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주가 말했다.“성우 오빠, 화 좀 그만 풀어. 네가 나한테 여성스러움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해도 난 화를 내지 않았잖아. 안 그래? 넌 그냥 생긴 게 카사노바처럼 생긴 거야. 하지만 잘 알고 지내보면 또 의리는 아주 넘치지. 어차피 내가 너랑 연애하는 것도 아니니까 네가 카사노바이든 아니든 난 상관 안 해. 친구로서는 넌 최고야.”한성우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차미주의 ‘어차피 너랑 연애하는 것도 아니니까'라는 말이 이상하게 귀에 거슬렸고 순간 마음이 답답해지기까지 했다.그는 얼굴에 힘을 주고 이를 갈며 말했다.“네가 나랑 사귀자고 해도 넌 내 취향 자체가 아니야!”차미주는 그가 어느 부분에서 화를 내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그저 평소처럼 헤실헤실 웃으면서 대꾸했다.“그럼 당연하지. 우리 성우 오빠의 눈이 얼마나 높은데, 짜리몽땅한 내가 성에 차겠어?”자신을 비하하며 그를 위로해 주는 그녀의 말에 한성우는 별로 기쁘지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답답해졌다.그는 속으로 생각했다.‘그래, 내가 눈이 삐었던 거지. 취향도 아닌 짜리몽땅한 너를 온종일 생각하고 있잖아. 게다가 넌 하필이면 이런 쪽엔 눈치라곤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나를 남자라고 생각도 안 하고 있다니.'“됐어, 됐어. 화 좀 풀어. 내가 저작권료를 받으면 한턱 크게 살게. 저기 앞 사거리에 새로 생긴 그 레스토랑 메뉴 전부 시켜서 싹수없는 사장 놀라게 만들어 주자고!”한성우는 답답한 마음을 갈무리하고 물었다.“그 레스토랑 사장이 너한테 어떻게 했길래 이러는 거냐?”“뭘 딱히 한 건 아니야. 그냥 매번 내가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눈을 희번덕거리거든.”차미주는 말하면서 사장 흉내를 냈다.“눈을 희번덕 뜨면서 마치 ‘거지는 들어올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다니까.”그녀의 말에 한성우는 답답했던 마음이 싹 가셨고 순간 웃음이 터져버렸다.“그러니까 그 사장이 널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그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메뉴에 있는 음식을 전부 시키겠다는 거야? 그건 사장한테 더 좋은 일이
‘난 그냥 한 말이었다고.'‘이 자식은 정말 진심으로 받아들이잖아.'근육이 선명한 등에 차미주의 가슴이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한성우의 키는 비록 강한서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몸은 다소 마른 편이었다. 그러나 그의 몸엔 근육이 가득했고 한눈에 봐도 매일 같이 헬스장에 꾸준히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차미주는 드라마 팀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이런 건장한 사람들을 많이 봤었다.특히 근 몇 년 동안 회사에선 청춘 로맨스 드라마를 많이 만들었고, 그녀가 맡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인기가 많고 나이도 어린 사람들이었다.그 젊은 배우들은 하나같이 피부도 뽀얗고 아주 귀여웠지만, 옷을 벗기만 하면 열에 여덟은 비실비실한 몸이 드러났고 온몸에 뼈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근육이 조금 있다 해도 전부 다이어트를 했고 제작진이 준비한 옷도 오버 사이즈여서 흡사 어린아이가 어른의 옷을 몰래 입을 것처럼 아주 커 보였다.관건은 팬들이 맹목적으로 자신의 아이돌의 몸매 비율이 아주 좋다고 칭찬하는 것이었다.그랬기에 차미주는 그 몇 년 동안 자신의 안목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었다.예전엔, 번마다 제작진들이 어느 남자 배우에게 상반신 노출신을 제안할 때마다 사람들은 바로 모여들어 구경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몰려드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하나같이 비실비실하니 별로 구경할 생각도 나지 않은 것이었다.한성우도 마른 편이었지만 그의 몸은 온통 근육이었다. 육안으로만 봐도 한성우의 몸엔 체지방이 엄청 적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고 몸 구석구석 탄탄한 근육이 잡혀 있었다. 한성우의 몸은 그야말로 의사들이 인체 표본으로 삼을 만한 완벽한 몸이었다.한성우의 몸이야말로 정상적인 남성 몸이었고 남녀노소 누구나 다 좋아할 몸매였다.“얼른 안 하고 뭐 해?”재촉하는 한성우의 목소리에 차미주는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마른기침을 내뱉으며 쿵쿵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다.“큼, 할 거야. 지금 할게.”말을 마친 그녀는 얼른
한성우가 가져온 상자엔 부항 치료 도구가 가득했고 심지어 등에 바르는 오일도 있었다.한성우는 가끔 마사지샵으로 찾아가기 귀찮을 때마다 안마사를 집으로 불렀었다. 그랬기에 그의 집엔 뜬금없는 물건들이 아주 많았다.대충 핑계를 둘러대며 허세를 부리던 차미주는 지금, 이 순간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누가 보면 네가 마사지샵을 차린 줄 알겠어.”한성우는 그녀에게 도구를 던져주며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네 실력을 보여줘.”말을 마친 한성우는 바로 소파 위에 엎드렸고 등을 전부 드러냈다.차미주는 손에 든 라이터를 힐끔 보더니 이내 다시 상자에 가득 담긴 부항 도구를 보았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예전에 부항 치료받으러 갔을 때의 전문가 손길을 떠올리며 그리 어렵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일단 이걸 이렇게 쥐고, 다음은 이렇게 꽂아 넣고, 등에 올려놓는 거겠지?'‘뭐... 전문적인 기술은 없는 것 같은데?'“빨리해.”한성우가 재촉했다.“이따 게임도 해야 한단 말이야.”차미주는 집중을 하며 소독솜을 들고 그의 등을 쓱쓱 닦았다. 그리고 이내 부항을 들고 빠르게 그의 등에, 정중앙에 놓았다.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한성우에 차미주는 부항을 툭툭 건드려 보았다. 아주 단단하게 고정된 것 같았다. 그녀는 순간 자신이 천재가 아닌가 생각했고 대충 아무렇게 부항을 놓아도 완벽할 것이라 여겼다.한성우는 리모컨을 들고 TV를 틀었다. 그는 여유롭게 차미주의 치료를 받아들이고 있었다.TV엔 마침 이라는 드라마 예고편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 드라마는 다음 주에 방영될 예정이라고 했고 방영하기 2주 전부터 이미 실검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드라마는 아직 방영되진 않았지만, 홍보는 이미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정도로 많이 했던 것이었다.드라마를 찍을 때 원작자는 표절 의혹으로 실검에 오른 적이 있었다. 표절 논란이 되고 오히려 드라마에 역효과를 일으켜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그때 당시 드라마 원작자를 비난하는 네
차미주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아아아아악, 너 엉덩이에 불붙었어!”한성우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이내 엉덩이가 뜨겁다는 것을 느꼈고 고개를 돌리니 바지에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그는 벌떡 일어나 소파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빠르게 불이 붙은 바지를 벗어 휙 던져버렸다.그제야 정신이 든 차미주는 얼른 발로 불이 붙은 바지를 마구 밟았다.불이 꺼지고 그녀는 다소 걱정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든 그녀는 한성우가 화상을 입진 않았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성우는 알몸으로 소파 옆에 서 있었고 그녀의 애착 담요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차미주는 순간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녀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내 담요는 왜 두르는데!”한성우는 담요를 허리에 꽉 두르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그럼 벗고 있을까?”담요 뒤로 가려진 그의 하반신을 떠올린 그녀는 바로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그러다 한참 후에야 이를 갈며 말했다.“아니, 왜 팬티는 안 입고 있었는데!”한성우가 논리정연하게 말했다.“이건 네가 집에서 브래지어를 안 입고 있는 거랑 같은 원리야. 안 입으면 아주 편하거든.”“...”차미주는 할 말을 잃었다.말을 마친 한성우가 결국 투덜거렸다.“너 부항 치료에 아주 능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내 바지를 태워 먹을 수가 있어? 내가 반응이 빠르지 않았다면 이미 엉덩이가 타버렸을 거야.”차미주는 그에게 아주 미안했다. 그녀에게서는 평소의 기세등등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고 잔뜩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사실 할 줄 몰라. 네가 처음이야. 아까 한창 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려서, 놀라서 그만... 그렇게 된 거야.”한성우는 그녀를 흘겨보았다.“너 때문에 하마터면 나한테서 대가 끊길 뻔했어. 정말로 심하게 타버렸다면 너 어떻게 나한테 배상하려고 그래?”차미주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낮게 중얼거렸다.“네가 정말로 화상을 입고 네
차미주는 엘리베이터 입구로 달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박스를 안아 들었다. 막 집으로 돌아오자 한성우가 절뚝거리며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차미주가 얼른 물건을 내려놓고 물었다. “어때, 아직도 아파?”한성우가 의자 등받이를 잡았다. 그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안 좋아.”차미주의 얼굴이 한성우보다 더 어두워졌다.그녀는 사고를 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말없이 한성우를 끌며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그녀는 한성우를 병원에 데려가기에 급급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 내내, 차미주는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성우는 엉덩이가 다쳐 앉을 수 없었기에 뒷좌석에 옆으로 누워 차미주의 다리를 베고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야에서 봤을 때, 차미주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평소 통통하던 턱은 긴장으로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그녀가 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성우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보조개를 쿡 찔렀다. 그는 피식 웃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왜 이렇게 긴장해. 내가 정말 병신이라도 돼서 나한테 시집오는 거로 사죄해야 할까 봐서 그래?”“너 말하지 마. 나 심장 떨려.”차미주는 지금 전혀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한성우에게 화상으로 문제가 생겼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한성우는 정말 많이 아픈지 말을 마치자 눈을 감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는 곧 병원에 도착했고 차미주는 한성우를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는 부항 치료를 하다가 화상을 입었다는 말을 듣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서둘러 바지를 벗게 하고 상처를 확인했다. 잠시 멈칫한 한성우가 고개를 돌려 차미주를 향해 말했다. “너 먼저 나가 있어.”걱정되었던 차미주는 그에게 당부하며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러더니 그녀는 잠시 자리를 비켰다. 커튼을 친 의사가 그에게 말했다. “누우세요, 확인할게요.”한성우는 움직이지 않고 의자를 끌어와 의사의 맞은켠에 앉았다. 의사:
의사는 차미주의 눈을 피하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는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문제가 조금 심각해요. 엉덩이 피부뿐만 아니라 서혜부, 회음부, 생식기 근처에도 화상을 입은 흔적이 있었어요.”의사의 말에 차미주는 순간 멍해졌다. “선생님, 확실한 건가요? 집에 있을 땐, 걸을 수 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심할 수 있어요?”의사는 그녀를 쓱 훑어보았다. “제 소견에 의문을 제기하시는 건가요?”차미주가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전 단지... 조금 당황스러워서요. 집에서는 분명 멀쩡했어요. 아프다는 말도 안 했고 걷기도 했는데, 왜 병원에 도착하니까 일어나지도 못하는 거예요?”의사가 대답했다. “화상이 심할 경우 통증을 느끼는 감각이 둔해질 수 있는데, 이건 정상이에요.”차미주가 이 말의 논리가 맞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의사가 말을 이었다. “관리를 제대로 못 하면 남성의 기능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요. 안 그래도 부항 치료는 비전문적인 사람이 진행하면 위험한데, 진료소도 아니고 집에서 하셨다니,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네요.”앞부분의 말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차미주가 뒤의 말을 듣더니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심각하다는 말을 들은 차미주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려버렸고 눈도 덩달아 붉어졌다. 그녀는 코를 풀쩍거렸고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았다. “그럼 어떡해요, 입원해야 하는 건가요? 수술은 안 해도 돼요? 제가 얼마를 준비하면 되죠?”“화상 부위가 혈관과 신경이 많은 곳이라, 약물 치료를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수술은 위험부담이 적지 않으니까요. 아직 저렇게 젊은데, 만약 약물 치료로 호전이 없으면 그때 다시 수술을 고민해 보죠.”말을 마친 의사는 괜히 마음에 찔려 눈길을 피했다. 의사의 말은 허점투성이였지만 마침 마음이 복잡했던 차미주는 그의 말을 자세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남성 기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말뿐이었다.‘
그녀는 만약 집에서 마련한 혼사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집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26살 생일이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녀는 들떠 있었다. 이틀 전엔 엄마가 미신을 믿는다며, 역시 미신은 믿을 게 못 된다며 문자를 보내 디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뒤통수를 맞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 일은, 마침 25살의 마지막 순간에 걸려들었다. 감방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차미주는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웠고 점점 더 괴로웠다. 이건 차라리 자신이 화상을 입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병실로 들어온 차미주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서 있기만 했다. 너무 오랫동안 엎드려 누워있었던 한성우는 뻐근한 기분에 막 자세를 살짝 바꿔보려던 순간 차미주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병원비는 내가 책임질게. 그리고 네가 치료하는 동안 식비, 영양비, 피해...”그녀는 말을 멈추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입을 열었다.“피해보상은 내가 지금은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차용증 써도 돼?”그녀를 쳐다보던 한성우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의사가 방금 너한테 뭐라고 했어?”그에 차미주는 당황했다. “너한테 얘기 안 했어?”한성우가 말했다. “아까 약 바를 때 너무 아파서 제대로 못 들었어.”차미주: ...‘그걸 내가 어떻게 말해? 화상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앞으로 안 될 것 같다고 얘기해?’그녀가 계속 입을 열지 않자 한성우가 떠보듯 물었다. “심각한 거야?”차미주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우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말해. 마음의 준비 다 했어.”그의 말에 차미주는 더 미안해졌다.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네가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해도, 네가 성적 불능이 되었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 거야.’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더니 할 말을 정리하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의사가, 네가 거기를 다쳐서, 완전히 회복되기 전엔 남성적 기능에 영향이 있을 수 있대.”그녀의 말에
그녀의 말에 한성우의 가슴이 요동쳤다. 그러나 그는 못 알아들은 척 물었다. “네가 뭘 해?”이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차미주는 마음을 굳게 먹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내가 네 여자친구 행세를 하면 안 돼?”한성우는 멈칫하더니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네가? 그건 좀 아니지 않냐?”차미주는 한성우가 자신을 마땅치 않아 한다고 생각했다. “너 그게 무슨 표정이야? 그래, 내가 네 전 여친처럼 쭉쭉빵빵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그저 임시방편이잖아. 지금 나 말고 네가 어디 가서 나만큼... 만큼 네 비밀을 지켜줄 사람이 있어?”한성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언제 네가 싫다고 했어. 난 그냥 내가 네 발목을 잡을 것 같아서 그래.”그는 말끝을 흐리더니 눈을 내리깔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너 조준 씨랑 잘 되고 싶잖아. 요즘 진전이 좀 있는 것 같던데, 네가 내 여자친구가 되면, 너희 관계는 끝나 버리게 되잖아. 그러면 나 마음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아.”조준 말이 나오자 차미주의 표정에는 주저함이 묻어났다. 한성우는 그저 가만히 차미주의 표정을 살폈다. 차미주가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한성우가 헛기침하며 말했다. “그만두자, 너도 난처할 텐데. 아무래도 인생이 걸린 문제니까. 이것도 내 운명이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너한테 부항 치료를 해달라고 해서는...”흔들리고 있던 차미주의 마음이 한성우가 뒤에 한 말 때문에 죄책감으로 흘러넘쳤다. 그가 내뱉은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죄책감과 양심을 콕콕 찔렀다. 만약 한성우가 정말 낫지 않는다면, 그녀에겐 사랑을 쫓을 자격 따위는 없을 것이다. 죄책감이 그녀를 집어삼킬 테니까. 게다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차미주가 조준에게 너무나도 티 나게 대시를 했지만, 조준은 한번도 그녀의 마음에 대답해 준 적이 없었다. 물론 그녀를 거절한 적도 없었다. 아마 조준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처를 주기 싫어서 직접적으로 거절하지 못 한 것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