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잘 모르겠어요.”“제가 알아봤는데 제 동료가 이 사건을 조사하려고 김 선생님 댁까지 찾아간 적이 있었다고 해요. 그 당시의 피의자였던 육성현 씨가 그곳에 머물고 있어서요. 근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해요.”원유희는 이 일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범인이 제 삼촌일 거라 의심하고 있는 거예요?”“육성현이 원유희 씨 삼촌인가요?”원봉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네, 삼촌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원봉은 원유희가 그 삼촌이라는 사람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육성현 뒤에는 엄청 큰 범죄 조직이 숨어있었다.“두 사망자가 사망하기 전에 육성현 씨와 모순이 있었다고 해요. 그 후 모텔에 돌아가자마자 사망했고 심장과 신장이 사라졌죠.”“그랬다고 제 삼촌이 했다고 얘기할 순 없잖아요?”“그저 조사일뿐이에요.”원유희는 그렇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기억을 잃었다고 들었는데, 맞죠?”“네,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까지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에요.”원봉은 명함 한 장을 꺼내 말했다.“뭐라도 생각나면 이 번호로 연락해요. 그럼 이만 갈게요.”원유희는 명함을 들고 생각에 잠겼다.‘내가 뭘 기억해 내겠어?’원유희는 이 일이 육성현이랑 상관 없을거라 생각했다. 원유희가 생각하는 육성현은 엄청 젠틀한 사람이었기에 모순이 생겨도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원봉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자 보인 남자는 그의 표정을 어둡게 했다.육성현은 원봉을 바로 지나쳐 갔는데 앞으로 갔다가 이제야 생각난 것처럼 몸을 살짝 돌렸다.“원 형사? 설마 날 조사하려고 여기에 온 거야?”하지만 원봉의 대답이 궁금하지 않은 듯 물어보고 바로 가버렸다.이런 뻔뻔함은 원봉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다짐했다.‘언젠간 내 손에 죽을 거야!’육성현은 원유희의 사무실에 들어가 앉았을 때 테이블에 놓인 명함을 보고 눈빛이 변했다.“경찰이 찾아왔어?”원유희는 말하려다가 말았다.“그냥 뭐 좀 물어봤어요…….”“내 일
호텔로 돌아온 후, 육성현은 외투를 한쪽으로 던지고 소파와 한 몸이 된 엄혜정이랑 물었다.“점심 뭐 먹고 싶어?”엄혜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육성현은 소파에 앉아 엄혜정의 턱을 잡고 살짝 들어 올려 그녀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얼굴은 아직도 창백했고 사람은 아직도 무기력해 보였다.“아직도 아파?”“많이 좋아졌어요. 적어도 아파서 이리저리 뒹굴진 않아요.”어제 오후부터 밤까지 엄혜정은 그야말로 누워도 아팠고 서 있어도 아팠으며 앉아도 아팠다.“많이 좋아졌으니까 같이 밥 먹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갈 수 있겠어?”“괜찮아졌어요. 그리고 이틀이면 돌아간다고 했잖아요, 다음에 또 언제 올 수 있는지 모르는데 이렇게 돌아가면 아쉽잖아요.”육성현은 핸드폰을 꺼내 김신걸쪽에 전화를 걸어 함께 밥 먹기로 했다. 저녁 식사는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했는데 레스토랑 전체를 빌었기에 관계없는 사람들의 방해가 없었다.“아이들을 같이 데려와도 좋다고 했는데?”육성현이 물었다.김신걸이 대답했다.“밖에서 놀고 있어서 그냥 뒀어요.”원유희는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애들이 엄청 산만해요.”“밖에서 돌아다니면 좋지! 그만큼 애들이 다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귀엽고 똑똑하다는 얘기야.”예전에 세쌍둥이가 회사에 올때 마다 엄혜정은 그들과 놀고 싶어 일할 마음조차 없게 되었다.“그렇게 애가 좋으면 우리도 빨리 낳자.”육성현이 이렇게 말하자 놀란 엄혜정은 손에 있던 포크를 바닥에 떨궜는데 동작 빠른 육성현이 얼른 포크를 받고 자상하게 엄혜정의 손에 다시 쥐여줬다.“흥분하지 말고, 천천히.”엄혜정은 표정이 이상했는데 더 놀란 것 같았다.원유희는 바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느꼈다.“화장실 잠깐 다녀올게요.”엄혜정은 자리에서 떠났다.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 앞에 서자 생리 때문에 별로 좋지 않은 안색이 눈에 들어왔다. 육성현의 말에 놀라 추태를 부릴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고 괜히 다른 사람까지 난처하게 만든 것 같았다.“혜정아, 괜찮아?”뒤따라온 원
육성현은 갑자기 일어나 엄혜정 쪽으로 다가갔고 놀란 엄혜정은 숨조차 쉬지 않은채 꼼짝도 못 했다.“그런 일은 딱히 준비할 필요가 없어.”“알…… 알았어요.”육성현은 위험한 눈빛으로 엄혜정을 바라보았다.“설마 나 몰래 뭐 한 거 아니지?”"그럴 리가요?"“피임하고 있다는 거 들키지 마. 나 한 번만 봐줄 거니까.”“안 하고 있어요. 전에도 얘기했는데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엄혜정은 말하면서 숨을 천천히 쉬었다.육성현의 무서운 표정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변태처럼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그래야지. 걱정하지 마, 다음 달이면 꼭 임신할 거야. 당신은 아들이 좋아 아니면 딸이 좋아? 몇 낳고 싶어? 적어도 두 명은 낳아야 하지 않겠어? 딸도 낳고 아들도 낳고. 당신을 닮으면 엄청 귀여울 텐데…….”이 얘기를 듣자 엄혜정은 가슴이 떨렸고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하나도 낳기 싫은데 몇 명을 낳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그럼 두 명 낳죠.”엄혜정은 그냥 얼버무렸다.“아니, 셋. 김신걸네 세쌍둥이처럼 말이여. 너도 걔네들을 엄청 좋아했잖아?”엄혜정은 세쌍둥이를 좋아했지만 직접 낳을 생각을 진작에 접었다. 갑자기 엄혜정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배를 잡았다.“또 아파?”“아파요, 그래서 말인데 내일에 가도 될까요?”엄혜정은 고통을 호소하며 말했다.“가는 길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요. 이럴 줄 알았다면 나와서 밥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면 당신이 먼저 가고 전 호텔에서 하룻밤 더 있다가 내일에 세인시로 돌아갈게요.”“그건 안 되지. 넌 내 비서니까 한 발짝도 떨어지면 안 되지”육성현은 동의하지 않았다. 엄혜정은 원래 남아서 원봉을 찾아가 그가 도대체 무엇을 조사하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싶었다.하지만 육성현은 엄혜정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고 반응이 너무 격하면 의심을 사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오후 그들은 예정한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엄혜정의 생리통을 생각해서 호텔에 더 머물렀다. 좀 전까지만 해도 아프다고 한 사람
사장은 엄혜정을 힐끗 보고 핸드폰을 꺼냈다."감사합니다."엄혜정은 핸드폰을 들고 다른 쪽으로 다가가 몰래 기억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형사님, 저 엄혜정이에요.”“엄혜정 씨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혹시 원봉이라는 형사를 아시는가 해서 전화를 드렸어요.”“원봉? 알죠. 왜요?”엄혜정은 그저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걸어봤는데 그들이 정말로 아는 사이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알아요, 전에 세인시에 있었는데 육씨 집안의 미움을 사서 제성으로 가게 됐죠.”“미움을 샀다고요? 왜요?”“원봉이 육씨 집안을 조사하려고 해서요. 정말 심심해서 할 일이 없었는지 그걸 왜 조사했는지. 암튼 그러다가 육성현의 눈에 띄었죠. 진작에 걔를 말렸는데 듣지도 않았죠.”“형사님, 원 형사가 지금 제성에서 조사하고 있는 모텔 살인사건 있잖아요. 전에 저랑 육성현이 그곳에 갔다가 피해자들이랑 잠깐 다툰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 형사님이 육성현을 조사하고 있더라고요.”“그게 어떻게 육성현이랑 관련 있겠어요? 내가 이제 연락해서 걔보고 손떼라고 할게요.”“형사님은 육성현이랑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죠. 아니겠어요?”엄혜정은 할 말을 잃었다. 육성현은 세인시에서든지 제성에서든지 다 깨끗한 사람이었다. 설령 육성형이 김하준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를 어떻게 할 순 없었다.‘어떻게 해야 할까…….’생리대를 들고 나가다가 엄혜정은 한 사람이랑 부딪히게 되었다.“아…….”예상하지 못한 부딪힘에 엄혜정은 하마터면 넘어졌고 누군가가 엄혜정의 손을 잡아준 후에야 중심을 되찾았다.“미안해요. 괜찮아요?”엄혜정은 고개를 돌려 그 남자를 바라봤다. 비주얼이 훌륭하고 분위기가 깔끔한 남자였고 약간 짧은 머리는 그의 이목구비를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는데 마치 모델과 같았다.“괜찮아요.”똑바로 선 엄혜정은 그 남자의 사원증을 봤는데 하우진이라는 남자였다.“로얄그룹에서 일해요?”“전 그쪽을 본 적 있는데요. 사장님 비서 맞
엄혜정은 순간 그곳에 멈춰 섰다.“내가 그렇게 조용하게 지내라고 했는데 넌 어떻게 사람을 회사까지 데려올 수가 있어?”육성현은 엄혜정을 힐끗 쳐다보고 얘기했다.“집에서 놀고먹을 수는 없잖아요. 뭐라도 해야죠.”“그럼 지사에 보내면 되잖아. 굳이 왜 네 비서로 옆에 두는 거야? 매일매일 한 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거야? 그럼 차라리 쟤랑 결혼은 하든가!”육원산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었고 화를 내며 말했다.육성현과 엄혜정이 이미 결혼한 사실은 그들만 알고 있었기에 순간 분위기가 수상하게 느껴질 만큼 조용해졌다.“저번 정은이 생일에 같이 밥도 먹고 선물도 줬는데 네가 이러면 정은이가 오해하지 않겠어?”육원산은 엄혜정이 들으라고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별일 없으면 퇴근해.”엄혜정은 자기에게 한 말임을 알고 육원산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 후 문을 열고 나갔다가 문을 닫아줬다.육원산은 답답하다는 듯이 육성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성현이는 남녀 사이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었고 선도 지킬 줄 알았고 사사건건 로얄그룹의 이익을 최우선에 놓았어. 넌 결국엔 성현이랑 달라.”김하준의 신분을 경멸하는 듯이 다소 담긴 말이었다.육성현은 자신이 시궁창에서 자란 사생아라는 것을 알았지만 누구든 이렇게 도발하면가만히 놔두지 않고 죽을 때까지 패줬을 것이다. 그는 고약한 심성을 드러내며 흉악하게 말했다.“그럼 저희 엄마를 찾아왔을 땐 왜 이 생각을 못 했었어? 아니죠, 우리 엄마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당신 사업을 지킬 아들도 없었겠네요.”“너!”육원산은 적잖이 화났다. 그때 그냥 갖고 놀려고 했는데 그 창X이 임신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김하준의 존재를 알고도 육원산은 따로 신경 쓰지 않고 혼자 죽도록 내버려 줄 작정이었다. 육원산은 부잣집 깨끗한 여자만이 자기 옆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고 게다가 그때 신임하고 있는 아들 윤정이 있었기에 기생 따위쯤이야? 그저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고 생각했다!그 모자를 버린 것 때문에 할 말을 잃은 육원산은 차
엄혜정은 커피를 마시면서 멍하니 있었는데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한 시간째 앉아 기다렸는데 왜 아직도 안 보이지? 아니다, 바로 이렇게 들어오면 들킬 위험이 있잖아?’엄혜정은 생각하다가 화장실로 향했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자 벽에 기대어 두 팔로 가슴을 감싼 남자가 보여 엄혜정은 깜짝 놀랐다.좀 은밀한 곳에서 하우진이랑 만날 줄 알았는데 그게 여자 화장실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경계심이 바짝 선 엄혜정의 반응을 보자 하우진이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요, 여기에 다른 사람 없어요.”“저 육성현을 조사하고 있는 거 맞는데, 혹시 뭘 알고 있어요?”“우리 한번 만나기 어려운 거, 그쪽도 아시잖아요. 제가 다 얘기한 후에 아는 거 숨기지 말고 다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하우진이 말했다.“그래요.”엄혜정은 이런 일을 암암리에 진행하는 것 자체가 그녀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지금 육성현은 진짜 육성현이 아니에요. 지금 그 사람은 가짜고 육 어르신의 사생아인데 전에…….”엄혜정은 하우진의 말을 끊고 이어서 말했다.“빈민가에서 자란 김하준이라는 사람 맞죠? 그 사람 완전 사이코패스에요!”"알아요?"“김하준이랑 결혼했어요. 그리고 5년 전에 제 손으로 그 사람을 감옥에 보냈고요.”하우진은 이 말을 듣고 놀랐다. 엄혜정의 신분이 궁금했고 그녀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육성현을 조사하는지도 궁금했다. ‘이런 관계였군.’“그럼 아직도 그 사람한테 감정 있어요?”엄혜정은 다른 쪽을 바라보며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그 사람이 제 부모님을 죽였는데 무슨 감정이 남아있겠어요? 전 그저 육성현의 실체를 공개하고 감옥에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에요.”“그건 안 돼요.”“알아요. 육씨 집안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그 누구도 그 집안의 약점을 쉽게 잡지 못할 거에요. 로얄그룹에 오래 있었으니까 저보다 많이 알겠죠? 전 김하준을 알고 있지만 당신은 진짜 육성현을 알고 있잖아요.”“육성현은 육씨 집안의 유일한 후계자고 능력이
“전에 육씨 그룹이 음지 일을 했던 거 알죠. 뭐 지금은 로얄그룹을 만들어서 사업을 양지쪽으로 돌렸는데 그래도 조폭 출신인 거 달라지지 않죠. 일반 사람들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하물며 윤정 씨처럼 착하고 온순한 사람이 그걸 받아들이겠어요? 결국 육 어르신이랑 의견이 맞지 않아 갈라섰죠.”엄혜정은 하우진에게 육씨 집안 예전에 음지쪽에서 어떤 일들을 했는지 자세히 듣고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이랑 아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엄혜정은 무기력하게 벽에 몸을 바짝 기댔다.“그러니까 조사하는 거 그만둬요.”“전 당신이 날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엄혜정은 여기서 그만두고 싶지 않았고 김하준이랑 같이 있고 싶지도 않았다.“제가 왜 로얄그룹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본분을 지켰기 때문이에요.”육성현은 하우진을 알아봐 준 은혜가 있었지만 그도 결국 먹고 살아가야 했다. 로얄 그룹의 눈 밖에 나면 어떤 후과를 가지게 되는지 하우진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엄혜정은 강요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가고 싶은 길이 다 달랐다.“알려줘서 고마워요. 아니면 전 계속 바보처럼 죽은 육성현을 찾으려고 했을 거예요.”“제성에서 죽은 그 두 사람, 증거를 찾기 어려울 거예요.”“알아요.”엄혜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리고 가려고 했다.“핸드폰이 도청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계속 이대로 번거롭게 매번 기회를 타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빌릴 순 없었다. 엄혜정은 하우진이 섭외팀의 사람이기에 이런 기술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핸드폰의 뒷부분을 뜯어서 봐봐요. 무슨 칩 같은 게 없으면 포맷하면 될 거예요.”“고마워요.”엄혜정은 문을 열고 나갔다. 알고 싶은 거 다 안 이상 여기서 더 오래 머물면 기사가 수상함을 느낄 가능성이 있었다.엄혜정은 나가자마자 금방 카페에 들어온 기사를 보곤 다소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제가 뭐 도망갈까 봐 그러는 거예요? 쓸데없이 시도 때도 없이 감시하지
“너 기억 안 나겠지만 예전에 너 나보고 육씨 집안이랑 너희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되면 알려달라고 했어. 너희 아버지랑 육씨 집안이 연을 끊은 원인을 찾아봤는데…….”원유희는 엄혜정한테서 육씨 집안 예전에 했던 사업을 들으면서 어안이 벙벙해졌고 믿을 수가 없었다.원유희는 비록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다 잊어버렸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다 이런 일을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알고만 있어,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고.”엄혜정은 혼자 육성현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너는? 너 나랑 이거 얘기하면 삼촌 쪽은…….”“괜찮아. 내가 아무래도 그 사람 아내인데 뭘 하겠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악행을 발견하면 그 즉시 법정에 세울 것이다. 김하준의 본성이 변하지 않았기에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전화를 끊은 후 원유희는 멍하니 있었다. ‘엄혜정이랑 이런 약속을 했다고? 뭐 진실을 알고 싶었겠지. 근데, 그렇다면 엄혜정은 대체 삼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원유희는 저도 모르게 추측하기 시작했고 아마 사랑 때문에 결혼한 게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자신도 사랑 때문에 결혼한 게 아니었다. 김신걸은 아이를 위해서 결혼했고 윤설은 양보했는데 지금은 후회하고 있었다.원유희는 자기와 김신걸의 결혼은 곧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기에 일만 없으면 회사에 왔다. 비록 대부분의 일을 고선덕에게 맡겼지만 그래도 참여했고 공장에 가서 배치를 확인하기도 했다.암튼 김신걸이랑 적게 만나면 이혼하자는 소리를 들을 확률도 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오후에 정말로 할 일이 없었던 원유희는 원래 살고 있었던 동네로 가서 숨었다.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잤는데 얼마 지났을까, 갑자기 들려온 노크 소리에 놀라 원유희는 벌떡 일어났다.원유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문을 열었다. 원유희는 조금의 경각심도 없이 확인하지도 않고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그리고 문밖에 윤설이 서 있는 것을 보자 멈칫했다.“넌…….”“혹시나 해서 와봤는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