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뒤이자 설 후면 곧 결혼식이다.하지만 여준재는 고다정더러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이 그저 안심하고 자기 신부가 될 준비만 하면 된다고 당부했다.고다정도 그의 고집을 꺾기 힘들어 나중에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건 임은미 쪽도 마찬가지였다.백수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은 아이들을 데리고 한자리에 모였다.두 사람은 수다 떨다가 대화 주제가 어느새 신혼여행으로 넘어갔다.임은미는 호기심에 물었다.“결혼식이 끝나면 두 사람은 바로 신혼여행 갈 거야?”“그럴 생각인데 어디로 놀러 갈지 아직 정하지 못했어. 왜, 너는 채 선생님이랑 토론해 봤어?”고다정도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이때 임은미가 답했다.“나는 성휘 씨가 어렸을 때부터 자랐던 곳에 가보고 싶은데 채씨 가문에는 말하고 싶지 않...”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고다정은 알것 같았다.친한 친구의 고부간 갈등을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막막했다.어디까지나 자신은 외부인이기에 대놓고 참견할 수도 없었다.하여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어렵게 먼저 말을 꺼냈다.“네가 정말 거부감이 심하면 될수록 따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옛말에 어떠한 관계는 소홀할수록 더 오래갈 수 있다는 말도 있잖아. 어쩌면 시집과는 멀리 떨어져 지내면서 채 선생님이 중간에서 조절하다 보면 사이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지 모르잖아.”“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임은미는 한숨을 내쉬더니 더 이상 말하기 싫어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고다정도 모르는 척 맞장구를 쳤지만 그래도 친구가 걱정되었다.어쨌든 지금 고부간의 갈등이 심한 건 사실이라 오랫동안 지속되면 나중에 가정의 행복에도 영향을 줄 것 같았다.자신이 직접 겪어본 일이 아니라 고다정도 뭐라고 조언을 주기도 힘든 입장이다.어쩔 수 없이 여준재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혹시나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보려고 했다.하지만 여준재는 그녀의 걱정어린 말을 들은 뒤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유라는 방안에 유일하게 있는 창문 아래에 앉아 있었는데 이미 초췌한 모습에 온몸에서 썩은 냄새를 마구 풍기고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이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밖으로 노출된 피부만 보아도 칙칙하고 누렇게 말라 있었다.이때,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지하실에서 누군가가 문을 여는 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소리를 들은 유라는 여전히 초점이 없는 공허한 눈으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곧이어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면서 예상치 못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고다정과 여준재는 들어오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방안의 냄새가 여간 역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고다정은 더는 참지 못하고 눈앞의 예전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보기 힘든 여자를 본 뒤 차갑게 말했다.“가서 좀 씻겨요. 그리고 다시 거실로 데려오세요.”말을 마치고 그는 냉큼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가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여준재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밖에 나온 뒤 고다정은 그제야 신선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는 옆에 서있는 여준재에게 물었다.“위생관리도 안 해줬나요?”“제가 소홀했어요. 앞으로 주의하라고 할게요.”여준재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하지만 고다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제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저 여자를 오늘부로 경찰 쪽에 맡기려고요.”“그래요. 저 여자가 과거에 저지른 일과 외할머니의 살인사건도 있으니 앞으로 감옥에서 나오기는 힘들 겁니다.”여준재는 고다정이 왜 이렇게 결정했는지 되묻지 않고 그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기로 다짐했다.덕분에 고다정의 마음은 다시 차분해졌다.그러다 별장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여기 경치가 참 괜찮은 것 같아요. 나중에 시간 있을때 우리 준이랑 윤이랑 같이 소풍하러 와도 되겠어요.”“좋죠. 근데 신혼여행을 갔다 온 뒤에 옵시다.”여준재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그의 말에 고다정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시간이 참 빠
별장에서 나와보니 이미 두 시간이나 지나있었다.고다정은 숨을 깊게 한번 들이마시더니 옆에 서있는 남자에게 물었다.“혹시 제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나요?”방금 그녀는 부하들에게 국제적으로 제일 위험한 감옥으로 보내라고 했고 그저 죽이지 않는 한 아무렇게나 괴롭혀도 상관없다고 말했다.여준재는 눈앞의 자기 여자가 극도로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와 그녀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비록 저는 다정 씨를 보호해 줄 수 있지만 자기 성격 같은 경우는 스스로 독해지는 버릇을 해야 합니다. 이는 당신이 강대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피를 보아야 하고 필수적으로 냉정해져야 하거든요. 해서 저는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더 독하게 마음먹어야 나중에라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생각해요!”그의 말을 듣던 고다정은 두 눈을 여준재에게 맞추고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럼 앞으로 더 독하게 마음먹어야겠네요. 지금 이미 저희 스승님을 도와 성씨 가문의 사업을 관리하고 있으니까요!”그녀는 우쭐거리며 턱을 한껏 쳐들었다.여준재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그렇군요. 그럼 이제부터 다정 씨가 저를 보호해 줘야겠네요.”“걱정하지 말아요. 이제부터 제가 보호해 드릴게요. 누가 괴롭히면 제 이름을 대요!”고다정은 말을 마치자마자 더는 참지 못하고 여준재를 향해 큰소리로 웃으며 물었다.“저 방금 혹시 조직 폭력배 보스 같지 않았나요?”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똑같았어요.”그렇게 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별장에서 빠져나왔다.가는 길에 고다정은 임은미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다정아, 지금 어디야?”“나랑 준재 씨랑 지금 밖에 있어, 왜?”고다정은 살짝 웃으며 여준재의 품에 안긴 채 그녀에게 물었다.임은미가 답했다.“내일 결혼식이잖아. 너랑 같이 마지막 싱글 데이를 보내고 싶어. 그래서 성휘 씨랑도 막 헤어졌는데 만약 여 대표님께서 외롭다고 하면 마침 성휘 씨도 혼자니깐
다음 날, 날이 밝기도 전에 고다정과 임은미는 도우미에 의해 깨났고 여아린의 메이크업팀에 이끌려 각종 화장을 받게 되었다.모든 메이크업이 끝나고 드레스까지 갈아입으니 밖은 이미 환해졌다.여아린은 시계를 한번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준재랑 성휘 씨도 이제 곧 도착할 것 같은데 내가 사람들과 같이 문 쪽에서 막을게. 오늘 같은 날 쉽게 신부를 데려가면 안 되지.”말을 마친 뒤 그녀는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임씨 부부 내외도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다. 그렇지 않다면 몇 년 동안 임은미를 혼자 버려둔 채 여기저기 여행하지 않았을 것이다.두 사람도 임은미에게 한마디 한 뒤 곧바로 여아린의 뒤를 따라 떠났다.이때, 여준재와 채성휘가 웨딩카를 몰고 산장 기슭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무리에 둘러싸여 신부를 데리러 온 차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신랑 측 두 분은 차에서 내려주세요. 어떻게 차를 몰고 신부 데리러 갈 수 있단 말입니까.”담은자는 차창을 두드리며 순순히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했다.임근수도 자기 아내와 같이 웨딩카 앞을 가로막았다.“신부 데려가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입니까? 두 분은 빨리 차에서 내리세요.”여아린도 그들 따라 조카가 타고 있는 차창을 두드렸다. 비록 자기 조카가 오늘날 이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많은 힘든 일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고모로서 한번 괴롭히고 싶었다.“고모, 이건 통행료예요.”여준재는 진작에 이런 일이 발생할 걸 예상하고는 차 안에서 두터운 돈봉투를 꺼냈다.다른 한쪽에서 채성휘도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의 다 받을 수 있도록 돈봉투를 여러 개로 나누기 시작했다.“친애하는 여러분, 제가 신부를 안전하게 데려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세요.”“아이고, 봉투는 두껍네요.”“우리 신부의 체면을 봐서라도 이만 비켜 줄게요. 근데 무조건 차가 아닌 직접 걸어 들어가서 신부를 데려와야 합니다.”“맞아요. 차로는 안 돼요!”“내려요! 빨리!”사람들은 봉투를
하지만 그 눈은 한 번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졌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넋을 잃고 있던 채성휘는 또 한 대 맞았다.방금 본 아리따운 모습을 생각하며 갑자기 힘이 북받친 채성휘는 가로막는 사람들을 전부 밀어냈다.여준재도 사람들을 전부 물리치고, 채성휘와 함께 당당하게 별장 안으로 쳐들어갔다.두 사람이 2층에 올라오자마자 쌍둥이가 방에서 살며시 내다보다가 다시 쏙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두 아이는 쾅 하고 문을 닫고 호들갑을 떨었다.“엄마, 이모, 아빠랑 성휘 삼촌이 왔어요.”이 소리를 들은 여준재와 채성휘는 눈빛을 교환한 후 문을 두드렸다.“준, 윤, 문을 열어주면 아빠랑 삼촌이 용돈 줄게.”문밖에서 들리는 두 사람의 소리를 듣고 고다정은 웃긴다는 생각만 들었다.조금 전 여준재가 길을 막는 사람들 때문에 차에서 내리고 입구에서 얻어맞는 장면을 모두 지켜본 그녀는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안 돼요. 용돈을 먼저 들여보내요. 안 그러면 믿을 수 없어요.”쌍둥이가 교활하게 문밖에 대고 소리쳤다.몸에 돈이 있을 리 없는 여준재는 쌍둥이를 속일 수밖에 없었다.결국 쌍둥이는 그의 거짓말에 넘어가 문을 열어주었다.문에 들어서자마자 여준재는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은, 실물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예쁜 고다정을 보고 놀랐다.순간 그의 눈에는 다른 사람은 없고 고다정만 보였다.채성휘도 마찬가지로 멍하니 임은미를 쳐다보았다.쌍둥이가 이를 보고 달려오더니 용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아빠, 성휘 삼촌, 우리 용돈은요?”이 소리를 듣고서야 여준재와 채성휘는 제 정신이 돌아왔다.두 사람은 약간 켕긴 듯 말했다.“용돈은 나중에 줄게.”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뜬 쌍둥이를 무시한 채 애정 어린 눈빛으로 신부에게 다가갔다.“다정 씨, 당신을 데리러 왔어요.”“은미 씨, 오늘 너무 예뻐요.”그들이 신부를 안고 떠나려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 손을 내밀며 그들을 막아섰다.성시원이 시시하다는 듯 눈을 흘겼다.“어린애까지 속이고 진짜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