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 씨에게 음식으로 보신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개 적어드렸어요. 한동안 드셔보시고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다시 진찰하러 오시죠. 검사를 받아야 정확한 치료를 할 수 있으니까요.”말을 마친 김수철은 유현진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강한서를 위로했다.“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은 직장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이런 증상을 겪는 분들이 꽤 있어요. 너무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요, 제때 진료를 받아야 건강한 아이도 갖죠.”강한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네. 교수님 말씀대로 하죠.”민경하는 핸들을 꽉 움켜쥐고 전방을 주시했다.강한서가 너무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었다.‘대표님은 건강하시니, 사모님께서 받은 처방은 절대 대표님을 위한 것이 아닐 거야.’‘대체 어떤 사이길래 사모님께서 저런 처방을 대신 받아주신 거지?’민경하가 몰래 강한서의 표정을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아기든 뭐든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질투에 사로잡힌 다 큰 어른 아이의 분노가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사모님, 꼭 살아남으세요.’유현진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오늘 그녀는 신하리와 첫 촬영이었다. 전에 송민영과 촬영했었던 장면이었다. 전반 촬영에서 대화가 제일 많은 신이라 연기력이 많이 필요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당시 송민영과 촬영할 때, 유현진의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송민영은 연기력이 별로라 유현진과의 합이 잘 맞지 않았다. 게다가 긴 대사에 송민영은 실수를 연발했고 결국 대사를 많이 삭제하고 나서야 겨우 오케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촬영본도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신하리로 배우를 바꾼 후, 안창수는 다시 원래대로 대본을 수정했다. 그리고 스태프를 총동원해 원테이크 촬영을 시작했다.유현진은 사실 신하리와의 촬영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다. 촬영은 상대 연기자의 연기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더 좋은 시너지를 냈다. 그리고 좋은 상대 배우를 만나야 본인의 연기력도 늘 수 있었다.그리고 현장은 유
신하리는 화장을 고치면서 계속 유현진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곧 긴장이 풀리는 유현진을 보며 중얼거렸다.“꽤 하네.”매니저가 얼른 신하리 앞에 서서 유현진에게로 향한 시선을 가로막으며 경고했다.“연기에나 집중해. 딴생각하지 말고.”“...”“현진 씨에게 관심 없거든?”신하리가 매니저를 노려보았다.“조금 의외라서 그래. 내 연기를 받다니.”전해지는 소문만 듣고 신하리 역시 강한서가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여자와 결혼했다고 생각했다.‘저게 어딜 봐서 온실 속 화초라는 거야. 강한서에게 가려진 보물이었구먼.’이때, 한열이 신하리 옆을 지나쳤다. 신하리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다리를 내밀었다.역시나 한열은 예외 없이 신하리의 다리에 걸렸고 하마터면 멍청한 모습으로 넘어질 뻔했다.“하하하하하하...”신하리가 소리 내 크게 웃었다.한열이 똑바로 일어선 뒤,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신하리를 노려보았다.“미쳤어요?”신하리가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네가 길도 제대로 보지 않고는 왜 내 탓이야? 너 때문에 다리가 부딪혀서 아프잖아.”그러더니 새하얀 다리를 내밀어 보여주며 입꼬리를 씩 올려 한열을 놀렸다.“설마 누나 다리가 예뻐서 일부러 부딪힌 거야?”한열이 실소를 터뜨렸다.“해골 위에 가죽을 씌운 게 뭐가 예쁘다는 거예요? 제 눈이 그 정도로 낮진 않거든요?”신하리가 멈칫하더니 일어나 한열 앞에 섰다.“누가 가죽 씌운 해골이라는 거야?”한열은 신하리를 힐끔 쳐다보더니 당당하게 말했다.“신하리 씨요.”신하리가 입술을 짓이기더니 갑자기 한열의 손을 잡아당겨 자기 가슴 위에 올렸다. 그녀의 빨간 입술이 위로 씩 올라가더니 천천히 열렸다.“말해 봐. 살이 만져지는지 아니면 해골인지?”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말랑한 느낌에 한열의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는 매너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신하리를 밀어내며 씩씩거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한열이 한참 만에야 이를 악물고 말했다.“부끄러운 줄도 몰라요?”다행히 실내라 팬들이
유현진이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에 수프를, 다른 한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그녀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찌나 집중했던지 뒤에 사람이 온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돌솥은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한약 냄새는 바로 그 돌솥에서 풍겨오는 것이었다.‘심지어 집에 가져와서 끓이다니.’‘직접 다려서 가져다주려는 거야?’강한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유현진 뒤에 다가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는 턱을 유현진의 어깨에 내려놓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뭐 끓이는 거야?”깜짝 놀랐던 유현진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유현진은 원래 처방으로 바로 차미주에게 건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만약 차미주가 이 약을 먹고 어떤 반응이 있는지 물어본다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먼저 강한서에게 먹여볼 생각이었다.강한서의 반응을 살펴본 뒤 차미주에게 설명해 줄 생각이었다.“교수님께서 처방을 주셨는데, 기력을 보충하는 거래. 내가 교수님 말씀대로 먼저 끓여봤어. 너 요즘 자주 밤새우고 야근도 많잖아. 다 되면 기력 보충하게 좀 먹어.”“그래.”강한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안에 뭐가 들어간 거야?”유현진이 멈칫하더니 입술을 앙다물었다.“기력보충에 좋은 약재들이야. 상당, 당귀, 아교... 뭐 그런 거.”강한서는 약재가 담긴 봉투를 보더니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봉투를 들어 안을 확인했다.유현진은 괜히 마음에 찔려 얼른 봉투를 가져갔다.“손 씻었어? 함부로 건드리지 마.”강한서가 말했다.“안엔 뭐야?”유현진이 태연하게 머리를 끄덕였다.“당귀. 최상급 당귀야. 두께 좀 봐.”“...”‘설마 내가 녹용과 당귀를 구분 못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두껍네.”강한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비싸지 않아?”유현진이 고개를 돌려 그의 볼에 입 맞추었다.“네가 건강하기만 한다면 그깟 돈이 대수겠어?”그녀가 자신 몰래 다른 남자를 위해 약 처방을 받은 사실을 몰랐다
유현진은 빙그레 웃으며 국을 강한서 앞에 내려놓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방금 먹어봤는데 맛 괜찮았어, 당신도 마셔봐.”강한서는 그릇에 담긴 국물을 힐끗 보며 물었다.“기를 보충하는 보양식이라면서? 현진아, 너도 한 그릇 먹어보지 않을래?”유현진은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며 닥치는 대로 잡아뗐다.“지난번에 당신이 보양식이랍시고 백숙을 먹여대서 이젠 질렸어. 보고만 있어도 입맛이 뚝 떨어진다니까... 난 죽 끓여놨으니까, 그거 먹으면 돼.”그러고는 숟가락을 건네며 강한서에게 말했다.“여보, 얼른 마셔. 식으면 맛없어.”강한서는 그녀를 힐끗 보고 숟가락을 받아 천천히 그릇을 휘저었다.“뭔가 냄새는 예전에 증조할아버지가 끓여주셨던 백숙 같은데?”유현진은 멈칫했다가 이내 맞장구쳤다.“보양식 닭백숙이니까 당연히 비슷한 냄새가 나겠지? 비슷한 맛일 수도 있어.”강한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국자를 내려놓고 그릇을 들어 그릇째로 들이마시려 했다. 그런데 막 입에 대자마자, 유현진이 두 눈을 부릅뜨고 가까이 다가가 머리를 맞대고 쳐다보았다.강한서가 단번에 한 그릇 뚝딱 비우자, 유현진은 빈 그릇을 들고 가서 다시 한 그릇 담아왔다.“자, 한 그릇 더 먹어.”강한서는 오늘따라 유현진의 말에 잘 따랐고 연거푸 세 그릇이나 비웠다.유현진은 약효가 너무 독할까 하는 걱정이 들지 않았다면 백숙을 다 비우라고 했을 것이다.유현진은 항상 요리하고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반드시 강한서를 부엌으로 보내 설거지하게 했다. 하지만 오늘은 도둑이 제 발 저린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특별히 솔선수범하여 주방을 깨끗이 치우고 욕실로 가서 욕조에 물까지 받아놓고 강한서더러 들어가 피로를 풀라고 했다.강한서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유현진의 친절을 마음 편히 즐겼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유현진은 또 오일을 들고 와서 싱긋 웃으며 물었다.“여보, 요즘 새로 인도에서 직구한 오일인데, 마사지 해줄까?”강한서는 그윽한 눈빛으로 물었다.“인도에서 직구한 오일이라고?”유현
유현진은 눈을 반짝이며 다급하게 말했다.“또, 다른 점은?”강한서가 눈을 뜨고 그윽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그리고... 가슴이 불덩이처럼 타오르고 답답해. 특히 네 목소리를 들을 때, 불덩어리가 더욱 세차게 타오르는 것 같아.”‘쓸모가 있구나! 김 교수님의 처방이 정말 효과가 있는 것 같네!’“다른 것도 있는데, 듣고 싶어?”강한서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유현진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강한서는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평소보다 마음이 급하고 인내심도 별로 없고...”강한서는 갑자기 말을 멈추기 시작했다. 유현진은 초조한 얼굴로 다그쳐 물었다.“그리고 뭐?”강한서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아래로 끌어내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리고 여기도 평소보다 반응이 격렬해졌어.”유현진은 순간 뜨거운 곳에 손이 덴 듯 후다닥 손을 뺐다. 그러고는 귀까지 빨개져서 연신 헛기침했다.“잠깐만 진정해, 김 교수님께 답장하고 올게.”말을 마치고 도망가려고 하자, 강한서가 유현진의 손목을 잡아당겨 품으로 끌고 와서 몸 아래에 꼼짝 못 하게 짓눌렀다. 그리고 유현진의 손목을 꼭 잡고 나지막하게 말했다.“답장하는 게 당장 급한 일은 아니잖아?”유현진의 머릿속 생각은 이 약 처방의 효과가 정말 대단했다는 것이었다. 강한서와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됐지만, 이 사람이 이렇게 다급해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한성우가 이걸 마시고도 아무 반응이 없다면, 그건 정말 답이 없는 거지.’강한서는 유현진이 잠깐 딴생각을 하는 것을 보고, 한 손으로 유현진의 얼굴을 부여잡고 물었다.“이 약 처방의 효과를 모두 기록하려는 거 아니야? 그러면 횟수, 시간 등, 이런 것도 기록해야 하지 않겠어?”강한서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타이머를 켜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시작하자.”유현진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시작해? 음...”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한서는 몸을 굽혀 뜨겁게 입을 맞췄다. 강한서는 이 약 처방의 효과 때문인
차미주가 고개 끄덕였다.“알겠어, 해 볼게.”한성우는 씻고 나오며 차미주가 식탁에 마주 앉아 골똘히 인터넷 쇼핑하는 것을 보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품하며 물었다.“배고파?”차미주는 웃으며 그를 힐끗 쳐다보고 나서 다시 인터넷 쇼핑에 집중했다.“아니. 몇 가지 요리 레시피를 찾아뒀거든. 이따 저녁에 요리 좀 하려고 식재료 주문하고 있었어.”맛있는 요리를 해준다는 말에 한성우는 흥이 났다.“무슨 요리?”차미주가 얼버무리며 말했다.“이따 저녁에 알게 될 거야.”‘그래, 어디 한번 서프라이즈 해봐. 우리 도둑이는 뭘 하든 맛있게 잘하니까 상관없어. 우리 도둑이 요리 솜씨는 말할 것도 없지...’이때, 한성우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차미주는 힐끗 쳐다보았다.‘마누라'가 메시지를 보내왔다.「여보, 파티플레이 하자!」차미주는 콧방귀를 뀌며 비꼬았다.“당신 마누라가 집에 안 들어온다고 찾아왔나 보네?”한성우는 어리둥절했다.“마누라?”차미주는 차갑게 흥얼거렸다.“게임 속 마누라는 마누라가 아닌 거야, 게임 안 할 때는 마누라가 아니란 거야?”한성우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휴대전화를 들고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도둑아, 너도 같이 게임을 하자고 하는데... 어때? 같이 한 판 할래?”차미주는 이를 갈았다.“나보고 게임 속에서 당신 불륜녀라도 하라는 거야?”한성우는 나지막하게 웃음소리를 내며 휴대전화를 들고 어디론가 영상통화를 걸었다. 전화가 아주 빨리 연결되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빨리 접속해, 지금 밀리고 있으니 당장 접속해서 복수해 줘!”한성우가 멈칫했다.“지금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 안 돼.”상대방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너처럼 한가한 녀석에게 무슨 해결할 일이 있어?”“너 때문에 해결해야 할 오해가 생겼잖아.”상대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그러자 한성우는 차미주 앞에 휴대전화 갖다 놓았다.“여자친구가 네 아이디 때문에 우리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오해하잖아.”차미주가 웃으며
한성우는 그야말로 헛똑똑이였다. 차미주에게 거절당한 후, 그는 너무 괴로웠고 슬펐다. 그런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집으로 가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심란한 마음으로 그녀와 마주하기 싫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차미주는 보기만 해도 설레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다.억지로 차미주를 곁에 둘 방법이라면 백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옆에 두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한성우는 차미주가 온 마음으로 자기를 사랑해 주고 자신의 곁에 있기를 바랐다. 만약 차미주가 원하지 않고 자신에게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면, 이는 어떤 수단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결말이라고 생각했다.‘그래, 이미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지내는 데도 여전히 나에게 아무런 감정을 못 느끼고 있다면 어쩔 수 없지... 놔주는 수밖에... 계속해서 만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의 집착도 점차 옅어질 거야.’그렇게 여러 차례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지난번 술에 취한 후 경찰서에서 깨어나 경찰의 입에서 다른 여자를 데려왔다는 이유로 차미주가 화가 나서 경찰에 신고했다는 말을 듣고 한성우는 마음속에는 어렴풋한 추측을 해봤다.‘어쩌면 차미주도 나에 대해 호감 정도는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네?’한성우는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나 차미주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계획을 짜고 실행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예의 바르게 대화하고 거리를 유지하거나, 자기 게임 속 커플인 상대와 함께 게임을 하자고 제안하는 등... 계획을 세웠었다. 심지어 함께 연극을 할 배우를 찾기도 했다...일단 차미주가 이런 일들에 반응을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차미주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면, 그는 두 번 다시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설사 차미주가 허락하지 않더라도. 그러나 차미주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였고 ‘여보’라고 부르는 것만 듣고도 발끈했다.그날 두 사람이 관계를 확정한 후, 차미주는 한성우와 많
‘백혜주가 틀림없어! 네가 먼저 배신했으니, 나의 불의를 탓하지 마라!’어차피 그 당시의 자동차 사고는 그가 손을 댄 것도 아니니, 유상수는 설령 유죄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더 나은 변호사를 찾는다면 기껏해야 방조범으로 가벼운 죗값만 치르고 풀려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뒤엉키고 있을 때, 마침내 취조실 문이 열렸다. 경찰은 그의 개인 정보를 묻기 시작했다.유상수는 잔뜩 긴장한 채 개인 정보만 대답하고는 경찰이 묻기도 전에 서둘러 말했다.“형사님, 백혜주는 잡혔나요? 당신들에게 나를 신고한 사람이 그 여자죠? 대체 뭐라고 하던가요? 모든 죄를 저에게 뒤집어씌웠을 겁니다!”유상수의 말을 듣고 형사는 멈칫하다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죄송하지만 대답하기 곤란합니다.”유상수는 듣자마자 자신의 추측이 정확하다고 확신을 갖게 되었고 오히려 감정이 격해져서 말했다.“형사님, 그 악독한 여자가 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작정했을 겁니다! 그러니 반드시 사소한 부분까지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경찰이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도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도록 잘 수사해 나갈 겁니다. 유상수 씨는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하고 가시면 됩니다. 저희가 확실히 조사하여 결백을 증명해 드릴 것입니다.”사실 증거가 불충분한 사건이라, 백혜주와 유상수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유죄판결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상수는 너무 이기적이어서, 백혜주가 빠져나갈 구멍은 없을 것이라 단정하고 마음속으로 그녀를 보호할 생각을 고이 접어두었다.유상수는 두 사람을 최대한 보호할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죗값을 치러야 했다면 죄명을 하나 더 얹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백혜주에게 누명을 씌우기만 하면 남은 인생은 편안해질 수 있을 테니까...고민 끝에 유상수는 당시 하현주 교통사고의 진상을 경찰 측에 털어놓았다. 유상수는 가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좋은 남자'인 자신이 ‘실수'로 인해 백혜주와 관계를 맺게 되면서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