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부의 지하감옥에서 나온 고부진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측청에 이르니 장공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송석석을 만나 그들의 계획을 알아내 지하감옥에 올 기회를 얻게 되었고, 봉아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전할 수 있었기에 지하감옥을 벗어나 후원에서 함께 거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을 장공주에게 알렸으니 이는 그가 이미 고청란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었다.그는 현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발을 빼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고후부와 대장공주부는 단단히 엮여 있어 장공주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측청에 들어서니 장공주가 곁을 지키던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앉으시게.” “감사하옵니다, 공주님.” 장공주는 차를 들어 천천히 마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부진 또한 침묵을 지켰다.“그녀를 보았으니 이제는 안심하였겠지.” 장공주가 차 거품을 불며 무심하게 말했다.“주신 약은 감사했습니다.” 장공주는 그를 한 번 쳐다보았다. 비록 몇 가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 위선적인 남자의 모습에 참지 못하고 지적하곤 하였다. “또 왜 그러느냐? 림봉아가 그리도 걱정되서 그러느냐? 이제 그만 좀 하거라! 그 두 아이를 조종하려고 하는 거짓이란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고부진은 그저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장공주의 비아냥에는 침묵이 가장 좋은 대응임을 알았던 것이다.“송석석과는 자주 만나서 더 많은 정보들을 끌어내도록 하거라. 또 10월 15일 날의 계획을 흘려 그녀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일 것인지 자세히 알아내거라.” “알겠습니다. 제가 라나더러 만남을 주선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부진이 대답하였다. “수연과 방시원의 혼사는 너의 어머니에게 재촉하라. 지체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그러자 고부진이 잠시 머뭇거렸다.“방시원이 주아를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결국 닭이오니 어찌 봉황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녀에게서는 대가의 아우라가 느껴지지
그러자 장공주는 손을 들어 그더러 물러가도록 했다.그녀가 고분진의 눈빛 속에 감춰진 혐오를 못 봤을리는 없겠지만 그럴수록 그와 고후부는 영원히 그녀의 노예임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했다. 고부진이 떠난 뒤, 그녀는 바로 방마마를 불렀다. "오늘 밤, 부마가 올 테니 일찍 불을 켜고 향을 피우거라. 방에 들기 전 피임약도 잊지 말거라."방 마마가 대답하였다."예, 알겠사옵니다."눈을 감고 있었던 장공주는 어딘가 불안해 보였기에 방 마마는 물러가지 않고 한참을 망설이며 서 있었다. "부마와 가까이하기를 원치 않으시면서 왜 억지로 하시려 하십니까?"장공주께서는 눈을 뜨지 않고 거의 들리지 않는 한숨을 내쉬시며 입을 열었다."갑자기 한 사람이 그리워서이다.""부마는 부마고 그 사람은 그 사람입니다. 매번 관계를 가진 후 공주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방마마는 그녀의 유모로서, 집안에서 지위가 매우 높아 이와 같은 말은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었다.결국 눈을 뜬 장공주는 조롱어린 눈빛으로 변했다."너는 정말 내가 재미 하나 보려 이런다고 생각하느냐?" "노비는…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그저 공주를 걱정할 뿐이옵니다." 방 마마는 재빨리 손을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두 분은 서로를 혐오하고 있습니다. 평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를 떠시면서 관계를 가지시니 스스로를 너무 괴롭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옵니다."장공주는 몸을 살짝 일으켰다. "너는 내가 자식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느냐?" 이 질문에 방마마는 깜짝 놀랐다."자식을 갖고 싶으신 겁니까? 군주를 낳으실 때 다시는 낳지 않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예전에는 그리 생각했지만, 황형이 성공하게 된다면, 내 가업은 누가 이을 것이냐? 가의 군주도 자식을 두지 못하니, 평양후에게 돌아갈 것 아니야?" "자식을 두고자 하시면서 어찌 부마께 피임약을 먹이시는 겁니까?" 방 마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그러자 장공주가 냉소를 지어 보였다."내가 어
하지만 장공주는 담담하게 웃었다. "뭐가 그리 급한 것이냐? 아직 납치하지 않았고 다만 명확히 알아보았을 뿐이다. 구 월 삼십 일에 진성을 떠나 수주로 간다고 하더구나. 그때 마부와 하인 모두 공주부로 데려와 먼저 지하 감옥에 가두어 둘 것인데 누가 그들이 사라졌다 할 수 있겠느냐? 한의절이 지나고 거사를 치러도 늦지 않다."방 마마는 가슴이 조여왔다."송회안은 공주님께 아무런 감정도 없었는데 왜 꼭 송씨 가문의 자식을 낳으려 하는 것입니까? 부마가 나약하나, 결국 엄연한 공주님의 남편이지 않습니까?"장공주는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가슴 깊이에서 우러나오며 씁쓸함이었다.그녀는 눈을 감은 채 태양혈을 만지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무정하기가 이를 데 없군. 나와는 모든 연을 끊으려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송씨 가문의 아들의 낳아 그가 저승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게 할 것이다!"그러자 방 마마는 답답한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죽은 자에게 화풀이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아들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원하셨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테지요. 왜 이제 와서야 아이를 낳겠다고 하시는 겁니까? 월경도 불규칙하시니 임신이 가능한지도 미지수입니다. 제발 자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죽은 자는 그저 죽게 내버려두시고 인제 그만 잊으시도록 하고 그를 잊으시도록 하고 다시는 생각하지도 마십시오.""나라고 생각하고 싶겠느냐? 매일 밤 꿈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장공주가 갑자기 눈을 떴다. 그 눈 속에 활활 불꽃은 분노 같기도 젊은 시절 송회안을 바라볼 때의 뜨거움 감정 같기도 했다. "그가 나를 편히 지낼 수 없게 만든 것이고, 죽어서도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그의 눈물이 앞을 가렸고 어깨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제하고 있는 중이였다. "나도 가끔은 그를 미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가 죽었을 때 나는 누구보다도 슬퍼하였고 세상에 나처럼 그를 사랑하는 이는 없었
황혼이 깃들자, 공부에서 나온 왕준이 마차에 타기 전 차부에게 말했다.“먼저 장락거리에 가자. 부인이 이틀 전에 장 씨 만두 먹고 싶다 하였으니 조금 사야겠다.” “장사할 시간은 아닙니다만.”장 씨 완탕은 저녁이 되어야 장사를 시작했다. 상국의 진성은 번화하여 저녁 이후 장락거리와 북안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곧 시작한다. 잠시만 기다리면 된다.”그러자 마부가 웃으며 말했다.“부인님을 아끼시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습니다.” 왕준이 손에 쥔 부채로 마부의 머리를 가볍게 응징했다.“어여쁜 그녀가 나에게 시집왔고 아들까지 낳아주었으니, 그녀를 잘 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 너 또한 애련이를 잘 대해주어야 한다.” 마부도 웃으며 말했다. “알겠나이다.” 마부는 노비가 낳은 아들이고 애련은 어렸을 적에 들인 아이로 2년 전 왕준이 그들을 혼인 시켜주었다. 애련은 현재 이 부인 남 씨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마차가 장락거리의 끝에 이르니 노점상들이 하나둘 장사를 시작했다. 장 씨는 나이가 많아 동작이 느려 왕준은 마부와 함께 그를 도왔다.왕준을 본 장 씨가 웃으며 말했다.“왕 대감께서 부인을 위해 만두를 사러 오셨군요?” “집 부엌에서 만든 것은 입맛에 맞지 않다며 그대가 빚은 만두만 고집하는구나.” 그러자 장 씨가 부끄러운듯 웃으며 손을 저었다.“이리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가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준과 마부는 멈추지 않았다. 가판이 설치되자 장 씨는 곧바로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만두피와 속은 미리 준비해 왔다.“곧 해드릴 테니 앉아 계시지요. 이번에는 얼마나 사시겠습니까?” “다섯 근으로 하겠다.” 그러자 장 씨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대감과 부인 모두 정말 좋은 분들이십니다. 선한 자는 반드시 좋은 대가를 받지요.” 그는 오랫동안 노점을 지켰지만, 장사가 그리 잘 되지 않았다. 만두가 맛이 없어서가 아닌, 그의 동작이 너무 느렸고 도와주는 이도 하나 없어 손님들이 기다리기를 꺼렸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가 상에 올려지자,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만옥은 먼저 왕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대감께서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다음에 가게에 오시면, 더 저렴히 드리겠나이다.”왕준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나 저렴합니까?”눈을 깜빡이던 만옥이 교묘하게 물었다.“대감께서는 얼마나 저렴하길 바라십니까?”만옥 모습은 매혹적이었고 약간의 천진함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눈을 깜빡일 때마다, 입술의 미소가 피어나는 모습은 마치 밤하늘에 피어난 한 송이 난초와 같아, 정직한 군자라 하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왕준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듯, 오로지 차가 얼마나 저렴할지만 걱정하였다. “손대감과 비슷하게 쳐주시면 됩니다.”만옥은 웃음을 터뜨리며 눈웃음을 지었다.“그럴 수는 없지요. 대감께서 만두를 나누어 주신 은혜는 반드시 성심껏 보답할 것입니다. 혹 가게에 직접 오셔서 1근 구입하시면 반 근은 더 드리지요. 어떠십니까?”왕준이 기쁘게 대답하였다. “그리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그러자 만옥이 환히 웃어 보였는데, 마치 고요한 계곡의 난초처럼 차갑고도 아름다웠다.그러나 왕준의 시선은 다시 장 씨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잘 먹지 못하는 모습이 계속 신경쓰였다. “배고프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찌 드시지 않으시나요?”그녀의 가녀린 손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자, 석류빛 귀걸이가 반짝여 더 아름다워 보였다.“대감을 뵈어 기쁜 나머지 잠시 배고픔을 잊었습니다.”왕준이 미소 지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배가 고픈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 일찍 고하지 않았단 말인가? 정작 양보하니 이제는 배고프지 않다고 하다니.. 내 시간만 낭비했군.’만옥은 매우 우아한 자세로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얇은 입술을 벌려 작은 만두를 두 입에 나누어 먹었다.그녀를 자세히 살펴보던 왕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피가 얇아 크기도 작았던 장 씨 만두를 그의 아내는 한입에 두 개를 먹은 반면, 만옥은 작은 만두
왕준은 만옥이 그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만약 그 정도로 영리하고 눈치가 빨랐다면, 단순히 공부랑중의 자리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모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만두를 하인에게 넘겨주며 저녁을 준비하게 했다. 그러면 모두가 따뜻한 만두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최 씨가 슬쩍 농담을 했다.“이토록 늦었던 이유가, 만두를 사러 간 것이었군요. 그대는 이제 오로지 아내뿐이라 어머님조차도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기다려야 하는 군요.” 그러자 왕준은 재빨리 사죄하며 몇 마디 불평을 덧붙였다. “일찍 올 수 있었는데, 장 씨가 너무 느리고 아가씨까지 끼어들며 배가 고프다고 한 탓에 늦어졌습니다.” “아가씨?” 아가씨라는 말에 최 씨가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왕준이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갑자기 나타난 만옥 아가씨란 말에 의아해했다. 하여 그녀는 자세히 물었다. “어떤 아가씨 말입니까?” “찻잎을 파는 가게의 주인이고 전에 손대감의 연회에 찻잎을 배달하러 오던 사람입니다. 손대감이 소개했고 철주를 보내 사게 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 들고 왔던 차잎이 바로 그것입니다.” 남희도 거들었다. “맛은 괜찮았는데, 가격이 좀 비쌌습니다.” 남희는 상인 출신으로 물건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최 씨가 그녀의 가게를 물은 뒤 말했다. “식사하시지요. 어머님께서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왕청여의 일로 앓아누운 노부인은 겨우 회복하고 있었으나, 많이 드실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만두는 괜찮았다. 만두가 삶아지고 반 그릇을 뚝딱 비웠다.“장 씨 만두는 참으로 맛나구나. 남은 것이 있으면 그대로 두었다 내일 아침 식사로 하는 것이 좋겠다.” “내일이 되면 맛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남은 것들은 하인들에게 나누어 주시지요.” 그러자 남희가 말을 덧붙였다.“내일 며느리가 일찍 일어나 죽을 끓여드리겠습니다.” “알겠다.” 멍하니 있던 노부인은 젓가락을 내
운익각 비둘기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소식을 주고받았다. 며칠이 지나 한의절 전날 저녁에 진성에 도착한 홍시는 소식들을 정리하여 하나의 서신으로 엮어 밤에 북명왕부에 보냈다. 홍시에게서 받은 서신을 시만자는 열어보지도 않은 채 서재로 달려가 염 선생이 먼저 열어보도록 하였다. 이는 염희진에 대한 일이므로 염 선생이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이럴 수가.. 역시나 음모였군요! 생명을 구했다는 일은 없었네요. 모두 정교히 설계된 것이라니요.” 편지를 건네 받은 사여묵이 대강 살펴보더니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방해꾼들은 현지의 악당들이고 돈을 먹은 것이다. 이를 조종한 이는 옹현 최대의 권세가, 즉 장공주이고 옹현에 가면 거기에 머물군 하였지. 당신이 장공주를 조사하라 하였던 것이 잡기단이 해산하기 전후의 일은 아니었소? 그녀는 아마도 그들의 공연을 보았고 거기서 염희진을 보게 된 것이라 생각하오. 마적들도 조사해 보니, 옹현의 관군이었고 염희진이 장공주를 따라 옹현을 떠난 뒤, 반주는 죽었다.” 그 말에 송석석의 얼굴이 미세하게 변했다.“어찌 죽은 것입니까? 조사하였습니까?” 사여묵은 편지를 움켜잡고 냉랭하게 말했다. “굶어 죽었다. 두 다리가 부러진 채로 작은 방에 버려졌고 시체가 썩기 시작했을 때 이웃이 발견하고 관에 보고하였소.” 급기야 시만자가 분노했다.“그 독한 년이 치료도 해주지 못할망정 다리까지 부러뜨린 거군요. 그렇게 홀로 굶어 죽게 내버려두었다니 참으로 잔인하고 악독한 년입니다.” 화가 치민 송석석 또한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염희진은 그를 위한 은을 남겼기에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았다면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지요.” 화가 난 시만자는 얼굴이 붉어졌다. “어찌 이런 독한 여인이 있을 수 있단 밀입니까? 염희진은 어찌 이리도 독한 여인을 믿을 수 있었단 말입니까?” 송석석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는 염희진을 원망할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옹현에서 은혜를 베풀어 온갖 명성을 얻은 장공주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
방씨 가문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 장공주가 또 여러 번 재촉하자 고후부인이 직접 방씨 가문에 찾아갔다.방씨 가문에 가서 물어보니 방시원이 수주에 예전 치석 정찰대의 왕오를 찾으러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오에게 사고가 생겨서 방시원이 제씨 가문의 양아들 제방과 급히 갔다고 했다.오씨가 미안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작에 결정했어야 하는 일인데… 시원이가 굳이 전우를 만나고 와서야 결정한다고 하니.. 시원이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전 사씨 아가씨가 마음에 쏙 든답니다. 아시다시피 그날 사씨 아가씨를 뵀었는데 정말 후광이 보였다니깐요? 하루 일찍 그이를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사옵니다.”오씨의 진심 어린 태도와 그날 오씨가 정망 사씨 아가씨를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린 고후부인은 자연스레 이 말을 믿었다. “시원이가 지금 진성에 없지만 그래도 그날 서로 만났잖습니까? 그날 돌아와서도 마음에 드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까? 만약 시원이도 좋다고 하면 혼사를 일찍 정하시지오. 그러면 저도 이제 사씨 아가씨의 혼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요..”고후부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게다가 혼인 문제는 부모의 뜻이 중요하니, 시원이가 싫다고만 하지 않는다면 시원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오씨 부인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오씨가 잠시 생각한 후 답했다. “언니의 말도 일리가 있네요. 이렇게 하는 건.. 제가 시간을 봐서 둘의 사주팔자부터 확인하고 별문제가 없으면 정식으로 사람을 보내 청혼을 하겠습니다.”고후부인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장공주가 계속 사람 보내 재촉해서 짜증이 난 상태였다. “아이고, 내가 결혼을 재촉하는 것 같군요.. 그런데 사씨 아가씨의 나이도 어리지 않으니깐요. 만약 댁에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하루빨리 다른 집도 알아봐야 하고, 그쪽에도 답변을 해야 하지요. 그래도 이제 정해졌으니 다행이군요. 저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겠군요.”오씨도 공감하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시원이 혼사 때문에 저도 속을 많이 썩였지요.. 그래
정말 형부에 눌러 앉으려는 건가? 신기하기도 하지. 보통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형부라는 곳을 떠나는 게 정상인데 왜 아직도 형부에 붙어있는 걸까?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왜 일까요?""모르겠소. 오늘 이 대인이 사건 기록을 전하며 말했는데 전북망이 유실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에 밥도 한 끼만 먹으며 매일 거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소. 원래는 하루만 있을 거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예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였소.""정말 이상합니다. 혹시 직위마저 포기한 겁니까?" 황제의 처분이 아니라는 말에 송석석도 바로 화제를 바꿨다. "협상 중에 일어난 일들을 폐하에게 보고한 후, 폐하는 조사하지 않으셨습니까?"정영수의 암살 시도는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향병이 장공주에게 독을 준 일은 예전에 비주 사건과 똑같은 독이었으므로 황제도 연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조사는 반드시 할 거요. 아마 오월이가 조사할 것 같소."대리사에서는 비록 반역 사건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일이라 황제는 대리사에게 조사를 맡기지 않을 생각이었다.보주가 들어와 남은 음식을 치우자 궁녀 영씨가 말했다. "왕야님, 왕비님, 목욕은 일찍 준비하셔야 합니다."최근 협상 때문에 사여묵이 살이 빠진 것 같아 궁녀 영씨는 심히 걱정하고 있었다. 협상이 끝났으니 이제는 잘 회복해야 하는데 말이다. 사여묵은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송석석의 손등에 손을 올리고 새끼손톱으로 송석석의 손목 피부를 스치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빨리 준비해야겠소."설마 이 동작은…?송석석의 얼굴은 즉시 빨개졌고 귀끝까지 붉어져 급히 손을 뺐다.궁녀 영씨와 보주도 있는 데 왜 이리 가벼운 행동을 한 거지?궁녀 영씨는 그 모습에 몰래 웃으며 뒤돌아섰고 보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송석석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진 이유를 궁금해했다.보주는 의아한 듯 궁녀 영씨의 뒷모습을 한 번 쳐다봤다. "궁녀 영씨는 왜 웃으시는 겁니까?"송석석이 급히 일어서며 말했다. "아무것도
송석석이 말했다. “나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지금은 아직 그 단계가 아니니 그 문제는 나중에 고민하자꾸나. 정말 안 되면 다른 곳에 팔아버리면 그만이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첫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는 것이야.”“그래,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여학은 더 힘들지 않겠느냐?”“아니다, 여학은 자리가 늘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송석석이 말했다.그러자 시만자가 턱을 괴며 말했다. “그래. 기분이 좋지 않으니 오늘 밤 네 제자들에게 추가 훈련을 시켜야겠다.”송석석이 가볍게 웃었다. “시 사부, 어서 공지를 내려라. 네 제자들은 무공에 대한 열정이 아주 대단하더구나.”시만자도 웃으며 말했다. “장기문이 제일 부지런하다. 이 녀석은 항상 최선을 다해 발전도 빠르지. 무공을 배우기에 정말 좋은 자질이야. 어릴 때 사부를 만났다면 지금쯤 무공이 얼마나 뛰어났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야 배우는 걸 보니 조금 아쉬울 뿐이다.”그 후, 송석석은 평서백부로 향했고, 시만자는 가죽 채찍을 들고 네 제자들에게 추가 훈련을 시켰다.최씨가 송석석의 말을 듣자마자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송석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부인이 도와주시니 이제 마음이 놓입니다.”“여인은 살기가 너무 힘드니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복을 쌓는 일이지요.” 최씨는 깊은 슬픔이 깃든 눈빛으로 말했다. 지난번 만났을 때는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부인, 무슨 일이 있으신겝니까? 괜찮으시면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최씨도 그녀를 여러 번이고 도왔기에 그녀는 진심으로 최씨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최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몇 가지 작은 문제가 있긴 하다만 왕비님께 걱정을 끼칠 일은 아닙니다.”송석석도 더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그때, 하녀가 급히 뛰어와 말
소진 소주방은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언제든 사람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덕회 부인은 다과회를 열어 이 사실을 알렸고 곧 백성들의 입에도 소주방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록 말은 많았지만 이혼당한 부인 중 누구도 소주방에 발을 들이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시만자는 의아해하며 홍시와 함께 조사를 진행한 끝에 많은 이혼당한 부인들이 암자에 머무르며 고된 일에 시달렸고, 심지어 때로는 끼니조차 거르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친정으로 돌아간 여인들도 있지만 가족들에게 시달리며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3월 10일 십자리강에서는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경조부의 조사 결과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이혼당한 자수공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시만자는 참을 수 없는 마음에 곧바로 송석석을 찾으러 경위부로 달려갔다.송석석은 다급히 달려온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이 일은 본래부터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 소주방에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이유는 모두가 첫 번째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소주방에 들어가면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가 이혼당한 부인임을 알리는 셈이 될 테니. 그걸 이겨내기 힘든 것이야.”"소주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혼당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시만자는 속이 상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녀는 소진 소주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녀들을 위해 살길을 마련해 주려 했지만 기꺼이 죽음을 택하면서도 소주방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려무나.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도 알고 있었지 않느냐.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고 강에 투신한 그 여인도 아마 절망한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그래도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한 일인데 왜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걸까." 시만자는 답답함과 좌절감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송석석은 그녀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만지며 위로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우리가 그들
안태부와 목 승상은 왕부에 남아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음식은 매우 푸짐했고 좋은 술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양 마마는 손수 장수 찐빵을 만들었는데 그 위에 찍은 붉은 점이 마치 눈 위에 떨어진 한 송이 붉은 매화처럼 보였다.소 대장군은 무척 기뻐하며 술자리를 즐겼다. 식사 중 그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전 노장군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목 승상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때 내가 전 노장군을 생각해 전북망의 중매를 서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오. 두 사람이 원수가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소. 정말 후회스럽군.”"사람마다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오."안태부가 말했다. 그러고는 소 대장군을 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젊은 사람들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몸이나 건강하게 지키며 자손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게 좋지 않겠소?"이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지금의 황제는 젊고 기반이 불안정하며 또 일부 노신을 새로운 신하로 물갈이를 할 것이 뻔했다. 세월이 바뀌면 세상도 변하는 법이니 이미 물러났다면 그저 평범한 노인으로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소 대장군이 웃으며 말했다. "태부의 말씀에 일리가 있으니 그리하는 것이 맞을 것이오." 이젠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도 이제 나이를 먹어 성릉관을 지키긴 힘들었다. 다행히도 현재 총사령관 자리는 삼랑이 맡고 있으니 당장 무장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소가군은 여전히 성릉관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그들은 한껏 술을 마시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목 승상은 소 대장군의 손을 잡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번 이별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몸 건강히 지내게나, 친구.""자네도 몸조심하게!" 소 대장군은 공손히 인사하며 송별했다. 비록 술을 많이 마셨으나 여전히 산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이었다.사여묵도 소 대장군과 함께 그들을 배웅했는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남씨가 란이의 손을
북명황실에 도착한 란이는 외조부와 남씨를 보더니 눈물을 참지 못하고 무릎을 꿇어 큰절을 올렸다. 소 대장군과 남씨는 무의식적으로 문밖을 바라보았으나 한동안 아무도 보이지 않자 잠시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하지만 그들은 금세 다시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남씨는 웃으며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바보 같은 것, 대체 왜 울고 있느냐? 외조부를 무사히 만났으니 기쁜 게 아니더냐?"그러자 란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기쁩니다, 너무 기뻐서 그러는 겁니다."소 대장군은 외손녀가 겪은 고난을 알기에 눈가에 연민이 가득했다. "란이야, 어서 이리 오렴. 어디 찬찬히 보자꾸나."소 대장군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듣자, 순간 어머니의 냉담함이 떠올라란이는 가슴이 아려 눈물이 다시 흘렀다. "외조부님, 란이는 석석이 언니가 도와주고 있어서 괜찮습니다."소 대장군은 송석석을 한 번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도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촌동생을 돌봐주고 있었던 것이다."너희가 서로 도울 수 있다니 외조부는 정말 기쁘다. 앞으로도 그렇게 서로 의지하거라.""예, 외조부의 말씀 꼭 명심하겠습니다." 송석석과 란이는 동시에 대답했다. 그녀들은 서로를 한 번 바라보더니 이별의 슬픔을 억누른 채 최대한 밝게 웃어 보였다.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 대장군은 묻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그가 머뭇거리는 모습에 남씨가 란이에게 물었다. "란이야, 네 어머니는 왜 오지 않은 것이냐?"란이가 대답하려는 순간 사여묵이 목 승상과 안태부를 모시고 들어왔다. 그러자 소 대장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안태부, 목 승상, 모두 오랜만이오. 그간 모두 무탈하셨소?"안태부는 예를 갖추며 인사하고 목 승상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왔다.그는 미소를 지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소 대장군, 잠시 실례하겠소."송석석은 남씨와 란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 후 바로 자리
란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외조부께서 내일이면 성릉관으로 돌아가십니다. 연세가 많으시니 이번에 뵙지 못한다면 아마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게다가 이번 생신은 혼자 서쪽 별당에서 보내셨다고요. 어머니께서 함께 가셔서 오래도록 건강하시라고 축복해 드리고 싶지 않으십니까?”하지만 회왕비는 여전히 눈물을 닦으며 걱정할 뿐이었다. “아니야, 나는 못 가겠다. 게다가 그날 석석이가 찾아뵙지 않았을까?”란이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어머니,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날 외조부님 생신에 언니는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협상이 시작되지도 않았고 폐하께서도 아직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런 부적절한 시기에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회왕비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울먹였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것이냐? 어차피 대단한 날도 아니고 이제 와서 생일상 한 번 올려드린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 않느냐? 네외조부님께서 막 돌아오셨을 때 물론 나도 찾아뵈려고 했다. 하지만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누가 막아서 돌아와야 했으니,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요즘 들어 마음의 평정을 잘 유지하고 있었던 란이었지만, 이 말을 듣고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잠시 후,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실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그럼 저도 더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단지 마음이 여리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냉정하실 줄은 몰랐습니다.”그러자 회왕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거의 세상이 무너지듯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를 한 번 뵙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더냐? 네가 냉정하지 않다면 어째서 네 어미가 이렇게 힘든 처지에 놓인 건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 네 부왕께서 나를 버리셨다. 집의 금은보화를 다 가져가 버렸어. 나는 이제 가진게 아무것도 없단다.”란이는 자리를 뜨려다가 어머니가 이토록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설득해 보려 했다. “부왕의 일은 따로 알아보면 됩니다. 그게 어머니가 외조부를 뵙는
저녁 식사 후, 소 대장군과 사여묵은 오랫동안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송석석은 처음에 들어가서 듣고 싶었지만 소 대장군이 남자들끼리의 이야기니 그녀가 들어오면 불편할 것 같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만 했다. 결국, 송석석은 평 사저와 대사형을 찾아갔다.저녁 식사 중에 사숙은 자신도 매산으로 돌아갈 예정이니 함께 가자며, 특히 대사형에게 엄격히 명령하고 돌아가도록 했다. 대사형이 왕부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와 왕부가 소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사실 대사형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조정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사숙은 그런 인물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또한 그의 제자 사여묵에게 해를 끼칠까 우려가 되어 그들에게 반드시 왕부를 떠나라고 엄숙하게 지시했다.평 사저는 뒤에서 몰래 사숙은 일이 필요할 때만 부려 먹고 일이 끝나면 귀찮아 한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평 사저는 평소에 남을 험담하는 일이 없지만 유일하게 사숙에 대해서만은 뒷말을 하였는데, 그것도 직접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중얼거릴 뿐이었다."정말로 돌아가야 합니까? 며칠 더 머무르실 수는 없습니까…?" 그러자 송석석이 사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물었다."돌아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 사숙님이 명령을 내리셨잖니." 평무종은 어린 사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사실 우리가 오래 머무는 것도 좋지 않다. 평소에도 사부님은 우리가 자주 너를 찾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으니 말이다. 우린 강호인이라 왕부에 강호인이 많이 드나드는 것도 좋지 않고, 너에게 민폐가 될 것이다.""전혀 민폐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전 그저 모두가 제 곁에 있어 주는 게 좋습니다!" 송석석이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사숙님 혼자만 돌아가라고 하십시오."그러자 평무종은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조용히 말하거라. 사숙님께 들키면 나중에 벌을 받을 것이야."송석석은 고개를 들어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왕부에선 사숙님이 저에게 벌주지 않을 겁니다.
시만자는 원래 그들의 몸에 더 많은 구멍을 뚫어줄까도 생각했으나 보주의 말을 듣고 멈추기로 했다. 몇 번 더 찌른다면 피가 너무 빨리 흘러 그들이 너무 쉽게 죽을수도 있어서였다.송석석은 조상 묘지 앞의 작은 사당에서 향을 가져와 불을 붙여 향로에 꽂았다. 그러고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무릎을 꿇고 세 번 큰절을 올렸다. 그녀는 절을 올리면서 먼저 떠난 가족들이 저세상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사여묵 역시 향을 피우고는 그녀 옆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는데, 송석석이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있어 그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사여묵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범인이 이미 처형되었으니 장모님도 저세상에서 이제는 편히 쉴 수 있을 것이오.”송석석은 그들이 정말로 안식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비록 복수는 했지만 마음속 고통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강해지고 행복해져야만 그들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서경의 두 정탐꾼은 아직 죽지 않았으나 과다 출혈로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경 말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송석석과 시만자 등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오직 사여묵만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바로 “송구하다”라는 말이었다.그들 역시 자신의 잘못을 알지만 단지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었는데,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그동안 저지른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는듯 했다. 송구하다는 말이야말로 그들이 이 묘지 앞에서 비로소 할 말이었다.사여묵이 송석석과 보주에게 전했다. “이자들이 송구스럽다고 말하는구나.”보주는 여태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는데, 사여묵의 말을 듣자마자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시만자의 품에 와락 안겼다.“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송구스럽다고 해서 이 모든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보주는 목이 찢어질 듯한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단지 송구하다는 말로 모든 죄
일행은 이상서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고 송석석은 내내 보주의 손을 놓지 않았다.그리고 곧 두 명의 서경 정탐이 끌려 나왔는데 그들의 옷은 이미 너덜너덜해지고 피가 묻어있었으며, 얼굴은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어 있었다. 그들은 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몸이 앞쪽으로 쏠려 거의 넘어져 엎어질 지경이었다.보주는 눈에 핏대를 세운 채 그런 그들을 노려보았다.그녀와 송석석은 단 하루도 진북후부의 멸문에 대한 복수를 잊은 적이 없었다.이제 대세는 정해졌고 그녀도 마침내 가족과 송 부인 등에게 복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녀의 가슴 속에 있던 슬픔과 분노는 산을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솟구쳐 나왔다.보주는 당장 달려가 주먹과 발길질을 퍼붓고 싶었으나 이상서 앞에서 무례하게 굴어 왕야와 아씨의 얼굴을 깎아내릴 수 없었다.이대인이 말했다. “이 두 정탐은 형부에 보내졌을 때까지도 죽음을 각오한 듯 오만한 태도였습니다. 하관이 직접 고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사람들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뺨을 몇 대 때렸습니다. 그들의 몸에 난 상처도 이미 잡혀 올 때부터 있었습니다.”그러자 사여묵은 평 사저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역시나 심하게 맞은 후 여기에 데려온 것이다.사여묵은 가볍게 허리를 굽히고는, 몽동이에게 그들을 데리고 송가의 조상 묘지에 가라고 지시했다.바람에 흔들리는 등불이 그림자를 드리워 날은 앞길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몽동이는 그들을 마차 앞에 묶고 말을 몰았다. 그러던중 송가의 멸문이 떠올릴 때면 그들에게 채찍을 휘둘렀다.송가 조상 묘지 앞에 도착하자, 몽동이는 발로 그들을 묘지 앞으로 걷어찼다.보주도 그들 앞으로 달려가 주먹과 발길질을 퍼부었다. 둥글게 말아 쥔 손바닥이 뺨에 연달아 떨어졌으나 마음속의 분노와 슬픔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모두 그녀를 막지 않았고 그녀가 분노를 표출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순진했던 그녀가 이토록 광기에 휩싸인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마음 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