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범들은 내 손발을 마구잡이로 자르며 육 씨 가문에 경고했다. 경거망동했다가는 다음에는 예은이의 손가락을 보내겠다고 말이다.경찰에 신고하던 날, 예은이는 우는 척하면서 납치 장소를 암시했다. 딸을 잘 아는 엄마는 금방 그 뜻을 알아들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납치범들은 이미 우리를 다른 곳으로 옮긴 후였다.그리고 격분한 납치범들은 실수로 나를 죽였다.다음 날, 납치범들은 진짜로 예은이의 손가락을 보냈다.소포를 받은 엄마는 안에 든 손가락을 보면서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이미 여러 번 소포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소포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만약 자세히 봤다면 그 손가락이 가늘고 하얗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분명 손가락 주인이 평소에 엄청 아낀 손가락이었다.난 이미 손가락이 없었다. 엄마는 내 열 손가락이 납치범들에게 잘린 지 오래라는 걸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납치범의 전화는 너무나도 정확했다. 마치 엄마가 소포를 받는 시간에 맞춰 전화하는 것 같았다.엄마는 여느 때처럼 물었다.“우리 예은이는 괜찮아요?”“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손가락뿐만이 아닐 거야.”납치범이 웃으며 말했다.엄마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꽉 쥔 채 다급하게 물었다.“여니의 손가락이 아니었어요?”“당연히 아니지. 여니의 손가락은 진작에 다 잘렸으니까.”엄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했고 얼굴은 일그러졌다.“그럼 다른 걸 자르면 되잖아요! 눈알을 파내든, 혀를 자르든! 왜 내 딸 예은이를 건드리는 건데!”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마가 동생을 더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슬펐다.“분명히 말했잖아요! 경찰에 신고한 건 여니가 암시한 거라고! 우리 예은이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요!”납치범들이 장소를 옮긴 후 전화를 받고 나서 갑자기 험상궂은 표정으로 나에게 손을 댄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엄마였다. 동생이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 봐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고 내가 위치를 암시했다고 거짓말을 한
납치됐을 때, 난 동생을 지키려고 내 몸을 방패 삼았는데 그녀는 내 죽음을 부모님에게 알리지도 않았다.“당연히 구해야지! 걔도 우리 딸인데. 데려오면 바로 진씨 집안으로 돌려보낼 거야. 너한테 신경 쓰게 하지 않을 거다.”엄마는 육예은을 품에 안고 달랬다.그 말에 육예은의 얼굴에는 잠시 불안한 표정이 스쳤지만 금세 감춰졌다.병원 검사 결과, 육예은은 새끼손가락 하나가 잘린 것 외에는 별다른 부상이 없었다.엄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예은이가 크게 다치진 않았네.”나는 엄마가 육예은을 안고 있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았다.엄마는 처음에만 나에게 다정했고 나중에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엄마는 자신에게 딸이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은 듯했다. 지금은 이미 죽었지만 죽기 전까지 끔찍한 고통을 겪었던 딸을 말이다.엄마는 내가 죽었다는 걸 알면 오히려 기뻐할지도 모른다. 짐 하나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겠지.납치범들은 이 틈을 타 돈을 더 뜯어내려고 내 죽음을 숨겼지만 경찰의 전화 한 통에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여보세요. 아이가 납치됐다고 신고하셨는데,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경찰의 전화가 집으로 걸려 왔다.엄마는 즉시 부인했다.“아니요, 우리 아이는 납치되지 않았어요.”“강가에서 여자 시신이 발견되어서 혹시 신고하신 납치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전화했습니다.”“전혀 관련 없어요. 우리 아이는 멀쩡히 살아있어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엄마는 흥분해서 고함을 질렀다.경찰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엄마를 보며 복잡한 심정이었다. 엄마는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요즘 경찰은 왜 이래? 시신이 발견됐다고 우리 아이를 의심하다니. 말도 안 돼. 너 여기 집에 있는데. 그리고 여니는 아직 납치범 손에 있어. 오늘도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가 왔었잖아.”육예은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불안한 기색을 알아채지 못한 채 엄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나는 경찰이 말한
오랫동안 수사에 진전이 없던 경찰이 다시 우리 집을 찾아왔다.엄마는 마지못해 경찰을 내 방으로 안내했다.“이게 따님 방이라고요?”경찰은 내 방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내 방은 가정부 방 옆에 있는 집에서 가장 작고 허름한 방으로 가정부 방보다도 못한 방이었다.엄마는 약간 멋쩍은 듯 말했다.“애가 스스로 고른 방이에요.”내가 처음 육씨 가문에 왔을 땐 큰 방을 썼다. 하지만 육예은이 내가 자기 방에 와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부모님은 나를 벌주려고 가정부 방으로 쫓아냈다.“머리카락 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경찰은 베개 위에 있는 머리카락을 수집했다.“질문이 몇 가지 더 있는데, 따님도 좀 불러주시겠습니까?”육예은은 경찰을 보자 긴장한 기색을 보였지만 금세 표정을 관리했다.경찰은 육예은을 빤히 보며 물었다.“진여니와 함께 납치되었다고 했는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줄래?”육예은은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머리를 쥐고 고통스럽게 앓는 소리를 냈다. 엄마는 즉시 육예은을 끌어안으며 소리쳤다.“우리 아이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세요! 이러시면 나가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어요!”경찰들은 서로 당황한 눈빛을 교환했다. 이때 젊은 경찰관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다른 따님도 계시지 않습니까? 그분 걱정은 안 하십니까?”다른 경찰관이 그를 꾸짖었다.“방 형사!”엄마는 젊은 경찰관을 노려보며 말했다.“쓸데없는 걱정 마시고 당장 나가세요!”경찰은 쫓겨나듯 집 밖으로 나갔고 엄마는 육예은을 달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다음 날, 경찰은 검사 결과를 가지고 다시 찾아왔다.“검사 결과, 피해자는 진여니 씨로 확인되었습니다.”엄마는 경찰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말도 안 돼요!”엄마는 불안하게 문고리를 꽉 잡고 비틀거렸다.“우리 딸 며칠 뒤면 와요. 당신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무슨 허튼소리를 하시냐고요!”그녀는 화가 나 경찰들을 내쫓으려 했지만 경찰은 쉽게 물
육예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부검 결과, 진여니 씨는 육예은 씨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이미 사망했어요. 그런데 왜 살아있다고 한 거죠?”조사하던 경찰관이 날카롭게 물었다.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 만에 울먹이며 말했다.“다 엄마 때문이에요. 엄마가 납치범들에게 언니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하는 바람에 언니가 맞아 죽은 거예요!”육예은은 필사적으로 발뺌했다.“나는 아무 관련 없어요. 아는 건 다 말했어요.”경찰은 육예은의 진술을 토대로 첫 범행 현장인 폐공장을 찾아냈다.공장 안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현장에 도착한 부검의는 즉시 현장을 봉쇄하고 혈흔이 오직 나의 것임을 확인했다.사람들은 내가 죽기 전 얼마나 심한 폭행을 당했는지 차마 상상도 할 수 없었다.부모님은 내 시신을 보고 드디어 오열했다.나는 담담하게 내 시신을 바라보았다. 온몸에 성한 곳 하나 없이 멍 자국투성이인 처참한 몰골이었다.나는 시골에서도 육 씨 가문에서도 뼈만 앙상할 정도로 말랐었는데 시신은 배로 부어 있었다.맞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얼굴조차 성한 곳 없이 엉망이었다. 경찰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DNA 검사를 해야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조차도 내 시신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납치범들이 너한테 아무 짓도 안 한다고 했는데!”엄마는 내 시신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젊은 경찰관은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말했다.“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 못 하셨나요? 납치범들이 딸아이의 손발을 자르도록 내버려 두다니, 부모 자격도 없는 거죠.”예전 같았으면 부모님은 나에게 그랬듯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예전에 내가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여동생만 예뻐한다는 것을 알고 집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나를 철없고 시골에서 자라서 생각이 많고 간사하다고 꾸짖었다.그리고 육예은은 겉으로 보기에는 순진하고 욕심 없는 아이였다.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와서 부모님이 사준 좋은 물건들을 자랑하며 나를 은근히 괴롭혔다
“아줌마?”엄마가 큰 소리로 불렀다.안문희가 다가오자 엄마는 옷장을 가리키며 나무랐다.“아가씨한테 이게 뭐예요? 애가 입을 만한 옷이 하나도 없잖아요!”안문희는 옷장을 흘끗 보며 대답했다.“예전에 사모님께서 아가씨께 새 옷을 주지 말고 본때를 보여주라고 하셨잖아요.”엄마는 그제야 기억이 난 듯 멍한 표정을 짓다가 한참 뒤에야 정신이 든 듯 말했다.“난 정말 못된 엄마였구나.”엄마는 몇 벌 안 되는 옷가지를 끌어안고 흐느꼈다.“여니야, 다음 생에는 꼭 좋은 엄마 만나렴. 엄마가 정말 미안해.”엄마는 내 방에서 밤새 울었고 다음 날 퉁퉁 부은 눈으로 경찰서를 찾아갔다.그녀는 육예은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거절했다.“죄송합니다만 육예은 씨는 현재 납치 공모 혐의로 수사 중입니다.”“말도 안 돼요! 우리 예은이가 얼마나 착한데 그럴 리가 없어요!”“진정하세요. 사실 육예은 씨는 고의로 납치범과 함께 피해자를 납치했고 그 후 납치범이 배신하여 육예은 씨도 손가락이 잘렸던 겁니다.”경찰이 무언가 더 말하려는 순간, 육예은의 친부모가 나타나 말을 끊었다. 그들은 경찰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저희는 육예은의 친부모입니다. 우리 딸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죠?”엄마는 코를 막고 그들에게서 떨어졌다. 경찰은 엄마와 육예은의 친부모를 번갈아 보며 잠시 멍해졌다.“저분들이 예은이 친부모예요. 저는 양엄마고요.”엄마는 마지못해 설명했다.경찰은 곧 상황을 파악했다.“육예은 씨는 납치 사건에 가담했기에 기소할 예정입니다.”법을 잘 모르는 육예은의 친부모는 육예은이 늘 하던 것처럼 무릎을 꿇고 빌었다.“경찰관님, 우리 아이는 이제 겨우 18살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예요! 분명 여니 그년 때문일 겁니다!”그들은 나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무슨 소리야! 어떻게 우리 딸을 그렇게 모함해!”엄마는 화가 나서 육예은의 친엄마에게 따귀를 때렸다.옆에 있던 경찰이 황급히 말리며 둘을 떼어놓았다.시골에서 온 육예은의 친엄마는
자신과 똑 닮은 친엄마의 얼굴을 혐오스럽게 쳐다보며 그녀가 말했다.“웬 시골뜨기야?”“네 곁에 있지 못했던 세월을 네가 원망하는 건 알지만, 엄마도 어쩔 수 없었어! 다 너 잘살게 하려고 그런 거야! 너를 부잣집 아가씨로 자라게 하려고 위험을 감수하고 너희를 바꿔치기한 거잖아!”육예은의 친엄마가 흐느끼며 말했다.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들은 처음부터 아이를 바꿔치기할 작정이었던 것이다.어린 시절, 진 씨 부부가 나를 때리고 욕하며 남동생만 편애했던 이유가 이제야 이해됐다.전에는 단순히 아들과 딸을 차별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내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엄마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그들을 때리며 소리쳤다.“너희들이 일부러 내 아이를 18년 동안이나 내 곁에서 떨어뜨려 놓은 거였다니! 짐승 놈들! 너희들은 죽어 마땅해!”그녀는 체면도 잊은 채 진 씨 부부와 뒤엉켜 싸웠고 예전의 우아한 사모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뜯어 말려진 엄마의 얼굴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했다. 엄마는 육예은을 바라보며 비웃듯이 말했다.“내가 원수의 자식을 18년이나 키웠다니! 그것도 원수의 딸 때문에 내 새끼까지 죽였어.”말을 마치자 엄마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피를 토했다. 아빠는 급히 구급차를 불러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다.부모님은 감옥에 있는 육예은을 찾아갔다.“엄마!”육예은이 조심스럽게 불렀다.그러나 부모님은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대꾸도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안쓰럽게 딸을 품에 안고 달랬을 엄마였다.육예은은 태연한 척 연기를 이어갔다.“엄마, 나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난 그저 엄마가 나한테 잘해줬으면 해서...”그녀는 입술을 떨며 눈물을 글썽였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엄마는 분노에 차서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아직도 연기하는 거냐! 네가 내 딸을 죽였어! 너희 가족은 뻐꾸기처럼 남의 둥지를 차지한 주제에 왜 그 애한테 잘해주지 않았어? 네 엄마는 왜 그 애한테 잘해주지 않았냐고!”육예은은 눈
그들은 살인을 계획했다. 하지만 살인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중죄였다.집 안 사람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탈출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휘발유에 불이 붙자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졌다. 안에서는 비명과 구조 요청이 터져 나왔지만, 부모님은 이미 바깥에서 문을 잠가버렸다.잔혹한 표정의 그들의 눈에는 복수의 희열이 가득했다.“너희가 내 아이를 죽였어. 우리 아이가 팔자가 사납다고? 그럼 같이 저승길 동무나 해!”불길을 발견한 마을 사람들은 불길이 옆집으로 번질까 봐 서둘러 불을 껐다.하지만 집 안 사람들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릴 새도 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불길이 잦아든 후, 집 안에서는 몇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부모님은 그날 바로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그들은 어떤 판결에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외전)예은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예은이 몰래 그 아이를 만났을 때, 친자 확인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분명 내 딸이었다.그 아이는 밀짚모자를 쓰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린 채 밭일을 하고 있었다.나를 보자 그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아줌마는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니죠?”그 아이는 젊었을 적 내 모습과 너무 닮아 누가 봐도 모녀지간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나는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너 이름이 뭐야?”“진여니요.”내가 왜 묻는지 의아해하면서도 그 아이는 착실하게 대답했다.나는 여니를 육씨 가문으로 데려와 영원히 사랑하고 보호하며 고생하지 않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또 다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나는 예은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내 아이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정은 혈연보다 깊었던 것이다.예은의 불안과 두려움을 모르는 척할 수 없어 예은 앞에서는 여니에게 일부러 무관심한 척했다.진여니는 내 친딸이었으니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여니가 이해해 주리라
나는 바닥에 엎드려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더 이상 몸부림칠 힘도 없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여동생이 울고 있었다. 눈물로 얼굴이 엉망이 된 여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고통을 참으며 간신히 고개를 저었다.화가 난 납치범은 내 머리채를 잡아당겼다.“네가 위치를 불었어?”두피가 찢어질 듯 아파서 나는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납치된 직후부터 손가락 두 개가 잘리고 잇따라 세 개, 네 개... 결국 손가락을 모두 잃고 나니 그들은 발바닥을 잘라냈다.상처는 곪아 터졌고 매일같이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다.그러니 매질은 이제 아프지도 않았다.어제 납치범들은 나와 여동생에게 각각 1분씩 가족과 통화할 기회를 주었다.여동생은 울면서 엄마에게 하소연하던 중 납치범들이 우리를 숨겨둔 장소를 은근히 말해버렸다.어쩐지 납치범들이 밤중에 우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더라니, 엄마가 경찰에 신고한 게 틀림없었다.부모님은 여동생을 굉장히 아꼈다. 나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서 납치되었을 때 여동생을 꼭 지켜야겠다고 다짐했었다.나는 더듬거리며 애원했다.“제발... 다신... 안 그럴게요...”하지만 흉악한 납치범들은 나를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옆에 있던 다른 납치범이 말렸다.“이러다 죽겠는데. 돈 받아야 할 거 아냐.”나를 밟고 있던 납치범이 태연하게 웃었다.“괜찮아. 얘 부모는 얘한테 관심 없어. 얘만 납치했으면 한 푼도 못 받았을걸. 다 동생 때문에 돈 내는 거지.”나는 눈을 감았다. 반박할 힘도 없었다.나와 여동생은 어릴 때 병원에서 바뀌어 서로 다른 삶을 살았다.흔하디흔한 진짜 딸, 가짜 딸 이야기. 나는 친부모에게 돌아왔지만 찬밥 신세인 진짜 딸이고 여동생은 만인의 사랑을 받는 가짜 딸이었다.육씨 가문으로 돌아왔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여전히 여동생을 향해 있었고 나는 그저 혈연으로 묶인 남일 뿐이었다.“사실 얘는 죽어도 아무도 신경 안 쓸 텐데.”납치범이 불쑥 말했다. 그 말에 온몸이 떨렸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가운
그들은 살인을 계획했다. 하지만 살인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중죄였다.집 안 사람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탈출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휘발유에 불이 붙자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졌다. 안에서는 비명과 구조 요청이 터져 나왔지만, 부모님은 이미 바깥에서 문을 잠가버렸다.잔혹한 표정의 그들의 눈에는 복수의 희열이 가득했다.“너희가 내 아이를 죽였어. 우리 아이가 팔자가 사납다고? 그럼 같이 저승길 동무나 해!”불길을 발견한 마을 사람들은 불길이 옆집으로 번질까 봐 서둘러 불을 껐다.하지만 집 안 사람들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릴 새도 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불길이 잦아든 후, 집 안에서는 몇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부모님은 그날 바로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그들은 어떤 판결에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외전)예은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예은이 몰래 그 아이를 만났을 때, 친자 확인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분명 내 딸이었다.그 아이는 밀짚모자를 쓰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린 채 밭일을 하고 있었다.나를 보자 그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아줌마는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니죠?”그 아이는 젊었을 적 내 모습과 너무 닮아 누가 봐도 모녀지간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나는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너 이름이 뭐야?”“진여니요.”내가 왜 묻는지 의아해하면서도 그 아이는 착실하게 대답했다.나는 여니를 육씨 가문으로 데려와 영원히 사랑하고 보호하며 고생하지 않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또 다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나는 예은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내 아이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정은 혈연보다 깊었던 것이다.예은의 불안과 두려움을 모르는 척할 수 없어 예은 앞에서는 여니에게 일부러 무관심한 척했다.진여니는 내 친딸이었으니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여니가 이해해 주리라
자신과 똑 닮은 친엄마의 얼굴을 혐오스럽게 쳐다보며 그녀가 말했다.“웬 시골뜨기야?”“네 곁에 있지 못했던 세월을 네가 원망하는 건 알지만, 엄마도 어쩔 수 없었어! 다 너 잘살게 하려고 그런 거야! 너를 부잣집 아가씨로 자라게 하려고 위험을 감수하고 너희를 바꿔치기한 거잖아!”육예은의 친엄마가 흐느끼며 말했다.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들은 처음부터 아이를 바꿔치기할 작정이었던 것이다.어린 시절, 진 씨 부부가 나를 때리고 욕하며 남동생만 편애했던 이유가 이제야 이해됐다.전에는 단순히 아들과 딸을 차별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내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엄마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그들을 때리며 소리쳤다.“너희들이 일부러 내 아이를 18년 동안이나 내 곁에서 떨어뜨려 놓은 거였다니! 짐승 놈들! 너희들은 죽어 마땅해!”그녀는 체면도 잊은 채 진 씨 부부와 뒤엉켜 싸웠고 예전의 우아한 사모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뜯어 말려진 엄마의 얼굴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했다. 엄마는 육예은을 바라보며 비웃듯이 말했다.“내가 원수의 자식을 18년이나 키웠다니! 그것도 원수의 딸 때문에 내 새끼까지 죽였어.”말을 마치자 엄마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피를 토했다. 아빠는 급히 구급차를 불러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다.부모님은 감옥에 있는 육예은을 찾아갔다.“엄마!”육예은이 조심스럽게 불렀다.그러나 부모님은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대꾸도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안쓰럽게 딸을 품에 안고 달랬을 엄마였다.육예은은 태연한 척 연기를 이어갔다.“엄마, 나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난 그저 엄마가 나한테 잘해줬으면 해서...”그녀는 입술을 떨며 눈물을 글썽였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엄마는 분노에 차서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아직도 연기하는 거냐! 네가 내 딸을 죽였어! 너희 가족은 뻐꾸기처럼 남의 둥지를 차지한 주제에 왜 그 애한테 잘해주지 않았어? 네 엄마는 왜 그 애한테 잘해주지 않았냐고!”육예은은 눈
“아줌마?”엄마가 큰 소리로 불렀다.안문희가 다가오자 엄마는 옷장을 가리키며 나무랐다.“아가씨한테 이게 뭐예요? 애가 입을 만한 옷이 하나도 없잖아요!”안문희는 옷장을 흘끗 보며 대답했다.“예전에 사모님께서 아가씨께 새 옷을 주지 말고 본때를 보여주라고 하셨잖아요.”엄마는 그제야 기억이 난 듯 멍한 표정을 짓다가 한참 뒤에야 정신이 든 듯 말했다.“난 정말 못된 엄마였구나.”엄마는 몇 벌 안 되는 옷가지를 끌어안고 흐느꼈다.“여니야, 다음 생에는 꼭 좋은 엄마 만나렴. 엄마가 정말 미안해.”엄마는 내 방에서 밤새 울었고 다음 날 퉁퉁 부은 눈으로 경찰서를 찾아갔다.그녀는 육예은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경찰은 거절했다.“죄송합니다만 육예은 씨는 현재 납치 공모 혐의로 수사 중입니다.”“말도 안 돼요! 우리 예은이가 얼마나 착한데 그럴 리가 없어요!”“진정하세요. 사실 육예은 씨는 고의로 납치범과 함께 피해자를 납치했고 그 후 납치범이 배신하여 육예은 씨도 손가락이 잘렸던 겁니다.”경찰이 무언가 더 말하려는 순간, 육예은의 친부모가 나타나 말을 끊었다. 그들은 경찰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저희는 육예은의 친부모입니다. 우리 딸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죠?”엄마는 코를 막고 그들에게서 떨어졌다. 경찰은 엄마와 육예은의 친부모를 번갈아 보며 잠시 멍해졌다.“저분들이 예은이 친부모예요. 저는 양엄마고요.”엄마는 마지못해 설명했다.경찰은 곧 상황을 파악했다.“육예은 씨는 납치 사건에 가담했기에 기소할 예정입니다.”법을 잘 모르는 육예은의 친부모는 육예은이 늘 하던 것처럼 무릎을 꿇고 빌었다.“경찰관님, 우리 아이는 이제 겨우 18살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예요! 분명 여니 그년 때문일 겁니다!”그들은 나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무슨 소리야! 어떻게 우리 딸을 그렇게 모함해!”엄마는 화가 나서 육예은의 친엄마에게 따귀를 때렸다.옆에 있던 경찰이 황급히 말리며 둘을 떼어놓았다.시골에서 온 육예은의 친엄마는
육예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부검 결과, 진여니 씨는 육예은 씨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이미 사망했어요. 그런데 왜 살아있다고 한 거죠?”조사하던 경찰관이 날카롭게 물었다.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 만에 울먹이며 말했다.“다 엄마 때문이에요. 엄마가 납치범들에게 언니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하는 바람에 언니가 맞아 죽은 거예요!”육예은은 필사적으로 발뺌했다.“나는 아무 관련 없어요. 아는 건 다 말했어요.”경찰은 육예은의 진술을 토대로 첫 범행 현장인 폐공장을 찾아냈다.공장 안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현장에 도착한 부검의는 즉시 현장을 봉쇄하고 혈흔이 오직 나의 것임을 확인했다.사람들은 내가 죽기 전 얼마나 심한 폭행을 당했는지 차마 상상도 할 수 없었다.부모님은 내 시신을 보고 드디어 오열했다.나는 담담하게 내 시신을 바라보았다. 온몸에 성한 곳 하나 없이 멍 자국투성이인 처참한 몰골이었다.나는 시골에서도 육 씨 가문에서도 뼈만 앙상할 정도로 말랐었는데 시신은 배로 부어 있었다.맞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얼굴조차 성한 곳 없이 엉망이었다. 경찰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DNA 검사를 해야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조차도 내 시신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납치범들이 너한테 아무 짓도 안 한다고 했는데!”엄마는 내 시신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젊은 경찰관은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말했다.“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 못 하셨나요? 납치범들이 딸아이의 손발을 자르도록 내버려 두다니, 부모 자격도 없는 거죠.”예전 같았으면 부모님은 나에게 그랬듯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예전에 내가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여동생만 예뻐한다는 것을 알고 집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나를 철없고 시골에서 자라서 생각이 많고 간사하다고 꾸짖었다.그리고 육예은은 겉으로 보기에는 순진하고 욕심 없는 아이였다.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와서 부모님이 사준 좋은 물건들을 자랑하며 나를 은근히 괴롭혔다
오랫동안 수사에 진전이 없던 경찰이 다시 우리 집을 찾아왔다.엄마는 마지못해 경찰을 내 방으로 안내했다.“이게 따님 방이라고요?”경찰은 내 방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내 방은 가정부 방 옆에 있는 집에서 가장 작고 허름한 방으로 가정부 방보다도 못한 방이었다.엄마는 약간 멋쩍은 듯 말했다.“애가 스스로 고른 방이에요.”내가 처음 육씨 가문에 왔을 땐 큰 방을 썼다. 하지만 육예은이 내가 자기 방에 와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부모님은 나를 벌주려고 가정부 방으로 쫓아냈다.“머리카락 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경찰은 베개 위에 있는 머리카락을 수집했다.“질문이 몇 가지 더 있는데, 따님도 좀 불러주시겠습니까?”육예은은 경찰을 보자 긴장한 기색을 보였지만 금세 표정을 관리했다.경찰은 육예은을 빤히 보며 물었다.“진여니와 함께 납치되었다고 했는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줄래?”육예은은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머리를 쥐고 고통스럽게 앓는 소리를 냈다. 엄마는 즉시 육예은을 끌어안으며 소리쳤다.“우리 아이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세요! 이러시면 나가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어요!”경찰들은 서로 당황한 눈빛을 교환했다. 이때 젊은 경찰관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다른 따님도 계시지 않습니까? 그분 걱정은 안 하십니까?”다른 경찰관이 그를 꾸짖었다.“방 형사!”엄마는 젊은 경찰관을 노려보며 말했다.“쓸데없는 걱정 마시고 당장 나가세요!”경찰은 쫓겨나듯 집 밖으로 나갔고 엄마는 육예은을 달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다음 날, 경찰은 검사 결과를 가지고 다시 찾아왔다.“검사 결과, 피해자는 진여니 씨로 확인되었습니다.”엄마는 경찰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말도 안 돼요!”엄마는 불안하게 문고리를 꽉 잡고 비틀거렸다.“우리 딸 며칠 뒤면 와요. 당신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무슨 허튼소리를 하시냐고요!”그녀는 화가 나 경찰들을 내쫓으려 했지만 경찰은 쉽게 물
납치됐을 때, 난 동생을 지키려고 내 몸을 방패 삼았는데 그녀는 내 죽음을 부모님에게 알리지도 않았다.“당연히 구해야지! 걔도 우리 딸인데. 데려오면 바로 진씨 집안으로 돌려보낼 거야. 너한테 신경 쓰게 하지 않을 거다.”엄마는 육예은을 품에 안고 달랬다.그 말에 육예은의 얼굴에는 잠시 불안한 표정이 스쳤지만 금세 감춰졌다.병원 검사 결과, 육예은은 새끼손가락 하나가 잘린 것 외에는 별다른 부상이 없었다.엄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예은이가 크게 다치진 않았네.”나는 엄마가 육예은을 안고 있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았다.엄마는 처음에만 나에게 다정했고 나중에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엄마는 자신에게 딸이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은 듯했다. 지금은 이미 죽었지만 죽기 전까지 끔찍한 고통을 겪었던 딸을 말이다.엄마는 내가 죽었다는 걸 알면 오히려 기뻐할지도 모른다. 짐 하나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겠지.납치범들은 이 틈을 타 돈을 더 뜯어내려고 내 죽음을 숨겼지만 경찰의 전화 한 통에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여보세요. 아이가 납치됐다고 신고하셨는데,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경찰의 전화가 집으로 걸려 왔다.엄마는 즉시 부인했다.“아니요, 우리 아이는 납치되지 않았어요.”“강가에서 여자 시신이 발견되어서 혹시 신고하신 납치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전화했습니다.”“전혀 관련 없어요. 우리 아이는 멀쩡히 살아있어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엄마는 흥분해서 고함을 질렀다.경찰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엄마를 보며 복잡한 심정이었다. 엄마는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요즘 경찰은 왜 이래? 시신이 발견됐다고 우리 아이를 의심하다니. 말도 안 돼. 너 여기 집에 있는데. 그리고 여니는 아직 납치범 손에 있어. 오늘도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가 왔었잖아.”육예은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불안한 기색을 알아채지 못한 채 엄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나는 경찰이 말한
납치범들은 내 손발을 마구잡이로 자르며 육 씨 가문에 경고했다. 경거망동했다가는 다음에는 예은이의 손가락을 보내겠다고 말이다.경찰에 신고하던 날, 예은이는 우는 척하면서 납치 장소를 암시했다. 딸을 잘 아는 엄마는 금방 그 뜻을 알아들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납치범들은 이미 우리를 다른 곳으로 옮긴 후였다.그리고 격분한 납치범들은 실수로 나를 죽였다.다음 날, 납치범들은 진짜로 예은이의 손가락을 보냈다.소포를 받은 엄마는 안에 든 손가락을 보면서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이미 여러 번 소포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소포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만약 자세히 봤다면 그 손가락이 가늘고 하얗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분명 손가락 주인이 평소에 엄청 아낀 손가락이었다.난 이미 손가락이 없었다. 엄마는 내 열 손가락이 납치범들에게 잘린 지 오래라는 걸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납치범의 전화는 너무나도 정확했다. 마치 엄마가 소포를 받는 시간에 맞춰 전화하는 것 같았다.엄마는 여느 때처럼 물었다.“우리 예은이는 괜찮아요?”“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손가락뿐만이 아닐 거야.”납치범이 웃으며 말했다.엄마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꽉 쥔 채 다급하게 물었다.“여니의 손가락이 아니었어요?”“당연히 아니지. 여니의 손가락은 진작에 다 잘렸으니까.”엄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했고 얼굴은 일그러졌다.“그럼 다른 걸 자르면 되잖아요! 눈알을 파내든, 혀를 자르든! 왜 내 딸 예은이를 건드리는 건데!”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마가 동생을 더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슬펐다.“분명히 말했잖아요! 경찰에 신고한 건 여니가 암시한 거라고! 우리 예은이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요!”납치범들이 장소를 옮긴 후 전화를 받고 나서 갑자기 험상궂은 표정으로 나에게 손을 댄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엄마였다. 동생이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 봐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고 내가 위치를 암시했다고 거짓말을 한
내 영혼은 낡은 공장 건물을 빠져나와 허공을 떠돌다 부모님 곁에 머물렀다.아마 미련 때문일 것이다.거실에서 엄마는 흐느끼며 예은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예은이는 어려서부터 고생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데! 분명 여니가 함부로 돌아다니다 예은이까지 납치범에게 끌려간 거예요.”엄마는 아빠에게 나를 원망했다.나는 소리쳤다.“아니에요! 제가 함부로 돌아다닌 게 아니에요! 예은이가 골목길로 들어가려고 해서 쫓아간 거예요!”나는 해명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아빠는 엄마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다.사건이 일어나기 전, 나는 여동생의 학교가 궁금해서 기사 아저씨와 함께 동생을 데리러 갔었다.하지만 학교 정문 근처 골목에서 우리는 함께 납치당하고 말았다.엄마는 계속 울먹였다.“여니는 시골에서 와서 그런지 우리 딸 같지가 않아요. 혹시 친자 검사가 잘못된 게 아닐까요? 애들이 돌아오면 여니를 보냅시다. 안 그러면 예은이가 또 난리 칠 거예요.”나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처음 부모님을 만났을 때, 나는 긴장하게 그들 앞에 서 있었고 엄마는 아빠에게 내가 자기랑 똑같이 생겼다고, 딱 자기 딸이라고 했었다.그런데 지금은 친자 검사가 잘못되길 바라고 있고 내가 그녀의 딸이 아니길 바라고 있다.나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문득 죽어서도 마음이 아플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처음에 엄마가 진씨 집안에 나를 데리러 왔을 때, 엄마는 밤새 잠도 안 자고 나를 꼭 안고 있었다. 눈 깜빡하면 내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진씨 집안에서 학대받아 생긴 상처들을 보며 엄마는 약을 발라주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나는 드디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생겼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너무 절망적이었다. 진 씨 부모는 나를 때리고 욕하기 바빴고 친부모는 나를 원망하고 있으니까.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살아있어 봐야 모두에게 짐일 뿐이었으니.납치범들에게서 다시 전화가 와서 돈을 재촉했다.아마 내가 죽은 걸 알고 급
나는 바닥에 엎드려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더 이상 몸부림칠 힘도 없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여동생이 울고 있었다. 눈물로 얼굴이 엉망이 된 여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고통을 참으며 간신히 고개를 저었다.화가 난 납치범은 내 머리채를 잡아당겼다.“네가 위치를 불었어?”두피가 찢어질 듯 아파서 나는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납치된 직후부터 손가락 두 개가 잘리고 잇따라 세 개, 네 개... 결국 손가락을 모두 잃고 나니 그들은 발바닥을 잘라냈다.상처는 곪아 터졌고 매일같이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다.그러니 매질은 이제 아프지도 않았다.어제 납치범들은 나와 여동생에게 각각 1분씩 가족과 통화할 기회를 주었다.여동생은 울면서 엄마에게 하소연하던 중 납치범들이 우리를 숨겨둔 장소를 은근히 말해버렸다.어쩐지 납치범들이 밤중에 우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더라니, 엄마가 경찰에 신고한 게 틀림없었다.부모님은 여동생을 굉장히 아꼈다. 나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서 납치되었을 때 여동생을 꼭 지켜야겠다고 다짐했었다.나는 더듬거리며 애원했다.“제발... 다신... 안 그럴게요...”하지만 흉악한 납치범들은 나를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옆에 있던 다른 납치범이 말렸다.“이러다 죽겠는데. 돈 받아야 할 거 아냐.”나를 밟고 있던 납치범이 태연하게 웃었다.“괜찮아. 얘 부모는 얘한테 관심 없어. 얘만 납치했으면 한 푼도 못 받았을걸. 다 동생 때문에 돈 내는 거지.”나는 눈을 감았다. 반박할 힘도 없었다.나와 여동생은 어릴 때 병원에서 바뀌어 서로 다른 삶을 살았다.흔하디흔한 진짜 딸, 가짜 딸 이야기. 나는 친부모에게 돌아왔지만 찬밥 신세인 진짜 딸이고 여동생은 만인의 사랑을 받는 가짜 딸이었다.육씨 가문으로 돌아왔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여전히 여동생을 향해 있었고 나는 그저 혈연으로 묶인 남일 뿐이었다.“사실 얘는 죽어도 아무도 신경 안 쓸 텐데.”납치범이 불쑥 말했다. 그 말에 온몸이 떨렸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