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안은 발버둥 치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온몸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몸이 마치 큰 병에 걸린 것처럼 허약했다.문이 열리자 송지안은 얼른 옆으로 돌아보았는데, 한 사람이 병풍을 돌아 들어오고 있었다. 그 여인은 타마계에 보요로 장식하고 있었는데 청록색의 속적삼에 연하색의 구름비단 옷을 두르고 있는 40세 좌우처럼 보였다. 세월은 그녀의 얼굴에 흔적을 많이 남기지 않았지만 엄숙하고 위엄 있는 표정에서 상위권의 압력을 풍기었다.그녀 뒤를 따른 사람이 의자를 침대 곁으로 옮기자 그녀는 천천히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차가운 눈빛이 송지안의 황급하고 의아한 눈빛과 마주쳤다.“누.. 누구십니까?” 송지안은 장공주를 만난 적이 없지만, 이 여인의 신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장공주는 눈앞에서 당황해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에 활활 타오르던 불꽃마저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꺼져 버렸다.얼굴은 비슷하나 기개와 담력은 천지 차이었다.“내가 무서운가?” 장공주가 천천히 물었다.“누구십니까? 저를 여기로 데려온 의도가 대체... 무엇입니까?” 송지안은 그녀의 옷차림을 보고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공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북명왕부와 국공부의 사이가 점점 달아올라 일부 사람들의 불만과 겨냥을 불러일으켜서 다들 신중하게 행동하고 어떠한 약점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국공부에 누를 끼쳐서는 아니 된다고 하셨다.장공주가 차갑게 말했다. “송씨 가문에는 이제 자네 같은 겁쟁이밖에 없는 것인가?”“정말 누구십니까?” 송지안은 주먹을 쥐고 눈빛이 차가워졌다. “누구시든 간에, 제 신분을 알고 있는 걸 보니 분명 저를 납치한 목적이 있겠지요? 저를 이용해서 누구를 상대하든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장공주는 송지안이 두려움을 떨쳐내고 송씨 가문의 오골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송씨 가문 사람이라면 이래야지..”장공주는 손을 내밀어 차갑게 변한 얼굴을 어루만지
방 마마는 사람을 지하 감옥에 가뒀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쫓아갔다. “공주님, 마음이 바뀌신 겁니까?”장공주는 심란했다. “일단 지하 감옥에 가둬두고..”“예, 공주님,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절대 몸조심하시고요.” 방 마마가 권했다.“누구도 그와 비교할 수 없어. 똑같은 용모일지라도 그가 아니건 아닌 거야. 조금도 본궁을 설레게 할 수 없구나. 오히려 이 얼굴 때문에 화가 나구나…”장공주의 눈에 분노가 가득 찼다. 빨리 방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지만 초조함은 가시지 않았다. “여봐라, 물을 길어오거라… 비누도 가져오거라… 손을 씻어야겠다.”시녀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장공주는 송지안을 만진 손을 한번 한번 깨끗이 씻어냈다. 매번 등불을 켤 때마다. 장공주는 고부좌와 잠자리를 이룬 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한번 한번 씻고 나서야 그 혐오스러운 느낌을 없앨 수 있었다.방 마마는 시녀를 내려보내고 약간 제정신이 아닌 장공주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공주님, 공주님이 송회안을 사랑하는 건 그의 얼굴 때문입니까? 죽은 건 죽은 겁니다. 설령 똑같이 생겼다고 해도 공주님 마음속의 그 사람은 아닌데 왜 이렇게 자신을 화나게 하는 겁니까?”예전에 장공주는 누구도 그녀가 송회안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방 마마가 말해도 장공주는 냉정하게 반박했다.하지만 지금, 장공주는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장공주는 갑자기 마음속으로 송회안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 외에 더 이상 송회안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마음껏 사랑하고 미워하면 그만이다.“다 명이로구나.” 장공주의 눈빛은 희미하고 말로 할 수 없는 슬픔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입 밖에 낸 말은 지독하기 짝이 없었다. “송회안과 비슷한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 않구나. 송지안의 얼굴을 망가뜨리고 그의 두 아들을 모두 죽여라. 그리고 그의 부인이 임신이라고 하던데 다들 출산은 죽을 고비라고 하니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게 하거라.”방 마마는 마음이 차가워졌다. “공주님, 정말 이렇게까지 할
송지안의 집은 고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날 일 자 형태의 천정이 있는 집이다.평소 송지안의 부인 황씨는 저녁 식사 후 시어머니와 함께 자수 일을 하거나 뱃속의 아이에게 옷을 만들어 주거나 두 아들에게 장난감을 만들어 주곤 했다.그런데 오늘 밤 며느리는 오지 않았고 두 아이의 노는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상하다고 느낀 송씨 어머니는 석씨 아주머니를 보내 확인하게 했다. 석씨 아주머니가 황씨의 집에 가서 묻자 시녀 하늘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소부인은 부인 댁에 수놓으러 갔는데 이미 30분이 지났습니다.. 도련님 두분도 다 데리고 함께 갔는데 말이예요.”석씨 아주머니는 깜짝 놀랐다. “아니, 소부인이 오지 않아서 부인이 저에게 와 보라고 한 겁니다.”하늘이 반문했다. “그럴 리가요. 정말 갔습니다. 저녁 먹은 후 안태약을 먹고 갔습니다.”“정말 부인에게 간다고 한 겁니까?”"예. 노을이도 전에 따라가지 않았습니까. 가기 전에 소부인이 소인에게 복도 청소를 시켜서 제가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석씨 아주머니가 말했다. “못 만났는데… 다른데 간 건 아니겠지요? 어서 저택에 가서 물어보시오. 저는 옆집에 가서 셋째 부인께 여쭤보겠습니다. 오늘 낮에 셋째 부인께서 도련님을 데리고 놀겠다고 하셨습니다.”셋째 부인은 송세안의 부인이고, 두 집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이었다.송세안은 지금 태공을 따라다니며 가문의 자손들의 일을 처리하고 있어서 송씨 가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전에 송석석이 장군부를 떠날 때도 송세안이 가문의 자손들을 데리고 가서 혼수를 옮기는 일을 도왔다.석씨 아주머니와 하늘은 급히 가서 물었는데, 그 결과 아무도 황씨와 두 형제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송세안은 이 일을 듣고 수상쩍게 여겼다. 황씨는 예전에 지안과 함께 수주에 사로고 있었고 진성에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임신 중이라 거의 밖에 나가지도 못해 기껏해야 고택이나 자신의 집에 올 뿐이였다. 낮에도 나가지 않는데 밤에는 더 나가지 않을 게 당연
사여묵은 염선생의 손에 쪽지가 쥐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그가 세 모자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고는 진복이 왜 사람을 많이 보내서 찾지 않은 점이 의아했다. 이렇게 늦은 밤에 빨리 찾아야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때는 이미 늦기 때문이다. 송석석은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아 사여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진복, 염선생의 말대로 하거라. 사람을 몇 명만 데리고 찾거라. 송씨 가문에게는 더 이상 말하지 말고, 왕부에서도 사람을 보내 찾을 것이라고만 전하거라. 내일까지 찾지 못하면 경조부에 가서 신고하라고 하고.”장군이 말을 하자 진복이 대답했다. “예, 전부 시경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진복이 떠나자 시만자가 뛰어들어왔다. 시만자는 방에서 목욕을 마치고 진복이 국공부에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급히 달려왔다.“무슨 일입니까?” 시만자는 머리도 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비녀를 꽂았다.염선생은 손에 계속 쪽지를 쥔 채 몽동이를 시켜 사람을 데리고 밖을 지키라고 하였다. “저희가 장공주부에 보낸 사람이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오늘 밤에 장공주의 시위장 도준이 사람 몇을 데리고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 둘과 임신한 부인을 업고 옆문으로 들어와 지하 감옥으로 갔다고 합니다.”시만자는 아직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갔지만 장공주부에도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존경심이 생겼다. “장공주부에도 사람을 들여보낼 수 있습니까? 염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염선생님이 보낸 사람, 장공주도 중용하고 있으시지요?”“예, 중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없어서는 안 될 정도입니다.” 염선생은 정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변소 청소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이다. 없어서는 안된다.그리고 이 일을 하면 밤에 곳곳의 변소를 둘러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도 않는다. 아무도 더럽고 냄새나는 그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고 보기만 해도 코를 막고 피했다.“그들? 한 사람만이 아닙니까?” 시만자는 질문을 한 후에야 갑자기 생각났다
시만자가 물었다. “장공주부의 지형도가 있습니까? 지하 감옥이 어디에 있습니까?”사여묵이 대답했다. “지형도가 있기 마련이지. 내일 밤에 움직여야 하는데 지형도가 없을 수 있겠나?”시만자는 좌절감을 느꼈다. 그녀와 홍시는 정보 사업을 하였지만 아무런 유용한 정보도 캐내지 못했다. “어떻게 사람들을 끼워 넣었습니까? 어떻게 하면 아무도 모르게 장공주부에도 사람을 끼워 넣을 수 있었던 거지요? 장공주부가 가장 어려운 곳이고 게다가 그렇게 중요한 일을 참.. 한 명도 아니고..”염선생은 변소 청소를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본론으로 말을 돌렸다. “지금 초보적인 계획은 시경님이 먼저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안으로 소식을 전할 수도 없으니 시경님이 자신의 능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공주부의 병력 배치와 순찰 상황을 알고 있다는 건 다행이지긴 하지만요. 핵시가 가장 적절한 시기인데 이미 자시가 다 되었으니 가장 좋은 시기도 놓친 셈이지오.”사여묵이 말했다. “본왕이 야행복만 갈아입고 바로 출발하마.”사여묵은 송석석을 바라보며 위로했다. “걱정 마시오.”송석석은 사여묵을 믿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심하시오.”“그래.” 사여묵은 송석석을 향해 따뜻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공주부의 호위든 부병이든 모두 쓰레기이다. 밤에 사람을 납치하는 일이나 하지, 어려운 점이라면 조용히 지하 감옥에 잠입하여 숨는 것인데, 이전에 지하 감옥의 지형도를 본적이 있어 괜찮을 겁니다.”“예, 모든 일에 조심하시오.”송석석은 공주부의 경비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북명왕부와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조용히 잠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공주부에 500명의 부병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태반이 나태하다 하더라도 뛰어난 사람은 있었다. 예를 들면 시위장 도준 같은 사람 말이다. 송석석이 말했다. “정심도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됐구나. 정심이 우리가 요즘 10월 15일 장공주부에서 소란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송석석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내일 왕과 성을 나가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으니 지금 나의 손톱을 정리해주거라.”“아가씨, 내일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그럼 노비도 데려갑니까?” 보주가 기뻐하며 물었다.“아니.” 송석석은 보주를 한 번 노려보았다. “아주.. 나갈 생각만 하지!”정심은 계속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 왕과 왕비는 함께 방에 들어왔는데.. 왜 지금 왕비밖에 없지? 왕은? 분명 문이 잠겨져 있었으니 문으로 나간건 아닐 테고.. 아니면 혹시 창문으로 나간 걸까? 근데 왜 이렇게 은밀하게 움직이지?’매니큐어를 꺼낸 후, 두 사람은 송석석의 손톱에 바르려고 했다. 이때 시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석아. 네가 준 동주 귀걸이 없어졌다. 내가 여기 놓고 가지 않았나?”시만자는 성큼성큼 들어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한번 찾아봐 줘. 여기에 있는지.”“넌 내 방에서 화장을 지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여기에 있겠어? 그냥 다른데다가 두고 잊어버린 거 아니야? 잘 찾아보기는 했어?”시만자는 송석석의 화장대를 열어보고 옆에 놓인 장신구 상자 몇 개도 확인하였다. “다 찾아봤어. 내일 그 귀걸이를 할 생각이었는데 여기 둔 것이 아닌가 해서..”송석석은 장신구가 많다. 여기 있는 것들은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일부분일 뿐이다.시만자는 장신구 상자를 샅샅이 뒤졌지만 동주 귀걸이를 찾지 못했다. 시만자는 조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설마.. 누가 가져간 건 아니겠지? 우리 집에 손버릇이 나쁜 사람은 없을텐데.”“그럴 리가. 우리 집에서 이런일은 한 번도 일어난적 없어.” 송석석이 말했다. “네가 원래 부주의하잖냐. 물건을 함부로 여기저기에다 버리고 다니고. 그래서 바닥이나 상자 밑에 떨어지지 않았을까? 양 마마에게 사람 불러 찾으라고 할게. 보주, 정심, 너희도 얼른 가서 찾아보거라.”시만자는 기운이 빠져 해탈해 버렸다. “그래, 너희들도 나를 도와 찾아 주거라. 그 두 동주 비싼 거다. 대충 팔아도 천 냥을
이렇게 소란스럽게 수사하면 틀림없이 혜 태비를 놀라게 했을 것이다.태비는 일찍 잠이 들어 잘 자고 있었는데 밖에 떠드는 소리를 듣고 같은 방에서 자고 있는 고 씨 유모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저택의 하인들의 손버릇이 나빠서 시만자의 동주 귀걸이를 훔쳤다는 보고를 듣고 태비는 화가 났다. “왕부의 대우가 다른 저택보다 얼마나 많이 좋은지 모른단 말이오. 욕심이 이렇게 큰 사람은 손을 부러뜨려 버려야 하오.”“왕비님께서 오셨습니다.” 밖에서 하인이 들어와 아뢰었다.밤에 추워지자 혜 태비는 침대와 이불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왕비가 밖에서 대국을 주관하지 않고 여기 와서 무엇을 하려는 건가? 본궁 이미 잠들기 직전인데 말이야..”“어머님.” 송석석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송석석은 혼자 왔다. 오늘 밤 동주 귀걸이는 정심의 침대에서 찾아낼 것이다. 정심은 원래 태비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송석석은 여기에 와서 태비를 지키고 있다가 찾아낸 후에 어떻게 처리할지 말씀드리려 했다.“어째서 왔는가? 밤에 추운데 옷이라도 더 입고 오지.” 혜 태비의 표정은 송석석을 보자 바로 더없이 다정하고 따뜻해졌다. “이리 와서 앉거라.”송석석은 먼저 인사를 올리고는 침대 옆에 앉았다. “밤에 어머님을 깨운 것이 이게 다 며느리가 집안을 잘 다스리지 못한 탓입니다.”“허허. 괜찮다. 한데 왜 이 한밤중에 이렇게 소란스럽게 찾는 건가. 내일 아침에 찾지 않고?” 혜 태비가 하품을 하며 물었다.그러자 고 씨 유모가 설명했다. “내일 다시 수색하면 물품을 빼돌렸을 수 있습니다. 그 동주 많이 비쌀 것 같기도 하고요.”혜 태비는 “응” 하고 대답하면서 고 씨 유모를 담담히 쳐다보았다. ‘너만 잘났지, 아주.’“차를 따르거라.” 송석석이 분부했다. “이 밤에 차를 마시지 않으면 견디기에 쉽지 않을 겁니다. 어머님께서도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혜 태비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다. 이렇게 늦게 차를 마시면 잠을 잘 수 없구나.”송석석이 말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심이 끌려들어 왔는데 그녀의 낫빛은 잿빛같이 어두웠고, 양 마마는 그녀의 침대 밑에서 찾아낸 나무 상자를 들어 올려 안에 있는 물건을 모두 탁자 위에 쏟았다. 동주 귀걸이 외에도 다른 많은 장신구들이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싼 물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안에 있는 나무 상자 밑에 은표 몇 장이 있었는데 펼쳐보니 모두 백 냥짜리였다. 그리고 금괴 두 개와 은괴 다섯 개, 동전 몇 푼이 있었다. 혜 태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차를 끓인 후에 일어나 앉아 탁자 위에 놓인 물건을 보며 금비녀를 들고 위에 박힌 보석을 보았다. 혜 태비는 이 물건들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이것들은 금루의 물건이고 금경루를 따라 만든 물건들이었다. 그녀는 다시 팔찌를 하나 들어 보았는데 자신의 팔지와 공예도 비슷했다. 이러한 장신구가 십여 개정도 있었는데 은표와 금은을 포함해서 대략 계산해 보니 수천 냥이 넘었다. 혜 태비는 처음엔 그녀가 훔친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황실에서 금루의 장신구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원래 가지고 있던 물건도 팔아서 금루와 선을 그어 금루의 장신구는 하나도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입을 열었다. “양 마마, 일단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주게. 나와 태비께서 직접 심문하겠다.” “네.” 양 마마는 손을 저으며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내려갔고, 소월과 소란도 그 뒤를 따랐다. 떠날 때 그 두 사람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그 두 사람은 정심과 한 방에서 지내면서도 그녀가 이렇게 많은 은표와 장신구를 가지고 있는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시만자는 들어와 문을 닫고 정심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턱을 잡고 물었다. “증거까지 확보했는데 또 무슨 할 말이 있냐?” “동주는 내가 훔친 게 아닙니다.” 정심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몸을 떨며 말했다. 그녀는 오늘 이 일이 자신을 노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송석석이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동주는 당신이 훔친 게 아니라고 치자. 그럼 이 은표와
이날 저녁, 송석석은 약왕당에서 받아온 약을 사여묵에게 건넸고 약의 위험성까지 자세하게 얘기했다.사여묵은 망설이는 듯한 송석석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위로했다.“이 정도 상해는 충분히 견딜 수 있소. 그리고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약들도 이렇게 잔뜩 가지고 오지 않았소? 나중에 어의에게 진단만 받으면 바로 단설환을 먹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오. 남강으로 가는 길에도 단 신의의 당부를 잊지 않고 매일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겠소.”“그래도 결국 독약 아닙니까? 그러지 말고 저희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송석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사여묵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내가 보기엔 지금으로써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소. 단 신의가 말을 무섭게 해서 그렇지 그 정도로 심각한 상해를 입히지 못할 거요. 그렇게 위험한 약이었다면 애당초 꺼내지도 않았겠지.”“그럼 일단 염 선생과 상의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그럴 필요 없소!”사여묵이 약을 내려놓은 뒤, 커다란 손으로 송석석의 허리를 감싸며 말을 이어갔다.“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유리하오. 나중에 내가 대리사에서 쓰러지면 진이가 내 옥패를 들고 어의를 찾아갈 것이고 황실로 달려온 어의가 우왕좌왕하는 염 선생을 보아야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오.”송석석은 사여묵의 가슴팍에 기대어 불안한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전 장군님이 너무 걱정됩니다.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남강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가는 내내 제대로 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남강에 가서도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으면 전장에 어떻게 나가시려고 그러십니까?”송석석의 걱정에 기분이 좋아진 사여묵이 다정하게 웃으며 그녀를 위로했다.“난 왕표를 무조건 대체하겠다는 게 아니오. 일단 제린을 찾아 병사들 속에 숨어 있다가 왕표가 제대로 군을 이끈다면 난 남강 구경이나 하다 올 것이오.”사여묵의 위로에도 송석석은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왕표가 군을 제대로 이끌지 못할 거라는 확신 때문에 두 사람이 지금 이런 모험을 하고 있는
화가 난 단 신의는 송석석의 말에 설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럭 언성을 높였다.“난 멍청한 사람을 돕지 않소. 당신들은 그런 천하의 멍청이가 따로 없소!”“세상에 이런 멍청이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번 한번만 더 모험하고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약속할게요.”송석석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단 신의가 미간을 찌푸렸다.“모험을 하고 싶어도 이제 못할 수도 있소. 돌아오면 황제께서 그 죄를 어떻게 물으실 줄 알고 이러는 것이오. 그러다가 머리가 잘릴 수도 있소.”“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단 신의는 고집을 부리는 송석석을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백성들에게는 두 사람과 같은 멍청이들이 필요하긴 했지만, 단 신의는 그 멍청이가 송석석과 사여묵은 아니길 바랐다.결국 단 신의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작은 상자를 꺼내 먼지를 툭툭 털어내곤 조심스럽게 열었다.상자 안에는 땅콩 만한 검은 알약 하나가 있었다.“똑똑히 기억하시게. 이건 독이오. 이 약을 먹고 나면 맥박이 이상해지고 갑작스러운 발작을 일으키네. 그리고 짧은 시간내에 심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이건 그저 보여지는 현상이 아니라 실제로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네. 이 약을 먹고 3일 정도 버틸 수 있는데 3일 뒤에는 반드시 단설환을 복용해야 하오. 그러지 않으면 심장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도 있소.”단 신의의 말에 송석석이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정말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그럼 당연하지. 이건 독이오.”“그럼 단설환을 먹고 나면 바로 정상적인 몸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겁니까?”“그렇지 않소. 며칠 동안 안정을 취해야 하네. 눈속임을 하고 나서 바로 출발하면 절대 안 되오.”위험할 수도 있다는 단 신의의 말에 송석석은 단 신의가 건네는 약을 받지 않았다.“그럼 혹시 다른 약은 없는지요? 폐하를 속이고 나서 장군님은 바로 출발하려고 할 겁니다. 실제로 중독되
사여묵은 온몸에 힘이 쭉 빠진 채 침대에 앉아 등을 벽에 기대고 있었다.남강에서 돌아와 병권을 황제께 바친 뒤에도 황제는 여전히 사여묵을 의심하고 경계했지만 사여묵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황제가 의심과 경계를 조금은 풀 수 있도록 사여묵은 지금까지 최대한 언행에 조심했으며 서경과의 담판이 끝나고 나서도 황제 앞에서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였다.나중에 혹시라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더 이상 황제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황제의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사국이 이번에 다시 쳐들어온 건 사국과 손잡은 내국 역적이 남강에 이미 함정을 파 놓았다는 사실을 폐하께서도 알고 계신 것이오. 그래서 사국은 저렇게 겁도 없이 남강을 계속 공격하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 폐하는 내가 폐하께 대한 위협이 사국 병사들을 물리치는 것보다 더 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소.”사여묵이 씁쓸하게 웃으며 마지막 남은 술을 벌컥벌컥 마시자, 송석석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황제께서 이런 결정을 하신 게 처음은 아니잖아요.”사여묵은 송석석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고 조금 전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때부터 계속 이렇게 숨막히는 인고를 견뎌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난 무조건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오.”송석석을 놓아준 사여묵은 강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보탰다.“난 당신처럼 용감하게 변할 것이오.”예전에 송석석이 입궁하여 황제께 상황을 보고했을 때 황제는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때 당시 송석석은 마냥 기다리거나 손을 놓은 것이 아니라 홀로 남강까지 찾아갔다.송석석은 그때 자신의 생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한편, 사여묵의 말을 들은 송석석은 바로 뜻을 알아챘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전 장군님을 응원합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폐하께서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다면 전 평소와 같이 진성을 지키고 있을 것이고 만약 폐하께서 죄를 물으신다면 전 북명
사여묵이 방시원을 잘 달래어 돌려보낸 뒤, 염구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다들 감정이 격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남강 땅을 되찾기 위해 그들은 청춘을 다 바쳤는데 이제 또 전쟁이 난다고 하니 마음이 안 좋을 수밖에 없지요.”말을 하던 염구진은 고개를 돌려 사여묵을 힐끔 쳐다보았으며 방시원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사여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한편, 한참동안 말이 없던 사여묵이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잘 지켜보고 있다가 무슨 소식이 들리면 바로 나에게 보고하게.”“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사여묵은 다시 연주에 관한 일에 대해 물었다.“연주에서 성문을 봉쇄했다고 들었는데 소식은 끊기지 않은 것이오? 혹시 그쪽에서 움직임이 보이지는 않나? 계획대로 행동하고 있는 건가?”“아직 확실한 소식은 접하지 못했지만 소인은 모성을 믿습니다. 계획한대로 잘 하고 있을 겁니다.”“그래. 나도 그자를 믿네.”염구진의 대답에 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성은 연주 좌부승이었고 연왕이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여묵은 바로 사람을 시켜 모성에게 접근했다.총명하고 무술 실력까지 겸비한 모성은 선황제 때부터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성격이 너무 오만했기에 아직까지도 직급은 그저 부승이었다. 평소에 시를 즐겨 쓰는 모성은 시문의 대부분 내용이 세상을 향한 불만 표시였기에 연왕은 모성이 조정에 불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그를 곁에 두기로 했다.그렇게 모성은 오랜 세월동안 외로운 싸움을 했다. 그 중 더 높은 관직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모성은 연왕의 반역죄 증좌를 수집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연주에 남았다.하지만 연왕은 섣불리 움직이지도 않고 핵심 병력의 상황도 모성에게 전혀 알려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중요한 일을 논의할 때에는 모성에게 나가 있으라고 하기도 했다.때문에 모성은 하상지의 잡일을 처리해주면서 간간이 상황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확실한 증좌가 없는 탓에 모성은 지금까지도 연왕
”소인도 오늘 폐하께 감히 많은 얘기를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혹시 폐하께서 오해하실까 봐 왕야를 찾아가지도 못했지요.”이덕회가 대답하자 목 승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잘하셨습니다. 병부는 최대한 사적으로 북명왕을 접촉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니면 혹시 병사 감찰대로 폐하께 한 사람을 추천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왕표 그자가 남강 전쟁 원수를 맡기엔 걱정된다면 방시원 장군을 황제께 추천해보십시오.”“하지만 방시원 장군님은 주군 총병이라 남강 전쟁에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방 장군을 보낼 바에는 차라리 방천허와 제린에게 전사를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내란이 터지고 있는 지금 진성 주군에 대장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이덕회의 말에 목 승상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대꾸했다.“도리는 그게 맞지요. 제 말은 폐하께 왕야 한 사람만 추천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몇 명 더 추천하라는 뜻입니다.”이덕회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소인이 솔직한 성격이라 말을 돌려서 할 줄 모르니 그냥 말하겠습니다. 소인이 보기엔 왕야가 가장 적합한 원수인데 어차피 역적은 아직 나라에 위협이 될만한 존재는 아니니까 나중에 목종욱한테 처리하라고 하면 되지요.”“그 어떤 반역자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알다시피 반역자들은 사국 사람들과도 엮여 있습니다. 사국과 손을 잡았다는 건 그만큼 충분한 준비를 해왔다는 뜻이지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목 상승이 손을 저으며 말하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덕회가 대답했다.“승상 말씀도 일리가 있는 것 같네요. 그럼 소인 북명왕과 함께 내일 다시 궁으로 가서 폐하를 만나 뵙고 내란에 대해서도 의논해보겠습니다.”“그렇게 합시다!”목 승상이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사청엽은 여전히 옥에 갇혀 있었다. 황제가 아직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사청엽은 자신이 사형을 면치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이날 저녁, 혼인을 앞둔 방시원이 황실을 찾아왔다. 치석
한편, 목종욱은 최선을 다해 산적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싹을 다 자르진 못했지만 크게 겁을 먹은 산적들이 산 속에 꽁꽁 숨어서 다시는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숙청제도 제린이 보낸 소식을 접했고, 사국 대군들이 변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제린은 사국 대군이 25만 명 정도 된다고 보고를 했고 여전히 빅토르가 대군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숙청제는 바로 병부 대신들을 불러 남강에서 사국의 25만 대군을 상대로 승산이 있는지 의견을 물었다.이덕회는 황제의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최대한 신속하게 전쟁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 관건이다.“폐하, 남강은 오랜 시간의 전사와 왜란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입니다. 남강 땅은 아직 전쟁에 버틸 수 있지만 백성들은 더 이상 전쟁을 견딜 힘이 없습니다. 만약 정말 전쟁이 난다면 확실한 한 방으로 빠르게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메뚜기 떼처럼 매년 한 번씩 이렇게 날뛸 것입니다. 이는 저희 남강 지역의 치안에 치명적인 상해를 입힐 수밖에 없습니다.”“그럼 자네 생각엔 송씨 가문 병사들과 북명군이 적들을 신속하게 물리치지 못할 것 같은가?”숙청제의 물음에 이덕회가 바로 대답했다.“이제 송씨 가문 군대아 북명군을 나눌 것도 없습니다. 전부 다 남강 병사들입니다.”이덕회는 숙청제가 남강의 병사들을 모은 게 송씨 가문과 북명왕이라고 생각할까 봐 일부러 강조했지만 숙청제의 생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만약 남강 전쟁이 오래 전에 끝난 전쟁이고 사여묵이 병권을 상납한지 꽤 오래 됐다면 숙청제는 이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왕표가 군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 지금, 남강에 있는 병사들이 송씨 가문 군대이든 북명군이든 결국 전부 사여묵의 명령에 따르고 있다.사여묵을 남강에 보낸다는 건 병권을 다시 사여묵에게 쥐여주어야 한다는 뜻이다.현재 연왕도 역모를 일으켰고 황제 자리를 대놓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
숙청제가 사여묵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그건 사국이 네 위엄에 겁을 먹은 것이야. 빅토르가 너를 많이 두려워하는 것 같아.”사여묵은 숙청제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 살짝 비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황제께서 소인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계신 겁니다. 소인은 그렇게 대단한 능력도 없고 빅토르도 소인에게 겁을 먹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전쟁 때문에 너무 많은 걸 잃었기 때문입니다.”“네 말대로 전쟁으로 많은 걸 잃었다면 짧은 시간 내에는 원기를 쉽게 회복할 수 없지 않느냐?”“소인이 감히 추측을 해보자면 사국은 원기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절대 저희 남강이 순조롭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가끔씩 비열한 수법으로 훼방을 놓아야 정상인데 지금까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는 게 너무 수상합니다.”숙청제가 사여묵을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그럼 네 말은 누군가가 사국과 손잡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냐?”“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사여묵은 전에도 숙청제와 이 문제를 분석하고 논의한 적이 있었으며 그때 당시 숙청제도 사여묵의 의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숙청제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사여묵은 그런 황제를 힐끗 쳐다보고는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만 꾹 참았다.사실 숙청제도 왕표가 무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사국을 상대하려면 사여묵을 다시 남강 전장으로 내보내는 게 가장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하지만 숙청제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그때 당시 겨우 송석석을 이용하여 사여묵에게서 병권을 빼앗았는데 이렇게 쉽게 다시 내놓을 수가 없었으며 최후의 순간이 오지 않는 이상, 숙청제는 절대 사여묵을 전장에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때문에 사여묵이 며칠동안 어서방에 남아 숙청제와 이런저런 상의를 해봤지만 숙청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어서방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아무도 먼저
그날 밤, 연왕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게 되었다.솔직히 지금 상황은 연왕의 오랜 계획과 차질이 조금 있었다. 지방 지역에서 역모를 일으키고 심지어 진성에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진성까지 쳐들어간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연왕과 무상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일단 병사들을 일정한 수량까지 늘이고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진성 일대로 전이하여 병사들을 안치한 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그땐 사온이 진성에서 계략을 짜고 있을 것이고 많은 세가들의 지지도 받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예전에 고부진의 딸들을 세가에 시집 보냈기에 세가들은 지지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나서 적절한 시기만 잘 고르면 반드시 성공한다. 진성에 전란이 일어나고 산적과 유랑민들이 판을 칠 때 연왕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성내로 쳐들어가 바로 궁 전체를 포위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 갑자기 대석촌에 일이 터져 버려 사청엽이 체포된 탓에 연왕은 급하게 병사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승산이 너무 낮았기에 연왕도 망설였던 것이며 지방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진성까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물론 백성들은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한동안 수군거리겠지만 대부분 백성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반란과 격문을 그저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사국에서 남강을 공격한다고 해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니고 사국에서 오래 전부터 호시탐탐 야망을 보였기에 황제가 나랏일에 관심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그리고 아직 사국과의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전패했다는 소식도 없기에 상국 무장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하기에도 애매했다.나라가 평안하고 백성들이 태평한 상황에서 연주도 꽤 부유한 땅이었기에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때문에 모두 그저 연왕이 언제 잡히는지, 언제 역모죄로 목이 잘릴지를 보고 싶어할 뿐이었다. 그리고 상국에는 사국 사람들을 물리친 북명왕이 있기에 다들 역적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으며 되레 연왕이 왜 역모를 일으키
무상이 아니라는 말에 연왕은 회왕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화들짝 놀란 회왕이 변명하려던 그때, 연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회왕일 리는 없어.”회왕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 연왕의 태도에 기분이 조금 묘했다.한편, 연왕은 당연히 회왕을 의심할 리가 없었다. 회왕은 무일푼으로 연주로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진성에서도 아무런 성과도 따내지 못했으며 사온의 비교 대상이 될 자격조차 없었다.회왕이 연주에 온 뒤로 연주 백성들은 회왕을 만나면 겉으로는 왕야라고 부르며 인사를 올리긴 하지만 뒤에서는 다들 그를 만만하게 여기고 아니꼽게 생각했다.때문에 회왕은 절대 마총우를 명령하지 못한다.조금씩 차분해진 연왕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다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총우 그자가 귀순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무너트리고 싶어서 일부러 꾸민 짓인가?”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무상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마총우가 귀순한 건 절대 아닐 것입니다. 왕야께서 격문을 보낸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저희 병력은 대여섯 군데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전의하는 데만 6개월 넘게 걸렸는데 조정에서 절대 쉽게 조사해낼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조정에서 마총우 그자를 찾아서 귀순 시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날 일부러 무너트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네. 그럼 그자가 누구일 것 같은가?”연왕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연왕이 몇 년 동안 끌어 모은 사람들 중에 황제의 친인척과 세도가들도 있지만 친왕은 연왕과 회와 두 사람밖에 없었다.연왕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상대가 없었다. 연왕의 부하들 중에서 황제의 친인척들이 제일 무능하고 멍청했으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종합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가장 의심되는 상대는 여전히 무상이었다.하지만 역모의 마음을 품은 연왕이 무상을 끌어들이고 나서 지금까지 무상은 강한 충성심을 보였고 심지어 평소에 연왕에게 쓸만한 제안도 가장 많이 하고 계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