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준: ...그는 거짓말을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촬영장은 일하는 곳이에요.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어요.”한태진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무나? 넌 대표잖니. 대표라는 애가 사람도 못 데리고 들어가다니, 넌 왜 이렇게 쓸모가 없어?”송민준: ...언제나 말발이 세던 외손자가 한태진의 말에 그만 말문이 막히자, 공영선이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녀는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민준아, 너 사실대로 얘기해. 현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니?”송민준은 입을 달싹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외삼촌과 외숙모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송병천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이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두 어르신은 순간 심장이 덜컹하는 것 같았다. 한태진이 말을 더듬었다. “현진이가 왜? 무슨 일인데? 너희들 전부 우리한테 숨기고 있는 거니!”결국 외삼촌인 한준웅이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아버지. 현진이 아무 일도 없어요. 잘 지내고 있다고요. 그냥 일을 하는데 조금 문제가 생겨서, 얼굴을 비추기가 곤란해서 그래요.“두 분이 자세히 따져 물어서야 겨우 유현진이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을 알게 되었다. 유현진의 일을 듣고 난 두 분은, 화가 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약속되었던 만남이 무산된 것은 둘째 치고 외손녀가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니 그 생각만 하면 그들은 참지 못하고 송병천을 원망했다. “자네, 제대로 준비해 뒀다고 하지 않았나?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야? 누명을 뒤집어씌운 것이 분명한 일인데, 아직까지도 해결을 못하고 현진이가 사람들에게 욕보이게 하다니?”송병천은 창백해진 얼굴로 그 자리에 서서 두 어르신에게 혼쭐이 나고 있었다. 그가 아내와 사별하고 재혼을 한 뒤로, 두 어르신은 그에게 줄곧 냉담한 태도를 보였었다. 특히 한태진은 그가 눈에만 띄어도 불만을 드러냈다. 근래, 그는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막내딸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뒤로, 그는 이 기회를 빌려 두 분을 모셔왔다. 하나는 딸과
송민준은 이내 강한서가 찍은 유현진이 자는 모습 사진을 몇 장 꺼내 공영선에게 보여주었다.“현진이는 이미 잠들었어요. 이젠 정말 마음이 놓이시죠?”공영선은 송민준의 휴대폰을 들고 자애로운 눈빛으로 사진 속에 잠든 유현진의 모습을 지그시 보았다. 이때 한태진도 머리를 쑥 들이밀고 보았다.“임자, 나도 좀 봅시다!”“난 왜 우리 현진이가 지난번 영상 통화할 때보다 많이 야윈 것 같죠.”“나도 그렇네. 볼살도 지난번보다 움푹 파인 게 안색도 누런 것 좀 봐요.”“아이고, 우리 현진이 많이 힘든가 보네요...”송민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안색이 누런 건 강한서가 그런 노란 불빛 조명을 켜서 그런 거 아닌가?'두 사람은 그 몇 장의 사진을 계속 보고 또 보다가 문득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졌다.공영선이 물었다.“민준아, 우리 현진이가 자는 모습을 누가 찍은 게냐?”송민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현진이 매니저가요.”“정말이냐?”한태진은 휴대폰을 멀찍이 들고 안경을 쓰더니 잘 보이지 않는 듯 눈을 찌푸리며 한참을 자세히 보았다.“근데 어째 침대 머리맡에 있는 게 남자 벨트 같은 거지?”“잘 못 보셨겠죠.”송민준은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그건 초커라고 젊은 애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액세서리에요. 약간 줄이 짧은 목걸이 같은 거죠. 뭐 금속으로 만든 것도 있고 레이스가 달린 것도 있고 사진 속 그런 가죽으로 만든 것도 있거든요.”공영선은 미간을 찌푸렸다.“목걸이라고? 이 강아지 목줄 같은 것이?”송민준이 말했다.“외할머니, 요새 유행이고 패션이에요. 모르시죠? 할머니 젊었을 때 펑퍼짐한 옷이 유행한 것처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저런 초커가 유행이거든요.”두 사람은 여전히 사진 속에 슬쩍 찍힌 물건이 남자 벨트로 보였고 자꾸 아니라는 송민준에 다소 찝찝하긴 했지만, 여하튼 친손녀인 유현진을 보니 바로 받아들였다.“우리 현진이는 피부도 뽀얀 게 뭘 해도 다 이뻐.”송병천은 침묵을 지켰다.그는 처음으로 광란의 열차처
집에 있던 서해금은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얼른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차에서 내린 송병천은 여전히 차 문을 연 채 안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했다.그녀는 낮게 그를 불렀다.“여보.”들려오는 소리에 송병천이 고개를 돌렸다.“아직 안 자고 있었어?”서해금은 그에게 다가가 방금 챙긴 겉옷을 그에게 걸쳐주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안 왔는데 제가 어떻게 먼저 자고 있어요. 어때요? 그분들과는 어떻게 얘기 잘 나누셨어요?'송병천이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하곤 다시 고개를 돌려 송민준을 향해 말했다.“운전하는 속도 좀 줄여. 가는 길 안전 주의하고.”송민준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서해금이 끼어들었다.“이렇게 늦었는데, 어디를 가? 내가 지금 당장 손님방 정리하라고 할 테니까 오늘 밤은 자고 가.”송민준이 미소를 지었다.“아, 괜찮아요. 회사에 남은 업무가 있어서 제가 얼른 가서 처리해야 하거든요. 전 신경 쓰지 마시고 일찍 주무세요.”“이렇게 늦었는데 회사 일이 있어?”서해금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그럼 조심히 운전해. 안전 주의하고 혼자 밥 먹기 싫을 땐 얼마든지 와도 돼. 식탁에 수저 하나 더 올리면 되는 일이니까.”송민준은 미소로 그녀의 말에 대답하곤 바로 차창을 올렸다. 차창이 완벽히 올라간 순간 그의 얼굴에 있던 미소도 사라졌다.그는 속으로 “손님방 정리하라고 할 테니까”라는 말을 계속 곱씹고 있었고 눈빛도 점차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송민준이 떠나자 서해금은 팔짱을 낀 채 팔을 감싸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송병천이 얼른 겉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둘러주었고 나직하게 말했다.“들어가자, 밖이 추워.”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 송가람이 눈에 들어왔고 서해금은 그녀를 불렀다. 정신이 든 그녀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아빠, 왔어?”송병천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너도 왜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시간이 몇 시인데.”송가람이 웃으면서 말했다.“엄
송병천은 순간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어차피 이 일은 서해금도 곧 알게 될 일이었기에 그는 유현진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주기로 했다.“그러니까, 아람 언니가 그때 낳은 딸아이가 살아있단 말이에요? 그것도 그 아이가 유현진이고요?”“그래.”송병천은 감개무량한 듯했다.“세상에 이런 우연도 없지. 가람이가 천식으로 호흡곤란을 일으키자 현진이가 구해준 거잖아. 민준이도 그 일로 현진이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알게 된 거고. 민준이가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현진이가 확실히 내 딸이 맞대. 난 정말 이 모든 게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라고 생각해. 25년 만에 드디어 내 딸이 내 곁으로 돌아오는 거잖아.”서해금도 놀랍다는 듯 말했다.“어쩐지 현진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이상하게 아람 언니랑 닮아 보인다고 했어요. 전 그때 심지어 아람 언니랑 그렇게 닮은 사람이 또 있었나 감탄하기도 했죠. 그런데 정말로...”그녀는 뜸을 들이며 말했다.“아참, 근데 그때 병원에서는 아기가 탯줄에 목이 감겨 질식으로 사망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현진 씨가 살아있다면 그때 장례를 치른 아기는 누구의 아기일까요? 어떻게 두 아이를 착각할 수 있는 거죠?”그녀의 말에 송병천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장례를 치른 건 하현주의 딸일 거야. 다만 시간이 너무 오래되었고 하현주 씨는 이미 돌아가셨지. 다시 유전자 검사할 필요도 없어. 아이가 왜 뒤바뀌게 되었는지는 민준이가 지금 알아보고 있어. 그때 산부인과의 의사랑 간호사들 위주로 말이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민 가지 않으면 행방불명이더라고. 분명 누군가가 뭘 숨기고 있는 거야. 그 사람들을 찾아내면 모든 진실이 밝혀지게 되겠지.”서해금은 입술을 틀어 물고 한참 침묵하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뭐가 어찌 되었든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면 다행이죠. 아람 언니에게도 이런 좋은 소식 전해졌으면 좋겠네요. 그분들도 드디어 딸 잃은 슬픔에서 나올 수 있겠네요.”송병천은 무엇을 떠올렸는지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차미주는 속으로 생각했다.‘어차피 이 아파트 전체에 와이파이가 잔뜩 설치되어 있는데, 혼자만 꺼둔다고 해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전원이 켜진 뒤, 한참 후에야 인터넷에 연결이 되었다.차미주는 얼른 영상을 클릭했다.그 영상은 어느 언론사에서 단독으로 송민영과 인터뷰한 것이었다.영상 속에서 송민영은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고 머리엔 붕대를 감고 있었으며 안색이 아주 창백했다.기자가 그녀의 몸 상태에 관해 물었다.송민영은 하나도 숨김없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했고 팬들에게 자신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인사치레가 끝난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기자가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영 씨, 인터넷에서 지금 떠도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같이 드라마 찍고 있던 여배우가 일부러 송민영을 계단 아래로 밀어버린 거라는 얘기가 있어요. 그게 정말이에요?”송민영은 잠깐 침묵하다 말했다.“사실 저도 그때 상황이 잘 기억 안 나요. 전 감독님의 촬영 요구대로 그 동작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제 어깨를 민 듯한 강한 힘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전 중심을 잃고 그만 떨어지게 되었죠. 현진 씨가 아마 일부러 절 민 것은 아닐 거예요.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연기할 때는 모든 동작이 카메라에 하나하나 담기거든요. 힘을 조절하는 것과 방향을 조절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죠. 힘의 크기에 따라 동작과 효과도 아주 많이 달라지거든요. 전 현진 씨가 그저 힘을 조절하지 못해 실수로 그런 것일 거라 생각해요. 절대 고의는 아닐 거예요. 그럴 이유가 없거든요.”기자가 말했다.“전에 유현진 씨가 민영 씨 팬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았어요? 혹시 그 일로 마음속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고, 일부러 민영 씨 팬들을 자극하는 거 아닐까요?”송민영이 사색에 잠긴 듯 말했다.“그건... 아마 아니겠죠. 제 팬들은 대부분 연령대가 낮거든요. 그저 어린 마음에 뭣도 모르고 한 말이잖아요. 심지어 사과도 하고 그에 필요한 처벌도 받았는걸요. 나중에 제 매니저가 고소당한
차미주는 놀라 비명을 질렀고 이내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들어 던졌다.“변태 새끼야!”한성우는 급히 몸을 피했지만, 장식용 벼루가 자신의 중요 부위를 스치게 되었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게 되었다.그는 기겁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만약 그 벼루를 정통으로 맞았다면 그는 정말로 고자가 되었을 것이다.차미주는 그가 멍하니 우뚝 서 있는 모습에 이를 갈며 욕설을 날렸다.“개자식! 얼른 가서 옷 안 입어?!”“...”한성우는 조용히 서재를 나갔다.그가 다시 나타났을 땐 이미 바지를 챙겨 입은 상태였다.그랬다. 한성우는 바지만 입고 나타난 것이다. 상반신은 여전히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차미주는 책상 앞에 앉아 휴대폰을 보며 인상을 구긴 채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한성우는 커피를 책상에 놓으면서 책상에 기대앉았다.“집에 왔으면 왔다고 말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난 또 집에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잖아.”차미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아무리 도둑이 들었다고 해도 알몸으로 나오냐?”한성우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게 만약 여자 도둑이라면 색기로 유혹이라도 해보려고 했지.”차미주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넌 정말 가리지도 않는구나?”한성우는 웃어버렸다. 이번에 그는 정말로 고의가 아니었다. 알몸으로 일어나 샤워를 하러 가던 도중에 서재에서 인기척을 듣게 되었고 이상함을 느낀 그가 서재 문을 활짝 열게 된 것이었다.다만 옷을 입지 않고 확인한 건 확실히 고의였다.여하간에 사람은 남녀불문하고 알몸에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차미주도 처음엔 조준의 복근을 보고 반하게 된 것이었다. 그의 비율도 조준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는 괜한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반드시 모태 솔로에 살짝 허당기가 있는 그녀를 꼬시리라 마음먹었다.그러나 차미주의 시선은 그가 일부러 노출한 상반신에 머물지 않았고 오히려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한성우는 어이가 없었다.‘내가 휴대폰 보다 매력이 없다는 거야?'
송민영은 아량이 넓은 사람 행세를 하며 인터뷰를 했고 유현진에게 불리한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유현진의 목소리라고 퍼진 음성 파일엔 유현진이 송민영이 다친 것이 아주 쌤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여론은 한쪽으로 몰렸고 전부 유현진을 비난하며 정신이 이상하다는 둥,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둥 얘기들로 가득했다.이런 사람이 정말로 영향력이 큰 배우가 된다면 그 팬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었기에 유현진의 퇴출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그녀가 하는 작품을 전면 중단하라고 했다.“송여우는 정말로 연예계의 암 덩어리야. 걔 팬들부터 봐봐. 무슨 사이비 종교 신도처럼 정신이 아주 홀렸잖아!”화를 참지 못한 차미주는 한성우를 노려보면서 말했다.“다 네 탓이야! 네가 그 여우를 이렇게까지 키우지 않았다면 걔가 지금 이런 짓을 꾸밀 담이나 있겠어? 많고 많은 여배우 중에 연기 잘하는 배우는 안 띄우고 왜 저런 발연기만 해대는 여자를 키운 건데?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한성우는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모든 잘못을 강한서에게 돌렸다.“내가 하늘에 맹세하는데 송민영은 내가 키운 게 아니야. 강한서가 키운 거라고. 그 여자 모든 섭외 다 강한서가 잡아다 준 거야. 그냥 우리 회사 이름으로 구해줬을 뿐이지 내가 키운 게 아니야. 생각해 봐, 송민영이 전에 논란을 일으켜도 내가 어디 관심이나 줬어? 나야말로 그런 진흙탕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고.”차미주는 이를 갈았다.“내가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전부터 강한서와 송민영 사이가 심상치 않다고 했잖아! 안 그러면 걔가 왜 송민영한테 작품 섭외를 해줘? 현진이가 강한서 그 자식이랑 이혼한 건 아주 잘한 일이야. 그런 눈에 곰팡이 핀 애한테 현진이가 훨씬 아까워.”한성우는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맞아, 걔는 너무 집에서 곱게 커서 소중한 걸 아낄 줄을 몰라.”차미주는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너도 문제야. 강한서가 그딴 년을 키워주고 있다는 거 알면서도 말도 안 해주고 일부러 숨겨주고 있었잖아. 너 같은 사람
차미주는 원래 “네가 무슨 내 남자친구야.”라고 말하려 했지만, 재산이 많다는 소식에 그녀는 바로 호기심이 생겨버렸다.“얼마나 있는데?”한성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면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뭐 2천억 정도는 될 거야.”“아, 그래.”차미주는 흥미진진한 모습이었다.“별로 뭐, 괜찮네.”“??? 괜찮다고?”그녀는 현재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2천억이라는 재산에 괜찮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그가 차미주에게 2천억이란 얼마나 많은 금액인지 설명하려던 순간, 차미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네 재산은 강한서보다 많이 달리네. 강한서는 현진이랑 이혼할 때 위자료로 2천억을 준다고 했어. 그런데, 네 재산이 고작 2천억 정도라고?”“...”그는 급히 해명했다.“난 그냥 건물이랑 주식을 빼고 말한 거야!”“그것들을 포함해도 강한서보다 많아?”한성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내 이를 갈며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난 내 힘으로 하나씩 회사를 키워나간 거야. 강한서는 처음부터 강씨 가문의 힘으로 그렇게 많은 돈이 생겨난 거라고.”차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집안도 강한서보다 못하지. 강한서가 너랑 함께 지금까지 계속 어울려 줬다는 건, 그래도 걔 성격이 좋아서 그런 거였네. 난 또 재벌들끼리 서로 엄청 견제하고 무시하는 줄 알았지.”“...”‘난 차미주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한 말인데, 왜 얘기가 강한서 자랑으로 흘러갔지?'원래 곁에 대단한 친구가 있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었지만 모든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예시를 들자면,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 자신을 뽐내고 있을 때 비교를 당하는 상황에서 말이다.차미주는 이내 그 음성 파일을 편집 어플에 집어넣었고 편집된 부분을 빠르게 동그라미로 표기했다. 그리곤 옆에 설명을 덧붙여 알아보기 쉽게 정리한 후 채널을 운영하는 자신의 몇몇 친구들에게 보내면서 널리 퍼뜨릴 것을 부탁했다.그녀의 친구들은 전부 이 시기에 이런 영상을 올리면 악플 받는다며 그녀를 말렸고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