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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7화

Author: 송진
이 식당은 성유리가 전에 연정우와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다.

이제 직원들도 그녀를 알아보는지 웃으며 다가오다가 성유리 뒤에 서 있는 박한빈을 보자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성유리는 직원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지 당당하게 말했다.

“전에 먹었던 네 가지 메뉴 그대로요. 그리고 아이가 먹을 계란찜 하나만 추가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한빈을 힐끔 더 쳐다보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여기 와본 적 있어?”

식당은 나름대로 깔끔하고 괜찮게 꾸며져 있었지만 약간의 세월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테이블과 의자는 광택을 낸 나무였는데 오래된 흔적이 드러나 있어 반질반질한 기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박한빈은 식당 환경을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표정을 고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성유리를 바라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성유리가 짧게 맞다는 대답을 하자 박한빈이 또다시 물었다.

“연정우 씨랑?”

박한빈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아까 직원이 자신을 쳐다봤던 그 눈빛에서 무언가를 감지한 듯했고 박한빈은 그 관계를 금방 파악한 듯했다.

직원이 기억할 정도라면 한두 번 온 게 아닐 테니 말이다.

“무슨 일이에요?”

그러나 성유리는 박한빈을 보며 차갑게 물었다.

그 태도는 마치 필요한 일 아니면 더는 함께 밥을 먹을 이유가 없다는 듯했다.

박한빈은 성유리와 잠시 눈을 마주치다가 먼저 물었다.

“요즘 연정우 씨랑 연락했었어?”

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박한빈은 옅게 웃음을 지었다.

“역시 난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요?”

“그래서 연정우 씨 요즘 대놓고 유효정 싸랑 다니고 있는 거구나. 전에 말했잖아. 너를 이용했던 남자는 절대 믿을 수 없다고. 이제 알겠어? 연정우 씨가...”

“그게 박한빈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

성유리가 그의 말을 뚝 끊어버리자 박한빈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상관있는 게 아니면 오늘 여기까지 오셔서 저를 비웃으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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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성유리는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거침없는 성유리의 행동에 오히려 전화를 건 쪽에서 멈칫하는 듯 보였다.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물었다.“아까 전화 왜 걸었어?”박한빈은 어떻게든 성유리의 입에서 먼저 어떤 말이든 나오길 기다렸고 성유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이것 역시 박한빈의 일관적인 성격이었다.무슨 일이 있든 항상 타인이 먼저 다가가야만 했다.박한빈은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돌려줄지 고민해 보는 사람.심지어 자신이 주는 그 ‘조금’의 것도 마치 대단한 은혜인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전형적인 이기주의자 마인드가 아닐 수 없다.“왜 말이 없어?”박한빈은 성유리의 그 짧은 침묵도 못 참고 성급하게 그녀를 재촉해댔다.그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성유리가 대답했다.“별일 아니에요. 그냥 미안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어요.”성유리의 말과는 다르게 박한빈은 그녀의 말투에서 사과의 기미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결국, 차가운 웃음을 터뜨린 박한빈이 물었다.“성유리, 그게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야?”“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예요.”성유리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어차피 이 일도 다 대표님 때문에 일어난 일이잖아요. 대표님이 아파트단지까지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제가 대표님한테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대표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제가 무슨 오해를 하든, 그건 다 대표님 자업자득이죠. 그래도 오해했던 건 사과할게요.”성유리는 단숨에 마음속에 있던 말을 쏟아냈다.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의 기복도 없이 아주 차분했다.하지만 박한빈은 그런 성유리의 차분한 목소리 속에서 단 하나의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그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미안한 감정도 들어있지 않았다.사과의 뜻이 담긴 그녀의 말 속에도 그저 형식적인 인사말에 불과해 보였다.성유리는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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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탓에 성유리는 자신의 휴대폰이 어느덧 잠잠해졌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모녀가 아파트단지에 도착했을 때는 몰려있던 사람들이 전부 흩어진 후였고 남아 있던 사람들의 손에는 새로운 장난감이 들려있었다.그 모습을 보던 성유리가 잠시 멈칫했다.“하늘이 엄마, 고마워요.”누군가가 성유리에게 다가와 말했다.“그... 단톡방에서 했던 말은 신경 쓰지 마요. 사람들이 정말 못돼 먹었죠.”“그러게나 말이에요. 공짜에 눈이 멀어도 유분수지.”이윽고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와 맞장구를 쳐주었다.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성유리는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듯 물었다.“이 물건들... 다 누가 보낸 거예요?”“당연히 한빈 씨가 보내준 거죠! 일 때문에 직접 못 온다고 비서님이 대신 갖고 왔더라고요. 설마 얘기 못 들었어요?”성유리의 목소리가 다소 거칠어지기 시작했다.“그게... 대체 언제였죠?”“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받아가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렸으니까 아마 11시쯤이었을 걸요?”박한빈이 성유리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가 12시쯤이었다.그 말인즉슨 두 사람이 통화하고 있었을 때는 이미 박한빈이 물건을 보낸 뒤였다는 뜻이 된다.성유리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잠시 후, 겨우 입꼬리를 살짝 올린 성유리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 저희가 더 고맙죠. 애들이 얼마나 기뻐했는데요. 그나저나, 유리 씨 남편분... 아니, 전 남편분은 무슨 일 하세요? 장난감 사업이라고 하시나?”“그런 건 아닌 것 같던데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는데, 꽤 잘생겼어요. 연예인 아니에요?”성유리는 그녀들의 말을 모조리 무시한 채 고개만 살짝 까딱이고는 성하늘과 함께 자리를 떴다.아이와 함께 집으로 올라오자 관리사무소에서 입주민 단톡방에 공지를 올렸다.공지에는 최근 이틀간 아파트단지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전해 들었으며, 내일부터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그 공지를 확인한 입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00화

    성유리는 단체 채팅방 알림을 차단했지만 여전히 개인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다.발송자들은 다 단지에서 알게 된 아이 엄마들이 보내온 메시지였다.[박 대표님 오늘 언제 오시는지 아세요?][오늘 안 오신다면 미리 말씀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이들이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는데요.]성유리는 무표정으로 그 메시지들을 바라보았다.사실, 박한빈이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예감하고 있었다.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모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것.박한빈은 언제나 그런 일에 능숙했다.그녀가 이 단지에서 겨우 찾아낸 평온한 삶은 박한빈의 등장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박한빈에게 그 돈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결국 그는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려 하고 있었다.그리고 그것은 성유리와 하늘이의 안정된 일상을 깨뜨리고 있었다.“엄마, 엄마!”하늘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성유리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이내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엄마 햄버거는 맛없어?”하늘이는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성유리는 자신의 손에 들린 음식을 한 번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야. 그냥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 너 많이 먹어.”“엄마 오늘 이상해.”하늘이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다시 고개를 숙여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그리고 맞은편에 있던 성유리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박한빈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마치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에게서 전화가 먼저 걸려 왔다.성유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아파트 단지에 있어?”그의 첫 마디는 성유리의 행방을 묻는 말이었다.“미안해. 오늘은 일이 있어서 못 갈 것 같네.”“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성유리는 박한빈의 두 번째 말에 바로 반박했다.“그런 말은 박한빈 씨가 약속했던 사람들에게 말하는 게 맞지 않나요?”“약속? 난 누구랑 약속한 적 없는데.”“그럼 왜 저한테 전화하세요?”“혹시 기다리고 있을까 봐...”“전 당신을 기다린 적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9화

    하늘이의 단호한 대답에 성유리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그럼 우리 이제 집에 가자.”그렇게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웃음소리와 흥분된 목소리는 마치 그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그런데 다음 날, 박한빈이 또 아파트 내에 나타났다.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몇 명의 보디가드도 함께였고 그들의 손에는 묵직한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어제와 달리 박한빈이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이들이 먼저 우르르 몰려들었고 심지어는 옆 단지에서 소문을 듣고 온 아이들까지 있었다.박한빈은 찾아오는 아이들이 누구인지도 구분하지 않은 채 아이들이 오기만 하면 모두에게 선물을 나눠줬다.오늘은 그가 직접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됐기에 성유리의 반응을 살필 시간도 있었다.그러나 선물을 나눠주던 박한빈은 금세 깨달았다. 성유리와 하늘이는 이미 떠나버렸단 사실을.‘언제 떠난 거지?’그로부터 셋째 날, 넷째 날이 지나갔고 다섯째 날이 될 무렵 박한빈은 더 이상 아파트에 나타나지 않았다.하지만 며칠간의 무료 선물이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충분히 인상적이었기에 그들은 여전히 단지 아래에 모여 있었다.아이들은 기대에 들떠 있었고 부모들은 아이들만큼이나 박한빈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성유리는 그동안 하늘이를 데리고 단지 아래가 아닌 근처 어린이 공원으로 나가곤 했다.그날도 성유리는 하늘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 공원으로 가는 길이었다.그런데 단지 사람들 중 일부가 그녀와 박한빈의 관계를 알아냈는지 성유리를 보자마자 인사를 건네며 물었다.“오늘 박 대표님은 언제 오세요?”성유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저도 몰라요.”“아니, 어떻게 몰라요? 남편 일인데 모를 리가 있나요?”“저희는 이미 이혼했잖아요.”그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참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두 분은 전혀 이혼한 사람들 같지 않은데? 박 대표님 같은 좋은 사람을 왜 용서하지 않는 거예요?”“맞아요! 박 대표님 같은 분이 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8화

    “이건... 내 사과를 받아주지 않겠다는 뜻인가?”가만히 있는 성유리를 보던 박한빈이 다시 물었다.성유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박한빈을 잠시 응시하더니 결국 찻잔을 들어 가볍게 그와 잔을 부딪혔다.박한빈의 행동은 그녀에게 다소 의아했다.성유리가 아닌 그의 성격상 이렇게 순순히 사과할 사람이 아닌데 지금 박한빈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뭔가 어색하다고 느꼈지만 성유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 뒤로 박한빈도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결국 두 사람은 식사를 아무 일도 없이 놀랍도록 평온하게 마무리했다.성유리는 심지어 언제 박한빈과 이렇게 조용히 밥을 먹어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그래서 박한빈이 하늘이와 가끔 밥을 함께 먹으러 와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성유리는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성유리의 침묵은 박한빈에게는 동의로 받아들여진 듯했다. 이내 박한빈은 곧 가방에서 인형 하나를 꺼내 하늘이에게 건넸다.그것은 그들이 놀이공원에서 공연을 봤을 때 등장했던 캐릭터 중 하나였다.다른 상황이었다면 하늘이는 성유리를 쳐다보며 의견을 물었겠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하며 말했다.“싫어요.”하늘이는 거절을 아주 확실히 하는 편이었다.게다가 박한빈이 선물을 건네기 위해 거리까지 좁혔는데 하늘이는 그 순간 성유리 뒤로 숨어버렸다.그래서 박한빈의 손은 허공에 멈춘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만두세요.”성유리가 하늘이를 안아 들고 말했다.“하늘이한테는 이미 장난감이 꽤 많아요. 필요 없어요.”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계속 말했다.“밥은 다 먹었으니 박 대표님은 알아서 하세요.”그 말을 끝으로 성유리는 하늘이를 안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성유리는 박한빈에게 시선 한번 돌리지 않은 채 앞으로 걸어 나갔고 박한빈의 손은 여전히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박한빈은 허공에 굳어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성유리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7화

    이 식당은 성유리가 전에 연정우와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다.이제 직원들도 그녀를 알아보는지 웃으며 다가오다가 성유리 뒤에 서 있는 박한빈을 보자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하지만 성유리는 직원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지 당당하게 말했다.“전에 먹었던 네 가지 메뉴 그대로요. 그리고 아이가 먹을 계란찜 하나만 추가해 주세요.”“네. 알겠습니다.”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한빈을 힐끔 더 쳐다보고는 주방으로 향했다.“여기 와본 적 있어?”식당은 나름대로 깔끔하고 괜찮게 꾸며져 있었지만 약간의 세월이 느껴지는 곳이었다.테이블과 의자는 광택을 낸 나무였는데 오래된 흔적이 드러나 있어 반질반질한 기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박한빈은 식당 환경을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표정을 고치고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성유리를 바라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성유리가 짧게 맞다는 대답을 하자 박한빈이 또다시 물었다.“연정우 씨랑?”박한빈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아까 직원이 자신을 쳐다봤던 그 눈빛에서 무언가를 감지한 듯했고 박한빈은 그 관계를 금방 파악한 듯했다.직원이 기억할 정도라면 한두 번 온 게 아닐 테니 말이다.“무슨 일이에요?”그러나 성유리는 박한빈을 보며 차갑게 물었다.그 태도는 마치 필요한 일 아니면 더는 함께 밥을 먹을 이유가 없다는 듯했다.박한빈은 성유리와 잠시 눈을 마주치다가 먼저 물었다.“요즘 연정우 씨랑 연락했었어?”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박한빈은 옅게 웃음을 지었다.“역시 난 그럴 줄 알았어.”“그래서요?”“그래서 연정우 씨 요즘 대놓고 유효정 싸랑 다니고 있는 거구나. 전에 말했잖아. 너를 이용했던 남자는 절대 믿을 수 없다고. 이제 알겠어? 연정우 씨가...”“그게 박한빈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성유리가 그의 말을 뚝 끊어버리자 박한빈은 그대로 멈춰버렸다.“상관있는 게 아니면 오늘 여기까지 오셔서 저를 비웃으려는 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6화

    “엄마, 요즘 아저씨는 왜 나 안 보러 와?”하늘이가 갑자기 연정우에 대해 묻자 성유리는 잠시 멍해졌지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요즘 많이 바빠서 시간이 없나 봐.”하늘이는 성유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아이는 그네를 홀로 잘 타고 위험하게 행동하지 않기에 성유리는 옆에서 조용히 하늘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그러다가 하늘이는 갑자기 그네에서 내려와 성유리에게 달려오더니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성유리는 무슨 일인가 싶어 하늘이를 번쩍 안아 올리며 물었다.“왜 그래?”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성유리가 아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 서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이제 경운시도 초가을에 접어들었다. 그 사람은 단정하고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키가 큰 훤칠한 체격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얼굴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오늘은 평일이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의 조부모였으니 그들은 대놓고 박한빈을 쳐다봤다.성유리는 박한빈이라는 것을 확신하자마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예상대로 금세 한 아주머니가 박한빈을 바라보다가 성유리에게 다가와 물었다.“하늘이 엄마, 저분이랑 아는 사이에요? 정말 잘생겼네요. 저분 여자 친구 있어요?”성유리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대답했다.“아니요. 저 사람이 제 전남편이에요.”성유리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아주머니는 당황한 듯 하려던 말을 뚝 멈췄고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마 싱글일 거예요. 그런데 왜요? 소개라도 해주시려고요? 저 사람 주변엔 늘 여자가 넘쳐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성유리의 말에 아주머니는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그런 남자들이 보통 문제 많지. 여기저기 여자들 꼬이고 말이야.”성유리는 아주머니의 말을 그저 웃어넘기고는 하늘이를 안아 들고 박한빈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요즘 하늘이는 부쩍 크고 있어 거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95화

    성유리는 머릿속이 복잡해져 두 주먹을 꽉 쥐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연정우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마치 엄청나게 우스운 농담이라도 들은 듯,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 웃음에는 묘한 결단력이 섞여 있는 것도 같았다.그리고 이내 진정한 연정우가 말했다.“뭘 솔직하게 말하라는 거야? 내가 솔직히 말하면 우리 관계가 더 나아질 것 같아? 내가 지금 다 털어놓으면 우리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성유리, 자꾸 나를 이렇게 속이지 마.”그 순간, 성유리가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답이 확실해지자 꽉 쥐었던 두 손에도 힘이 풀렸다.애써 입술을 움직여 무언가 더 말하려던 찰나, 연정우가 먼저 말을 이어갔다.“그래. 맞아. 난 널 속였어.”“그 투자자라는 사람, 사실은 유효정 씨야. 그 사람 아버지가 해외에 남긴 자산이 있어서 이번에 그걸 함께 가져오려는 거야.”“그리고 그것도 맞아. 나 또다시 유효정 씨와 얽혀버렸어.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난 그 사람을 좋아한 적 없어. 난 유효정 씨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야. 이 모든 게 너와 하늘이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해서지.”“그게 전부야?”성유리가 물었다.“뭐라고?”“나 하나만 더 묻고 싶어.”성유리가 말을 이었다.“네 회사가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게 정말 나 때문이고 박한빈 씨 때문인 거야? 아니면 그 과정에서 네 원인도 있어?”“그거 박한빈 씨가 말한 거야?”연정우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묻자 성유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그는 피식 웃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침묵은 이미 성유리에게 답을 전해주고 있었다.“난 네가 어떤 상황에서도 날 선택한 줄 알았어.”망설이던 성유리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런데 알고 보니까 너는 내내 나를 속이고 있었던 거네.”“내가 뭘 속였는데? 내가 너한테 잘못해 줬어? 그리고 네가 아니었다면 박한빈 씨가 나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였겠어?”“그래. 내가 조금 극단적인 수단을 쓴 건 맞아. 하지만 이 업계에서 그렇게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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