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헌은 택배원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그가 들고 있는 커다란 장미꽃다발에 시선을 고정했다.‘이 꽃은 누구에게 보낸 거지? 송연아에게 보낸 건가?’이때 송연아가 호기심에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문 앞에 누구세요?”택배원은 강세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을 느꼈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실례지만 송연아 씨 맞으세요? 저는 택배원인데 송연아 씨 앞으로 택배가 왔으니 받고 서명해 주세요!”“누가 배달을 부탁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송연아가 물었다.택배원이 대답했다.“고 씨 남성분께서 보내셨어요.”송연아의 시선은 즉시 강세헌에게로 향했고 그의 얼굴 윤곽이 빳빳하게 긴장한 것을 보았다. 옆 모습만 보였지만 그의 불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강세헌이 이미 고훈이 보낸 택배라는 것을 짐작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는 강세헌이 분명히 화를 낼 거라는 걸 알면서도 택배원에게 물건을 가지고 들어와 달라고 부탁했다.택배원은 몸을 돌려 전전긍긍하면서 강세헌 옆으로 들어가서 아흔아홉 송이의 붉은 장미가 들어있는 커다란 꽃다발을 송연아에게 건넸다.“사인해 주세요.”송연아는 알았다고 말했다.송연아가 사인을 다 하자 택배원은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병실을 빠져나갔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배달한 택배 중 가장 마음을 졸였던 택배일 것이다.강세헌이 다가왔다.“좋아요?”송연아는 카드를 열어 내용을 보면서 말했다.“여자라면 다 꽃을 좋아하지 않나요.”강세헌은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손에서 카드를 빼앗았다.그는 눈을 내리깔고 카드에 쓰인 내용을 보았다.「나는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내 마음은 크지 않아 당신 하나만 담을 수 있어요. 연아 씨, 얼른 강세헌과 이혼해요. 나와 결혼해 줘요. 당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고훈.」고훈의 말은 노골적이면서 미심쩍었다.강세헌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고 그의 눈동자에는 핏기가 서리면서 핏물처럼 붉게 번졌다. 그는 화를 억누르며 송연아에게 물었다.“나랑 이혼하고 싶은 이유가 고훈과 결혼하기 위해서
그녀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아주머니, 사모님 짐 좀 싸 주세요.”임지훈이 말했다.오은화는 송연아가 병원에서 갈아입은 옷들을 챙겼고 다른 것들은 뭐가 별로 없었다.곧 짐을 다 싸고 임지훈이 휠체어를 밀고 왔다.오은화는 그녀를 부축하여 휠체어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임지훈은 송연아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두려운지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자 오은화는 뭔가 심상치 않다 싶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사모님, 또 도련님을 화나게 했어요?”송연아는 아무 말 없이 묵묵부답이었다.“왜 그러셨어요?”오은화는 송연아가 강세헌과 잘 지낼 수 있었는데 왜 또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만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강씨 부인이 될 수 있었다.모두가 부러워하는 강씨 가문의 사모님 말이다!왜 그녀는 항상 강세헌과 맞서는 것일까?오은화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그녀가 이렇게 하는 걸 원하지도 않았다.“그게...”송연아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임지훈이 고훈이 보낸 장미꽃들을 가져갔다. 그는 바닥에 내려놓고 밟아 버린 후 송연아에게 말했다.“이것도 강 대표님께서 지시한 것입니다.”송연아는 무표정이었다.그녀는 진심으로 그 장미꽃다발을 좋아하지도 않았다!“그냥 실컷 밟아요.”그녀는 차분했다.오은화가 물었다.“이게 오늘 병원에 사모님 보러 온 그 남자가 준 거예요?”송연아는 가볍게 대답했다.“네.”오은화는 이 상황을 안타까워했다.“도련님 성격 아시면서 왜 다른 남자가 보낸 꽃을 받으셨어요?”송연아는 숨김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저는 이혼하고 싶어요.”오은화와 임지훈은 할 말을 잃었다.“...”“...”“정말 틀린 선택을 하셨군요.”임지훈은 송연아가 어느 정도 눈치가 없다고 느꼈다!송연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 해명도 하지 않았다.임지훈은 그녀의 휠체어를 밀며 병원에서 나왔고, 문 앞에서는 백수연이 송태범의 팔짱을 끼고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병원에 오는 길이었다.송태범의 안색은
의사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먼저 물었다.“가족분들은 어디 계십니까?”옆에 서 있던 백수연이 서둘러 대답했다.“여기요, 제가 아내입니다.”사람들은 무언가가 없을수록 그것을 더욱 갈망했다.백수연이 그랬다.자신의 신분을 소개할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말했다!실제로는 내연녀이면서 당당하게 자신이 송태범의 아내라고 말하고 있었다.“의사 선생님, 제 남편의 병이 심각한 건 아니죠?”그녀의 물음에 의사가 답했다.“심각한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진단서를 떼어드릴 테니까 가서 다른 검사를 더 해보세요.”의사는 진단서를 작성하여 송태범에게 건네면서 말했다.“환자분은 가서 검사를 받으시고 아내분은 여기 남으세요.”송태범은 의사가 자신을 떠나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그가 말했다.“의사 선생님, 그냥 말씀해 주세요. 숨기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난감한 의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환자분, 검사 결과 악성 뇌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송태범은 마음의 준비를 했었지만 결과를 듣자 똑바로 앉아 있지 못 할 뻔하고 무릎에 얹은 두 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백수연은 송태범만 믿고 있었는데 그가 이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침착할 수가 없었다.“이이가 기침만 하는데 어떻게 뇌암이 걸렸을 수 있어요. 당신들이 검사를 잘못한 거 아니에요?”의사가 설명했다.“아마도 이미 전이 된 것 같습니다. 목구멍과 폐에 전이되면 모두 마른 기침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당신들이 잘못 확인한 게 틀림없어!”백수연은 화를 내며 외쳤다!송태범은 그녀를 꾸짖을 힘이 없었다.“당신은 먼저 나가 있어!”백수연은 마치 그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내가 다른 병원으로 데려다줄게요. 이 사람들 전부 돌팔이라 무조건 잘못 검사했을 거예요. 병 볼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야...”“됐어!”송태범도 짜증이 났다!그는 원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그녀가 옆에서 끝없이 재잘재잘대자 시끄러워서 머리가 질끈 아파 났다.백수연은
그녀는 그것 때문에 기분이 변하지는 않았다.그 아이디어는 고훈이 생각해 낸 것이었다.그가 감히 그렇게 했다면 강세헌에게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그가 준비를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큰 손실을 보았다면 어리석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당신의 애인이 이제 이렇게 됐는데 할 말이 없어요?” 강세헌은 송연아의 표정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고훈이 설명했지만 그는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그는 송연아의 태도를 시험해 보기 위해 이걸 보여줬다.송연아는 그것을 보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고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확신했다.송연아가 고훈을 정말 좋아한다면 고훈이 이런 곤경에 처해 있는데 어떻게 전혀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그녀와 고훈이 연기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이혼을 원했던 것은 사실이었다!그녀는 왜 그렇게 자신을 떠나고 싶어 하는 걸까?“연아 씨, 왜 이혼을 꼭 해야 해요?”그의 눈빛은 어두웠고 말투는 직설적이었다.송연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당신도 알다시피 고훈 씨와 내가...”“고훈이 나에게 이미 두 사람이 쇼를 하고 있었다고 고백했어요.”송연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고훈이 믿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내가 당신과 결혼한 것은 원래 내 의도가 아니었고, 당신을 좋아하지도 않아요. 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평생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혼하고 싶어요. 단지 그뿐이에요.”그녀는 마음먹고 마음속의 말을 내뱉었다!그녀는 강세헌을 자극하여 이혼에 동의하게 만들기로 결심했다!강세헌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그는 그날 밤 송연아와 함께 있은 사람이 자신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면 그녀가 이혼 생각을 접지 않을까?적어도 두 사람은 관계를 가졌었다.“그날 밤 연아 씨와 관계를 가진 그 사람 때문에 아이를 잃은 것이라면 그 사람을 원망할 거예요?”강세헌은 그녀의 생각을 떠보았다.그녀가
“당신, 내 손 놔줘요.” 송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몸부림쳤다.강세헌은 놓지 않고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손바닥으로 감싸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예전 같으면 송연아가 저항했을 텐데, 이번에는 의외로 조용히 있고 그를 밀쳐 내지 않았다.심지어 눈도 감았다!그녀는 이 순간처럼 조용히 사람의 숨결을 느끼고 키스가 그녀의 마음에 가져다주는 설렘을 느낀 적이 없었다!그의 키스는 부드럽고 열정적이며 벗어날 수가 없었다.게다가 깊이 빠져들게 만들었다!처음으로 송연아가 이렇게 순종적이었고 강세헌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 더 이상 이렇게 키스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그의 키스는 계속 격렬해졌고, 조금씩 그녀를 정복하려고 했다.손끝이 그녀의 쇄골을 스쳐 지나 옷 속을 파고들었고 그녀의 어깨끈이 벗겨졌다. 순간 송연아의 가슴은 차갑게 식으면서 강세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고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키스에서 정신을 차리고 당황하여 피하면서 외쳤다.“안 돼요...”강세헌은 흐릿한 눈빛으로 물었다.“연아 씨도 즐기고 있었잖아요.”송연아는 인정하지 않았다.“아니에요.”“그래요?”강세헌은 손을 뻗어 그녀의 입술을 쓸어내렸다. 자신의 침일지도 모를 액체가 묻어있었다.“빨리 나가요.”송연아는 방금 한 행동이 부끄러운 듯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어떻게 기꺼이 그와 키스할 수 있었을까?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그녀는 이런 자신이 싫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강세헌을 비난했다.“당신은 앞으로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말고 나한테 수작 부려서도 안 돼요.”그녀는 강세헌의 수작 때문에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고 생각했다.강세헌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송연아는 아무 생각 없이 그를 쳐다보다가 다시 빠져들 뻔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이 세상에서 본 미소 중에서 가장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였다.그녀는 재빨리 눈을 피하고 마음속으로 이 남자가 시시각각 자신의 잘생긴 얼굴을 이용하여 그녀를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했
그는 들어오자마자 다정하게 그녀를 누나라고 불렀다.송연아의 얼굴에 아무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고 더욱이 누나라는 호칭으로 인해 기분이 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누나는 의사니까 실력이 좋은 전문의를 많이 알고 있을 거예요. 의사 좀 알아봐 줘요. 아빠가 많이 아프고 너무 심각해서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어요.”송예걸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키가 크고 밝은 모습이었던 소년은 지금 이 순간 많이 지쳐 보였다.송연아는 가슴이 조여왔다. 그녀는 짐작을 했었지만 실제로 그 소식을 들으니 충격을 받았다.“의사가 뭐라고 했어? 무슨 병인데?”그녀는 목소리를 낮췄다.“악성 뇌종양인데 이미 폐로 전이 됐대요.”송예걸이 말했다.송연아는 충격을 받았다.“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누나, 아는 의사 있으면 아빠가 좋은 의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요.”송예걸은 걱정스럽게 말했다.송연아는 종양이 이미 전이되었으면 확실히 뇌암 말기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수술을 해도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았다.송예걸은 그녀가 말을 하지 않자 물었다.“아빠를 살리고 싶지 않아요?”송연아는 진정해야 했다.“너 먼저 돌아가.”그녀의 차가운 태도에 송예걸은 그녀가 아직도 송태범을 원망하고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구할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다.“누나의 결혼 문제에서 아빠가 조금 막무가내로 강요했지만, 그래도 누나를 키워 준 어른이에요. 지금 뇌암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누나는 도움의 손길을 거부할 정도로 마음이 굳은 거예요?”송연아는 코웃음을 쳤다. “죽어가는 걸 보고도 구하지 않는다고? 넌 내가 신인 줄 아니? 아빠는 악성 종양 말기라 누굴 찾아도 소용없어!”송예걸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송연아 이 무정한 년아! 넌 아빠가 죽어가는 걸 보고도 구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송연아는 여전히 동요하지 않았다.“대가를 치러도 내가 치를 건데, 넌 왜 이
종업원은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고 설명을 보탰다.“이 카드는 2조 원 이상의 예금을 가진 분들에게만 제공되는 VVIP 카드입니다.”자사호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자였다.종업원도 가게에서 일하면서 부자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부자들의 세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송연아는 어안이 벙벙했다.그녀는 강세헌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원하는 거 뭐든지 사요.’이제 그녀는 마침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하지만...어떻게 강세헌으로부터 그렇게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까?종업원이 물건을 잘 포장하고 오은화가 물건을 받아 들었다.“손님, 카드 여기요.”종업원은 두 손으로 카드를 건네주었다.송연아는 그것을 받았다. 분명 카드일 뿐이었지만 너무 무겁게 느껴져 도저히 갖고 있을 수 없었다.강세헌이 그녀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농담으로 받아들였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가 말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카드를 줄 수 있었을까?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돈은 어떤 여자라도 흔들 수 있었다.그녀도 예외는 아니었고 정말로 약간 흔들렸다!돈의 양 때문이 아니라 그의 성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백만 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백만 원을 전부 준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성의이고, 1억 원을 갖고 있는 사람이 기꺼이 1억 원을 다 주는 것 또한 그 사람의 성의이다.“사모님, 무슨 생각 하세요? 다른 건 안 사세요?” 생각에 잠긴 송연아를 본 오은화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송연아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더 살 거 없어요. 가요.”오은화는 물었다.“도련님의 마음을 느끼셨죠?”송연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느꼈다.다만 인정할 수 없을 뿐이었다.감히 인정할 수도 없었다.강세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 강세헌은 진짜 부부가 될 수 없었다.강세헌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키우고 의붓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당연히 안 될 것이다.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감정을 낭비할 필
전문의의 집에서 나온 그녀는 빌라로 돌아갔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이 일을 한혜숙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송태범과 한혜숙은 20년 넘게 부부로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그녀는 한혜숙이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한혜숙에게 전화를 걸려고 할 때 휴대폰이 진동했는데 한혜숙이 보낸 동영상이었다.두 개의 메시지도 첨부되어 있었다.영상 속 찬이는 파란색의 위아래가 붙은 영아 복을 입고 있었고, 머리는 검게 빛이 났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른 채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이 매우 귀여웠다.「찬이 이제 1개월 되었어. 그동안 몇 근 올라서 거의 일곱 근이 되어 가. 많이 포동포동해졌지?」「얘 좀 봐, 너를 닮지 않았어?」송연아가 한혜숙에게 연락한 이후 한혜숙은 송연아가 이미 고훈의 손에서 벗어난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다시 강세헌에게 잡혔지만 말이다.그래서 송연아는 지금 당장 그녀와 함께 할 수 없었다.송연아는 괜찮다고 말하며 찬이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그녀는 딸이 다른 걱정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송연아가 그곳에서 안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찬이를 돌보았다.송연아는 영상 속 아기를 바라보며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고 한혜숙에게 답장을 보냈다.「내 아이니까 당연히 나를 닮았죠.」잠시 망설인 후 그녀는 메시지 하나를 더 보냈다. 「아빠가 많이 아프시다고 들었어요. 엄청 심각한가 봐요.」한참 지나 한혜숙이 답장을 보내왔다.「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송연아는 화면을 응시하며 한혜숙의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생각했다.화가 나서 한 말일까, 아니면 정말 송태범이 죽었으면 할 정도로 원망해서 한 말일까.“사모님, 과일 좀 드세요.” 오은화가 음식을 들고 들어오자 송연아는 생각을 멈추었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멜론 한 조각을 먹었다....병원에서.송태범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의 두 눈은 깊게 움푹 패 있었고 얼굴색은 누랬다. 심하게 살이 빠진 모습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