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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Penulis: 송진
연정우가 성유리와 약속한 시간은 11시였다. 하지만 12시가 다 되어서도 연락 없는 연정우를 성유리는 뜬눈으로 기다렸다.

“하늘이 잠들었어?”

12시가 넘은 자정이 되어서야 연정우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

“응. 지금 자.”

성유리는 핸드폰을 들고 거실 발코니로 향하며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해. 원래는 10시쯤에 전화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또 일이 생겨서 지금까지 바빴어.”

“괜찮아. 나도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연신 사과를 하는 연정우에게 성유리는 거듭 괜찮다고 강조했고 둘 사이엔 빠르게 적막이 찾아왔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금세 감지한 연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어?”

“아니.”

성유리는 재빨리 대답하고는 연정우에게 물었다.

“너... 요즘도 그렇게 바빠?”

“응. 그렇지 뭐. 그냥 투자자들이 제일 중요한 문제야. 너도 알잖아. 아직 회사는 제대로 파산 신청도 안 했는데 그 사람들이 다 같이 발을 빼버리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래서 나...”

연정우는 말하다 문득 목이 막히는지 뚝 멈추더니 이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봐. 내가 이런 말을 너한테 뭣하러 하겠어. 사실 별거 아니야. 그저 그런 평범한 과정일 뿐이지.”

“요즘 너 너무 고생하는 거 아니야?”

조용히 연정우의 말을 듣고만 있던 성유리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그는 입을 꾹 닫아버렸다.

성유리는 연정우에게 묻고 싶은 것이 더 많았지만 이번엔 그가 먼저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번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연정우의 말에 성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후, 성유리가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어. 그냥... 갑자기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래. 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 힘든 것 같아서.”

연정우는 대답이 없었다.

“만약 나만 아니었다면 너도 아마...”

성유리는 두 손을 움켜쥐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고 그때, 연정우가 뭔가 눈치 차린 듯 물었다.

“우리 엄마가 너한테 찾아갔었어?”

연정우는 성유리의 말을 채 들어보지도 않고 정확히 그녀에게 발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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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 그룹은 최근 금성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 되었다.몇 건의 대형 프로젝트를 따낸 것은 물론 해외 기업과의 협력 프로젝트가 국제적으로 상을 받으며 명성을 쌓았다.그 결과, 마치 지화 그룹조차 그 빛에 가려지는 듯했다.박한빈은 알고 있었다.이 모든 것이 사씨 가문의 지원 덕분이라는 것을.그렇지 않고서야 유효정이 연정우에게 남긴 자금만으로 이 정도 성과를 이루기는 불가능했다.하지만 아무렴 어떤가.사씨 가문이라 해도 박한빈에게는 눈엣가시일 뿐이었다.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직접 손을 쓸 수 있었다.하지만 에릭이 말한 것처럼 국내의 법과 규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그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몇 달, 길게는 일 년도 걸릴 수 있었다.그런데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한 달.그것이 그의 인내심이 닿을 수 있는 한계였다.성유리의 소식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면 박한빈은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차가 도착한 곳은 엔젤 월드.박한빈이 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 하늘이는 뒷마당에 서 있었다.나무 아래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는 뒷모습.그는 아이를 부르지 않고 천천히 다가갔고 가까이 다가가서야 깨달았다.하늘이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것은 한 마리 나비였다.그러나 그 나비는 이미 사마귀에게 붙잡혀 있었다.가만히 놔둔다면 나비는 이제 곧 먹혀버릴 운명이었다.“구해주고 싶어?”박한빈이 하늘이에게 물으며 손을 뻗으려 하자 하늘이가 바로 대답했다.“아니요.”그 순간, 박한빈의 손이 멈췄다.“약육강식.”하늘이는 담담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자연의 법칙이에요.”박한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고개를 숙여 하늘이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아이의 얼굴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물론 하늘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성숙한 편이었다.하지만 성유리 앞에서는 언제나 밝고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그런데 지금 그 표정이 사라져 버렸다.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그사이 나비의 날개는 찢겨 나가고 몸뚱이는 천천히 먹혀 사라졌다.그렇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33화

    박한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무표정하게 홍지은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곁에 있던 경비원을 쓱 쳐다보았다.사실 경비원은 막 홍지은을 제지하려던 참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만삭이었다.둥글게 부푼 배가 눈에 띄었고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문제가 생길까 봐 선뜻 손을 뻗지 못하고 있었다.그런데도 박한빈의 시선이 느껴지자 아무리 홍지은이 잘못될까 두려워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놔! 네가 뭔데? 당장 이 손 떼라고!!”경비원에 의해 제지당한 홍지은이 더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그러나 그녀를 붙잡은 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결국, 홍지은은 그 자리에서 속수무책으로 박한빈이 자신을 지나쳐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 순간, 홍지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러다 갑자기 더욱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알겠다! 그 계집애 죽었지? 그래, 아주 잘됐네. 원래부터 죽어 마땅한 년이었으니까.”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박한빈의 걸음이 뚝 멈췄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홍지은을 바라보았다.홍지은은 더욱 독하게 그를 저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어차피 이제 자신에겐 남은 것도 없었다.집도, 회사도, 공장도 모조리 압류당했다.심지어 남편마저 그녀를 재수 없는 존재라며 외면했다.모두가 그렇게 믿었다.홍지은이 성유리를 건드린 탓에 이런 비참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박한빈을 적으로 돌렸기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고.하지만 그녀는 억울했다.공장을 살리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 것도 자신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잃게 된 건 자신뿐이었다.그런데도 사람들에게는 비난할 자격이 있었다.그리고 박한빈과 성유리.그 둘이야말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장본인이었다.홍지은의 눈에 분노와 원망이 서렸고 더욱 많은 독설을 퍼붓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 그대로 얼어버렸다.박한빈의 눈을 마주친 순간, 마치 무언가가 목을 조여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숨이 막혀 손끝과 머리까지 싸늘히 식어갔다.그러나 박한빈은 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32화

    “한빈아?”김서영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박한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김서영의 몸이 움찔했다.“무슨 일입니까?”박한빈이 물었다.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잠시 망설이던 김서영이 입을 열었다.“한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 우선 돌아가서 좀 쉬어. 하늘이는 내가 곁에서 봐줄게.”“그럴 필요 없습니다.”박한빈은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전 괜찮습니다. 그리고... 하늘이에게 여기 있어 주겠다고 약속했어요.”“그래도...”“먼저 돌아가세요.”박한빈은 김서영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하늘이를 바라보았다.김서영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조용히 먼저 물었다.“성유리는 아직도 소식이 없어?”그 말이 끝나자 박한빈의 몸이 미세하게 굳어졌으나 이내 담담하게 대답했다.“괜찮습니다. 찾을 수 있어요.”“설령 찾지 못한다고 해도... 유리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 거예요.”성유리의 실종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사씨 저택 내 모든 감시 카메라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만큼 이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게다가 성유리의 교통수단 이용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그 말은 즉, 누군가가 그녀를 데리고 사씨 저택을 빠져나간 후 바로 차에 태웠다는 뜻이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분명 연정우가 미리 계획해 둔 것임이 분명했다.심지어 자신을 에릭의 문제로 떠나게 만든 것조차 그가 미리 계산한 수단일 가능성이 높았다.사씨 부부 두 사람 또한 혹시 이 일에 개입한 걸까?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굳이 그들이 입을 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박한빈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두 사람이 입을 열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생각에 잠겨있던 그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그 변화를 감지한 김서영이 조심스럽게 불렀다.“한빈아?”그제야 박한빈이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31화

    김서영의 말을 듣고서야 박한빈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 했다.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있어서인지 일어나는 순간 어지러움이 몰려와 그는 잠시 가만히 서서 정신을 가다듬고 난 후에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하늘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이전에는 많이 회복된 상태였지만 재발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소한 감기나 열조차도 재발의 신호일 수 있었다.이런 하늘이의 상황을 잘 알기에 김서영은 초조함에 눈가까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박한빈을 보자마자 늦게 온 걸 책망하려던 참이었으나 그가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보고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대신, 낮은 목소리로 아들인 박한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가서 하늘이 좀 봐.”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곧장 병실로 향했고 그 시각 하늘이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며칠 만에 마주하는 얼굴이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살이 빠진 게 느껴졌다.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채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모습이 박한빈의 가슴을 죄어왔다.그는 조심스럽게 침대 곁에 앉아 나지막이 불렀다.“하늘아.”그제야 하늘이가 천천히 눈을 떴고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던 박한빈을 하늘이가 입을 열었다.“엄마는요?”박한빈은 대답할 수 없었다.원래도 가라앉아 있던 목소리가 이 순간에는 아예 막혀버린 듯했다.“일이 좀 있어서... 며칠 뒤엔 돌아올 거야.”결국 박한빈이는 하늘이한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그런 서툰 거짓말로 자신조차 속일 수 없었는데 하물며 하늘이가 믿을 리 없었다.하늘이는 묵묵히 그를 바라보다 잠시 후,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엄마가... 저를 버린 거예요?”그 말을 꺼내자마자 하늘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커다란 물방울들이 베개 위로 떨어지며 금세 얼룩을 만들었다.아이의 눈물에 박한빈은 순간 당황했고 황급히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면서도 뭐라도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적어도, 단 하나의 거짓말이라도.하지만 무슨 말을 할 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30화

    박한빈과는 달리 연정우의 표정은 한없이 차분했다. 오히려 박한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약간의 의문마저 섞여 있었다.그러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박 대표님, 그걸 저한테 물어보는 게 맞으십니까? 유리는 당신 아내잖아요. 그런데 지금 저한테 와서 유리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이게... 적절한 질문입니까?”연정우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런 말을 다시 덧붙였다.“아니면 무슨 증거라도 있나요? 제가 유리를 데려갔다는.”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선 채로 연정우를 노려볼 뿐이었다.단단히 쥐어져 있던 박한빈의 두 손이 서서히 풀어지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좋아요. 연정우 씨. 이건 당신이 선택한 겁니다.”말을 마친 그는 주저 없이 몸을 돌렸다.하지만 연정우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박한빈의 뒷모습을 한 번 바라본 후, 입가에 얕은 미소를 띠며 주위의 직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다들 할 일 없으면 어서 돌아가서 업무들 보세요.”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갔다.한편, 박한빈은 이미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금성은 그리 큰 도시가 아니었다.도시 전체를 뒤집어 찾는다면 성유리를 못 찾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갔다.“죄송합니다. 박 대표님. 여전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습니다.”그 대답이 또다시 들려오는 순간, 박한빈의 표정에서는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성유리는 정말로... 사라져 버렸다.아무런 흔적도 없이.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건, CCTV에 찍힌 성유리의 손끝뿐.그 외에는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 어떤 행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처음엔 불안과 분노가 그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조차 사라지고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어두운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뭔가 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유리는 나를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9화

    박한빈은 단 한 번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고는 몸을 돌려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짧게 명령했다.“찾아.”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안으로 들이닥쳤다.그러자 류수미가 다급히 외쳤다.“박한빈 씨! 여긴 사씨 저택입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짓이 무단 침입이라는 거 모르세요?”“제 아내가 당신들께서 주최한 파티에 참석하러 왔는데 실종됐습니다.”“그런데 제가 이곳을 수색하는 게 뭐가 문제죠?”“설마 저희가 유리를 숨겼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박한빈은 그들의 반응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곧장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경찰 측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성유리 씨는 누군가에게 끌려갔을 가능성이 큽니다.”상대방의 말에 박한빈의 안색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범인은 사씨 저택의 구조를 아주 잘 아는 사람입니다.”“CCTV가 설치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성유리 씨를 데려갈 때 모든 감시를 피해 움직였습니다.”그들이 포착한 건 단 한 장의 장면이었다.카메라 구석에 스치듯 찍힌 아주 잠깐 드러난 손목 한 조각.성유리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 축 늘어진 팔이 순간적으로 화면에 포착된 것이었다.고작 2초 남짓한 짧은 영상이었지만 박한빈은 그 한순간을 보고도 확신했다.“이건 성유리가 맞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그럼 지금 유리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현재 차량 소유자를 추적 중입니다.”박한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바로 경찰과의 통화를 끝냈다.그리고 마치 한순간 힘이 빠진 풍선처럼 옆 벽에 쓰러지듯 몸을 기대었다.그 순간, 류수미의 날 선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이제 확실해졌죠? 유리는 여기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장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주세요!”그러나 박한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런 태도에 류수미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참다못한 그녀가 박한빈을 향해 다가와 뺨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8화

    박한빈은 현재 도한시에 머물고 있었고 그 무렵 에릭은 막 보석으로 풀려난 참이었다.사실 이번 일은 그에게도 꽤 억울한 일이었다. 애초에 초대받은 손님일 뿐이었고 문제의 물건을 가져온 것도 그가 아니었다.정작 그걸 들고 온 사람은 죽었고 에릭과 함께 있던 사람들만 모조리 곤경에 빠졌다. 하지만 에릭은 신경 쓰지 않았다.어차피 자신의 결백만 입증하면 이곳 사람들은 그에게 어찌할 수 없었다.문제는 박한빈이었다.그의 기본적인 사업들은 여전히 국내에 있었고 만약 이번 사건과 관련된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그에게 미칠 영향은 치명적일 터였다.그래서 직접 금성에서 이곳으로 넘어와 경찰 수사에 협조한 것이다.이곳 경찰이 그의 결백을 증명해 준다면 박한빈을 음해하려던 언론 보도는 모두 허위 사실 유포가 될 테니까.박한빈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는 걸 알면서도 에릭은 진지하게 말했다.“이번 일은 정말 고마워.”박한빈은 그를 쓱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휴대폰을 들고 화면 속의 문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에릭은 한국어를 말하기는 가능했지만 글자는 읽을 줄 몰랐다.그래서 박한빈의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메시지를 봐도 내용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상대방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그제야 에릭은 상황을 눈치챘다.“네 아내야?”침묵하던 박한빈이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을 본 에릭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설마 화난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그냥 나랑 같이 해외로 가는 게 어때? 여기는 제약이 너무 많잖아. 이런 것만 없었어도 너도 굳이 이렇게까지... 야, 내 말 듣고 있긴 해?”박한빈은 에릭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핸드폰을 손에 쥔 채 몇 초 더 기다려 봤지만 성유리의 답장은 끝내 오지 않았다. 그러자 곧바로 휴대폰을 들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에릭이 뒤에서 뭐라고 말했는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걸어가면서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걱정스러운 마음에 박한빈의 미간이 점점 더 잔뜻 찌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7화

    비록 그때의 연정우는 단순한 ‘공범’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친척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오해를 받아야 했다.하지만 정말로 선하고 올곧은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그들을 돕는 선택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이 터졌을 때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무마하고 수습하려 하지 않았을 거고.권력이라는 것은 중독성 강한 독과도 같아서 한 번 손을 대면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그렇지만 피라미드 꼭대기에 설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그 자리에 오르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제일 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 그리고 성유리의 존재로 인해 연정우가 바라보게 된 대상은 박한빈이었다.더군다나 박한빈 때문에 한때 잃어버린 것들이 있었으니 연정우가 그를 증오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심지어 성유리는 나중에 연정우가 자신에게 그렇게 집착한 것도 단순한 감정 때문만이 아니라 박한빈을 이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사업적인 수법과 벌이로는 박한빈을 뛰어넘기 어려웠지만 만약 성유리와 함께한다면?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도 일종의 승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그래서였을까. 박한빈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연정우가 끝까지 자신과 함께 장례식에 가려 했던 이유는 그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박한빈이 원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사람을 결국 자신이 가졌다는걸.성유리는 생각하고 있던 그대로 연정우에게 말했다.그 말투는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듯 지극히 차분한 목소리였다.감정이 배제된 그저 객관적인 관찰자 같은 어조로.“그러니까 네가 피해자라고 착각하지 마.”성유리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어쩌면 넌... 단 한 번도 날 진짜로 좋아한 적이 없을지도 몰라. 네가 좋아했던 건 박한빈을 이긴다는 그 감정이었을 뿐이야.”그 말이 끝나자 연정우가 잡고 있던 손이 천천히 풀렸다.“정말... 너무하네.”그가 힘없이 웃으며 계속 말했다.“어찌 됐든 우리는 함께했던 사이였어. 심지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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