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씨 가문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 장공주가 또 여러 번 재촉하자 고후부인이 직접 방씨 가문에 찾아갔다.방씨 가문에 가서 물어보니 방시원이 수주에 예전 치석 정찰대의 왕오를 찾으러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오에게 사고가 생겨서 방시원이 제씨 가문의 양아들 제방과 급히 갔다고 했다.오씨가 미안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작에 결정했어야 하는 일인데… 시원이가 굳이 전우를 만나고 와서야 결정한다고 하니.. 시원이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전 사씨 아가씨가 마음에 쏙 든답니다. 아시다시피 그날 사씨 아가씨를 뵀었는데 정말 후광이 보였다니깐요? 하루 일찍 그이를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사옵니다.”오씨의 진심 어린 태도와 그날 오씨가 정망 사씨 아가씨를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린 고후부인은 자연스레 이 말을 믿었다. “시원이가 지금 진성에 없지만 그래도 그날 서로 만났잖습니까? 그날 돌아와서도 마음에 드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까? 만약 시원이도 좋다고 하면 혼사를 일찍 정하시지오. 그러면 저도 이제 사씨 아가씨의 혼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요..”고후부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게다가 혼인 문제는 부모의 뜻이 중요하니, 시원이가 싫다고만 하지 않는다면 시원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오씨 부인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오씨가 잠시 생각한 후 답했다. “언니의 말도 일리가 있네요. 이렇게 하는 건.. 제가 시간을 봐서 둘의 사주팔자부터 확인하고 별문제가 없으면 정식으로 사람을 보내 청혼을 하겠습니다.”고후부인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장공주가 계속 사람 보내 재촉해서 짜증이 난 상태였다. “아이고, 내가 결혼을 재촉하는 것 같군요.. 그런데 사씨 아가씨의 나이도 어리지 않으니깐요. 만약 댁에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하루빨리 다른 집도 알아봐야 하고, 그쪽에도 답변을 해야 하지요. 그래도 이제 정해졌으니 다행이군요. 저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겠군요.”오씨도 공감하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시원이 혼사 때문에 저도 속을 많이 썩였지요.. 그래
이 일에 있어서 고부진은 협조적이였다. 아들의 성씨는 고씨이니 앞으로 반드시 고후부와 일심동체로 행할 것이다. “제가 돌아가서 호통하겠습니다.” 고부진이 대답했다.“곧 한의절인데 지원 스님을 요청하였는가?”“예, 지원 스님 포함해서 8명의 고승들을 요청하였사옵니다. 초하루 아침에 제가 직접 모시러 가겠습니다.”그러자 장공주는 바로 “응” 하고 대답했다. “어머님이 오셔도 되는데 밤을 새워야 한다고 알리시요. 밤을 새우지 못하면 오지 말라고요.”“밤 새울 수 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수년간 신불 하셨고, 계속 참석하고 싶어 하셨지요.” 고부진은 서둘러 대답했다. 한의절에 올 부인들 중에는 목 승상의 부인, 태부 부인, 육 태부인, 이 태부인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세가의 태부인이나 부인이였다. 그들의 사위나 자손들도 다 조정에서 중책은 맡고 있었다.그렇기에 그들은 자비심이 있어서 늘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었다. 어머니와 그런 그들이 잘 알고 지낸다면 앞으로 고후부의 자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때면 공주부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된다.장공주는 시어머니가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그들 중 목 승상 부인을 제외하고, 다들 집안의 권력을 넘기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여전히 집안의 자손들은 매우 긴장하게 하고 중시한다. 그들의 말 한마디면 천금과 맞먹는다. 승상 부인만이 송석석 일로 장공주를 원망했고, 그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장공주가 몇 년간 한의절의 법사를 주최해서 장공주를 존경했다.나머지 몇 사람도 자비로와서 소문을 들어도 악의적으로 추측하지 않고 자신의 눈을 믿기 때문에 외부의 소문은 그다지 믿지 않는다.이런 자비심이 장공주에게 도움이 될 때 그녀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그저 그들이 어리석다고 할 뿐이였다.올해도 장공주는 연왕비 시민주와 측비 김씨를 데려올 생각이였다. 자비로운 태부인들께 똑같이 자비로운 연
마차 한 대가 성을 나섰다. 송지안이 수주로 가려고 했다. 그쪽 공장에 문제가 좀 생겼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아버지께서 직접 다녀오라고 당부했다.송지안은 원래 수주에 살고 있었다. 부인이 임신을 해서 출산 준비하러 부인을 진성에 데려왔다. 수주의 일은 잘 정리하면 집사에게 맡길 수 있다. 송지안이 진성에 돌아온 이유도 진성에서 다른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송지안은 일찍이 아버지가 되었다. 스무 살에 장가 들었고 지금 두 아들이 있는데도 이번에는 딸이기를 바라고 있다.가문에 첩을 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송지안도 첩을 들이지 않았다. 송지안은 부인과 정분이 매우 두텁다. 외지에서 장사를 할 때도 부인과 함께였고 지금은 천천히 중심이 옮기고 있는데 그러면 네 식구… 아니 곧 다섯 식구가 진성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송지안은 석석을 보러 가지는 않았지만 서원에 서우를 보러 간 적은 있었다. 송지안의 스승은 현재 서원의 강사이기 때문에 송지안은 순조롭게 서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왕부에 가지 않은 것은 송지안의 사업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공께서 사업이 안정되기 전에 가지 말라고 했었다. 북명왕부가 송씨 가문의 사업을 도왔다는 말거리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태공은 공신이 가장 꺼리는 것은 상인이나 권신과의 왕래가 너무 많은 것이라고 하였다. 설령 친척이라 할지라도 죄를 씌우려면 피할 수 없는 일이라서 사전에 피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피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해치게 된다.태공은 무척이나 현명하여 가문의 사람들은 장사를 하려고 할 때 항상 태공의 뜻을 물었고 어르신의 말씀에 따랐다.어르신의 가르침은 상대방이 잘 나갈 때 약간의 거리를 두고 상대방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가문은 한 가문이 번영하고, 심지어 다 번영하고, 망하면 다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장점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정말 중요한 시기에 서로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잠시 후 마차가 성을 나서면서
송지안은 발버둥 치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온몸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몸이 마치 큰 병에 걸린 것처럼 허약했다.문이 열리자 송지안은 얼른 옆으로 돌아보았는데, 한 사람이 병풍을 돌아 들어오고 있었다. 그 여인은 타마계에 보요로 장식하고 있었는데 청록색의 속적삼에 연하색의 구름비단 옷을 두르고 있는 40세 좌우처럼 보였다. 세월은 그녀의 얼굴에 흔적을 많이 남기지 않았지만 엄숙하고 위엄 있는 표정에서 상위권의 압력을 풍기었다.그녀 뒤를 따른 사람이 의자를 침대 곁으로 옮기자 그녀는 천천히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차가운 눈빛이 송지안의 황급하고 의아한 눈빛과 마주쳤다.“누.. 누구십니까?” 송지안은 장공주를 만난 적이 없지만, 이 여인의 신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장공주는 눈앞에서 당황해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에 활활 타오르던 불꽃마저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꺼져 버렸다.얼굴은 비슷하나 기개와 담력은 천지 차이었다.“내가 무서운가?” 장공주가 천천히 물었다.“누구십니까? 저를 여기로 데려온 의도가 대체... 무엇입니까?” 송지안은 그녀의 옷차림을 보고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공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북명왕부와 국공부의 사이가 점점 달아올라 일부 사람들의 불만과 겨냥을 불러일으켜서 다들 신중하게 행동하고 어떠한 약점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국공부에 누를 끼쳐서는 아니 된다고 하셨다.장공주가 차갑게 말했다. “송씨 가문에는 이제 자네 같은 겁쟁이밖에 없는 것인가?”“정말 누구십니까?” 송지안은 주먹을 쥐고 눈빛이 차가워졌다. “누구시든 간에, 제 신분을 알고 있는 걸 보니 분명 저를 납치한 목적이 있겠지요? 저를 이용해서 누구를 상대하든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장공주는 송지안이 두려움을 떨쳐내고 송씨 가문의 오골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송씨 가문 사람이라면 이래야지..”장공주는 손을 내밀어 차갑게 변한 얼굴을 어루만지
방 마마는 사람을 지하 감옥에 가뒀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쫓아갔다. “공주님, 마음이 바뀌신 겁니까?”장공주는 심란했다. “일단 지하 감옥에 가둬두고..”“예, 공주님,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절대 몸조심하시고요.” 방 마마가 권했다.“누구도 그와 비교할 수 없어. 똑같은 용모일지라도 그가 아니건 아닌 거야. 조금도 본궁을 설레게 할 수 없구나. 오히려 이 얼굴 때문에 화가 나구나…”장공주의 눈에 분노가 가득 찼다. 빨리 방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지만 초조함은 가시지 않았다. “여봐라, 물을 길어오거라… 비누도 가져오거라… 손을 씻어야겠다.”시녀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장공주는 송지안을 만진 손을 한번 한번 깨끗이 씻어냈다. 매번 등불을 켤 때마다. 장공주는 고부좌와 잠자리를 이룬 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한번 한번 씻고 나서야 그 혐오스러운 느낌을 없앨 수 있었다.방 마마는 시녀를 내려보내고 약간 제정신이 아닌 장공주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공주님, 공주님이 송회안을 사랑하는 건 그의 얼굴 때문입니까? 죽은 건 죽은 겁니다. 설령 똑같이 생겼다고 해도 공주님 마음속의 그 사람은 아닌데 왜 이렇게 자신을 화나게 하는 겁니까?”예전에 장공주는 누구도 그녀가 송회안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방 마마가 말해도 장공주는 냉정하게 반박했다.하지만 지금, 장공주는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장공주는 갑자기 마음속으로 송회안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 외에 더 이상 송회안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마음껏 사랑하고 미워하면 그만이다.“다 명이로구나.” 장공주의 눈빛은 희미하고 말로 할 수 없는 슬픔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입 밖에 낸 말은 지독하기 짝이 없었다. “송회안과 비슷한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 않구나. 송지안의 얼굴을 망가뜨리고 그의 두 아들을 모두 죽여라. 그리고 그의 부인이 임신이라고 하던데 다들 출산은 죽을 고비라고 하니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게 하거라.”방 마마는 마음이 차가워졌다. “공주님, 정말 이렇게까지 할
송지안의 집은 고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날 일 자 형태의 천정이 있는 집이다.평소 송지안의 부인 황씨는 저녁 식사 후 시어머니와 함께 자수 일을 하거나 뱃속의 아이에게 옷을 만들어 주거나 두 아들에게 장난감을 만들어 주곤 했다.그런데 오늘 밤 며느리는 오지 않았고 두 아이의 노는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상하다고 느낀 송씨 어머니는 석씨 아주머니를 보내 확인하게 했다. 석씨 아주머니가 황씨의 집에 가서 묻자 시녀 하늘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소부인은 부인 댁에 수놓으러 갔는데 이미 30분이 지났습니다.. 도련님 두분도 다 데리고 함께 갔는데 말이예요.”석씨 아주머니는 깜짝 놀랐다. “아니, 소부인이 오지 않아서 부인이 저에게 와 보라고 한 겁니다.”하늘이 반문했다. “그럴 리가요. 정말 갔습니다. 저녁 먹은 후 안태약을 먹고 갔습니다.”“정말 부인에게 간다고 한 겁니까?”"예. 노을이도 전에 따라가지 않았습니까. 가기 전에 소부인이 소인에게 복도 청소를 시켜서 제가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석씨 아주머니가 말했다. “못 만났는데… 다른데 간 건 아니겠지요? 어서 저택에 가서 물어보시오. 저는 옆집에 가서 셋째 부인께 여쭤보겠습니다. 오늘 낮에 셋째 부인께서 도련님을 데리고 놀겠다고 하셨습니다.”셋째 부인은 송세안의 부인이고, 두 집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이었다.송세안은 지금 태공을 따라다니며 가문의 자손들의 일을 처리하고 있어서 송씨 가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전에 송석석이 장군부를 떠날 때도 송세안이 가문의 자손들을 데리고 가서 혼수를 옮기는 일을 도왔다.석씨 아주머니와 하늘은 급히 가서 물었는데, 그 결과 아무도 황씨와 두 형제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송세안은 이 일을 듣고 수상쩍게 여겼다. 황씨는 예전에 지안과 함께 수주에 사로고 있었고 진성에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임신 중이라 거의 밖에 나가지도 못해 기껏해야 고택이나 자신의 집에 올 뿐이였다. 낮에도 나가지 않는데 밤에는 더 나가지 않을 게 당연
사여묵은 염선생의 손에 쪽지가 쥐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그가 세 모자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고는 진복이 왜 사람을 많이 보내서 찾지 않은 점이 의아했다. 이렇게 늦은 밤에 빨리 찾아야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때는 이미 늦기 때문이다. 송석석은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아 사여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진복, 염선생의 말대로 하거라. 사람을 몇 명만 데리고 찾거라. 송씨 가문에게는 더 이상 말하지 말고, 왕부에서도 사람을 보내 찾을 것이라고만 전하거라. 내일까지 찾지 못하면 경조부에 가서 신고하라고 하고.”장군이 말을 하자 진복이 대답했다. “예, 전부 시경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진복이 떠나자 시만자가 뛰어들어왔다. 시만자는 방에서 목욕을 마치고 진복이 국공부에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급히 달려왔다.“무슨 일입니까?” 시만자는 머리도 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비녀를 꽂았다.염선생은 손에 계속 쪽지를 쥔 채 몽동이를 시켜 사람을 데리고 밖을 지키라고 하였다. “저희가 장공주부에 보낸 사람이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오늘 밤에 장공주의 시위장 도준이 사람 몇을 데리고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 둘과 임신한 부인을 업고 옆문으로 들어와 지하 감옥으로 갔다고 합니다.”시만자는 아직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갔지만 장공주부에도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존경심이 생겼다. “장공주부에도 사람을 들여보낼 수 있습니까? 염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염선생님이 보낸 사람, 장공주도 중용하고 있으시지요?”“예, 중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없어서는 안 될 정도입니다.” 염선생은 정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변소 청소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이다. 없어서는 안된다.그리고 이 일을 하면 밤에 곳곳의 변소를 둘러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도 않는다. 아무도 더럽고 냄새나는 그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고 보기만 해도 코를 막고 피했다.“그들? 한 사람만이 아닙니까?” 시만자는 질문을 한 후에야 갑자기 생각났다
시만자가 물었다. “장공주부의 지형도가 있습니까? 지하 감옥이 어디에 있습니까?”사여묵이 대답했다. “지형도가 있기 마련이지. 내일 밤에 움직여야 하는데 지형도가 없을 수 있겠나?”시만자는 좌절감을 느꼈다. 그녀와 홍시는 정보 사업을 하였지만 아무런 유용한 정보도 캐내지 못했다. “어떻게 사람들을 끼워 넣었습니까? 어떻게 하면 아무도 모르게 장공주부에도 사람을 끼워 넣을 수 있었던 거지요? 장공주부가 가장 어려운 곳이고 게다가 그렇게 중요한 일을 참.. 한 명도 아니고..”염선생은 변소 청소를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본론으로 말을 돌렸다. “지금 초보적인 계획은 시경님이 먼저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안으로 소식을 전할 수도 없으니 시경님이 자신의 능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공주부의 병력 배치와 순찰 상황을 알고 있다는 건 다행이지긴 하지만요. 핵시가 가장 적절한 시기인데 이미 자시가 다 되었으니 가장 좋은 시기도 놓친 셈이지오.”사여묵이 말했다. “본왕이 야행복만 갈아입고 바로 출발하마.”사여묵은 송석석을 바라보며 위로했다. “걱정 마시오.”송석석은 사여묵을 믿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심하시오.”“그래.” 사여묵은 송석석을 향해 따뜻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공주부의 호위든 부병이든 모두 쓰레기이다. 밤에 사람을 납치하는 일이나 하지, 어려운 점이라면 조용히 지하 감옥에 잠입하여 숨는 것인데, 이전에 지하 감옥의 지형도를 본적이 있어 괜찮을 겁니다.”“예, 모든 일에 조심하시오.”송석석은 공주부의 경비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북명왕부와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조용히 잠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공주부에 500명의 부병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태반이 나태하다 하더라도 뛰어난 사람은 있었다. 예를 들면 시위장 도준 같은 사람 말이다. 송석석이 말했다. “정심도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됐구나. 정심이 우리가 요즘 10월 15일 장공주부에서 소란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