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590화

작가: 송진
연정우는 성유리와 한 달 내로 장성 그룹 일을 다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게다가 그는 미리 전부터 바다 위에 있는 놀이공원을 가고 싶다는 하늘이의 말에 표까지 다 예매해 둔 상태였다.

하늘이는 너무도 기대가 되어 성유리에게 자신의 수영복을 사러 백화점에 가겠다고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속일 이틀 전, 연정우는 갑자기 성유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미안해. 그 약속 못 지킬 것 같은데.”

“해외에 있는 투자자 쪽에서 나를 한 번 만나보겠다고 했어. 만약 얘기가 잘 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올지도 몰라. 그래서...”

연정우의 목소리는 두 사람에 대한 미안한 감정과 죄책감이 그득히 담겨있었다.

“괜찮아. 너 바쁘면 먼저 가서 일해야지. 나 혼자 하늘이랑 가도 돼.”

성유리는 괜찮다는 듯 미소 띤 얼굴로 연정우에게 대답해 줬다.

“그럼 내가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까? 너랑 하늘이 데리고 같이 가라고? 너 혼자 애 데리고 가면 얼마나 힘들어.”

“괜찮다니까. 언제는 뭐 안 이랬어?”

성유리는 걱정하는 연정우를 안심시키듯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회사엔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거네?”

기분이 좋은 듯 들뜬 말투로 묻는 성유리의 목소리를 들은 연정우는 그녀가 신경 쓰는 게 결코 돈이나 이익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

성유리는 지금 진신으로 연정우의 일에 기뻐하고 그를 대신해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필경 연정우가 어떤 삶을 좋아한다고 한들 그가 장성 그룹을 위해 들였던 시간과 노력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일이 어떻게 된다고 한 대도 장성 그룹의 막은 결코 이렇게 내려가면 안 되지 않은가?

연정우는 성유리의 감정에 동기화된 듯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렇겠지? 근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그래도 괜찮지. 적어도 희망은 남아있는 거니까.”

성유리가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출장 갈 예정인데?”

“강원국. 비행기 티켓도 다 끊어뒀어.”

“응. 조심히 다녀와.”

“그래. 올 때 너랑 하늘이 선물도 가져올까?”

“성유리는 그 말에 웃으며 대답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1화

    그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쳤다.그리곤 반사적으로 하늘이를 자신의 뒤로 숨겼는데 그녀의 행동에 여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그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잖아요? 전... 유리 씨가 절 잊은 줄 알았는데.”‘잊는다고?’성유리는 그날 끔찍했던 그 기억을 쉽게 잊을 수 없었고 심지어는 칼을 자신의 얼굴에 갖다 대던 유효정의 얼굴도, 느낌마저 생생했다.그때 성유리의 얼굴엔 꽤 큰 흉터까지 남았었지만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점점 옅어지더니 이젠 잘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유효정의 얼굴이 다시 눈앞에 보이자 성유리는 그 당시 느껴지던 고통과 두려움이 다시 떠올라 힘들었다.성유리는 하늘이의 손을 저도 모르게 꽉 쥐었고 유효정은 아무렇지 않아 하며 계속 말을 걸었다.“따님이 너무 귀엽더라고요.”유효정은 말하며 은근슬쩍 성유리 뒤에 숨어있는 하늘이를 쳐다봤고 자신의 딸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성유리는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성유리는 항상 어정쩡하게 굽혀져 있던 어깨까지 쫙 편 채 유효정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마치 새끼를 지키려는 암탉처럼 말이다.그 모습을 본 유효정은 깔깔거리며 크게 웃더니 조롱하듯 물었다.“아니, 지금 그게 무슨 표정이세요? 설마 제가 성유리 씨 딸까지 건드릴까 봐 그러세요? 걱정하지 마요. 여긴 탁 트인 밖이고 보는 눈도 많으니까 그런 짓은 안 할 거예요. 그리고... 전 두 번 다신 지옥 같은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대체 뭐 하시려는 거죠?”성유리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유효정은 원래 하늘이를 주려고 꺼내 들었던 사탕 껍질을 까 자기 입에 넣더니 대답했다.“뭐 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냥... 3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서 그래요.”“보니까... 잘 살고 계시는 것 같은데.”“정우 씨랑 다시 만나신다고요? 진짜 뒤끝 없는 분이셨네요. 그 사람 때문에 성유리 씨가 죽을 뻔했는데 말이죠.”성유리는 대답이 없었고 유효정은 천천히 시선을 하늘이에게 돌리며 말을 이어갔다.“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2화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하시죠?”유효정은 또다시 옅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사실 전 성유리 씨를 싫어했어요. 싫어하는 게 아니라... 질투라고 봐도 되죠.”“왜냐하면 성유리 씨는 제가 갖지 못한, 가질 수 없는 물건들을 다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에요.”“다른 건 다 둘째 치고 성유리 씨는 그 얼굴로 쉽게 가지고 싶은 물건을 다 차지하시잖아요. 정말 사람 미치게 하죠. 질투심에 눈이 멀게 하시고.”성유리는 유효정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유효정 씨도 전에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 많잖아요.”이 말에 유효정은 잠시 멍해지더니 금세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성유리 씨 말이 맞아요. 근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죠? 지금 저한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데.”“그렇지만 다행히 아버지가 생전에 저한테 물려주신 인맥이 좀 남아있거든요. 그리고 해외 투자자들도 몇 있고요.”유효정은 고개를 돌려 천천히 성유리를 쳐다보며 계속 말했다.“그래서 이제는... 제가 아까 드린 충고가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성유리는 그 말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연정우 씨가 혹시 최근에 해외로 출장 간다고 말하지 않으셨나요?”“더 이상 성유리 씨를 속이지 않을게요. 정우 씨 저랑 함께 가요.”유효정은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지금 정우 씨 회사 상황이 최악이란 거 저도 알아요. 그래서 전 아버지가 남겨두신 해외 자산들을 정우 씨에게 주기로 했고요. 대가는... 제가 뭘 요구했는지 짐작이 되시죠?”그녀의 말에 성유리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지만 이내 감정을 추스르더니 바로 대답했다.“그럴 리 없어요.”“뭐가요?”“정우는 이미 전에도 한 번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젠 더는...”성유리는 아니라고 확신하며 말을 이어갔지만 유효정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그녀에게 보여줬다.사진 속에 담긴 사람은 다름 아닌 유효정과 연정우였다.하얀색 침대보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호텔 방 안이 틀림없었고 사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3화

    성유린느 고개를 들어 유효정을 똑바로 쳐다보며 따지듯 물었다.“저 싫어하신다면서요. 근데... 왜 저한테 이런 걸 알려주시는 건데요?”“왜냐하면 전 연정우 그 사람을 유리 씨보다 더 싫어했거든요. 그때 정우 씨가 일부로 판을 짜서 저를 해친 거 알아요. 게다가 정우 씨가 신고하지만 않았어도 제 아버지한텐 그런 일이 생기기 않았을 거고요. 제가 연정우 씨를 싫어하지 않을 이유라도 있나요?”“그래서... 자산 뭐 그런 말 하신 것도 정우를 속인 거네요? 맞아요?”“네.”유효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미소 띤 얼굴로 보며 물었다.“어때요? 정우 씨한테 알려드릴 건가요?”성유리는 입술을 오므리고 있다 대답했다.“근데 전 이 모든 걸 다 유효정 씨 혼자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뭐라고요?”“유효정 씨가 그랬잖아요. 그때 유씨 가문을 고발한 건 정우라고. 그러니까 유씨 가문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는지 정우가 모를 리가 없었을 거예요.”“해외에 자산이 더 있다는 것도... 꼭 알고 있을 거고요.”“게다가 막 출소한 유효정 씨가 자산이 있다는 걸 증명하려면 전문적인 사람을 찾아가야 할 텐데 말이죠.”“정우도 이 업계에서 몇 년 동안 몸을 담그고 있었어요.  그런 정우를 속이려면 쉽지 않을 거고요. 누가 유효정 씨를 도와주고 있다면 모를까.”성유리의 목소리는 냉랭하다 못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유효정은 그런 성유리를 주시하다 더욱 환한 미소를 짓더니 물었다.“그래서요? 유리 씨 생각엔... 누가 절 도와주는 것 같은데요?”“박한빈 씨요.”성유리의 말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유효정은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녀의 침묵이 곧 대답이라는 생각이 든 성유리는 바로 뒤돌아 떠나려 했다.그러나 그때, 유효정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그 자산들이 다 가짜라고 해도 정우 씨가 그걸 위해 저랑 같이 잔 건 사실이에요.”“그때 정우 씨가 틀린 선택을 했다고 하셨죠? 이제 증명됐죠? 다시 한번 그런 일이 반복된다고 해도 정우 씨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4화

    연정우가 놀이공원의 티켓을 핸드폰으로 보내왔을 때, 성유리는 막 하늘이를 재우고 있었다.[아까 물어봤는데 거기 직원들이 꽤 많대. 혼자 하늘이 데리고 갔다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 사람들을 찾아가.”연정우는 성유리가 이 시간에 아이를 재우고 있을 거라는 걸 알았는지 전화 대신 메시지를 보냈다.그는 차분하고 다정한 말투로 성유리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그뿐만 아니라 주의 사항도 몇 가지 더 보내줬다.성유리는 연정우가 보낸 메시지를 읽고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연정우는 기다렸다는 듯 금방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하늘이는 자?”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요 며칠 동안 들어왔던 목소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지만 성유리는 왜인지 모르게 잠시 머뭇거리게 되었다.잠깐 침묵한 뒤, 성유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응. 잠들었어.”“내가 아까 보낸 거 다 봤지? 직원들이 준비는 해두겠지만 그래도 수건 두 장 정도는 챙겨 가. 그리고 하늘이가 좋아하던 수영 튜브도 잊지 말고...”“연정우.”그가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성유리가 갑자기 그의 말을 뚝 끊었다.가벼운 세 글자일 뿐이지만 연정우는 그대로 멈춰버리더니 뭔가를 눈치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왜?”“며칠 뒤에 출장 간다고 했잖아. 누구랑 가는 거야?”성유리가 물었다.“혼자 가.”“정말? 그 투자자는... 네가 아는 사람이야?”“알긴 알지. 왜?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한 건데?”연정우는 웃으며 물었지만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나지막한 성유리의 숨소리에 연정우는 얼굴에 띠고 있던 미소를 거뒀다. 하지만 성유리는 그때까지도 침묵하고 있었다.“무슨 일 있어?”정적을 참다못한 연정우가 먼저 물었다.“누가 뭐라고 한 거야?”“응.”성유리는 아까와 달리 재빨리 대답했지만 연정우는 그 말을 듣고 그대로 얼어붙었다.“왜 내게 물어보지도 않아? 누가 그랬는지.”성유리는 침묵하는 연정우가 우습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나?”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5화

    성유리는 머릿속이 복잡해져 두 주먹을 꽉 쥐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연정우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마치 엄청나게 우스운 농담이라도 들은 듯,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 웃음에는 묘한 결단력이 섞여 있는 것도 같았다.그리고 이내 진정한 연정우가 말했다.“뭘 솔직하게 말하라는 거야? 내가 솔직히 말하면 우리 관계가 더 나아질 것 같아? 내가 지금 다 털어놓으면 우리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성유리, 자꾸 나를 이렇게 속이지 마.”그 순간, 성유리가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답이 확실해지자 꽉 쥐었던 두 손에도 힘이 풀렸다.애써 입술을 움직여 무언가 더 말하려던 찰나, 연정우가 먼저 말을 이어갔다.“그래. 맞아. 난 널 속였어.”“그 투자자라는 사람, 사실은 유효정 씨야. 그 사람 아버지가 해외에 남긴 자산이 있어서 이번에 그걸 함께 가져오려는 거야.”“그리고 그것도 맞아. 나 또다시 유효정 씨와 얽혀버렸어.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난 그 사람을 좋아한 적 없어. 난 유효정 씨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야. 이 모든 게 너와 하늘이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해서지.”“그게 전부야?”성유리가 물었다.“뭐라고?”“나 하나만 더 묻고 싶어.”성유리가 말을 이었다.“네 회사가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게 정말 나 때문이고 박한빈 씨 때문인 거야? 아니면 그 과정에서 네 원인도 있어?”“그거 박한빈 씨가 말한 거야?”연정우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묻자 성유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그는 피식 웃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침묵은 이미 성유리에게 답을 전해주고 있었다.“난 네가 어떤 상황에서도 날 선택한 줄 알았어.”망설이던 성유리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런데 알고 보니까 너는 내내 나를 속이고 있었던 거네.”“내가 뭘 속였는데? 내가 너한테 잘못해 줬어? 그리고 네가 아니었다면 박한빈 씨가 나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였겠어?”“그래. 내가 조금 극단적인 수단을 쓴 건 맞아. 하지만 이 업계에서 그렇게 깨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6화

    “엄마, 요즘 아저씨는 왜 나 안 보러 와?”하늘이가 갑자기 연정우에 대해 묻자 성유리는 잠시 멍해졌지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요즘 많이 바빠서 시간이 없나 봐.”하늘이는 성유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아이는 그네를 홀로 잘 타고 위험하게 행동하지 않기에 성유리는 옆에서 조용히 하늘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그러다가 하늘이는 갑자기 그네에서 내려와 성유리에게 달려오더니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성유리는 무슨 일인가 싶어 하늘이를 번쩍 안아 올리며 물었다.“왜 그래?”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성유리가 아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 서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이제 경운시도 초가을에 접어들었다. 그 사람은 단정하고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키가 큰 훤칠한 체격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얼굴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오늘은 평일이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의 조부모였으니 그들은 대놓고 박한빈을 쳐다봤다.성유리는 박한빈이라는 것을 확신하자마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예상대로 금세 한 아주머니가 박한빈을 바라보다가 성유리에게 다가와 물었다.“하늘이 엄마, 저분이랑 아는 사이에요? 정말 잘생겼네요. 저분 여자 친구 있어요?”성유리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대답했다.“아니요. 저 사람이 제 전남편이에요.”성유리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아주머니는 당황한 듯 하려던 말을 뚝 멈췄고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마 싱글일 거예요. 그런데 왜요? 소개라도 해주시려고요? 저 사람 주변엔 늘 여자가 넘쳐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성유리의 말에 아주머니는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그런 남자들이 보통 문제 많지. 여기저기 여자들 꼬이고 말이야.”성유리는 아주머니의 말을 그저 웃어넘기고는 하늘이를 안아 들고 박한빈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요즘 하늘이는 부쩍 크고 있어 거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7화

    이 식당은 성유리가 전에 연정우와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다.이제 직원들도 그녀를 알아보는지 웃으며 다가오다가 성유리 뒤에 서 있는 박한빈을 보자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하지만 성유리는 직원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지 당당하게 말했다.“전에 먹었던 네 가지 메뉴 그대로요. 그리고 아이가 먹을 계란찜 하나만 추가해 주세요.”“네. 알겠습니다.”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한빈을 힐끔 더 쳐다보고는 주방으로 향했다.“여기 와본 적 있어?”식당은 나름대로 깔끔하고 괜찮게 꾸며져 있었지만 약간의 세월이 느껴지는 곳이었다.테이블과 의자는 광택을 낸 나무였는데 오래된 흔적이 드러나 있어 반질반질한 기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박한빈은 식당 환경을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표정을 고치고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성유리를 바라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성유리가 짧게 맞다는 대답을 하자 박한빈이 또다시 물었다.“연정우 씨랑?”박한빈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아까 직원이 자신을 쳐다봤던 그 눈빛에서 무언가를 감지한 듯했고 박한빈은 그 관계를 금방 파악한 듯했다.직원이 기억할 정도라면 한두 번 온 게 아닐 테니 말이다.“무슨 일이에요?”그러나 성유리는 박한빈을 보며 차갑게 물었다.그 태도는 마치 필요한 일 아니면 더는 함께 밥을 먹을 이유가 없다는 듯했다.박한빈은 성유리와 잠시 눈을 마주치다가 먼저 물었다.“요즘 연정우 씨랑 연락했었어?”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박한빈은 옅게 웃음을 지었다.“역시 난 그럴 줄 알았어.”“그래서요?”“그래서 연정우 씨 요즘 대놓고 유효정 싸랑 다니고 있는 거구나. 전에 말했잖아. 너를 이용했던 남자는 절대 믿을 수 없다고. 이제 알겠어? 연정우 씨가...”“그게 박한빈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성유리가 그의 말을 뚝 끊어버리자 박한빈은 그대로 멈춰버렸다.“상관있는 게 아니면 오늘 여기까지 오셔서 저를 비웃으려는 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8화

    “이건... 내 사과를 받아주지 않겠다는 뜻인가?”가만히 있는 성유리를 보던 박한빈이 다시 물었다.성유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박한빈을 잠시 응시하더니 결국 찻잔을 들어 가볍게 그와 잔을 부딪혔다.박한빈의 행동은 그녀에게 다소 의아했다.성유리가 아닌 그의 성격상 이렇게 순순히 사과할 사람이 아닌데 지금 박한빈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뭔가 어색하다고 느꼈지만 성유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 뒤로 박한빈도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결국 두 사람은 식사를 아무 일도 없이 놀랍도록 평온하게 마무리했다.성유리는 심지어 언제 박한빈과 이렇게 조용히 밥을 먹어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그래서 박한빈이 하늘이와 가끔 밥을 함께 먹으러 와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성유리는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성유리의 침묵은 박한빈에게는 동의로 받아들여진 듯했다. 이내 박한빈은 곧 가방에서 인형 하나를 꺼내 하늘이에게 건넸다.그것은 그들이 놀이공원에서 공연을 봤을 때 등장했던 캐릭터 중 하나였다.다른 상황이었다면 하늘이는 성유리를 쳐다보며 의견을 물었겠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하며 말했다.“싫어요.”하늘이는 거절을 아주 확실히 하는 편이었다.게다가 박한빈이 선물을 건네기 위해 거리까지 좁혔는데 하늘이는 그 순간 성유리 뒤로 숨어버렸다.그래서 박한빈의 손은 허공에 멈춘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만두세요.”성유리가 하늘이를 안아 들고 말했다.“하늘이한테는 이미 장난감이 꽤 많아요. 필요 없어요.”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계속 말했다.“밥은 다 먹었으니 박 대표님은 알아서 하세요.”그 말을 끝으로 성유리는 하늘이를 안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성유리는 박한빈에게 시선 한번 돌리지 않은 채 앞으로 걸어 나갔고 박한빈의 손은 여전히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박한빈은 허공에 굳어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성유리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최신 챕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35화

    성유리는 그때 말했다.하늘이는 이날을 정말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니까 꼭 하루 종일 시간을 내서 함께 있어 달라고.박한빈은 그 약속을 지켜야 했다.하지만 지금, 이 모든 것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걸까?“생일 선물로 뭐 갖고 싶어?”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물었다.그러자 하늘이는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바라보다 금세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박한빈은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하늘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박한빈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그렇지만 그토록 자신 있던 일조차 이제는 확신할 수 없었다.박한빈도 안다.하늘이를 엔젤 월드에 두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을.그는 너무 바빴고 아이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도 몰랐다.하지만 박한빈은 하늘이를 데려오고 싶었다.실버 포레스트, 그들의 집으로.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혼자 돌아오는 집, 텅 빈 공간, 모든 것이 그대로인 듯 보이지만 단 하나만이 비어 있는 공간.그곳은 오직 하나를 끊임없이 상기시켰다.성유리는 이곳에 없다.그리고 만약 하늘이까지 없어진다면 박한빈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어쩌면 그 모든 순간이 박한빈의 행복이 그저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갇히게 될 테니까 말이다.하지만 하늘이를 데려온 것이 정답이 아니었음을 그는 곧 깨달았다.아이는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고 박한빈 역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커다란 식탁,단둘이 앉아 조용히 식사를 했다.들려오는 것은 오직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뿐.박한빈은 새우를 까서 하늘이의 그릇에 놓으려 했지만 아이는 피해버렸다.그리고 담담히 말했다.“안 먹어요.”아이가 정말 새우를 싫어했었나?박한빈은 기억나지 않았다.그러나 분명 전에 성유리는 하늘이에게 새우를 까주곤 했다.그렇다면 하늘이는 정말 새우를 싫어하는 걸까? 아니면 박한빈이 까준 것을 먹기 싫은 걸까?그는 더 깊이 묻지 않았다. 그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히 새우를 먹었다.그렇게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34화

    장성 그룹은 최근 금성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 되었다.몇 건의 대형 프로젝트를 따낸 것은 물론 해외 기업과의 협력 프로젝트가 국제적으로 상을 받으며 명성을 쌓았다.그 결과, 마치 지화 그룹조차 그 빛에 가려지는 듯했다.박한빈은 알고 있었다.이 모든 것이 사씨 가문의 지원 덕분이라는 것을.그렇지 않고서야 유효정이 연정우에게 남긴 자금만으로 이 정도 성과를 이루기는 불가능했다.하지만 아무렴 어떤가.사씨 가문이라 해도 박한빈에게는 눈엣가시일 뿐이었다.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직접 손을 쓸 수 있었다.하지만 에릭이 말한 것처럼 국내의 법과 규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몇 달, 길게는 일 년도 걸릴 수 있었다.그런데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한 달.그것이 그의 인내심이 닿을 수 있는 한계였다.성유리의 소식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면 박한빈은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차가 도착한 곳은 엔젤 월드.박한빈이 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 하늘이는 뒷마당에 서 있었다.나무 아래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는 뒷모습.그는 아이를 부르지 않고 천천히 다가갔고 가까이 다가가서야 깨달았다.하늘이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것은 한 마리 나비였다.그러나 그 나비는 이미 사마귀에게 붙잡혀 있었다.가만히 놔둔다면 나비는 이제 곧 먹혀버릴 운명이었다.“구해주고 싶어?”박한빈이 하늘이에게 물으며 손을 뻗으려 하자 하늘이가 바로 대답했다.“아니요.”그 순간, 박한빈의 손이 멈췄다.“약육강식.”하늘이는 담담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자연의 법칙이에요.”박한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고개를 숙여 하늘이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아이의 얼굴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물론 하늘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성숙한 편이었다.하지만 성유리 앞에서는 언제나 밝고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그런데 지금 그 표정이 사라져 버렸다.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그사이 나비의 날개는 찢겨 나가고 몸뚱이는 천천히 먹혀 사라졌다.그렇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33화

    박한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무표정하게 홍지은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곁에 있던 경비원을 쓱 쳐다보았다.사실 경비원은 막 홍지은을 제지하려던 참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만삭이었다.둥글게 부푼 배가 눈에 띄었고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문제가 생길까 봐 선뜻 손을 뻗지 못하고 있었다.그런데도 박한빈의 시선이 느껴지자 아무리 홍지은이 잘못될까 두려워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놔! 네가 뭔데? 당장 이 손 떼라고!!”경비원에 의해 제지당한 홍지은이 더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그러나 그녀를 붙잡은 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결국, 홍지은은 그 자리에서 속수무책으로 박한빈이 자신을 지나쳐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 순간, 홍지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러다 갑자기 더욱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알겠다! 그 계집애 죽었지? 그래, 아주 잘됐네. 원래부터 죽어 마땅한 년이었으니까.”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박한빈의 걸음이 뚝 멈췄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홍지은을 바라보았다.홍지은은 더욱 독하게 그를 저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어차피 이제 자신에겐 남은 것도 없었다.집도, 회사도, 공장도 모조리 압류당했다.심지어 남편마저 그녀를 재수 없는 존재라며 외면했다.모두가 그렇게 믿었다.홍지은이 성유리를 건드린 탓에 이런 비참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박한빈을 적으로 돌렸기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고.하지만 그녀는 억울했다.공장을 살리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 것도 자신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잃게 된 건 자신뿐이었다.그런데도 사람들에게는 비난할 자격이 있었다.그리고 박한빈과 성유리.그 둘이야말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장본인이었다.홍지은의 눈에 분노와 원망이 서렸고 더욱 많은 독설을 퍼붓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 그대로 얼어버렸다.박한빈의 눈을 마주친 순간, 마치 무언가가 목을 조여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숨이 막혀 손끝과 머리까지 싸늘히 식어갔다.그러나 박한빈은 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32화

    “한빈아?”김서영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박한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김서영의 몸이 움찔했다.“무슨 일입니까?”박한빈이 물었다.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잠시 망설이던 김서영이 입을 열었다.“한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 우선 돌아가서 좀 쉬어. 하늘이는 내가 곁에서 봐줄게.”“그럴 필요 없습니다.”박한빈은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전 괜찮습니다. 그리고... 하늘이에게 여기 있어 주겠다고 약속했어요.”“그래도...”“먼저 돌아가세요.”박한빈은 김서영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하늘이를 바라보았다.김서영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조용히 먼저 물었다.“성유리는 아직도 소식이 없어?”그 말이 끝나자 박한빈의 몸이 미세하게 굳어졌으나 이내 담담하게 대답했다.“괜찮습니다. 찾을 수 있어요.”“설령 찾지 못한다고 해도... 유리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 거예요.”성유리의 실종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사씨 저택 내 모든 감시 카메라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만큼 이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게다가 성유리의 교통수단 이용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그 말은 즉, 누군가가 그녀를 데리고 사씨 저택을 빠져나간 후 바로 차에 태웠다는 뜻이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분명 연정우가 미리 계획해 둔 것임이 분명했다.심지어 자신을 에릭의 문제로 떠나게 만든 것조차 그가 미리 계산한 수단일 가능성이 높았다.사씨 부부 두 사람 또한 혹시 이 일에 개입한 걸까?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굳이 그들이 입을 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박한빈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두 사람이 입을 열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생각에 잠겨있던 그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그 변화를 감지한 김서영이 조심스럽게 불렀다.“한빈아?”그제야 박한빈이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31화

    김서영의 말을 듣고서야 박한빈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 했다.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있어서인지 일어나는 순간 어지러움이 몰려와 그는 잠시 가만히 서서 정신을 가다듬고 난 후에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하늘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이전에는 많이 회복된 상태였지만 재발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소한 감기나 열조차도 재발의 신호일 수 있었다.이런 하늘이의 상황을 잘 알기에 김서영은 초조함에 눈가까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박한빈을 보자마자 늦게 온 걸 책망하려던 참이었으나 그가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보고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대신, 낮은 목소리로 아들인 박한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가서 하늘이 좀 봐.”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곧장 병실로 향했고 그 시각 하늘이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며칠 만에 마주하는 얼굴이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살이 빠진 게 느껴졌다.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채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모습이 박한빈의 가슴을 죄어왔다.그는 조심스럽게 침대 곁에 앉아 나지막이 불렀다.“하늘아.”그제야 하늘이가 천천히 눈을 떴고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던 박한빈을 하늘이가 입을 열었다.“엄마는요?”박한빈은 대답할 수 없었다.원래도 가라앉아 있던 목소리가 이 순간에는 아예 막혀버린 듯했다.“일이 좀 있어서... 며칠 뒤엔 돌아올 거야.”결국 박한빈이는 하늘이한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그런 서툰 거짓말로 자신조차 속일 수 없었는데 하물며 하늘이가 믿을 리 없었다.하늘이는 묵묵히 그를 바라보다 잠시 후,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엄마가... 저를 버린 거예요?”그 말을 꺼내자마자 하늘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커다란 물방울들이 베개 위로 떨어지며 금세 얼룩을 만들었다.아이의 눈물에 박한빈은 순간 당황했고 황급히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면서도 뭐라도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적어도, 단 하나의 거짓말이라도.하지만 무슨 말을 할 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30화

    박한빈과는 달리 연정우의 표정은 한없이 차분했다. 오히려 박한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약간의 의문마저 섞여 있었다.그러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박 대표님, 그걸 저한테 물어보는 게 맞으십니까? 유리는 당신 아내잖아요. 그런데 지금 저한테 와서 유리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이게... 적절한 질문입니까?”연정우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런 말을 다시 덧붙였다.“아니면 무슨 증거라도 있나요? 제가 유리를 데려갔다는.”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선 채로 연정우를 노려볼 뿐이었다.단단히 쥐어져 있던 박한빈의 두 손이 서서히 풀어지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좋아요. 연정우 씨. 이건 당신이 선택한 겁니다.”말을 마친 그는 주저 없이 몸을 돌렸다.하지만 연정우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박한빈의 뒷모습을 한 번 바라본 후, 입가에 얕은 미소를 띠며 주위의 직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다들 할 일 없으면 어서 돌아가서 업무들 보세요.”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갔다.한편, 박한빈은 이미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금성은 그리 큰 도시가 아니었다.도시 전체를 뒤집어 찾는다면 성유리를 못 찾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갔다.“죄송합니다. 박 대표님. 여전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그 대답이 또다시 들려오는 순간, 박한빈의 표정에서는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성유리는 정말로... 사라져 버렸다.아무런 흔적도 없이.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건, CCTV에 찍힌 성유리의 손끝뿐.그 외에는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 어떤 행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처음엔 불안과 분노가 그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조차 사라지고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어두운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뭔가 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유리는 나를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9화

    박한빈은 단 한 번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고는 몸을 돌려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짧게 명령했다.“찾아.”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안으로 들이닥쳤다.그러자 류수미가 다급히 외쳤다.“박한빈 씨! 여긴 사씨 저택입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짓이 무단 침입이라는 거 모르세요?”“제 아내가 당신들께서 주최한 파티에 참석하러 왔는데 실종됐습니다.”“그런데 제가 이곳을 수색하는 게 뭐가 문제죠?”“설마 저희가 유리를 숨겼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박한빈은 그들의 반응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곧장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경찰 측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성유리 씨는 누군가에게 끌려갔을 가능성이 큽니다.”상대방의 말에 박한빈의 안색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범인은 사씨 저택의 구조를 아주 잘 아는 사람입니다.”“CCTV가 설치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성유리 씨를 데려갈 때 모든 감시를 피해 움직였습니다.”그들이 포착한 건 단 한 장의 장면이었다.카메라 구석에 스치듯 찍힌 아주 잠깐 드러난 손목 한 조각.성유리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 축 늘어진 팔이 순간적으로 화면에 포착된 것이었다.고작 2초 남짓한 짧은 영상이었지만 박한빈은 그 한순간을 보고도 확신했다.“이건 성유리가 맞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그럼 지금 유리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현재 차량 소유자를 추적 중입니다.”박한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바로 경찰과의 통화를 끝냈다.그리고 마치 한순간 힘이 빠진 풍선처럼 옆 벽에 쓰러지듯 몸을 기대었다.그 순간, 류수미의 날 선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이제 확실해졌죠? 유리는 여기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장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주세요!”그러나 박한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런 태도에 류수미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참다못한 그녀가 박한빈을 향해 다가와 뺨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8화

    박한빈은 현재 도한시에 머물고 있었고 그 무렵 에릭은 막 보석으로 풀려난 참이었다.사실 이번 일은 그에게도 꽤 억울한 일이었다. 애초에 초대받은 손님일 뿐이었고 문제의 물건을 가져온 것도 그가 아니었다.정작 그걸 들고 온 사람은 죽었고 에릭과 함께 있던 사람들만 모조리 곤경에 빠졌다. 하지만 에릭은 신경 쓰지 않았다.어차피 자신의 결백만 입증하면 이곳 사람들은 그에게 어찌할 수 없었다.문제는 박한빈이었다.그의 기본적인 사업들은 여전히 국내에 있었고 만약 이번 사건과 관련된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그에게 미칠 영향은 치명적일 터였다.그래서 직접 금성에서 이곳으로 넘어와 경찰 수사에 협조한 것이다.이곳 경찰이 그의 결백을 증명해 준다면 박한빈을 음해하려던 언론 보도는 모두 허위 사실 유포가 될 테니까.박한빈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는 걸 알면서도 에릭은 진지하게 말했다.“이번 일은 정말 고마워.”박한빈은 그를 쓱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휴대폰을 들고 화면 속의 문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에릭은 한국어를 말하기는 가능했지만 글자는 읽을 줄 몰랐다.그래서 박한빈의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메시지를 봐도 내용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상대방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그제야 에릭은 상황을 눈치챘다.“네 아내야?”침묵하던 박한빈이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을 본 에릭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설마 화난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그냥 나랑 같이 해외로 가는 게 어때? 여기는 제약이 너무 많잖아. 이런 것만 없었어도 너도 굳이 이렇게까지... 야, 내 말 듣고 있긴 해?”박한빈은 에릭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핸드폰을 손에 쥔 채 몇 초 더 기다려 봤지만 성유리의 답장은 끝내 오지 않았다. 그러자 곧바로 휴대폰을 들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에릭이 뒤에서 뭐라고 말했는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걸어가면서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걱정스러운 마음에 박한빈의 미간이 점점 더 잔뜻 찌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7화

    비록 그때의 연정우는 단순한 ‘공범’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친척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오해를 받아야 했다.하지만 정말로 선하고 올곧은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그들을 돕는 선택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이 터졌을 때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무마하고 수습하려 하지 않았을 거고.권력이라는 것은 중독성 강한 독과도 같아서 한 번 손을 대면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그렇지만 피라미드 꼭대기에 설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그 자리에 오르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제일 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 그리고 성유리의 존재로 인해 연정우가 바라보게 된 대상은 박한빈이었다.더군다나 박한빈 때문에 한때 잃어버린 것들이 있었으니 연정우가 그를 증오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심지어 성유리는 나중에 연정우가 자신에게 그렇게 집착한 것도 단순한 감정 때문만이 아니라 박한빈을 이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사업적인 수법과 벌이로는 박한빈을 뛰어넘기 어려웠지만 만약 성유리와 함께한다면?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도 일종의 승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그래서였을까. 박한빈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연정우가 끝까지 자신과 함께 장례식에 가려 했던 이유는 그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박한빈이 원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사람을 결국 자신이 가졌다는걸.성유리는 생각하고 있던 그대로 연정우에게 말했다.그 말투는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듯 지극히 차분한 목소리였다.감정이 배제된 그저 객관적인 관찰자 같은 어조로.“그러니까 네가 피해자라고 착각하지 마.”성유리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어쩌면 넌... 단 한 번도 날 진짜로 좋아한 적이 없을지도 몰라. 네가 좋아했던 건 박한빈을 이긴다는 그 감정이었을 뿐이야.”그 말이 끝나자 연정우가 잡고 있던 손이 천천히 풀렸다.“정말... 너무하네.”그가 힘없이 웃으며 계속 말했다.“어찌 됐든 우리는 함께했던 사이였어. 심지어 결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