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눈물을 흘리려고 할 때 욕실 문이 열렸다. 원유희는 욕실로 들어오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을 보고 놀라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김신걸은 그녀의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쳤어? 어디 봐봐…….” “오지 마…….” 원유희는 고개를 저으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오지 마…….” 김신걸은 검은 눈동자로 아래를 쳐다보았다. ‘난 그녀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다만 어제 낮에 마음이 답답했는데 저녁에 원유희가 화를 식혀주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반항해서 화를 주체하지 못해 동작이 좀 심하긴 했지.’ 화를 가라앉힌 후에 그는 바로 후회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통제하지 못해서 미안해. 그러니까 말 듣고 이리 와, 내가 확인해 보자.” 김신걸은 앞으로 걸어갔다. 원유희는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필요 없어…… 아니…… 아!” 김신걸은 원유희를 강제로 잡아당겨 안고 욕실에서 나와 침대에 놓았다. 원유희는 일어나려 했지만 남자의 힘이 너무 세 전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원유희는 김신걸이 송욱을 불러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움츠리고 앉아 이불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런 모욕감은 그녀로 하여금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송욱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기세가 강한 김신걸에게 말했다. “김 사장님, 일단 나가주시겠어요?” 김신걸은 잠깐 멍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송욱이 물었다. “다쳤어요?” “나에게 연고를 주면 돼, 내가 직접 바를게.” 송욱은 그녀의 마음을 알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김신걸이 원유희를 다치게 한 적은 없었는데! 더군다나 원유희는 아직 사모님인데.’ “혹시 그의 심기를 건드렸나요?” “나는 단지 그가 윤설과 키스하는 것을 보고 이혼하자고 한 것뿐이에요. 그게 무슨 잘못인가요?” 원유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송욱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윤설과 김신걸이?’ 이
원유희는 송욱이 평생 만질 수 없거나 열흘 보름동안 건드릴 수 없다고 말했으면 했다. 그러면 더 이상 김신걸이란 그늘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러나 그녀는 일주일까지 필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길면 영리한 김신걸이 발견할까 봐 최대한 그럴싸하게 말한 것이었다. 송욱이 떠나자 원유희는 마침 방을 나갔다. “왜 나왔어? 다쳤으니 쉬고 있지.” 김신걸이 원유희의 손을 잡으려고 하자 그녀는 데인 듯 손을 움츠렸다. 김신걸의 안색이 변하더니 화가 가슴까지 치밀어올라 머리를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신걸은 참았다. “회사에 가봐야 해서. 연고를 발랐으니 이제 괜찮아.” 원유희는 어젯밤의 무서운 경험에 겁먹어 김신걸에 대한 거부감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무서워서. 원유희는 정말 김신걸에게 찢기고 싶지 않았다……. “말 들어, 급히 회사에 갈 필요 없어.” 김신걸은 원유희의 허리를 당겨 그녀를 안았다. 그러자 원유희의 몸이 굳어졌다. 김신걸의 힘이 그녀를 겁먹게 했다. 원유희를 침대에 눕힌 후 김신걸은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내가 먹을 거 가져다줄게. 함부로 뛰어다니지 마, 그래야 빨리 회복하지. 알았어?” 원유희는 고개를 숙였다. 김신걸의 낮고 자석 같은 목소리가 그녀의 눈시울을 찡하게 했다. ‘결국 내가 말을 들어야만 김신걸에게 상처받지 않는 건가?’ 김신걸은 아침밥을 가져와 숟가락으로 좁쌀죽을 떠서 원유희에게 먹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유희는 거절하지 않고 고분고분 받아먹었다. 입가에 묻자 김신걸이 거친 손으로 닦아주었다. 원유희는 눈을 파르르 떨며 눈물이랑 죽을 함께 삼켰다. 다 먹자 김신걸은 원유희를 품에 안고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문질렀다. “아직도 아파?” 품속의 몸은 굳어있었다. 하긴, 맹수에게 안겨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유희는 비록 송욱이 그렇게 말했지만, 만약 김신걸을 화나게 한다면 자신의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
서재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김신걸이 나와서 말했다. “점심 준비해.” “네.” 아주머니는 대답하고 나갔다. “일어났어?” 그는 원유희에게 다가가 물었다. “좀 나아졌어?” 원유희는 그의 희노무상한 성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걱정되면 왜 이렇게까지 상처 주는데?’ ‘상처 줄 때는 걱정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나?’ “왜 말을 안 해?” 김신걸은 부담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별 느낌이 없어.” 원유희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래, 밥 먹고 어전원에 갔다 오자. 육가 어르신께서 비행기를 보내셨어. 세 아이도 이틀이나 널 보지 못했고.” 김신걸이 말했다. 아이가 생각난 원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을 먹은 후, 그녀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어전원으로 돌아갔다. 도중에 그녀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김신걸이 말을 하면 그녀는 대답만 했다. 차 안에 답답한 분위기가 흘렀다. 어전원에 도착하니 세 아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원유희는 아이들의 방으로 갔다. 침대 옆에 앉아 그들의 순수하고 귀여운 얼굴을 보면서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만졌다. 그녀는 가슴이 너무나도 아팠다. ‘아직 어려서 엄마 아빠의 품이 그리울 텐데. 하지만 만약 김신걸이 또다시 나에게 상처 준다면 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엄마?” 유담이 깨어났다. 이어 조한과 상우도 깨어났다. “엄마…….” “엄마 여기 있어.” 원유희는 유담의 작은 배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자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엄마 품속으로 들어갔다. “엄마랑 아빠 데이트하러 갔어요?” 조한이 물었다. 원유희는 그들을 안고 흔들거렸다. “그래, 데이트하러 갔지.” 원유희는 아이들에게 그런 나쁜 일을 말하지 않았다. ‘애들한테 아빠가 엄마를 다치게 했다고 말할 순 없잖아?’ 그녀는 아이들이 아빠를 숭배하고 좋아한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조한은 성질이 급하고 아빠한테 화 나도 아빠가 안 보이면 또 전화
세 아이가 헬리콥터를 받았으니 태공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려고 전화했다.전화를 걸자 방금까지 화가 나있던 조한은 금세 잊고 동영상 속의 태공과 이야기했다.아이들은 헬리콥터가 예쁘다고 나중에 커서 비행기를 운전해 태공을 태우고 하늘로 올라가겠다고 말해 태공의 환심을 샀다.원유희는 세 아이가 핸드폰을 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일어나 김신걸 앞으로 걸어갔다.“나 할 말 있어.”원유희는 예전에 윤설의 피아노를 놓았던 거실에 가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왜 아이한테 그렇게 인내심이 없어?”“아이는 원래 가르쳐야 하는 거야.”“나도 가르쳐야 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애들이 겨우 두 살인데, 잘 말하면 안 돼?”원유희는 아이들이 우수하고 철이 들었기 때문에 잘 타이르면 절대로 그렇게 막무가내로 때 쓸 아이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김신걸은 독단적인 생각을 억누르고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알았어.”원유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가려고 했는데 김신걸에게 팔을 잡혔다.“다른 할 말 없어?”김신걸이 물었다.“무슨 말?”원유희는 이해하지 못했다. 김신걸의 손에서 전해오는 강대한 힘이 그녀를 당황하게 했다.그 힘은 점점 강력해지고 있었다.“윽!”원유희는 청아한 미간을 찌푸리며 가볍게 신음소리를 냈다.김신걸은 정신을 차리고 힘을 줄이고 말했다.“난 아직 육성현 그 사람을 믿을 수 없어. 비행기를 점검해 보고 아무 문제없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탈 거야.”원유희는 그가 이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그렇다고 해도 아이에게 무섭게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하면 아이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가져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의 손에 잡힌 팔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순종하는 태도로 말했다.“알았어. 이제 날 놓아줄래?”김신걸은 감정을 억제하고 손을 놓자 원유희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거실에서 나가자 아이들과 함께 있던 원유희가 그를 완전히 무시했다.무시당한 김신걸은 짜증 나
하지만 여기에는 암실이 있었다. 옆에 있는 고동꽃병을 움직이면 멀쩡해 보이던 벽면이 갈라지면서 별다른 천지가 펼쳐지게 된다. 깊은 곳엔 빛이 어두워 사람의 그림자가 벽에 비쳐 일그러진 괴물 같았다. 벽을 자세히 보면 여러 가지 날카로운 도구들이 걸려 있었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구석에서 한 여자가 나일론 끈에 손발이 묶여 웅크리고 앉아있었는데, 드러난 피부에는 후려 맞은 상처가 가득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긴 머리가 드리워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고개 들어!” 부하가 앞으로 가서 발로 걷어찼다. 여자가 움직이더니 고개를 들어 얼굴을 내밀었다. 라인이었다. 김신걸이 그렇게 찾아도 찾지 못했던 라인이 여기에 있었다. 라인의 눈빛은 여전히 사나웠다. 마치 갇힌 짐승처럼 저항을 하고 있었다. 수하가 말했다. “육 대표님, 이 여자가 계속 자신이 소재한 조직이 어디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에 육성현은 경외에서‘천애’라는 조직을 접촉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팔에는 모두 검은색의 원형 문신이 있었다. 라인이 바로 그 조직의 멤버였다. 애초에 육성현이 경외거래를 할 때 라인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김신걸이 찾는 사람이 이 여자일 줄은 몰랐어.’ “내가 말했잖아, 난 김명화의 도움으로 이미 조직을 이탈했다고.” 라인은 다시 한번 해명했다. “내가 알기론 그 조직은 죽음만 있을 뿐 이탈할 가능성은 없는 것 같은데, 김명화가 큰돈을 들여 너를 샀나 보군.” 육성현이 말했다. “하지만 그게 네가 천애의 본부를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아니지.” 라인의 눈에는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어차피 내가 말하든 말하지 않든 결과는 모두 죽음이니까 마음대로 해!” ‘육성현 손에 죽는다고 해도 난 천애의 본부 위치를 말할 수 없어.’ 왜냐하면 그녀가 천애에 들어간 첫날부터 그 안의 사람들은 인간성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에 들어가면 곱게 죽이는 게 아니
“그건 나랑 상관없지.” 육성현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단지 천애라는 조직을 갖고 싶을 뿐이야. 다른 사람의 생사를 좌우지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아?” 육성현이 떠난 후 그날 저녁, 수하들은 밀실에 들어가 라인을 지키고 있었다. 라인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물었다. “또 뭘 하려고?” “지금 보니 네가 좀 이쁜 거 같아서, 내가 진작에 너랑 하고 싶은 일이 있었거든.” 부하는 변태 같이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졌다. 라인은 움직이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눈앞에 감히 자기를 건드리는 자식을 어떻게 죽일지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밖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른 곳으로 보냈어. 소리 질러도 아무도 듣지 못할 것이야.” 부하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그녀의 얼굴에 뽀뽀하고 손으로 마구 만졌다. 이때 라인은 부하의 말에서 메시지를 얻었다. ‘그러니까 지금 밖에 아무도 없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이 남자한테 칼 같은 거 있지 않을까?’ “이런 짓을 하기 전에…… 위험이 있을 거라는 걸 인지했어야지!” 라인이 말했다. 남자가 반응하기도 전에 라인이 발차기로 넘어뜨렸다. “아!” 이어 라인은 몸을 돌려 등을 맞대고 팔을 이용해 남자의 목을 힘껏 끼웠다. 남자는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왜냐면 라인에게 있어서 살인은 전문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발버둥을 멈추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라인은 팔을 풀고 바닥에 앉아 남자를 등지고 힘겹게 그의 몸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스위스 군도 한 자루를 찾았다. ‘칼이 있으면 훨씬 수월하지.’ 라인은 우선 칼로 손목에 있는 나일론 끈을 끊고 이어서 발을 묶은 나일론 꾼도 베었다. 하지만 그녀의 발목에는 아직도 쇠사슬이 잠겨 있었다! 라인은 다시 남자의 몸을 더듬어 열쇠 한 꾸러미를 찾아냈다. 열쇠가 무려 십여 자루가 있었다. 그녀는 하나하나 돌아가면서 해 보았지만 모두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쇠사슬을 풀지 않으면 그녀는 여전히 갈 수
이때 커튼 사이에 손가락 넓이의 틈이 생겨 바깥의 빛이 들어왔다. 엄혜정은 몸과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녀는 육성현이 침대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있다면 허리에 그의 손이 얹어져 있었을 테니까. 엄혜정은 가운데의 한 줄기 빛을 5분 동안 쳐다보다 피곤해서 일어났다. 침대 머리맡의 버튼을 누르자 안쪽의 커튼이 열려 얇은 거즈커튼만 남았다. 이렇게 하면 방 전체가 밝아지지만 햇빛 때문에 눈부시진 않았다. 엄혜정은 침대에서 내려와 아픈 몸을 이끌고 옷방으로 갔다. 첫날, 둘째 날, 셋째 날에는 어떻게 해서 제시간에 회사에 갈 수 있었는데, 나흘째가 되자 그녀는 너무 피곤해서 아무리 애써도 일어나지 못했다. 야근을 계속하면 몸이 최고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엄혜정은 옷을 꺼내 바깥의 동정을 들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약병을 열어 안에 있는 알약을 입에 쑤셔 넣었다. 육성현이 발견할까 봐 엄혜정은 지금 물을 마시지 않아도 약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약이 작아서 물 없이 삼켜도 큰 부담은 없었다. 육성현은 아이를 가지는 일에 집착이 심했다. 요즘은 배란기간이라 매일 약을 먹어야 했다. 두 알, 세 알씩 먹고 싶었지만 몸에 이상이 올까 봐 그러지 못했다. 엄혜정은 10시가 되어서야 회사에 갔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육성현에게 커피를 타 주었다. 노크하고 들어가니 안에 다른 고위층들이 육성현과 회사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그들은 커피를 들고 들어오는 비서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커피를 육성현의 손에 놓고 막 떠나려던 참에 육성현이 말했다. “너 기다려.” 엄혜정은 옆에 서서 가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자 고위층이 계속 말했다. 엄혜정은 원래 편하게 듣고 있었는데, 갑가지 놀라 몸이 파르르 떨렸다. 육성현이 길쭉한 손가락에 금속 만년필을 끼워 가볍게 그녀의 다리를 긁었다. 금속의 차가운 촉감이 피부에 닿자 엄혜정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육성현은 고위층의 보고를 들으면서 커피를 들고
문득 어제 오후 육성현이 회사를 떠났던 일, 그리고 어젯밤에 걸려온 전화가 생각나 엄혜정은 정색해서 그에게 물었다. “당신 뭐 했어?” “하긴 뭘 해?” “어제 오후에 분명히 회사에 왔는데 바로 갔잖아, 어디 갔었어?” “일이 있어서.” “회사와 상관없는 일이지?” 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다리에 앉히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왜 이렇게 예민한 거야? 너의 몸이랑 같잖아. 내가 네 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 나 일하러 갈게.” 엄혜정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질문을 한 내가 바보지. 정말 무슨 일이 있다고 한들 육성현이 나한테 말해주겠냐고.’ “당신의 업무 상대는 나 아니야?” 육성현은 엄혜정을 놓아주지 않았다. “당신은 일 안 해?” 엄혜정이 물었다. 고개를 돌려 책상우에 놓여있는 그가 점검하고 서명해야 할 서류를 본 육성현은 안색이 변하더니 그녀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아쉬운 말투로 말했다. “어제 제성에 갔었는데 유희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 전화해서 물어봐.” 엄혜정은 일어서서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어제 왜 말하지 않았어?” 육성현은 고개를 들어 엄혜정을 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엄혜정이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했다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사무실에서 나왔다. 엄혜정은 부서에 도착해서 바로 책상 위의 핸드폰을 가지고 화장실로 가서 원유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유희는 사무실에서 의료자료를 보고 있었는데 엄혜정에게서 전화가 와서 바로 받았다. “혜정아.” “육성현이 너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고 하던데 혹시 어디 아픈 거야?” 엄혜정이 물었다. 원유희는 엄혜정이 이걸 물어볼 줄은 몰랐다. ‘어제 김신걸이 육성현에게 내가 술 마셔서 그런 거라고 말했는데. 육성현이 그 말을 안 믿었나 보네. 아주 똑똑한 남자라니까.’ “그 전날 저녁에 회식을 했는데, 술을 좀 많이 마셔서 아침에 머리가 아팠거든. 근데 마침 삼촌이 오전에 와서 내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