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지나지 않아 글을 작성한 장본인은 TY 엔터 임석진이 고용한 변호사한테서 고소장을 받게 되었다.임석진은 비록 매니저이지만 그 파급력이 대단했다. 순식간에 여론의 화살이 글을 작성한 사람한테로 돌아간 것이다.#임석진은 자기 소속사 연예인도 엄청 욕하잖아. 지난번 주계진이 싸움을 벌였을 때도, 임석진은 수많은 팬들의 욕을 먹을지언정 주계진한테 단단히 경고를 주었었어. 그런 사람이 강유이의 잘못을 감싸고돌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난 임석진의 말을 믿어. 글을 쓴 작자는 머리 좀 굴리지 그랬어. 상황 파악 하나 제대로 못 하고 말이야.##임석진이 어떤 사람인데. 그 사람이 누구 편드는 거 봤어? 자기 연예인도 거침없이 욕하는 사람이야. 주계진이 확실한 증거잖아. 만약 강유이가 정말로 거드름을 피웠다면, 임석진이 고소장까지 보냈겠어?#어마어마한 언론의 압박으로 인해 두 시간 만에 글을 올렸던 장본인은 모든 인스타 사진을 지워버렸다.매니저 사무실.강유이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는 말이 들리자 그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매니저님.”마침 통화를 끝낸 임석진이 의자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번 일의 주모자를 찾아냈어. 그러니까 네 뜻대로 해.”강유이가 흠칫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고 비서가 문제의 여자 연예인과 함께 임석진의 사무실로 들어왔다.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자가 강유이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한눈에 보아도 강유이에 대한 증오가 깊어 보였다.임석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윤수아, 이번 일이 너한테 어떤 후과를 가져다줄지 생각해 본 적 있어?”윤수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눈시울을 붉혔다.“저는 저 여자가 무슨 자격으로 연예계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어렸을 때 구천광과 함께 영화 한 편 찍었을 뿐이잖아요. 구천광과의 인맥과 자기 집안 배경만 있으면 어디를 가면 성공하지 못하겠어요. 그런데 하필 TY 라니. 매니저님께서는 저 여자한테 처음부터 주인공 자리를 주셨잖아요. 저는 우영 언니
우영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임석진이 윤수아 일로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임석진은 윤수아와 우영의 사이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며칠 전 임석진이 그녀에게 했던 말도 경고성이 다분한 말이었다.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임석진이 윤수아 일로 자신을 의심한다고 해도 우영은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벌어질 일은 어떻게든 벌어지기 마련이었다.“죄송합니다. 수아는 저 때문에 강유이 씨한테 불만이 생겼던 것 같아요.”“우영 언니, 이 일은 언니와 상관없는 일이에요. 결국 제가 언니한테 폐를 끼치게 되었어요.”윤수아의 마음도 괴롭긴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멋대로 꾸민 일이 결국 우영한테까지 불똥이 튀어 버린 것이다.임석진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실눈을 떴다.“윤수아 네가 직접 TY와의 계약을 해지해.”우영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매니저님…”“우영이 넌 내 성질을 잘 알고 있겠지. 만약 이번 일이 너한테 발생했어도 난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했을 거야. 난 내 밑에 있는 연예인이 이런 꼴을 당하는 걸 절대 용납 못해. 이게 내가 너희들을 책임지는 방식이야.”임석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그가 차분하면 차분할수록 이번 일에 더 이상의 여지는 없다는 것을 뜻했다. 또한 이미 그가 결정을 내린 일이기에 아무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우영이 강유이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간절했다.“유이 씨, 수아 대신 제가 사과드릴게요. 수아가 절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이 일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니까 제가 대신 해명할게요. 그래도 안 될까요?”“우영.”임석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눈으로 그녀에게 경고했다.“매니저님, 수아와 저는 친자매와도 같은 사이에요. 애초에 수아는 저 때문에 TY로 들어오게 된 거니까요. 저를 벌하셔도 돼요. 그러니까 수아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우영 언니…”윤수아는 우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위해 애원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순식간에 윤수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영조차도 삼 년 내로 무비 퀸이 될 자신이 없었다.강유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저는 결정했어요.”그러더니 윤수아를 보며 물었다.“내기할래요?”윤수아는 순간 뭐라고 답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강유이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연예계를 은퇴하겠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그녀는 차마 강유이가 허황한 꿈을 꾸고 있다고 비웃지 못했다.아무리 자신이 강유이를 싫어한다고 해도 이런 순간에서까지 강유이를 비웃을 수는 없었다.윤수아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좋아요. 분명 강유이 씨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한 거예요. 그 내기 받아들일게요. 만약 강유이 씨가 성공한다면 제가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강유이 씨한테 사과하겠어요.”강유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콜.”강유이는 인스타에 새로운 글을 계시했다.#삼 년 후, 무비 퀸이 되는 거야!#그녀가 올린 글에 팬들의 의견이 분분했다.#강유이, 이번 일로 충격을 너무 크게 받은 거 아니야?##강유이 파이팅. 우린 널 믿어!##우리 유이가 다 커서 무비 퀸에 도전하다니. 내가 다 대견스럽네!##삼 년 후, 무비 퀸과 결혼.#침대에 누워있던 강유이가 마지막 댓글을 확인한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댓글을 단 사람은 프로필 사진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이제 막 새로 등록한 아이디 같았는데 오직 그녀 한 사람만 팔로워하고 있었다. 주소는 Y 국으로 되어있었고 특별히 VIP 회원까지 등록한 상태였다.그의 상태와 글은 십분 전에 발표한 것이었다.강유이는 번뜩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녀가 상대에게 디엠을 보냈다.“태군 오빠?”상대 쪽에서는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얼마 후, 한태군한테서 문자가 왔다.“나인 줄 어떻게 알았어?”강유이가 침대에 엎드려 답장했다.“보는 순간 오빠라고 생각했어.”한태군: 그럼 내 프러포즈 받아주는 건가?그 말을 확인한 강유이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오빠 하는 거 봐서.”한태군: 알았어.강유이는 휴대폰을 품에 안고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녀가 “보고
반재신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곧이어 빠르게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진짜 돌려받고 싶어?”“응. 그러니까 빨리 돌려줘.”“지금?”진예은의 뇌는 이미 알코올에 젖어 있었다.“그래!”반재신이 전화를 끊었다. 화가 난 진예은이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가 전화기 선을 잡아당기자 수화기가 카펫 위로 떨어졌다. 진예은이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중얼거렸다.“나쁜 자식, 왜… 왜 나한테 키스한 거야.”반재신이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창문 너머로 여전히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거실이 보였다.그가 차에서 내린 후 문 앞에 멈춰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진예은은 어렴풋이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에 무거운 머리를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몸을 비틀거리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누구세요?”그녀가 문을 열었다. 이미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상태라 겨우 문 옆에 기대 있는 게 전부였다. 흐릿한 시야로 익숙한 누군가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반재신은 그녀한테서 나는 코를 찌르는 듯한 알코올 향에 미간을 찌푸렸다.“야밤에 이 정도로 취해서 나한테 주정까지 부린 게, 고작 이 낡아빠진 휴대폰 때문이라고?”“반… 반재신?”진예은은 애써 집중해서 눈앞의 사람을 보고 나서야 겨우 그가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녀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휴대폰.”반재신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진예은이 얼른 그의 팔을 잡았다.“넌 들어오면 안 돼. 내 휴대폰—”현관 카펫에 발이 걸린 진예은이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넘어지기 전 그의 외투를 잡아당기고 있었던 탓에 그의 외투도 절반 정도 벗겨진 상태였다.반재신이 아예 외투를 벗더니 몸을 숙이며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이 여자가 그전에는 내 바지를 벗기려 하더니, 이젠 내 옷을 벗기려 하네.”순간 몸이 공중에 붕 뜨자 진예은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목을 껴안았다. 그녀가 실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착각일까? 순간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이 예전보다 훨씬 부드
대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은 마음가짐이에요. 꾸준히 자기 연기 실력을 닦아내는 거야말로, 연기자가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죠.”강유이가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떨어져 있는 주계진의 모습이 보였다. 주계진은 파티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생각도 없이 여전히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그녀가 주계진 쪽으로 다가가 기둥 뒤에 멈춰 섰다.“여기 숨어서 뭐해요?”술을 마시던 주계진이 멈칫거리더니 그녀를 흘겨보았다.“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강유이가 팔짱을 끼고 기둥에 몸을 기댔다.“그쪽은 회사 다른 연예인들과 잘 지내볼 생각은 없어요?”그가 쯧 하고 짧게 혀를 차더니 술잔에 담긴 술을 바라보았다.“됐어요. 난 저 사람들과 달라서, 함께 어울리지 못해요.”강유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주계진이 그녀를 돌아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그런데 아가씨, 삼 년 뒤에 무비 퀸이 되겠다고 큰소리쳤다면서요? 구라 한 번 거창하게 치네. 내가 웬만해서 다른 사람들을 칭찬 안 하는데, 아가씨 배짱은 칭찬해 줄 만하네요.”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구라 아니에요.”“무비 퀸이 되면 뭐가 좋죠? 그냥 명성일 뿐이잖아요. 반씨 가문은 돈도 명예도 다 가진 가문인데, 무비 퀸 같은 게 되지 않아도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잖아요.”“달라요.”“뭐가 다르다는 거죠?”주계진이 그녀를 돌아보았다.강유이가 시선을 내려뜨렸다.“난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많은 일들을 혼자 결정할 수 없죠. 아무리 집에 모자랄 것 없고, 나를 아껴주는 오빠 둘까지 있다고 해도 언제까지 그들의 보호 아래에서 살 수 없어요.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는 삶은 폐인이나 마찬가지니깐요. 그런 삶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주계진이 중얼거렸다.“폐인이라…”그의 아버지는 자주 그를 폐인이라고 욕했었다.하지만 그는 폐인이 꼭 나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 걱정 거리가 많아, 폐인보다도
우영이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너무 축하해요. 정말로 그 어려운 걸 해냈네요.”윤수아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내가 졌어. 약속대로 할 테니까 잘 봐.”그녀가 기자들 앞으로 나섰다.“여러분,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삼 년 전, 저는 강유이 씨를 질투하여 일부러 그녀를 모함했습니다. 때문에 오늘 전 이 자리를 빌려 모든 분들 앞에서 강유이 씨한테 공개적인 사과를 하려고 합니다.”그녀가 강유이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미안해요. TY 과는 당장 계약 해지할게요.”모든 기자들이 그 장면을 찍어댔다.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강유이가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그녀를 일으켜 세우면서 그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해지하면 제가 유성 엔터를 소개해 줄게요.”윤수아가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당신…”“윤수아 씨도 데뷔한 지 오래되었잖아요. 분명 유성에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윤수아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울다가 웃으며 강유이를 덥석 껴안았다.“유이 씨, 어쩜 이렇게 사람이 좋아요. 저 앞으로 절대 유이 씨를 욕하지 않을게요. 엉엉~”모든 사람들이 돌아간 후, 강유이는 주차장에 서있는 롤스로이스 쪽으로 다가가 차 문을 열었다. 차 안에 앉아있던 반재신이 노트북을 닫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무비 퀸이 된 거 축하해.”강유이가 차에 올라타며 반재신을 쭉 훑어보았다.“오빠는 이제 점점 더 대표다워지는 것 같아.”반재신은 2년 전에 귀국해 AM 그룹을 계승 받았다. 지난 몇 년간 그는 여전히 독설을 날리긴 했지만 예전보다는 제법 진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점점 아빠를 닮아갔다. 그에게는 오직 일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엄마마저 그가 외국에서 어떤 충격을 받은 게 아니냐며 놀렸었다. 하지만 그가 그곳에서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강유이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그녀가 그에게 물었지만 반재신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그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뭐가 점점 더
강유이가 길에 차를 세운 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차 문이 벌컥 열렸다. 강유이가 조수석에 올라탄 여자를 돌아보았다.“너…”“머리 스타일 좀 변했다고 못 알아보는 거야?”진예은이 선글라스를 벗었다.강유이가 웃음을 터뜨렸다.“너 파마도 했어?”검은 생머리였을 때보다 지금의 파마머리가 훨씬 진예은한테 잘 어울렸다.과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따듯함을 느끼게 하는 성숙하고 자유분방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차가 여유롭게 도로를 내달렸다. 강유이는 진예은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중에 일부러 둘째 오빠 이야기를 꺼내봤지만 진예은은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그래. 회사를 이어받았다니, 잘 됐네.”강유이가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예은아, 너랑 둘째 오빠 사이에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그녀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아니. 무슨 일이 있었겠어. 나와 그 사람의 관계를 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빠르게 그녀가 화제를 돌렸다.“그런데 한태군은 아직 너 보러 안 왔어? 오빠 한 달 전에 이미 TY 엔터 주주 자리를 꿰찼을 텐데.”강유이가 갑자기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진예은을 돌아보았다.“뭐?”TY 엔터.강유이는 빠르게 행정 부문으로 달려갔다. 과연 그녀는 복도에서 익숙한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유준이었다.전유준이 이곳에 있다는 건 한태군도 여기 있다는 걸 뜻했다.역시 진예은은 그녀를 속이지 않았다!강유이를 발견한 전유준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오랜만입니다, 강유이 씨.”강유이의 시선이 유리 너머에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회장과 마주 보고 있는 남자는 교만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파란색 정장이 넓은 그의 몸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그의 옆모습이 얼핏 보였다. 그윽한 눈매에 기다란 속눈썹, 오뚝한 콧날, 그는 살아있는 조각상처럼 그곳에 고고하게 앉아있었다.전유준이 문을 열었다. 회장이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이 왔구나. 소개해 줄게.
강유이가 까치발을 들고 손가락을 그의 입술 위에 가져다 댔다.“그럼 오빠한테…”그때 갑작스러운 휴대폰 벨 소리에 그녀의 말이 끊겼다. 강유이가 휴대폰을 확인하니 진예은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수락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진예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이야, 살려줘—”그대로 전화는 끊겨버렸다.강유이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전화 너머로 얼핏 둘째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한태군이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반재신이 진예은을 끌고 갔나 보네.”강유이가 한태군을 잡아끌었다.“태군 오빠, 도대체 우리 둘째 오빠와 예은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얘기하자면 복잡해.”호텔, 진예은은 순식간에 호텔 방 현관으로 밀쳐졌다. 그녀가 미처 방어할 새도 없이 그가 그녀를 벽에 밀쳤다. 서늘한 공기가 그녀를 덮쳤다.반재신이 억지로 그녀의 턱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의 눈이 이글거렸다.“삼 년을 피해 다니더니, 이젠 더 이상 숨지 않기로 한 거야?”그녀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가 그의 시선을 피했다.“피해 다닌 적 없어.”“그래?”그가 그녀의 얼굴을 억지로 돌려 자신과 마주 보게 만들었다.“나를 차단하고, 이사까지 한 뒤에 사라져놓고 안 피했다? 너 나 가지고 논 거냐?”서늘하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이 그녀를 압박해왔다. 그녀는 어디든 도망치고 싶었지만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그의 모습은 삼 년 전보다 훨씬 성숙하고, 잘생겨졌으며 예전보다 더 진중해진 것 같았다.그의 눈에서 그녀를 향한 분노와, 증오가 쏟아져 나왔다. 그 눈빛들이 마치 잘못한 사람은 그녀라고 탓하는 것만 같았다.확실히 그녀한테도 잘못이 있었다.삼 년 전 그 황당한 일을 벌이지 말았어야 했다.“반재신, 우린 원래 연락할 필요가 없는 사이였어.”“뭐라고?”그의 눈빛이 더욱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그녀가 피식 웃었다.“우린 그냥 하룻밤 함께 보낸 관계일 뿐이잖아. 설마 반씨 가문의 둘째 도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