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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6화

Author: 복덩이
강나현의 요란한 등장에 주변을 지나가던 스태프들이 옆으로 흘깃 쳐다보았다.

“저 여자는 누구야? 등장 한번 요란하네. 연예인 같지도 않은데.”

스태프들은 목을 쭉 빼서 강나현의 얼굴을 보고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스태프는 팔짱을 낀 채 무시하듯 말했다.

“대단하신 스폰서가 대회 시범 경기에 억지로 끼워 넣은 아마추어, 강나현이지.”

국제 레이싱 대회의 시범 경기는 공식 레이스가 아니지만, 개막식에 등장하는 레이서들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현역 선수거나 은퇴했지만 한때 큰 상을 받은 레이서, 또는 레이싱 업계에 큰 공헌을 한 매니저나 대표였다.

이런 사람만이 시범 경기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지는 이유는 레이스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였다.

수상 경력도, 유명세도 없는 강나현이 대결 명단에 떡하니 이름을 올리니 다른 선수들은 하나같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다 정체를 알아내고는 다들 깜짝 놀란다.

강나현은 최근 다섯 살배기 남자아이와 오토바이를 타는 영상으로 큰 관심과 화젯거리를 모은 인플루언서였다.

물론 그녀의 영상을 보고 욕설을 퍼붓고 신고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가 계약한 소속사가 부신 그룹 소속이고, 부신 그룹 대표의 처제인 만큼 부신 그룹에서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이 아무리 강나현을 신고해도 소용이 없었다.

지난주에는 레이싱계를 뒤흔든 또 하나의 큰 소식이 있었다.

부신 그룹 대표가 거액을 쏟아부어 문라이트 레이싱 클럽을 위해 일하던 엔지니어, 기술자들을 모두 빼돌려 그들이 강나현만을 위해 일하게 만든 것이었다.

레이싱 업계 사람들은 부신 그룹의 비겁한 행위에 경악했다.

강나현은 전문가 촬영팀과 메이크업 스타일링 팀을 고용해 자신을 꾸몄다.

레이서의 신분으로 국제 레이싱 대회에 참가하는 모습을 브이로그로 찍어 인터넷에 올릴 생각이었다.

이런 영상이 공개되면 폭발적인 인기를 끌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대회에 참가하는 게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전부 그녀를 질투한다고 치부하며 강나현은 사람들의 질투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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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강민아가 물었다. “그쪽과 손잡으면 전 뭘 얻을 수 있죠?”우경아는 미소를 지으며 강민아에게 태블릿을 건넸다.“여기 프로젝트가 있는데 지분을 가져가요. 강민아 씨는 기술을 투자하고 난 돈을 투자해서 수익금을 똑같이 나눠 갖는 거죠. 똑똑한 강민아 씨라면 이 프로젝트를 놓치지 않을 거예요.”강민아는 우경아가 건넨 프로젝트를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마침 자신도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에 대해 연구 중이었는데 기술을 알아내더라도 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는 완벽한 시스템이 없어서 제자리를 맴도는 상황이었다.반면 우경아 손에 있는 프로젝트 북은 서경 정부에서 지원하고 부신 그룹이 새로운 기술을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우경아는 이미 이 프로젝트에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이를 가져와서 그녀와 공유한다는 것은 연막작전이거나 기술팀이 곤경에 처했다는 뜻이다.강민아와 반용화 사이를 알고 있으니 아마도 그녀를 통해 반용화 연구팀과 접촉하려는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강민아가 이 판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녀는 부신 그룹의 ‘갑’이 되는 셈이다.그녀가 웃었다.“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우경아가 한숨을 쉬었다.“큰 성과를 이룬 사람들은 매사 신중하게 움직이기에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되죠.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기꺼이 적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에요.”“제가 적인가요?” 강민아가 웃자 우경아의 화려한 이목구비에도 덩달아 부드러운 감정이 담겼다.“같은 여자끼리 서로 돕고 살죠.”강민아는 태블릿을 내려놓았다.“저희 아빠와 가까운 사이인 줄 알았는데요.”우경아는 환하게 웃었다.“영원한 친구는 없지만 영원한 이익은 있죠. 강성진을 감옥으로 보내는 게 내게 큰 이득이 된다면 주저하지 않고 나락으로 보낼 거예요.”우경아는 술잔 두 개를 집어 들고 그중 하나를 강민아에게 건넸다.“건배해요.”강민아는 술잔을 건네받았다.“그러면 우 대표님은 언젠가 저도 지옥으로 보낼 건가요?”우경아는 유리잔을 입술에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80화

    그녀는 곧바로 강민아의 턱을 잡고 강제로 그녀의 얼굴을 육지광 쪽으로 돌렸다.“그쪽같이 다리 불편한 고물상 아버지를 뒀으면 아들 장가가기엔 그른 것 같은데, 얘를 데려가서 며느리처럼 키워요. 60만원 줘요.”양어머니가 손가락을 내보이며 말하자 육지광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저축한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그는 힘없이 강민아를 바라보았다.아이를 살 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양어머니가 또다시 욕을 하며 꺼지라고 말하자 육지광은 굳은 표정으로 육성민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그렇게 그녀는 하씨 가문에서 석 달을 더 지냈고, 그 사이 경찰이 집에 찾아와 하씨 가문 사람들의 정보를 등록하고 떠났다.강민아는 양부모가 때리고 욕하는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고열에 시달리며 부엌 싱크대 파이프 옆에 지쳐서 웅크리고 있던 날이 떠올랐다. 그게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따뜻한 이불 아래에서 자는 자신을 발견했다.한 번도 이불 아래서 잠을 자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검은 솜을 소중하게 어루만졌다.뒤늦게 그녀가 누워있는 곳이 다리 아래라는 걸 알아차렸고 육지광이 죽을 끓여 가져오는 것을 보았다.육성민은 숟가락으로 죽을 호호 불어서 식힌 뒤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죽을 다 먹은 후엔 육지광이 약을 먹였다.“나도 널 사 온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어. 나와 성민이는 마땅히 지낼 곳도 없으니까.”강민아는 이불 속에 몸을 숨긴 채 까만 눈동자로 육지광과 육성민을 빤히 쳐다보았다.육성민이 그녀에게 물었다.“이름이 뭐야?”그녀가 고개를 젓자 육지광이 말했다.“얘는 이제 내 아이이자 네 동생이니까 이제부터 우리랑 같은 성을 쓸 거야. 성은 육, 이름은...”육지광이 그녀를 돌아보았다.“내가 널 하씨 가문에서 데리고 오던 날 밤 넌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어. 네 부모님은 네가 곧 잘못될 줄 알고 20만원으로 가격을 낮췄고, 난 16만원만 던져놓고 널 안은 채 도망쳤어. 그날 밤 달이 무척 밝았는데 꼭 하늘에서 떨어질 것처럼 지붕 위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79화

    강민아는 잠시 정신이 팔리며 혼란스러운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오랫동안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자 또다시 썩은 내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도민영이 그녀를 팔아넘겼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그녀가 처음 만났던 양부모는 그녀를 때리고 욕할 때 출신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도민영은 임신한 채 도망치는 연기를 펼쳤고 한 마을 병원에서 딸을 출산한 뒤에는 하루 종일 한숨만 쉬었다.그러다 간병인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 말에 도민영은 남자 집에서 강성진과 만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그래서 아들을 낳아 강씨 가문으로 문제없이 시집갈 수 있기를 바랐는데, 낳고 보니 딸이었고 이제 딸과 함께 강씨 가문에서 몇 년 동안 고생할 생각에 도민영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간병인은 대담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도민영과 거래를 하려는데, 바로 자기 아들과 도민영의 딸을 맞바꾸는 것이었다.도민영도 그 순간 머리가 어떻게 됐는지 덜컥 동의하고 말았다.간병인의 아들과 함께 떠날 때 그녀는 돈을 주며 딸을 잘 돌봐달라고 말했다.그 간병인이 강민아의 첫 번째 양어머니였고 그녀는 강민아에게 하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도민영이 그들에게 준 돈은 양아버지라는 사람이 다 써버리고 양어머니는 또 아들을 낳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이듬해 딸을 낳았다.그렇게 3년 연속 딸을 세 명이나 낳았고 집안 형편은 점점 더 나빠졌다.양부모는 강민아를 재앙이라고 말하며 그녀를 데려온 이후로 하씨 가문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말했다.강민아의 기억 속 그녀는 늘 부엌에서 잠을 잤고 양부모가 밥을 주지 않으면 집안의 쓰레기통을 뒤져야 했다.그러다 다섯 살 때 육지광이 몇 개월 동안 육성민을 데리고 폐지를 주우러 이 동네에 자주 왔는데, 매번 3동 아파트에 올 때마다 여자아이의 처절한 울음소리와 남성과 여성의 욕지거리가 들리곤 했다.당시만 해도 구석 동네에선 아이를 때려도 경찰에 신고한다는 개념이 없었고 그저 집마다 창문을 꼭꼭 닫을 뿐이었다.양부모는 그녀에게 집 안에 모아둔 병과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78화

    ‘엄마를 쫓아낸 걸 후회해요. 엄마가 끓여 준 죽도 먹고 싶고, 엄마가 만들어 준 케이크도 먹고 싶어요.’민이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절뚝거리며 길고양이 무리에게 다가갔다.아이는 고양이를 쫓아내고 바닥에 놓인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을 집어 들더니 손으로 죽을 떠서 입에 쌀알을 밀어 넣었다.죽은 이미 식었지만 엄마의 손맛이 입안에 감돌았다.민이는 울면서 죽을 먹었다.화가 난 길고양이들이 하악질을 해댔고 어떤 고양이는 민이의 다리에 뛰어올라 그릇에 담긴 음식을 돌려달라고 항의했다.“민아, 뭐 하는 거야!”반하준이 민이를 향해 다가가자 민이는 고개를 돌렸다.그는 밥알과 눈물로 얼룩진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왜 고양이 밥을 뺏고 있어, 너 미쳤어?”민이가 길고양이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가는 걸 지켜보던 반하준은 민이가 그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을 버리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손을 뻗어 그 안에 있는 밥알을 가져다가 자기 입에 쑤셔 넣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민이는 훌쩍거리며 말했다.“아빠, 이거 엄마가 만든 거예요. 아빠도 엄마가 끓인 죽 안 먹은 지 오래됐죠?”민이는 양손으로 그릇을 들고 그에게 건넸다.“아빠도 좀 먹을래요? 어차피 앞으로는 엄마가 끓여준 죽을 못 먹게 될 텐데.”입을 벙긋하던 반하준은 마치 누군가 모래 한 줌을 움켜쥐고 목구멍에 밀어 넣은 것처럼 말문이 막혔다.강민아는 이미 오랫동안 그를 위해 죽을 끓여주지 않았고 심지어 평소 그가 먹던 음식도 대부분 그녀가 직접 만든 게 아니었다.그동안 자신과 아이들의 음식이 다른 건 알았지만 강민아가 특별히 그의 입맛을 배려해 따로 만들어 준 거라고 생각했다.CCTV를 본 후에야 반하준은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동안 강민아에게 속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반하준은 어이없고 우스울 뿐이다.반하준은 무릎을 꿇고 민이의 손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을 빼앗았다.“먹지 마. 내가 와서 죽 끓여주라고 할게.”잘생긴 얼굴로 고개를 든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광기가 소용돌이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77화

    반하준은 카메라 기록을 7년 전으로 돌렸다.결혼한 첫해, 강민아는 늘 남편인 그를 위해 직접 요리를 했다.부엌에 앉아 밥상을 지키며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직접 그의 옷을 다리고 그를 위해 넥타이와 핀까지 골라주었다.반하준은 자신이 저녁 식사 때 돌아오지 않아 강민아가 그를 위해 만든 음식을 버린 후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쓰레기통 옆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이 단기간에 차갑게 식어버린 거다.그녀는 더 일찍 반씨 가문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꿋꿋이 그를 위해 임신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반용화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걔는 더 큰 목표를 위해 7년 동안 반씨 가문에 있었던 거야.”‘그 여자가 원하는 목표가 뭐였을까?’반하준은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강나현의 오래된 휴대폰을 꺼내더니 휴대폰 속 녹취록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나현아, 새언니 어디 갔어? 못 찾겠어. 분명 나보고 여기 오라고 했는데, 네가 연락해 줄 수 있어?”그날 밤, 반유하는 한 오래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망나니 건달들에게 쫓겼다. 끝까지 반항했던 그녀는 결국 옥상으로 떠밀렸고, 죽고 싶지 않았으나 그만 거기서 떨어지고 말았다.불량배들은 잡히고 그들에게 사주한 주범은 학교에서 반유하에게 들이댔던 재벌 2세였다.하지만 반하준은 반유하를 불러낸 게 강민아일 줄은 몰랐다.그날 밤, 그와 강민아는 따스한 온기를 나눴고 부드러운 환상에서 깨어났을 때쯤 자신이 반유하의 전화를 놓쳤음을 깨달았다.반유하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재벌 2세는 여러 건의 강력 성범죄 사건에 연루되었고 사람까지 죽여 반씨 가문의 압박하에 결국 사형에 처했다.목숨으로 진 빚을 갚았지만 반유하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반하준은 낡은 휴대전화를 꽉 쥐고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유하 사건에 새로운 단서가 나왔다고 경찰에게 연락해. 그래... 녹음파일인데 음성 감식을 해봐야겠어.”반하준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컴퓨터 속 카메라 영상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마치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76화

    그는 이제 그 목도리를 어디에 뒀는지도 잊어버렸다.하지만 강민아는 목도리에 그려진 꽃을 자신이 직접 디자인했다고 말했다.백화점에서 살 수 없는 목도리니까 강민아가 직접 뜨개질을 한 것이 틀림없다!반하준은 우선 주문 내용을 살펴보며 강민아가 뜨개실을 많이 샀다는 것을 확인했다.그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목도리는 강민아가 직접 뜬 게 확실하다.그러다 문득 반하준의 시선이 한 주문 내용에 멈췄다.[자동 뜨개질 기계]아이들을 위해 목도리나 장갑, 모자 등을 뜨기 위해 구입한 것 같다.두 아이를 위해 그렇게 많은 걸 만들어줬는데 분명 강민아 혼자서 다 하기엔 힘들었겠지.반하준은 감시카메라 영상을 찾아 강민아가 자동 뜨개질 기계를 사용하는 모습을 발견했다.기계가 뜨는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한 그녀는 전동 드릴을 꺼내 기계를 개조했다.10분 후, 기계에서 목도리 하나가 뚝딱 완성되었다.그건 반하준에게 선물한 그 목도리였다.반하준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는 강민아가 목도리를 건네줄 때 피곤한 표정으로 하품까지 했던 것을 기억한다.반하준은 강민아가 자신을 위해 밤새도록 한 땀 한 땀 뜨개질을 해서 그 목도리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했다.그래도 기술이 발달한 탓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자동 뜨개질 기계가 있으니 강민아가 기계로 뜨는 건 당연했다.그러다 몇 번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면서 그녀에게 잘하는 요리를 준비하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강민아는 많은 요리를 준비하느라 오후 내내 바삐 돌았다.일부러 그때그때 마음을 바꾸면서 소금을 적게 넣거나 진간장 대신 전통 간장을 쓰라고 했었는데 그것까지 즉석식품으로 대체할 수는 없겠지.반하준이 주방 카메라를 돌려보니 그날도 어김없이 강민아는 점심에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햇빛 아래에서 책을 보고 태블릿을 이용해 에세이와 연구 논문을 찾아보며 오후 내내 주방에 머물렀다.반하준과 그의 친구들이 집에 도착하기까지 30분 정도 남았다는 운전기사의 전화를 받고서야 강민아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그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75화

    잘생긴 반하준의 얼굴이 팍 일그러지며 살벌한 표정이 드러났다.“아줌마한테 해달라고 해!”참 터무니없다.강민아를 대하는 민이의 태도가 확 달라지니 고통받는 사람은 그가 되었다.반하준은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지만 민이는 고집스럽게 떼를 썼다.“엄마가 직접 끓인 죽 먹고 싶어요! 으아앙!”전화기 너머로 아이가 칭얼대자 반하준은 귀에 수많은 바늘이 꽂힌 듯 고막을 찌르는 듯한 이명을 느꼈다.“그럼 내가 그 여자 손을 잘라서 죽 만들어줄게!”홧김에 뱉은 말에 민이의 얼굴이 충격으로 창백해졌다.“아빠!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난 엄마...”“다시는 엄마라는 말 입에 담지 마!”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린 남자는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아팠다.분노의 불길에 피가 부글부글 끓으며 전화기를 쥐고 있던 손에서는 푸른 혈관이 뚫고 나올 기세로 뱀처럼 꿈틀거렸다.그는 여전히 강민아가 그토록 오랜 결혼 생활 동안 자신에게 무심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조금 전 봤던 건 전부 우연일 거다.그렇다면 스코틀랜드식 에그는?만드는 과정이 복잡한 스코틀랜드식 에그는 강민아가 분명 매번 손수 만들어줬을 거다.반하준은 컴퓨터를 들여다보다가 강민아가 올해 자신과 아이를 위해 스코틀랜드식 에그를 만들었던 영상을 발견했다.그는 모니터를 통해 강민아가 스코틀랜드식 에그를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반하준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꼬리까지 올라갔다.그러다 갑자기 반하준이 고개를 앞으로 숙여 컴퓨터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강민아가 스코틀랜드식 에그를 두 개만 만든 게 아니겠나.반하준과 민이, 정이를 위한 것이라면 세 개를 만들어야 했다.반하준은 음식이 거의 끝날 무렵 강민아가 냉장고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는 것을 발견했다.포장을 뜯어보니 안에는 이미 튀긴 스코틀랜드식 에그가 들어있었고, 강민아는 조리된 채 얼린 스코틀랜드식 에그를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넣었다.그렇게 곧 스코틀랜드식 에그 3인분이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274화

    반하준의 얼굴이 다소 일그러지고 반용화는 반하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 보았다.“촌수로 따지면 너와 석현이가 같지 않나? 대단하신 반 대표님이라 사촌 동생한테 사과를 못 하겠어?”세대로 따지면 반석현이 그의 사촌 동생인 것은 맞지만 반석현은 민이와 동갑내기였다.게다가 반석현은 반용화의 양아들에 불과했고 반씨 가문에서 그의 지위는 민이보다 열세였다.그런데 어른인 그를 보고 반석현에게 사과하라고 하니 반하준은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반용화가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두 번 말하게 하지 마!”연진숙이 걸어 나왔다.“용화 씨, 지금 뭐 해요? 왜 가만히 있는 하준이보고 석현이한테 사과하라는 건데요? 그러다 애가 벌 받아요.”마지막 말은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연진숙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대단한 반용화가 굳이 그녀에게 캐묻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준아,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손 내밀어.”반용화는 아무 기복 없는 목소리에 웃어른의 진중함을 담아 명령했다.반하준은 막연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마치 강한 힘이 자신을 부추기는 것 같아서 도저히 손을 뻗지 않을 수가 없었다.반용화가 비서에게 눈짓하자 비서는 자를 꺼내 반하준의 손바닥을 내리쳤다.짜악!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연진숙은 몸을 흠칫 떨었다. 병실에서 울고 있던 민이도 벌벌 떨며 울음을 그쳤다.맞은 반하준의 손바닥은 순간 하얗게 변했다가 이내 피가 몰리며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때린 건 반하준의 손바닥이지만 아픈 건 연진숙의 마음이었다. 연진숙은 속이 쓰라린 느낌에 입술을 달달 떨었다.“이... 이게 대체...”연진숙은 충격에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일부러 그녀가 보는 앞에서 때렸다는 걸 안다.반용화는 올곧은 소나무처럼 휠체어에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네 아들이 석현이한테 무례하게 굴어서 때리는 거야. 네 어머니가 말실수했으니 벌은 네가 받아야지.”반용화가 연진숙에게 말했다.“형수님, 다음에 또 말실수하면 그땐 제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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