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의 이런 생각은 송석석이 그를 잘못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황제는 지금 순방영을 정리할 생각이 없었다. 단지 일이 너무 커지지만 않으면 그는 굳이 이런 작은 일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고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현재 반역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비록 연왕과 회왕이 그의 시선에 들어왔지만 아직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런데 만약 그들을 정리해버리면 연왕이 암암리에 손을 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반역으로 온 가족이 반역자로 취급되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다.또한 그는 더 깊은 계략을 가지고 있었다. 현갑군을 통제할 수 없다면 현갑군이 완전히 썩어버리게 두어 현철위가 그 자리를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송석석은 이 무능한 자들이 순방영을 어지럽히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권력을 쥐면 백성을 학대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순방영을 완전히 폐지하지 않는다면 철저히 정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방영은 나라의 봉급을 받는 악당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황제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사건들이 모두 덮여 있어서 그에게까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캐낸다면 어떨까? 사건을 찾아 어사대에 보내고 조정 회의에서 탄핵을 하면 황제는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그녀는 황제와 맞서려는 게 아니지만 현갑군의 사령관으로서 부하들이 백성을 해치고 현갑군의 명성을 더럽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현갑군은 백성을 보호하는 정예가 아니라 백성을 학대하는 악당으로 전락할 것이다.오진은 곧 명단을 제출했고 송석석도 바로 명단을 확인했다.늦은 밤이 되자, 그녀는 시만자와 홍시를 불러 말했다. “이 몇 사람을 조사하거라.”평사저는 떠날 때 진성에 몇 사람을 남겨 운익각 지부를 열었는데 지부는 망경루에 자리 잡았다. 마침 시만자는 맡은 일이 없어서 운익각 지부를 관리하게 되었고 지금 지부의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우두머리로 모시고 있다.이틀 뒤, 전북망이 형부에서 쫓겨났다.
필명의 부인은 전북망을 좋아하지 않기에 하인에게 대강 술안주 몇 가지를 내오게 하고는 이내 방을 나가버렸다. 심지어 하인들마저도 모두 데리고 나가며 그가 냄새난다는 이유로 시중을 들지 않게 했다. 전북망은 그저 술만 홀짝거릴 뿐 안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필명의 부인이 그를 싫어하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더더욱 우울해졌다."안주도 좀 드십시오.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필명이 물었다.전북망은 술잔을 비우더니 갑자기 술상에 엎드려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우는 것도 아니고 마치 부드러운 베개로 입과 코를 막은 것처럼 답답하게 흐느꼈다.필명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혼자 술과 안주를 즐길 뿐이었다. 전북망은 단지 마음 편히 울 곳을 찾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가 왜 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한참 울던 전북망은 아무도 자신을 위로해 주지 않는 걸 깨닫고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쌓였던 먼지와 때가 눈물에 씻겨 나가자 그의 모습은 더없이 우스웠다.필명은 결국 웃음을 떠트리며 물었다. "필 대인도 내가 우스운 게요?" 전북망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저 웃음거리일 뿐이지."필명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덕을 쌓으려면 절대 이렇게 대답해서는 안 된다. 그가 물었다. "왜 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겁니까?"전북망은 술 두 잔을 단숨에 들이키고 말했다. "돌아간들 어쩌겠소? 가봐야 욕이나 먹고 조롱이나 당할 테지."필명의 입가엔 경련이 일었다. "관직도 포기할 셈입니까? 폐하를 노하게 한다면 장군님의 앞날도 끝나는 겁니다.""어차피 끝난 거나 마찬가지요. 아니, 애초에 나에겐 앞날 같은 건 없었던 걸지도 모르지요. 직위 강등에 3년간의 봉급까지 깎여 집으로 돌아가 폐인처럼 사느니 차라리 밖에서 유랑이나 하는 게 낫겠소. 그러면 더는 폐하의 눈에 거슬리지 않을 테니."필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러지 마시고 열심히 하십시오. 장군님의 능력과
필명이 정신을 차렸을 땐 전북망은 이미 술을 절반 이상 마시고 의식을 잃어버린 뒤였다. 더욱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 무뢰한을 데려온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이렇게 많이 마셔서 죽지 않겠냐는 걱정도 들었다.화가 난 그는 당장이라도 차가운 물통을 가져와 전북망의 머리 위로 쏟아붓고 싶었지만 마치 시체처럼 차가운 전북망의 얼굴을 보니 결국 물을 붓는 것도 망설이게 되었다. 그래도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어서 하인을 시켜 마차를 준비하게 하고 직접 전북망을 집으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마차가 덜컹거리자 전북망은 그 안에서 정신없이 토하기 시작했다. 그의 위장에서 올라오는 썩은 냄새가 바깥까지 진동해 마차가 움직이는 내내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필명은 분노가 폭발한 나머지 마차 안으로 고함을 질렀다. “설마 마차를 배상할 생각이십니까!”사실 이 마차는 그의 부인이 외출할 때 사용하는 유일한 마차라 빌려주는 것을 망설였는데 이렇게 엉망이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필명은 반드시 부인에게 제대로 혼날 것이다.역시 사람은 너무 착하면 안 되고 호기심이 많아서도 안 되었다.곧 마차는 장군부에 도착했고 그는 씩씩거리며 내려와 장군부의 사람을 불렀다.“당장 전 장군을 끌어내거라, 당장!” 전북경과 하인들이 마차 문을 열자마자 끔찍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전북경은 역겨움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동생을 마차에서 끌어내려 하인에게 그를 안으로 모시라고 했다. 전북경은 필명에게 전북망이 왜 이 정도로 취했는지 물었고 필명은 전북망에게 직접 물으라며 자신은 마차를 씻으러 가겠다고 했다.전북경은 하는 수 없이 필명에게 인사를 건넸고 필명은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집에 돌아온 필명은 부인에게 크게 혼났다. “다른 자를 데려오는 건 괜찮다지만 저런 자는 처음부터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 마차가 얼마나 중요한 줄 아십니까? 내일 사부님께 청단(떡)을 보내려면 마차가 꼭 필요한데 이젠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하필이면 은혜도 모르는 사람을 건드리시다뇨!” 사실 필
어서방. 숙청제는 눈살을 찌푸린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전북망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사직이라? 잘 생각했느냐?"전북망은 머리를 조아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신은 폐하의 큰 은혜를 저버렸고 소가의 신임도 저버렸습니다."숙청제는 분노로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너에게 그토록 큰 기대를 걸었는데 너는 그 기대를 저버리고 관직을 사직하려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다."전북망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폐하, 신이 무능하고 나약하여 현철위 부사령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오 대반도 참지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한사코 자기가 죄인이라고 운운한다면 황제가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숙청제는 한층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간 자숙하고 다시 찾아오거라. 물러가라."전북망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몸을 숙이며 답했다. "예!"그가 물러나자마자 숙청제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오 대반, 전북망에게 가서 진정 소 대장군에게 빚진 마음이 있다면 이 시기에 관직을 내놓지 말라고 전해주어라."오 대반은 명을 받고는 전북망을 쫓아가 말했다. "전 대인, 잠시 멈추십시오."전북망은 잠시 멈춰서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 공공, 무슨 일이십니까?"그의 멍한 표정을 보고 오 대반은 등을 곧게 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대인, 이렇게 사직을 한다면 소가의 여러 장군들까지 연루될 것입니다. 전 대인은 어전의 사람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전 대인이 면직당한 줄 알 겁니다. 사직을 하려거든 이 시기를 피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소가에 더 큰 누를 끼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그러자 전북망은 크게 놀랐다. "제가 사직하는 것이 소가와 대체 무슨 상관입니까?"오대반이 말했다. “전 대인이 자책감으로 사직을 한다면 소가의 사람들이 어찌하겠습니까? 그들 또한 죄를 자청하며
시만자는 늘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곤 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돌려 송석석에게 물었다. “황제가 직위를 강등하고 녹봉을 삭감한 것에 불만을 품고 그만두겠다고 한 거 아닌지?”전북망이 그런 생각인지 아닌지 그녀는 몰랐지만 확실했다. 집에서나 사부님이나 기대보다 적게 주면 그녀는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더 발끈하고 나섰다. 송석석의 어두운 안색에 그녀는 즉시 말을 돌렸다. “전북망 말은 그만하자. 전북망 얘기만 나오면 머리가 아프구나. 폐하께서 사직을 불허하셨으니 더 이상 꼴불견을 부리지 못할 것이다.”모두들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리며 청단을 먹었다. 사여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보주는 왕야을 위해 일부분을 남겨두자고 했다.모두가 떠난 후, 시만자가 송석석에게 물었다. “사실 사직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저런 사람이 어떻게 현철위 사령관 자리에 어울리겠어?”송석석이 답했다. “이 시점에서는 성릉관과 관련된 사람들은 조용히 있는 것이 최선이다. 어떤 식으로든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 게 중요하지. 그가 사직하든, 폐하가 그를 해임하든 얘기는 외조부와 외삼촌 쪽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마음먹은 사람이 빌미를 잡아서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일리가 있다.” 시만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허나 대체 어떤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냐?”송석석은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연왕은 줄곧 소가를 성릉관에서 철수시키고 싶어 했다. 녹분성에서 벌어진 일은 서경과 성릉관 모두에 파문을 일으켰으니, 이 일에는 서경과 연왕이 손을 잡고 개입한 게 분명할 것이다. 지금 이방이 첫 번째로 서경에 압송되었고, 외조부에겐 성릉관 총사령관으로서 감독 소홀과 군기 해이의 책임을 물었지. 전북망은 녹분성으로 병력을 이끌고 갔기 때문에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게 되었다. 사건 전체를 보면 외삼촌에게까지 연루되지 않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처분이지만 전북망이 사직을 청하면 연왕은
혜 태비는 아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두 사람의 입맛이 워낙 다를 뿐만 아니라 대화도 몇 마디 나누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태후는 한 달에 몇 번은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나 당부했다. 하인들이 입방아를 찧으며 사여묵과 석석이 불효한다는 소문을 퍼뜨릴까 걱정했기 때문이다.'휴, 사람 사는 게 원래 다 이런 거지. 항상 여기저기서 얽매여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으니 말이야.'고 씨 유모는 늘 혜 태비를 향해 복을 누리면서도 그 가치를 몰라본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에 진정으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나날을 보내더라도 그 나름의 걱정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 해도 그 부유함에 따른 고민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아무튼 그녀는 기쁠 때는 마음껏 기뻐하고, 고민이 있을 때는 누구도 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고민하는 것도 자신의 권리라고 여기는 사람이었다.사여묵과 송석석은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기에 보통 시만자를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시만자는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데 능숙하여 지루하고 딱딱한 식사 시간을 흥미롭고 생기 있게 바꿔 놓곤 했다.한편, 전북망은 결국 사직하지 않았다. 며칠 후 관복을 다시 입고 풀이 죽은 채 복직했다.숙청제는 그를 다시 불러들여 얼굴에서 조금이라도 투지를 읽으려 했으나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북망은 마치 집을 잃은 개처럼 온몸에서 나약함과 패배감만 뿜어냈다.숙청제는 속으로 크게 화가 치밀었다. 전북망을 순수한 신하로 만들어 잘 훈련시키면 훗날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적을 토벌하고 전장을 누빈 경험이 있는 무장이자, 몰락한 가문의 출신으로 황제의 은혜에 깊이 감사할 줄 아는 전북망은 최소한 충성심 하나만큼은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하지만 숙청제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충성심이 중요한 건 맞지만 능력이 없는 충성심은 쓸모없다는 사실을 말이다.숙청제는 전북망이 조금 더 분발하여
장기문이 무술을 배우기 위해 사부를 모신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무술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승진을 위해서였다.하지만 그는 충분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3년 안에 안 되면 5년을 기다리고, 5년 안에 안 되면 10년을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경험이 쌓이니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 성공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물론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3년 안에는 부위장에, 5년 안에는 위장에 오르는 것이었다.그러나 황제가 그를 소환해 현철위 부사령관 직책을 내렸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어전에서 한번도 실례를 범한 적이 없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옆에 있던 오월이 그를 발로 툭 차며 웃으며 나무랐다.“멍하니 뭐하느냐? 어서 은혜에 감사드리지 않고!”장기문은 떨리는 손으로 땅을 짚은 후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미천한 신하를 발탁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신은 반드시 충성을 다하고 몸 바쳐 헌신하겠습니다.”숙청제는 이런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월, 그를 데리고 가서 네 형제들에게 술 한잔 얻어먹으라고 해라.”그날 승진된 세 사람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장기문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고 척귀는 약간 실망스러워했으며, 노아금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과거 정탐조로 활동했던 만큼 비밀을 지키는 데 익숙해 감정을 겉으로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모두 마음속에 감췄다.장기문은 당연히 동료들에게 술을 대접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걸음걸이조차 가벼워, 구름 위를 걷는 듯했고, 이 모든 일이 믿기지 않은 모습이었다.그는 원래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하늘에서 떡이 떨어져 그의 머리에 딱 맞아떨어진 격이었다. 그는 너무나도 얼떨떨해 정신을 차리고 오월에게 물었다.“부사령관직은 전 대감께서 맡고 계신 거 아닙니까? 어째서 저를 이렇게 승진시키신 겁니까?”오월
다음 날, 장기문은 부모님과 처자식을 데리고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 시만자를 찾아갔다. 당연히 많은 예물도 정성껏 준비했다.시만자는 전날 밤 석석이 미리 전해주어 장기문의 승진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관직이 오른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처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하지만 이렇게 장기문이 모든 가족을 데리고 와서 감사 인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모두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차 있었고 마치 금덩이를 발견한 듯 활짝 웃고 있었다. 시만자는 그들의 기쁨에 전염되듯 승진의 의미를 실감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전에서 일하는 사람이 승진하려면 구조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황제를 구하는 대단한 공을 세우지 않는 이상, 몇 년이고 묵묵히 버텨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문 가족이 그녀에게 보여준 깊은 감사는 시만자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그가 승진하는 데 있어서 그녀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그저 그가 스스로 노력해 얻어낸 결과였다.장기문은 부모님과 처자식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낸 뒤 자신은 황실에 남았다. 그는 미리 이야기를 나누어 나중에 혹시 있을지 모를 오해와 갈등을 예방하고 싶었다.모든 설명을 마친 뒤, 그가 말했다.“물론 이는 제 추측일 뿐입니다. 황제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저희가 감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제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양심에 어긋나는 지름길이라면 결코 가지 않을 것입니다. 사부님과 송 사백께서 이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송석석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뭔가 말하려다 시만자가 장기문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말없이 넘겼다. ‘그래, 사백이면 어때.’ 황제가 장기문을 갑자기 발탁한 것은 전북망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신호로 보였다. 전북망은 황제의 기대를 여러 번 저버린 셈이다. 황제가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그를 감싸줬지만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모두 입맛이 그다지 좋지 않기 마련인지라, 많은 음식들이 한 입 먹고 나면 다시 치워지곤 한다.하지만 북당의 사람들은 정말 음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요리가 나와도 모두 다 먹어버렸으며, 가득 채운 술잔도 순식간에 비웠다. 그들을 시중드는 궁인들도 꽤 힘들었을 것이었다.시만자는 그들이 춘만루에서 먹었던 그 한 끼를 떠올렸다. 그때도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비워졌었다.그녀는 송석석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 소리 외에는 아무 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그러나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시만자는 북당 사람들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 협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고, 송석석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중재자로 온 것인지, 아니면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만약 중재자라면 협상 또한 오래 걸리지 않고 조약을 체결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이었다.하지만 만약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면 협상은 공방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북당이 그들의 방패가 된다면 상국이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 없으니 말이다.이덕회와 홍려사경 등 상국의 사절단들은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의 그 기쁨을 잃은 대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눈앞의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듯했지만,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먹었다.이 궁중 연회는 그들이 참석했던 연회 중 가장 이상한 연회였을 것이다. 마치 폭풍이 다가오는 듯한 무서운 고요함이 느껴졌다.궁중에서 준비한 요리는 총 32가지였다. 그러나 각 요리의 양은 매우 적었으며, 궁인들은 음식을 하나씩 들고 들어와서는 다시 하나씩 치워갔다.누군가 술잔을 들고 싶어했지만, 역시 원신제와 마찬가지로 한 번 쓱 훑어본 후, 술잔을 비우고 다시 내려놓고는 식사를 계속했다.마침내 32가지 요리가 모두 올라갔
다음날, 궁중 연회는 신시에 시작되었고, 여전히 수란키가 직접 그들을 맞아 궁으로 안내해주었다.예상했던 대로 즉위식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이번 연회의 주요 목적은 국경선의 협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궁에 들어간 후에도 다른 나라의 사절단을 보지 못했다.궁 안은 황실의 측근과 문무 백관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국의 사절단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친근한 분위기도 없었다.이런 자리에서는 역관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대화의 주제가 그리 넓지 않아, 서로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눌 뿐이었다.다른 나라의 사절단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입석할 때 원신제가 상국의 사절단에게 말했다."오늘 북당에서 귀빈들이 오십니다. 곧 도착할 것인데, 여러분이 그들과 바로 친해질 것이라 믿습니다."이덕회는 즉시 흥분하며 말했다. "북당의 귀빈이라 하셨습니까? 어떤 분이 오시는지요?"그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왕이장이 가져온 임양운의 육안총과 포차는 모두 북당에서 개량된 것이었고, 임양운 선생이 북당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상국의 병부상서로서 그는 정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북당은 상국이 항상 배우고자 했던 본보기였다. 그들의 첨단 무기와 치국책은 상국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물론 국가의 상황이 다르기에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을 테지만, 대화를 깊이 나누면 분명히 얻을 것이 있을 것이었다.원신제는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도착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연회는 지루하고 피곤했지만, 북당의 귀빈이 온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모두가 기대하고 있을 때, 한 외침이 들렸다.“북당 안풍친왕과 왕비께서 도착하셨습니다!"이덕회는 놀라서 입을 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송석석도 사부로부터 안풍친왕의 호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부는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했다. 생각치도 못하게 오늘 그를 만날 수 있으니 그녀도 말할 수 없이 기뻤다.반면, 만두와 몽동이 그들은 비교적 담담했
원신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씁쓸한 게 한 가지 더 있네. 지금까지 짐은 장공주의 신분으로 여인에게도 과거 시험을 볼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높이 외쳤지. 하지만 황제가 된 지금, 어쩔 수 없이 각 세력들의 이익을 고려해줘야 하고 그자들이 짐에 대한 적대심과 경계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네. 짐은 이제 고려한 일이 더 많아졌어. 가끔은 속에 천불이 나서 반대파 세력들의 가슴에 칼을 꽂고 싶기도 하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송석석이 대꾸했다.“사실 한 나라의 황제나 대신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결국 최종 목적은 같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도 그렇듯 다들 나라의 안정과 백성들의 평안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나라에 영원히 전란이 일어나지 않고 창성해야 폐하께서 원하시는 개혁을 진행하셨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폐하, 현재 가장 중요한 건 폐하의 자리부터 굳건히 지키시는 겁니다.”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원신제는 송석석의 말뜻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현재까지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고 각 세력들의 제지도 심하기에 이 국면을 해결하는 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다.황제의 자리도 흔들리고 있는 지금, 원신제가 개혁까지 고집하려는 건 더욱 위험한 일이었기에, 미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시만자 또한 송석석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사실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데에 방법이 한 가지밖에 없는 건 아닙니다. 강경하게 상대방과 맞서 싸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가장 현명하지 못한 하책입니다. 한 사람의 성격도 바꾸기 쉽지 않은데 천 년이나 넘게 지속된 규정을 바꾸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폐하께서 관념의 씨앗을 심으시면 언젠가 누군가가 폐하께서 남긴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잠시 머뭇거리던 시만자는 이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저와 석석도 매산에서 무술을 공부할 때 그랬습니다. 다들 저희를 비웃고 하찮게 여겼지만 저희는 결국 실력으로 그자들을 한 명씩 쓰러트렸습니다. 구호만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실력이
서경의 황궁은 금빛으로 반짝였으며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어둠이 깃든 고요한 밤에는 기 장엄함이 더욱 돋보였다.첫 번째 궁문을 들어서고 나서도 마차는 궁 안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다.궁 안 곳곳에는 커다란 나무들 위에는 등불이 잔뜩 걸려 있어 대낮처럼 밝았으며, 누군가가 몰래 나무 위에 숨어있는다고 해도 너무 밝아서 바로 들킬 정도였다.수란키는 앞장서서 걷다가 한 궁전 밖에 도착했는데, 궁녀 두 명이 다가와 수란키와 서경 언어로 몇 마디 나누다가 고개를 돌려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수란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송 대감님, 만자 낭자, 폐하께서 두 분에게 궁전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두 궁녀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휘황찬란한 궁전 내부에는 커다란 조각 기둥이 양측에 세워져 있었으며 그 모습은 압박감이 넘쳤다.원신제는 용상에 앉아 환한 미소로 두 사람을 반겼지만 얼굴에는 피로함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인사를 올렸고 원신제는 그들에게 편하게 앉으라고 했다.그리고는 송석석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짐은 송 대감이 사절단과 함께 이곳으로 온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계속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너무 반갑네.”송석석은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대답했다.“폐하께서 황위에 오르셨다는 소식을 듣고 소인도 너무 기뻤습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신 걸 감축드립니다.”송석석은 원신제를 힐끔 쳐다보았다. 원신제에게서 냉옥 장공주의 모습이 보였고 예전과 크게 변한 건 없었으며 여전히 피로해 보이고 여전히 진중하고 엄숙했다.냉옥 장공주에게 있어서 황제의 역할이든 실권을 손에 쥔 장공주 역할이든 똑같이 신경 쓸 일이 많을 것이다.“원하는 바를 이루느라 많이 힘들었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일처리는 훨씬 쉬워졌네.”원신제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조금 뒤, 궁녀들이 서경 특색이 돋보이는 다과들을 내왔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조금 전에 저녁 식사를 했기에 배가 고프지
서경 수도에 도착했을 땐 8월 13일이었기에, 송석석 일행이 떠난 지 한 달은 족히 넘은 상황이었다. 점심이 되자, 햇빛이 따스하게 비추어졌다.진왕은 마차 안에 몸을 웅크려 누운 채 입성에 진입했다. 하지만 마지막 자객들은 머릿수도 많고 기세도 등등해, 서경 지대에 들어서고 나서도 송석석 일행은 총 일곱 번이나 습격을 당했다. 현갑군은 대부분 부상을 당했고 시만자마저 어깨가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신경까지 다치지는 않았다.진왕이 이렇게까지 크게 논란 건, 자객에게 습격을 당할 당시, 그는 변소 안에 있었다.일을 마치고 변소를 나선 순간, 갑자기 나타난 자객이 검으로 진왕의 가슴을 베었고 그 검을 진왕의 가슴에 꽂으려던 순간, 송석석이 제때에 나타나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한 발 빠르게 자객의 가슴에 꽂았다.하지만, 이내 자객의 머리채를 뒤로 확 잡아당긴 덕분에 진왕은 무사할 수 있었다.그는 가슴팍이 조금 베인 게 전부였지만 큰 중상을 입은 것 마냥 밤새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수도에 도착하자 수란키가 관원들을 데리고 성문 앞에 서서 진왕을 반겼다. 수란키는 이제 서경의 승상이 되었다.한눈에 송석석을 알아본 수란키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송 장군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여전히 기품이 넘치시네요.”송석석은 말에서 내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인사를 하며 상대방을 힐끗 살폈다. 솔직히 조금 전에 수란키를 알아보지 못했다.전보다 훨씬 늙어 보였고 백발인 데다가 수염도 허옇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고 남강 전장에서 봤을 때보다 되레 활기가 넘쳐 보이기까지 했다.남강 전장에서 봤던 수란키는 온몸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위엄이 넘치고 엄숙한 그는 삶의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저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승상께서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고.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송석석이 웃으면서 말하자 수란키가 호탕하게 웃었다.“너
한편, 크게 놀란 진왕은 태의를 불러 심신을 안정할 수 있는 약을 처방받았다.송석석이 찾아갔을 때, 진왕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덜덜 떨리는 입술로 송석석에게 자객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송석석이 진왕에게 자객이 도망쳤다고 얘기하고 나서야 그는 조금 안정을 찾은 듯했다.사실 진왕을 보필하는 사람들이 자객이 도망쳤다고 진작 얘기했지만 진왕은 믿지 않았다. 이제 송석석에게서 듣고 나니 그제야 안심이 된 것이다.송석석은 진왕에게 몸조리 잘 하라고 당부한 뒤 방을 나섰다.이와 동시에, 이덕회는 나머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병부 상서인 이덕회는 지금까지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전부 겪어 보기도 했고 또한 왕비와 현갑군을 믿었기에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한편, 매산 출신 몇 명은 한데 모여 전에 성릉관에서 만났던 검은 복장 차림의 무리들을 의심하고 있었다.어쩌면 그자들이 바로 자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이다.이 의심을 가장 먼저 제기한 건 바로 시만자였다. 그는 그 무리들이 갑자기 사라진 게 너무 수상했고 비밀 경로를 통해 계획적으로 도망친 거라고 확신했다.더군다나 조금 전 자객들도 전부 검은색 옷차림이었기에, 비록 머릿수가 조금 차이 나긴 했지만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 일부 사람들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성릉관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동했던 건 아마 우리한테 손을 쓰려고 그랬을 가능성이 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성릉관에서 우리를 죽이면 쉽게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아서 일단 포기한 거야.”시만자는 분석할수록 자신의 의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돌려 송석석에게 물었다.“내 말이 맞는 것 같지 않아?”송석석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자들은 아니야. 정확히 얘기하자면 조금 전 자객들은 그자들보다 무술 실력이 확연히 떨어져. 그자들은 성릉관에서도 자유롭게 나타났다가 사라졌어. 그렇게 보면 네 의심이 성립되지 않다는 거지. 그자들은 성릉관에
이날 아침, 송석석 일행은 서경으로 출발했다.송석석은 딱히 아쉬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나중에 돌아올 때 성릉관을 또 지나야 했기에, 이후에도 외조부 가족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성릉관을 떠나자마자, 평탄한 길이 사라졌다. 여기저기가 다 울퉁불퉁했고 일부러 인위적으로 파괴한 곳도 있었기에 마차가 지나가기엔 무리가 있었다.하지만 진왕은 절대 다시 말을 타려고 하지 않았다. 며칠동안 안정을 취했지만 다리 안쪽의 쓸림 상태가 아직 심했기에 걸을 땐 괜찮아도 말에 타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때문에 성릉관에서 공을 세우고 육아당까지 설립한 진왕은 까탈스럽게 마차를 고집했고 마차가 도무지 지나갈 수 없는 곳은 현갑군이 말에서 내려 마차를 밀면서 힘겹게 전진했다.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건, 현재 양국으로 통하는 길이 개방되었기에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산길밖에 없었다면 고귀한 진왕의 엉덩이가 엄청나게 고생했을 것이다.그렇게 겨우 서경 지대에 진입하여 루벌로 향하자, 서경의 관원과 병사들이 그들을 맞이하며 가는 길까지 호송해주었다.송석석 일행들 중에서 통역관을 제외하고는 서경에 와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똑 같은 변경 도시라고 해도, 루벌은 성릉관보다 훨씬 낙후했다. 여기저기에는 망가지고 훼손된 집채가 많았으며 행색이 누추한 거지나 근심이 많아 보이는 백성들도 많았다.송석석은 이 광경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두 나라가 전쟁을 치른 건 사실이지만 이곳까지 침투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전에 전북망과 이방이 이곳 마을을 공격했다고 해도 공격당한 그 마을만 피해를 받아야지 루벌 전체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것은 말이 안 되었다.루벌의 한 역관에 도착하고 나서야 송석석은 호송하고 있던 관원한테서 그 이유를 듣게 되었다. 수란석이 성릉관에서 전쟁을 일으켰을 때, 후방 공급이 부족한 탓에 병사들이 루벌로 돌아와 약탈을 진행한 것이었다.수란석 당시의 상황이 빅토르와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그때 당시 전쟁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지 않
소 팔야는 곧바로 송석석이 말한대로 지시를 내렸고 이 지시를 실행에 옮긴 사람은 바로 전북망이었다. 그는 서둘러 부하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수색하기 시작했다.송석석이 성릉관에 왔다는 사실은 전북망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맞이하던 그날, 그는 멀리 서서 지켜볼 뿐,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하지만 거리가 너무 먼 탓에 전북망은 송석석을 정확히 보지도 못했고 그저 그림자만 볼 수 있었다.전북망은 자신이 지금 참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느껴지기도 했다. 송석석은 이제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고 진성의 일과 관련된 사람은 이제 멀리해야했기 때문이다. 한편, 시절단은 성릉관에서 잠시 쉬는 사이에도 담판의 기교에 대해 상의했으며 상황 모의도 여러 번 해보았다.이번 담판이 저번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절대적으로 쉬운 건 아니었다. 이는 여제가 계속 마음에 두고 있던 일이기에 쉽게 타협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씨 가문에서도 상대방이 몰래 사람을 보내 사절단의 책략을 몰래 엿듣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사절단의 책략을 알게 된다면 상대방은 그에 맞는 대책을 미리 준비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국은 열세에 처하게 된다.때문에 소 팔야는 전북망에게 반드시 철저하게 관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몰래 침입한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찾아내야 하고 이와 동시에 사절단 곁에서 시중을 드는 하인들 사이에도 첩자가 있을 수 있으니 확실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이틀 동안 수색했지만 전북망은 수확이 없었다. 그리고 수부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위장술을 쓰거나 몰래 정보를 외부에 빼돌리는 사람도 없었다.전북망이 유일하게 알아낸 정보는 검은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춘만루에서 밥을 한 번 먹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이 춘만루를 떠난 뒤, 이들을 목격했다는 가게 주인도 있었지만 어디에 묵었고 어디로 갔는지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심지어 전부 검은 복장을 차려 입었는데 이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춘만루는 오늘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가게가 그리 크지 않기도 했고, 다른 손님들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금 전 낭자가 데리고 오겠다고 했던 검은 복장을 입은 남자들까지 가게 안 나머지 자리를 전부 차지했다.송석석과 시만자 그리고 남자까지 앉을 자리가 없었기에 가게 주인은 급하게 작은 탁자 하나를 펴서 가게 앞에 자리를 마련했다.그렇게 세 사람은 일행들과 떨어져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이때, 남자가 미안한 목소리로 송석석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저자들은 전부 제 일행입니다. 저와 똑같이 이틀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거든요. 혹시 불편하시다면 저자들에게 가게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겠습니다. 나중에 저자들에게 호빵이나 하나씩 나눠줘도 충분합니다.”멈칫하던 시만자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편하게 드시고 싶은 거 시키시면 됩니다.”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낭자는 정말 얼굴도 예쁘시고 마음도 선하시군요. 그럼 저희 편하게 시키겠습니다.”“그… 그래요.”고개를 끄덕이던 시만자는 가게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자들의 옷차림은 꽤 눈에 띄었으며 옷소매에 수놓은 글씨들이 보이기도 했다.하지만 옷이 구겨지고 먼지도 많이 묻었기에 수놓은 글씨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그렇게 한참동안 쳐다본 시만자는 그제야 이자들의 옷에 수놓은 글씨들이 각자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중에서 흑영위나 전광위 등 글씨들이 보이기도 했다.이자들은 예의가 없거나 우악스럽지는 않았다. 각자 자리를 찾은 뒤 자신들에게 밥을 사준 시만자와 송석석에게 일제히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머리가 하얬지만 얼굴은 불그스름한 게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그 중에서 생김새가 매우 추악한 사람들도 몇 명 있었으며 쳐다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송석석과 시만자 그리고 몽동이는 서로를 힐끔 쳐다보다가 왠지 이 식사자리가 자신들의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게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송석석은 식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