 남 씨 집안을 벗어나 다른 뒷배를 찾으려고 하는 건가?"그 말은 하나의 폭탄처럼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치지연 앞에서 터져 그녀는 다시 긴장했다.치지연은 남우가 무언가 알아차린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이렇게 당당하게 말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마침 블랙샷의 목덜미를 잡은 격이 되었다.치 영감이 남 씨 집안을 배신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치지연도 잘 알고 있었다. 치 영감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치 영감이 알게 된다면 블랙샷은 스카이섬에서 쫓겨나고 말 것이다.결국 치지연이 반재언을 한 눈 보더니 몰래 이를 악물었다. 다 잡은 물고기를 이렇게 놓치려니 치지연은 무척 화가 났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두 사람을 도련님한테 맡기는 수밖에, 도련님이 우리 블랙샷을 위해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치지연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치지연은 남우가 자신의 마음에 들만한 결과를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만약 남우가 그렇지 못한 결과를 내놓았을 때, 블랙샷도 이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블랙샷이 남 씨 집안과 싸울 이유가 될 수도 있었다.남우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치지연도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오빠, 나 정말 걱정돼서 미치는 줄 알았어. 다행히…"
반재언은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치지연이 그에게 반할만했다."반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라 그런지 실력도 좋고, 겁도 없던데요."남우의 말을 들은 강유이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반재언의 신분을 알고 있을 줄 몰랐다."남 도련님은 속일 수가 없네요."반재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스카이섬이 조금 떠들썩해지겠네요."남우가 다시 고개를 돌려 강유이를 바라봤다."유이 씨, 우리 집에 갈래요? 우리 집이 유이 씨 오빠 옆에 있는 것보다 훨씬 안전할 거예요."그 말을 들은 강유이가 멈칫하더니 반재언을 바라봤다."저는 안 무서워요, 오빠가 어디 있으면 저도 따라갈 거예요."강유이의 말을 들은 남우가 웃었다."유이 씨, 치지연이 당신 오빠 몸을 얼마나 탐내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해요? 그 여자가 유이 씨 죽여버릴지도 몰라요. 우리 집으로 오면 내가 유이 씨 보호해 줄 수도 있는데."강유이를 놀리는 남우를 본 사람들이 웃었다.강유이는 저도 모르게 반재언을 바라봤다.사실 오늘 그녀는 자신이 오빠를 힘들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치지연이 다시 찾아와 시비를 건다면 반재언이 자신을 위해 타협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남우가 아직 자신의 신분까지 알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 두 사람을 도와줬으니 그 목적을 알 수 없다고 해도 남강훈의 아들이니 믿을만할 것이라고 강유이는 생각했다.그리고 어쩌면 그에게서 한태군의 소식을 알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강유이가 말을 하기 전, 반재언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남 도련님께서 우리 유이 며칠만 보살펴 주세요."한편, 치 영감 집하시호는 자신을 업신여기는 남우가 맘에 들지 않아 치 영감에게 치지연이 당한 것을 모두 알려줬다. 그는 치 영감이 치지연을 위해 복수를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말을 들은 치 영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보스, 남우가 사람들 앞에서 아가씨에게 굴욕을 안겨주고 무시했다니까요. 게다가 그 두 이방인을 두
자신의 딸인 치지연이 이런 험한 꼴을 당한 모습을 본 치 영감이 이를 악물더니 날 선 눈빛으로 말했다."외지인 주제에 남 회장님 믿고 블랙샷 사람을 건드리다니, 오늘 내가 받아들일 만한 이유를 내놓지 않으면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치 영감님께서 저희를 가만두지 않으면 남 회장님이라도 불러오셔서 얘기를 나누실 생각인 건가요?"그때 한태군이 여유로운 얼굴로 걸어 나왔다. 얼굴의 반쪽에 가면을 한 채 금발 머리를 한 그는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어 서양인 같기도 했다."자네가 강한인가?"치 영감이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영감님께서 저를 알고 계시니 굳이 자기소개는 하지 않겠습니다.""감히 내 딸한테 손을 대고 저런 꼴로 만들다니, 우리랑 완전히 돌아설 생각인 거야?"한태군이 뒷짐을 지더니 치 영감 앞에 섰다."제가 삼활구를 인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가씨께서 소란을 일으켰으니 아가씨가 남 회장님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블랙샷이 회장님을 무시하고 계신 건가요?"한태군의 말을 들은 경호원 하나가 그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치 영감이 막았다."내 딸이 아무리 삼활구로 와서 소란을 피웠다고 해도 이런 꼴로 만든 건 회장님 뜻인가?"분위기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대립하였다.옆에 있는 이들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블랙샷과 남씨 가문의 일이었기에 자칫 잘못하면 제 무덤을 파는 일이 될 수 있었다."이건 오로지 제 뜻입니다."한태군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그 말을 들은 치 영감의 눈빛이 사나워졌다."이렇게 기고만장하게 굴다니, 오늘 제대로 혼 좀 내줘야겠네. 이걸로 남 회장이 뭐라고 할 수 있겠어?"치 영감이 움직이려던 찰나, 한태군이 다시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영감님, 그전에 딸의 비밀이 남 회장님 귀에 들어가게 해도 될지 생각해 보시죠.""그게 무슨 뜻이야?"치 영감이 물었다."영감께서 아가씨를 남 도련님이랑 결혼하게 해서 블랙샷 지위를 굳히려 하고 계시잖아요.하지만 남 회장님께서 아가씨가
"너 기다리고 있어."치 영감이 한태군을 표독스럽게 쏘아보며 말했다.그리곤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갔다.한태군은 약지에 낀 반지를 만지며 차가운 눈빛으로 떠나는 그들을 바라봤다.강유이를 건드린 이가 그 누가 됐든 이런 대가를 치러야 했다.한편, 남씨 저택."아가씨, 여기서 지내시면 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하인이 친절한 얼굴로 강유이를 방으로 데리고 갔다."감사합니다."강유이가 웃으며 대답하자 하인이 방을 나갔다. 베란다에 서니 뒷마당에 있던 숲에서 바람이 불어왔다.남씨 저택은 디자인은 예전의 것을 보류하고 있었지만 가구는 모두 현대화 되어있어 심플하면서도 우아했다."어때요? 방 마음에 들어요?"남우의 목소리를 들은 강유이가 고개를 돌리자 그가 팔짱을 낀 채 문 앞에 서 있었다."도련님, 저희 오빠한테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겠죠? 그리고 치지연 씨 도련님 약혼녀 아닌가요? 그런데 왜…"강유이의 말을 들은 남우가 웃었다."약혼녀는 무슨, 그 여자 아버지가 뻔뻔하게 구걸한 겁니다. 그리고 저 그 여자랑 결혼할 일 없습니다. 오빠는 걱정하지 마세요, 실력이 좋으신 분이니 치 영감도 어떻게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편안하게 지내요."말을 마친 남우가 떠나려던 그때, 강유이가 다시 그를 불러세웠다."한태군이 어디 있는지 말씀해 줄 수 있어요?"그 말을 들은 남우가 걸음을 멈추곤 한참 고민하다 고개를 돌려 기대를 담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봤다."한태군이 누구죠?""도련님… 모르고 계셨어요?"강유이가 물었다.하지만 반재언은 한태군을 살린 이가 바로 남우라고 했으니 그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강유이는 생각했다."제가 살려준 사람이 많아서 어떻게 생겼는지 말을 해줘야 기억날 것 같은데, 이름은 저도 잘 몰라요, 사진이 있다면 더욱 좋고요."남우가 웃으며 그런 말을 하더니 방을 나섰다.강유이는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도련님, 저 아가씨는…"남우
하지만 사이의 돈독함으로 따지자면 남강훈과 더 가까웠다.서진은 이미 남우가 외지인 하나를 데리고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이는 신분이 특수했지만 남강훈이 왜 그에게 삼활구를 맡겼는지 서진은 잘 알고 있었다."치 영감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까 봐 두렵지도 않은가요? 회장님이 삼활구에 안배한 사람인데 강한이 이런 짓을 했으니 치 영감이 회장님을 더 원망하지 않겠어요?"그 말을 들은 남강훈이 찻잔을 내려놓았다."치 영감이 저를 배신하려고 하고 있어요, 치 영감이 물러날 수 있는 돌파구를 아직 못 찾은 것뿐입니다.""푸조가 치 영감에게 이익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치 영감이 아직 망설이고 있는 걸 보면 푸조를 완전히 믿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푸조가 지금 다른 세력들을 사들여서 조폭 시장을 독점하려는 것 같아요. 유럽 패주의 자리에 앉고 싶어서 그런 거겠죠, 손을 길게 뻗어 나가서 푸조 뜻대로 되는 순간, 북미와 동남아 지역은 모두 푸조의 것이 될 겁니다."서진의 말을 들은 남강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너무 급하게 굴면 일이 어긋나는 법입니다.""강한한테 조심하라고 전하세요, 치 영감이 강한 신분을 조사하기 시작했으니 머지않아 푸조도 강한을 알게 될 겁니다."남강훈은 진작에 이런 일을 예상했다는 듯 웃었다."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미 다 준비했으니까."두 사람은 2층에서 한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고서야 떠났다. 남강훈이 문 앞으로 다가오자 웨이터가 그에게 다가와 쪽지 하나를 건넸다."회장님, 누군가가 이걸 전해달라고 했습니다."웨이터의 말을 들은 남강훈이 쪽지를 열어보더니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같이 가지."남강훈의 말을 들은 웨이터가 그를 데리고 다른 룸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있던 반재언이 몸을 일으켰다."남 회장님, 드디어 이렇게 만날 기회가 생겼네요."…치지연은 병원에서 사흘 동안 링거를 맞고서야 조금 회복되었다. 눈가에 남아있는 딱지를 본 그녀가 거울을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그때, 하시호가 병실로 들어섰다. "아가
"남우가 죽고 남강훈이 슬픔에 잠겨있을 때, 저희가 나서면 남씨 가문도 결국 견뎌내지 못할 겁니다."그 말을 들은 치지연이 통쾌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신이 나서 말했다."좋아, 나도 남씨 가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 꼭 남우를 내 손으로 죽일 거야."반재언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복도에서 익숙한 인영을 보게 되었다. 그는 바로 한태군이었다, 창문 앞에 선 그는 반재언을 꽤 오래 기다린 듯했다."유이까지 데리고 올 줄은 몰랐네."한태군이 반재언을 보며 말했다."유이가 너 걱정된다면서 따라오겠다고 하는데 내가 막는다고 걔가 포기하겠어?"강유이의 성질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불랙샷 사람들이랑 좀 싸웠다며.""남우가 말해줬어?"반재언이 묵고 있는 방 앞으로 가 문을 열었다."응, 남우가 알려줬어.""뭐 좀 마실래?"반재언이 묻자 한태군은 다 괜찮다고 대답했다."호텔이라 내놓을 게 없네, 이거라도 마셔."반재언이 냉장고 안에서 콜라를 꺼내며 말했다."나 아직 유이랑 만날 수 없어, 그러니까 내가 너 찾아왔었다는 얘기, 유이한테 하지 마."한태군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유이 지금 남우 집에 있어,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날지 안 만날지 나도 장담은 못 하겠다."반재언의 말을 들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유이가 남우의 집에서 지내는 건 나쁠 게 없었다.그 모습을 본 반재언이 웃었다."남 도련님이 유이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고 하는데 화를 안 내네, 너 그 사람 정말 믿고 있나 보네.""걔가 뭐 유이한테 뭘 할 수나 있겠어?"한태군이 콜라를 들이켜며 물었다.그 말을 들은 반재언이 눈을 가늘게 떴다.한태군은 다른 사람을 쉽게 믿는 이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강유이를 남우 집으로 보낸 이유도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적어도 남씨 가문은 치지연의 협박을 당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반재언은 한태군도 남씨 가문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우가 그를 살려줬으니 그의 신분을 알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