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헌이 정신을 차렸을 때 농후한 소독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대표님.”비서가 팔을 뻗어 그를 부축하려 했다.강세헌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됐어.”그가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물었다.“임지훈은 어떻게 됐어?”“생명의 위험은 없습니다. 작은 수술을 했는데 아직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요.”비서가 대답했다.“대표님께서도 경미한 뇌진탕이 왔다고 해요. 의사 선생님께서 충분히 쉬어야 한다고 했어요. 좀 더 주무실래요?”강세헌은 최지현의 다리를 타고 흐르던 피를 떠올리고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물었다.“최지현은?”“의사의 말로는 유산했다고 해요. 타박상도 좀 있긴 한데 심각하진 않아요. 제가 왔을 때 깨어난 지 얼마 안 됐더라고요. 지금 옆방 병실에 있어요.”비서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불러올까요?”강세헌이 팔을 들었다. 그럴 필요 없다는 의미였다.그는 복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최지현에게 반감을 갖고 배척했고 심지어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을 막으려까지 했다.그럼에도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는 것은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이제 아이를 잃었다.그는 아버지로서 슬픈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 때문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경찰은 왔었어?”그가 물었다.“네. 하지만 아직 범인은 잡지 못했어요.”강세헌의 기억으론 어린 남자아이였는데 사고 후에도 별로 다치지 않았는지 곧바로 차에서 기어 나와 도망쳐버렸다. 아마 많이 놀랐을 것이다. 면허증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가 없다.“사람을 보내 찾아봐. 자신이 누구를 건드렸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따끔하게 혼내줘. 하지만 절대 죽이면 안 돼. 그리고, 최지현을 수술한 의사를 나한테 데려와 줘.”그는 최지현의 몸에서 흐르던 피를 똑똑히 보았었다. 그러니 최지현이 정말 자신의 아이를 가졌음을 인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보였던 그녀의 의심스러운 표정 때문에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
그녀는 이제 강 사모님이라는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산산한 바람에 날려 부스럭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으니 햇살도 그리 뜨겁지 않았다.바람이 불어오니 약간 으스스한 서늘함까지 느껴지고 있었다.그녀가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다그쳤다. 어서 돌아가 저녁상을 차린 다음 강세헌에게 이혼을 제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하지만 그때, 차 한 대가 그녀의 앞에 멈춰서 앞길을 가로막았다.안에서 몇 명의 남자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다짜고짜 그녀의 머리 위에 검은 봉지를 덮어씌우고는 입을 막고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우욱.”송연아는 그들의 손에 꽉 사로잡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얼마 후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은 깜깜했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누군가가 그녀의 입을 막고 있지는 않았다.“당신들 누구야? 나한테 왜 이래?”“01 가 7782, 이거 네 차 번호 맞지?”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차는 그녀가 출근하기 시작한 뒤 엄마가 자신의 적금을 모두 깨 그녀에게 사준 것이다. 그녀는 결혼 전까지 그 차를 몰고 다녔고 강씨 집안에 시집을 가고 난 뒤엔 줄곧 송씨 저택에 세워두었다.“맞아요. 대체 왜...”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지막지한 발길질이 그녀를 향했다. 그녀는 몸을 움츠리고 고통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당신들... 으악...”발길질은 등 뒤, 다리, 허리, 모든 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그녀는 아이를 보호하려 허리를 굽히고 배를 끌어안았다.뼈와 살을 파고드는 고통에 정신까지 아찔해졌다.“당신들 대체 누구...”그녀가 피와 땀에 흠뻑 젖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말할 힘까지 모두 사라져버린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차를 왜 그딴 식으로 몰아? 사람을 치고도 도망을 가?”송연아는 어안이 벙벙했다.“그 차.... 전 두 달이 넘게 몰지 않았어요...”“거짓말할 생각 하
“아빠, 엄마, 절 살려주세요. 아니면 저 틀림없이 감옥에 들어갈 거예요.”송예걸이 얼이 빠진 얼굴로 백수연의 옷깃을 잡고 드러누워 있었다.송태범은 사고뭉치 철없는 아들을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너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그 한마디 말에서 이번이 처음 친 사고는 아니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저, 저 지금 운전면허를 따고 있잖아요. 누나의 차가 여기에 있길래 연습 삼아 운전해 봤는데 누군가의 차를 들이박았어요...”“뭐라고?!”송태범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너 저번엔 꼬챙이로 하마터면 다른 사람을 실명에까지 이르게 할 뻔했잖아. 그때 내가 돈을 끌어다 넘겨주고 몇십 번을 사과하고 나서야 간신히 일이 해결됐어. 그런데 며칠이나 지났다고 또 사고를 쳐? 운전면허를 아직 따지도 못한 놈이 감히 차를 끌고 나가다니. 이제 살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태범 씨, 화내지 말아요. 하나뿐인 아들인데 살려야 하잖아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는데 감옥에 들어가면 안 돼요. 그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차는 연아 것이잖아요. 연아가 일으킨 사고라고 하면 돼요...”“백수연, 미쳤어?”한혜숙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화내본 적이 없다. 이 순간은 단연 그녀가 처음으로 불같이 분노하는 순간이었다.“네 아들이 저지른 일을 왜 내 딸한테 덮어씌우려고 하는 거야?”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깜짝 놀란 송태범이 말했다.“당신, 당신 퇴원한 거야?”한혜숙이 그를 쳐다보았다.“나 당신과 사는 26년 동안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요구해본 적 없어. 당신한테 아들을 낳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당신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어도 문제 삼지 않았어.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을 강제로 강씨 집안에 시집 보낸 일로도 뭐라고 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번엔 아니야. 감히 그런 일을 내 딸에게 덮어씌운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지금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는 상황이잖아. 예걸이가 아직
송태범은 말을 마친 뒤 위층으로 올라갔다.백수연은 씩씩거리며 아들을 노려보다가 어쩔 수 없이 송태범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가자. 가서 네가 저지른 일을 자세히 말해.”백수연이 아들을 끌어냈다.“아빠...”송예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수연이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아빠 부르지 말고 네 일이나 해결해. 너 때문에 나까지도 네 아빠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단 말이야!”...송태범이 위층에 올라갔을 때 한혜숙은 한창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그는 한혜숙에게 다가가 그녀 손에 쥐어져 있는 옷을 빼앗으며 말했다.“우린 반평생을 부부로 살아왔어. 이제 와 이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한혜숙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혼 안 하고 계속하여 날 이용해 내 딸을 해치는 걸 두고 보라고?”“내가 언제 당신 딸을 해쳤어?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연아를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썼고, 연아에게 얼마나 많은 걸 가르쳤는지 몰라?”“왜 배우게 했는지 당신 본인이 잘 알잖아. 송태범, 당신은 내 병을 이용해 연아를 협박해 시집까지 보냈잖아. 난 당신이 밖에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이유가 그저 내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것 하나뿐인 줄 알았어. 하지만 이제 똑똑히 알겠어. 당신은 나와 연아한테 일말의 사랑도 없는 거야. 난 반드시 당신과 이혼해야겠어!”한혜숙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계속하여 옷을 캐리어에 집어넣었다.송태범이 천천히 분노를 가라앉히며 설명했다.“배우게 한 건 다 연아를 위해서야. 설사 나한테 다른 목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많이 배우면 좋은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 억지야!”한혜숙은 그와 더이상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됐어. 아무리 말해도 의미 없어. 아무튼 난 당신과 이혼할 거야!”단호한 그녀의 모습에 송태범은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라 캐리어를 들어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 바람에 안에 넣어두었던 옷들이 모두 쏟아져나왔다.화들짝 놀란 한혜숙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이 물건들 안 가져가도 돼
“저 심재경이에요. 연아는 조금 다쳐서 지금 수술실에 있어요.”심재경이 수술실 문 앞에 서 있었다.한혜숙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무슨 일이에요? 내 딸이 다쳤다고요?”심재경이 말했다.“네.”“어느 병원이에요?”한혜숙은 딸에 대한 걱정 때문에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군병원이에요.”“그래요. 알았어요.”한혜숙은 전화를 끊은 뒤 다급히 차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수술실 안에서 송연아가 의사의 팔을 부여잡고 있었다.“제 아이, 살 수 있나요?”조금 전 검사를 진행한 결과 한 아이는 이미 명을 다했고 다른 한 아이는 살릴 수도 있다고 했다.“본인 몸이 망가진다고 해도 꼭 아이를 살려야겠어요?”송연아의 얼굴은 이미 백지장처럼 창백해졌고 입술은 너무 말라 들어 피까지 흘러나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간신히 새어 나왔다.“네. 부탁드릴게요.”의사가 말했다.“최선을 다해볼게요.”송연아의 수술을 맡은 사람은 군병원 산부인과 간판 의사이니 그 실력은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심재경의 전공은 흉부외과였다. 때문에 직접 하지 못하고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에게 부탁해 송연아를 치료하도록 한 것이다.조금 전 그 역시 송연아의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었다.한혜숙이 도착했을 때 송연아는 아직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녀가 수술실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우리 연아 어디가 다친 거예요? 왜 갑자기 다친 건데요?”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 심재경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송연아가 얼마나 다쳤는지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차마 한혜숙에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몸을 회복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행여 또 이 일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하여 일단 자세한 내막은 숨기려 했다.“어머님, 걱정 마세요. 큰일은 아니에요.”그럼에도 한혜숙은 딸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휴. 연아가 이 못난 엄마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겪었
심재경이 그녀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반 컵을 마시고 나니 타들어 가는 것 같던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는 것 같았다. 입안도 이제 그리 쓰지 않았다.하지만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온몸에서 통증이 몰려와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어떻게 된 거야?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심재경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물었다.“설마 최지현이 한 거야?”그의 추측에 송연아가 고개를 저었다.조금 전 엄마로부터 송예걸이 그녀의 차를 몰고 나갔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심재경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만약 그녀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송예걸이 그녀의 차를 몰고 나가 들이박았다는 차량은 강세헌의 차였을 것이다.만일 강세헌의 상태가 심각했다면 필시 경찰서에서 직접 출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세헌이 사람을 보내 사고를 낸 사람을 혼냈다는 건 심하게 다친 게 아니라 그저 화가 났다는 것을 설명한다.자세히 생각해보면 강세헌의 차를 박은 사람은 그녀의 이복동생이다. 그러니 그녀가 화를 당한 것 또한 그리 억울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선배, 저 강세헌 씨와 이혼할 거예요. 전 이미 아이 하나를 잃었어요. 계속 그와 같이 있다간 남은 아이도 지킬 수 없을지도 몰라요.”그녀가 힘없이 말했다.“제가 임신했다는 사실도 밝히려고요.”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잘 생각했어.”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송연아에게 강세헌과의 이혼을 권유한 것은 아니었다.그들은 각자의 아이가 있는 이 난관을 쉬이 돌파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아이가 없으면 몰라도, 이런 상황에선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너무도 많아 감정을 키워나가기가 어렵다. “내 생각엔 강세헌은 최지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의 아이는 버리지 못할 거야.”심재경이 말했다.송연아가 이마를 찌푸렸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최지현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임신시킬 수가 있겠어요?”그녀는 당시 어리석게도 강세헌의 괴변을 곧이곧대로 믿었었다.최지
강세헌이 살펴보니 모두 송연아에 관한 자료였다. 그의 이마가 깊게 찌푸려졌다.“이 사람이 사고 차량을 운전한 사람이야?”그는 당시 남자아이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보았었다. 비서는 강세헌의 얼굴이 왜 굳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 차는 송연아 씨의 것이었습니다.”“그렇다고 그 차를 송연아가 몰았다고 확신할 수 있어?”강세헌이 침대에서 내려와 차갑게 비서를 노려보았다.“그럼 네가 혼냈다는 사람이 송연아야?”비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겁에 질려 답하지 못했다.“내가 묻고 있잖아!”강세헌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비서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네.”강세헌이 분노에 거친 숨을 내쉬었다.비서가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강세헌은 비서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문밖에선 최지현이 강세헌을 만나려 기다리고 있었다.사고가 났으니 당당하게 아이가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제 강세헌도 더는 뭐라고 못할 것이다.“세헌 씨.”그녀가 손을 뻗어 강세헌의 팔목을 잡으려고 하자 그는 매정히 그녀를 뿌리쳤다.“비켜!”최지현이 바닥에 휙 쓰러져버렸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비서는 재빨리 밖으로 달려나가 차 문을 열었다.강세헌이 전화를 걸며 차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송연아 어디에 있는지 알아?”심재경이 대답했다.“알아. 지금 병원에 나와 같이 있어.”강세헌은 더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고는 비서에게 군병원으로 가라고 일렀다.얼마 후, 차가 병원 앞에 멈춰 섰다. 강세헌은 곧바로 차에서 내려 입원 병동에 있는 송연아의 병실로 향했다. 문 앞에 서 있던 심재경이 그를 발견하고는 두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연아는 임신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아이가 없어졌어. 왜 그렇게 됐는지는 너도 알 거야.”심재경이 말했다. 이 말은 심재경 혼자만의 판단하에 한 말이었다. 그는 강세헌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송연아!”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 마지막엔 포효에 이르렀다. 얼굴은 시뻘겋게 부어올랐다가 새파랗게 변해갔고 목덜미는 당장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았다.그가 송연아의 목을 움켜쥐었다. “내가 지금 당신을 죽여버릴 수도 있다는 거 알아요?”송연아가 말했다.“알아요. 하지만 전 무섭지 않아요.”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고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강세헌 씨, 난 당신이 미워요!”“나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이 아이를 잃게 돼서 미워하는 거예요?”강세헌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쏘아붙였다.“이번 일이 없었더라도 난 절대 더러운 잡종 따위 태어나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방식은 달랐겠지만 똑같이 없애버렸겠죠. 마침 잘됐네요. 내가 손을 쓸 필요가 없게 됐으니. 보아하니 하느님도 당신이 잡종을 낳게 하고 싶지는 않았나 봐요. 이런 오해가 생기게 한 걸 보면 말이에요.”그가 말끝마다 내뱉는 잡종이라는 단어가 송연아의 심장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강세헌 씨, 난 당신이 미워요!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울분을 터뜨렸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엔 원망뿐만 아니라 하늘을 찌르는 분노까지 가득 차 있었다. 아이가 잘못된 일로 그가 죽기까지 바란다고? 송연아의 목을 움켜쥔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가 천천히 손에 힘을 풀며 말했다. “송연아 씨, 이혼은 꿈도 꾸지 말아요. 내가 말했잖아요. 괴로워할수록 더 내 옆에 둘 거라고요.”송연아는 몇 번이나 연속 주먹을 말아 쥐어서야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았다.“강세헌 씨, 최지현 씨가 당신 아이를 가졌잖아요. 그 아이에게 단란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요? 날 가지 못하게 막는 게 당신한테 좋은 점이 뭐가 있어요?” “그 사고 때문에 아이는 죽었어요. 말해요. 그 차 누가 운전한 거예요?” 강세헌이 말했다.송연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지현의 아이가 죽었다고? 그래서 그토록 화가나 사고를 낸 운전사를 호되게 혼내려 했던 것이다.송연아는 이복동생에게 조금의 정도 없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