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현은 차우미 일가가 병원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에야 나상준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당신 같이 존귀하신 분이 안평 같은 시골에는 왜 왔을까? 우미가 나한테 얘기를 안 해주기도 하고 나도 딱히 신경 쓰고 싶지는 않지만, 내 친구와 연관된 일이니까 불편해도 들어.”여가현은 키가 큰 편이 아니었다. 하이힐을 신어도 170이 안 되는 작은 키에 나상준과 키 차이가 많이 났지만 그녀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나상준은 여전히 담담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 여가현은 더 화가 났다.그녀가 계속해서 말했다.“이혼했으면 우미 옆에서 멀리 떨어져. 자꾸 엮이지 말란 말이야. 여자한테 3년은 아주 귀중한 시간이야.”“우미는 당신한테 3년이나 낭비했어. 그 정도면 됐잖아. 당신에게도 당신 가문에도 우미는 최선을 다했어.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마음 잡고 잘 사는 애 마음 헤집어 놓지 마. 각자 삶을 살아가라고.”여가현이 나상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적대심을 품게 된 건 오로지 차우미 때문이었다.3년 동안 친구가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서 친구가 안쓰럽고 가슴이 아팠다.여가현은 경고의 눈빛을 보내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거기 더 있었다가는 주먹이라도 나갈 것 같았다.아무런 감정이 없는 바위 같은 무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이 더 불쾌했다.나상준은 멀어지는 여가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3년이 시간 낭비라고 했다라….남자의 눈빛이 점차 차갑게 식어갔다.한편 차우미는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여전히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친구의 마음을 누구보다 알기에 더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그녀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느라 병원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준우를 보지 못했다.나준우가 먼저 그녀와 온이샘을 발견했다.온이샘도 나준우를 알아보았다.이쪽으로 병원을 옮길 때, 안평 병원 주치의 명단에서 이미 나준우
나준우는 놀란 표정을 수습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차우미를 보자 저도 모르게 형수라고 부를 뻔했지만 꾹 참았다.이제는 이혼했으니 형수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그는 호칭을 잠시 고민하다가 이름을 불렀다.“차우미 씨.”차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부탁 드릴게요.”“손부터 볼까요?”차우미는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이렇게 된 거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싶었다.나준우는 붕대를 풀지 않고 대충 겉면만 확인하고 그녀에게 일련의 질문을 한 뒤, 말했다.“일단 올라가죠. 올라가서 붕대를 풀어봐야 할 것 같아요.”“그래요.”그렇게 그들은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리 심각한 정도는 아니네요. 흉터는 안 남을 거예요.”사무실로 간 나준우는 붕대를 풀고 상처를 자세히 살핀 뒤, 말했다.하선주는 그제야 안심한 미소를 지었다.“정말 다행이네요. 감사해요, 선생님.”부부는 지금도 나준우가 누군지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었다.나준우가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제가 흉터 남지 않게 신경 써서 치료할게요.”“그럼 저희는 안심이네요. 정말 감사해요.”온이샘은 나준우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벌써 교수 명함을 단 그는 청주 대학병원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외과 의사였다.나준우가 이렇게까지 자신감을 보였다는 건 확실히 흉터가 안 남을 거라는 뜻이기에 온이샘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차우미는 고열에 시달린 정황이 있었기에 입원해서 며칠 지켜보는 거로 했다.모두가 의견에 동의하자 차우미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차우미는 VIP 병실로 옮겨졌다.여가현이 병실로 돌아오자 다른 사람들은 둘에게 시간을 주려고 밖으로 나갔다.온이샘은 마트에 다녀온다며 병원을 나섰다. 마트 다녀오는 길에 호텔로 가서 입주 절차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다.하선주와 차동수는 그를 따라나서기로 했다. 뭐나 온이샘에게 맡기려니 미안한 마음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마침 병원에는 여가현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부
차우미는 어쩌다가 나상준 조카를 구하게 되고 주혜민이 나상준을 따라 안평에 왔다가 자신의 병실까지 찾아온 이야기를 숨김없이 말해주었다.이야기를 할 때 차우미의 표정은 차분했다.지나간 건 지나간 거고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기에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었다.“하! 얼마나 자신 없으면 병실까지 찾아와서 그딴 소리를 지껄여?”“이혼한 전처한테 찾아와서 그게 할 소리야? 나상준은 그런 여자를 뭘 보고 좋아한대?”이야기를 다 들은 여가현이 기가 차다는 듯이 욕설을 퍼부었다.차우미는 여전히 햇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건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기도 하고. 우리 사이는 이미 끝났어. 그 사람한테 미련도 없어. 그들이 내 앞에서 뭐라고 하든 나한테는 전혀 타격이 되지 않는다고.”짝짝!여가현은 큰 소리를 내며 박수를 치더니 감탄하는 표정으로 차우미를 바라보았다.“왜 그렇게 봐?”차우미의 질문에 여가현은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난 네가 그 나쁜 놈 때문에 속상해하고 아파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 생각했어! 역시 넌 최고야.”차우미는 과장된 친구의 표정을 보고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그럼 어떡해? 드라마에 나오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하루종일 울기만 해?”차우미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아주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역시! 당연히 이래야지! 나상준 배 좀 아플 거다!”“그 인간들한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더 잘 살아야지!”아까까지 씩씩거리던 여가현은 어디로 가고 만면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그녀는 그 뒤에도 한참이나 나상준과 주혜민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차우미는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가 흥이 깨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하! 이제 좀 기분이 나아졌어. 그럼 이제 온 선배 얘기 좀 해볼까?”여가현은 얼굴을 차우미의 코앞으로 가까이 붙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봤지? 온
그녀가 원했던 것은 평범하지만 화목한 가정이었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나상준과 끝까지 가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미련이 남지도 않았다.그것은 그녀가 이 관계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차우미는 이혼한 뒤에도 맞는 사람을 만나면 시도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어제 그녀는 여가현의 말을 듣고 밤새 생각해 보았다. 만약 온이샘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천천히 교제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었다.만약 둘이 마음이 맞아서 결혼까지 갈 수 있다면 그것도 인연인 것이다.“잘 생각했어! 역시 내 친구야. 냉철하고 현명해!”여가현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차우미의 말을 들어보니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나상준만 떠올리면 왠지 복수의 쾌감도 느껴졌다.두 사람은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의사 사무실.나준우는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차우미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설명을 다 들은 나상준이 물었다.“바쁜 사람 갑자기 불러서 미안해.”나준우는 청주 대학병원의 에이스로서 아무나 부른다고 안평까지 외래 진료를 보지는 않는다.나준우가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마침 은사님도 만나고 난 오히려 좋아. 걱정 마.”말은 그렇게 해도 차우미가 다 나을 때까지 그가 여기 있어주기를 바란다는 건 알고 있었다.“곤란하면 나한테 얘기해. 다른 의사 알아볼 테니까.”“그래, 알았어.”용건을 끝낸 나상준은 별다른 이야기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나준우도 그와 함께 사무실을 나서며 물었다.“상희는 좀 어때?”“괜찮아.”나상준은 높낮이 없는 무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나준우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온이샘이 떠올랐다.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다 같이 산책하러 나갔던 날 예은이 핸드폰에서 들려온 목소리도 아마 온이샘이었을 것이다.‘형도 이샘 형을 봤을 텐데….’“문제 생기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엘리베이터에 오르
온이샘은 차우미의 부모님을 호텔까지 모셔다드린 뒤, 마트로 가서 먹을 것을 구매했다.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비용은 온이샘이 부담했다. 온이샘에 대한 차동수 부부의 호감은 날로 더해져 갔다.먹을 것을 사 들고 부모님과 함께 병원으로 갔는데 병원 앞에서 강서흔과 마주쳤다.성격이 쾌활한 강서흔은 차동수 부부를 보자마자 자기소개를 하며 친근하게 대했다.그렇게 그들 일행이 입원 병동으로 향하는 길에 강서흔은 온이샘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여가현 병실에 있는 거 확실하지?”여기 오기 전부터 몇 번이고 확인했던 질문이었기에 온이샘은 귀찮은 얼굴로 대꾸했다.“내가 병원을 나설 때는 병실에 있었어. 지금은 잘 모르겠고.”말은 그렇게 해도 여가현이 차우미를 혼자 병실에 두고 나갔을 리는 없었다.강서흔도 그걸 알기에 옷매무시를 정리하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오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여자 마음을 돌려버릴 거야!”온이샘은 황당한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여가현은 차우미와 잠시 수다를 떠는 사이 벌써 회사에서 세 통의 연락을 받았다.차우미는 핸드폰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친구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우미야.”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온이샘이 손에 쇼핑백을 한가득 들고 하선주 부부와 함께 병실로 들어서고 있었다.“엄마.”침대에서 일어선 차우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병실에 들어서는 남자에게 닿았다.검은색 정장을 쫙 빼입고 머리를 뒤로 넘긴 강서흔이 멋드러짐을 자랑하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차우미는 저도 모르게 여가현의 눈치를 살폈다.여가현도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가 강서흔을 발견하고 표정이 굳었다.차우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둘을 번갈아 보았다.온이샘은 테이블에 먹을 것을 세팅한 뒤, 차동수 부부에게 다가가서 짐을 들어주었다.일부러 점수 따려고 하는 행동이 아닌, 원래 매너가 몸에 배긴 행동에 차동수 부부는 흐뭇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모든 준비를 마친 뒤, 그는 침대머리에서 반쯤
낙천적이고 어린애 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강서흔은 여가흔과 사귈 때에도 말다툼이 끊이지 않았다.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떠들썩해진 분위기 덕분에 하선주 부부도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전부 잊어버렸다.여가현은 오후에 볼일이 있다며 먼저 병실을 나갔다.그녀가 나가자 강서흔도 따라 나갔다.온이샘은 하선주 부부에게 호텔에 돌아가 쉬라며 병실을 자기가 지키겠다고 말했다.며칠 전이었어도 부부는 절대 동의하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흔쾌히 동의했다.차우미는 부모님의 바뀐 태도에도 전처럼 당황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여가현이 해준 말이 아니었다면 부모님이 온이샘을 마음에 들어 하신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이제는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우미야, 푹 쉬고 엄마랑 아빠는 내일 아침에 또 올게.”하선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 내 걱정은 말고 푹 쉬어.”부부는 온이샘이 있어 안심하고 쉬러 간다며 병실을 나갔다.온이샘은 부부를 배웅하고 돌아와서 침대머리에 앉았다.그는 시간을 확인한 뒤, 차우미를 위해 이불을 여며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좀 자.”차우미는 오히려 온이샘이 걱정됐다.사고 직후부터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미안한 마음뿐이었다.“선배도 저기 간이침대에서 좀 자둬. 요 며칠 수고 많았어.”비록 그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그를 대하는 차우미의 태도는 여전했다.온이샘은 미안해하는 그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너 먼저 자. 너 자면 나도 잘게.”차우미는 고집스러운 그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녀가 침대에 눕자 온이샘은 이불을 그녀의 목까지 덮어주었다.“몸을 따뜻하게 해야 감기 안 걸려. 손 다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이런 극진한 보살핌이 차우미는 고마우면서도 조금 부담이 됐다.“선배가 고생이 많네.”“고생은 무슨.”말을 마친 온이샘은 다시 의자로 돌아가서 그녀를 바라보았다.차우미의 맑은 눈동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
“알았다니까.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는 신경 꺼!”전화를 끊은 임상희는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옆으로 던져버렸다.주혜민은 옆에서 그녀에게 과일을 챙겨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상희야, 엄마도 너 걱정해서 그러는 거야.”임상희는 주혜민이 건넨 귤을 입에 넣으며 시큰둥한 얼굴로 대꾸했다.“엄마가 날 걱정해? 그렇게 걱정했으면 벌써 날아왔겠지. 역시 나보다는 일이 중요한 거잖아!”임상희는 짜증이 잔뜩 난 상태였다.주혜민이 웃으며 말했다.“엄마 일이 그런 걸 어떡해. 상희가 좀 이해해 줘.”사실 문은혜는 귀국하는 티켓까지 구매했다가 비행기가 뜨기 직전에 임상희가 깨어났고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고 항공편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지만 아직은 예민한 시기인 임상희에게 이 소식은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일밖에 모를 거면 결혼을 하지 말고 애를 낳지 말았어야지. 낳기만 하고 관심 한번 주지 않는 게 무슨 엄마야!”임상희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문은혜는 지리학자로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연구에 몰두했다. 임상희는 거의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다시피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예민하고 짜증이 많았다.초등학교에 금방 입학했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임상희의 성격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주혜민은 임상희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며 화제를 돌렸다.“됐어. 이 얘기는 그만하자. 참, 외삼촌이 너한테 별말 없었어?”“무슨 말?”임상희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물었다.주혜민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번에 널 구해준 사람 상준 씨 전부인이래.”“뭐라고?”임상희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반신반의했다.“외삼촌이 아무 얘기도 안 해줬나 보네.”“나도 몰랐는데 오늘 너 구해주신 분 직접 뵙고 인사드리러 갔다가 봤어.”“그 사람 손을 다쳤던데 그리 심각해 보이지는 않더라.”“네 엄마도 해외에서 오지 못하는 상황이고 난 엄마 대신 널 돌봐주기로 한 사람으로서 직접 만나 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었거든.”임상희
여가현은 저녁 시간에 한번 병실을 들렀다. 강서흔은 이번에 따라오지 않았는데 여가현의 표정을 보니 둘이 또 싸운 것 같았다.차우미는 어떻게 된 건지 궁금했지만 여가현의 표정을 보고 더 묻지 않기로 했다.그렇게 시간은 어느덧 흘러 밤중이 되었다. 아홉 시가 거의 다 되어갈 때쯤, 그녀는 여가현을 쉬라고 돌려보냈다.여가현은 내일 청주로 돌아가기로 했다. 로펌에 밀린 업무가 하도 많아서 더 이상 휴가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여가현은 밤에 병실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때마침 업무 전화가 걸려 와서 어쩔 수 없이 호텔로 돌아가게 되었다.온이샘도 시간을 확인하고 차동수와 함께 호텔에 쉬러 갔다.그렇게 시끌벅적하던 병실이 조용해지고 병실에는 차우미와 하선주만 남게 되었다.하선주는 그제야 꾹 참고 있었던 질문을 꺼냈다.“우미야, 너랑 상준이 어떻게 이혼하게 된 건지 엄마한테 좀 말해볼래?”엄마인 하선주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딸을 바라보았다.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에 차우미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주혜민 씨와 상준 씨는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어. 둘이 진짜 사귀던 사이었는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나랑 결혼하고 바람을 피운 적은 없어.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그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니까.”3년을 그와 함께 살다 보니 나상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둘은 자주 만나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가정을 배신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가정교육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NS일가도 절대 그런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하선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차우미가 더 숨기는 일이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지만 딸의 아픈 곳을 자꾸 헤집는 것 같아 더 질문하기 꺼려졌다.더 이야기를 나눠봐야 딸만 힘들어질 것 같았다. 3년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고생을 했을 딸을 생각하면 하선주는 후회도 되고 마음이 아팠다.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이 결혼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차우미는 눈시울이 붉어진 하선주를 보고 부드
나상준은 차우미 뒤에서 두 모녀가 포옹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차동수는 하선주의 뒤를 따라 입구로 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차우미를 보았고, 이어서 딸의 뒤에 서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사위였던 나상준은 나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사려가 깊었다.나상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달랐는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한다.차우미와 나상준이 결혼한 3년 동안 차동수도 사위 나상준과 몇 마디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낯설었다.차동수에게 나상준은 아주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젊은이였고 동시에 따뜻함도 인간미도 없는 사위이기도 했다.이런 사윗감은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했는데 차우미만 좋으면 그들은 의견이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가 제3자 때문이라는 것이 제일 의외였다.차동수의 마음속에 나상준은 절대 교양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이 발생하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다만 나상준의 신분과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비록 부모 눈에 자신들의 자식이 제일이겠지만 차우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 사람과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상준과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차우미와의 결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약 나상준이 차우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동수는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건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가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얼마 전에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이 아팠는데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맞지 않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선주가 나상준을 못마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