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수의 말에 현장에 있던 경찰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들은 단지 신고를 받고 조사를 진행하려던 참이었다.‘아직 아무런 심문도 하지 않았는데,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흥분한 거야?’볼수록 의심스러웠다.경찰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맞든 아니든 저희가 다 조사할 겁니다. 그러니 함께 서로 가시죠.”그렇게, 유상수는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경찰에게 끌려갔다.병원.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의사가 최연서 목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가느다란 목에 몇 개의 바늘 자국이 더 생겨 유독 눈에 띄었다.유현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의사에게 부탁했다.“치료 잘 부탁드릴게요. 돈은 얼마가 들어도 괜찮아요. 최대한 흉터가 안 남게 해주세요.”의사가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상처가 너무 깊지는 않아 시간이 지나면 흉터가 거의 티 나지 않을 거예요.”최연서가 말했다.“흉터 생겨도 괜찮아요. 전 카메라 앞에 서지 않으니까요.”유현진이 말했다.“여자라면 아무도 몸에 흉터가 남는 걸 원하지 않아요.”그 말에 최연서는 조금 감동한 것 같았다.의사가 자리를 비우자 유현진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너무 충동적이었어요. 유현아가 멍청한 데다 욕심이 많아서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만약 끝까지 연서 씨 말을 믿지 않고 연서 씨를 데리고 유상수를 찾았으면 어쩔 뻔 했어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최연서가 나지막이 말했다.“유현아의 욕망에 도박 한 번 걸어본 거죠. 게다가 전 예약 문자까지 설정해 둬서 만약 제가 연락이 안되면 동생이 바로 신고할 거예요. 기껏해야 제가 개고생 좀 했겠네요. 하지만 현진 씨를 도와 그 인간들을 감옥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어요.”유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너무 위험했다고요.”유현진은 그저 돈을 조금 썼을 뿐이다. 이 정도로 큰 리스크까지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러나 최연서는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현진 씨에게는 그저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는 작은
유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나 열심히 촬영해서 상도 많이 받고 제일 돈 잘 버는 배우가 될게. 나중에 우리가 결혼하면 넌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집에서 집안일만 해도 내가 너 먹여 살릴 수 있어.”“...”강한서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그게 네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야?”‘집에서 집안일이나 하라고? 그런 얼토당토않은 얘기는 너만 할 수 있을 거야.’유현진은 손을 뻗어 강한서의 볼을 꼬집었다.“어쩔 수 없잖아. 네가 밖에서 다니면 여자들이 너무 꼬여. 아무래도 숨기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강한서가 콧방귀를 뀌었다.“그 정도 돈을 벌어서는 나 먹여 살리기 힘들걸.”유현진이 눈을 깜박였다.“그래? 우리가 결혼했던 그 몇 년 동안, 넌 돈도 별로 안 썼던 것 같은데. 내가 너에게 사준 옷들, 옷장 하나 다 합쳐도 내 가방보다 쌀 걸?”“...”“넌 대체 무슨 염치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유현진이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내가 너에게 싸구려를 사준 걸 알면서도 왜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거야?”강한서가 입을 삐죽였다.“내가 널 몰라? 내가 조금만 안 좋게 말하면 넌 영원히 뭘 사주지 않을 거잖아. 다시는 도시락을 싸주지 않았던 것처럼. 사주기라도 하니 다행인 거지, 또 뭘 고르기까지 하겠어.”유현진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그녀는 단 한 번도 강한서가 그런 마음으로 자신이 사준 옷에 까다롭게 굴지 않은 것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사실 그게 전부의 이유는 아니었다.유현진이 산 옷들은 중요한 자리에 참석할 때 입을 수는 없었지만 평소에 입고 다니기에는 충분했다.그녀가 산 옷들은 전부 가성비가 높았고 편하기도 했다. 유현진은 꽤 세심한 편이라 강한서가 자주 입는 옷을 기억해 그가 어떤 브랜드와 스타일 그리고 옷감을 좋아하는지 판단했다.강한서는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유현진의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는 유현진이 남들은 모르는 작인 디테일까지 캐치할 정도로 자기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좋아했다.“가자
김수철이 말했다.“그건 몇 년 전 상황이었겠죠? 그때 현진 씨 몸 상태가 어느 정도였는지 전 알 수 없지만 지금 상태로 정말 임신이 된다면 관리만 잘하면 아마 큰 문제 없을 거예요.”그러더니 김수철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임신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습관성 유산이거나 선천적으로 몸이 안 좋은 게 아니라면, 일단 임신에 성공했고 관리도 잘 받는다면 그렇게 쉽게 유산되지 않아요. 현진 씨 워낙 건강한 체질이고 몇 달간 열심히 관리도 받았으니 그렇게 피임하실 필요는 없어요.”강한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을 꽉 짓누르고 있던 큰 돌덩이가 드디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김수철이 유현진의 건강을 회복시켜 줄 새로운 처방을 내리며 몇 마디 더 당부했다. 강한서는 학교에서 제일 열심히 수업을 듣는 학생 같았다. 당장이라도 연필로 선생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을 노트에 적고 달달 외우기라도 할 것처럼 열정적이었다.유현진은 김수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녀의 신경은 온통 강한서를 향해 있었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고 강한서를 관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유현진의 불임에 강한서는 그녀보다 더 마음 졸였다.아이가 없을까 봐 불안에 떠는 것이 아니라, 불임이 유현진이 결국 자신을 떠나는 이유가 되어버릴까 무서웠다.사실 강한서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유현진은 그의 생각처럼 그렇게 관대한 사람은 아니었다.유현진은 자신이 이제껏 길들인 애인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넓은 아량은 없었다.말을 마친 김수철이 또 강한서에게 말했다.“대표님도 시간 내셔서 얼른 수술하세요. 순리에 따르다 보면 또 뜻밖의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알겠다고 대답한 강한서가 진료실을 나서려는데 유현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넌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난 교수님께 물어볼 게 있어.”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뭘 물으려고? 난 들으면 안 돼?”유현진이 그를 노려보았다.“산부인과에서 네가 들을 말이 뭐가 있어? 나가, 나가.”그러더니 유현진은
유현진은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일단 처방은 가졌으니 차미주가 물어보면 바로 가져다줄 수 있었다.물론 가까이에서 차미주와 한성우의 일을 구경할 수도 있어서 일석이조였다.진료실을 나서기 전, 유현진은 또 한 가지 일을 떠올리고 김수철에서 물었다.“교수님, 술을 마셨을 때 안 서는 건 그것도 병인가요?”김수철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대부분 사람은 술 마시면 원래 잘 안 돼요. 된다는 건 완전히 취하지 않았다는 거겠죠.”유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병이 아니면 됐어.’강한서가 한참을 기다려서야 유현진이 나왔다.그는 유현진에게 다가가 물었다.“다 물어봤어?”유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뭐 물어봤어?”유현진이 가방을 꼭 쥐며 말했다.“너무 궁금해하지 마.”강한서는 그녀를 한참 쳐다보더니 갑자기 말했다.“어쩐지 찔려하는 거 같은데?”“...”유현진은 찔리는 것이 있는 게 아니라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고역이었다.그녀는 강한서와 한성우의 일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아냈다.‘됐어. 성우 씨에게 마지막 자존심은 남겨줘야지.’강한서는 유현진을 촬영장에 데려다주고 회사로 돌아갔다.회사에 거의 도착했을 때 휴대폰이 울려 확인하니 김수철의 전화였다.당부할 것이 또 있는 줄 알고 강한서가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교수님.”김수철이 말했다.“대표님, 현진 씨 좀 바꿔주시겠어요? 처방을 잘못 적어줘서요.”강한서가 말했다.“저한테 말씀하시면 전해줄게요.”김수철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그럼 현진 씨 전화번호 좀 보내주세요. 제가 직접 말씀드릴게요. 현진 씨가 대표님이 아시는 걸 원하지 않으셔서요.”김수철의 말이 오히려 강한서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나에게까지 숨기고 비밀스럽게 구는 거야?’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기더니 말했다.“교수님. 현진이 혹시 다른 증상도 있는 건가요? 숨기지 마시고 전부 말씀해 주세요. 제가 감당할 수 있어요.”“..
“현진 씨에게 음식으로 보신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개 적어드렸어요. 한동안 드셔보시고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다시 진찰하러 오시죠. 검사를 받아야 정확한 치료를 할 수 있으니까요.”말을 마친 김수철은 유현진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강한서를 위로했다.“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은 직장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이런 증상을 겪는 분들이 꽤 있어요. 너무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요, 제때 진료를 받아야 건강한 아이도 갖죠.”강한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네. 교수님 말씀대로 하죠.”민경하는 핸들을 꽉 움켜쥐고 전방을 주시했다.강한서가 너무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었다.‘대표님은 건강하시니, 사모님께서 받은 처방은 절대 대표님을 위한 것이 아닐 거야.’‘대체 어떤 사이길래 사모님께서 저런 처방을 대신 받아주신 거지?’민경하가 몰래 강한서의 표정을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아기든 뭐든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질투에 사로잡힌 다 큰 어른 아이의 분노가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사모님, 꼭 살아남으세요.’유현진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오늘 그녀는 신하리와 첫 촬영이었다. 전에 송민영과 촬영했었던 장면이었다. 전반 촬영에서 대화가 제일 많은 신이라 연기력이 많이 필요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당시 송민영과 촬영할 때, 유현진의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송민영은 연기력이 별로라 유현진과의 합이 잘 맞지 않았다. 게다가 긴 대사에 송민영은 실수를 연발했고 결국 대사를 많이 삭제하고 나서야 겨우 오케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촬영본도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신하리로 배우를 바꾼 후, 안창수는 다시 원래대로 대본을 수정했다. 그리고 스태프를 총동원해 원테이크 촬영을 시작했다.유현진은 사실 신하리와의 촬영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다. 촬영은 상대 연기자의 연기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더 좋은 시너지를 냈다. 그리고 좋은 상대 배우를 만나야 본인의 연기력도 늘 수 있었다.그리고 현장은 유
신하리는 화장을 고치면서 계속 유현진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곧 긴장이 풀리는 유현진을 보며 중얼거렸다.“꽤 하네.”매니저가 얼른 신하리 앞에 서서 유현진에게로 향한 시선을 가로막으며 경고했다.“연기에나 집중해. 딴생각하지 말고.”“...”“현진 씨에게 관심 없거든?”신하리가 매니저를 노려보았다.“조금 의외라서 그래. 내 연기를 받다니.”전해지는 소문만 듣고 신하리 역시 강한서가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여자와 결혼했다고 생각했다.‘저게 어딜 봐서 온실 속 화초라는 거야. 강한서에게 가려진 보물이었구먼.’이때, 한열이 신하리 옆을 지나쳤다. 신하리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다리를 내밀었다.역시나 한열은 예외 없이 신하리의 다리에 걸렸고 하마터면 멍청한 모습으로 넘어질 뻔했다.“하하하하하하...”신하리가 소리 내 크게 웃었다.한열이 똑바로 일어선 뒤,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신하리를 노려보았다.“미쳤어요?”신하리가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네가 길도 제대로 보지 않고는 왜 내 탓이야? 너 때문에 다리가 부딪혀서 아프잖아.”그러더니 새하얀 다리를 내밀어 보여주며 입꼬리를 씩 올려 한열을 놀렸다.“설마 누나 다리가 예뻐서 일부러 부딪힌 거야?”한열이 실소를 터뜨렸다.“해골 위에 가죽을 씌운 게 뭐가 예쁘다는 거예요? 제 눈이 그 정도로 낮진 않거든요?”신하리가 멈칫하더니 일어나 한열 앞에 섰다.“누가 가죽 씌운 해골이라는 거야?”한열은 신하리를 힐끔 쳐다보더니 당당하게 말했다.“신하리 씨요.”신하리가 입술을 짓이기더니 갑자기 한열의 손을 잡아당겨 자기 가슴 위에 올렸다. 그녀의 빨간 입술이 위로 씩 올라가더니 천천히 열렸다.“말해 봐. 살이 만져지는지 아니면 해골인지?”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말랑한 느낌에 한열의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는 매너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신하리를 밀어내며 씩씩거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한열이 한참 만에야 이를 악물고 말했다.“부끄러운 줄도 몰라요?”다행히 실내라 팬들이
유현진이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에 수프를, 다른 한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그녀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찌나 집중했던지 뒤에 사람이 온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돌솥은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한약 냄새는 바로 그 돌솥에서 풍겨오는 것이었다.‘심지어 집에 가져와서 끓이다니.’‘직접 다려서 가져다주려는 거야?’강한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유현진 뒤에 다가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는 턱을 유현진의 어깨에 내려놓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뭐 끓이는 거야?”깜짝 놀랐던 유현진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유현진은 원래 처방으로 바로 차미주에게 건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만약 차미주가 이 약을 먹고 어떤 반응이 있는지 물어본다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먼저 강한서에게 먹여볼 생각이었다.강한서의 반응을 살펴본 뒤 차미주에게 설명해 줄 생각이었다.“교수님께서 처방을 주셨는데, 기력을 보충하는 거래. 내가 교수님 말씀대로 먼저 끓여봤어. 너 요즘 자주 밤새우고 야근도 많잖아. 다 되면 기력 보충하게 좀 먹어.”“그래.”강한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안에 뭐가 들어간 거야?”유현진이 멈칫하더니 입술을 앙다물었다.“기력보충에 좋은 약재들이야. 상당, 당귀, 아교... 뭐 그런 거.”강한서는 약재가 담긴 봉투를 보더니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봉투를 들어 안을 확인했다.유현진은 괜히 마음에 찔려 얼른 봉투를 가져갔다.“손 씻었어? 함부로 건드리지 마.”강한서가 말했다.“안엔 뭐야?”유현진이 태연하게 머리를 끄덕였다.“당귀. 최상급 당귀야. 두께 좀 봐.”“...”‘설마 내가 녹용과 당귀를 구분 못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두껍네.”강한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비싸지 않아?”유현진이 고개를 돌려 그의 볼에 입 맞추었다.“네가 건강하기만 한다면 그깟 돈이 대수겠어?”그녀가 자신 몰래 다른 남자를 위해 약 처방을 받은 사실을 몰랐다
유현진은 빙그레 웃으며 국을 강한서 앞에 내려놓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방금 먹어봤는데 맛 괜찮았어, 당신도 마셔봐.”강한서는 그릇에 담긴 국물을 힐끗 보며 물었다.“기를 보충하는 보양식이라면서? 현진아, 너도 한 그릇 먹어보지 않을래?”유현진은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며 닥치는 대로 잡아뗐다.“지난번에 당신이 보양식이랍시고 백숙을 먹여대서 이젠 질렸어. 보고만 있어도 입맛이 뚝 떨어진다니까... 난 죽 끓여놨으니까, 그거 먹으면 돼.”그러고는 숟가락을 건네며 강한서에게 말했다.“여보, 얼른 마셔. 식으면 맛없어.”강한서는 그녀를 힐끗 보고 숟가락을 받아 천천히 그릇을 휘저었다.“뭔가 냄새는 예전에 증조할아버지가 끓여주셨던 백숙 같은데?”유현진은 멈칫했다가 이내 맞장구쳤다.“보양식 닭백숙이니까 당연히 비슷한 냄새가 나겠지? 비슷한 맛일 수도 있어.”강한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국자를 내려놓고 그릇을 들어 그릇째로 들이마시려 했다. 그런데 막 입에 대자마자, 유현진이 두 눈을 부릅뜨고 가까이 다가가 머리를 맞대고 쳐다보았다.강한서가 단번에 한 그릇 뚝딱 비우자, 유현진은 빈 그릇을 들고 가서 다시 한 그릇 담아왔다.“자, 한 그릇 더 먹어.”강한서는 오늘따라 유현진의 말에 잘 따랐고 연거푸 세 그릇이나 비웠다.유현진은 약효가 너무 독할까 하는 걱정이 들지 않았다면 백숙을 다 비우라고 했을 것이다.유현진은 항상 요리하고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반드시 강한서를 부엌으로 보내 설거지하게 했다. 하지만 오늘은 도둑이 제 발 저린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특별히 솔선수범하여 주방을 깨끗이 치우고 욕실로 가서 욕조에 물까지 받아놓고 강한서더러 들어가 피로를 풀라고 했다.강한서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유현진의 친절을 마음 편히 즐겼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유현진은 또 오일을 들고 와서 싱긋 웃으며 물었다.“여보, 요즘 새로 인도에서 직구한 오일인데, 마사지 해줄까?”강한서는 그윽한 눈빛으로 물었다.“인도에서 직구한 오일이라고?”유현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