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이 이모는 그제야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이 성도윤인 것을 발견했다.“어머나, 이 나쁜 놈이 왜 영화까지 찍었어요? 성대 그룹이 파산하나요? 높으신 대표님이 왜 연예계에 돈 벌러 가셨어요?”차설아는 어이없는 얼굴로 농담하듯이 말했다.“저 여자 주인공을 꼬시기 위해서라고 하네요.”“퉷!”성도윤이 임채원의 일로 차설아를 목졸라 죽일 뻔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민이 이모는 성도윤을 극도로 싫어했다. 매일 남자를 저주하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지금 이 냉철하고 무정한 남자가 또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었다는 말을 듣고 더욱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매정한 인간은 조만간 여자의 손에 죽게 될 거예요. 이혼 너무 잘하셨어요. 아니면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을 저지르고 다닐지 몰라요. 아이들이 그런 환경에서 절대 행복하게 자랄 수 없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이혼은 너무 명확한 선택이었네요.”“...”차설아는 담담하게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약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민이 이모의 말을 듣고 함께 남자를 마구 욕했을 것이다.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차설아는 욕을 할 수 없었다. 항상 그 차가워 보이던 남자가 생각만큼 그렇게 냉혹하고 무자비한 인간이 아니고, 그도 섬세한 마음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결말을 쓸 수 없을 것이다.“됐어요, 아이도 있으니 더 욕하지 않겠어요.”민이 이모는 심호흡을 하고 애써 화를 가라앉혔다.민이 이모는 관례대로 차설아의 맥을 짚고, 태아의 건강, 혈당 및 혈압 등을 측정했고, 모든 지수가 정상이었다.“아기들이 참 대견해요. 너무 잘 자라고 있어요.”민이 이모는 기뻐하며 말했다.“아가씨께서 수중 분만을 원하신다는 말을 듣고 경수 도련님이 얼마 전 몰래 디자이너와 일꾼들을 불러 수중 분만실을 수리했어요. 방은 침하 식으로 설계되어 바다 밑까지 뻗어 있고 벽도 모두 유리 재질로 되어 있어요. 출산하시면서 주변에 바닷가 생물들이 헤엄치는
성도윤은 ‘차성 커플’ 영화가 실검에 올라 세계의 이목을 끌면 차설아가 분명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하지만 여자의 반응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이 영화는 아직 소규모 개봉일 뿐, 정식 개봉도 하지 않았다. ‘이 여자가 많이 급한가 봐? 쿨하게 떠난 건 아닌가 보네?’사도현은 거들먹거리며 성대 그룹의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고, 성도윤의 손에 작은 쪽지를 쥐여 주었다.“형, 잘 챙겨. 내가 이렇게까지 도와줬는데, 놓치면 그건 형 능력 문제야. 그때 가서 날 탓하지 마.”일에 열중하고 있던 성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손에 든 쪽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이게 뭐야?”“차설아 위치!”사도현은 감격스러워 말했다.“내가 방금 누가 배급사의 내부 시스템을 해킹해서 영화를 복사해 갔다고 했잖아. 내가 거금을 들여 해커를 고용해 그 사람의 주소를 확인했지. 이름도 없는 작은 섬이지 뭐야. 어쩌면 차설아가 지금 그 섬에 있을지도...”“쯧쯧, 어쩐지 우리가 오랫동안 찾아도 소식이 없더라니. 그런 곳에 숨어있을 줄이야.”성도윤의 그윽한 눈동자는 순간 흔들리더니 이내 덤덤하고 차가운 모습으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어디에 있든 나랑 상관없어. 나 이거 필요 없으니 가져가.”“형, 그게 뭔 말이야? 나한테 설아의 움직임을 지켜보라고 했잖아. 애초에 이 영화를 만들고, 직접 출연한 것도 차설아에게 이런 방식으로 사과하려던 거 아니었어? 드디어 차설아가 미끼를 물었는데, 이제 와서 형이랑 상관없다고?”“내가 지켜보라고 한 건, 진짜 미련 없이 쿨하게 떠난 게 맞는지 확인해 보려던 거였어. 이제 확인했으니, 그 여자가 어디 있는지 나랑 상관없어.”성도윤은 말하면서 손에 있는 서류를 처리했다. 마치 차설아가 어디 있는지 관심이 없고, 찾아갈 생각은 더더욱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이에 사도현은 크게 당황했다.사도현은 자신이 차설아의 주소를 알아내면 성도윤이 밤새 헬기라도 타고 날아갈 줄 알았다. 차설아를 찾은 ‘공’으로 앞으로 3
그룹 빌딩 전체에는 직원이 거의 없었다.성도윤은 사무실에 앉아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처리하고 있었다.최근 몇 년 동안 성대 그룹은 빠르게 발전함과 동시에 많은 문제와 적들이 생겼다.특히 전자 기술 분야에서 성대 그룹은 R&D 회사인 KCL과 오랜 협력으로 거의 천하무적이었고 시장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었다.따라서 많은 경쟁자들이 암암리에 행동을 개시했다. 전체적인 판도는 변하지 않았지만, 시간을 들여 처리해야 하니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예를 들어, 최근 누군가 끊임없이 루머를 퍼뜨리고 있었다. 성대 그룹이 새로 출시한 스마트 팔찌는 사용자의 사생활을 도청한다고 하여, 성대 그룹은 많은 컴플레인과 고소를 당했다. 이미지가 계속 손상되고 있어 아주 번거로웠다.“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홍보팀에 알리세요.”“당장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내고, 법무팀에 고소장을 준비해 허위사실 유포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으라고 하세요.”“스마트 팔찌를 일단 회수하고 기술팀에 진짜 허점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하세요.”“…”성도윤은 얼마나 많은 화상 통화를 하고, 얼마나 많은 서류에 사인하고,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를 검토했는지 모른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가서 사도현이 찢어서 버린 쪽지를 주었다.쪽지는 크지 않았지만, 눈송이 모양으로 찢어져서 붙이기 쉽지 않았다.성도윤은 머리를 파묻고 한참이나 붙이더니 눈이 침침해지고 머리가 윙윙거렸다.‘망할 사도현, 전생에 분쇄기였나? 쪽지를 이렇게 찢으면 어떡해!”거의 붙이려던 순간, 비서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대표님.”“콜록!”성도윤은 도둑질한 듯 서둘러 종이를 막았지만, 동작이 너무 커서 그대로 날아가 땅바닥에 너부러졌다.비서는 화들짝 놀라 다가가 물었다.“대표님, 괜찮으세요?”“움직이지 말아요!”성도윤은 큰소리로 외치며 바닥에 떨어진 종잇조각을 보며 차갑게 명령했다.“밟지 말아요!”비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대표님, 바닥이 너무
성도윤은 자가용 비행기를 출동시켜, 가장 빠른 속도로 밤새 사도현이 알려준 섬으로 날아갔다.도중에 성도윤은 차설아를 만나면 무조건 도도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다짐했다.‘한밤중에 내가 설아를 찾아가는 건 절대 보고 싶어서도 아니고, 다시 잘해보려는 것도 아니야. 단지 회사에 최근 법무 문제가 너무 많아서 성윤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를 빌리려고 가는 것뿐이야! 맞아! 바로 그거야!’성도윤은 끝내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음날 새벽이었다.주황색 아침 해가 해수면에 떠오르고 검푸른 바닷물이 붉게 물들어 장관을 연출했다.성도윤은 현지 보트를 타고 파도를 헤치고 섬에 올랐다.섬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소녀가 마중 나왔다.“아저씨, 설아 이모 찾으러 왔어요?”어린 소녀는 햇볕에 그을린 작은 얼굴을 하고는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맞아.”성도윤은 어린 소녀를 보며 속으로 매우 기뻐했다.‘차설아, 이제야 정신을 차렸나 보네. 사람을 보내 날 접대할 줄도 알고.’“그럼 아저씨 나 따라오세요, 제가 설아 이모한테 데려다줄게요!”어린 소녀는 성도윤을 향해 손짓하며 앞으로 달려갔다.성도윤은 의심하지 않고 그 뒤를 따랐다.원래 그리 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성도윤이 순진했다.태엽을 감는 것처럼 산 밑의 굽이굽이를 돌아 꼬박 두 시간 동안이나 계속 올랐다.건장한 성도윤도 힘이 들어 숨을 헐떡이며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소녀에게 말했다.“아직도 멀었어? 대체 어디 있는 거야?”“설아 이모 집은 멀지만 아주 예뻐요. 무릉도원이라고요. 가면 반드시 좋아하게 될 거예요.”성도윤은 불평을 부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그럼 우리 좀 쉬었다 가자.”“아저씨, 고작 이만큼 걷고 힘든 거예요? 역시 설아 이모 말대로 약골이네요.”“???”‘차설아, 아주 잡히기만 해봐. 내가 약골인지 아닌지 제대로 보여줄 테니.’또 세 시간 남짓 걸은 끝에 산기슭에서 산꼭대기까지 올랐다.성도윤은 멀리 넓은
성당의 문은 닫혀 있었다.성도윤은 바로 문을 열려고 했지만 괜히 체면을 구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 문밖에 서서 목을 가다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알아서 나와.”“...”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성도윤은 불쾌한 마음을 억누르고 계속 도도한 자태로 말을 이어갔다.“밀당도 정도껏 해야지. 인내심이 거의 한계에 다다랐어. 내가 들어가면 당신은 끝장이야.”‘흥, 내가 비행기에 보트를 타고 온 것도 모자라 산도 몇 시간이나 올랐다고. 이렇게 먼 곳까지 왔는데 배웅쯤은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하지만...성당 안에는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성도윤은 화난 마음에 문을 확 열고 들어갔다.“차설아, 너무한 거 아니야? 당신...”“서프라이즈! 도윤 씨, 제대로 속은 거 축하해!”성당 안에서 차설아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텅 빈 성당 한가운데에 곰 인형이 하나 놓여 있었다.인형 안에는 무전기가 설치돼 있었는데 곰 인형은 마치 영혼이 실린 듯이 성도윤을 비웃고 있었다.“하하하, 성도윤 대표님. 정말 너무 바보스럽군요. 정말 나 찾으러 여기까지 오다니...”“괜한 힘 쓰지 마. 내가 허락하지 않은 이상, 당신은 영원히 나를 찾지 못할 거야.”“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때가 된다면 내가 알아서 나타날 테니 그때 꼭 마중 나와!”곰 인형은 차설아의 목소리를 내며 비꼬는 투로 말했다.“차설아!”성도윤은 남을 상대하려고 계략을 꾸미던 총명한 자신이 차설아에게 쩔쩔매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곰 인형을 확 잡더니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곰 인형이 또 말하기 시작했다.“나 부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이 섬에서 영영 나가지 못할 거야. 정 믿지 못하겠으면 지갑 한 번 찾아봐!”성도윤은 곧바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보더니 지갑은 역시 사라졌다.아까 그 어린 여자아이가 훔쳐 갔다는 사실을 그는 곧바로 알아챘다.지금 쫓아가봤자 그 여자아이를 찾을 수 없을 것
4년 후, 해안 공항에서.붐비는 인파 속에서 선글라스를 낀 젊은 여자는 블랙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브이넥에 허리를 잡아주는 디자인의 원피스는 그녀의 우아한 자태를 감쌌다.그녀의 얼굴은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늘씬한 다리에 하이힐을 신은 채 도도하고 안정하게 걸어갔는데 카리스마 있는 그녀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아아, 설아 언니, 나 여기 있어!”공항 밖, 빨간색 페라리 스포츠카에 기대고 있던 배경윤은 지루했는지 하품을 하다가 문득 공항에서 나오는 차설아를 보고는 팔을 흔들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차설아는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여유롭게 배경윤 앞에 멈춰 섰다.우아하게 선글라스를 벗으며 부드러운 미소로 배경윤을 보고는 말했다.“경윤아, 조용히 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네가 나 따라다니는 변태 사생팬인 줄 알겠어!”“내가 어떻게 조용히 해!”배경윤은 곧바로 차설아에게 덮치더니 그녀는 꽉 끌어안고는 말했다.“4년이야, 4년이나 지났다고! 설아 언니, 왜 이제 온 거야? 내가 얼마나 보고 싶은 줄 알아?”흥분된 배경윤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차설아가 웃으며 말했다.“뭐야? 우리 어젯밤에 방금 영상통화를 했잖아.”“영상통화랑 직접 만나는 게 같냐고? 영상통화만 한다면 언니를 안을 수도 없잖아. 정말 보고 싶었다고!”배경윤은 또 차설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혀를 내둘렀다.“이야, 이 개미허리를 좀 봐. 그리고 가슴도 조금 더 커진 것 같은데? 엉덩이는... 어머, 더 단단해졌네, 꿀벅지야. 이게 어디 아이를 낳은 엄마의 몸매냐고?”“솔직히 말해봐! 가짜 임신한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이 대신 아이를 낳아줬지? 아니면... 물고기처럼 알만 낳은 거 아니야? 아니면 몸매가 이렇게 좋을 리가 없는데.”차설아는 어이가 없었다.“됐어, 그만해. 얼른 차에 타자고. 나 이번에 오래 있지 않을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돌아온 걸 알게 하고 싶지 않아.”“알겠어!”배경윤도 눈치가 빠르고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그녀는 손가락을
배경윤이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소리를 마구 지르기 시작했다.“똑바로 앉아!”차설아는 웃으면서 배경윤에게 말했다.그녀 또한 마음이 상쾌했다.최근 몇 년 동안 그녀는 해바라기 섬에서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살았다고 하지만 해안이야말로 그녀가 어려서부터 자란 집이었고 그녀의 뿌리였다.해안에는 그녀의 친인과 친구들이 있었고, 돌아갈 수 없는 그녀의 청춘이 있었고, 또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있었기에 해안에 돌아오면 심신이 안정되는 듯한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그래서 때가 되면, 그녀에게 보호하고 싶은 사람들을 충분히 보호할 힘이 생긴다면 당연히 제일 먼저 해안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했다.차설아는 속도를 점점 줄였다.배경윤도 마음껏 소리를 지르더니 설레던 마음이 겨우 가라앉았다. 조수석에 얌전히 앉고는 다시 차설아에게 물었다.“언니, 나한테만 슬쩍 말해주면 안 돼? 이번에 왜 갑자기 돌아오게 된 거야? 무슨 비밀 계획이 있어? 왜 우리 오빠까지 언니가 돌아온 걸 알게 하면 안 되는 건데?”차설아는 이번에 해안으로 돌아온 소식을 배경윤에게만 알렸다. 그리고 배경윤에게도 신신당부했었다, 이번 일은 배경수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 된다고 말이다.차설아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턱을 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계획 같은 거 없어. 그냥 집이 그리워서 왔을 뿐이야. 왔던 김에 불에 탔던 차씨 저택도 다시 제대로 돌려놔야지. 그래야 아이들이 돌아와도 묵을 집이 있을 거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배경윤은 두 눈을 반짝이더니 다시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그러니까 두 아이를 데리고 해안으로 돌아올 생각이야? 그럼 다시는 안 가?”차설아는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된다면.”“당연히 순조롭게 진행될 거야!”배경윤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말했다.“언니가 돌아온다면 정말 좋아! 그럼 우리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거잖아. 잘생긴 남자와 데이트도 하고 말이야... 언니는 모르지? 나 언니 없는 동안에 얼마
“내 아이들을 뺏어?”차설아는 갑자기 차가운 얼굴을 보이더니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그럴 능력이 있는지 한번 지켜보자고.”“내가 언니 실력을 믿지 않는 건 아니야. 천신 그룹도 언니가 잘 다스린 덕에 업계 최고가 되었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성도윤이라고. 그 사람이 어디 조금 독한 사람이야? 개도 성도윤을 보면 꼬리를 숨기고 도망가겠어. 정말 성도윤이랑 맞서 싸운다면 일이 매우 번거로워질 거야...”배경윤은 걱정이 가득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성도윤은 물론, 성도윤 배후에 있는 성씨 가문은 더 상대하기 어려웠다.차설아의 능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배씨 가문이 뒤 바쳐줄 거라고 해도 그녀의 승산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아니면 돌아오지 않는 게 어때? 원이랑 달이가 얼마나 귀여운데, 만약 그놈한테 빼앗긴다면 나 진짜 울어버릴 거야!”“절대 그럴 리가 없어!”차설아가 당당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차를 운전했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 있는 미소가 번졌다.“내가 그동안 섬에서 바다 구경이나 했는 줄 알아? 성도윤이 만약 내 아이들을 빼앗아 가려 한다면 꼬리를 숨기고 도망가야 할 사람은 성도윤이 될 거야!”말을 마친 차설아는 미간을 좁히더니 액셀을 밟고는 더 빠른 속도로 국도를 달렸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갑자기 고장이 났는지 멈춰 섰다.“왜 이래? 내가 금방 산 차가 벌써 고장이 나다니?”배경윤은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차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조바심이 난 채로 멈춰 선 차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아마 엔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여기 앉아 있어. 내가 내려가서 체크할게.”차설아가 덤덤한 얼굴로 배경윤을 진정시키고는 여유롭게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보닛을 열고 지지대로 받치고는 허리를 굽혀 엔진 상태를 검사했다.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흘러내렸고, 굴곡 있는 몸매까지 더해져 모델 같은 섹시함을 드러냈다.뜨거운 태양 아래의 스포츠카와 미모의 차설아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