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헌이 정신을 차렸을 때 농후한 소독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대표님.”비서가 팔을 뻗어 그를 부축하려 했다.강세헌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됐어.”그가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물었다.“임지훈은 어떻게 됐어?”“생명의 위험은 없습니다. 작은 수술을 했는데 아직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요.”비서가 대답했다.“대표님께서도 경미한 뇌진탕이 왔다고 해요. 의사 선생님께서 충분히 쉬어야 한다고 했어요. 좀 더 주무실래요?”강세헌은 최지현의 다리를 타고 흐르던 피를 떠올리고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물었다.“최지현은?”“의사의 말로는 유산했다고 해요. 타박상도 좀 있긴 한데 심각하진 않아요. 제가 왔을 때 깨어난 지 얼마 안 됐더라고요. 지금 옆방 병실에 있어요.”비서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불러올까요?”강세헌이 팔을 들었다. 그럴 필요 없다는 의미였다.그는 복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최지현에게 반감을 갖고 배척했고 심지어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을 막으려까지 했다.그럼에도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는 것은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이제 아이를 잃었다.그는 아버지로서 슬픈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 때문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경찰은 왔었어?”그가 물었다.“네. 하지만 아직 범인은 잡지 못했어요.”강세헌의 기억으론 어린 남자아이였는데 사고 후에도 별로 다치지 않았는지 곧바로 차에서 기어 나와 도망쳐버렸다. 아마 많이 놀랐을 것이다. 면허증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가 없다.“사람을 보내 찾아봐. 자신이 누구를 건드렸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따끔하게 혼내줘. 하지만 절대 죽이면 안 돼. 그리고, 최지현을 수술한 의사를 나한테 데려와 줘.”그는 최지현의 몸에서 흐르던 피를 똑똑히 보았었다. 그러니 최지현이 정말 자신의 아이를 가졌음을 인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보였던 그녀의 의심스러운 표정 때문에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
그녀는 이제 강 사모님이라는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산산한 바람에 날려 부스럭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으니 햇살도 그리 뜨겁지 않았다.바람이 불어오니 약간 으스스한 서늘함까지 느껴지고 있었다.그녀가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다그쳤다. 어서 돌아가 저녁상을 차린 다음 강세헌에게 이혼을 제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하지만 그때, 차 한 대가 그녀의 앞에 멈춰서 앞길을 가로막았다.안에서 몇 명의 남자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다짜고짜 그녀의 머리 위에 검은 봉지를 덮어씌우고는 입을 막고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우욱.”송연아는 그들의 손에 꽉 사로잡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얼마 후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은 깜깜했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누군가가 그녀의 입을 막고 있지는 않았다.“당신들 누구야? 나한테 왜 이래?”“01 가 7782, 이거 네 차 번호 맞지?”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차는 그녀가 출근하기 시작한 뒤 엄마가 자신의 적금을 모두 깨 그녀에게 사준 것이다. 그녀는 결혼 전까지 그 차를 몰고 다녔고 강씨 집안에 시집을 가고 난 뒤엔 줄곧 송씨 저택에 세워두었다.“맞아요. 대체 왜...”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지막지한 발길질이 그녀를 향했다. 그녀는 몸을 움츠리고 고통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당신들... 으악...”발길질은 등 뒤, 다리, 허리, 모든 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그녀는 아이를 보호하려 허리를 굽히고 배를 끌어안았다.뼈와 살을 파고드는 고통에 정신까지 아찔해졌다.“당신들 대체 누구...”그녀가 피와 땀에 흠뻑 젖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말할 힘까지 모두 사라져버린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차를 왜 그딴 식으로 몰아? 사람을 치고도 도망을 가?”송연아는 어안이 벙벙했다.“그 차.... 전 두 달이 넘게 몰지 않았어요...”“거짓말할 생각 하
“아빠, 엄마, 절 살려주세요. 아니면 저 틀림없이 감옥에 들어갈 거예요.”송예걸이 얼이 빠진 얼굴로 백수연의 옷깃을 잡고 드러누워 있었다.송태범은 사고뭉치 철없는 아들을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너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그 한마디 말에서 이번이 처음 친 사고는 아니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저, 저 지금 운전면허를 따고 있잖아요. 누나의 차가 여기에 있길래 연습 삼아 운전해 봤는데 누군가의 차를 들이박았어요...”“뭐라고?!”송태범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너 저번엔 꼬챙이로 하마터면 다른 사람을 실명에까지 이르게 할 뻔했잖아. 그때 내가 돈을 끌어다 넘겨주고 몇십 번을 사과하고 나서야 간신히 일이 해결됐어. 그런데 며칠이나 지났다고 또 사고를 쳐? 운전면허를 아직 따지도 못한 놈이 감히 차를 끌고 나가다니. 이제 살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태범 씨, 화내지 말아요. 하나뿐인 아들인데 살려야 하잖아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는데 감옥에 들어가면 안 돼요. 그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차는 연아 것이잖아요. 연아가 일으킨 사고라고 하면 돼요...”“백수연, 미쳤어?”한혜숙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화내본 적이 없다. 이 순간은 단연 그녀가 처음으로 불같이 분노하는 순간이었다.“네 아들이 저지른 일을 왜 내 딸한테 덮어씌우려고 하는 거야?”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깜짝 놀란 송태범이 말했다.“당신, 당신 퇴원한 거야?”한혜숙이 그를 쳐다보았다.“나 당신과 사는 26년 동안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요구해본 적 없어. 당신한테 아들을 낳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당신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어도 문제 삼지 않았어.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을 강제로 강씨 집안에 시집 보낸 일로도 뭐라고 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번엔 아니야. 감히 그런 일을 내 딸에게 덮어씌운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지금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는 상황이잖아. 예걸이가 아직
송태범은 말을 마친 뒤 위층으로 올라갔다.백수연은 씩씩거리며 아들을 노려보다가 어쩔 수 없이 송태범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가자. 가서 네가 저지른 일을 자세히 말해.”백수연이 아들을 끌어냈다.“아빠...”송예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수연이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아빠 부르지 말고 네 일이나 해결해. 너 때문에 나까지도 네 아빠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단 말이야!”...송태범이 위층에 올라갔을 때 한혜숙은 한창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그는 한혜숙에게 다가가 그녀 손에 쥐어져 있는 옷을 빼앗으며 말했다.“우린 반평생을 부부로 살아왔어. 이제 와 이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한혜숙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혼 안 하고 계속하여 날 이용해 내 딸을 해치는 걸 두고 보라고?”“내가 언제 당신 딸을 해쳤어?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연아를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썼고, 연아에게 얼마나 많은 걸 가르쳤는지 몰라?”“왜 배우게 했는지 당신 본인이 잘 알잖아. 송태범, 당신은 내 병을 이용해 연아를 협박해 시집까지 보냈잖아. 난 당신이 밖에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이유가 그저 내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것 하나뿐인 줄 알았어. 하지만 이제 똑똑히 알겠어. 당신은 나와 연아한테 일말의 사랑도 없는 거야. 난 반드시 당신과 이혼해야겠어!”한혜숙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계속하여 옷을 캐리어에 집어넣었다.송태범이 천천히 분노를 가라앉히며 설명했다.“배우게 한 건 다 연아를 위해서야. 설사 나한테 다른 목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많이 배우면 좋은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 억지야!”한혜숙은 그와 더이상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됐어. 아무리 말해도 의미 없어. 아무튼 난 당신과 이혼할 거야!”단호한 그녀의 모습에 송태범은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라 캐리어를 들어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 바람에 안에 넣어두었던 옷들이 모두 쏟아져나왔다.화들짝 놀란 한혜숙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이 물건들 안 가져가도 돼
“저 심재경이에요. 연아는 조금 다쳐서 지금 수술실에 있어요.”심재경이 수술실 문 앞에 서 있었다.한혜숙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무슨 일이에요? 내 딸이 다쳤다고요?”심재경이 말했다.“네.”“어느 병원이에요?”한혜숙은 딸에 대한 걱정 때문에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군병원이에요.”“그래요. 알았어요.”한혜숙은 전화를 끊은 뒤 다급히 차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수술실 안에서 송연아가 의사의 팔을 부여잡고 있었다.“제 아이, 살 수 있나요?”조금 전 검사를 진행한 결과 한 아이는 이미 명을 다했고 다른 한 아이는 살릴 수도 있다고 했다.“본인 몸이 망가진다고 해도 꼭 아이를 살려야겠어요?”송연아의 얼굴은 이미 백지장처럼 창백해졌고 입술은 너무 말라 들어 피까지 흘러나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간신히 새어 나왔다.“네. 부탁드릴게요.”의사가 말했다.“최선을 다해볼게요.”송연아의 수술을 맡은 사람은 군병원 산부인과 간판 의사이니 그 실력은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심재경의 전공은 흉부외과였다. 때문에 직접 하지 못하고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에게 부탁해 송연아를 치료하도록 한 것이다.조금 전 그 역시 송연아의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었다.한혜숙이 도착했을 때 송연아는 아직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녀가 수술실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우리 연아 어디가 다친 거예요? 왜 갑자기 다친 건데요?”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 심재경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송연아가 얼마나 다쳤는지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차마 한혜숙에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몸을 회복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행여 또 이 일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하여 일단 자세한 내막은 숨기려 했다.“어머님, 걱정 마세요. 큰일은 아니에요.”그럼에도 한혜숙은 딸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휴. 연아가 이 못난 엄마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겪었
심재경이 그녀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반 컵을 마시고 나니 타들어 가는 것 같던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는 것 같았다. 입안도 이제 그리 쓰지 않았다.하지만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온몸에서 통증이 몰려와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어떻게 된 거야?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심재경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물었다.“설마 최지현이 한 거야?”그의 추측에 송연아가 고개를 저었다.조금 전 엄마로부터 송예걸이 그녀의 차를 몰고 나갔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심재경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만약 그녀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송예걸이 그녀의 차를 몰고 나가 들이박았다는 차량은 강세헌의 차였을 것이다.만일 강세헌의 상태가 심각했다면 필시 경찰서에서 직접 출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세헌이 사람을 보내 사고를 낸 사람을 혼냈다는 건 심하게 다친 게 아니라 그저 화가 났다는 것을 설명한다.자세히 생각해보면 강세헌의 차를 박은 사람은 그녀의 이복동생이다. 그러니 그녀가 화를 당한 것 또한 그리 억울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선배, 저 강세헌 씨와 이혼할 거예요. 전 이미 아이 하나를 잃었어요. 계속 그와 같이 있다간 남은 아이도 지킬 수 없을지도 몰라요.”그녀가 힘없이 말했다.“제가 임신했다는 사실도 밝히려고요.”심재경이 고개를 끄덕였다.“잘 생각했어.”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송연아에게 강세헌과의 이혼을 권유한 것은 아니었다.그들은 각자의 아이가 있는 이 난관을 쉬이 돌파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아이가 없으면 몰라도, 이런 상황에선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너무도 많아 감정을 키워나가기가 어렵다. “내 생각엔 강세헌은 최지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의 아이는 버리지 못할 거야.”심재경이 말했다.송연아가 이마를 찌푸렸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최지현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임신시킬 수가 있겠어요?”그녀는 당시 어리석게도 강세헌의 괴변을 곧이곧대로 믿었었다.최지
강세헌이 살펴보니 모두 송연아에 관한 자료였다. 그의 이마가 깊게 찌푸려졌다.“이 사람이 사고 차량을 운전한 사람이야?”그는 당시 남자아이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보았었다. 비서는 강세헌의 얼굴이 왜 굳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 차는 송연아 씨의 것이었습니다.”“그렇다고 그 차를 송연아가 몰았다고 확신할 수 있어?”강세헌이 침대에서 내려와 차갑게 비서를 노려보았다.“그럼 네가 혼냈다는 사람이 송연아야?”비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겁에 질려 답하지 못했다.“내가 묻고 있잖아!”강세헌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비서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네.”강세헌이 분노에 거친 숨을 내쉬었다.비서가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강세헌은 비서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문밖에선 최지현이 강세헌을 만나려 기다리고 있었다.사고가 났으니 당당하게 아이가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제 강세헌도 더는 뭐라고 못할 것이다.“세헌 씨.”그녀가 손을 뻗어 강세헌의 팔목을 잡으려고 하자 그는 매정히 그녀를 뿌리쳤다.“비켜!”최지현이 바닥에 휙 쓰러져버렸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비서는 재빨리 밖으로 달려나가 차 문을 열었다.강세헌이 전화를 걸며 차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송연아 어디에 있는지 알아?”심재경이 대답했다.“알아. 지금 병원에 나와 같이 있어.”강세헌은 더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고는 비서에게 군병원으로 가라고 일렀다.얼마 후, 차가 병원 앞에 멈춰 섰다. 강세헌은 곧바로 차에서 내려 입원 병동에 있는 송연아의 병실로 향했다. 문 앞에 서 있던 심재경이 그를 발견하고는 두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연아는 임신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아이가 없어졌어. 왜 그렇게 됐는지는 너도 알 거야.”심재경이 말했다. 이 말은 심재경 혼자만의 판단하에 한 말이었다. 그는 강세헌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송연아!”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 마지막엔 포효에 이르렀다. 얼굴은 시뻘겋게 부어올랐다가 새파랗게 변해갔고 목덜미는 당장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았다.그가 송연아의 목을 움켜쥐었다. “내가 지금 당신을 죽여버릴 수도 있다는 거 알아요?”송연아가 말했다.“알아요. 하지만 전 무섭지 않아요.”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고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강세헌 씨, 난 당신이 미워요!”“나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이 아이를 잃게 돼서 미워하는 거예요?”강세헌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쏘아붙였다.“이번 일이 없었더라도 난 절대 더러운 잡종 따위 태어나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방식은 달랐겠지만 똑같이 없애버렸겠죠. 마침 잘됐네요. 내가 손을 쓸 필요가 없게 됐으니. 보아하니 하느님도 당신이 잡종을 낳게 하고 싶지는 않았나 봐요. 이런 오해가 생기게 한 걸 보면 말이에요.”그가 말끝마다 내뱉는 잡종이라는 단어가 송연아의 심장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강세헌 씨, 난 당신이 미워요!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울분을 터뜨렸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엔 원망뿐만 아니라 하늘을 찌르는 분노까지 가득 차 있었다. 아이가 잘못된 일로 그가 죽기까지 바란다고? 송연아의 목을 움켜쥔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가 천천히 손에 힘을 풀며 말했다. “송연아 씨, 이혼은 꿈도 꾸지 말아요. 내가 말했잖아요. 괴로워할수록 더 내 옆에 둘 거라고요.”송연아는 몇 번이나 연속 주먹을 말아 쥐어서야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았다.“강세헌 씨, 최지현 씨가 당신 아이를 가졌잖아요. 그 아이에게 단란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요? 날 가지 못하게 막는 게 당신한테 좋은 점이 뭐가 있어요?” “그 사고 때문에 아이는 죽었어요. 말해요. 그 차 누가 운전한 거예요?” 강세헌이 말했다.송연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지현의 아이가 죽었다고? 그래서 그토록 화가나 사고를 낸 운전사를 호되게 혼내려 했던 것이다.송연아는 이복동생에게 조금의 정도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