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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3화

Author: 임공
시연은 손에 들고 있던 ‘팸플릿’을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말해, 조한나의 상대 남자들... 얼굴은 꽤 괜찮았다.

‘인성은 글러도, 눈은 제대로 달린 모양이네.’

그렇게 감탄하고 있던 찰나, 시연의 눈앞이 훅 어두워졌다.

누군가 그녀의 두 눈을 가렸다.

은은한 민트향의 향수 냄새.

누군지 안 봐도 알 것 같은 그 향기.

유건은 시연의 손에서 팸플릿을 쓱 빼내고 나서야, 두 손을 풀었다.

“이런 거 보지 마. 예쁜 눈 더럽히지 말란 뜻이야.”

‘또 시작이네...’

시연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만으로도 유건은 알 수 있었다.

‘나랑 눈도 마주치기 싫다는 거구나...’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만하지. 내가 잘못했으니까. 조금만 참자.’

“오늘 저녁은 같이 못 먹겠어.”

유건은 말투를 낮춰 설명했다.

“수액 맞고, 바로 옆 도시로 가야 해. 비즈니스 미팅이 있어.”

“나한테 그런 말 안 해도 돼요.”

시연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

일찍이 그런 반응을 예상한 유건은 예전만큼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해야 해. 오늘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매일 당신한테 보고할 거야.”

‘맘대로 하던가.’

시연은 그저 대꾸하지 않았다.

“할 말 다 했어요? 그럼 어서 수액 맞으러 가요.”

‘제발 빨리 좀 가라.’

유건은 그녀의 표정에서 ‘귀찮음’ 세 글자를 읽었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다녀올게. 내일 오후, 늦어도 저녁엔 돌아올 거야.”

“그래요...”

시연은 성의 없는 고갯짓으로 대답했다.

유건은 더 이상 붙잡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뒷모습이 멀어지자, 시연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만큼은 안 봐도 되네. 다행이야.’

그리고 몸을 돌리자마자, 기환과 딱 마주쳤다.

예나 지금이나, 그녀를 은근히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기환은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시연을 보자 화들짝 놀라 그 봉투를 얼른 등 뒤로 숨겼다.

“형수님, 이제 퇴근하세요?”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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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84화

    ‘고유건... 보기 드물게 화가 나 있었는데... 정말, 나 때문일까?’시연의 마음이 더욱더 복잡해졌다.“형수님.” 기환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흰 다 알아요. 형님이 진심으로 형수님 좋아하신다는 거요. 정말로 잘해주시잖아요.”“그래요.”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부정하지 않았다.“나한테는 정말 잘해줘요. 근데... 나한테만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장소미한테도 잘하니까요. 아니, 어쩌면... 더 잘하겠죠.” ...다음 날, 시연은 마침 휴무였다. 오랜만에 게으름을 부릴 수 있었고, 거의 정오가 다 돼서야 눈을 떴다. 진아는 출근하면서 식사를 챙겨놓고 갔다.시연이 늦은 아침을 먹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지동성이었다.“무슨 일이세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았다.[시연아, 지금 어디야? 직접 만나서 얘기하자.]‘장소미 상태가 그 정도면 바쁠 만도 한데... 날 보러 나올 시간이 있나?’“어디서요?” [강울대 뒷길, 거기서 보자.]“좋아요.” 전화를 끊고도 시연은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식사를 마친 뒤 옷을 챙겨 입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강울대 뒷골목. 그곳에 도착하자, 지동성은 이미 와 있었다.“시연아, 여기.” 그가 손을 흔들었다.시연은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인데요? 아버지도 바쁘실 텐데.”지동성은 잠시 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알고 있구나?”그는 얼굴빛이 조금 바뀌었다. “하긴, 소미가 다친 건 워낙 큰일이니까... 네가 모를 리 없지.”“설마 그 얘기 하려고 절 부른 건 아니겠죠?” 시연의 말투엔 은근한 짜증이 묻어났다. “용건은 뭐죠?” “알았어, 바로 말할게.” 지동성은 황급히 말을 돌리며, 옆에 두었던 갈색 서류봉투 하나를 내밀었다.“이게 뭐죠?”“전에 말했던 집문서야. 너랑 우주 명의로 된 집문서랑 열쇠, 그리고 네가 지난번에 안 가져간 카드도 같이 들어 있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85화

    “장난 그만 치시고, 여기까지 하자고요.” 시연은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시연아!” 지동성은 다급히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가지 마! 제발...!”아버지의 목소리엔 진짜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말도 다 꺼냈는데, 딸은 여전히 받지 않겠단다. 그 순간, 지동성은 절실하게 깨달았다. 딸이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그것도, 뼛속까지.‘이젠 애원으로도 안 되는 거구나...’지동성은 이를 악물며 쓴웃음을 흘렸다. “그냥 가버릴 거야? 그게 네 마음이야?”“무슨 뜻이에요?” 시연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아빠는 이제 오래 못 살아. 네가 이 집도, 돈도 안 가지겠다고 하면, 이 모든 건 결국 소미 엄미랑 소미의 몫이 될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그 말에, 시연의 눈빛이 단단히 흔들렸다.“너희 엄마 말이야.” 지동성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네 엄마... 내가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같이 고생한 사람이야. 지금 이 집, 이 돈, 반은 네 엄마 몫이야. 정말... 안 가져갈 거야?”시연은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그래... 우리 엄마는 아버지가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함께했지. 겨우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땐 이미 병에 걸려...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떠나셨고.’‘그리고, 그 자리를 장미리가 차지했어... 떳떳하게 들어와, 우리 엄마의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 여자라고...’시연은 말이 없었지만, 지동성은 딸의 흔들리는 눈빛을 읽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시연의 손에 봉투를 쥐여주며 말했다. “가져. 원래 너랑 우주의 몫이야.”시연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멀리, 건물 모퉁이 한쪽. 기환은 그 장면을 모두 목격하고 있었다.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서 대화는 들리지 않았지만, 지동성은 시연의 손을 잡았던 것을 봤다. 그것도, 두 눈으로 똑똑히.기환은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두 사람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그리고 바로 유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86화

    시연이 향한 곳은 태산요양병원이었다. 즉, 우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시연이 도착했을 때, 최예민은 방을 정리 중이었다.“사모님, 오셨네요.” “네. 우주는요?” 최예민은 우주의 방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낮췄다. “교수님과 심리상담 중이에요. 방해될지도 모르니 조금만 기다리시죠.” “알겠어요.” 최예민은 시연에게 물을 내오며 덧붙였다. “우주 상태가 정말 아주 좋아졌어요. 교수님이 확실히 전문가이긴 하시네요.” “정말 수고 많았어요.” “별말씀을요. 전 당연히 할 일을 한 거예요.”시연은 부드럽게 웃었다. “오늘 밤엔 제가 여기 있을게요. 지금 퇴근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와주세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는 내가 보이면 나만 찾잖아요. 어차피 여기 계셔도 특별히 할 일이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오랜만에 휴식 시간을 좀 가지세요. 멀리 가지만 않으면 되잖아요?” “그럼 감사합니다, 사모님.” “천천히 정리하고 가요.”최예민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시연은 가방을 내려두고, 미리 사 온 딸기를 씻기 시작했다. ‘오늘 딸기가 유난히 향긋하네.’ 가을 냄새가 짙게 내려앉은 저녁. 해가 완전히 져갈 무렵, 검은색 카이엔 한 대가 요양병원 앞에 조용히 멈췄다.차 문이 열리고, 긴 다리가 바닥을 디뎠다. 고유건이었다.“형님!” 기환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왔다. “지동성이랑 헤어진 후, 곧장 여기로 오셨어요. 계속 안에서 계십니다.”“그래.” 유건은 짧게 대답하고 곧장 안으로 향했다.하지만 요양병원 입구에서 보안팀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면회 시간은 이미 지났습니다. 지금은 아이들도 다 잠든 시간이거든요.” 유건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밤 9시 50분이었다.‘강제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자는 우주를 깨우게 될지도 몰라. 놀라게 하면... 그건 안 되지.’그는 잠시 고민한 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87화

    ‘손을 잡으라고?’시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요청이야?’ ‘또 왜 이러는 걸까?’‘진짜 미쳤나? 하지만 나까지 같이 미쳐줄 순 없지.’ “당신...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별일 없으면 나 들어가야 할 것...”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건이 성큼 다가와 시연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 단숨에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어...!” 순간, 시연은 중심을 잃고 유건의 가슴팍에 안겨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번쩍 들었지만, 그녀의 손은 이미 남자의 두 손에 단단히 얽혀 있었다. 두 사람의 손이, 꼭 맞물렸다.“당신, 이 밤중에 왜 이러는데요?” 시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왜냐고?” 유건의 눈에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남자의 타오르는 눈빛은, 오로지 그녀만을 향하고 있었다.유건은 시연의 손을 입술에 가져갔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내 아내야. 내 사람이라고. 나 말고, 누구도 당신을 건드릴 수 없어. 설마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미쳤어. 또 시작이네.’ “누가 날 건드렸다고 그래요? 정신 차려요, 고유건 씨.” 시연은 당황과 분노가 뒤섞인 채 반박했다.‘또 그 망상이야? 또 내 사생활 의심하는 거야?’“정말 아니야?” 유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다시 생각해 봐. 힌트를 줄게. 오늘 있었던 일이야.” “뭐라고요...?” 시연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 그러다 문득, 머리가 번뜩였다.‘설마... 아버지?’‘맞네, 오늘 하루 종일 정기환이 나를 따라다녔었지.’ 시연의 경호원이자, 동시에 유건의 정보원이기도 한 정기환.“하하.” 시연은 비웃듯 웃었다.“계속 기환 씨를 시켜서 날 감시할 거면, 경호는 필요 없어요. 그냥 데리고 가요.”그녀는 몸을 빼려고 했지만, 유건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헛수고야. 도망친다고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남자는 두 팔로 더욱 단단히 시연을 조였다.유건은 그녀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88화

    시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마음은, 통째로 꼬여버린 듯 아팠다. ‘아파. 진짜... 미치게 아프네...’ 그래서 더 또렷해졌다. 이 아픔이 현실임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걸.그녀는 유건의 가슴을 가볍게 밀어냈다. “인제 그만 가요. 늦어서 나도 이만 자야 해요.” 말을 마치며 하품까지 했다. 꽤 피곤한 얼굴이었다.유건은 끝내 시연의 손을 놓았다. 얽히고설킨 마음을 억지로 끊어내는 듯, 조용히.“나도, 당신 자신도 좀 놓아줘요. 유건 씨, 마음이 둘인 거, 그것만큼 힘든 건 없어요.” 그 말만 남기고 시연은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닫히는 정문. 그 앞에 홀로 선 유건은, 주먹을 쥔 채 숨을 삼켰다.‘놓아달라고? 전엔 그랬지.’‘근데 지금은 안 돼. 못 놔. 절대 못 놔.’...다음 날 아침. 최예민은 첫 지하철을 타고 새벽같이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단정히 주차된 포르쉐 카이엔을 발견했다.‘설마... 어젯밤부터 있었던 거야?’차에 다가가지는 않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시연은 이미 세수도 끝낸 상태였다. 우주의 세수를 도와주며 옆에서 웃고 있었다.“사모님, 아침 사 왔어요. 드시고 가세요.” 최예민이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네, 고마워요.” 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앉았다.우주가 거실로 나오자, 최예민이 서둘러 아이를 돌봤다.시연은 따뜻한 죽을 천천히 먹으며, 무심하게 묻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사모님, 아까 보니까 고 대표님이 벌써 도착해 계시던데요? 매번 이렇게 일찍 와서 데려가세요? 완전 스윗하시다...”‘뭐...?’숟가락을 멈춘 시연은 눈을 깜빡였다.‘그 사람... 어젯밤에 안 간 거야?’‘아님... 새벽부터 또 온 거야?’어느 쪽이든, 그녀에겐 아무 의미가 없었다.그래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아침을 다 먹고, 우주에게 인사하고 시연은 가방을 멨다. 하지만 정문으로는 나가지 않았다.‘그 사람... 아직 거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89화

    시연은 짐 정리는 이미 끝나 있었다. 사실, 딱히 챙길 것도 많지 않았다.그녀는 캐리어 하나, 그리고 작은 캐리어 하나를 꺼내 놓고, 문 옆에 조용히 세워뒀다. 고개를 들자, 진아가 서운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진짜 가는 거야?” “응.” 시연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여기 살 순 없잖아. 언젠가는 떠나야지.”몇 달 뒤면 아이가 태어난다. 지동성이 준 그 작은 집은, 시연이 임시로 머물던 공간이었다.그리고 지동성이 건넨 그 카드에는, 우주의 유학 비용을 감당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금액이 들어 있었다. 나머지는 출산 후, 시연이 아이를 돌보는 도우미를 쓰는 데 쓸 수 있을 터였다. ‘내가 조리원에서 나와 다시 일하게 되면, 어떻게든 살 수 있겠지.’‘그 사람이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건 인정해야 해.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날 도와준 거야.’ 진아도 그 모든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말없이 입술을 내밀었다.“그냥... 네가 가는 게 싫어서 그래.” “못 만나는 것도 아닌데 뭘.” 시연은 진아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우리 집 넓어. 방도 많으니까 자주 놀러 와. 꼭이야.”“응...” 진아는 코끝을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멍청이.” 시연은 웃으며 그녀를 안았다. “그래서 너, 남자 친구는 언제 만들 거야?”“나?” 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 친구 같은 건 안 만들래. 난 그냥... 잘생긴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또 시치미 떼네.’ 시연은 장난스럽게 진아의 목덜미를 팔로 감싸고 속삭였다.“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여자가 먼저 고백할 수도 있는 거야. 여자가 먼저 다가가도 돼. ‘여자가 마음먹고 다가가면, 남자는 무너진다’는 말도 몰라?”진아는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그, 그런 거 아냐! 그런 사람 진짜 없다고 했잖아!”‘과연 그럴까?’ 시연은 모른 척, 가볍게 웃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90화

    “네, 형님!” 기환의 목소리는 짧고 단호했다. 곧바로 시연이 타고 있는 차량의 위치를 유건에게 전송했다.지동성이 마련해준 그 집은, 진아의 집과 멀지 않은 강울대병원 근처였다. 차는 조용히 단지로 들어섰고, 아파트 입구에 멈췄다.짐을 내려놓고, 지동성이 말했다. “열쇠 챙겼지? 난 여분이 없어.”“네, 있어요.” 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동성의 뒤를 따랐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조용히 올라가는 길. 시연은 잠깐 숨을 고르며 문을 열었다. 현관을 들어서자, 센서 등이 켜졌다.그녀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하지만 첫 번째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리모델링이 끝난 이 집은, 깔끔한 가구들과 소프트한 조명, 따뜻한 톤으로 채워져 있었다.지동성은 짐을 안방에 옮겨놓고 물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네, 좋아요.” 시연은 솔직하게 말했다. ‘편안하다. 처음으로, 진짜 내 공간이 생긴 느낌이야.’“다행이네...” 지동성은 미소를 보였지만,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복부를 살짝 감쌌다.그 순간, 시연이 눈치를 챘다. “몸이 안 좋으세요?”“괜찮아.” 그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물 좀 줄래? 약을 먹어야 해서.”“네.” 시연은 바로 부엌으로 가서 컵에 물을 담아 왔다. “여기요.”“고마워.” 지동성은 약병에서 몇 알을 꺼내 물과 함께 삼켰다.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시연은 괜히 미안해졌다. ‘저 나이에, 병든 몸으로 나까지 도와주고... 뭐,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보다는 더 많이 해준 셈이네.’“조금 앉아서 쉬세요. 무리하시면 안 돼요.”“응.” 지동성이 소파에 조용히 앉으려는 순간, 벨소리가 울렸다. 띵동-두 사람 모두 놀라, 서로를 바라봤다.“누구지?” 시연은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자마자, 긴 다리로 정갈하게 선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절제된 표정, 억눌린 듯한 웃음, 유건이었다.시연은 본능적으로 미간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91화

    “일어나는 거 도와드릴게요.” “그래, 고맙다.”시연은 지동성을 부축해 조심스레 일으켰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유건의 눈빛은, 금세 타오르기 시작했다.‘왜 자꾸 저 인간 몸에... 자꾸 손을 대는 거야?’ 유건의 분노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지시연, 놔! 그 손 당장 놔!”“내가... 내가 다시는 그 인간한테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유건의 눈동자에서는 불이 이는 듯했다. 언제 터질지 모를 화산처럼, 들끓고 있었다.시연은 속에서부터 전율이 일었지만, 지동성이 또 다칠까 봐 얼른 보내야 했다. “이제 가세요, 빨리요.” 시연은 그의 눈을 피하며 재촉했다. “얼른요!”“하지만, 시연아...” 지동성은 머뭇거렸다. 딸을 남기고 가는 것이 불안했다.“제발요, 그냥 가요! 내 일이에요. 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요. 여기 남아봤자 또 맞기만 해요, 그걸 원해서 이러시는 거예요?”“그럼, 또 보러 올게.”지동성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발걸음을 돌렸다.하지만, 유건의 눈빛은 살기를 품고 있었다. “가긴 어딜 가?” ‘저 노친네, 생각할수록 더 화난다니까? 시연이가 저 노친네를 지키다니, 내 마음은 점점 무너지는 느낌이라고!’“한 발짝도 못 나가.”“고유건 씨!” 시연은 유건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이제 그만해요! 다신 누구도 때리지 마요!! 알겠어요?!”“여보!!!” 유건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상처가 뒤섞여 있었다.“나한테 화내는 건 이해해. 하지만... 저 사람은...”그때, 지동성이 발걸음을 멈췄다. 고요한 목소리로 말했다.“고 대표님, 이만 시연이를 놔주세요.”“하.” 유건은 비웃었다. “저 노친네가 지금... 씨X,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그는 다시 앞으로 다가가려 했고, 주먹을 말았다.“안 돼요!” 시연은 본능적으로 유건을 껴안았다.“부탁이에요!! 때리지 마요!!”지동성은 담담하게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말을 이었다. “내 딸은 내가 가장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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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88화

    ‘그래서 그런가... 불길한 예감은 꼭 맞아떨어진다니까.’ 저녁 회의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온 시연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처음엔 단순히 목이 간질간질했는데, 곧이어 재채기가 계속 나왔고, 콧물에 눈물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 이마에 손을 얹어보고 깜짝 놀랐다.‘뜨거워... 감기다. 몸살이 왔어.’ 그녀는 임신 중이라 함부로 약을 먹을 수도 없었고, 병원에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시연은 따뜻한 물을 끓여 계속 마시면서, 이불에 몸을 꽁꽁 감쌌다.‘이러면... 땀 나면서 열 좀 빠지겠지.’ 하지만 아무리 이불을 덮고 있어도 오한이 멈추지 않았다. 몸은 나른하고,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잠깐만... 쉬자...’ 그렇게, 시연은 핸드폰 진동 소리도 듣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같은 시각, G시. 유건은 회사를 나와 BLUE로 향하던 중, 차에 올라타자마자 첫눈을 마주했다. 창밖에서는 조용히 작은 눈송이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이제 진짜 겨울이네...’ 그때, 별산장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말해.” [고 대표님, 우주 도련님께서 며칠 뒤에 건강검진 예약이 잡혀 있는데요. 이쪽으로 옮긴 지 얼마 안 돼서, 이전 병원 기록을 요청드리고자 연락드렸습니다.]“나한테 물어보면 뭐 해? 사모님한텐 연락 안 했어?” [네, 사모님께 먼저 연락드렸는데...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요. 바쁘신 것 같아서요.]유건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내가 해볼게.”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계속 진동음만 울릴 뿐, 받지는 않았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회의는 끝났을 텐데.’ ‘잠든 건가?’ 하지만 마음이 이상하게 불안했다. ‘그럴 리 없는데...’ ‘시연이... 요즘 몸도 약해졌는데...’ 유건은 핸드폰을 꾹 쥐고 곧바로 옆자리에 앉은 지한에게 말했다. “시연이가 L시에 있는 호텔 이름 확인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87화

    임신 후기가 되면서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된 시연은 L시까지 가는 KTX를 예약했다. 출장 기간은 일주일. 짐도 그만큼 많았다. 다행히 양석현 교수가 챙겨줘서 특실로 표를 끊을 수 있었다. 기차에 올라 지정석을 찾아갔지만, 자리 앞에서 시연은 한참을 고민했다. ‘이거... 혼자 올릴 수 있을까?’ 배가 제법 불러온 상태. 짐이 무거워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가볍게 톡 쳤다. “시연아.” 그녀가 돌아보자, 은범이 웃으며 서 있었다. “은범이...?”시연은 깜짝 놀랐지만, 그의 얼굴이 반갑긴 했다. “이 캐리어 네 거야?” “응.” “내가 해줄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은범은 자연스럽게 캐리어를 들어 선반에 올려주었다. “고마워.” “뭘, 당연히 해야지.” 두 사람의 좌석은 우연히도 나란히 붙어 있었다. 정말 묘한 인연. 시연은 낮게 웃으며 물었다. “난 L시에서 학회 발표가 있어서 가는 거야, 너는 출장?” “응.” 은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약 복용 중이라 장거리 운전은 피하라고 하길래, 그냥 기차 타기로 했어.” ‘약...’ ‘그럼, 역시...’ 시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은범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걸. 그래서 굳이 놀라는 척도, 돌려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은범의 그 담담한 말투 안에서 시연은 뭔가 미묘한 걸 느꼈다. “내가 그거, 알고 있다는 거... 너도 알고 있었구나?” “응.” 은범은 아주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그날, 같이 있어 줘서 고마웠어.” ‘역시... 알았구나.’ 시연은 조용히 시선을 떨구었다. 그제야 그날 이후 유건이 갑자기 달라진 이유가 모두 들어맞는 듯했다. “너였구나.” “응, 내가 고 대표한테 말했어.” 은범은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곧 미안한 듯 말을 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했던 일, 정말 미안해. 그 일로 두 사람 사이가 더 꼬인 건 아닌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86화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시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건은 미묘하게 시선을 낮추며 기다렸다. “오늘 온 거, 프로젝트 투자자로서 문 과장님이랑 양 교수님의 체면을 봐서 온 거예요? 아니면... 정말, 나 때문이에요?” ‘이 질문은... 피하지 말고 꼭 해야 해.’ 생각보다 직설적인 질문에 유건의 입꼬리에 걸린 미소가 살짝 굳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너는, 뭐라고 생각해?” “모르겠어요.” 시연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진심으로, 그녀도 헷갈렸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전자예요.” 그 말에 유건은 피식, 짧은 웃음을 흘렸다. 비웃는 것인지, 자조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그럼 당연히, 전자지.” 남자의 눈매가 비죽 올라갔다. “설마, 지금... 내가 너 때문에 왔다고 생각한 거야?” 시연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유건은, 그 침묵이 곧 대답이라는 걸 알아챘다. ‘아, 진짜 그렇게 믿은 거야?’ 그는 낮게 웃었다. 어딘가 허탈한 웃음. “너, 참 재밌다.” “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건지 궁금하네.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한다고... 나한테 마음도 없는 여자 붙잡고 질질 끌 사람으로 보여?” “세상에 여자가 너 하나뿐이고, 내가 너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그 말에 시연의 눈썹이 살짝 흔들렸다. ‘당연히 아니지.’ ‘내가 착각했구나.’ 무안함과 동시에, 어딘가 가볍게 안도감이 스쳤다. 시연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내가 괜히 예민하게 굴었네요. 그냥... 우리가 예전에 했던 그 이상한 결혼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 시절,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라 감정의 거래였으니까.’ 유건의 심장이 순간에 세게 쪼여왔다. ‘이상한 결혼 생활?’ ‘그게, 너한텐 그렇게까지 나빴던 거구나.’ 가슴이 먹먹했지만, 표정만큼은 여전히 담담했다. “나도 그래.” 그는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85화

    유건은 계속 이해가 안 됐다.‘그 정도로 화가 났다고? 내가 온 게 그렇게 싫은 건가.’ 사실 오기 전부터 그는 이미 예상했다. 시연이 자신을 반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비록 알고 있었지만, 막상 마주하고 나니 유건도 묘하게 가슴이 쓰렸다. ‘그래... 그냥 오지 말 걸 그랬나.’ 그 순간, 유건의 머릿속에 뭔가 스쳐 지나갔다. 살짝 몸을 기울여 시연의 귀에 대고 작게 물었다. “아까 족발, 좀 아쉬웠던 거지?” 시연은 순간 멍해졌다. ‘갑자기, 웬 족발?’ 하지만 놀란 얼굴로 유건을 바라보던 시연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헉... 들켰나?’ 유건은 그 반응 하나로 모든 걸 알아챘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알았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내가 더 시켜줄게.” 그러고는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애도 아니고... 고작 한 점 덜 먹었다고 삐지는 거야?” “네?!” 시연은 반사적으로 부르려다 멈췄다. ‘뭐야, 지금 이 사람 왜 이래?’ ‘어디서 갑자기 예전처럼 굴고 있는 건데...’ 시연은 헷갈렸다. ‘나만 이상하게 느끼는 거야? 아니면 진짜... 뭔가 바뀌었나?’ 잠시 후, 더 주문한 족발이 나왔다. 유건은 그것을 직접 들어 시연 앞에 내려놓았다.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먹어. 너 한 사람 먹으라고 더 시킨 거야. 그리고 오늘 회식비, 내 카드로 결제했어.” “당신...” 시연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런 걸 해?’ 하지만 주변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이런 자리에서 굳이 따질 수는 없었다. ‘이따가 따로 물어보자.’ 그녀는 결국 말없이 젓가락을 들었고, 족발을 한 점 들어 입에 넣었다. 유건은 조용히 웃었다.며칠간의 출장 때문에 쌓인 피로가 단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시연도 두 점쯤 먹고 나자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래, 이렇게까지 했는데... 굳이 삐져 있을 필요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84화

    ‘아래층? 무슨 아래층?’ 시연은 헛기침이 나왔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던 그녀는, 곧 유건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지금 1층인데, 데리러 와줄래?’‘진짜... 온 거야?’ 그리고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시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잠깐...” 말도 제대로 안 마친 채, 주변 눈치도 보지 않고 헐레벌떡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 1층 로비로 향했다. 그곳에, 유건이 있었다. 정말로. 큰 키, 넓은 어깨, 공항에서 막 돌아온 듯한 모습. 서 있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는, 그 익숙한 실루엣. “시연아.” 유건은 시연을 발견하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길고 고된 이동 끝에도 그 눈빛엔 피곤 대신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어쩐 일이에요...” 시연은 다가가며 말했다. 그 얼굴엔 놀람만 가득했고, 기쁨은 없었다. ‘기뻐해야 하나? 아니잖아.’ 유건은 살짝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초대한 거 아니었어? 지금 보니까... 아닌가 봐?”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시연은 솔직하게 말했다. 물론, 표정은 최대한 부드럽게 유지한 채. ‘솔직히 말하면, 진짜로 온 게 아직도 실감 안 나.’ “네가 초대한 거 맞잖아. 나는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못 간다’라고는 안 했고.” 유건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고, 입꼬리에 묘한 웃음까지 살짝 얹었다. 그 말에 시연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아, 또 저런 말장난이네.’ ‘바쁘면 안 와도 괜찮은데... 굳이 시간 내서 오면 나는 또 ‘잘 지내는 부부’처럼 보여야 하잖아...’‘할아버지 앞에서도 그랬고, 이젠 과장님, 교수님들 앞에서도?’ 시연은 유건을 올려다보았다. ‘설마, 이 사람이 그걸 몰랐다고?’ ‘난 우리 둘 사이, 서로 암묵적으로 선 그은 줄 알았는데.’ “사실...” 시연이 입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문광수 과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 선생!” 시연은 본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83화

    지한은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말했다. “형님... 근데 이건 좀 너무 빡빡한 거 아닙니까?” 유건이 직접 수정한 일정표에는 거의 쉴 틈이 없었다. 식사 시간은커녕, 수면 시간도 애매했다. “괜찮아.” 유건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대로 해. 중간중간 짬 날 때 눈 좀 붙이면 돼. 빨리 마무리하면, 빨리 돌아갈 수 있잖아.” 지한은 눈을 좁히며 물었다. “형님, 급하게 복귀하시는 이유라도...?” 유건은 짧게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할아버지 혼자 병원에 계시는데, G시를 너무 오래 비우니까 좀 신경 쓰여서.” 지한이 속으로 그 대답을 믿지 않았다.‘거짓말인 티가 너무 난다...’ ‘어르신은 전담 간호사도 있고, 형님은 G시에 있어도 병실에 잘 안 가시잖아...’ 하지만 그런 말을 지한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형님 마음속엔 다른 사람이 있는 거겠지.’ ...드디어, 심폐 프로젝트팀의 축하 파티 날. 의사, 간호사, 인턴, 심지어 병동 도우미까지, 진료과 전원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출발 전, 모두가 병동 회의실에 모여 대기 중이었고, 주하은이 자연스럽게 다가와 시연의 팔짱을 꼈다. “시연아, 나랑 같이 다니자. 낯선 자리에서 혼자 있으면 어색하잖아.” “좋지.” 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뭘.” 하은은 슬쩍 웃으며 시연을 흘끗 바라봤다. 그러다 못 참고 툭 던지듯 물었다. “근데... 고 대표님이랑 너, 이제 진짜 아무 사이 아니야?” “응...?” 시연은 잠깐 멍해졌다. “나랑 그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데?” “흥... 그 눈빛은 못 속이지.” 하은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지만, 그 순간 시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연의 눈이 커졌다. ‘고유건’이라는 이름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 타이밍에, 왜?’ 그녀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82화

    양석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그건 너한테 부탁할게. 부부 사이잖아, 말하기 편할 테니까.” ‘부부 사이...’ 시연은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유건이 직접 나서서 논문 사건을 해결해 줬으니, 양석현 입장에선 두 사람이 사이가 좋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이, 그런 거 아니에요, 교수님...’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시연은 결국 꾹 삼켰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번 말해볼게요. 유건 씨가 그런 거 따지는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 워낙 바빠서요... 시간이 안 맞을 수도 있어요.” “괜찮아.” 양석현은 부담 주지 않으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고 대표가 바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우리 문 과장님이랑 나도 충분히 이해해.” “네.” ...병실 돌아다닐 때도,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도 시연의 머릿속은 온통 ‘전화’ 생각뿐이었다. ‘며칠 전에 도움받았는데... 이렇게 또 연락하면, 진짜 내가 고유건한테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루 종일 핸드폰을 쥐었다 놨다 반복하며 망설이던 시연은, 결국 늦은 밤, 조용한 집 안 거실에서야 조심스레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한 번, 두 번...시연은 이 기다림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마치 몇 시간을 기다린 것처럼. [여보세요.]낮고,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시연?]이름을 불러주는 그 한마디에 시연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왜 이렇게 긴장돼...’ 입술을 한 번 핥고 나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고 대표님.” [응?]유건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또 무슨 호칭이야? 장난치지 마. ‘고 대표님’은 너한테 해당 안 되는 말이야.]“아, 그게...” 시연은 급히 말을 이어갔다. “이번 전화는 내 사적인 용무가 아니라서요. 그래서 그냥 그렇게 부르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그래?] 이번엔 유건의 말투가 조금 진지해졌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81화

    그 질문은 유건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지하가 던진 말에, 유건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래... 인정해. 난 나비 공주를... 잊은 적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장소미가 나비 공주였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 감정은 자연스레 장소미에게 옮겨갔다.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생각해 봐.” 지하는 유건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였다. “기억 속 첫사랑이랑 계속 살 건지, 지금 네 앞에 있는 결혼이라는 현실과 살아갈 건지... 이제는 정해야 할 때 아냐?” “치.” 유건은 코웃음을 치며 지하를 노려봤다. “내가 장소미랑 될 수 있을지 말지도 미지수지만...” “넌... 내가 시연이랑 백년해로라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냥... 나 놀리는 거지?” 지하는 피식 웃으며 눈을 굴렸다. “왜, 네가 더 억울한 표정이냐?” 그는 가볍게 반문하며, 유건을 똑바로 바라봤다. “하나만 더 묻자. 넌, 시연 씨한테 ‘한 번이라도’ 제대로 다가가 본 적 있냐?” 유건은 말문이 막혔고, 대답하지 못했다. 지하는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없지.” “그럼 넌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시연 씨가 널 좋아해 주길 바라는 건데?” ‘그냥 돈이 많아서? 능력 있어서? 그게 다야?’ 유건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내가 그렇게 한심했나?’ 그 순간, 멀리서 강석이 당구봉을 흔들며 소리쳤다. “야, 너희 둘! 왜 거기서 연애 상담만 하냐? 와서 당구나 쳐!” “갈게!” 지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겉옷을 벗었다. 일어서기 전, 유건을 다시 바라보며 덧붙였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누굴 얻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야. 그럼 세상의 ‘순정남’들은 어디서 숨 쉬고 살겠냐?” 그 말은 유건의 가슴에 조용히 박혔다. ‘나 지금,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날 밤, 유건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댔고, 다음 날엔 아무 말 없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80화

    말을 마친 유건은 웃음을 거두고, 날카롭게 내뱉었다. “빨리 꺼져.” 은주는 유건의 눈빛에 숨이 턱 막혔다. 그 안에 담긴 서늘한 분노가 피부를 찌르는 듯했다. “그래요... 인정 안 할 거면 갈게요!” 울먹이며 뒤돌아선 은주는 그대로 뛰쳐나갔다. 은주가 사라지자, 남은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시연은 입술을 꾹 다물고,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 분위기, 왜 이렇게 민망하지...’ “저기, 그게...” 유건은 식은땀이 날 정도로 당황했다. 해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서둘러 말을 꺼냈다. “오해하지 마. 그날 클럽에는 지하랑 거래처 사람들이 있었고...”“굳이 설명 안 해도 돼요.” 시연은 황급히 손을 저었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우리 사이에 그런 설명까지 필요하진 않잖아요. 법적으로만 안 끝났지, 서로의 감정은 이미 끝났으니까.”‘당신 마음은... 장소미를 향하고 있잖아.’ ‘이제 와서 해명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 말을 들은 유건은 얼어붙은 듯 시연을 바라봤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끝났다고?’ 둘 사이에 감돌던 공기가 더 묘하게 얼어붙었다. 시연은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장소미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다행이죠, 뭐. 장소미였으면, 아까 그 상황을 설명할 겨를도 없었을걸요?”그 말에 유건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하... 그 이름을... 왜 굳이 지금 꺼내는 건데.’ 시연도 순간 후회했다. ‘말... 잘못했나?’ ‘괜히 분위기 풀어보려다 더 망친 것 같아...’이렇게 생각한 시연이 헛기침하자, 유건이 먼저 말을 꺼냈다.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그는 먼저 걸음을 옮겼고, 시연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남자를 따라갔다. 차 안. 출발한 뒤에도 유건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운전만 할 뿐. 남자의 손은 단단히 핸들을 쥐고 있었다. 표정은 차분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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