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25화

Author: 송진
박한빈은 계속 성유리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추궁하기 시작했다.

성유리는 그에게 떠밀리듯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등 뒤로 발코니의 유리문이 닿고 나서야 더는 물러날 곳이 없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이 너무 많으신 거 아니에요?”

성유리가 계속 말했다.

“제가 굳이 말하지 않은 건 그 일이 저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던 박한빈이 뚝 멈췄다.

성유리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건 박한빈 씨와 안희연 씨 사이의 문제예요. 제가 관여하거나 평가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박한빈 씨 주변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당신 곁에 있는지는 저와 전혀 상관없고요.”

그녀는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비켜주실래요?”

성유리의 말이 끝나자 박한빈의 얼굴에 띠고 있던 모든 표정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박한빈은 성유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 얼굴 어딘가에서 감정의 틈이나 흔적을 찾아내려는 듯 말이다.

그러나 성유리에게서 보이는 표정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유리는 여전히 담담하게 박한빈과 두 눈을 마주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박한빈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성유리는 박한빈이 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돌려 그를 지나쳐 나가려 했다.

그 순간, 박한빈이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

“내가 가도 된다고 말했나?”

“이 손 놔요.”

성유리의 목소리는 더 이상 차분하지 않았고 어딘가 지친 듯 낮고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그러나 박한빈은 피식 웃으며 계속 말했다.

“내가 왜 놔야 하지? 아이 수술 끝났으니 이제 나랑은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상관없다면 왜 여기 살고 있는데?”

그 말에 성유리는 잠시 멍해졌지만 금세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면 제가 죄송해요. 박 대표님.”

그러자 박한빈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저와 하늘이가 여기 머무는 건 박한빈 씨 어머니의 부탁 때문이에요.”

성유리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하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26화

    박한빈은 꿈속에 나타난 연정우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번쩍 떴다.꿈 내용이 너무 소름이 끼쳐서일까, 아니면 연정우의 등장에 놀라서였을까는 몰라도 박한빈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눈을 떠서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박한빈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스스로를 다독인 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방에서 나가자마자 박한빈은 하늘이와 딱 마주쳤다.이미 치마까지 갈아입고 머리도 예쁘게 땋은 하늘이는 자신의 물컵을 손에 든 채로 거실 소파에 앉아 성유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인기척이 들리자 아이는 바로 뒤를 돌아보았고 박한빈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그리고는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박한빈은 만약 예전 같았으면 그런 하늘이를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달랐다.조금 망설이던 그는 하늘이한테 천천히 다가가며 먼저 말을 걸었다.“지금... 나가려는 거야?”어린아이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박한빈은 지금 아무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해도 말투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그렇기에 그가 한 질문은 마치 경찰이 죄인을 조사하는 것처럼 들렸다.하늘이는 그런 박한빈을 한동안 가만히 쳐다보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했다.“네.”“어디 가는데?”박한빈이 또 물었다.“저도 몰라요.”아이의 대답에 어딘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차린 박한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그가 무슨 물음을 더 물어보려고 입을 움찔거리는 그때, 성유리가 방 밖으로 나왔다.그녀는 연한 색의 티셔츠와 하얀색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전과 달리 머리는 한껏 밑으로 묶어져 있었고 화장도 연하게 했다.최근 많이 야윈 성유리는 지금 벨트를 매고 입음에도 허리는 너무 얇아 살짝 밀면 부러질 것 같았다.박한빈은 성유리를 멍하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어디 가?”성유리는 먼저 하늘이를 자신의 뒤에 세워두고는 대답했다.“아이랑 같이 밖에 가서 놀아주려고요.”“어디 가서 놀아줄 건데?”박한빈의 계속되는 물음에 성유리는 인상을 썼지만 멈칫하다 결국 순순히 대답을 이어갔다.“놀이공원이요. 근데 저희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27화

    하늘이는 박한빈을 힐끔 쳐다보다 다시 성유리를 쳐다보기를 반복했다.“회전목마.”그러던 아이는 결국 박한빈의 질문에 대답해 줬다.“회전목마만 좋아해? 후룸라이드나 바이킹은 놀아봤어? 롤러코스터는? 놀이공원에는 밤이면 공연도 하고 퍼레이드도 하는데 본 적 있어? 하늘이는 공주들이나 다른 만화 캐릭터랑 같이 사진 찍고 싶지 않아?”놀이공원에 관한 프로젝트 또한 박한빈은 해본 적이 있다. 그렇기에 한 번도 직접 놀이공원으로 향한 적은 없어도 각종 놀이기구나 시설, 공연 등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신바 좋아한다고 했지?”박한빈은 문득 하늘이가 늘 가지고 다니던 사자 인형이 떠올랐다.“거기 있는 무대에는 아마 신바도 있을 거야. 네가 원한다면 난 너를 데리고 그곳으로 갈 수도 있고.”비록 성유리는 지금 박한빈의 말이 내키지 않았지만 하늘이는 달콤한 그의 유혹에 서서히 흔들리고 있었다.아이의 친엄마인 성유리는 당연하게도 하늘이가 지금 박한빈의 말에 많이 흔들리고 또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특히 공연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난 하늘이의 눈은 전보다 더 반짝였다.필경 전에 몇 번 놀이공원으로 향했을 때, 시간이 안 맞아 한 번도 무대 위에서 하는 퍼레이드나 공연을 아이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그건 하늘이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장면 중 하나였다. 게다가 박한빈이 말한 놀이기구들 또한 아이는 타보지 못했었다.왜냐하면 성유리가 그런 기구들을 타기를 즐기지 않기에 하늘이도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매번 포기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놀고 싶으면 내가 데리고 가줄게. 공연 완전 재밌거든? 아마 넌 본 적이 없을 거야.”하늘이가 망설이는 것을 눈치챈 박한빈은 계속해서 “미끼”를 던졌다.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쳐다봤고 그녀는 아이의 눈빛을 보고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솔직히 말하면 성유리는 내심 박한빈과 하늘이가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그녀는 부녀 사이가 엄청 가까워지지는 못해도 적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1화

    방 안의 온기가 완전히 가신 것은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샤워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고, 성유리는 몇 분간 누워 있다가 겨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짚으며 바닥에 흩어진 옷을 주우려 했다.박한빈은 오늘따라 유난히 거칠었다. 그래서인지 성유리는 한참 동안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몇 번이나 잠옷 단추를 끼우고 옷매무시를 정리하려 했지만 잘 안되었다.곧이어 박한빈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그는 키가 훤칠한 데다가 이목구비까지 뚜렷해서 누가 봐도 매력적인 남자였다.방금 샤워를 마친 박한빈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왔다. 아직 마르지 않은 물방울이 그의 복근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성유리가 아직도 방에 있는 것을 발견한 박한빈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성유리는 박한빈의 눈을 피하며 여전히 단추를 잠그려 애쓰고 있었다.“내일이 바로 유정이가 퇴원하는 날이야.”박한빈이 성유리의 곁을 지나며 말했다.“퇴원 절차를 밟아주고 집에 데려와 줘. 어머님께는 한동안 여기에 머물게 할 거라고 말씀드렸어.”성유리는 단추를 만지다가 멈칫했다. 그러고 나서 뒤돌아 박한빈을 바라보았다.지금 성유리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2년째 부부로 지내고 있는 그녀의 남편이자, 금성 지화 그룹의 후계자 박한빈이었다.그리고 방금 그가 말한 성유정은 성유리와 피가 섞이지 않은 동생이었다.다섯 살 때, 성유리는 놀이공원에서 길을 잃었고 그렇게 16년 가까이 실종됐었다. 열여섯이 되어서야 성씨 가문에 돌아왔을 때, 성씨 가문에는 이미 또 다른 딸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바로 성유정이었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동생’이 되었다.아버지는 성유리가 실종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윤청하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보육원에서 비슷한 나이대인 성유정을 입양했었다. 16년이 지나고 성유리가 다시 성씨 집안에 돌아오고 서로를 그리워했던 한 가족이 다시 상봉하게 되었지만, 그 후의 날들은 예상만큼 화기애애하지 않았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2화

    원유진은 성유정의 오랜 친구이자, 재벌가의 딸이었다. 그녀는 성유정과 함께 자라며 박한빈과 성유정의 관계를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두 사람이 잘되기를 바랐던 사람 중 하나였다.하지만 성유리가 박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차지한 현실이었기에 원유진은 성유리에게 결코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성유리가 문 앞에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당황하거나 민망한 기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오히려 성유정이 먼저 말을 돌렸다.“언니, 왔어?”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데리러 왔어. 짐은 다 챙긴 거지?”“다 챙겼어. 이제 출발하면 될 것 같아.”성유정은 평소처럼 순종적인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원유진은 조용히 넘어갈 리 없었다. 그녀는 참지 않고 존댓말까지 해가며 비아냥거렸다.“사모님, 박 대표님은 어디 계신가요? 유정이가 퇴원하는데 설마 안 오셨어요?”“출근했어. 바쁜가 봐...”“정말 바쁜 거 맞아? 아니면 누군가가 바가지를 긁어대서 오고 싶어도 못 온 건 아닐지 모르겠네.”원유진의 말이 끝나자, 성유정이 나지막하게 말했다.“유진아, 그만해.”그러나 원유진은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뭘 그만해? 듣고 양심에 찔리기라도 했을까 봐?”성유리는 원유진을 가볍게 무시하고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에서 박한빈의 번호를 찾아 원유진에게 내밀었다.“뭐 하는 거야?”성유리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물어봐.”“야! 너...”원유진이 화를 내려고 하자, 성유정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언니랑 싸우지 마.”원유진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넌 정말 착한 거니? 아니면 바보인 거니? 성유리는 네 것을 탐내고 채간 사람이야!”성유리는 원유진의 말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성유정의 짐을 들어 앞장서서 병실에서 나갔다.차에 타자마자 윤청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리야, 유정이 데리러 갔어?”친딸과의 통화였지만 윤청하의 목소리와 말투는 어색했다.“네.”“유정이는 좀 어때? 의사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3화

    저녁 7시가 되자마자, 박한빈이 집으로 돌아왔다.성유정은 거실에 있다가 박한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오빠, 이제 퇴근한 거야?”박한빈은 그녀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성유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의 외투를 받아들이고 조용히 말했다.“저녁 식사 준비됐어.”식사 중에 성유정은 먼저 조심스럽게 성유리를 한번 쳐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오빠, 내가 여기서 지내는 게 언니랑 오빠를 불편하게 하는 거라면... 사실 엄마한테도 혼자 있을 수 있다고 얘기했었거든... 그런데도 엄마가 걱정된다고...”박한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편하게 지내면 돼.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정말? 여기서 지내는 게 민폐가 되는 건 아니겠지?”“절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유정 씨가 여기 계시면 저희도 좋아요.”숙자 아주머니가 식탁에 음식을 올리며 말했다.“오랜만에 집이 북적여서 정말 좋네요!”그 말을 들은 성유리는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잠시 멈췄다.숙자 아주머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성유리는 조용하고 내성적이라 성유정처럼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에는 서툴렀다.숙자 아주머니뿐만 아니라, 성유리는 박한빈이 집에서 오늘처럼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자신이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달은 성유리는 서둘러 밥을 마저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난 먼저 올라가 볼게. 천천히 식사해.”“언니, 이거밖에 안 먹어?”성유정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내가 같이 올라가 줄까?”“괜찮아.”성유리는 성유정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며 말했다.“천천히 먹어. 나는 괜찮아.”그 말만을 남기고 성유리는 식탁에서 멀어졌다. 다이닝룸을 벗어나기 전, 성유정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오빠, 언니... 화난 것 같지 않아? 내가 와서 두 사람을 방해한 거야?”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서운함과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성유리는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이 없었다. 박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4화

    성유리는 순간 바짝 긴장했다. 그녀는 눈을 뜨고 팔에 힘을 주어 박한빈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박한빈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더 세게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행동은 여전히 거칠고 이기적이었다.성유리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밖에 있는 성유정을 떠올리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샤워기의 물소리 때문인지 문밖에 있던 성유정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계속 큰 소리로 말했다.“오빠? 샤워 중이야?”성유리는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노려보았다.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평소와 달리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평소의 조용하고 무기력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앙큼한 표정이었다.그 모습을 본 박한빈은 후끈 달아올라 다시 그녀를 밀어붙였다. 마치 그 안에 쌓인 감정을 풀어내듯,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두 사람의 몸은 완벽하게 맞물렸고 성유리는 절정에 달아올라 숨이 멎을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문밖에서 성유정은 여전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 성유리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박한빈이 다시 그녀를 벽 쪽에 밀어붙였을 때, 성유리는 참지 못하고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그러자 문밖에서 들리던 성유정의 목소리도 잠잠해졌다. 그제야 성유리는 상황을 깨닫고 손을 꽉 쥐었다.바로 그때, 박한빈이 그녀를 들어 올렸고 그의 어깨가 성유리의 입술 가까이 다가왔다. 성유리는 망설임 없이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 마음속에 억울함과 원망이 가득했지만, 있는 힘껏 물지는 못하고 가볍게 입을 대었다가 떼었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들어 박한빈을 바라보자, 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그 순간, 박한빈은 그녀의 턱을 잡고 다시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그렇게 밤은 빠르게 지나갔다. 성유리는 자신이 어떻게 방으로 돌아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침대에 쓰러지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다음 날 아침, 숙자 아주머니가 그녀를 깨우며 말했다.“오늘은 본가에 가는 날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화

    성유정은 박한빈과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사이였다. 그래서 박씨 가문의 본가에 대해선 성유리처럼 어색해하거나 낯설어하지 않았다.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활짝 웃으며 김난희에게 다가갔다.“할머니!”“아이고! 우리 유정이가 왔구나!”김난희는 매우 기뻐하며 성유정을 반겼다.“얼굴은 왜 또 야위었어?”“아니에요...”성유정은 웃으며 말했다.“이것 좀 보세요. 할머니 드시라고 제가 게살 완자를 만들어 왔어요.”“유정이는 어쩜 이렇게 착해? 정말 마음이 예쁘구나!”두 사람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와 손녀처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김난희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그러나 성유리가 다가오자, 김난희의 표정은 조금 굳어졌다.성유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정중하게 인사했다.“할머니.”김난희는 성유리를 보고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성유리는 눈을 돌려 계단 위에 서 있던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어머님...”“아줌마, 잘 지내셨어요...”김서영이 나타나자, 원래 김난희에게 몸을 기대고 있던 성유정은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녀의 눈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비쳤다.“유정 씨도 왔네. 환영해.”김서영은 그녀에게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례하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반가움도 비치지 않았다.김서영은 김난희를 향해 인사했다.“어머님, 오늘 컨디션은 괜찮으세요?”김난희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며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김서영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성유정이 가져온 음식을 슬쩍 본 후 말했다.“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어머님은 요즘 소화가 잘 안되셔서 기름진 음식은 피해야 할 것 같네요.”그렇게 말하고 나서 김서영은 김난희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바로 지시했다.“정식 씨, 이 음식을 주방으로 가져가세요.”김서영은 성유정의 반응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성유정이 주위의 호감을 쉽게 사는 재주가 있었지만, 김서영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김서영은 항상 차가운 모습을 유지했고 사람을 대하는 데도 격식을 차리고 일정한 거리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6화

    박한빈은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본가에 도착했다. 김난희는 박한빈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미소 번진 얼굴로 그를 맞이하며 손을 잡고 안부를 물었다.“얼굴 좀 봐! 또 살이 빠졌네...”김난희는 약간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결혼 전보다 더 말라 보이잖아. 네 아내는 대체 집구석에서 뭐 하는 거야?”그 말은 성유리를 겨냥한 것이었다.성유리가 대답할 틈도 없이, 성유정이 나서서 말했다.“할머니, 언니를 오해하지 마세요. 언니는 정말 바쁜 사람이에요. 곧 새 만화가 출간된다고 하더라고요. 언니도 마음이 아플 정도로 많이 야위었더라고요.”성유정은 성유리를 변호하는 듯 말했지만, 성유리의 귀에는 왠지 모르게 불편하게 들렸다. 그녀의 가시가 돋친 말은 성유리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김난희는 성유정의 말을 듣고 더욱 불만스러워졌다.“만화라니? 또 그 하찮은 것들 하는 거야? 너는 애가 어쩜 그렇게...”김난희가 계속 잔소리하려는 순간, 박한빈이 갑자기 말을 끊었다.“저녁 준비는 다 됐나요?”“한빈아, 너...”김서영이 곧바로 끼어들었다.“어머님, 한빈이는 이제 다 컸으니 자기 관리도 잘 할 거예요.”그 말에 김난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불만들을 삼켰다. 그러고는 성유정을 보며 말했다.“우리 유정이는 착하고 자기 사람도 잘 챙기고... 쟤가 다시 돌아오지만 않았었어도...”김난희도 아차 싶었던지 말끝을 흐렸다. 김서영은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넘겼다.“유리야, 부모님은 아직 안 돌아오셨니?”“네. 아직이요.”“유정 씨가 너희 집에서 오래 머무는 것도 불편할 테니, 이참에 아예 본가에서 머물게 하는 게 어떨까? 유정 씨도 할머니랑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잖아.”김서영의 말이 끝나자, 성유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저는...”그러나 김서영은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계속 말했다.“게다가 내가 요즘 괜찮은 청년 몇 명을 알아봤거든. 편한 시간 알려주면 한번 만나봐도 좋을 것 같아.”“그건 너무 이른

Latest chapter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27화

    하늘이는 박한빈을 힐끔 쳐다보다 다시 성유리를 쳐다보기를 반복했다.“회전목마.”그러던 아이는 결국 박한빈의 질문에 대답해 줬다.“회전목마만 좋아해? 후룸라이드나 바이킹은 놀아봤어? 롤러코스터는? 놀이공원에는 밤이면 공연도 하고 퍼레이드도 하는데 본 적 있어? 하늘이는 공주들이나 다른 만화 캐릭터랑 같이 사진 찍고 싶지 않아?”놀이공원에 관한 프로젝트 또한 박한빈은 해본 적이 있다. 그렇기에 한 번도 직접 놀이공원으로 향한 적은 없어도 각종 놀이기구나 시설, 공연 등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신바 좋아한다고 했지?”박한빈은 문득 하늘이가 늘 가지고 다니던 사자 인형이 떠올랐다.“거기 있는 무대에는 아마 신바도 있을 거야. 네가 원한다면 난 너를 데리고 그곳으로 갈 수도 있고.”비록 성유리는 지금 박한빈의 말이 내키지 않았지만 하늘이는 달콤한 그의 유혹에 서서히 흔들리고 있었다.아이의 친엄마인 성유리는 당연하게도 하늘이가 지금 박한빈의 말에 많이 흔들리고 또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특히 공연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난 하늘이의 눈은 전보다 더 반짝였다.필경 전에 몇 번 놀이공원으로 향했을 때, 시간이 안 맞아 한 번도 무대 위에서 하는 퍼레이드나 공연을 아이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그건 하늘이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장면 중 하나였다. 게다가 박한빈이 말한 놀이기구들 또한 아이는 타보지 못했었다.왜냐하면 성유리가 그런 기구들을 타기를 즐기지 않기에 하늘이도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매번 포기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놀고 싶으면 내가 데리고 가줄게. 공연 완전 재밌거든? 아마 넌 본 적이 없을 거야.”하늘이가 망설이는 것을 눈치챈 박한빈은 계속해서 “미끼”를 던졌다.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쳐다봤고 그녀는 아이의 눈빛을 보고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솔직히 말하면 성유리는 내심 박한빈과 하늘이가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그녀는 부녀 사이가 엄청 가까워지지는 못해도 적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26화

    박한빈은 꿈속에 나타난 연정우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번쩍 떴다.꿈 내용이 너무 소름이 끼쳐서일까, 아니면 연정우의 등장에 놀라서였을까는 몰라도 박한빈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눈을 떠서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박한빈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스스로를 다독인 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방에서 나가자마자 박한빈은 하늘이와 딱 마주쳤다.이미 치마까지 갈아입고 머리도 예쁘게 땋은 하늘이는 자신의 물컵을 손에 든 채로 거실 소파에 앉아 성유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인기척이 들리자 아이는 바로 뒤를 돌아보았고 박한빈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그리고는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박한빈은 만약 예전 같았으면 그런 하늘이를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달랐다.조금 망설이던 그는 하늘이한테 천천히 다가가며 먼저 말을 걸었다.“지금... 나가려는 거야?”어린아이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박한빈은 지금 아무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해도 말투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그렇기에 그가 한 질문은 마치 경찰이 죄인을 조사하는 것처럼 들렸다.하늘이는 그런 박한빈을 한동안 가만히 쳐다보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했다.“네.”“어디 가는데?”박한빈이 또 물었다.“저도 몰라요.”아이의 대답에 어딘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차린 박한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그가 무슨 물음을 더 물어보려고 입을 움찔거리는 그때, 성유리가 방 밖으로 나왔다.그녀는 연한 색의 티셔츠와 하얀색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전과 달리 머리는 한껏 밑으로 묶어져 있었고 화장도 연하게 했다.최근 많이 야윈 성유리는 지금 벨트를 매고 입음에도 허리는 너무 얇아 살짝 밀면 부러질 것 같았다.박한빈은 성유리를 멍하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어디 가?”성유리는 먼저 하늘이를 자신의 뒤에 세워두고는 대답했다.“아이랑 같이 밖에 가서 놀아주려고요.”“어디 가서 놀아줄 건데?”박한빈의 계속되는 물음에 성유리는 인상을 썼지만 멈칫하다 결국 순순히 대답을 이어갔다.“놀이공원이요. 근데 저희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25화

    박한빈은 계속 성유리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추궁하기 시작했다.성유리는 그에게 떠밀리듯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등 뒤로 발코니의 유리문이 닿고 나서야 더는 물러날 곳이 없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생각이 너무 많으신 거 아니에요?”성유리가 계속 말했다.“제가 굳이 말하지 않은 건 그 일이 저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던 박한빈이 뚝 멈췄다.성유리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그건 박한빈 씨와 안희연 씨 사이의 문제예요. 제가 관여하거나 평가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박한빈 씨 주변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당신 곁에 있는지는 저와 전혀 상관없고요.”그녀는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을 이어갔다.“이제 비켜주실래요?”성유리의 말이 끝나자 박한빈의 얼굴에 띠고 있던 모든 표정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박한빈은 성유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 얼굴 어딘가에서 감정의 틈이나 흔적을 찾아내려는 듯 말이다.그러나 성유리에게서 보이는 표정은 아무것도 없었다.성유리는 여전히 담담하게 박한빈과 두 눈을 마주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박한빈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하지만 성유리는 박한빈이 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돌려 그를 지나쳐 나가려 했다.그 순간, 박한빈이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내가 가도 된다고 말했나?”“이 손 놔요.”성유리의 목소리는 더 이상 차분하지 않았고 어딘가 지친 듯 낮고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그러나 박한빈은 피식 웃으며 계속 말했다.“내가 왜 놔야 하지? 아이 수술 끝났으니 이제 나랑은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상관없다면 왜 여기 살고 있는데?”그 말에 성유리는 잠시 멍해졌지만 금세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그런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면 제가 죄송해요. 박 대표님.”그러자 박한빈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저와 하늘이가 여기 머무는 건 박한빈 씨 어머니의 부탁 때문이에요.”성유리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어머니는 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24화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하늘이는 깜짝 놀라 온몸을 성유리 품에 안겼다.아이의 눈은 박한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는 하늘이의 반응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성유리를 응시했다.“나와.”그가 입을 열자 하늘이는 성유리의 손을 꼭 붙잡았다.“엄마. 가지 마.”하늘이가 박한빈을 꺼리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진정으로 박한빈을 두려워하는 것이 느껴졌다.하늘이가 성유리를 꼭 붙잡고 있는 손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성유리는 그런 하늘이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괜찮아. 엄마가 잠깐 일 보고 올게.”“싫어!"하늘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떼를 부렸다.성유리는 문과 아이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박한빈은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그의 굳게 다문 입술과 굳은 표정은 날카롭고 위압적이었다.하늘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성유리의 손을 세게 붙잡았다.결국, 성유리는 옆에 있던 작은 사자 인형을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여기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 금방 올게. 알겠지?”하늘이는 여전히 싫다는 표정을 지었지 문 앞에 서 있는 박한빈을 보며 더 큰 두려움이 생겼는지 마지못해 성유리의 손을 놓았다.“엄마, 빨리 와. 나 무서워.”“알았어. 걱정하지 마.”성유리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박한빈은 성유리가 자신의 쪽으로 다가오자 곧바로 뒤돌아섰다.두 사람은 그렇게 2층 거실의 발코니에 나란히 섰고 박한빈이 먼저 그녀에게 물었다.“오늘 어디 갔었어?”성유리는 이 시간에 박한빈이 굳이 이런 식으로 찾아와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잠시 멍하니 서 있던 성유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나 씨랑 백화점 갔어요. 왜요?” “그다음은? 너 나한테 할 말 없어?”박한빈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그의 시선은 성유리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그제야 성유리는 박한빈이 왜 이러는지 깨달았고 그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물었다.“알게 되셨어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23화

    그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어찌나 빠른지 사하나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휴대폰을 받으려던 순간 손가락이 박한빈의 차 문에 끼일 뻔했다.그러나 박한빈은 사과 한마디 없이 운전기사에게 차를 출발시키라고 지시했고 그대로 떠나버렸다.사하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그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박한빈의 차를 향해 소리쳤다.“박한빈, 너 미쳤어? 감정 조절도 못 하는 미친놈!”“그래! 너 같은 놈이 그런 여자한테 배신당해도 싸지.”박한빈은 사하나의 말을 당연히 듣지 않았다.사실 그녀가 뭐라고 했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차에 올라탄 후, 박한빈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안희연에게 연락하는 것이었다.그러자 안희연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박 대표님.”“오늘 성유리를 만났어?”박한빈은 안희연 앞에서 성유리라는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던 터였다.더군다나 그녀가 금성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모습을 감췄던 터라 성유리라는 이름은 안희연에게 낯설게 들렸다.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박한빈과 관련된 여자를 떠올리며 대상을 짚어낸 후 대답했다.“아뇨. 못 만났는데요.”“오늘 백화점에 갔다며?”“네.”“누구랑 같이 갔지?”안희연은 말이 없었다.그러자 박한빈은 피식 웃음을 짓더니 계속 물었다.“안희연, 우리 계약 관계에 대해서 내가 굳이 다시 설명해 줘야 하나?”“그런 거 아니에요. 박 대표님, 제가 다 설명할게요.”박한빈은 지금 그녀의 변명 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안희연이 급히 말했다.“그래서 그 성유리라는 분이 박 대표님에게 고자질한 건가요? 그렇다면 박 대표님께 아직 미련이 있다는 뜻 아닌가요?”안희연은 박한빈이라는 사람은 잘 모르지만 남자의 심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지난 몇 년간 라이브 방송에서 수많은 남자들을 보아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박한빈의 민감한 포인트를 정확히 짚었다.아니나 다를까, 박한빈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그러자 안희연이 계속 말했다.“박 대표님, 그 여자가 뭐라고 말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22화

    성유리의 대답을 들은 후, 박한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엔젤 월드를 떠났다.그가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곳에 서 있는 사하나와 딱 마주쳤다.성유리와의 관계 때문에 사하나는 박한빈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비록 사하나가 처한 위치에서는 박한빈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사하나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마음이 없다 못해 겉으로 좋은 척, 마음에 드는 척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사하나는 박한빈을 보자마자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는 손까지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박 대표님, 안녕하세요?”박한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그리고는 바로 자신의 차에 오르려고 했다.그러나 사하나가 그를 그냥 보내줄 리 없었다.안희연의 일로 큰 한방을 터뜨리고 싶었던 사하나였지만 생각해 보면 성유리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겉으로 보면 사하나와 박한빈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이였다.그가 어떤 일을 당하든 그것은 다 사하나와 무관했다.그러나 만약 사하나가 일을 크게 만들면 박한빈은 분명 성유리와 연결 지어 생각할 것이고 어쩌면 그녀가 성유리를 통해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었다.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가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박한빈이 차에 타려는 순간, 사하나는 서둘러 그를 따라가며 말을 걸었다.“박 대표님, 제가 들은 소문에 의하면 새 여자 친구가 생기셨다면서요? 팬이 많다는 그 인플루언서 맞죠?”그 말을 들은 박한빈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사하나를 뒤돌아보았다.사하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의문과 함께 묘한 기대감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그녀는 그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하려던 말을 멈추지 않았다.“대표님과 안희연 씨 관계는 요즘 어떠신가요?”“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바로 하세요.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박한빈은 손목시계를 힐끗 보며 대답했고 그의 불쾌함은 행동과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21화

    “근데 이모는 왜 웃는 거야?"“갑자기 재밌는 일이 떠올라서 그래.”“맞아. 나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사하나는 성유리의 말에 따라 멋쩍게 웃어 보이더니 계속 말했다.“가자. 하늘이, 이모가 집에 데려다줄게."“음...”하늘이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아이에게 진짜 이유를 설명해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그래서 아이 또한 더 이상 캐묻지 않았고 사하나는 직접 차를 몰아 그들을 엔젤 월드로 데려다주었다.가는 길 내내 사하나의 기분은 최고조였다. 핸들을 잡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금 당장이라도 박한빈에게 전화를 걸어 호텔에서 불륜을 적발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았다.하지만 그녀는 꾹 참았다.단순히 박한빈 혼자서만 불륜 현장을 적발해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사하나는 이 사실을 모임 사람들에게도 알려 박한빈의 체면이 바닥까지 떨어지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제발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마.”뒷좌석에서 앉아 있던 성유리가 차분히 말했다.그러자 사하나는 멈칫하며 되물었다.“제가 뭘요?”성유리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어쨌든 그건 남의 일이야. 괜히 끼어들지 마.”사하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성유리의 말에 대꾸했다.“그 말이 참 어이없네요. 제가 이 일을 박한빈 씨한테 말하면 그 사람은 저한테 고맙다고 해야 돼요. 제가 아니었으면 평생 속고만 살았을 거잖아요.” “하지만 제가 굳이 먼저 말할 필요는 없죠. 지금 사람들 눈에는 박한빈 씨가 완전 호구로 보일 테니까요. 그게 바로 자업자득 아니겠어요?”성유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한빈이 호구인지 아닌지 그것은 그녀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사하나는 혀를 끌끌 차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진짜 자업자득이죠. 지금 박한빈 씨 주변에 있는 여자들 중에 그 사람 돈이나 지위를 노리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솔직히 이 세상엔 언니 같은 사람은 없을...”말을 이어가던 사하나는 갑자기 뚝 멈췄고 점점 기어들어 가는 목소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20화

    성유리는 사하나의 마지막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사실 유효정의 집안이 몰락한 이유가 누구 때문인지 성유리도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이제 와서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하늘이가 회전목마에서 내려오자 둘은 함께 그곳을 나왔다.아이는 너무 신나게 놀아 얼굴에 땀이 잔뜩 맺혀 있었다.성유리가 하늘이의 땀을 닦아주기 위해 몸을 숙이려는 순간, 옆에 있던 사하나가 갑자기 손을 뻗어 성유리의 팔을 꽉 잡았다.너무 갑작스러운 사하나의 행동에 성유리는 깜짝 놀라는 한편 잡혀있는 팔이 너무 아팠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사하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성유리의 손을 잡은 채 앞쪽을 가리켰다.“언니, 저기 빨리 봐요! 저 사람 누구예요?"사하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었고 직접 손가락으로 가리키지도 않았다.성유리는 대체 사하나가 왜 이러는지 궁금해 그녀의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보았다.현재 그들은 쇼핑몰에 있었고 방학 기간이라 오고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그렇기에 성유리는 사하나가 말한 사람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채지 못했다.사하나는 그런 성유리가 답답한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언니 바로 앞에. 브랜드 매장 들어가려는 여자 말이에요!"성유리는 이날 안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사람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다행히 매장 조명이 밝았고 그 여자의 검은 웨이브 머리가 눈에 띄었기에 뒤늦게 그녀가 누군지 알아챘다.그 여자는 다름 아닌 박한빈의 새 여자 친구, 안희연이었다.“봤어. 근데 그래서?"성유리가 물었다.“언니 진짜 둔하네요. 안희연 씨 옆에 있는 남자는 못 보셨어요?”성유리는 안희연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기 때문에 옆에 있는 남자를 볼 여유는 없었다.안희연과 남자는 이미 매장 안으로 들어갔으니 사하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성유리를 끌고 같은 매장으로 향했다.“우리는 왜 들어가?”성유리는 사하나의 의도를 눈치채 재빨리 물었고 사하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당연히 확인해야죠! 둘이 무슨 관계인지 말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519화

    그로부터 며칠 동안 성유리는 박한빈을 다시 볼 수 없었다.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도 박한빈이 이곳에 자주 오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이상하게 여길 것도 없었으니까.그 안희연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사하나가 성유리에게 알려주었다.“전에 인터넷 방송하던 사람이래요. 지금도 스트리머로 활동 중인 것 같고요.”사하나는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그녀의 눈에 인터넷 방송은 그다지 품격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특히 안염처럼 외모가 괜찮은 여자는 더더욱.사하나는 성유리에게 안희연이 진행했던 방송 영상을 보여주었다.화면 속의 안희연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그게 다예요?"그러자 사하나는 눈을 부릅뜨며 성유리에게 물었다.“아무 의견도 없어요?"“내가 무슨 의견을 말해야 되는데?"성유리는 사하나의 말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음... 예쁘긴 하네.”“그거 다 필터예요! 그리고 얼굴에 화장 얼마나 두껍게 발랐는지 안 보여요?”“그래도 이 업계가 원래 그런 거 아니야?”“그렇긴 해요. 그런데 이번엔 박한빈 씨 취향이 진짜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수준인 여자랑 만날 수 있죠? 눈이 이렇게 낮아졌나?”성유리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냥 둘이 좋으면 된 거지. 네가 왜 이렇게 신경 써?"“그냥 보기 불편해서 그래요.”사하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금세 화제를 돌렸다.“언니는요? 요즘 연정우 씨랑 만난 적 있어요?”“아니."“왜요? 그 사람이 언니한테 연락 안 했어요?”“그런 건 아닌데 그냥 내가 만나고 싶지 않아.”“왜요? 저는 연정우 씨 참 괜찮은 사람 같던데. 두 사람 옛날에 결혼까지 거의 갈 뻔했잖아요. 지금 다시 잘될 기회가 생긴 거면 좋은 거 아닌가요?”성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건 다 지나간 일이야. 지금은 그런 거 생각하고 싶지 않아.”“좋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