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은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녀도 냄새에 예민한 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식물에서 나는 냄새에 호기심이 많았고, 그런 이유로 유현진은 꽃과 식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심지어 스스로 향기 제조를 시도해 본 적도 있었다. 전에도 유현진은 자신의 이런 취미가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보니 유전의 힘인 듯했다. “Caline은 왜 오빠가 아니라 아주머니가 관리하는 거야?”강한서가 말했다.“서해금 씨는 센트의 브랜드 파트너였어. 정확하게 얘기하면 두 분이 함께 센트를 설립하셨지. 하지만 센트를 업계에 이름을 알리게 한 미스틱은 어머님이 만드신 거였어.”“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센트는 삼촌께서 관리하셨었는데 향수에 대해 잘 모르시니까 2년도 되지 않아 아저씨한테 돌려주셨어.”사실 송병천도 향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죽은 아내가 남기고 간 것이니, 그는 센트를 잘 지켜내야만 했다. 그러니 송병천이 센트를 맡게 된 것이다. 서해금도 제향을 배웠었다. 게다가 그녀는 경영에도 일가견이 있어 송병천이 갓 센트를 맡았을 때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모두 배우자를 잃은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정이 들었고 점점 그 마음을 키웠다. 한아람이 떠나간 지 6년이 되던 해, 송병천은 서해금과 혼인신고를 했다. 하지만 그 일은, 한씨 가문 사람의 마음을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센트는 한아람이 남긴 유산이었다. 하지만 그 유산이 송병천의 재혼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 셈이었다.특히 센트를 설립할 당시, 서해금은 제대로 된 끼니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고 한태진과 공영선이 딸과 사이가 각별한 그녀를 도와주며 자식처럼 대했다. 하지만 딸이 세상을 떠나고 몇 년 뒤, 자식처럼 대했던 딸의 친구가 사위였던 남자와 결혼했으니, 당연히 꺼림직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세상에 널린 좋은 남자 중에서 하필, 친구의 남편을 선택해야만 했을까?그 후, 한씨 가문에서는 점차 송병천을 멀리했다.
강한서의 말에 유현진은 당황하고 말았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유현진은 한참 만에야 욕을 내뱉었다. “X신.”...다음 날, 최연서 쪽에서 연락이 왔다. 최연서의 말로는 유상수와 백혜주가 크게 싸웠고, 백혜주는 유씨 가문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유상수가 경찰서에서 유서훈을 데려온 날, 백혜주는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발견한 유상수는 백혜주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현아도 병원으로 불러 죽은 태아와 함께 전부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유현아만 유상수의 딸이었고 유서훈도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일로 유상수는 불같이 화를 냈고 병원에서 백혜주와 싸움을 벌였다. 백혜주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끝내 내연남이 누군지 얘기하지 않았고, 안 그래도 화가 났던 유상수는 백혜주 모자를 병원에 내버려둔 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유상수는 아침 일찍 최연서의 집으로 가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최연서가 말했다. “유 대표님께서 백혜주 씨를 건드리는 걸 꺼리시는 것 같았어요. 그 지경으로 싸웠는데도 이혼할 생각은 하지 않더라고요.”유현진의 얼굴엔 차가운 비웃음이 걸렸다.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백혜주에게 약점이 잡혀 있었기에 내연남이 한 트럭이 찾아와도 유상수는 백혜주와 이혼할 용기가 없을 것이다. 설사 이혼한다고 하더라도, 백혜주의 성격상 유상수의 가죽을 벗겨서라도 이혼에 상응한 보상을 받으려 할 것이다. 유상수는 아까워서라도 백혜주에게 그 돈을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유현진이 말했다. “괜찮아요. 이혼하면 오히려 곤란해요.”“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앞으로... 연서 씨 배 속의 아이는 유상수의 희망이 될 거예요. 유상수에게 명분을 달라고 하세요. 만약 유상수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돈이라도 달라고 해요. 만약 유상수와 백혜주가 돈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땐 그만둬야 할 타이밍이에요.”백혜주는 유상수라는 사람을 원하는 것일 리가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주강운이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래요. 그럼 전화로 얘기하죠.”“그래요.”주강운이 말했다. “제가 전에, 저택의 뒷마당에 유치원을 지었다고 했잖아요. 그 유치원, 누가 운영하는 건지 아세요?”유현진은 순간 유상수를 떠올렸다. “유상수가 운영하는 건가요?”주강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혜주요. 그리고 진예원 씨, 그러니까 현진 씨 둘째 작은어머니요. 그 유치원은 두 사람이 함께 투자한 거예요. 백혜주가 자금을 투자하고 수익금을 받고, 유치원의 경영은 진예원이 하고 있어요.”어쩐지 전에 주강운이 진예원 가족이 여전히 이사하지 않았다고 하더니, 이제 보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제가 가진 자료에 따르면, 그 유치원은 현지에서 잘 운영되고 있어요. 신화구 쪽은 구시가에 속했어요. 지금 신화구에서는 도시 재개발을 진행하고 있고요. 신화구는 주택 건설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요. 공립 유치원을 제외하면, 이런 규모의 유치원은 그 지역에 하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거기로 모이겠어요.”유치원에 등원하는 아이는 1000명이 넘었다. 학비도 만만치 않아, 매달 매 아이들은 몇십만 원의 학비를 냈고, 매달 유치원 학비 수입만 억이 넘었다. 게다가 월세가 없으니 유치원 교사의 급여와 식비, 수도, 전기 등 공과금을 제외해도 매달 순수익은 몇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었다. 백혜주가 지금 이렇게 침착한 것은 역시 다른 수입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씨 집안 저택의 땅으로 사업을 벌이다니, 정말 기가 막힌 수단이었다. “그 땅에 건축하려면 관련 부서의 승인이 필요하죠? 유치원을 설립할 때 필요한 많은 자료는, 어떻게 손에 넣은 거예요? 합법적인 자료도 하나 없이 어떻게 그곳에서 경영할 수가 있는 거예요?”주강운이 나지막이 말했다.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면, 합법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절차는 철저히 밟았을 거예요.”유현진은 침묵했다. 오랫동안 유상수의 곁에 있은 백혜주의 인
“너 오후에 회사 임원이랑 회의 있다며? 지난번에 이미 한 번 미뤘는데, 이번에도 미룰 수 있어?”멈칫하던 강한서가 말했다. “그럼, 내일 같이 가.”“그래, 그럼.”강한서는 오늘따라 유난히 고분고분한 유현진에 의구심이 들 때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디 가서 하는지 알아? 절차는? 누구한테 부탁해야 하는지는? 그 부서 사람들, 까다롭다고 하던데, 만약 그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얘기하면 화내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어?”유현진이 질문을 하나 던질 때마다, 강한서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주강운은 널 도와줄 수 있고, 난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유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난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넌 반도체 산업 연구 개발에서는 최고잖아. 인공 지능 로봇이든, 드론이든, 내 남편과 비교가 되겠어?”강한서의 유현진의 아부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특히 “내 남편”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내 능력을 알면서도 주강운을 찾아가겠다?”유현진이 살풋 웃음을 터뜨렸다.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이 있잖아. 넌 비록 돈 버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만, 인간관계를 처리하는 방면엔, 강운 씨가 더 낫지.”강한서가 불퉁하게 말했다. “내가 어딜 봐서 못하다는 거야?”“이것 봐. 내가 말하자마자 화내잖아. 넌 성격이 너무 세. 회사에서도 제일 애쓰고 수입도 제일 좋은 건 너희 팀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엔, 넌 둘째 삼촌보다 못하잖아.”강한서가 반박하려 하자 유현진이 얼른 말을 이었다. “네가 빌붙으려는 사람 싫어하는 거 알아. 편 가르는 거 싫어하는 것도 알고. 하지만 사회는 원래 정이 있는 곳이잖아. 너무 융통성 없이 정하면 안 돼.”“내가 강운 씨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건, 강운 씨가 발이 넓고 사람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이야. 변호사라 이런저런 사람과 많이 만나봤잖아. 특히, 공직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불필요한 번거로움
강한서도 더 이상 말을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현진이 오후에 외할아버님 저택의 땅 소유권 때문에 주강운과 일 보러 간대. 나 대신 같이 가 줘.”자신을 골려준 적이 있는 강한서였기에, 차미주는 바로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 “나더러 스파이를 하라는 거야? 안 해!”“그래.”강한서의 반응에 차미주는 의아해졌다. ‘이렇게 쉽게?’하지만 강한서가 바로 말을 이었다. “네 이력서에 한성에서 일했던 경력 있잖아. 그거 기회가 있으면 너희 회사 대표님과 얘기를 한 번 해봐야겠어.”차미주: ...차미주가 바득 이를 갈았다. “날 도와준다고 현진이에게 약속했잖아.”“그랬었나.”강한서는 뻔뻔하게 말했다. “내가 좀 변덕스럽다고, 현진이가 얘기 안 해?”차미주: ...‘이 염치없는 자식! 현진이 같은 애가, 이런 개자식을 왜 좋아하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유현진은 거실에서 오후에 필요한 증명서와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차미주가 고개를 내밀었다. “현진아.”유현진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왜?”“너 어디가?”차미주가 천천히, 최대한 자연스럽게 물었다. “주 변호사님이랑 소유권 변경하러. 무슨 일 있어?”“아... 조금.”유현진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인데?”“그게, 한성우에게 옷 몇 벌 사주고 싶은데. 뭘 사줘야 할지 몰라서. 너 전에 강한서에게 옷 자주 사줬잖아. 넌 안목이 좋으니까, 나 옷 좀 골라줘.”유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 일 다 보면 같이 가.”“나 바로 너랑 같이 가면 안 돼?”차미주가 눈을 깜박였다. “너 일 마치는 대로 바로 쇼핑하러 가자. 그러면 너 다시 집으로 안 와도 되잖아. 그리고 나도 집에서 심심하고.”유현진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이따 주 변호사님에게 얘기할게.”“그래. 그럼 나 옷 갈아입을게.”차미주가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유현진이 서류 준비로 정신이 없어 차미주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차미주가 입술을 삐죽였다.「좀 이따 주소 보내줄게.」답장하려던 강한서에게, 강단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회의하자고 불러놓고, 넌 휴대폰이나 놀고 있는 거냐?”멈칫 행동을 멈춘 강한서가 힐끔 민경하를 쳐다보았다. 강한서의 눈빛을 알아차린 민경하는 얼른 강현우의 휴대폰 화면을 회의실 모니터에 연결했다. 회의실 모니터에는 섹시한 차림으로 춤을 추는 여자가 나타났다. 회의실은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강현우는 여전히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별풍선을 날리고 있었다. 강한서가 서류를 뒤적거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전 그저 답장한 것뿐이에요. 삼촌은 아들부터 신경 쓰셔야 할 것 같은데요. 임원 회의에 별풍선이나 쏘고 있다니, ‘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건가요?”강현우는 그제야 자신의 휴대폰 화면이 모니터에 연결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휴대폰을 꺼버렸다. 강단해의 얼굴은 진작 일그러져 있었고, 아들을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말했다.“회의 계속하지.”강현우는 불쾌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오늘의 임원 회의는 강한서가 준비한 것이었다. 그는 회사의 구조조정을 실행할 예정이었고, 일부 주주들의 실권을 가져와 능력에 따라 경쟁해 성과만큼 수익을 나눌 생각이었다. 이런 유토피아적인 경영 방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익만 챙기는 임원들의 소득을 많이 감소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니 일부 임원은 자연스레 강한서의 경영 방식에 찬성하지 않았다.이번도 마찬가지였다. 찬성과 반대 의견이 거의 반반으로 갈렸고, 강단해는 이 투표 결과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한서야. 사업은 애들 장난이 아니야.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거야.”강한서는 강단해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어쩐지 이 결과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이렇게 많은 분이 반대하시니, 이 일은 잠시 없던 거로 하시죠. 오늘 마침 임원진이 모두 자리에 계시니 회사에 관련된 산업과 각 프로젝트
소식을 전해 들은 강한서는 오늘 아침 일찍 병문안을 갔다.그 직원은 한주시의 사람이 아니었고, 그의 부모님도 소식을 듣고 급히 한주시로 오는 중이었다. 그의 아내는 만삭의 몸을 하고 병실 밖을 지키고 있었다. 회사에서 병문안을 오자 그녀는 바로 강한서에게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직원이 부족하면 신입사원을 몇 명 더 뽑을 일인지, 보름째 새벽까지 야근시키는 게 정상이냐며 말이다. 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대방의 화풀이를 다 받아주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민경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강한서가 갓 회사로 들어왔을 때, 그의 팀원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처음 강한서가 관리하던 산업은 회사에 큰 수익 창출을 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연구 개발은 제일 투자가 많이 들어갔고, 연구원의 연봉도 제일 높은 수준이었기에, 수익이 나지 않자 회사에서는 돈만 들어가는 부서를 당연히 반기지 않았다. 많은 주주들이 함께 강한서의 팀을 “탄핵”했고, 그의 절반 이상의 직원을 정리해고했다. 나중에 그의 프로젝트가 수익 창출을 하기 시작했고, 그때 강한서는 다시 신입 사원 모집을 제안했으나 결국 거절당하고 말았다. 주주들은 적은 사람으로도 이렇게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니 굳이 신입사원을 모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본가의 본질은 제일 적은 투자로 제일 큰 수익을 내는 것이니 말이다. 몇 년간 강한서의 팀에도 직원이 하나둘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만큼 프로젝트의 규모도 점점 커졌고, 직원은 늘 부족했다. 강한서 역시 계속 임원진과 신입사원 모집이든, 수입의 분배에 대해 협의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늘 혼자였고, 몇 차례의 제안에도 이사회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강한서도 조용히 자신만의 인맥을 쌓아가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지금은 절반가량의 지지자가 생겼다. 회사에 늦게 들어온 그가 이 짧은 시간 동안 강단해를 쫓아간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이렇게만 간다면, 한성은 곧 그의 세상이 될 수도 있었다.
강한서의 말에 안 대표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무슨 뜻이죠? 제가 회삿돈을 해 먹기라도 했다는 거예요?”강한서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모를 일이죠. 그래서 신고했어요. 지금쯤 경찰이 회사에 도착했겠네요.”안 대표의 얼굴은 당황함으로 가득했다. 그는 강한서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강단해도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회의 시작 전, 그는 이미 자기편에 선 임원진에게 나만 믿으라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강한서가 이렇게 예상에도 없던 선수를 칠 줄이야.“강한서. 너 이거 지금 회사에 분란을 일으키는 거야. 미친 거야?”강한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전 그저 회사를 청소하고 있는 것뿐이에요.”강한서는 주위를 슥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각 지사 경영 상황 보고 계속하시죠.”끓어오르는 분노에 강단해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잠시 생각하던 민경하는 결국 진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강한서가 참지 못하고 폭발했으니, 누군가는 침착하게 일을 해결해야 했다. 임원진에게 미움을 샀기에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중식당으로 가려던 주강운은 도중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휴대폰 너머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주 변호사님, 저... 저 소송 취하할게요...아아악...”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 뭔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욕설도 들려왔다. “이년이, 누가 너더러 이런 짓거리를 벌이라고 했어!”그 후로 우당탕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겼다. 유현진과 차미주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어쩐지 휴대폰 너머의 여자가 맞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간을 찌푸린 주강운은 얼른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미 전화는 통하지 않았다. 주강운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그는 확 핸들을 돌려 유턴했다. “현진 씨, 미주 씨. 밥은 나중에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의뢰인에게 일이 생긴 것 같아서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
“하하하.”한현진이 마른 웃음을 지었다.“오빠. 제가 티슈 없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강한서가 눈을 씰룩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핑계였다. 그는 입술을 달싹여 아내를 따라 염치 없이 말했다. “형님, 저도 없어요.”송민준이 가방과 티슈를 두 사람에게 던지며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겼다. 한현진: ...“오빠가 나한테 화 난 건 아니겠지?”강한서가 우울하게 말했다. “너보단 날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아. 네 오빠가 아무리 너에게 화가 나도 결국은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거야.”한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좀 놓이네.”강한서: ?한현진이 그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차피 오빠가 널 탐탁지 않아 한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오늘 이 일로 크게 달라지진않을 거야.”“...”‘행복은 본인이 누리고 잘못은 내가 뒤집어쓰고. 정말 좋은 아내네.’강한서는 한현진을 데리고 호텔 라운지로 향했다. 입덧이 끝난 이후로 한현진의 식욕은 줄곧 안정적이었다. 매 끼니마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지만 배고픔도 빨리 찾아왔기에 하루에 몇 끼씩 먹어야 했다. 그 덕에 지금의 한현진은 송아지처럼 튼튼하기만 했다. 강한서는 임신한 한현진을 위해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한현진에게는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그의 주변엔 임산부가 많이 없었지만 많은 아내들이 임신 후 남편을 괴롭힌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현진에겐 모든 임신의 호르몬 변화가 거짓말처럼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의사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큰 반응 없이 잘 먹고 잘 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강한서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자주 다니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한현진은 정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조금 유치해지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팔을 끌며 굳이 아이들의 흔들 목마에게 타게 해달라며 떼를 썼다.
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채영 언니.”문채영이 가방에서 포장한 선물 박스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몰라 제가 직접 향낭을 만들었어요. 향 맡아봐요.”한현진이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언니도 조향하세요?”문채영이 미소 지었다. “제가 조향에 입문하게 된 것도 민준이 덕분이었어요. 전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했었거든요.”한현진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조향하는 송민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송민준은 그쪽으론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민준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불쾌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주문부터 해. 배고파.”멈칫하던 문채영이 시선을 내려 눈에 맴도는 서운함을 숨겼다. 한현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랜만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한주 음식으로 드시는 게 어때요?”문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현진 씨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주문한 음식 서빙을 마치고 룸을 나서려는 종업원에게 송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장어 국수도 주문할게요.”문채영이 힐끗 송민준을 쳐다보자 시선을 올린 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지.”‘그래,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다고 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하고 많은 국수 중에 왜 하필 장어 국수야?’‘오빠가 장어 국수라고 말할 때 언니 표정을 보면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장어 국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었던 건가?’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른 한현진이 몰래 테이블 아래로 강한서의 손을 꼬집었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에게 새우를 발라 주었다. 한현진: ...강한서과 문채영은 너무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현진은 문채영의 외할머니와 강한서의 할머니가 먼 친척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촌수가 먼 사이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지 한참 후에야 두 가문이 몇 세대 전에는 친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