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일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그는 홍희범이 절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때문에 더 이상 도박을 해서는 안 되었다. 만약 잘못 걸었다가는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가족들한테까지 피해가 갈 수 있었다.지금의 성 씨 가문으로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그의 손으로 망칠 수는 없었다.남자라면 박시율의 아름다움을 한 번쯤 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과연 여자 하나에 성 씨 집안 전체를 걸 가치가 있을까?다행스럽게도 바로 그때 나봉희가 도범을 확 잡아당기더니 눈을 희번덕이며 말했다.“너 미쳤니? 그게 무슨 헛소리야? 저분은 성 씨 가문의 도련님이라고! 네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상대야!”그러더니 그녀는 곧장 성경일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도련님께서 오해였다고 하니 아마 그쪽 아래 사람들이 잘못 검측했나 봅니다. 괜찮아요. 어서 돌아가 보세요!”그녀의 말에 성경일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이렇게 꽁무니를 빼는 것이 무릎을 꿇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만약 그 일이 손문이라도 나게 되면 자신은 온 중주시의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네 네 네. 아주머니 말씀이 맞아요!”성경일이 곧바로 머리를 끄덕이며 도범에게 변명했다.“너도 보았다 싶이 이건 내가 가려고 한 게 아니라 아주머니가 가라고 해서 가는 거야. 그러니까 절대 내 탓이 아니야!”말을 마친 성경일은 도범이 쫓아가기라도 할까 봐 그러는지 곧장 차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더니 차를 몰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남은 부하들은 어리둥절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왠지 자신의 도련님이 도범을 두려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인수가 월등히 많은데 설마 도범 한 사람을 제압하지 못할까?하지만 자신들의 도련님마저 떠난 상황에 그들도 결국에는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저놈 도망가는 게 토끼보다도 빠르네!”도범이 쓴웃음을 짓더니 자신의 몰골을 확인하고
“그 말도 일리가 있네!”장소연의 분석에 박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됐어. 비록 내 매형이 무능하기는 해도 자기 체면 정도는 챙길 줄 아는 사람이잖아. 문도 닫았으니까 남부끄러울 일도 없고. 어쨌든 집이 철거되지는 않았으니까 좋은 일이잖아!”“그래 맞아. 철거되지 않으면 좋은 일이지. 두 달 정도 지나면 네 누나 월급이 나오니까 그땐 집 보러 가자꾸나!”나봉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 떠오른 듯이 말을 이었다.“참, 내일이면 네 누나도 출근해야 하니까 나가서 장 좀 봐오자꾸나. 간 김에 쇼핑도 하고. 나도 괜찮아 보이는 옷 좀 몇 벌 사야겠다.”“그래요 엄마, 이제 우리 돈도 있잖아요. 매형이 준 돈이 아직 1억이나 넘어 남았으니까 그걸로 좋은 옷 몇 벌 사세요. 지난 몇 년간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당연히 보상받아야죠.”박해일이 씩 웃으며 답했다.곧바로 나봉희는 박해일과 박영호 그리고 장소연까지 데리고 쇼핑하러 나갔다.정원에는 박시율만 남아 수아와 놀아주고 있었다.잠시 후 도범이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비록 낡아 보이긴 해도 보는 사람에게 청량감을 안겨주는 차림이었다..“여보, 당신 아까 홍희범이라는 사람과 안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어? 설마 정말로 무릎 꿇고 빈 건 아니지?”박시율이 한참 침묵하다가 결국 도범에게 물었다.도범이 식은땀을 흘리며 난감하게 웃다가 답했다.“당신 눈에 당신 남편이 그럴 사람으로 보여? 그냥 잠깐 전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눴을 뿐이야. 그쪽도 이런 일로 나를 만난 걸 한스러워 하는 것 같더라고. 내가 아는 준장님이 한 분 계시는데 마침 그자와도 친분이 있었어. 그러니까 그쪽에서 내 체면 좀 봐 준 거지!”“당신 준장급 사람도 알고 있어? 정말 대단해!”박시율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흥분하며 말했다.“그래. 아까 그 홍희범이라는 사람도 엄청 대단한 사람이야. 무려 중장이거든. 나도 몹시 존경하고 있어!”도범이 담백하게 웃으며 답했다.“그 사람이 중
그는 열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번뜩이는 회칼을 손에 쥐고 있는 자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압도적인 인수에 흉기까지 들고 있는 것을 본 박시율은 덜컥 겁이 났다.그녀는 얼른 곁에 있던 박수아를 잡아당겨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어떡해 여보? 상대가 너무 많아. 저 기세로 보아 이번에는 정말 뭔 일을 낼 것 같은데!”겁에 질린 박시율이 수아를 꼭 끌어안았다.“너무 무서워하지 마 엄마, 아빠가 나쁜 사람들 다 물리칠 거야. 아빠 엄청 강해!”앳된 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4살이 넘은 아이가 이미 철이 들어서 오히려 박시율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그래. 아빠가 반드시 해결해 주실 거야!”박시율은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수아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었지만 찌푸려진 미간만큼은 펴질 줄 몰랐다.“걱정하지 마. 내가 여기 있는 한 아무도 내 가족을 건드릴 수 없어!”도범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지난 5년간 내가 어떻게 전쟁터에서 살아남았겠어?”“하하 우리 또 만났네요 박시율 씨.”한 씨 성을 가진 도련님은 사람들을 끌고 도범으로부터 5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멈춰 섰다. 그가 소리 내어 웃으며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박시율을 바라보았다.“역시 미인은 미인이야. 돌아와서 씻고 나니까 훨씬 매력적이잖아!”거기까지 말한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뜸 들이더니 이어서 말했다.“좋아요,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요?”“자그마한 이류 가문 주제에 이런 행패를 부리다니. 시퍼런 대낮에 사람들을 끌고 온 것도 모자라서 무기까지? 하하, 이것 참 법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네?”도범이 싸늘하게 웃으며 상대방을 바라보았다.“하하 법이라고?”한 씨 성을 가진 도련님이 큰 소리로 웃더니 말했다.“내 돈과 내 권력이 바로 법이야. 네까짓 게 이류 가문을 무시하는 거냐? 너 이류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아?”도범이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대단하다고? 그렇게 대단한 가문이면서 어떻게 제대로 된 보디가드
양아치들의 우두머리는 경멸스러운 눈길로 자신들을 보고 있는 도범을 못마땅해하고 있었다.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열몇 사람들이 도범을 포위해 왔다.“여보, 정말 괜찮아? 저 자들 손에 칼도 있어!”놀란 박시율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몹시 겁에 질린 그녀는 손으로 수아의 눈을 가렸다.하지만 수아는 오히려 연신 박시율의 손을 밀어내고 있었다.“아빠 힘내! 수아는 아빠가 나쁜 놈들을 혼내주는 거 볼 거야…”“하하 걱정하지 마 여보. 사내대장부로서 못한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도범이 박시율을 돌아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박시율이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이 남자는 어떻게 이런 순간에까지 농담을 할 수가 있지?“어떻게 할까요 도련님? 저 자식 죽여버릴까요, 아니면 어쩔까요?”양아치 우두머리가 씩 웃으며 말했다.“죽여버린다고?”한지운이 잠깐 멈칫했다.“아니 아니, 그냥 죽여버리는 건 너무 쉽잖아? 저 자식 왜 저렇게 힘이 센가 했더니 저 자가 바로 파병 갔다던 박시율의 남편이었네!”여기까지 말한 그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그래 네놈이 박시율의 남편이었어. 이거 일이 더욱 재밌게 되었네. 너희들 저 자식 죽이지 말고 그냥 쓰러뜨리기만 해. 그리고 조금 있다가 이 한지운이 어떻게 자기 마누라를 갖고 노는지 똑똑히 보여줘야겠어!”“쯧, 한 씨 가문 도련님이 아주 간땡이가 부었네. 감히 내 앞에서 그런 말을 뱉다니. 오늘 내가 네 아버지 대신 똑똑히 교육해 주지!”“만약 이 자리에 내 딸이 없었다면 너희들 같은 쓰레기들은 이미 내 손에 죽었을 거야.”“나도 딸 앞에서 피를 보고 싶지 않으니까 오늘은 교육만 하는 걸로 끝내지!”한지운의 말을 들은 도범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하지만 수아도 있는 앞에서 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피가 낭자한 장면을 보여주는 건 애들 교육상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가까스로 살인의 충동을 억눌렀다.그리고 여기는 그의 집이었다. 그도 자신의 집 정원이 피로 물드는 것은 보고 싶지 않
달려드는 양아치들을 바라보며 도범은 그저 냉소만 지을 뿐이었다.양아치들은 하나같이 비쩍 마른 몸매에 어떤 이들은 머리에 염색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몸에 문신을 새겨서 겉보기에는 제법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하지만 도범은 이 자들이 실제로 허약하다는 것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평소에 전혀 훈련을 하지 않은 몸이었다. 그냥 칼이나 들고 모양새만 피울 뿐이었다. 만약 이 자들을 전쟁터에 끌고 가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죽었을 것이다.“여보 조심해!”그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도범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본 박시율은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도범과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서서 소리 질렀다.“하하 박시율 씨, 만약 이제라도 나와 한바탕 놀 마음이 생겼다면 내가 저 자들에게 살살하라고 당부할 수도 있어요. 칼에는 눈이 달려있지 않아서 어디로 향할지 모른답니다. 저 자들이 그렇게 분별력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요. 만약 이러다 남편이 죽어버리면 당신은 생과부가 되는 겁니다!”“그때가 되면 나한테 시집오는 것도 괜찮죠. 아니면 내 그늘 아래 여자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고요!”한지운은 박시율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에는 광기와 기대감이 가득했다.이 자들을 고용하면서 그도 박시율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그리고 조사 중에서 박시율의 남편인 도범을 박 씨 가문에서 반기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그 말이 맞는다면 도범이 죽는 건 외부인이 죽는 것과 별반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박 씨 가문에서도 굳이 나서지 않을 것이다.박시율 또한 이미 박 씨 가문에서 쫓겨난 지 5년은 넘었었다. 때문에 박시율이 죽지 않는 이상 그쪽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문제를 삼는다고 해도 돈 몇 푼 쥐여주면 해결될 일이었다.그는 이런 짓을 한두 번 했던 게 아니었다. 특히 돈 없고 세력 없는 가난한 집안의 딸들은 그때 가서 몇 천 혹은 몇 억 정도 쥐여주면 오히려 그쪽에서 더 좋아하면 좋아했지 더 이상
“너 이 자식 지금 뭐 하려는 거야? 난 한 씨 가문의…”한지운이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고 했다.“짝!”도범이 손을 들어 올리더니 한지운의 뺨을 내리쳤다. 순간 그의 얼굴에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굳이 재차 설명할 필요 없어.”도범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네가 감히 내 뺨을 때려? 내가…”“짝!”“너…”“짝!”연속으로 뺨 세 대를 맞은 한지운은 머리가 윙윙 거리고 눈앞에 별이 보이는 게 담방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연속 공격에 겁먹은 한지운은 그대로 철퍼덕 땅에 주저앉더니 빌기 시작했다.“내 딸한테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참은 거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었어!”도범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방금까지 그는 손에 크게 힘을 실지 않았었다. 만약 제대로 힘을 실었다면 상대방의 머리통이 날아갔을 것이다.“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으니까 한 번만 봐주세요!”잔뜩 겁먹은 한지운은 오줌까지 지릴 뻔했다. 도범의 전투 실력이 강해도 너무 강했다.“아, 저 돈 많습니다. 충분히 배상해 드릴 수도 있어요…”한지운은 살기 위해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지금 바로 2억 보내드릴 테니까 제발 살려 주십시오!”“10초 줄 테니까 제일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사라져!”“그리고 형님이라고 부르지 마. 난 너 같은 쓰레기를 동생으로 둔 적 없으니까!”도범이 싸늘하게 말했다.한지운은 허겁지겁 자신의 스포츠카까지 달려가더니 최고의 속력을 내며 그곳을 벗어났다.“저 자식은 스포츠카도 많네. 오전에 망가뜨렸던 건 페라리였는데 방금 몰고 온 건 포르쉐잖아!”그가 떠난 뒤 도범이 쓴웃음을 지으며 박시율을 돌아보며 말했다.박시율은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상대는 한 씨 집안의 둘째 도련님이었다. 그런데 도범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의 따귀를
“참, 방금 그 일은 장모님이나 가족들한테 알리지 않는 게 좋겠어. 괜히 걱정하게 하지 말자.”도범이 잠시 고민하더니 박시율에게 말했다.박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게 좋겠어. 이번에는 한 씨 그룹 도련님을 건드린 거니까. 어머니가 알면 또 괜히 당신만 욕먹을 거야!”그녀는 자신의 품에 안긴 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수아야, 방금 아빠가 나쁜 사람들을 무찌른 거 외할머니와 친할머니한테는 알려주지 말자!”“알았어!”수아가 얌전하게 머리를 끄덕였다.그때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갔던 서정과 지유가 돌아왔다.“수아야, 할머니가 우리 수아 주려고 뭐 사 왔는지 한번 보렴!”서정이 수아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붕어빵을 내밀었다.“와 붕어빵이다!”붕어빵을 본 수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박시율이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곧장 서정한테 달려갔다.“참, 당신도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옷 좀 사야 하는 거 아니야?”박시율이 도범을 바라보았다.“아니야. 지금 입은 옷도 괜찮은걸. 조금 낡았을 뿐이지 못 입을 정도도 아닌데 뭐.”도범이 씩 웃었다. 입는 것과 먹는 것에 대해서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지금은 오직 지난 몇 년간 자신의 어머니와 박시율한테 진 빚을 갚고 싶을 뿐이었다.가끔 나봉희가 그에게 모질게 대해도 그는 대꾸하지 않았었다. 분명한 건 지난 5년간 확실히 자신 때문에 그들이 온갖 고생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도범은 속으로 그들에게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저녁이 되자 온 집식구들이 모여 앉아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난 도범은 박영호에게 두 번째 치료를 해주었다. 치료를 끝낸 뒤에는 전기스쿠터를 몰고 박시율과 함께 출근길에 올랐다.그런데 그들이 스쿠터를 타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봉희와 박해일, 장소연 세 사람이 그들 몰래 차를 타고 도범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도범은 먼저 용진그룹 본부에 도착하여 박시율이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배웅해 주고 다시 스쿠터를 몰고 느긋하게 용 씨 가문의 저택
나봉희가 박해일을 매섭게 째려보며 말했다.“그 부잣집 아가씨가 도범을 속였으면 어떡하려고? 나는 그게 걱정되어서 직접 이곳까지 와서 확인해 보려는 거야. 만약 도범이 돌아와서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면 어떡하니?”“해일아 난 어머님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만약 출근도 못하고 아무도 안 써주는데 돌아와서 출근하고 있다고 우리를 속이면 어떡해? 그렇기 때문에 확인하려는 거야. 저 자가 무사히 출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직접 확인하는 거야.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야!”곁에 있던 장소연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세 사람은 함께 대문만 지켜보고 있었다.도범이 스쿠터를 몰고 들어가려고 했다.그런데 대문을 지키고 있던 보디가드들이 그를 막아섰다.“너 뭐야? 여기가 스쿠터나 끌고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인 줄 알아? 여기가 어딘 줄은 알긴 해? 여기는 용 씨 가문 저택이야! 너처럼 스쿠터나 몰고 다니는 사람이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그중 한 남자가 도범의 행색을 보더니 비웃으며 말했다.도범이 문 옆에 스쿠터를 세워두고 내렸다.“스쿠터를 몰고 들어갈 수 없으면 어디에 세우면 되지?”“하하 뭐 이런 웃기는 자식이 다 있어?”다른 한 남자가 곁에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용 씨 저택이 얼마나 크다고, 당연히 전문적인 공용 주차장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 우리 보디가드들도 주차할 수 있지. 하지만 소형차만 주차할 수 있고 스쿠터를 세울 곳 따위는 없어!”“그러게 말이야. 우리는 한 달에 5천에서 6천만씩 받으니까 몇천만씩 하는 차는 쉽게 살 수 있지. 누가 그런 스쿠터를 타고 출근하겠어?”남자가 비웃으며 말했다.“그래서 당신은 뭐 하러 온 거야? 설마 길을 잘못 든 건 아니겠지?”“아 나도 여기 보디가드로 온 거야. 둘째 아가씨한테 스카우트를 받아서 왔어!”도범이 씩 웃으며 담배를 꺼내서 상대방에게 건넸다. 그 나름의 예의를 표한 것이었다.하지만 상대방은 도범이 건넨 담배를 그저 힐끗 바라보기만 할 뿐 받지 않았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
두 번째 방법은 고도의 신법을 필요로 하며, 일반적인 무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첫 번째 방법도 강력한 실력이 필요하기에, 주위 사람들이 도범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빙봉천리의 감금 아래에서 도범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따라서 모두가 도범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범의 경맥이 감금되면 오양수가 도범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한편, 도범은 한 손에 장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연달아 법진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백 개의 영혼검이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영혼 검이 되어 회흑색 장검 속에 흡수되었다.도범이 전승 상태로 참멸현공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일지라도, 도범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범은 현재 참멸현공을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한 상태였고, 영혼검과의 융합으로 생성된 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힘이다.도범은 분노에 차서 큰 소리로 포효하며 단칼에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회흑색 장검에서 거대한 검기가 날아가면서 하늘을 뒤덮은 얼음망이 도범의 앞에 닥쳐왔다.모두는 쾅쾅하는 몇 번의 뚜렷한 소리를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해 보이던 빙봉천리가 도범의 한 줄기 검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게다가 이 검기는 빙봉천리를 부순 뒤에도 힘이 전혀 소모되지 않은 채 여전히 앞으로 돌진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뒤따라오던 오양수조차 반응하지 못했다.현재 도범의 참멸현공은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라 할지라도, 참멸현공 앞에서는 종이장처럼 부서질 뿐이었다.모두가 도범이 빙봉천리에 온몸이 봉쇄되어, 도살당할 어린 양처럼 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의 모든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검날이 빙봉천리를 부순 후, 곧장 반응하지 못한 오양수를 향해 돌진했다. 검날이 오양수의 면전 3척 앞에 닿기 직전에야 오양수는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오양수는 공격과 동시에
각양각색의 논조,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끝없는 토론. 그러나 도범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도범은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오양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오양수가 무기를 꺼내들자, 도범도 천천히 자신의 회흑색 장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 장검은 오랫동안 도범과 함께한 무기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오양수는 청란골패를 가볍게 휘두르자, 뚜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한기가 청란골패에서 뿜어져 나오며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었다.현재 오양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도범을 쓰러뜨린 뒤, 잔인하게 고통을 주어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알게 하는 것이었다.오양수는 크게 포효하며 두 손을 뒤집어 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오양수의 손바닥에 육각형 모양의 얼음 화살이 생겨났고, 4초 후,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오양수의 앞을 가득 메웠다.오양수는 다시 한번 포효하며 앞을 향해 힘껏 밀어붙였다. 그러자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도범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고, 이 화살들과 함께 엄청난 한기가 도범을 덮쳤다.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두 손으로 장검을 단단히 쥐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수많은 육각형 얼음 화살은 단숨에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그때,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도범 저 녀석, 실력이 정말 보통이 아니네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오양수가 수련한 무기는 지급 상급 무기, 빙봉천리에요! 그런데 도범이 단칼에 빙봉천리를 가르다니, 실력이 꽤 강한데요!”그 사람이 말을 끝내자마자 주변에서는 곧바로 반박이 나왔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바라문 세계를 둘러봐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방금 전의 공격은 단지 약간의 힘만 사용한 거에요. 오양수가 진심으로 도범을 죽이려 했다면, 반항할 틈조차 없었을 거에요!”오양수가 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눈살을 찌푸린 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무슨 말을 하든 네가 뭔 상관이야! 이 건방진 놈, 죽고 싶어! 마침 상대가 필요했는데, 너의 입탑영패를 가지고 와. 우리 한 판 붙자!”그러자 오수경은 콧방귀를 뀌며 태연하게 말했다.“내 앞에서 강자 흉내 내지 마. 내 가슴에 6품 연단사 휘장이 붙어 있는 걸 못 봤어? 그런데 네가 연단사인 나와 실력을 겨루겠다고? 차라리 연단술을 겨뤄보는 게 어때?”이 말에 검은 옷의 대장부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규칙이 없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오수경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오수경은 검은 옷의 대장부가 더 이상 말하지 않자, 더욱 신나서 비아냥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범이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너는 왜 이렇게 매사에 신중하지 못해?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해. 알겠어?”도범의 꾸짖음에 오수경은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전에 도범에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검은 옷의 대장부는 냉소를 머금은 채 다시 도범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들의 대화를 일부 들었기에 도범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네가 정말 8품 종문의 친전 제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해?”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검은 옷의 대장부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도범이 대답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았다.이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아마도 내기 때문이거나 도범의 냉담한 태도 때문인지 상황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도발적인 말이 다시 들리지 않았다. 제73회 대결이 곧 시작되려 할 때, 도범은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잠시 후, 도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내쉬고는 오수경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누구를 보든, 어떤 말을 듣든, 이 자리에서 떠나지 마.”그 말을 마치고 도범은 큰 걸음으로 대결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내기를 하려면 정식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 누구도 뒤집을 수 없도록, 우리 계약 하나 체결하자. 네가 이기면 내가 19만 개의 영정을 주고, 내가 이기면 너는 같은 수량의 영정을 줘야 해.”그러자 민경운이 눈살을 찌푸린채 말했다.“너는 사람들과 계약을 맺는 걸 참 좋아하네.”칠현대에서 민경운은 도범이 검은 옷의 대장부와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도범의 거래를 방해했었다. 그런데 도범과 내기를 할 때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하니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도범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민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계약을 맺고 싶지 않다면 솔직히 말해. 다른 핑계를 대지 말고, 계약을 맺는 것이 내기에서 가장 확실한 보증이라고 생각할 뿐이야.”이 말을 듣고 나서 민경운은 더 이상 도범과 쓸데없는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사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민경운에게는 유리한 일이다.도범은 자신의 실력만 믿고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에게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도범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19만 개의 영정을 내놓으려 한다면, 민경운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래서 민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면 어서 계약을 체결하자.”도범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평생 가장 빠른 속도로 계약 내용을 작성하고 자신의 정혈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계약서 두루마리를 민경운에게 건네주었고, 민경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그어 피를 떨어뜨렸다.계약서에 적힌 모든 문자가 즉시 뒤틀리며 두루마리의 속박을 벗어나 공중에 떠올랐다. 천지의 기운이 쏟아져 내려와 이 문자들과 얽히기 시작했고, 세 번의 호흡 후에 문자는 다시 두루마리에 합쳐졌다. 이것은 계약이 체결되었음을 의미했다.모든 절차가 끝난 후, 도범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계약 두루마리를 회수했다. 계약이 체결되면 변경할 수 없고, 거짓말할 수도 없다.한편, 민경운은 도범의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고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민경운은 콧방귀를 뀌며
도범은 고개를 돌려 오양수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 순간 오양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도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진실한 눈빛은 마치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라는 믿음을 주려고 하는 듯했다.도범은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도범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양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했다. 그러나 도범이 말하는 강함은 오양수가 다른 사람들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양수는 다른 사람들을 화나게 만드는 재주가 훨씬 더 뛰어났다.평소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도범이지만, 오양수의 몇 마디에 지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으니 말이다. 도범은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네가 한 말 잊지 마.”그러자 오양수는 눈살을 살짝 치켜올린 채 말했다.“당연히 내가 한 모든 말을 기억할 거야!”도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대결 무대에 있는 실력이 비슷한 두 무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위는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오양수는 도범이 시선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불쾌해났다.오양수가 방금 한 말은 물론 의도가 있었다. 오양수는 자신의 말이 끝나면 도범의 얼굴에 두려움과 걱정이 스며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도범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몸서리치는 모습을 기대했었다. 도범이 자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도범은 냉소 외에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오양수는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이 충분히 잔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민경운의 얼굴도 역시 어두워졌다. 민경운은 오양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도범이 일어날 일을 미리 두려워하며 땅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도범의 반응은 너무나 작았다. 잠시 후, 민경운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오양수 옆에 털썩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양수 하나만이 자리하고 있었다.한편, 도범은 이들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아 다시 대결 무대에 집중하며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시간을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