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41화

작가: 임공
‘이런 식으로 오해받을 줄 알았으면, 애초에 말도 꺼내지 말걸.’

시연은 한숨을 삼키며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오늘 은범이와 있었던 일은 내 잘못이 있었어요. 하지만, 절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에요.”

“근데, 당신의 첫 반응이 뭐였는지 알아요? 나를 가벼운 여자라고 단정 지었잖아요.”

유건은 순간 당황했다.

“나는...”

“내 말 끝까지 들어주세요.”

시연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내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당신이 나를 못 믿는 건 이해해요.”

“그럼 화내지 마. 앞으로 안 그럴게.”

유건은 진심으로 다급했다.

“이해한다고 했지, 받아들인다고는 안 했어요.”

시연은 쓸쓸하게 웃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정말 결혼했다고 쳐요.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일이 또 생긴다면, 당신은 확실히 지금과 다르게 행동한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유건은 입을 다물었다.

“...보장할 수 없죠?”

시연은 가늘게 속눈썹을 떨며 조용히 말했다.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기반은 신뢰예요. 그런데, 당신은 나를 믿지 않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그만해.”

유건은 그녀를 놓아주며 한걸음 물러섰다. 얼굴에 드리운 불쾌함과 짙은 분노가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말을 그럴싸하게 꾸미긴. 솔직히 말해봐. 그냥 네 첫사랑 돌아오니까 미련이 남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는 숨이 턱 막혔다.

‘이제 뭐라고 해도 소용없겠네.’

둘 사이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유건은 입꼬리를 비틀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네가 진짜로 그 사람이랑 잘될 거라고 생각해?”

“그 자식이 제대로 된 놈이었으면, 3년 전에 널 그렇게 버리고 가지도 않았어.”

시연의 온몸이 얼어붙었다.

“...내 과거를 조사했어요?”

“조사 아니야. 그냥 알아본 거지.”

유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가 결혼할 여잔데, 그 정도는 당연히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어이가 없네. 이제 남의 사생활을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2화

    시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담담히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병원 일 때문에요.” “그래?” 유건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 “금방 씻고 올게. 바로 옆에 있을 테니까.” 그는 고개를 숙여 시연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고 일어섰다. “샤워하고 올게.” “네.” 그가 욕실로 향하자, 시연의 얼굴에서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어떻게 저럴 수 있지?’ 방금까지도 그렇게 싸웠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진짜 결혼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할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건가?’ ...유건이 씻고 나왔을 때, 시연은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다가와 여자 곁에 누웠다. 한 손으로 시연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입술을 겹쳤다. “여보, 여보...” 남자의 체온이 점점 뜨거워졌다. 순간, 시연은 두려움이 밀려와서 유건을 밀어내며 조용히 말했다. “안 돼요.” 유건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왜? 꽤 여러 날 지났잖아. 괜찮을 거야. 조심할게.” “그게 아니라...” 순간, 시연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침을 삼켰다. “그냥... 피곤해서요. 오늘은 안 하고 싶어요.” 말이 끝나자,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유건은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봤다. ‘화났나? 근데 나 진짜 하고 싶지 않아.’ 시연은 숨을 고르며 남자의 반응을 살폈지만, 입술이 살짝 벌어져, 불규칙한 숨이 새어 나왔다. 이런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유건은, 억눌렀던 분노가 결국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그는 비웃음을 흘리며,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차갑게 가라앉아갔다. ‘또... 나를 오해하겠지?’ “내가 한 말, 진짜로 흘려들었구나?” 그는 낮고 거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첫사랑 돌아오니까, 이제 나한테는 순결한 척하겠다는 거야?” ‘뭐?’ 시연은 순간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나, 유건은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3화

    진아는 전화로는 도저히 시연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것 같았다. 시연은 곧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진아가 초조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시연아, 드디어 왔구나!” “응.” 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가면서 말해.” “응... 사실 성빈이 누나도 와 있어. 지금 안에서 성빈이랑 얘기 중이야.” ...경찰서 안. 성빈은 팔짱을 낀 채 눈앞의 누나를 향해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나, 나한테 그렇게 화내서 뭐 해? 이건 예전처럼 장난 수준이 아니야. 똑똑히 들어. 네가 건드린 상대는 고유건이라고.” “뭐?” 성빈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다친 건 장소미잖아. 고유건이랑 무슨 상관인데?” 성빈의 누나인 진하유는 한숨을 푹 내쉬며 동생의 이마를 쿡 찔렀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장소미가 누구야? 고유건의 여자야! 그러면 네가 고유건이랑 상관없는 일이겠어?” 성빈은 입을 다물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너한테 말해봤자 소용없어.” 하유는 가방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나는 가볼게. 가서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너는 괜히 더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얌전히 있어!” 그녀는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안으로 들어오는 시연과 진아를 마주쳤다. 하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왔어. 부탁 좀 할게. 이놈, 좀 말려줘.” “네, 조심히 가세요.” “진아야! 시연아!” 성빈이 손을 흔들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어쩐 일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손님들이 오다니, 경찰서 분위기가 확 살겠는데?” “너, 진짜 웃음이 나오냐?” 시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성빈을 바라보았다. “너 이제 애도 아니잖아. 도대체 왜 장소미를 쳤어?” “쳐서 다친 게 아니라, 자기가 알아서 당한 거지!” 성빈은 억울한 듯 목을 바짝 세웠다. “그 여자가 네 합격통지서 찢어버렸어. 네 앞길을 막았다고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4화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성빈이가 무사한 거잖아.’ “이럴 땐 좀 알아서 행동해. 네 안전보다 중요한 게 어딨어?” “나는 괜찮아...” 성빈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지금 경찰서에 잡혀 있는 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데.’ 시연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만 괜찮으면 끝이야? 그러면 너희 가족들은? 나랑 진아는? 네가 다치거나 일이 더 커지면, 우리 마음은 편할 것 같아?” “그래도, 장소미한테 가서 비는 건 절대 안 돼!” ‘얘가 진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찰서 문이 열렸다. 은범이 변호사와 함께 들어왔다. 성빈의 눈이 반짝 빛났다. “와! 역시 네가 올 줄 알았다. 친구를 이렇게 내버려둘 리가 없지!”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해라.” 은범은 차갑게 그를 흘겨보며, 곧바로 시연을 바라봤다. “성빈이 말이 맞아. 괜히 네가 나설 필요 없어.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랑 진아는 밖에서 기다려.” 그가 오자, 시연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래... 은범이가 있으면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야.’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병원. 장소미는 간병인과 매니저 조애린의 도움을 받아 갓 깁스를 한 다리를 조심스럽게 거치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때, 병실 문이 급하게 열렸다. 유건이었다. 그는 소미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모든 스케줄을 정리하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고 대표님 오셨네요.” 조애린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그럼 전 이만 물러날게요. 두 분, 편히 이야기 나누세요.” 그녀는 소미를 힐끔 보며 눈짓을 보냈다. ‘기회야, 잘 잡아.’ 소미는 피식 웃었다. ‘이렇게까지 바로 달려와 주는 걸 보면... 아직 희망이 있는 거 아닐까?’ 하지만, 유건은 자리를 뜨라는 그녀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잠깐 있어. 할 말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5화

    경찰서. 은범과 변호사가 안에서 나오자, 진아와 시연이 재빨리 다가갔다. “어때?” 은범은 살짝 미간을 좁히며 확실한 답을 주지는 않았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야. 변호사가 시간을 좀 더 쓰면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나만 믿어, 알겠지?”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은범은 변호사를 먼저 배웅한 뒤, 그제야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제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차에 올라탄 후, 먼저 진아를 집에 내려주고, 그다음 시연을 기숙사까지 데려다줬다. 도착하자, 시연은 차에서 내리며 은범과 함께 숙소 입구까지 걸어갔다. “은범아!” 그가 차로 돌아가려는 순간, 시연이 불렀다. 은범은 곧장 돌아섰다. “왜?” 시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상황이 진전되면 전화해 줄 수 있어?” ‘아무리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도, 성빈이 일은 결국 나 때문인데... 그냥 모른 척할 순 없잖아.’ 은범은 잠시 멈칫하다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운전 조심해.” 시연은 은범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며 그가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성빈이 문제, 생각보다 심각한 거 아닌가...?’ 머릿속이 복잡해진 채, 시연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기숙사 앞. 시연이가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 누군가 옆에 다가왔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뭐 보고 있어?” 낯익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순간, 시연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건 씨?” 그녀는 고개를 들자, 유건이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언제 왔어요? 전화라도 하지.” 유건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봤다. 슬랙스에 단정한 셔츠,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그는 짧게 웃었다. ‘놀라긴 했지... 근데 기분 좋은 놀람은 아니야.’ 유건은 아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6화

    시연이 양갈비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유건도 모르게 입에 군침이 돌았다. ‘이렇게 잘 먹는 건 처음 보네.’ 시연은 순식간에 한 접시를 비워버렸다. 그런데, 시연이 뼈를 깨끗이 발라내며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접시를 내려다봤다. ‘더 먹고 싶나?’ 유건은 피식 웃으며, 서빙 직원에게 손을 들었다. “소갈비 한 접시 더 주세요.” “네, 고 대표님.” 시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쑥스러운 듯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감사합니다.” “별거 아...” 그때, 유건의 핸드폰이 울렸다. ‘주재호?’ 화면을 확인한 그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재호야.” 그는 잠시 시연을 보며 말했다. “나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네.” 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건이 창가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바라봤다. 그 순간, 유건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래, 장소미 사고 건 말이야. 이건 네가 맡아.” 순간, 시연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큰일 났다.’ ‘주재호... G 시 최고의 변호사. 이 사람이 맡으면, 이길 확률 100%...’ ‘이 사람이 장소미한테 주재호 변호사를 붙였다고?’ ‘그러면 성빈이는?’ 순간, 시연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안 돼, 이거 은범이에게 알려줘야 해.’ 시연은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유건이 전화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왜 그래?” 유건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아...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시연은 애써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유건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녀가 자리를 뜨는 순간 그 미소는 차갑게 사라졌다. ‘뭐야? 지금 분명 뭔가 숨기고 있는데.’ 시연은 서둘러 식당 구석으로 가서, 핸드폰을 열어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은범아.” 그리고, 단 몇 걸음 뒤에서. 그 목소리를 유건은 똑똑히 들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7화

    유건이 화가 났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은 불길처럼 이글거렸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애써 참고 있었다. 그러다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어디 가려고요?” “집에 가야지.” 유건은 싸늘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아니면, 아직도 밥 먹을 기분이야?” ‘...이 분위기에, 내가 무슨 입맛이 남아 있겠어.’ 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유건은 아무 말 없이 차고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차 문을 열고 그녀를 태우더니, 자신도 조용히 운전석에 앉았다. 차가 출발했다. 차 안은 숨 막힐 정도로 조용했다. 운전하는 내내, 유건은 전방만 똑바로 응시한 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핸들을 쥐고 있는 유건의 손가락이 심하게 경직돼 있었다. “할 말 없어?” 갑자기, 유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요?” “나한테 할 말 없냐고?”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려 시연을 흘겨보았다. ‘이게 무슨 뜻이지?’ ‘장소미 일은 이미 다 알았을 텐데, 굳이 또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시연은 눈을 깜빡이며 남자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 침묵이 유건을 더 자극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떠봤는데도, 이 여자는 끝까지 모른 척인 거야?’ ‘아주 좋아. 그럼, 나도 더 이상 배려할 필요가 없지.’ 그는 입술을 꽉 다물고, 기어를 한 단계 올렸다. 차는 빠른 속도로 본가로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도착하자, 유건은 차에서 내렸다. 시연도 조용히 따라 내려섰다. 그러나,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유건이 먼저 걸음을 멈췄다. 그는 여자의 손목이 다시 한번 붙잡혔다. “어디 가려고?” “나... 할아버지 뵈러 가려고요.” 시연은 애써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단둘이 같이 있는 건 너무 숨 막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8화

    그날 밤, 유건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시연도 밤새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하루 종일 일어난 일들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다 새벽이 되기도 전에 그녀는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 식사 중, 시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은범이?’ 그녀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떻게 됐어?” 반대편에서 은범이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상황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아.] ‘역시...’ [상대방 측 입장이 워낙 강경하고, 거기다 주재호 변호사까지 붙었으니까.]‘주재호... 그 사람 능력으로 봐선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겠지.’ [그래도 아직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걱정하지 말라고?’ 그 말은 시연에게 별다른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알았어.” 그녀는 힘없이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고, 식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더 이상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성빈이는 결국 나 때문에 다친 거나 마찬가지야.’ ‘나라도, 직접 장소미를 만나야 해.’ ...병원, VIP 병동. 본가에서 나온 후, 시연은 곧장 강울대학교병원으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이 병원 의사라는 신분을 이용해 VIP 병동까지 무사히 들어왔고, 지금 병실 문 앞에서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손을 들어 노크했다. “들어와.” 시연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그리고 너무나 차가운 목소리. 장소미의 목소리였다.시연은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병실은 조용했다. 침대 위, 오른쪽 다리에 깁스한 소미가 다리를 높이 올린 채 느긋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시연을 보자마자 잠시 놀란 듯했다. “너였어?” 시연은 한 걸음씩 다가가, 침대 앞에서 멈춰 섰다. “사과하러 왔어요.” “사과?” 소미는 비웃듯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뭘 사과하겠다는 건데?” 시연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다치게 한 사람이 내 친구이고,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149화

    시연은 미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소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네가 유건 씨의 곁을 떠난다면, 고소를 취하해 주지.” 순간, 시연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그러나 그녀는 막상 직접 듣게 되니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소미는 매끄러운 손끝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여유롭게 덧붙였다. “잘 생각해 봐. 넌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가 될 거야. 한쪽은 너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 한쪽은 어릴 적부터 함께한 소중한 친구.” “이제 선택해.” 둘의 시선이 서늘하게 맞부딪혔다. 하지만, 시연은 오랜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짧게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떠날게요.” ‘...뭐?’ 소미의 눈이 순간 커졌다. 그녀는 깜짝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이렇게 쉽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 약속 지켜요. 고소는 반드시 취하해줘요.” 그 말을 남기고, 시연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소미는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됐다. 이건 기회야. 절대 놓칠 수 없는 제일 좋은 기회!!’ ...병원을 나서자마자, 시연은 곧장 본가로 향했다. ‘약속했으니까, 최대한 빨리 떠나야 해.’ ‘고소 취하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바로 본가에서 나와야 할 것 같아.’ 다행히, 지금은 본가에서 조용했다. 시연은 조심스럽게 2층으로 올라가 옷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옷가지들을 하나둘 정리하며, 마음이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짐을 전부 옮기지 않았으니까.’ 시연의 짐은 기숙사에 대부분의 물건이 남아 있어, 많이 챙길 필요도 없었다. 유건이 사준 옷들은 그녀가 손끝 하나도 대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애초부터 그녀 것이 아니었으니까. 시연은 그렇게 약 30분 만에 모든 정리를 끝낸 뒤, 캐리어를 조용히 끌고, 1층으로 내려왔다. 혹시라도 집사 이호민이 눈치채고 고상훈

최신 챕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44화

    “장소미...”시연은 그녀가 화를 내도록 놔두었다.솔직히, 남자 친구가 전처와 함께 있는 걸 보고 화가 나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난 네 남자 친구한테 매달린 적 없어. 정말 우연히 만난 거야.”“허!”소미는 이를 악물고 비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래? 그럼 하나만 더 묻자. 일부러 가정법원 가는 걸 피해서, 이혼 서류에 서명 안 하는 이유는 뭔데?!”“뭐?”시연은 놀라며 유건을 바라보았다.“소미 씨.”유건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소미의 손을 잡았다.“그건 시연이 때문이 아니야. 내가 바빠서...”“지시연.”소미는 유건의 말을 무시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시연을 응시했다.“난 네 대답을 들어야겠어. 이혼 서류에 서명 안 한 거, 혹시 유건 씨를 못 잊어서 그런 거 아니야?” 한 마디 한 마디가 날카롭게 박혀왔다.“장소미.”시연은 미소를 거두었다. 차갑고 단호하게 말했다.“너는 내 남편과 불륜 관계잖아.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날 추궁하는 건데?”소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뭐?”시연은 비웃음을 흘렸다. 소미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정확히 해두자. 난 아직 고유건 씨와 법적으로 혼인 관계야. 이혼할지 말지는 내 선택이고, 네가 참견할 일 아니란 뜻이지.”“지시연...!”소미는 분노에 휩싸여 이를 악물고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유건 씨는 널 사랑한 적 없어요! 그 결혼도 강요당해서 한 거라고!”“웃기시네.”시연은 무심코 서늘한 눈빛으로 유건을 스쳐보았다. “그럼 누가 칼을 들이대서 강제로 혼인 신고하게 만든 건데?”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성인이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지.”“고유건 씨가 어떤 이유에서든 나랑 결혼했으면, 나는 법적으로 고유건 씨의 아내인 거야. 법이 보호하는 거라고.”그녀는 지친 듯한 표정으로 소미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너도 마찬가지야. 유부남을 선택했다면, 유부남이 정식으로 이혼하기 전까지는 조용히 있는 게 도리 아니야?”‘유부남의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43화

    시연은 말없이 유건을 흘끗 바라보았다.유건은 즉시 기세가 꺾였고,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려버렸다.‘안 보면 신경도 안 쓰이겠지!’“얼른 가.”시연은 가볍게 웃으며 은범에게 손짓했다.“시연아, 고마워.”은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짐하듯 말했다.“진주를 데려다주고 바로 올게. 제발 화내지 말고,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알겠지?”시연은 대답 대신 다시 손짓했다.“얼른 가.”“조금만 기다려!”은범은 시연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빨리 다녀와서 시연이를 만나야 해!’두 사람이 떠나고 나자, 주변은 조용해졌다.시연은 멀어지는 은범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이제 와서 아쉬운 거니?”뒤에서 나직한, 그러나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시연이 은범을 보고 있다면, 유건은 그런 시연을 보고 있었다.유건은 자신도 모르게 질투로 가득 차 있었다.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자기 남자를 놓아주고 대단한 척이라도 하려는 건가? 너, 분명히 후회하게 될 거야.” ‘과연 그럴까?’시연은 고개를 돌려 유건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남자를 응시했다.‘난 바보가 아니야. 고유건이 갑자기 나한테 키스한 것도, 지금 이 말을 하는 것도...’‘하진주라는 여자가 은범이랑 같이 있는 걸 나한테 보여주지 않으려 한 거야.’시연은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유건 씨, 왜 그렇게 조급해해요? 혹시라도 내가 은범이랑 잘 안될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유건의 숨이 턱 막혔다.‘걱정하다니?’‘지금 나더러 본인이 노은범을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라는 건가?’ 한동안 말이 없던 유건을 향해, 시연이 느긋하게 물었다.“‘응’이랑‘아니’중에 골라서 대답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이게 무슨...?’유건은 시연의 집요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짜증스럽게 턱을 까딱하며 짧게 대답했다.“응.”그리고 잠시 생각한 후 덧붙였다.“처음엔... 나도 너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그리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42화

    문 밖.유건, 은범, 그리고 진주는 침묵 속에 서 있었다.가장 먼저 진주의 핸드폰이 울렸다.“엄마. 네, 이제 끝났어요. 곧 갈게요.”전화를 끊고 나서, 진주는 은범을 바라보았다.“은범아, 우리 엄마가 집에 빨리 들어오래.”하지만 은범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말 한마디 없이 굳어 있었다.그는 무조건 시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진주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그럼 나 먼저 갈게.”“응...”은범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절대 시연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그러나 그때, 은범의 핸드폰이 울렸다.강수희였다.“어머니.”[은범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진주를 안 데려다준 거니? 서로 친해지는 건 좋지만, 너무 늦으면 진주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야.]은범은 진주를 한 번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강수희의 목소리는 여전히 이어졌다.[이제 늦었으니, 무조건 진주 데려다줘야 해. 알겠지?]이를 악물며, 은범은 짧게 대답했다.“알았어요.”전화를 끊고, 그는 진주를 향해 말했다.“가자, 집까지 데려다줄게.”“어?”진주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라며 회의실 문을 가리켰다.“그래도 돼?”“너랑 같이 왔잖아.”은범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히 너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게 맞지.”시연에게는 나중에 충분히 설명하면 될 일이었다. 그녀는 이성적인 사람이니까.“가자.”“응.”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건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눈빛 가득한 냉소를 띄웠다.‘역시 믿을 수 없는 놈이었어.’그는 긴 다리를 내디뎌 은범의 앞을 가로막았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꼬리, 비꼬는 듯한 미소.“어디 가려고?”“고 대표님...”은범이 답하려 했지만, 유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내가 있는 한, 넌 한 발짝도 못 움직여.”은범은 얼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고 대표님, 전 친구를 집에 데려다줘야 합니다.”“헛소리 좀 그만하지 그래?”유건의 분노가 폭발했다.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41화

    몇 걸음 떨어진 곳.노은범과 하진주가 나란히 서 있었다.그리고 시연과 마주쳤다.“시, 시연아.”은범은 당황해 더듬거렸다.진주는 은범을 한 번 바라보더니 옅게 미소 지었다.“친구야?”“응, 아니... 아니야. 내가 좋아한다던 그 사람이야.”은범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내 부정했고, 더 이상 진주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서둘러 시연에게 다가갔다.그리고 시연을 바라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뜻밖의 조우에 시연은 잠시 놀랐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교수님이 여기서 회의 중이셔. 놓고 가신 자료를 가져다주러 왔어.”그녀가 유건에게 한 말과 똑같았다.“그렇구나.”은범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시연의 가방을 받으려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엔 허공을 잡았다.시연은 재빨리 한 걸음 물러난 것이었다.은범은 순간 멍해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시연아?”시연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 속엔 명확한 거리감이 담겨 있었다.“교수님이 기다리고 계셔서 먼저 가볼게. 그리고 널 방해하면 안 되잖아.”시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을 지나쳐 걸어가려 했다.은범은 당황했다.시연이 오해했다고 확신했다.“시연아...”“잠시만요.”진주가 갑자기 시연의 앞을 가로막았다.여자의 직감은 빠르다. 이 짧은 순간에도 진주는 분위기를 감지했다.시연과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말했다.“죄송하지만, 잠깐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시겠어요?”“...”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죄송해요. 시간 없어서요. 비켜주세요.”거절이었다.진주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강단 있게 나섰다.그녀는 시연의 팔을 잡았다.“잠깐이면 돼요! 금방 끝날 말이에요.”그녀는 은범을 흘끗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당신이 은범이가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런데 오해하신 것 같아요.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그냥 친구일 뿐이거든요.”“하고 싶으신 말, 다 하신 거예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40화

    유건은 결국 함정에 빠졌다. 재빨리 걸음을 멈추고 시연을 놓아주었다.“배가 어떻게 아파? 심한...”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시연은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지시연!”유건은 당황하며 몇 걸음에 따라잡아 그녀를 끌어안았다.시연은 눈을 크게 뜨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뭔가 반응할 새도 없이, 유건의 넓고 따뜻한 손이 여자의 눈을 가렸다.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보지 마.”“뭐를요...?”시연은 놀라며 남자의 손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왜 이러는 건데요? 안 가려도 돼요...”‘안 가리면 어떡하라고?!’유건은 앞쪽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노은범이 하진주에게 자기 재킷을 벗어 걸쳐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걸 시연이가 본다면 얼마나 상처받을까?’“유건 씨!”시연이 저항하자, 유건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자신의 쪽으로 돌렸다.“너, 으음...”시연이 놀라서 입을 열려는 순간, 유건이 그녀를 덮치듯 입을 맞췄다.‘뭐야?!’시연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놔... 윽...”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유건은 더욱 거칠게 여자의 입술을 탐했다.남자의 키스는 점점 깊어졌고, 점점 더 강렬해졌다.시연은 필사적으로 유건의 가슴을 두드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라 손을 번쩍 들었다.찰싹!깨끗한 타격음이 울리며 유건의 뺨이 돌아갔다.유건은 순간 멍해졌다.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충격받은 표정으로 시연을 바라보았다.“미안해, 나는...”그는 단지 시연이 은범을 보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키스하고 나서 이성을 잃어버렸다.그녀를 원했고, 가까이하고 싶었으며, 심지어 그녀를 독차지하고 싶었다.시연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마치 혐오스러운 존재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너무나 속상하다는 듯 말했다.“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우리... 그래도 예전에는 부부였고, 이 사람의 포옹과 키스를 받아들일 이유라도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이제 우리는 이혼을 앞둔 상태잖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9화

    연회장으로 돌아온 유건은 금세 흥미를 잃었다.그는 소미를 한 번 바라보고 나직이 말했다.“가자, 별로 재미없어.”소미는 아무런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건의 표정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무슨 일 있어요?”“아니.”유건의 시선이 그녀의 배로 향했다.“너무 늦게 자면 두 사람한테 안 좋잖아.”“네.”소미는 미소를 띠었지만 속으로 불안했다.‘어떡하지? 이 사람, 아이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지금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곤란해질지도 몰라.’“왜 그래?”유건은 소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채고 눈을 가늘게 떴다.“몸이 안 좋아?”“아니에요.”소미는 웃으며 얼버무렸다.“그냥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같이 가자.”“괜찮아요...”“아니.”유건은 단호했다. 그녀가 지금 상태에서 혼자 다니는 건 마음이 놓이지 않았으니 말이다.그는 결국 화장실 입구까지 소미를 데려다주었다.“천천히 다녀와.”“네.”소미는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이 남자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이렇게 다정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어?’유건은 조금 떨어진 흡연 구역으로 이동했다.담배를 꺼내 들었지만, 불을 붙이기도 전에 시연이 책가방을 메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았다.‘시연이? 여기 온 이유는 뭘까?시연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결국 유건은 참지 못하고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뭐 찾는 거야?”“네?”시연이 놀라 돌아보았다.유건을 보자, 그녀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여기 B동 6층 맞나요?”유건은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6층은 맞는데, 여긴 B동이 아니라 C동이야.”“아.”시연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두드렸다.“아, 진짜! 또 길을 잘못 들었네요.”“또?”유건은 그녀의 찡그린 얼굴을 보며 무심코 물었다.“길을 자주 잃어버려?”시연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사실, 자주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는 원래 방향 감각이 떨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8화

    [알겠습니다, 형님.]전화를 끊자, 소미가 방으로 들어왔다.“유건 씨.”유건은 담배를 비벼 끄고 손을 저었다.“먼저 들어가 있어. 여기 담배 냄새 나.”담배는 임신한 여자에게 좋지 않으니까.“아, 네.”연기가 가라앉은 후, 유건은 문을 열고 들어가 소미가 건넨 물을 받았다.“좀 괜찮아요?”소미가 다정하게 물었다.“네.”유건은 물을 마시고 소파에 기대었다.“너무 많이 마셨나 봐.” 그는 관자놀이를 가볍게 눌렀다.“머리가 좀 아프네. 그래도 잠깐 앉아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제가 마사지해 드릴까요?”소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유건의 곁에 앉으며 소매를 걷었다.남자가 거부할 틈도 없이, 그녀는 말했다.“눈 감아요. 우리 아빠가 술 마셨을 때 자주 해드렸어요.”여자의 손끝이 관자놀이를 누르자, 유건은 거부하지 않았다.“고마워.”소미가 잔잔히 웃었다.“저한테 뭘 그렇게 고마워하세요? 제가 유건 씨를 도로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우린, 앞으로 평생 함께할 사이잖아요.”‘그래, 앞으로도 함께할 사람이지.’유건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익숙해져야 했다.소미의 손길이 생각보다 편안해서 그는 점점 나른해졌다.“유건 씨?”그녀가 속삭이듯 부르자, 유건은 반쯤 감긴 눈으로 대답했다.“응...”소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가슴이 뛰었다.‘이건 기회야!’‘내 임신은 거짓말이잖아... 시간을 더 끌면 고유건은 의심할 거고, 배를 감출 수도 없을 거야.’‘그 전에 내가 확실히 해야 해. 이 사람과 더욱 가까워지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그녀는 숨을 죽이고 목에서 어깨로 손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유건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남자의 입술과 단 한 뼘도 남지 않은 거리.하지만, 소미는 남자의 입술이 닿기 직전, 유건의 눈이 번쩍 뜨였다.여자가 너무 가까이 있는 걸 깨닫고, 순간 멈칫했다.“소미 씨?”“유건 씨.”소미는 포기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키스해 줘요.”유건은 말이 막혔고, 본능적으로 미간이 좁혀졌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7화

    유건은 회의를 마치고 대표실로 돌아왔다.비서가 다가와 보고했다.“대표님, 장소미 씨가 도착하신 지 좀 되었습니다.”오늘 밤, 유건은 한 연회에 참석해야 했고, 이번엔 소미가 파트너였다.“유건 씨.”소미가 환하게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그냥 앉아 있어.”유건은 손을 살짝 흔들며 무심하게 말했다.“조애린 씨한테 들었는데, 일을 계속할 생각이야?”“네, 그래요.”소미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설명했다.“양 감독님의 작품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이미 절반 정도 촬영했거든요. 광고를 비롯한 일정이 과하게 많은 것도 아니고요. 저는 가만히 있는 게 더 싫어요.”잠시 생각하던 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미의 배를 힐끗 바라보았다.“몸에 이상 없으면 소미 씨 뜻대로 해. 다만, 배가...”언젠가는 드러날 것이었다.“아, 아직 문제없어요. 사극이라 의상 때문에 티도 안 나고요.”소미는 오늘 넉넉한 원피스를 입고 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평평한 신발까지 신은 것을 떠올렸다.유건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양 감독님께 소미 씨 촬영 분량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달라고 이야기해.”“네, 유건 씨 말대로 할게요.”시간이 늦어서 유건은 휴게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소미와 함께 대표실을 나섰다....연회는 해성 호텔에서 열렸다.주차장에서, 노은범이 먼저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고마워.”진주가 미소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은범은 담담히 말했다.“별일 아니야.”그가 어색해하는 모습을 본 하진주는 웃으며 말했다.“너무 긴장하지 마. 우리 약속했잖아? 친구처럼 지내기로.”“알아.”은범은 살짝 찡그렸다.“하지만, 네가 나 때문에 불편해질 수도 있잖아.”“괜찮아.”진주는 고개를 저었다.“이건 너만의 문제가 아니야. 우리 엄마도 연관되어 있으니까.”그녀는 남자의 팔을 자연스럽게 잡았다.“그냥 편하게 가자.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들도 우리가 진짜 안 될 거라고 깨달으시겠지.”은범은 한결 편안해졌다.‘나보다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6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진주를 힐끗 바라보았다.“내가 보기엔 진주가 참 괜찮은 것 같은데, 정말 아쉬워. 우리 은범이 복이 없는 탓이지, 뭐.”진주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이모, 그런 말씀 마세요. 과찬이세요.”“진주야.”강수희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진주의 손을 잡으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지난번에 은범이랑 같이 연극 봤다면서? 그 후로는 어떻게 된 거야? 솔직히 말해 봐. 은범이의 뭐가 마음에 안들었니?”“그게...”진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해야 할까?’지난번에 은범과 미리 조율한 대로, 진주는 연극을 본 후 자기 부모님께 자신이 은범을 향한 마음이 없다고 전했다. 이는 진주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거였고, 은범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강수희가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진주는 은범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모, 은범이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다만, 저희는 서로를 잘 모르잖아요...”이 말이 강수희에게 희망을 주고 말았다.“그럼, 좀 더 만나보고 알아가면 되잖아? 제발, 은범이에게 기회를 줘 봐, 응?”“어머니!”은범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다가왔다.그는 먼저 방혜령에게 인사를 건넸다.“이모, 오랜만이네요.”그리고 곧바로 어머니를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어머니, 이모는 어머니를 뵈러 오신 거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내가 이러는 건...”“괜찮아.”방혜령이 손을 흔들며 부드럽게 웃으면서 시선을 은범에게 두었다.“이제 많이 컸네? 그런데 너희 엄마 말도 틀린 건 아닌 것 같아.”그녀는 딸을 한번 흘긋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너희, 한 번 본 걸로 판단하기엔 너무 성급하지 않아? 좀 더 만나면서 알아가는 게 맞지 않나?”강수희가 기뻐하며 맞장구쳤다.“내 말이!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어머니!”“엄마!”은범과 진주가 동시에 소리쳤다.그 모습을 보고, 방혜령과 강수희는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