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498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전노부인은 송석석을 잠깐 위아래로 훑어보았는데 장군부에서 나간 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귀티와 위엄이 있어 보였다.

그녀의 눈빛은 분노와 후회, 그리고 원망과 분함 등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찼다.

전노부인과 비슷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는데 바로 전소환이었다. 하지만 전소환의 눈빛에 더 많은 건 증오와 질투였다.

그녀는 한 끝 차이로 자신이 북명왕의 측비가 될 뻔했다고 생각했다.

“재수 없어.”

시만자는 차가운 말투로 한마디 했다.

송석석은 그들을 한 번 보더니 눈을 돌려 웃고 있는 가게주인을 보며 생각했다.

‘장사하는 사람은 다르다니까. 그날 내가 그렇게 낭패했는데도 알아보다니. 하지만 이상할 것도 없지. 왜냐하면 예전에 어머니와 금경루에 왔을 때도 주인을 만났었으니까.’

그녀는 애써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별말씀은요. 저희가 3층으로 가서 장신구를 고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그러자 가게주인은 격분되었다.

“당연하지요. 왕비님과 두 아가씨께서는 절 따라오십시오. 제가 직접 세 분을 모시겠사옵니다.”

금경루에 황제의 친척, 권세 있는 대신, 세가의 귀족, 진성의 부유한 상인과 호객들이 있었지만 주인이 직접 접대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하지만 송석석에게만큼은 아주 열정적이었다.

전소환은 세 사람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예전엔 개처럼 우리 어머니께 시중이나 들더니 높은 지위에 오르자마자 인사도 하지 않는 군. 예의 없는 자식이라고!”

한녕은 장신구를 살 생각에 흥분해서 전소환의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순간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손이 멀어지자 한녕은 아래로 내려보았다.

시만자가 전소환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누구 말하는 것이냐? 돌려 말하지 말고 이름부터 말하거라.”

전소환은 그녀의 사나운 표정에 놀라 무의식적으로 왕청여의 뒤에 숨었다.

‘내가 정말 못살아. 그냥 못 본 척하면 안 돼? 그날 잔치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가 봤는데 그런 뻔뻔한 짓을 했으면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야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499화

    ‘남주 장신구? 3층의 장신구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도 된다고? 송석석은 통이 커서 예전에 나에게도 보석과 사계절용 옷을 선물하곤 했는데 말이야. 그리고 내가 시집갈 때 풍성하게 혼수를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었지. 참으로 좋았는데 말이야. 허나 이젠 다른 사람에게 혼수를 장만해주고 있다니...’ 그녀는 오늘 왕청여를 데리고 혼수를 보러 왔는데 왕청여는 3층은 물론이고 2층에도 올라가지 않고 보통의 상품만이 있는 1층에서만 골랐다. 전소환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이가 정말 크다고 생각했다. “둘째 형수, 저도 3층에 올라가 보고 싶사옵니다.” 전소환의 말을 들은 왕청여는 가슴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누이의 혼수에 돈을 보태라는 말에 화가 났지만 형수로서 한몫 낼 수 있으니 참았는데 지금은 모두 나보고 내라고 하다니!’ 금경루도 사실 왕청여가 오자고 한 게 아니었다. 이곳 장신구가 가격이 꽤 비싼 편이라 그녀는 아무 금고에 가서 전소환에게 사주려고 했지만 시어머니가 평양후부로 시집가는 것인데 너무 초라해서는 안 된다고 혼수가 조금 비싸 보여야 사람들이 왕청여가 일처리를 잘한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말을 하자 왕청여도 할 수 없이 이를 악물고 그들과 금경루에 왔다. 왕청여는 금경루에 와도 1층의 장신구만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잘 고르다가 송석석을 보더니 3층으로 올라가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왕청여는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 체면을 잃지 않으려고 잇몸을 깨물고 겨우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전소환은 오히려 때를 쓰기 바빴다. “나도 3층에 가고 싶습니다. 저희 가문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둘째 오빠가 얼마 전에 황금 백 냥을 하사 받지 않았습니까?” 왕청여는 가슴의 기복이 심해지더니 속으로 중얼거렸다. ‘황금 백냥이 써도 써도 줄어들지 않는 금산이냐?’ 그러자 전노부인도 옆에서 담담하게 물었다. “그래, 3층으로 가 보자꾸나. 많이 사는 것도 아니고 한 두 가지만 사는 것 아니냐?”그녀는 송석석이 공주에게 무엇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500화

    그러자 점원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아가씨, 차와 다과를 드시면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바로 담아드리겠습니다. 점원은 계산을 도와주며 가격을 말하지 않았다. 3층으로 올라오는 손님은 가격을 물어보지 않으니 마지막에 액수를 알려주면 되기 때문이었다. 전노부인은 장신구의 루비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그래도 옆에서 본 것이 있어 이런 루비들은 품질이 상품이라 가격이 비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샀던 작은 보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자 그녀는 왕청여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환이가 좋아하니 사주는 게 어떠냐?” 왕청여는 화가 나서 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점원이 벌써 장신구를 포장하고 있었는데 내가 어디 선택할 여지나 있었겠어?’ 박달나무에 작은 보석들이 박힌 보석함에는 세로로 여의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보석함만 보아도 값어치가 잇어 보였다. 점원은 능숙하게 포장을 한 뒤 공손히 물었다. “부인님, 이 장신구 말고 마음에 드시는 게 또 있으십니까?” 전소환은 다른 나무 쟁반을 보자 왕청여가 바로 앞으로 가서 말했다. “없습니다. 이것만 주십시오.” 그러자 점원이 말했다. “예, 감사드리옵니다. 이 여의금 사감루비 장신구는 3만 6천8백 냥입니다. 점원의 말을 들은 전노부인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뭐라고? 장신구 하나에 3만 6천8백 냥이란 말이냐?!” 그녀의 비명소리에 점원은 어리둥절해졌고 다른 방에 있는 사람들도 큰 소리에 놀라 고개를 내밀며 경멸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전노부인은 급히 손수건으로 얼굴을 절반 가린 채 왕청여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전소환은 이미 보석함을 손에 들고 왕청여를 바라보았다. 전소환도 자기가 고른 장신구가 이렇게 비쌀 줄은 몰랐다. 예전에 송석석에게 받은 보석 박힌 장신구 팔찌가 몇 백 냥 하기에 기껏해야 이 삼천 냥일 줄 알았던 것이었다. 비록 왕청여가 오늘 장신구를 천 냥어치만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평양후부와 같은 백 년 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501화

    왕청여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였고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아니옵니다, 저희는 1층을 둘러보겠습니다…”그녀는 평서백부의 적녀였기에 이곳에서 시어머니께 대꾸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억울함을 삼키며, 1층에서 고를 수 있게 해달라고 조심스레 부탁할 뿐이었다. 1층 물건들도 결코 싸지 않았고 금경루자체에 저급한 장신구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전소환은 그것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싫습니다. 전 꼭 이 세트로 할 겁니다.”왕청여의 온몸이 떨렸고, 여기저기에서 구경꾼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그들의 시선에 왕청여는 치욕스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삼사만 냥을 그녀가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혼수를 다 털어내고 심지어 방시원의 위로금까지도 그들에게 줘야 한단 말인가?이게 말이 되는가?온몸을 떨면서 서 있던 그녀는 생애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당혹스러운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재빨리 그녀를 불러세웠다.시어머니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순간 머리가 윙윙 울렸다.전노부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눈빛에는 무언의 압박이 가득했다.“어디를 그리 급히 가느냐? 점원과 함께 가야 하지 않겠느냐?”“저거...”점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돈도 주지 않고 물건도 돌려주지 않는 손님은 또 처음이었다.“소인이 부인을 따라 저택에 다녀올까요?”보통 3층 고객들은 물건을 먼저 가져가고, 나중에 수금하러 집으로 찾아가거나 그들이 사람을 보내 은전을 가져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것은 3층의 고객 대부분이 단골이거나 유명한 권세가들이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점원은 이번 일이 타소 특이한 경우라 생각되었다. 물건을 이대로 주게 된다면 왠지 은전을 제대로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왕청여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아닙니다.”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아예 방에서 나와 구경하기 시작했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왕청여였기에 그들이 그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502화

    전소환을 바라보던 주인장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는 있습니다만 이 홍보석 세트 외에도 다양한 품목이 많은데 다른 것도 한 번 보시지 않겠습니까?”전소환은 고개를 들어보니, 점원이 계축목 쟁반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한눈에 자신이 고른 세트와는 가치를 비교할 수 없는 물건임을 알아차렸다. 1층이나 2층에서 가져온 것이라 생각한 그녀는 즉시 장신구를 보호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전 꼭 이 세트를 원하옵니다.” 옆에 있던 전노부인도 발끈했다.“무엇을 더 고른단 말이냐? 이 세트를 원한다고 말했지 않느냐? 우리와 함께 가서 은표를 받기만 하면 될 것을 금경루에서는 어찌 이리도 쓸데없는 말이 많단 말이냐?” 견문이 넓었던 주인장은 이런 손님들이 금경루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3층에는 이러한 경우가 드물었다. 이는 모녀가 며느리에게 혼수를 사게 하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 가문은 다소 이상해 보였다. 나이가 많지 않은 노부인은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임이 분명했기에 이런 금전 문제는 그가 주도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옆에 있는 젊은 부인이 울상인 것을 보면 그녀가 내야 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즉, 그녀의 사적인 돈을 써야 할 가능성이 제일 컸다.두 사람은 그녀에게 강매를 요구하고 있었고, 젊은 부인은 체면을 잃고 싶지 않아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억울한 표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상황이 점점 꼬여가는 그때, 소박한 옷차림의 한 부인이 방에서 나왔다. 그녀의 표정은 온화했고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이 홍보석 세트는 제가 예약한 것이 아닙니까? 어찌 다른 사람에게 팔고 있는지요?”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왕청여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두 사람은 아는 사이였다. 부인은 이석이라 불리었으며, 형부상서 이 대감의 조카딸이었다. 그녀는 선평후 차남 장문수에게 시집갔고, 장문수는 방시원과 함께 전장에서 전사했다. 하지만 이석은 장문수가 전사한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503화

    경애하고 추모한다는 말만 들어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이 전장에서 남편을 잃은 이들로서, 이석은 왕청여를 돕고자 선의로 나섰지만, 왕청여가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석도 매우 난처했을 게 분명했다. 송석석은 상대의 신분을 듣자마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이 자리에서 말을 꺼내지 않았고, 화제를 돌려 한녕에게 어떤 것으로 선택했는지 부터 물었다.그녀는 시어머니께 드릴 선물도 사야 했다. 어머니와 함께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혜태비가 잔뜩 화 나 있을 수도 있었다. 그 이유는 시어머니가 가의 군주와 함께 금루를 운영했었고 디자인은 이곳의 것을 베꼈으니 혹시라도 민망해하실까 동행하지 않은 것이다. 장신구는 이미 정해졌고 그 외 마음에 드는 물건도 골랐으니 한녕은 형수에게 와락 안기며 형수가 세상에서 가장 좋다며 연신 외쳤다. 이 장면을 본 주인장 아들도 미소를 지었다. 방금 밖에서 본 형수와 시누이의 모습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진정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같아 보였다.그는 비록 장사꾼이지만,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무장들을 존경하였다. 송국공 가문은 소장군에서 지금의 북명왕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용맹한 장수들로, 상국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하여 주인장 아들은 그들에게 거의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물건을 팔 았고, 추가로 예쁜 장식품과 작은 선물 하면서 심지어는 직접 문밖까지 배웅해 주었다.그렇게 마차에 오른 송석석은 그제야 선평후부의 둘째 며느리 이석과 예전 두 사람을 비교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이어서 그 당시 어느 정도로 떠들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 그러나 오늘 그자의 태도를 보니 그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어." 잠시 말을 멈춘 송석석은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사실 이석이든 왕청여든, 그들이 과부로 살든 재혼을 택하든, 그 어느 것도 잘못된 것은 없어. 과부로 살면 과부로서 감당해야 할 것이 있고 재혼을 해도 감당해야 할 것이 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504화

    궁에서 돌아온 혜태비는 화청을 지나갔는데, 그녀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안에서 이야기하는 여자들 쪽은 전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때 혜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님, 돌아오셨사옵니까?” 하지만 혜태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어머니, 저와 형수가 어머니께 드리려고 선물을 사 왔어요! 어서 오세요!” 또 다른 여인이 급히 달려 나와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아부했지만 혜태비는 한녕을 차갑게 쏘아보았다.“흥! 관심 없거든?” 그러자 한녕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네…? 정말입니까? 형수님이 아주 오랫동안 고심해서 고른 것인 데도요?” “흥, 오랫동안 고심했다고?” 혜태비는 문가에 서 있는 송석석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송석석의 미소를 바라보던 그녀는 턱을 치켜들었다. “보긴 하겠으나, 나는 아주 까다롭단 걸 미리 알고 있거라.” 그러자 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 어서 오세요.” 시만자는 급히 사람을 불러 과일과 차를 준비하게 하고, 혜태비가 장신구를 감상하는 동안 오늘 있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했다. 혜태비는 가느다란 붉은 보요를 머리 위에 얹고, 살짝 흔들어 보았다. 유수의 소리에 혜태비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역시 송석석은 자신의 취향을 잘 안다며 뿌듯해했다. 그러나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기만 해서 다행이었다. 현장에 있었더라면 그 장신구를 당장 빼앗고 싶었을 터였다. 그녀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그 집안일에 엮이기만 해도 더럽다고 느껴졌다. 그들 하나하나가 창을 들고 있었고 모두 더러운 것들이 다 묻어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왕청여는 확실히 머리에 문제가 있는 듯 했다. 겨우 머리 장식 하나에 삼사만 냥이나 쓰려하다니, 온 집안이 초라함 그 자체인데 제대로 된 좋은 물건을 본 적이나 있을까?금경루의 물건들은 결코 싸지 않다. 모두 최고급이기에 가의 군주가 디자인을 베꼈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혜태비는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워졌다. 오늘 거기에 가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505화

    한편, 장군부. 오늘 밤 행랑 앞에는 등불이 하나만 켜졌고 두 개의 등불이 정원을 밝히고 있었다. 이 등들은 유리 등갓으로 덮여 있었는데, 이 유리등갓은 당시 송석석이 이혼할 때 잊고 두고 간 것이었다.곁채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웠고 모기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금경루의 점원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 곁채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는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무도 차를 내오지 않았고 불도 켜지 않은 채로 대낮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은전을 받으러 따라온 것이었으나, 장군부에 들어온 후 이곳에 앉혀졌다. 나갈려고는 했지만 이윽고 대청 쪽에서 싸움 소리와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와 그저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싸움은 30분이나 넘게 지속되었고 마침내 잠잠해졌지만, 누군가가 또 들어와서 그에게 기다리라고 말할 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엄청난 무공이 있었기 때문에 이 몇 년 동안 금경루에서 손님이 은표를 충분히 가져오지 못하면, 그가 손님을 따라가거나 은행에 가서 은표를 받아왔다. 가끔은 기다려야 했지만, 가장 길어도 향이 다 타는 정도였다. 그것도 저택이 너무 크고 주인이 매우 친절해서 좋은 차와 간식을 충분히 즐기도록 한 후 은표를 주었기 때문이었다.대부분의 경우엔 기다릴 필요 없이 잠시 앉아만 있으면 은표는 금방 받을 수 있었다. 그가 자리에 앉으면, 노비들은 항상 차를 내어주었고 장군부처럼 어두워질 때까지 차 한 잔 없이 기다리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마치 도둑의 소굴에 잘못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 하인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하인들은 그저 기다리라고만 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장신구는 이미 그들이 가져갔기 때문에 삼만 육천팔백 냥은 반드시 받아야 했다. 저녁 식사 후 목욕을 마친 전소환은 어머니를 찾아갔다. 목욕할 때 사용한 향수 덕분에 그녀의 온몸에 좋은 향기가 감돌았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506화

    전소환은 침대 앞에 앉아 콧방귀를 뀌었다. “저는 절대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시집오기도 전에 송석서과 혼수품을 비교하고 있으니 꽤 능력 있는 줄 알았습니다. 헌데 고작 몇만 냥도 내놓지 못하다니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지요. 그래도 이방보다는 낫습니다. 오라버니가 이방을 맞이할 때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습니까? 그런데도 돌아온 혼수는 약소하기 그지없었잖습니까? 그것은 황제가 하사한 혼인이었는데 말입니다.” 두 형수를 비난하던 전소한은 바로 민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큰형님은 병으로 몸져누우시더니 이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네요. 내 혼수도 아직 준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준비할지 모르겠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궁색하니까요.” 세 명의 며느리 중에 내세울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 전노부인은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그만 입 좀 다물거라.” 그러자 전소환은 무서워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등불이 그녀를 비추자, 젖살이 사져서 그런지 얼굴이 더욱 날카로워 보였다. 민 씨는 방 안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왕청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그 점원도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청여가 그 액수를 채우지 못하면 모두가 나서서 액수를 채워야 할 상황이 올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그녀의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고, 전에 송석석이 준 장신구들도 이미 절반 이상 전당포에 맡긴 상태였다.오늘 하녀가 왕청여가 미친 듯이 소리치며 난리를 쳤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알아본 결과 시누이가 금경루에서 삼만 육천팔백 냥이나 되는 홍보석 장신구를 골랐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게다가 그것을 사겠다고 한 왕청여에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왕청여가 미친 건가? 장군부의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삼사만 냥이나 하는 장신구를 쉽게 사들이다니?게다가 돈이 부족해 친정에 갔다니, 이건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이

최신 챕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81화

    향병의 행동에 장공주는 결심을 더욱 굳히고 그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겉옷을 걸친 채로 의자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내일 오후에 다시 협상을 재개할 것이니, 조건은 협상 가능하도록 하지요. 너무 고집부릴 필요는 없습니다.”수란석은 눈을 크게 뜨며 반발했다. “협상이라? 어떻게 협상한단 말이오? 설마 그들이 국경을 물러서라고 해도 그걸 가만히 받아들이란 말이오?”장공주는 이미 결심이 선 듯 단호하게 말했다. “국경 문제는 일단 보류할 것입니다. 내일이나 모레 협정을 체결하고 즉시 귀국하는 것이 목표지요.”“그건 안 되오…” 수란석이 강하게 반발하자 장공주는 그를 냉랭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의견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결정이니 불만이 있어도 모두 삼가세요.”수란석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는 소리쳤다. “이건 독단이오! 국경 문제를 보류하면 황제와 조정의 문무백관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장공주는 위엄 있는 눈빛으로 그를 단숨에 제압했다. “설명은 내가 하면 되지 수 상서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녀는 조정을 오랜 시간 이끌어온 인물로서 항상 권위와 기세가 넘쳤다. “당장 나가서 초안을 다시 작성하고 상국에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대신 국경 문제는 제외하십시오. 그리고 2년 후에 이 문제로 다시 협상하는 것으로 하지요. 나는 협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수란석은 이를 악물며 불만을 드러냈다. “나약하오, 정말 나약하오!” 그는 장공주가 서둘러 귀국하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 향병을 원망했다. “난 동의할 수 없소. 국경 문제는 분명히 해야 하오.”장공주는 화가 나 향로를 내던지며 강하게 명령했다. “당장 나가서 다시 작성하십시오.”한편, 북명황실의 의논 자리에서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단신의는 정좌에 앉았고 무소위조차도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만종문의 구성원들은 세력을 등에 업고 몸을 꼿꼿이 세우며 잘난 척했다.그러자 단신의가 설명했다. “이번에 사용된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80화

    향병은 뺨을 맞은 얼굴을 가린채 억울함과 분노를 모두 토해냈다. “장공주님. 태자 전하께서 얼마나 비참하게 사망하셨는지 잊으셨습니까? 그건 우리 서경 백성들의 영원한 고통인데 어찌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태자 전하는 장공주님의 친동생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모진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까?” 장공주가 움켜쥔 손바닥은 젖어 있었고 불빛에 비친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너는 내가 그를 위해 복수를 하지 않으려고 전쟁을 반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장공주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눈빛에 노기로 가득 찼다. 그녀는 아직 허약하지만 손을 뻗어 향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향병, 다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내 모든 계획과 절차를 너에게 말했고, 내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나를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 복수에 눈이 멀어 정세를 조금도 파악하지 않다니. 넌 경역에게 충성을 다했으니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거라. 그가 지금 상국과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겠느냐?” 그러자 향병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복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도 지금 내우외환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식량 30만 석과 소성을 요구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으니까요. 장공주님, 저희는 지금 승리로 하늘에 계신 태자를 위로해야 합니다.” 장공주는 오열하는 향병을 보며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침통함을 느꼈다.그녀는 안운여와 곽아정을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희도 향병의 말에 동의하느냐? 뒤에서 나를 모해할 생각 하지 말고 이 참에 다 말하거라.” 곽아정과 안운여는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장공주님, 동의할 수 없습니다.” 향병은 고개를 돌려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안운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운여, 너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넌 전하의 보살핌을 잊었느냐? 복수할 생각이 전혀 없다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9화

    단신의는 독충을 가져가지 않고 향로 안에 남겨두었는데 독충은 약의 피비린내를 탐내 평생 안에 있을 수 있지만 몸에서 꺼낸 독충은 오래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단신의가 말했다. “바로 향로 안에 있으니 가져가서 장공주께 보여드리거라.” 독충은 작지만 무서운 존재라 금태의는 손을 뻗었다가 허공에서 멈추고 물었다. “이 독충이 다시 인체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평무종은 금태의가 감히 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가가 향로를 들고 뚜껑을 열어 장공주에게 가져가 보여주었다. 독충을 본 장공주는 헛구역질을 하며 토할 뻔했다. 그녀는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어서야 토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반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독충은 죽을 것이오. 독충이 몸에서 나오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소.” 그러자 장공주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의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러니 결국엔 누군가가 독을 탔다는 것이겠지?” 수란석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물었다. “자백할지 본관이 직접 조사할 때까지 기다릴지 결정하거라.” 장공주는 답답한 가슴을 누르며 힘없이 말했다. “작은 외삼촌, 먼저 나가십시오. 향병, 운여, 곽아정만 남고 모두 나가거라.” 그러자 수란석이 말했다. “냉옥아, 무리하지 말고 독을 탄 사람부터 밝혀내거라. 감히 네 목숨을 해치려 하다니 간덩이가 부었지.”그러자 냉옥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먼저 나가십시오. 채희야, 사람들을 배웅해드리거라.” 채희가 그들에게 나가라고 청하자 수란석는 채희를 보고 다시 향병을 보더니 역시 향병의 혐의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 물어보고 못 찾으면 내가 직접 심문하러 가겠다.” 수란석은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들을 데리고 나갔다. 장공주는 채희에게 등잔을 두 개 더 켜라고 분부했다. 등불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자 방금 이상할 정도로 붉었던 윤기는 물러가고 눈엔 피로밖에 남지 않았다. 장공주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 앉았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8화

    총 네 마리의 선충이 있었는데 마지막 두 마리의 선은 색깔이 조금 달랐다. 피를 빨아서인지 앞부분은 붉은색을 띠었고, 뒷부분은 옅은 붉은색이었다. 이때 단신의는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네 마리의 선충이 모두 피를 빨아들였다면 장공주는 살 수 없었을 것이오.” 그가 향로를 한쪽에 놓자 사람들은 모두 한 발짝씩 물러섰다. 그들은 본 적이 없는 선충에 겁을 잔뜩 먹었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서로 바라보더니 구역질이 나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향병은 놀라서 거의 서 있지 못하고 한 손으로 탁자를 받치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신의는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 있으면 장공주가 깨어날 것이오. 금태의, 당신은 지금 가서 자공주가 아직 혈맥이 막혔는지 맥을 짚어보오.” 수란석은 멍하니 보고 있다가 금태의를 밀며 말했다. “가서 맥 짚어보거라.” 금태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맥을 짚어보더니 한참 후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심호흡을 했다. “이럴 수가? 맥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독충이 이렇게 많이 나온 걸 보면 변한 게 당연합니다.” 안운여는 침대 옆에 앉아 채희에게 따뜻한 물을 준비하라고 분부하고는 잠시 후 장공주가 깨어나면 따뜻한 물을 먹이라고 했다. 그러자 단신의가 말했다. “장공주에게 설탕 소금물을 준비하오.”그의 약상자에는 약이 아주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중 일부는 장공주가 복용하기에 적합했지만, 장공주가 깨어나기 전에는 주지 않을 것이었다. 장공주가 깨어나 그에게 치료를 부탁해야만 약을 처방할 것이었다. 채희는 서둘러 설탕 소금물을 준비했고, 당황한 나머지 발걸음이 흐트러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는데 송석석이 부축하고 나서야 제대로 설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왕비님.” 채희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처음에 그들이 기회를 틈 타 소란을 일으킬까 봐 화장실에서 장공주의 일을 북명왕비에게 알린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들이 침입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7화

    수란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 일은 그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도 향병의 문제를 발견했지만 향병이 무슨 짓을 했든 장공주가 협상에 참여할 수만 없다면 결정권은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에게는 전제가 있었는데 바로 냉옥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왜냐하면 냉옥은 그의 조카딸이기 때문이었다. 경역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냉옥은 그가 전쟁을 벌이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숨만큼은 보호해야 했다.그가 이상한 건 냉옥의 심복이었던 향병이 왜 그녀를 배신했냐는 것이었다.‘혹시 전쟁을 지지하게 된 건가? 하지만 처음엔 분명 반대했는데. 냉옥을 죽게 하기는 싫고 여기서 포기하는 것도 싫은 것인가? 이건 그녀 혼자 한 일이 아닐 것이야. 그녀에게 냉옥을 배신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있을 텐데 누구일까? 설마 황제는 아니겠지?’많은 의혹이 수란석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는 정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그는 회왕과 결탁했기 때문에 향병에게 문제가 있다고 추측한 것이었다. 향병이 줄곧 냉옥의 충실한 심복이었으니 다른 사람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수란석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평무종이 향병에게 말했다.“우리가 여기에 있는 한 독이 있으면 우리도 함께 중독될 것이다.”그러자 향병이 반박했다.“당신들이 독을 탔는데 무슨 해독제가 없습니까?”그러자 평무종이 물었다.“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우리 상국 진성에서 당신들을 독살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이냐는 말이다.”사신들도 상국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모두 금태의를 바라보았다. 금태의만 동의한다면 그들도 믿고 향을 피울 것이었다.금태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묘독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본 적도 없고 해독법도 몰랐다. 그리고 장공주가 구혼선충의 독에 중독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작은 것이 장공주를 깨울 수 있다는 것은 더욱 확신할 수 없었다.그들이 모두 말하지 않자 단신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공주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6화

    사신들은 금태의를 보고, 다시 단신의를 보더니 마음이 금태의에게로 기울은 듯했다. 단신의의 의술도 뛰어나 서경에서 명성이 자자했지만, 금태의는 장공주를 오랫동안 치료해 온 태의인 데다가 지극히 충성적이라 자연스럽게 그를 믿는 것 같았다. 평무종이 금태의의 말을 번역하자 단신의는 맥을 짚던 손을 떼고 평무종이게 말했다. “중독된 것이라고 알리거라.” “우리도 다 알아들으니 굳이 번역할 필요 없습니다.” 이때 고공이 급히 물었다. “장공주님께서 무슨 독에 중독된 것입니까?” 그러자 단신의는 송석석을 보았는데 송석석도 비주의 사건이 생각난듯 했다. 구혼선충의 독에 중독되었던 나약했던 부인이 힘이 세지고 발광했던 사건을 말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점은 그 부인은 성공적으로 조종되었고, 장공주는 혼수상태에 빠져서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금태의는 여전히 자신의 견해를 주장했다. “장공주는 원래 몸이 허약한 데다 두통 고질병까지 있습니다. 혈기와 혈맥이 막히고 두통이 심한 것으로 보아 머리에 혹이 생긴 것이 틀림없습니다.” 평무종이 금태의의 말을 단신의에게 전하자 단신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릿속에 혹이 난 건 아니지만 혈맥이 막힌 것은 맞소. 그건 장공주의 머릿속에 독충이 있어서 그런 것이기 때문인데 내가 중독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 건 독충도 독이지만 사람에게 중독되었다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소. 독충은 중독자의 심신을 방해해서 두통을 악화시킬 뿐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머릿속에 있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도 있소.” “그럴 리가 없습니다…!” 향병은 손수건을 집어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단신의를 노려보며 상국어로 욕설을 퍼부었다. “독충은 무슨,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장공주의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니요? 내가 보기엔 당신은 그저 돌팔이 의사인 것 같은데 감히 신의라고 자칭하다니. 황당하기 그지없군요.” 단신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봐 온 덕분에 한눈에 향병이 무언가를 들킬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5화

    향병은 침실로 들어가 장공주의 커튼이 걷어진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안운여를 꾸짖기 시작했다. “어떻게 외간 남자에게 장공주가 자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 그녀는 앞으로 가서 커튼을 내리고 단신의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안운여에게 가로막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진단해 봅시다.” “안운여! 너 너무 건방진 것 아니냐?” 향병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노호했다. 안운여는 출신이 좋지 않은 데다 관직도 그녀보다 높지 않아 잠깐 망설이다가 확고하게 말했다. “장공주님의 옥체보다 더 종요한 건 없습니다. 장공주님께서는 이미 두 시간이 넘도록 혼미했으니 당장이라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옥체에 큰 해가 될 것입니다.” 여관인 곽아정도 안운여를 지지했다. “온 김에 진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인데 넌 왜 계속 반대를 하는 것이냐? 내가 보기엔 넌 장공주를 걱정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러자 향병이 다짜고짜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 내가 장공주를 걱정하지 않는다니? 상국인들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잊었어? 그들이 마을 백성들을 학살한 일을 잊었냔 말이야!” 평무종은 그들의 대화를 듣더니 즉시 서경어로 반격했다. “백성들을 학살한 것은 바로 이방이다. 그것 때문에 모든 상국인들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너희 서경의 정찰이 송 씨 가문을 도륙했는데, 그럼 모든 서경인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냐?” 대학사 고공은 상황을 보더니 얼른 말했다. “장공주의 옥체가 중요하니 다들 그만합시다. 금 태의도 장공주가 왜 혼미에 빠졌는지 알아내지 못했으니 단신의에게 진단을 받아봅시다.” 그러자 홍려사경도 말했다. “그래, 그래. 이왕 들어왔으니 맥을 짚어 일단 중독의 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 이때 금태의가 말했다. “장공주님께선 중독되지 않으셨습니다.” 향병은 단신의의 얼글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금 태의의 말을 그냥 믿기로 했다. 한편, 송석석과 시만자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4화

    향병은 비록 중요한 여관은 아니었지만 장공주의 믿음을 얻었고 방금도 그녀가 극구 반대를 해서 원래 지지하던 사람들까지도 따라서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홍려사경을 비롯한 두 세 사람은 여전히 상국의 단신의를 청하는 것을 지지했다. 단신의의 명성은 서경에까지 퍼졌다. 애초에 선제의 병이 위독했을 때 조정의 신하도 단신의에게 치료를 청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선제는 스스로 상국인의 손에 목숨을 맡기기 싫다며 결국엔 포기했다. 그들은 또다시 말다툼을 벌였는데 송석석과 평무종은 상황을 보더니 단신의를 모시고 곧장 동원으로 달려갔다. “막아라!!” 향병이 소리쳤다. “저기요, 내 말 좀 들어보십시오……” 시만자는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 향병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우리도 장공주님을 위해서 이러는 것입니다. 장공주님의 시녀가 옆에 있으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몽동이도 수란석을 가로막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저 맥만 짚어보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태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얼른 들어가서 지켜보라고 하십시오.” 태의는 진작에 뛰어 들어갔다. 비록 장공주의 곁에는 두 명의 의사가 간호하고 있었지만 상국의 사람이 들어가자 태의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바로 따라 들어갔다. “놔, 이거 놔주십시오.” 향병은 시만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것입니까? 날 해치려는 것입니까?” 그러자 시만자는 그녀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런 게 아닙니다. 들어가려는 거면 같이 들어가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몽동이도 말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다 같이 들어갑시다! 모두들 장공주의 건강을 위해서 이러는 것이니 같이 들어갑시다.” 경위들도 송 대인이 손찌검을 하지 말라고 분부해서 밀치락달치락 하며 공격을 어깨로 되받아 칠 수밖에 없었다.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혼란스러웠지만 몽동이가 수란석을 잡고 있기 때문에 시만자는 힘껏 향병의 손을 잡고 동원 쪽으로 움직였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3화

    잠시 후, 평무종이 회동관 입구에 나타났는데, 혼자 온 게 아닌 것 같았다.방금 송석석이 그녀를 보았을 땐 야행복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평범한 복장을 입고 있었고 야행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사저, 무슨 상황입니까?”송석석은 얼른 마중 나가서 물었다.그러자 평무종이 답했다.“내가 장공주 방의 옥상에서 잠깐 들었는데 장공주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더라고.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시녀 몇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장공주가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사람까지 물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하더군.”시만자는 의아해서 물었다.“미친 듯이 사람을 물었다고요? 설마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요?”이때 송석석이 다시 물었다.“혹시 정원에서 들었습니까? 그들이 뭐라고 하던가요?”“그들이 정원에서 다투고 있었는데 태의나 단백부를 모시러 가자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어. 하지만 난 옥상에서만 듣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하고 지지하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그럼 신의를 모시러 간다는 의견에 반대하던 사람 중 여자의 목소리가 있었습니까?”“있었다.”평무종이 몽동이를 만났을 때 이미 여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향병은 아니었다.”“반대하던 사람이 많았습니까?”“서너 명인 것 같았는데 그들도 침착하게 분석할 뿐이지, 무작정 반대했던 건 아니다. 유독 한 여자의 반대가 심했는데 그녀는 우리 상국의 태의와 의사들은 그들이 수행하는 어의보다 못하며 가해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지.”“그러니까 그녀를 따라 반대하던 사람들은 장공주가 자신들 때문에 문제가 생겨 책임을 질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군요.”평무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고 할 수 있지.”그러자 송석석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럼 쳐들어갑시다!”이때 몽동이가 걱정하며 말했다. “왕야님께 알려서 결정지으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아니, 이건 내 개인적인 결정이지 왕야와는 상관없는 일이야.”송석석은 밤을 지키고 있는 경위를 불러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