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열은 그를 힐끔 보며 다시 돌려주었다.“전 담배 안 태워요.”강한서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이건 라이터가 아니야. 친구가 나한테 장난감이라고 선물해 준 거야. 근데 내 나이가 이런 걸 가지고 놀 나이는 아니잖아. 관심도 없고 말이야. 생각해 보니 네 나이대 애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너한테 준 거야.”한열은 그의 ‘애들'이라는 말에 다소 기분이 불쾌해졌다. 다만 몰래카메라에 유용하게 쓰일 것 같은 장난감에 그는 다소 흥미가 생겼다.그는 고개를 들고 강한서에게 물었다.“설마 물총처럼 물이 나오는 건 아니죠?”이렇게 정교한 물건에서 그저 물만 나온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예쁜 쓰레기인 것 같았다.강한서는 한열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그런 물건을 내가 굳이 너한테 줬겠어?”물을 내뿜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한열은 더욱더 흥미가 생겼다.“그럼 뭔데요?”강한서는 휴대폰을 들더니 한열의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냈다.“네가 알아서 설명서 보고 확인해.”한열은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바로 눈을 반짝였다.조금 욕심이 났다.하지만 강한서가 준 것이었기에 그는 망설였다.강한서는 그의 여신인 유현진의 전남편이었기에 이 선물을 받기에는 조금 껄끄러웠다.그렇게 생각한 한열은 헛기침을 내뱉었다.“세상엔 공짜가 없죠. 이렇게 거저 받을 수 없으니 가격을 말하세요. 제가 살게요.”강한서는 그를 보며 말했다.“현진이는 너를 동생처럼 여기고 있어. 현진이한테 넌 동생이니까 나한테도 동생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그런 생각 말고 그냥 가져가.”한열은 바로 선을 그었다.“형은 형이고, 누나는 누나예요.”말을 마친 그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강한서의 계좌로 1000만 원을 이체했다.“전 공짜로 형 물건을 가질 생각 없어요.”‘웃기는군!'‘내가 연적의 물건을 그냥 받으면 앞으로 어떻게 계속 우리 여신님을 두고 경쟁해?'‘아직 나한테 유리한 건 하나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누나와 결혼할 기회는 있는 거잖아!'강한서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마음대로 해
한열은 다른 사람과 달랐다.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고모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기에 고모에 대한 감정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촌 누나에 대해서도 그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하지만 식구 한 명 더 생긴다는 것에 대해 그는 아주 기뻤다. 적어도 나중에 그의 아버지인 한준웅이 그를 혼낼 때 사촌 누나에게 들러붙어 매를 덜 맞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사촌 누나가 어릴 때부터 부모 없이 자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자신보다 뛰어나지 못한 사람일 거로 추측했다. 정말 그렇다면 그는 더는 아버지한테 쓸모없다고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옷매무새를 정리한 한열은 손을 들어 문을 열었다.그리고 가족들 사이에 앉아 있는 그의 여신님을 발견하게 되었다.한열은 그대로 굳어버렸다.유현진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젓가락으로 새우를 들어 입에 넣으려는 그녀의 모습이 아주 어색해 보였다.강한서가 예전에 그녀에게 한열과 송민준의 관계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이미 한열이 그녀의 사촌 동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직접 그녀가 이곳으로 왔을 때 한열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에 사정으로 불참한 것으로 생각했다. 알고 보니 시간이 엇갈렸다.그녀는 얼른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다소 민망했다. 여하간에 그녀와 한열은 예전에 드라마에서 커플로 연기를 하며 하마터면 키스까지 할 뻔했었다. 하지만 이제야 다시 생각해 보니 강한서의 방해가 없었다면 두 사람은 더욱 어색하고 민망했을 것이다.한열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한준웅이 미간을 찌푸렸다.“뭘 그리 멍청하게 서 있어? 얼른 들어와. 다들 너만 기다리시잖아.”공영선이 바로 한준웅을 쏘아보았다.“넌 애한테 말 좀 곱게 할 수 없니?”한준웅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이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들어와. 아니면 설마 모셔 와야 하는 거니? 톱스타 씨?”그러자 한열은 다소 욱한 감정이 올라온 듯한 모습으로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 뚜벅뚜벅
송민준은 아주 얍삽한 사람이었다.예전에 한열이 그에게 사촌 누나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었지만, 그는 보여주지 않았다.미리 한열에게 보여주면 인간 티베탄 마스티프라고 불리는 그가 바로 그에게 달려들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그 자리에서 ‘실연'을 당하게 된 한열은 배로 자극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이 자리에 함께 있었기에 그는 소란을 피울 수가 없었고 성질을 꾹꾹 참으며 언젠가는 눈앞에 있는 송민준과 한판 붙으리라 다짐했다!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쳤던 송민준은 한열이 난리를 피울 것을 예상하였지만 한열은 그저 웃기만 했다.그 웃음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묘한 웃음이었다.송민준의 질문에 한열은 웃음기를 지우며 담담하게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평소에도 좋아했던 연예인이 내 사촌 누나였다니 너무 기뻐서.”공영선은 놀란 듯 물었다.“현진이가 네가 좋아했던 연예인이라고?”한열은 공영선과 사이가 아주 좋았다. 공영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한열의 목소리가 바로 부드러워졌다.“할머니, 제가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성우가 있다고요. 기억하세요?”공영선은 손자의 말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네가 전에 말했던 선셋인지, 스타인지 말이냐?”한열은 고개를 끄덕였다.“사촌 누나가 바로 선셋 스타예요. 바로 제가 좋아한다고 말한 그 성우예요.”공영선은 덕후들의 세계가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손자의 방에 선셋스타가 더빙한 작품의 건담이나 포스터, 그리고 굿즈 같은 것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한열이 한때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그녀에게 말해줬기에 그녀는 유현진의 활동명을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었다.그녀는 손녀가 이미 예전부터 그녀와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에 순간 기뻐 웃음을 활짝 짓게 되었다.“영감, 내가 부처님한테 기도하면 효과가 있댔죠. 봐봐요, 부처님은 이미 예전부터 우리 현진이를 우리에게 보내려고 시도하고 있었어요. 다만 우리가 눈치를 못 챘을 뿐이죠.”한태진도 고개를 끄덕였다.“이따 돌아
유현진은 바로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녀가 입을 열려던 순간 한태진이 먼저 말했다.“노갱벼루는 이 할아버지 집에도 아주 많다. 별로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선물은 선물 받는 사람이 마음에 들어야 선물이지 않겠느냐. 내겐 찻잎이 벼루보다 훨씬 낫구나.”유현진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바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전 노갱벼루를 본 적이 없었어요.”그녀의 뜻은 이렇게 희귀한 물건은 절대 싸구려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한태진은 서해금이 가져온 선물 상자를 뜯어버리더니 안에 있던 벼루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자, 자세히 보아라. 이따 돌아갈 때 집에 가져가. 혹시 다른 게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해. 본가 내 서재에 여러 가지 벼루가 가득하니까... 마음대로 골라 가져가. 다 마음에 들면 이 할아버지가 서재까지 한주시로 옮겨다 주마.”“...”유현진은 통이 큰 한태진에 감탄했다.그러나 그녀는 사양했다.“전 서예에 대해 잘 몰라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에요. 전 벼루가 필요 없어요, 할아버지.”“네 서예 실력은 아주 뛰어나단다. 전에 민준이가 나한테 네가 쓴 글씨를 보여준 적이 있다. 그냥 보면 의미 좋은 글이고, 거꾸로 보면 초상화더구나.”한태진은 칭찬을 해대기 시작했다.“글도 아주 예쁘고 멋지더구나!”“...”유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녀의 실력은 서예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까막눈이의 눈을 가릴 순 있었지만 정말로 서예에 대해 조예가 깊은 사람들에겐 실력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러니 한태진은 그저 무턱대고 그녀를 칭찬하고 있는 것이었다.하지만 강한서의 서예 실력은 아주 좋았다.그녀는 강한서가 쓴 행서체를 본 적이 있었다. 그의 글씨야말로 진정한 전문가가 쓴 글씨처럼 아름답고 멋졌고 송가람보다 훨씬 몇 배나 뛰어났다.하지만 강한서는 그녀와 달리 자랑질을 해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와 친한 사람들 제외하곤 그의 서예 실력을 본 사람은 몇 없었다.그녀의 할아버지는 서예를 아주 좋아한다.
송민준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얘 왜 이래? 충격에 바보가 된 건가?'“너... 너 나한테 다른 할 말은 없어?”여하간에 한열은 그의 동생이었고 비록 하는 짓이 여동생만큼은 예쁘지 않아 어릴 때부터 그에게 맞고 자라긴 했지만 어릴 때의 한열은 아주 귀여웠다. 만약 정말로 충격에 바보가 된 거라면 송민준도 당연히 마음이 아팠다.한열은 그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뭘 더 말해? 형이 강한서한테 누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나를 이용한 거?”찔린 구석이 있었던 송민준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형은 네가 현진이에 대해 진심이니까, 내가 말하면 네가 슬퍼할까 봐 그런 거지.”한열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뻔뻔한 개자식! 뻔뻔한 얼굴 좀 봐!'그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슬퍼할 정도는 아니야. 어느 정도 속상하겠지. 하지만 누나는 원래부터 강한서를 좋아하고 있었잖아. 난 어차피 가망이 없었어. 지금이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지. 여하간에 사랑보다는 가족이지 않겠어?”송민준은 미간을 찌푸렸다.“넌 대체 왜 현진이가 강한서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거냐? 대체 어느 시점에서? 이혼 전적이 있는 남자가 우리 현진이한테 가당키나 해?”한열은 그를 흘겨보았다.그는 그제야 강한서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리고 강한서가 말한 “현진이한테 너는 동생이니, 나한테도 넌 동생이나 마찬가지야.”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그는 이미 전부터 그에게 은근슬쩍 암시해 주고 있었다. 다만 그는 강한서를 그저 라이벌이라고 여기며 그가 한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그가 투자하고 있는 회사에서 왜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를 도와주겠는가? 당연히 유현진과 그가 가족이었기 때문이지 않겠는가?그런데 정작 그의 사촌 형은 그를 위해 무엇을 했지?유현진의 정체를 숨기고 그를 이용해 강한서를 떼어내려고 했다. 심지어 뜻대로 되지 않자 일러바치기까지 했다!한열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표정은 아주 담담했다
강한서는 민경하에게 주문 제작을 지시할 때 민경하는 그가 무엇을 할지 이미 예상하였다.마음이 선했던 민경하는 직장 상사인 강한서가 미래의 형님이 될 송민준에게 미움을 살까 걱정이 되어 말려보기도 했다.그러자 강한서가 말했다.“민 실장은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오시면 됩니다.”민경하는 대충 강한서가 남의 손을 빌려 그 물건을 쓸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강한서는 겉으로는 송민준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뒤에서는 몰래 골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뒤끝이 있었다.그랬기에 그는 가족들이 모인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고 미래의 형님에게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현진은 핸드백을 들고 한세 한식당에서 나왔다.강한서는 바로 시동을 걸고 그녀의 앞까지 운전해 갔다.유현진은 차 문을 열어 조수석에 앉았다.그녀가 분명 들어갈 때 쇼핑백 두 개를 들고 있었지만, 지금은 네 개가 되었다.유현진이 안전벨트를 하고는 바로 가방에서 두둑한 돈 봉투 세 개를 꺼냈다.“이거 봐봐, 봐봐! 부럽지?”그녀의 모습을 보니 식사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알 수 있었다. 강한서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할아버지랑 할머니께서 주신 거야?”“응, 그리고 삼촌이랑 송... 아니 우리 아빠.”이미 쓰레기 같은 가짜 아빠 유상수를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그녀는 갑자기 새로 생긴 그녀에게 한없이 잘해주는 친아빠에 다소 아빠라고 부르기가 어색했다.강한서는 다시 시동을 걸며 말했다.“드디어 네 진면모를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되겠군.”유현진은 상자를 꺼내 들면서 되물었다.“내 진면모라니?”강한서는 그녀를 힐끗 보다가 말했다.“돈과 남자를 밝히는 모습 말이야.”“...”유현진은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역시 강한서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없었다!그녀는 상자를 열고 안에 있던 벼루를 꺼냈다.“이거 봐, 내가 널 위해 뭘 가져왔게?”강한서는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그녀가 든 것을 보더니 살짝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노갱벼루?”
유현진은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녀도 냄새에 예민한 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식물에서 나는 냄새에 호기심이 많았고, 그런 이유로 유현진은 꽃과 식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심지어 스스로 향기 제조를 시도해 본 적도 있었다. 전에도 유현진은 자신의 이런 취미가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보니 유전의 힘인 듯했다. “Caline은 왜 오빠가 아니라 아주머니가 관리하는 거야?”강한서가 말했다.“서해금 씨는 센트의 브랜드 파트너였어. 정확하게 얘기하면 두 분이 함께 센트를 설립하셨지. 하지만 센트를 업계에 이름을 알리게 한 미스틱은 어머님이 만드신 거였어.”“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센트는 삼촌께서 관리하셨었는데 향수에 대해 잘 모르시니까 2년도 되지 않아 아저씨한테 돌려주셨어.”사실 송병천도 향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죽은 아내가 남기고 간 것이니, 그는 센트를 잘 지켜내야만 했다. 그러니 송병천이 센트를 맡게 된 것이다. 서해금도 제향을 배웠었다. 게다가 그녀는 경영에도 일가견이 있어 송병천이 갓 센트를 맡았을 때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모두 배우자를 잃은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정이 들었고 점점 그 마음을 키웠다. 한아람이 떠나간 지 6년이 되던 해, 송병천은 서해금과 혼인신고를 했다. 하지만 그 일은, 한씨 가문 사람의 마음을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센트는 한아람이 남긴 유산이었다. 하지만 그 유산이 송병천의 재혼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 셈이었다.특히 센트를 설립할 당시, 서해금은 제대로 된 끼니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고 한태진과 공영선이 딸과 사이가 각별한 그녀를 도와주며 자식처럼 대했다. 하지만 딸이 세상을 떠나고 몇 년 뒤, 자식처럼 대했던 딸의 친구가 사위였던 남자와 결혼했으니, 당연히 꺼림직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세상에 널린 좋은 남자 중에서 하필, 친구의 남편을 선택해야만 했을까?그 후, 한씨 가문에서는 점차 송병천을 멀리했다.
강한서의 말에 유현진은 당황하고 말았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유현진은 한참 만에야 욕을 내뱉었다. “X신.”...다음 날, 최연서 쪽에서 연락이 왔다. 최연서의 말로는 유상수와 백혜주가 크게 싸웠고, 백혜주는 유씨 가문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유상수가 경찰서에서 유서훈을 데려온 날, 백혜주는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발견한 유상수는 백혜주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현아도 병원으로 불러 죽은 태아와 함께 전부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유현아만 유상수의 딸이었고 유서훈도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일로 유상수는 불같이 화를 냈고 병원에서 백혜주와 싸움을 벌였다. 백혜주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끝내 내연남이 누군지 얘기하지 않았고, 안 그래도 화가 났던 유상수는 백혜주 모자를 병원에 내버려둔 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유상수는 아침 일찍 최연서의 집으로 가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최연서가 말했다. “유 대표님께서 백혜주 씨를 건드리는 걸 꺼리시는 것 같았어요. 그 지경으로 싸웠는데도 이혼할 생각은 하지 않더라고요.”유현진의 얼굴엔 차가운 비웃음이 걸렸다.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백혜주에게 약점이 잡혀 있었기에 내연남이 한 트럭이 찾아와도 유상수는 백혜주와 이혼할 용기가 없을 것이다. 설사 이혼한다고 하더라도, 백혜주의 성격상 유상수의 가죽을 벗겨서라도 이혼에 상응한 보상을 받으려 할 것이다. 유상수는 아까워서라도 백혜주에게 그 돈을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유현진이 말했다. “괜찮아요. 이혼하면 오히려 곤란해요.”“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앞으로... 연서 씨 배 속의 아이는 유상수의 희망이 될 거예요. 유상수에게 명분을 달라고 하세요. 만약 유상수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돈이라도 달라고 해요. 만약 유상수와 백혜주가 돈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땐 그만둬야 할 타이밍이에요.”백혜주는 유상수라는 사람을 원하는 것일 리가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
“하하하.”한현진이 마른 웃음을 지었다.“오빠. 제가 티슈 없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강한서가 눈을 씰룩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핑계였다. 그는 입술을 달싹여 아내를 따라 염치 없이 말했다. “형님, 저도 없어요.”송민준이 가방과 티슈를 두 사람에게 던지며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겼다. 한현진: ...“오빠가 나한테 화 난 건 아니겠지?”강한서가 우울하게 말했다. “너보단 날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아. 네 오빠가 아무리 너에게 화가 나도 결국은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거야.”한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좀 놓이네.”강한서: ?한현진이 그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차피 오빠가 널 탐탁지 않아 한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오늘 이 일로 크게 달라지진않을 거야.”“...”‘행복은 본인이 누리고 잘못은 내가 뒤집어쓰고. 정말 좋은 아내네.’강한서는 한현진을 데리고 호텔 라운지로 향했다. 입덧이 끝난 이후로 한현진의 식욕은 줄곧 안정적이었다. 매 끼니마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지만 배고픔도 빨리 찾아왔기에 하루에 몇 끼씩 먹어야 했다. 그 덕에 지금의 한현진은 송아지처럼 튼튼하기만 했다. 강한서는 임신한 한현진을 위해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한현진에게는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그의 주변엔 임산부가 많이 없었지만 많은 아내들이 임신 후 남편을 괴롭힌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현진에겐 모든 임신의 호르몬 변화가 거짓말처럼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의사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큰 반응 없이 잘 먹고 잘 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강한서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자주 다니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한현진은 정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조금 유치해지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팔을 끌며 굳이 아이들의 흔들 목마에게 타게 해달라며 떼를 썼다.
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채영 언니.”문채영이 가방에서 포장한 선물 박스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몰라 제가 직접 향낭을 만들었어요. 향 맡아봐요.”한현진이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언니도 조향하세요?”문채영이 미소 지었다. “제가 조향에 입문하게 된 것도 민준이 덕분이었어요. 전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했었거든요.”한현진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조향하는 송민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송민준은 그쪽으론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민준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불쾌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주문부터 해. 배고파.”멈칫하던 문채영이 시선을 내려 눈에 맴도는 서운함을 숨겼다. 한현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랜만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한주 음식으로 드시는 게 어때요?”문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현진 씨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주문한 음식 서빙을 마치고 룸을 나서려는 종업원에게 송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장어 국수도 주문할게요.”문채영이 힐끗 송민준을 쳐다보자 시선을 올린 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지.”‘그래,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다고 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하고 많은 국수 중에 왜 하필 장어 국수야?’‘오빠가 장어 국수라고 말할 때 언니 표정을 보면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장어 국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었던 건가?’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른 한현진이 몰래 테이블 아래로 강한서의 손을 꼬집었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에게 새우를 발라 주었다. 한현진: ...강한서과 문채영은 너무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현진은 문채영의 외할머니와 강한서의 할머니가 먼 친척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촌수가 먼 사이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지 한참 후에야 두 가문이 몇 세대 전에는 친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