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좋지 않았다.누구나 아플 때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는 TV에 비친 그녀의 보습을 바라봤다.차우미는 나상준을 상사를 대하는 것처럼 대하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다른 곳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기에 아무 잡심도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남녀 간의 정과 사랑은 그녀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그녀는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긴장해 하지도 않았으며 나상준을 좋아하는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일할 때처럼 진지하고 냉정한 모습이었다.차우미가 나상준을 정상적인 남자로 대하고 있지 않았기에 나상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녀의 손놀림은 부드럽고 섬세했지만 자상하지는 않았으며 조심스럽고 신중했다.자신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가락에 닿았음에도 그는 그녀에게서 어떠한 온도도 느낄 수 없었다.그녀는 차가웠다. 김온 옆에 있을 때처럼 따뜻하지 않았다.이 순간, 무언가가 그의 심장에 쿵 하고 떨어졌다.가만히 앉아 있던 그의 눈빛에 어두움이 일렁이면서 방 안의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차우미는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정신은 온통 나상준의 머리카락에 있었다.차우미는 나상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가 아파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머리에 있는 물기를 닦아낸 뒤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려줬다.그녀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누볐다. 굵고 단단한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등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수많은 풀 사이를 지나가는 것처럼 차가웠지만 생명력으로 가득했다.이 순간, 차우미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는 더 이상 눈썹을 찌푸리지 않았고 마음속에 있던 긴장감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그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고 편안해 졌다.나상준은 차우미가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뒀다. 그의 눈에 있던 어두움이 무서우리만치 더욱 짙어졌다.수건이 아닌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부드럽고 섬세하게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누비자 답답하던 그의 마음이 순간 굳어졌다가 이내 풀렸다.모든 먹구름이 걷히고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왔다. 모든 것이
차우미는 나상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사람이 잠들었을 때와 잠들지 않았을 때가 매우 달랐다.편안한 모습으로 잠에 빠진 모습이 깨어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지금 나상준의 모습은 평상시처럼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지 않았다.그는 낮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했다. 수많은 일을 내려놓고 완전히 휴식을 취했다.그를 보고 있던 차우미는 가슴이 아팠다.높이 올라간 만큼 위험한 것이다. 그가 결코 쉬운 자리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차우미는 밖을 쳐다봤다. 이미 아주 늦은 시간 임에도 그는 아직 약을 먹지 않았다.제일 중요한 것은 의사에게 진찰을 받지 않았기에 현재 나상준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예전에 차우미 어머니에게 직업병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감기에 걸리기 마련이다. 감기에 걸려 여러 차례 의사에게 찾아가 진찰을 받은 뒤로는 어떤 약은 어떨 때 먹어야 하는 약인지 알게 된 어머니께서 평상시에도 감기약을 집에 준비해두곤 하셨다. 감기 기운이 조금 있을 때에는 약을 먹으면 금방 나았고 심할 때는 병원으로 갔다.그 뒤로 차우미도 약을 준비해두는 습관이 생겼고 나상준과 결혼한 3년 동안에도 계속 그렇게 해왔었다.나상준이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기에 차우미는 약과 체온계를 챙겨왔다. 그의 체온을 측정한 뒤 열이 나는지 확인하고 어떤 약을 먹일지 생각해 보려 했다.차우미는 지체하지 않고 체온계를 꺼낸 뒤 나상준을 바라봤다. 평상시 같으면 곤히 잠든 그를 보고 가만히 내버려 뒀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반드시 체온을 재야 했다. 차우미는 그를 깨우지 않고 소파 뒤로 가서 체온계를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띠 하는 소리와 함께 체온계에 체온이 나타났다. 38.5도였다.정말 열이 나는 그의 모습에 차우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체온계를 넣은 뒤 해열 시트를 꺼내 포장을 뜯은 뒤 다시 나상준의 뒤로 가서 그의 이마에 붙여줬다.차우미는 나상준이 깬 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나상준은 TV에 비
나상준이 이런 모습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줄 몰랐던 차우미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반응하며 입을 열었다.“깼어?”손에 들려 있던 약을 내려놓은 뒤 허리를 굽혀 그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상준 씨 열나는 것 같아. 심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해열 시트를 붙여줬으니 열은 내렸을 거야. 어디가 아픈지 나에게 말해주면 내가 먹어야 약들 챙겨줄게.”차우미는 마치 의사가 된 듯 부드럽고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맥을 짚어 주는 것만 빼고 말이다.나상준은 자신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진지한 얼굴과 눈빛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가슴 아파하는 것도 같았다.그녀가 가슴 아파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나상준의 눈빛이 움직였다.“목이 불편해.”나상준이 말하지 않아도 차우미는 전보다 더 갈라진 그의 목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그의 갈라진 목소리는 마치 그가 아닌 다른 사람 목소리 같았다. 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렸다.“어떻게 불편한데? 목이 타는 느낌이야? 아니면 아픈 느낌? 아니면 간지러워?”“아파.”차우미는 바로 이해가 됐다. 그녀는 계속 이어 물었다.“다른 곳은 어디 불편한 곳 없어?”나상준이 그녀를 바라봤다.“머리 아파.”차우미의 찌푸려졌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그리고?”“힘이 없어.”“그리고?”“말하고 싶지 않아.”“...”긴장하던 차우미는 나상준의 마지막 대답을 듣고 멍해졌다.만약 하성우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빵 터졌을 것이다.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나상준의 말에 말이다.차우미는 입술을 벌린 채 나상준을 바라봤다. 차우미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고 농담은 더더욱 없었다. 차우미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알았어. 약 챙겨줄게.”말을 마친 그녀는 일어나서 약을 가지러 갔다.나상준은 소파에 앉아 차우미가 진지한 모습으로 약을 신중히 고르는 모습을 바라봤다.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상준은 이런 말들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더욱이 의사 면허증도 없는 사람한테 약 처방을 받지 않았을
차우미는 약을 숟가락에 놓고 그에게 먹인 뒤 컵을 그의 입가로 가져갔다.나상준은 물을 마셨다. 약이 뜨거운 물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 위 속으로 들어가니 뜨거운 열기가 몸에 피어올랐다.차우미는 나상준이 단숨에 물을 들이켜는 모습을 보며 한 시름 놨다.약을 먹었으니 괜찮아 질 거다.차우미는 사실 나상준이 약을 먹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다. 병원에도 가지 않겠다는 나상준이었기에 걱정이 됐다.하지만 협조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차우미의 눈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녀는 컵을 씻은 뒤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어느덧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나상준이 쉬어야 할 시간이었다.차우미는 나상준 앞으로 걸어갔다.“일어날 수 있겠어?”나상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차우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이곳에서 자면 불편할 거야. 춥기도 하고. 침실에 들어가서 자면 내일이면 많이 괜찮아 질 거야.”나상준의 심장이 끓는 물처럼 뜨거워졌다. 그의 눈동자도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부축해줘.”이 말은 아무 문제 없었다.그가 지금 아프기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차우미가 그를 부축해줘야 하는 게 당연했다.“알았어.”차우미는 나상준의 손을 잡아주려 했다. 이때 자신이 나상준을 담요로 꽁꽁 덮어놓은 사실이 떠올랐다.그러나 나상준은 전처럼 가만히 차우미가 잡아주길 기다리지 않고 일어나 앉은 뒤 손을 내밀었다. 차우미는 이내 그의 손을 잡고 그를 부축했다.나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벌려 차우미의 허리에 손을 올리며 순간적으로 차우미를 끌어안았다.딱딱한 그의 가슴에 부딪힌 차우미는 그의 가슴이 더는 차갑지 않고 뜨거운 것을 느끼고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표정을 회복했다.왜냐하면 그가 그녀에게 의지하며 대부분의 체중이 그녀에게 쏠렸기 때문이다. 무거움에 차우미는 순식간에 똑바로 설 수 없었다.“잠... 잠깐만 기다려. 내가 먼저 똑바로 설 때까지 기다려줘.”나상준이 차우미에게 기대자 차우미는 지탱할 힘
“상준 씨, 상준 씨 먼저 앉아. 그 다음...”차우미는 조심스럽게 나상준을 부축하여 침대 앞까지 갔다. 그녀가 몸을 돌려 그를 먼저 눕히려 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발이 붕 뜨더니 중심을 잃고 침대에 넘어졌다.이때, 그녀의 허리를 감은 손과 함께 나상준도 그녀를 따라 침대에 쓰러졌다.눈앞이 빙빙 돌았다. 차우미는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벌린 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나상준 위에 엎드려 있었다.차우미는 깜짝 놀랐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너무 놀란 나머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몰랐다.나상준은 침대에 누워 자신 위에 엎드려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원래는 빨갛던 그녀 얼굴이 방금 너무 놀란 나머지 하얗게 질려있었다.그녀는 입술을 벌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눈에는 놀라움과 망연함이 역력했다.그녀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나상준은 말없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허리에 감은 손에 여전히 힘주고 있었다.차우미는 허리를 조이는 힘에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가슴을 졸이며 정신을 차렸다.차우미는 그제야 자신이 나상준 위에 엎드려 있다는 것을 알고 당황해하며 입을 열었다.“미안해... 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차우미는 나상준 위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나상준이 다시 팔에 힘을 주자 그녀는 순식간에 나상준 위에 다시 엎드리게 됐다.차우미는 깜짝 놀랐다.‘지... 지금 뭐 하는 거지?’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차우미의 눈이 조금 전보다 더욱 커졌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상준을 바라봤다.나상준도 차우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 의아함, 당황스러움, 불안함과 무서움이 연달아 스쳐 지나갔다.“조심해.”말을 마친 나상준이 차우미의 허리를 꽉 누르고 있던 팔을 풀자 차우미도 긴장을 내려놓으며 표정이 부드러워졌다.나상준의 조금 전 행동이 순식간에 그녀를 무섭게 만들었다.어젯밤 나상준이 취해서 그녀를 안았을 때도 그녀는 무서워했다.차우미는 스스로
차우미가 나상준의 위에서 움직이자 침대에 누워있던 나상준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그는 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자신 위에 있는 사람을 보며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그는 정인군자처럼 차우미가 자신의 위에서 무얼 하든 혼란스러워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은 그의 마음과 달랐다.나상준은 차우미가 자신을 잡고 자신의 몸에서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자신의 몸과 맞닿았지만 그녀는 정직하고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차우미는 침대 앞으로 와서 나상준의 다리를 침대에 놓아준 뒤 슬리퍼를 벗기고 섬세하게 이불을 덮어줬다.그녀의 마음은 더없이 깨끗하고 눈빛은 더없이 순결했지만 그는 아니었다.지금 나상준이 차우미를 보고 있는 눈빛에는 소유욕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그의 사냥감이었고 그는 그녀를 잡아먹고 싶었다. 뼈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차우미는 나상준의 이상한 점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고 무서운 눈빛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그가 아직 베개를 베고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그래서 차우미는 그의 머리를 들고 베개를 놓은 뒤 그가 편안하게 베개를 베고 자도록 하였다.침대 앞에 서 있던 사람이 갑자기 나상준을 향해 다가가자 향기가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 나상준의 눈에 이내 그녀의 깊은 가슴골이 보였다. 부드러워 보이는 백옥같은 피부였다.이 순간 나상준의 몸이 팽팽해지면서 팽창된 통증이 그의 몸에 퍼졌다.그가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나가.”허스키하면서도 무거운 목소리가 차우미의 귀에 들려왔다. 차우미는 가슴을 졸이며 고개를 숙이고 나상준을 바라봤다.그녀는 여전히 나상준 앞에 서서 손에는 베개를 잡고 있었다. 지금 고개를 숙이자 그와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그녀의 숨결이 그의 얼굴에 닿았고 그의 숨결도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뜨거운 호흡이 서로 맞닿으며 침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변했다.나상준의 모습에 깜짝 놀란 차우미는 침실 안의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으로 차우미는 가슴이 조여왔다.그녀가 구매한 약들은 보통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모두 평범한 약이었다. 그러나 만사에 절대적인 것은 없기 때문에 나상준이 먹을 수 없는 약이 있었던 게 아닌지 생각했다. 약을 먹기 전엔 이러지 않았지만 약을 먹은 후에 이렇게 되니 차우미는 당황스러웠다.아마도 약을 잘못 먹은 게 틀림 없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무서워할 겨를도 없이 바로 돌아갔다.다행히 방금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만약 문을 닫았다면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방으로 들어온 그녀는 즉시 침실로 향했고 침실에 들어선 그녀는 멍해졌다.나상준이 침대에 없었다.이불은 한쪽에 걷혀 있었고 전에 침대에 누워있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지?’차우미는 텅 비어있는 침대를 보여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그러나 얼마 안 지나 쏴 하는 물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차우미는 정신을 차리고 침대 왼쪽에 있는 드레스룸에서 가까운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욕실이 있었다.침실에 욕실이 있었는데 욕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안에서 쏴 하고 들려오는 물소리가 나상준이 안에 있음을 차우미에게 알려줬다.‘지... 지금 샤워하는 건가?’눈앞에 나상준이 조금 전까지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 떠오른 차우미는 의아했다.‘병원에 가야지 왜 욕실에 들어간 거지? 상준 씨가 왜 저러지?’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욕실 앞으로가 문을 두드렸다.“상준 씨, 아까 내가 준 약 먹고 몸이 불편한 거 맞아?”평상시 같으면 차우미는 절대로 욕실 앞에서 문을 두드리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문을 두드리지 않으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욕실 안. 차가운 물이 그의 머리와 몸을 적셨고 뜨겁던 몸이 서서히 식어가기 시작했다.그는 두 손을 허리에 놓고 고개를 숙인 뒤 눈을 감고 찬물에 몸을 맡겼다.조금 전, 그는 그녀를 자신의 몸 아래 눕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그녀도 재빨리 도망을 갔었기에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샤워기를 잠근 뒤 나상준은 샤워 가운을 입었다.이번에 그는 샤워 가운을 단정하게 입은 뒤 허리띠를 조여 매고 젖은 머리로 나왔다.나상준이 여전히 대답이 없자 차우미는 초조해졌다.종래로 급해 하지 않던 차우미였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조급해졌다. 그녀가 입술을 벌리고 다시 말하려 할 때 물소리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차우미는 하려던 말을 멈추었다.‘들은 건가? 안에 있는 건가?’마음속의 조급함이 조금은 사라졌다. 차우미가 바로 입을 열었다.“나와 함께 병원에 가자. 의사 선생님께 가서 진찰받고 약을 처방받자. 어젯밤에 상준 씨가 나를 병원에 데려다줬었잖아. 그래서 난 벌써 나았어. 오늘은 내가 상준 씨를 병원에 데려다줄게. 상준 씨도...”딸깍하고 문이 열렸다.차우미는 마저 하지 못한 말을 삼키며 그렇게 욕실에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얼굴에 있던 홍조도 보이지 않았고 무서우리만치 튀어나왔던 핏줄도 보이지 않았으며 두 눈에도 무서움이 보이지 않았다.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차우미는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상준 씨...”“씻어.”나상준은 이 말만을 남겨놓고는 차우미를 지나쳐 나가 드라이어를 들고 머리를 말렸다.이내 윙윙거리는 드라이어 소리가 차우미의 귓가에 들려왔다. 차우미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이건... 약을 잘못 먹은 건가? 아니면... 괜찮은 건가?’차우미는 나상준이 변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이런 기분은 그들이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 강해졌다.그는 더 이상 예의 바르고 다가가기 어려운 나상준이 아니었다. 다가가기 쉽고 기분을 훤히 파악할 수 있는 그런 나상준이었다.‘그에게서 어떻게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지? 분명히 같은 사람인데 느낌이 전혀 다르단 말이야.’예를 들자면 예전에는 지금처럼 크게 아플 때면 바로 의사를 부르는 게 정상이었다. 지금의 나상준은 정상인 것 같았다. 허약하지도 않고 무기력하지도 않았으며 차우미를 지나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도움 없이 자신이
나상준은 차우미 뒤에서 두 모녀가 포옹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고는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차동수는 하선주의 뒤를 따라 입구로 왔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차우미를 보았고, 이어서 딸의 뒤에 서 있는 나상준을 보았다.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다.사위였던 나상준은 나씨 가문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사려가 깊었다.나상준의 성격은 보통 사람과 달랐는데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으며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한다.차우미와 나상준이 결혼한 3년 동안 차동수도 사위 나상준과 몇 마디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낯설었다.차동수에게 나상준은 아주 훌륭하고 교양이 있는 젊은이였고 동시에 따뜻함도 인간미도 없는 사위이기도 했다.이런 사윗감은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애매했는데 차우미만 좋으면 그들은 의견이 없었다.그런데 두 사람이 이혼한 이유가 제3자 때문이라는 것이 제일 의외였다.차동수의 마음속에 나상준은 절대 교양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일이 발생하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다만 나상준의 신분과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비록 부모 눈에 자신들의 자식이 제일이겠지만 차우미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또 사람과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상준과 같은 훌륭한 아이가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차우미와의 결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약 나상준이 차우미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차동수는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건데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가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얼마 전에 차우미가 나상준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마음이 아팠는데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맞지 않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선주가 나상준을 못마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