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원은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고 설명을 보탰다.“이 카드는 2조 원 이상의 예금을 가진 분들에게만 제공되는 VVIP 카드입니다.”자사호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자였다.종업원도 가게에서 일하면서 부자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부자들의 세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송연아는 어안이 벙벙했다.그녀는 강세헌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원하는 거 뭐든지 사요.’이제 그녀는 마침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하지만...어떻게 강세헌으로부터 그렇게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까?종업원이 물건을 잘 포장하고 오은화가 물건을 받아 들었다.“손님, 카드 여기요.”종업원은 두 손으로 카드를 건네주었다.송연아는 그것을 받았다. 분명 카드일 뿐이었지만 너무 무겁게 느껴져 도저히 갖고 있을 수 없었다.강세헌이 그녀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농담으로 받아들였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가 말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카드를 줄 수 있었을까?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돈은 어떤 여자라도 흔들 수 있었다.그녀도 예외는 아니었고 정말로 약간 흔들렸다!돈의 양 때문이 아니라 그의 성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백만 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백만 원을 전부 준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성의이고, 1억 원을 갖고 있는 사람이 기꺼이 1억 원을 다 주는 것 또한 그 사람의 성의이다.“사모님, 무슨 생각 하세요? 다른 건 안 사세요?” 생각에 잠긴 송연아를 본 오은화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송연아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더 살 거 없어요. 가요.”오은화는 물었다.“도련님의 마음을 느끼셨죠?”송연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느꼈다.다만 인정할 수 없을 뿐이었다.감히 인정할 수도 없었다.강세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 강세헌은 진짜 부부가 될 수 없었다.강세헌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키우고 의붓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당연히 안 될 것이다.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감정을 낭비할 필
전문의의 집에서 나온 그녀는 빌라로 돌아갔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이 일을 한혜숙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송태범과 한혜숙은 20년 넘게 부부로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그녀는 한혜숙이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한혜숙에게 전화를 걸려고 할 때 휴대폰이 진동했는데 한혜숙이 보낸 동영상이었다.두 개의 메시지도 첨부되어 있었다.영상 속 찬이는 파란색의 위아래가 붙은 영아 복을 입고 있었고, 머리는 검게 빛이 났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른 채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이 매우 귀여웠다.「찬이 이제 1개월 되었어. 그동안 몇 근 올라서 거의 일곱 근이 되어 가. 많이 포동포동해졌지?」「얘 좀 봐, 너를 닮지 않았어?」송연아가 한혜숙에게 연락한 이후 한혜숙은 송연아가 이미 고훈의 손에서 벗어난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다시 강세헌에게 잡혔지만 말이다.그래서 송연아는 지금 당장 그녀와 함께 할 수 없었다.송연아는 괜찮다고 말하며 찬이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그녀는 딸이 다른 걱정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송연아가 그곳에서 안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찬이를 돌보았다.송연아는 영상 속 아기를 바라보며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고 한혜숙에게 답장을 보냈다.「내 아이니까 당연히 나를 닮았죠.」잠시 망설인 후 그녀는 메시지 하나를 더 보냈다. 「아빠가 많이 아프시다고 들었어요. 엄청 심각한가 봐요.」한참 지나 한혜숙이 답장을 보내왔다.「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송연아는 화면을 응시하며 한혜숙의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생각했다.화가 나서 한 말일까, 아니면 정말 송태범이 죽었으면 할 정도로 원망해서 한 말일까.“사모님, 과일 좀 드세요.” 오은화가 음식을 들고 들어오자 송연아는 생각을 멈추었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멜론 한 조각을 먹었다....병원에서.송태범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의 두 눈은 깊게 움푹 패 있었고 얼굴색은 누랬다. 심하게 살이 빠진 모습이었다
송예걸은 말을 더듬거렸다.“당신... 아빠를 구할 생각이 없지 않았어? 병원에는 왜 온 거야?”송연아는 냉정하게 말했다.“깁스 제거하러 온 거야.”“흥, 그래, 당신은 정말 배은망덕해!”송예걸은 분개했다! 입을 열면 욕설이었다.송태범은 그녀가 보고 싶었다.그런데 그녀는 너무 무정했다!“저희 사모님은 이미 충분히 하셨어요. 그렇지 않으면 사모님이 그곳에 가지 않으셨을 거...”“아주머니.”송연아는 오은화의 말을 가로챘다. 그녀는 자신이 한 일을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게다가 백수연의 아들에게는 더욱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송예걸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의 의견과 생각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병실에서 송태범은 목소리를 듣고 외쳤다.“연아니?”송연아는 입술을 앙다물다가 대답했다.“저예요.”“들어와, 너한테 할 말이 있어.”송연아는 들어가기 싫어서 말했다.“편히 쉬세요.”“연아야!” 송태범은 더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내가 일어나서 너를 찾아가기까지 해야 해?” “아빠, 부르지 마세요. 저 여자는 양심을 개나 줘버렸어요.” 송예걸은 그녀를 비난했다.“어떻게 감히 네가 그렇게 말해?” 송태범은 침대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가 송예걸에게 엄숙하게 말했다.“네 누나에게 사과해!”송예걸은 고집을 부렸다.“안 할 거예요!”“얼른!”송태범은 화가 나서 격렬하게 기침을 했다.송예걸은 서둘러 그의 등을 두드렸다. 아버지를 화나게 하지 않기 위해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마지못해 송연아에게 말했다.“미안해요.”“아빠, 나 사과했어요. 화내지 마세요. 그 병은 화내면 안 돼요.”그는 걱정스럽게 말했다.송태범의 기침이 조금 약해졌다.조금 진정하고 그는 송연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빠가 이렇게 부탁할게.”병으로 인해 모습이 변한 송태범을 바라보며 송연아는 마음이 약해져 동의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할 말이 있으면 빨리하세요. 저 볼 일이 있어요.”송태범은 송예걸을 내보냈다.“네 누나와 따로 할 얘기 있
“그만해!”송태범이 그녀에게 으름장을 놓았다.백수연은 코웃음 치며 그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송연아에게 경고했다.“넌 이미 시집간 딸이라 송씨 집안의 재산을 넘볼 생각도 하지 마. 그건 전부 예걸의 몫이야.”“나 아직 안 죽었어. 벌써 유산을 나눌 생각이야? 지금 날 죽으라고 저주하는 거야 뭐야?”송태범은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백수연 때문에 제 명에 못 살 것 같았다!백수연이 씩씩거리며 그의 등을 두드려줬다.“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 당신은 내 기둥이에요.”그녀는 아직 송태범이 죽길 바라지 않는다. 남편을 설득하여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았으니까!송연아는 백수연을 흘겨보며 그녀가 송씨 집안의 재산을 노리는 걸 단번에 알아챘지만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병실을 나서서 오은화에게 말했다.“가요 인제.”오은화가 그녀의 휠체어를 밀어주었다.다리의 깁스를 풀었고 의사 선생님이 며칠 후면 걸어 다닐 수 있다고 했지만 아직 격렬한 운동은 삼가라고 했다. 예를 들어 달리기, 줄넘기 등 다리를 쓰는 운동 말이다.송연아는 깁스를 풀고 전문의를 찾아가 송태범의 상태를 전해 들었다.전문의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송태범의 상태가 매우 안 좋아 살 날이 며칠 안 남았다고 그녀에게 말했다.의사의 말을 들은 송연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다만 저희도 환자분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며칠이라도 더 살게 해드려야죠.”전문의가 말했다.송연아는 온 마음을 다해 고마움을 표했다.“고마워요 정말.”그녀는 병원을 나선 후 줄곧 흐리멍덩하고 정신이 딴 데 팔린 것 같았다.저녁도 조금 먹고 씻은 후 바로 침대에 누웠다.강세헌은 매우 바빠 밤늦게서야 집에 돌아왔다.그는 샤워를 마친 후 그레이색 실크 잠옷을 입었다. 건장한 체구에 뭘 입어도 옷 태가 살아 잠옷을 대충 걸쳐도 안구 정화되는 기분이었다!강세헌은 송연아의 옆에 누웠다. 송연아는 그가 들어올 때 이미 잠에서 깼지만 꼼짝하지 않고 쭉 잠든 척했다.강세헌이 팔을 뻗
“언제 발생한 일이야?”전화기 너머로 임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저도 방금 접한 소식입니다. 아마 요 이틀에 일어난 일인 것 같아요.”“반드시 사람 찾아와!”강세헌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네.”그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식탁에 내던졌다.“쾅!”요란한 소리가 그의 현재 기분을 드러냈다.송연아가 재빨리 질문했다.“무슨 일인데 이렇게 화를 내요?”안에 갇혀 있던 최지현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어 나갔는데 그녀를 구출한 사람이 바로 전에 만나던 재벌 2세 주혁이었다.송연아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강세헌은 말을 아꼈다.“아니에요, 아무것도.”강세헌은 최지현이 밖에서 잘 먹고 잘사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다.그녀가 사칭한 바람에 강세헌은 제 아이까지 다치게 했다!송연아도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회사 일이 내키지 않는 거로 여기며 계속 머리 숙이고 밥을 먹었다.식사를 마친 후 강세헌이 외출하려 할 때 전 집사가 왔다.“도련님, 회장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저랑 함께 본가에 다녀오시죠.”강세헌이 대답했다.“알았어요.”그는 고개 돌려 송연아에게 당부했다.“집에서 푹 쉬고 있어요.”그녀의 다리는 아직 완치하지 못했다.송연아는 얌전히 머리를 끄덕였다.전 집사는 강세헌의 뒤에서 따라 나갈 때 고개 돌려 송연아를 힐긋 쳐다봤는데 그 눈빛이 실로 의미심장할 따름이었다!송연아는 강의건이 왜 강세헌을 보자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송태범이 강의건을 찾아가서 그런 걸까?어르신은 지금 강세헌에게 이혼에 관한 얘기를 하려는 걸까?송연아는 의외로 살짝 긴장했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흐트러진 눈빛으로 멍하니 있었다.지금 왜 긴장하고 있는 걸까?이혼이야말로 그녀가 원하던 결과가 아니던가?다만 강세헌의 자상함을 생각하노라면 왠지 자신이 너무 야박한 것 같았다.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는 저 자신이 너무 싫었다.이건 완전히 그릇된 생각이다.그녀의 아이를 간접적으로 해친 남자인데, 어떻게 그런 남자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하지만 그녀는 누구
전 집사가 앞으로 다가갔다.“회장님, 도련님께서 화나셨어요?”강의건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몰라서 물어?”강세헌의 태도는 더없이 강경했다!“도련님은 지금 연아 씨에게 감정이 생겨서 이혼하기 싫으신 거죠?”전 집사가 추측했다.강의건도 얼추 눈치챘다.“다 내 탓이야. 그 아이의 됨됨이도 잘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세헌이 옆에 붙여줬어. 세헌이랑 연아 이혼시키는 거 쉽지만은 않겠어.”“도련님 성격은 회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도련님이 원하지 않는 일은 절대 이룰 수 없어요.”전 집사가 말했다.“잊었어? 세헌이한테도 마음 약한 구석이 있잖아.”강의건의 말에 전 집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회장님 말씀은...”“세헌이는 그걸 아주 중시해. 내가 알기로 세헌이가 열 살 되던 그해, 인공산 뒤의 연못에 빠졌을 때 옥패를 잃은 여자아이가 세헌이를 구해줬어. 나중에 세헌이도 찾고 나도 대신 찾아다녔는데 그날 집에 온 사람이 하도 많아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지.”“그때도 못 찾은 걸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찾을 수 있겠어요?”전 집사가 물었다.강의건은 전 집사를 힐긋 쳐다봤다.“찾고 안 찾고는 중요치 않아. 중요한 건 세헌의 믿음이야.”전 집사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아이고, 왜 이렇게 멍청해?”강의건이 설명했다.“그냥 믿을 만한 여자아이를 한 명 데려와 세헌이한테 그때 구해준 여자애라고 말하면 될 거 아니야?”“하지만 도련님께서 쉽게 믿어주실까요?”전 집사는 여전히 걱정스러웠다!강의건은 전 집사가 꽉 막힌 사람이라고 꾸짖었다.“그때 세헌이는 고작 열 살이야. 그 일은 기억하겠지만 세부적인 건 거의 다 잊혔을 거야. 게다가 우리가 그 과정을 대충 여자아이에게 말해주고 그 애가 당시 상황을 대략 설명하면 세헌이도 믿게 돼 있어.”전 집사는 강의건보다 섬세했다.“하지만 갑자기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눈치 빠른 도련님이 수상한 낌새를 바로 알아챌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여자아이가 왜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연아 씨
그녀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상대가 강세헌이란 걸 똑똑히 보았다.“왜 그래요?”송연아가 물었지만 강세헌은 못 들은 것처럼 그녀의 옷을 힘껏 찢었다.마치 성난 야수처럼 난폭하고 거침없었다.송연아도 몸부림쳤지만 남자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그녀의 몸에 싸늘한 한기가 감돌았고 옷이 스르륵 흘러내렸다.순간 그녀는 발가벗은 채로 강세헌에게 알몸을 드러냈다.송연아는 눈가에 눈물이 고인 채 갈라 터진 목소리로 울부짖었다.“강세헌,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나야말로 묻고 싶어! 너 나랑 이혼하려고 아버님까지 동원해서 우리 할아버지께 무릎 꿇게 해? 송연아, 이혼이 그토록 하고 싶어?!”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싸늘했다.송연아는 문득 어리둥절해졌다.‘아빠가 회장님을 설득하려고 무릎까지 꿇었어? 내가 이혼하는 걸 도와주려고?’그녀는 숨이 턱턱 막혔다.분노에 찬 강세헌은 그녀의 턱을 세게 꼬집었다.“내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뭔데? 왜 네 마음은 뜨거워지지 않냐고? 왜?!”송연아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 속에 실망과 적막함, 그리고 고통까지 담겨 있었다.그녀는 떨리는 입술로 그에게 뭐라 말하려 했지만 또 미처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송연아는 애써 눈물을 꾹 참으며 독하게 말했다.“맞아, 나 너랑 이혼하고 싶어, 읍...”강세헌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그는 모질게 키스를 퍼부었다. 한없이 거친 제스처였다.하지만 송연아는 그런 강세헌이 전혀 밉지 않았다.그가 지금 왜 이토록 미쳐 발광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그녀가 이혼하고 그의 곁을 떠나려 하니 강세헌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송연아는 그 순간 애틋한 그의 진심을 느꼈다.그녀는 둘 사이의 갈등과 원한을 제쳐두고 지금 이 감정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송연아는 문득 강세헌이 주는 느낌과 그 숨결이 너무 익숙했지만 더 생각할 겨를 없이 바로 정신을 다잡았다....끝난 뒤 강세헌은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입고 자리를 떠났다. 그는 송연아만 방에 남겨둔 채 나가
그건 바로 강세헌 때문이었다.하지만 송연아는 이혼할 마음이 너무 단호했다. 강세헌이 아무리 참고 배려해도 그녀의 마음은 바뀌지 않을뿐더러 장인어른까지 앞세워 그의 할아버지께 무릎 꿇고 이혼시켜달라고 애원했다.송연아는 이혼할 마음을 철석같이 굳힌 듯싶다.그녀의 이런 성격에 강세헌은 그날 밤 그 일을 감히 말할 엄두가 안 났다.말했다가 도리어 그를 더 미워하는 건 아닐까?“송연아 씨가 정말 대표님을 마음에 두고 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임지훈이 아이디어를 냈다.“어떻게 할 건데?”강세헌이 몸을 돌려 그에게 되물었다.“송연아 씨가 만약 대표님께 미움만 남아있다면 대표님이 딴 여자랑 함께 있을 때 전혀 아무렇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호감이 있다면 무조건 질투할 겁니다.”강세헌이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또 무슨 수작이야?”임지훈은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이 방법이 아주 괜찮을 듯싶었다.절대 허튼수작은 아니다!“지금 더 나은 방법도 없잖아요. 송연아 씨가 대표님께 감정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임지훈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강세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이 일은 네가 알아서 진행해. 단,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선택해.”“알겠습니다.”임지훈이 대답했다.“아 참, 최지현은 찾았어?!”강세헌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지금 찾고 있습니다.”임지훈이 곧바로 대답했다.“무조건 찾아내. 시신이라도 건지란 말이야.”강세헌이 이 말을 건넬 때 음침한 한기가 감돌았다.“네, 빨리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저 때문에 주혁이가 기회를 잡았어요.”...송연아는 오늘 별장에서 나가지 않았다. 의사의 분부대로 다리 훈련을 하니 이젠 걸을 수도 있었다. 너무 과격한 운동만 안 하면 아무 지장이 없다.다만 그녀는 오늘 시도 때도 없이 넋을 놓다 보니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그녀도 본인이 왜 이런지 이해가 안 됐다.정신이 흐리멍덩하고 자꾸 시계만 들여다보며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