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석은 오 대반을 배웅한 후 염선생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는, 곧바로 시만자와 오사형이 준비한 모닥불에 둘러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는 자리에 합류했다.남풍관의 일은 염선생에게 맡겨 두었으니, 염선생이 사람을 보내 감시할 것이다.오사형과 시만자는 제제사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시만자는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믿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끊임없이 놀라워했다.왕이장은 남북을 돌아다니며 온갖 일을 겪고, 또 온갖 것을 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의아해했다.“나이가 그렇게 많고 지위도 그렇게 높은 사람이 왜 그런 곳에 가야 했을까?”그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제제사는 남풍관에서 특별히 부끄러울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단지 몇 명의 소관을 불러 시중을 들게 하고, 술을 조금 마시고 노래를 들으며 손을 만지는 정도였다.제제사는 선황제의 스승이었다. 선황제는 남색을 가장 싫어했고, 심지어 이를 깊이 혐오한 인물이었다. 그런 선황제의 스승으로서, 제제사는 선황제가 즉위한 후 자연스럽게 그와 함께 국가를 다스렸다. 또한 과거 신중하고 겸손했던 제씨 가문의 태도를 생각하면 그 역시 남색을 극도로 싫어해야 맞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는 말년에 갑자기 억압을 풀어내기라도 하듯 모든 걸 무시하고 남풍관으로 드나들었다.송석석은 자리에 앉아 고구마 하나를 집어 들어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이리저리 던지며 식혔다. 이를 본 왕이장이 손을 뻗어 고구마를 가져갔다. 후후 숨을 불어 열기를 식힌 다음 두 손으로 살살 굴려 껍질을 벗겨 송석석에게 건넸다.“빨리 먹어. 먹고 몸 좀 따뜻하게 해.”송석석은 활짝 웃으며 감사 인사를 하고는 말랑말랑해 보이는 고구마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며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하아, 하아 숨을 불어가며 겨우 다 삼켰다.시만자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왕이장을 쳐다봤다.“다정한 면도 있었네?”“뭐 어려운 거라고. 너도 하나 줄게.” 왕이장은 두 손가락으로 고구마
왕이장의 말에 시만자가 끼어들며 말했다."사실 나도 네가 남자도 여자도 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칭찬은 고맙지만, 남자도 여자도 다 아니야. 고마워." 왕이장은 느긋하게 기지개를 켰다."너희끼리 천천히 고구마나 굽고 아가씨들끼리 얘기나 나눠."그는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평소 그의 걸음걸이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때로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듯 걷고, 때로는 성큼성큼 걸어 나가곤 했다. 하지만 지금 뒤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느껴지자 허리를 곧게 펴고 마치 군인처럼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그러자 시만자가 문득 어떤 일이 떠오른 듯 말했다."참, 만두랑 신신이 설을 지내러 올지도 몰라. 전에 편지가 왔었거든. 그런데 아직 모습을 안 보이는 걸 보면 아마 못 오는 것 같기도 해.""설인데, 그들의 사부님이 허락할까?" 송석석이 물었다."못 왔으니 아마 허락이 안 난 거겠지. 어쩌면 연후에야 올 수 있을 지도 모르고." 시만자는 장작불에 새 숯을 더 넣으며 말했다. 새로 얹은 은빛 숯이 붉게 타오르는 숯을 덮었고, 이내 한쪽에서부터 천천히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네가 전에 우리 쪽에 사람이 부족하다고 해서 내가 그들에게 편지를 보낸 거야.""신신도 올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송석석은 시만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올해는 진짜 힘들었어. 늘 기운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달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항상 새로운 일이 생기곤 했지.""이번 설에는 푹 쉬어." 시만자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설이면 현갑군이 제일 바쁘지." 송석석은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사실 바쁜 것도 괜찮을지 몰라. 자기 전에 누우면 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을 테니까."시만자가 궁금해하며 물었다."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그리운 건 괜찮은데 기다리는 건 정말 힘들어. 하루하루 날짜를 세며 보내야 하니까."송석석은 관자놀이를 손으로 받치고 살짝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녀의 턱선이 유난히 선명해 보였
설날 전날, 서우는 빨간 비단 솜옷을 입고 흰 여우 털 장식이 달린 두툼한 모자를 쓰곤, 밝은모습으로 공씨 가문의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염선생은 미리 많은 선물을 준비해 두었는데, 그중 상당수는 서우가 직접 고른 것들이었다.어젯밤, 국공부에서 온 진복이 장부를 가져왔고, 서우는 이를 꼼꼼히 보느라 밤을 새웠다. 염선생은 아이가 어리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며 송석석에게 말려 달라 부탁까지 했지만, 송석석은 일찍 장부 보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은 일이라며 계속 보게 하였다. 국공부는 결국 서우가 책임지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서우가 장부를 볼 때, 서동 진소설도 그의 곁에 있었지만 진소설은 오늘 집으로 돌아가 설을 보내야 했기에 그를 따라 공씨 가문까진 갈 수 없었다.송석석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서우가 섬세하고 침착하며 성숙한 태도를 가졌으면서도 천진난만한 동심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는 서우가 어려운 시간을 겪으며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모습일 수도 있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때로는 겉으로 약한 척하며 속으로 강함을 숨길 줄 는 것이 삶의 지혜라 여겼기에 뿌듯해했다. 서우는 공씨 가문에 가서 설을 보내고 싶었지만, 올해는 고모부가 집을 비웠기에 고모가 홀로 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서우는 고모의 손을 잡고 말했다.“저는 설날 다음 날 바로 돌아올 거예요. 오래 머물지 않고 돌아와서 고모와 함께 있을게요.”송석석이 그의 코를 살짝 문지르며 다정하게 말했다.“조금 더 오래 머물다 와도 돼. 고모는 바빠서 네가 같이 있어주지 않아도 괜찮아.”그러자 곁에 있던 시만자가 송석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서우야, 나도 있으니까 안심하고 다녀와.”“네. 시 고모도 계시고, 왕 사백도 계시니까요.”서우는 시만자와 왕이장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염선생과 보주를 포함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또 많은 분들이 있으니 걱정 없겠어요.”서우는 마치 작은 어른처럼 손을 뒤로 하고 눈웃음을 띄
궁연 시작 전, 송석석은 태후의 처소에 잠시 들렸다가 덕비와 공비의 처소를 방문한 후, 한녕과 민지 등 몇몇 장공주들과 함께 어화원을 거닐었다.민지 장공주는 오늘 정홍색에 청란을 수놓은 예복을 입고,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어 한층 더 고귀해 보였다. 그녀는 손에 든 둥근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듣자하니 제씨 가문을 향한 탄핵 상소가 올라간 후, 제제사가 가문의 사람들을 불러들여 밤새 넷째 부인을 호되게 벌줬다지. 이번 화근은 다 그녀가 일으킨 거라고 하더군."민지 장공주는 태후의 친딸로, 적출된 공주는 언제나 더 고귀하게 여겨지기 마련이었다. 다른 공주들도 그녀를 우러러보며 따랐고, 그녀가 제씨 가문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이들도 맞장구를 쳤다. 심지어 미우 장공주까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미우 장공주는 제귀태비의 딸로, 제씨 가문의 외손녀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미우 장공주는 제씨 가문과 거의 왕래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부마 이유의 조언 때문이었다. 현재 공주든 친왕이든 모두 제씨 가문과 혼인을 맺으려 하지만, 제씨 가문의 권세가 지나치게 커지면 필연적으로 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니,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었다.사람들은 이런 이유를 두고 아내의 덕을 입어 사는 자라며 비웃어댔지만, 그는 미우 장공주의 농지와 점포들을 관리하며 내조까지 돕고 있었다. 미우 장공주는 이런 자신의 남편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단지 그가 자신의 날카로움을 감추고 평온한 삶을 살고자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수민은 오늘 큰 주목을 받았다. 황후가 금족되었기 때문에 그녀가 황제 곁에서 하늘에 올리는 제사 의식을 주관했으며, 그 일을 마치고 나서야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연극을 보러 갔다.덕비도 둘째 황자를 데리고 왔다. 둘째 황자는 셋째 황자를 데리고 잠시 밖에서 놀다가, 얼마 후 돌아와 어머니 곁에서 연극을 함께 보았다.셋째 황자는 수민의 친아들은 아니었지만 유독 수민을 잘 따랐다. 지금은 아직 어린 나이라
그런데 연극이 끝난 뒤에도 첩여 동씨는 내내 그녀와 얘기를 계속할 줄 몰랐다. 얘기 도중에 애교스런 미소를 짓기도 하고, 송석석을 손으로 살짝 밀며 뾰로통한 모습을 보이질 않나 송석석과 꽤나 친한 것처럼 보였다.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이 주변 비빈들의 주목을 끌어, 몇 번이고 엿보며 지나갔다.말이 주고 받는 거지, 사실 송석석은 가끔 맞장구를 쳐주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체면상 미소를 지어줄 뿐이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민지 장공주와 한녕 장공주마저 연극를 다 본 뒤 개인적으로 송석석에게 물었다.“원래 동첩여를 알고 있었어?”송석석이 고개를 저었다.“아뇨, 처음 뵀어요.”“처음 봤는데 그렇게 친해요?” 한녕이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오히려 민지 장공주는 짐작이 가는게 있어 미간을 찌푸렸다.“앞으로 동첩여와는 자주 왕래하지 않는 게 좋겠어. 동기가 불순해.”송석석도 사실 알고 있었지만 아까는 다들 연극을 보는 중이라,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떠나면 태후마마와 태비 마마의 흥을 깰 수도 있어 자제했을 뿐이었다.그리고 송석석은 첩여 동씨가 멍청하진 않지만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연극이 끝나고 송석석은 마음이 홀가분해질 줄 알았는데 숙비와 공비 등이 힐난의 눈길을 던지는 걸 못 봐서 오히려 허전했다.송석석은 후궁들의 사정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궁중의 몇몇 마마들의 성격은 알고 있었다. 그분들은 총애를 받는 새 사람을 받아들여 주시지만, 새 사람이 지나치게 손을 뻗칠 경우 가만 두고 보실 리 없다는 것을 말이다.게다가 첩여 동씨는 잘 아는 것도 없으면서 경솔하게 행동했다. 황후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송석석인데 첩여 동씨가 그녀와 잘 지낸다는 말은 바로 황후에게 눈엣가시요 목에 걸린 생선뼈로 찍힌다는 소리였다.궁연이 시작될 때 송석석은 제제사를 봤다.그녀가 계속 어화원을 왔다갔다한 건 바로 제제사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였으나, 계속 피할 수만은 없으니 언젠가 마주쳐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제제사는 당황해 고개를 돌려 송석석을 보는데 뜻밖이란 표정이 역력했다. “왕비 마마께서는 늙은이가 잘못 말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자신이 가르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헤 태비가 손을 내밀어 송석석에게 오라고 손짓하며 제제사와 말다툼하지 못하게했다.혜 태비는 선황을 사랑해서 제제사를 상당히 존중했다. 오죽하면 사여묵을 제씨 집안 딸과 혼인시킬까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결국 자기 딸 한녕을 제육 공자에게 시집을 보냈으니 뜻은 이룬 셈이었다.그리고 제사가 설령 훈계조로 송석석에게 얘기했다 치더라도,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타이르는 것이라 송석석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도리였다.제제사의 말투가 약간 비아냥거리는 것이 혜 태비도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그녀의 며느리가 교양이 없지는 않으니 그 정도 불편한 건 상대의 신분을 봐서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웃어른을 공경해야지.’송석석은 고개를 들어 제제사를 똑바로 쳐다봤다.“제사님 말씀이 틀렸습니다. 저는 비록 사람을 가르칠 능력은 없으나, 아군서원을 위해 길을 트고 보호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잘못은 여학을 없애기 위해 그토록 많은 학생의 정절을 망치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을만큼, 인간이 이토록 사악하다는 것을 모른 죄입니다. 제사께서 꾸짖을 사람은 제가 아니라 아군서원을 없애려고 음모를 꾸민 놈들이지요.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는 전문성이 있으니 채용되었을 것입니다. 설마 아군서원의 선생님들이 전부 능력도 없는데 명예만 믿고 설치는 무리란 말씀은 아니시죠? 제 사형인 심사형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국태부인과 정부인 중에 어느 분이 현명하고 능력있는 분이 아니란 말입니까?”송석석의 말에 제제사는 약간 화가 났다.“늙은이가 몇 마디 지적한 것은 다 마마를 위한 것인데, 말 끝마다 토를 달고 변명하시는군요. 여학은 여학일 뿐, 서원과는 다릅니다. 서원이란 이름을 붙인다 한들 가르쳐야 하는 건 아내로의서 덕과 여계(女誡. 여성 교양)지요. 심청화는 확실히 재덕을 겸비한
송석석이 저택으로 돌아오자 염선생이 사여묵에게 온 서신을 그녀에게 건내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오늘 막 집을 나서사지마자 왕야의 서신이 도착했습니다.”송석석은 눈을 빛내더니 서신을 받아들고 서둘러보기 전에 일단 물었다.“염선생은 어째서 가족들과 설 쇠러 집에 안 가?”“곧 돌아가서 가족들과 연말연시를 맞을 참입니다. 왕비 마마께 직접 서신을 전해드리려 기다린 거예요.”염선생이 놀리는 눈빛으로,“왕비 마마의 기뻐하시는 모습도 보고 싶고, 왕야께서 부부 간의 배갯머리 송사 말고 다른 얘기도 하셨나 궁금하기도 하구요.”송석석은 기쁨을 감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이건 장군이 보낸 첫 서신이니까 내가 먼저 봐야지.”그녀는 서신에 분명 상황을 조사한 것이 있을 게 분명해서, 나중에 서신을 염선생에게 훑어보게 할 생각이었다.하지만 그녀가 서신을 개봉해 보니 3장으로 나눠져 있었다. 2장은 그녀에게 쓴 것이고 다른 1장은 조사 상황을 설명한 것이었다.염선생이 웃으며 말했다.“왕비마마께 쓰신 건 빼곡하게 2장이나 되는데, 조사내용은 고작 한 장이라니, 이번에 지방까지 가셔서 왕야께서 마음 고생이 심하신가 봅니다.”송석석은 쑥스러워하며 재촉했다.“어서 봐, 방금 쓱 훑어본 거라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단 말야.”염선생이 조사 내용을 적은 한 장을 바로 읽기 시작하더니 다 읽은 뒤 송석석에게 말해주었다.“노주에 도착한 뒤 한동안 은밀하게 조사한 결과, 어느 마을에 전부 젊고 건장한 장정들만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노인도 아이도 없고 평소 농사를 짓는데 현지 사람들 말에 따르면 전에는 남녀노소가 다 있던 평범한 마을이었으나 몇 년전 역병이 돌더니 노인과 아이들이 다 죽고 점점 타지 사람들이 와서 살더니 오랜 세월 발전해서 이렇게 커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마을은 이미 촌락 규모를 넘어서 거의 5천명에 달한다고 하는 군요.”“5천명?” 송석석은 듣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마을이 커 봤자 수백 명, 천여 명이면 이미 인구가 많다고 한
송석석은 답장을 쓸 수 없었다. 그들은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저 그리움만 가슴에 품은 채 그가 돌아오면 들려주는 수밖에 없었다.올 설은 화려하게 지낼 모양인지 그녀가 경위부로 돌아가 다시 관복을 입지 못하게 하려고, 보주는 새 옷을 전부 그녀에게 한번씩 입히지 못해 안달이었다.매일 아침 일찍 보주는 그녀를 화장대 앞에 억지로 앉히고 이런저런 화장법을 바꿔가며 그녀를 예쁘게 꾸몄다. 목 승상 부인은 여자가 피부가 그렇게 희고 부드럽지 않아도 아주 예쁘다고 말했다.송석석의 피부는 희고 부드럽지 않았는데 매일 밖에서 뛰어다니다 보니 바탕이 아무리 좋아도 규방 여자의 새하얀 피부색은 잃어버릴 수밖에 없지만, 붉게 윤기가 도는 구리빛 피부는 가장 아름답게 핀 복사꽃 같고 잘 익은 사과 같기도 했다.황후는 섣달 8일에 금족령이 풀려 수도 내외명부 부인들에게 입궐하여 알현하라고 선포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항간에 소문이 돌았다. 그 집 아가씨는 원래 위국공 집안의 조카와 혼인할 예정이었으나 여학 사건때문에 혼사가 어그러졌다는 것이었다.따라서 곧 개학을 앞둔 시점에 자신의 딸을 아군여학에 보내야할지 말지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일부는 결단을 내려 국태부인에게 가서 딸을 자퇴시켰다.한 명, 두 명, 세 명….자퇴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고작 2~3일만에 무려 절반이 자퇴하겠고 했다.황후가 이 얘기를 듣고 여러 부인들에게 입궐하라고해서 설득했다. 여자에게 평판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시집을 가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은 아니므로, 북명왕비처럼 그렇게 자기 주관이 있고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이런 말이라면 차라리 하지를 말지, 이 말을 듣고 명문세가 부인들이 속으로 구시렁거리지 않을 수 있겠어?’상국엔 송석석 하나 뿐이라 흉내를 낼 수도 없고, 자기 딸이 어떤지 자기가 모를까? 전쟁에 나가 병사를 관리할 능력은 절대 없고, 바퀴벌레만 봐도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는데 좋은 혼처라도 기대지 않으면 어떻게 평생을 책임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