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당하는 소리와 함께 원유희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울고 싶은 마음을 다스린 후에야 일어서서 넋이 나간채 욕실로 갔다. 그리고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거실을 지나갔다. ‘김신걸이 어떻게 나를 대하던 상관없어. 하지만 왜 표씨 가문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꼭 이렇게 독하게 해야 속이 풀려? 단지 표원식이 날 좋아해서, 날 도와주고 싶어서? 김신걸은 지금 표원식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학대하는 거야!’ 원유희는 고통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걸음을 디딜 때마다 그녀의 몸이 흩어질 것 같았다. “아!” 그녀는 마지막 계단에서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그녀를 통곡하게 했다. 해림은 급하게 달려와서 물었다. “사모님, 어디 다쳤어요?” “나 건드리지 마…….” 원유희는 머리를 숙이고 몸을 계속 떨었다. 해림은 그녀를 부축하려던 손을 멈추었다. “사모님, 혹시 다친 거 아니에요? 제가 부축해서 모시고 들어간 후 송의사보고 오라고 할게요.” 원유희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고 해서 뭐 해? 난 죽어도 싸…….” “사모님?” 해림은 그녀의 말속에서 절망을 느꼈다. ‘혹시 김 대표님과 싸운 건가? 그런데 아침에 김 대표님이 내려오실 땐 분명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는데?’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해림은 앞으로 가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원유희는 일어난 후 해림을 밀치고 몸을 돌려 다리를 절룩이며 계단으로 올라갔다. 해림은 원유희의 무릎에 상처가 난 것을 보았다. 원유희는 위층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고 피노키오에 관한 뉴스를 검색하고 창백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표원식이 카메라 앞에서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기자의 말에 대답했다. “앞으로 전 더 이상 피노키오의 교장이 아닙니다.” “피노키오 학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건 제 잘못이니 다른 사람과는 무관합니다.”“전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한 일에 대해서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저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
원유희는 소파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문 밖에 있는 세 쌍둥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엄마 집에 없어?” “아빠랑 나간 거 아니야?” “그런데 우리한텐 말하지 않았잖아.” 그러자 가정부가 말했다. “얘들아, 일단 내려가자!” 원유희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텔레비전의 화면이 중단돼 표원식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에서 멈추었다. 임민정이 나간 후 원유희는 문을 잠그고 쏘파로 돌아와 계속 조각상처럼 앉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때 해림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전화번호를 보고 급히 받았다. “김 대표님.” “원유희는?” “방에 있어요.” “소란을 피우지 않았어?” “사모님께서 아침에 나가려고 하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을 다쳤어요. 그래서 상처를 처리하고 지금은 방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해림이 말했다. “한 마디도 안 했어?” 김신걸이 음산하게 물었다. “네, 민정이가 그러는데 사모님께서 말없이 텔레비전만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합니다.” 해림이 말했다. 전화를 끊은 김신걸의 검은 눈동자는 얼음같이 차가웠다. ‘나한테 빌어도 소용없으니까 혼자 방에 숨어서 눈물을 흘려? 피노키오는 반드시 망해야 해.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 난 생각을 바꾸지 않아.’ 원유희가 다른 남자를 위해 그와 맞서는 행위가 그의 마음을 어둡고 포악하게 만들어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원유희는 소파에 기대 잠이 들었다. 마치 악몽에 시달리듯 한기가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아 눈을 떠 옆에 나타난 검은 그림자를 보고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리 없이 김신걸을 한 번 보고 시선을 거두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소파에 계속 기대고 있었다. “슬퍼?” 김신걸은 검은 눈동자로 냉담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원유희는 텔레비전을 끄고 말했다. “아니. 김신걸, 앞으로 우리…… 각자 알아서 하자.” 김신걸은 실눈을 뜨고 위험이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너 다시 말해봐!” 그러자 원유희는 말을
그 웃음은 우는 것보다 더 보기 흉했다. 눈에 눈물이 맺혀 안쓰러워 보였다. 김신걸은 휘청하더니 눈빛이 무섭게 돌변했다. 그는 화가 치밀어 머리카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뭐? 역겹다고? 좋아, 내가 널 후회하게 만들어 줄게!” 원유희가 김신걸이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을 때 아직 회복되지 않은 창백한 얼굴색이 더욱 나빠졌다. 원유희가 순종하지 않는다는 게 김신걸을 냉정하지 못하고 더욱 짜증 나게 했다! 왜냐하면 원유희가 말을 듣고 자신만 바라봐야 마음이 편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유희는 밤이 돼서야 비로소 깨어나 자신이 이미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울지 않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병실에 들어왔는데도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다. 침대 옆이 가라앉자 김신걸이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만졌다. 그러자 원유희는 손을 뺐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어?” 김신걸은 냉혹한 얼굴로 말했다. 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고 몸을 옆으로 돌려 무표정하게 창문을 바라보았다. “유희야, 나랑 맞서서 너한테 좋을 거 없어.” 이건 그의 경고였다. 원유희는 청각을 잃은 것처럼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너 벙어리냐?” 김신걸은 그녀의 얼굴을 세게 잡고 무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원유희의 눈동자에 기복이 하나도 없었다. “네가 이러면 내가 방법이 없을 것 같아?” 김신걸은 음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여기서 계속해야 너에게 반응이 있으려나?” 원유희는 반응하고 싶지 않았지만 두려워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김신걸은 그녀의 반응에 만족하며 얇은 입술로 그녀의 핏기 없는 입술에 키스했다. 원유희는 처음엔 참을 수 있었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기 위해 김심걸의 행동은 점점 지나쳤다. “으…….” 원유희는 김신걸을 힘껏 물었다. 김신걸은 콧방귀를 뀌더니 그녀를 놓지 않고 계속 키스했다. 원유희는 호흡이 가빠와 울먹이며 그를 밀치며 발버둥 쳤다.김신걸은 그제야 키스를 끝내고 입가의 피를 핥으며 말
송욱은 매번 원유희가 입은 상처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김신걸은 그녀를 때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고문은 어떤 여자도 견딜 수 없었다. 이것은 신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타격이었다. 송욱은 원유희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서 그녀가 다치기만 하면 모두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같은 여자로서 동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송욱이 사무실에 앉자마자 노크소리가 들려왔고 그녀가 들어오라고 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송욱은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의아해하며 일어섰다. “표교장?” 그러자 표원식이 말했다. “난 이제 교장이 아니에요.” 송욱은 침묵했다. 국제뉴스까지 나와서 이미 피노키오에 큰일이 일어났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유희가 병원에 갔다고 들었어, 지금은 어때?” 표원식이 물었다. 송욱은 표원식을 보고서야 원유희의 부상이 피노키오의 일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아챘다. 표원식은 며칠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누구든지 이런 치명적인 재난을 당하면 큰 타격을 받기 마련이었다. “나는 당신이 그녀를 만나러 가게 할 수 없어요. 김신걸의 사람이 지키고 있어서 당신은 못 들어갈 거예요.” 송욱이 말했다. 표원식 이 키다리만 나타나기만 하면 경호원의 주의를 끌었다. 평시엔 모두 송욱이 주사를 놓고 지정된 간호사가 들어가서 병실을 정리했다. 심지어 마스크도 쓰지 못하게 했다. 그 정도로 엄격해서 파리 한 마리도 들어갈 수 없었다. “만나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녀와 통화하고 싶어서 그래요. 걱정 마세요. 당신을 곤란하게 할 생각 없어요.” 표원식이 계속 말했다. “송 선생님, 당신은 의사인데 김신걸이 원유희에게 하는 짓을 보면 안쓰럽지도 않아요? 그리고 유희와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는데 그녀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만 있을 거예요?” 송욱의 마음이 흔들렸다. “김신걸에게 들키면 당신뿐만 아니라 원유희도 다시 힘들어질 겁니다.” “당신 핸드폰을 그녀에게 빌려줘요, 그럼 김신걸이 발견하지 못할 거예요.” 송욱은
원유희는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클릭해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상대방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유희 씨? 유희 씨 맞아요?” “교장선생님…….” 원유희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촉촉해졌다. “김신걸이 당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원유희는 시선을 떨구고 주사를 놓은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무슨 짓을 했냐니? 그런 굴욕스런 일을 어떻게 말해…….” “나는 괜찮아요. 교장선생님은 어때요? 피노키오를 정말 돌이킬 수 없나요?” 원유희가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피노키오를 포기하고 가족과 함께 제성을 떠날 생각이에요. 유희 씨도 함께 떠나는 건 어때요?” “네? 포기라니요?” 원유희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자 표원식은 자조했다. “포기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강교 쪽에 교육 투자를 해서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어요. 유희 씨만 나랑 함께 가겠다고 하면 제성을 포기하고 김신걸 곁에서 영원히 떠날 수 있어요.” ‘김신걸을 떠난다고……?’ 표원식의 말에 원유희의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무서워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녀가 도망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매번 실패로 끝났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감히 결과를 생각하지 못했다. “유희 씨가 결정하기만 하면 내가 잘 안배할게요.” 표원식이 말했다. “교장선생님, 저…… 저는 이미 당신을 한 번 해쳤습니다. 더 이상 당신에게 영향 끼치고 싶지 않아요.” 원유희가 고통스럽게 말했다.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유희 씨에게 전화하지 않았을 거예요. 실은 내가 피노키오를 떠난 후 마음이 더 홀가분해졌어요. 이렇게 되면 걱정 없이 당신을 데리고 갈 수 있으니까요. 우리 부모님도 동의했으니까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요. 유희 씨를 제성에 버리고 간다면 난 평생 마음이 편할 수 없을 거예요.” 원유희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머리가 복잡하고 긴장되고 두려워서 결정할 수가 없었다.“괜찮아요, 기다릴 테니
“느낌이 어때?” 김신걸은 주사를 놓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 원유희의 차가운 손이 그의 큰 손바닥에서 온기를 느꼈다. 김신걸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을 녹일 수는 있었지만 이미 식어버린 그녀의 차가운 마음은 녹일 수가 없었다. “많이 좋아졌어” 원유희는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녁의 약은 내가 발라줄게.” 원유희의 긴 눈초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그녀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김신걸이 약을 발라주겠다고 하면 틀림없이 그가 약을 발라줄 것이니까. 병실의 침대는 특별히 제조한 거라서 김신걸도 매일 여기에서 잤다. 두 사람은 집에 있을 때처럼 함께 잤다. 원유희는 똑바로 누워있었는데 김신걸이 침대에 오르자 몸이 무의식적으로 경직되었다. 그녀는 김신걸이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자기를 다치게 할까 봐 무서웠다. 그녀는 뼛속까지 사무치는 두려움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김신걸은 침대에 올라가 원유희를 안고 그녀의 머리를 자기의 가슴에 기대게 했다. 원유희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나흘을 지내고 완전히 회복된 후에야 돌아갔다. 그 기간 동안 원유희는 표원식과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유희는 표원식과 떠나든 떠나지 않든 모두 그에게 말할 생각이었다. 김신걸이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산 정상의 호화 저택이었다. 원유희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었지만 예전에 소문을 들었다. 김신걸이 제성에만 해도 부동산이 100곳이 넘는다고. 그리고 제성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있었다.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는 재산이었다. 호화저택은 독립되어 있었고, 부지가 넓으며 사방의 경치가 아름다웠다. 먼 곳에는 망망한 호수까지 있어 아무도 방해할 수 없이 고요하고 자유로웠다. 원유희의 안색은 병원에 있을 때보다 더 안 좋았다. 김신걸은 정말 말한 대로 그녀를 다른 곳에 가두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파트일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표원식이 아파트에 갔었기 때문에 여기로 데려온 것 같아. 김신걸은 다른 남자에
원유희는 애원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김신걸…….” 원유희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이튿날 오전이었다. 김신걸은 보이지 않았고 방에 그의 기운도 없어 나간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원유희는 입술을 깨물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백한 얼굴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원유희는 영문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톡톡 하는 소리와 함께 이불 위에 떨어졌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몇 분 휴식한 후에야 바닥으로 내려와 욕실로 갔다. 그리고 점심은 위층 베란다에서 먹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원유희는 베란다에 서서 멀리 바라보았다. 그녀는 2층을 한 바퀴 돌아봤는데, 이곳의 베란다는 모두 유리로 막혀 있어서 뛰어내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원유희는 이게 모두 김신걸의 소행이라고 생각 들자 마음이 서늘해졌다. 황혼 무렵, 원유희는 자동차 소리만 들었는데도 놀라서 안절부절 못 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왠지 그러게 하면 마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김신걸의 긴 그림자가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 그녀는 발을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뿌리가 생긴 것처럼 찬바람 속에서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김신걸은 앞으로 걸어가 긴 팔로 원유희의 가냘픈 어깨를 감싸고 그녀의 작은 입술에 키스했다. “오늘 기분은 어때?” 원유희는 몸을 움츠린 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긴장하고 불안해서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김신걸은 거친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유희야, 앞으로 우리 쭉 여기서 살자,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원유희는 통제력을 잃고 일어서서 비틀거리며 뒷걸음을 쳤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싫어…… 김신걸, 너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제발 날 풀어줘, 아님 날 죽이든가…….” 김신걸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앞으로 당겼다. “내가 왜 너를 죽여? 나는 그냥 네가 말을 잘 들었으면 좋겠어.” “내가 정말 말 잘 들을게!”원유희는 즉
그리고 또 누군가가 들어왔다. 원유희는 눈을 살짝 떠서 송욱인 것을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송욱은 원유희의 몸을 검사하고 체온을 쟀다. “열이 좀 있어요. 일단 해열제를 좀 먹여 볼게요” 원유희는 눈을 감은 채 김신걸이 자신한테 약 한 알을 먹이는 것을 느꼈다. 송욱은 허약한 원유희를 한 눈 보고 밖으로 나가 문밖에서 기다렸다. 그러자 10분 정도 지나서 김신걸이 나왔다. “왜 열이 나는 거지? 내가 검사해 봤는데 다친 데는 없어.” “면역력이 떨어져도 열이 날 수 있어요.” 송욱이 말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김신걸에게 말했다. “김 대표님, 사모님은 철몸이 아니에요. 김 대표님 앞에선 사모님이 너무나도 허약합니다.” 김신걸은 보기만 해도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두려움이 앞섰다. “그녀가 푹 쉬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송욱이 말했다. 김신걸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한마디도 하지 않고 떠났다. 송욱은 한숨을 돌리고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원유희는 몸이 아주 얇아 보였다. 요즘 따라 더 핼쑥해진 것 같았다. “원유희 씨?” 원유희는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송욱이 말했다. “김 대표님은 아래층으로 내려갔어요.” “나…… 표원식에게 전화하고 싶어요. 저 결정했어요. 영원히 제성과 김신걸에게서 떠날 것이라고…….” 원유희는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송욱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아이는요?” 그 말을 들은 원유희의 눈에 고통이 스쳤다. 그리고 더 사납게 울기 시작했다. “내가 실종되는 거랑 김신걸 손에 죽는 거랑 어떤 게 아이에게 좋을 것 같아요?” 송욱은 말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도 실종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김신걸은 미쳤어요. 난 언젠가 그의 손에 죽을 거예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떠나는 게 나아요. 그러면 적어도 아이들에겐 엄마가 있잖아요. 하지만 내가 죽으면 그것조차 없어져요…….”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