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당신만 안 힘들다고 하면 당연히 문제없지!”박시율이 행복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도범이 금방 전쟁터에서 돌아왔을 때만 해도 그녀는 그가 조금 냉랭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늘 엄숙한 얼굴을 한 도범이 이런 낭만도 아는 사람이었다니.“당연히 안 힘들지, 뒤에 시율이 네가 앉아있다면 절대 힘들지 않아. 매일 업고 출근하라고 해도 힘 안 들 거야.”도범이 웃으며 말했다.“아빠, 나도 아빠한테 업힐래요!”도범의 품에 안긴 수아가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래, 자, 아빠가 우리 수아 업어줄게.”도범이 수아를 단번에 등에 업으며 말했다.“형부, 정말 경호원이 되어서 한 달에 40억씩 벌게 되면 사 한 대만 사주면 안 돼요? 전에 일은 다 오해예요.”장소연이 박해일에게 눈짓을 하자 박해일이 얼른 도범 앞으로 달려가 웃으며 아부를 했다.그도 용신애가 도범을 가지고 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정말일 가능성이 있었기에 미리 도범에게 아부를 했다.“그래, 그런데 너무 비싼 건 안 돼, 2억 이내의 차 정도는 사 줄 수 있으니까 그때 가서 골라 봐.”도범이 고민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정말요? 2억 안에서 마음대로 골라도 되는 거예요?”도범의 말을 들은 박해일이 흥분해서 물었다. 기껏해야 몇 천만 원짜리 차를 얻어내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도범이 이렇게 통 크게 2억짜리 차를 사 준다고 할 줄이야.“당연하지, 비싼 것도 아니잖아.”도범이 웃으며 대답했다. “자기야, 우리는 그냥 전기스쿠터나 사자, 자기가 나 회사까지 데려다주면 돼, 그리고 월급 받고 돈 생기면 다시 차 사는 거 어때?”박시율이 웃으며 다시 말했다.“나 너무 오랜만에 출근하는 거라 기대돼!”“당신이 말하는 대로 할게, 당신만 원한다면 다 사줄게, 비행기도 사 줄 수 있어!”“비행기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내일 출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벌써 그렇게 들뜬 거야? 도범, 우리가 전에 했던 그 약속 잊지 마, 할아버지 칠순 생신 때 20억을
박시율이 도범에게 농담을 건넸다.“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야, 당신 남편 이렇게 잘생겼으니 누가 탐내는 것도 당연하지.” 도범이 말을 하며 뒷좌석에 앉은 박시율을 힐끔 바라봤다. 그러다가 새하얀 다리를 본 그가 손을 내밀어 박시율의 다리를 가볍게 툭 쳤다.“아!”박시율은 도범이 이렇게 대범하게 굴 줄 몰랐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운전하는데 뭐 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려고, 당신이 이런 사람인 줄 정말 몰랐어.”“모기가 있길래 잡아준 건데.”도범이 뻔뻔하게 말했다.“모기는 무슨, 내가 세 살짜리 애인 줄 알아! 또 그런 말 하면 내려서 걸어갈 거야.”박시율이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그때, 옆을 지나가던 페라리에 있던 한 남자가 그 모습을 보곤 침을 삼켰다.“뭐야, 저 여자 누구야? 몸매 죽이네!”운전하던 남자가 박시율을 보자마자 속도를 늦추곤 그녀를 감상했다.그러자 옆에 있던 금발의 여자 하나가 질투 섞인 말투로 말했다.“한 도련님, 나도 예쁜데, 나 좀 봐줘.”여자가 일부러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한 도련님 옆에 앉아있는 여자도 나름 괜찮은 축에 속했다. 게다가 옷차림도 무척 노골적이었다.하지만 한 도련님은 금발의 여자를 한 눈 보곤 박시율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너는 무언가가 모자라, 분위기도 저 여자보다 못하고, 다 같은 다리지만 차이가 난다고!”그 말을 들은 금발의 여자는 화가 났지만 한 도련님에게 화를 낼 수 없었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때, 박시율의 얼굴을 확인한 여자가 한 도련님을 보며 말했다.“한 도련님, 나 여자 누군지 알아요, 박시율이라고 배달부 남편이랑 결혼을 했는데 5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던데 아마 전쟁터에서 죽은 게 분명해요.”말을 멈췄던 여자가 다시 입을 뗐다.“아이가 있지만 적지 않은 남자들이 박시율을 따라다녔어요, 그런데 모두 거절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얼마나 고상한 줄 아나 봐, 뭐 자기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는 건 가. 그런데 이 남자랑 붙어먹은 줄
“당신 뭐 하는 겁니까?”도범이 전기스쿠터를 옆에 세우더니 차가운 얼굴로 상대방을 보며 말했다.“눈 안 달렸습니까?”하지만 한 도련님은 도범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박시율을 보며 말했다.“아이고, 말로만 듣던 중주의 미녀 박시율 씨가 아닙니까? 시율 씨, 내가 듣기로는 많은 도련님께서 시율 씨를 쫓아다녔다고 하던데, 모두 다 거절하셨다면서요. 그래서 뭐 순정 가득하게 쓰레기 남편을 기다리려는 줄 알았지!”말을 마친 한 도련님이 그제야 의심스러운 눈길로 도범을 보더니 말했다.“그런 시율 씨도 외로울 때가 있나 봐요, 어쩌나, 하필이면 그 모습을 나한테 들키고 말았으니.”“제 일입니다,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박시율은 한 도련님과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방금 일부러 그런 거죠? 차를 옆에 세웠다가 우리가 물웅덩이 옆을 지나갈 때쯤, 일부러 다가온 거죠?”“시율 씨, 말씀이 너무 심하시다, 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한 도련님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차에서 가방을 꺼내 350만 원을 박시율에게 건넸다.“여기 350만 원이요, 위자료라고 생각하세요. 돈이 많지는 않지만 모두 다 제 성의니까, 그리고 저 한 씨 집안의 도련님입니다. 괜찮다면 우리 친구할까요?”그는 박시율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350만 원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연락처라도 남길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락처만 얻을 수 있다면 그는 앞으로 박시율에게 연락을 해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수 있었다.“돈 필요 없으니까 당장 사과하세요.”도범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사과?”도범의 말을 들은 한 도련님이 멈칫하더니 기가 막히다는 듯 웃었다.“장난하는 거지, 옷 좀 적신 거 가지고 사과를 하라고? 돈 줬으면 된 거잖아. 거지 주제에 나한테 사과를 받겠다고 하다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내 체면은 생각 안 해? 내 체면이 얼마나 하는지 당신 알기나 해?”“문제는 우리가 돈을 필요
그들은 물웅덩이와 몇 십 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도범의 힘이 워낙 강했던지라 한 도련님은 도범의 발길질에 물웅덩이까지 밀려 더러운 물을 뒤집어썼다.“당신들, 지금 한 도련님에게 손을 대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금발의 여자가 놀라 뒤로 물러서며 도범에게 소리쳤다.하지만 도범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상대방을 보며 말했다.“내가 저기로 보내줄까, 아니면 혼자 갈래?”“저, 저 때리지 마세요…”여자는 도범의 눈빛을 보고 놀랐다. 그 눈빛은 피바다를 몇 번이고 헤치고 나온 이의 눈빛처럼 사나웠다.여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물웅덩이로 달려가 뒹굴었다. 짧은 치마는 물에 젖어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너, 너 이 자식, 딱 기다리고 있어.”한 도련님은 화가 나서 일어서려 했지만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팔뚝은 이미 껍질이 벗겨져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고 옷도 전부 더러워져 볼썽사나웠다.“자기야, 한 씨 집안 우리가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집안이야, 당신 정말 큰 사고를 친 거라고!”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린 채 다급하게 말했다.하지만 도범은 한 도련님의 차로 다가가더니 차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퍽!”굉음과 함께 한 도련님의 차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움푹 패어 들어갔다.“이게…”박시율은 그 무서운 힘을 보며 놀라움에 자리에 얼어버렸다. 저게 과연 인간의 힘이 맞을까?하지만 박시율 앞으로 돌아온 도범은 다시 온화한 모습으로 돌아갔다.“자기야, 가서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자.”“하지만 한 씨 집안에는 강자들이 많단 말이야, 그 사람들이 우리 집에 찾아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박시율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걱정하지 마, 그 사람들 나 못 이겨.”도범이 개의치 않는다는 얼굴로 전기스쿠터에 올라탔다.“얼른 가자, 가서 씻어야지, 아니면 감기 걸려.”박시율은 걱정스러웠지만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다고 해도 좋은 점이 없었기에 잠시 망설이다 도범의 뒤에 올라타 자리를 떴다.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자기 집 문 앞 담벼락에
“철거? 그럼 돈을 꽤 많이 받게 되는 거잖아.”도범이 여전히 멍청한 얼굴로 박시율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서니 거실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봉희, 박영호와 한창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시율아, 두 사람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그렇게 많은 흙을 묻혀온 거야?”서정이 두 사람을 보곤 놀라 물었다.“물웅덩이 옆을 지나가는데 차 한 대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에 저희 몸에 다 튀게 했지 뭐예요!”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하지만 도범이 한 씨 집안 도련님에게 손을 댔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께서 그 사실을 알고 난리를 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이 분이 박시율 씨인가 봐요.”그때, 한 중년 남자가 웃으며 일어서더니 말했다.“지금 가족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곳이 징용되었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찾아온 겁니다, 위치도 조용해서 양로원을 지을 생각을 하고 있어서 이곳은 철거될 예정입니다.”“양로원이요?”“네, 국가를 위해 공헌한다 생각하세요, 그리고 전문가를 찾아 검증을 한 결과, 이곳이 낡아서 사람이 살기에는 위험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니까 3일 안에 이사 나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남자가 웃으며 말했다.“사람이 살기에 위험하다고요?”박시율은 막막해졌다, 지금은 돈도 없어 집을 살 수도 없었기에 이곳에서 나가면 살 곳도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집이 낡기는 했지만 사람이 살기에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다.거기다가 큰 마당이 있는 집이라 대가족이 살기에 적합했다, 가족들도 전부 익숙해진 상황에 갑자기 이사를 가라고 하니 박시율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네, 이미 전문가께서 평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데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마당이 여기 있는 건 보기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승리를 거머쥐고 전쟁터에서 실력이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돌아왔다는 거 들었죠, 그분들도 이 집을 본다면 영향이 좋지 않을 겁니다.”“네, 3일 안에
“그리고 당신들이 여기에 불법 건축물을 세웠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벌금 내라는 소리를 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지금 우리는 당신들이랑 협상을 하러 온 겁니다, 이사 가라고 하면 갈 것이지 무슨 배상금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까?”중년 남자가 웃으며 얘기를 했지만 그 말은 나봉희 일가를 기분 나쁘게 했다. 철거를 하는데 배상금이 없다니?“그럴 리가 없어요, 여기는 박 씨 집안의 본가예요, 오래전부터 사는 사람이 없어서 할아버지께서 여기에 와서 지내라고 한 거라고요. 그리고 철거를 하는데 배상금을 주지 않는다뇨? 이 집이 왜 불법 건축물이라는 겁니까? 여기에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데!”박시율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돈이 없는 게 아니라 그 돈 당신들 주머니에 넣으려고 하는 거지? 우리 박 씨 집안사람들이야, 잘 알아보고 왔어야지. 돈 안 줄 거면 철거할 생각 일도 하지 마!”나봉희도 방금 전의 웃음을 지우고 말했다.“우리는 그저 통보를 하러 온 겁니다, 우리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전화 한 통만으로도 철거 인원을 당장 불러올 수 있습니다!”“그리고 불법 건축이 아니라고 하는데 집문서는 있어요?”직원이 물었다.그러자 나봉희가 얼굴을 굳히고 대답했다.“상업 주택이 아니라 박 씨 집안의 땅인데 집문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철거를 하는데 당연히 우리한테 배상금을 줘야죠.”“저희가 불법 건축이라고 하면 불법 건축인 겁니다, 집문서도 내놓지 못하는 걸 보니 오늘 당장 철거를 진행해야 할 것 같네요!”중년 남자가 말을 하며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박 씨 집안 당연히 잘 알죠, 하지만 이 프로젝트 책임자가 성 도련님, 성경일이라고! 이 양로원을 성 씨 집안에서 도와서 짓기로 했는데 당신들 그 집안을 감히 거스를 수 있겠어요?”“난 또 누구라고, 그 쓰레기 자식이었어!”도범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성경일이 도범에게 맞은 뒤, 이런 방법으로 복수를 해온 것이다.“성경일?”직원의 말을 들은 나봉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
“어머, 성 도련님, 어떻게 오셨어요? 오랜만이네요!”나봉희는 성경일이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을 보고 웃으며 맞이했다.“어머님, 오랜만도 아니죠, 우리 이틀 전에 봤잖아요!”성경일이 다시 자신의 이를 가리키며 말했다.“이거 보세요, 어머님 사위 덕에 말을 할 때마다 바람이 새요.”그 말을 들은 나봉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도 참, 저 사람 제 사위 아니에요, 어르신 칠순 잔치가 되어야 아는 거라고요.”“어머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박시율이랑 도범 혼인신고도 하고 아이가 벌써 몇 살인데 왜 어르신 칠순 잔치를 들먹이는 거예요?”나봉희의 말을 들은 성경일이 의아하게 물었다.“그게 도범이 돌아온 뒤에 이성 도련님이랑 오해가 생겨서 박이성을 때렸거든요. 그리고… 그래서 그때 60억을 내놓아야 하는 겁니다. 아니면 우리 박 씨 집안에서 쫓겨나야 합니다, 물론 저한테 20억을 주지 않으면 저랑 시율 아빠 저 자식 신분을 인정할 생각도 없고요!”나봉희가 말을 하며 성경일을 옆으로 끌고 가 조용하게 말했다.“그러니까 성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 도범이 그렇게 많은 돈을 내놓을 수 있을 리 만무해요. 저 자식이 돈을 내놓지 못하면 우리 시율이도 자유를 회복하게 될 거고 그때 성 도련님에게 기회가 생기는 겁니다.”그 말을 들은 성경일도 마음속으로 기뻐했다.고개를 돌려 박시율을 본 그의 눈이 반짝였다.방금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채 말리지 않은 박시율은 더욱 사람을 끌어당겼다. 새하얀 다리는 더욱 눈부셨다.하지만 아직 박 씨 어르신의 칠순 잔치가 되려면 20여 일이 남았다는 것이 생각난 성경일이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어머님, 아직 20여 일이 남았는데 저는 그렇게 오래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20억 일뿐이잖아요. 어머니께서 방법을 생각해 내서 시율이를 저한테 시집보내면 저는 200억도 상관없어요.”“200억!”나봉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도범이 좋은 일자리를 찾았다고 하지만 용신애가 그를 가지고 농담을 하고 있
나봉희는 고민해 보더니 박시율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딸, 성 도련님이 이 집에 대해서 너랑 얘기를 좀 나누고 싶다고 하니까 네가 얘기 잘 좀 해봐, 이 집을 철거해서는 안 된다는 거 알지. 이 집이 철거되면 우리는 어디에 가서 사니?”박시율은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경일에게 다가갔다.“이 집은 우리 박 씨 집안의 본가예요, 집문서가 없지만 그래도 박 씨 집안의 재산이니 이렇게 철거할 수는 없어요!”박시율이 성경일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도범이 돌아오기 전부터 성경일은 자주 집으로 쫓아와 박시율에게 매달렸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도범의 사망증명을 만든 뒤 이혼을 하고 자신에게 시집을 오라고 설득했었다.박시율은 성경일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왕호보다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수단을 쓸 줄이야, 박시율은 성경일을 혐오하게 되었다.“이게 다, 도시의 환경을 위한 일이고, 중주를 위한 일 아니겠습니까?”성경일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말했다.“시율 씨도 알잖아, 나 시율 씨한테 진심인 거. 다른 도련님들보다 훨씬 진정성이 넘친다고! 저 쓰레기랑 이혼을 하고 나랑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매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줄게, 물론 이 집도 철거시키지 않을 거고. 양로원이 이곳에 서느냐 마느냐는 시율 씨 태도에 달린 거야, 시율 씨만 허락하면 저 사람들 당장 돌아가라고 할게.”“성 도련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돈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할수록 당신을 더욱 깔보게 된다는 거 모르세요?”박시율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어쩔 수 없어, 시율 씨가 나를 깔보든 말든 나는 상관없으니까. 나는 시율 씨가 내 여자가 되기만 하면 돼, 당신한테 내가 저 배달부보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 보여줄 거야!”성경일이 다시 장난기가 다분한 얼굴로 말했다.“생각 잘 해, 허락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이 집을 철거할 거야.”“감히!”박시율은 화가 났지만 성경일이 데리고 온 사람들을 보니 무기력해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
두 번째 방법은 고도의 신법을 필요로 하며, 일반적인 무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첫 번째 방법도 강력한 실력이 필요하기에, 주위 사람들이 도범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빙봉천리의 감금 아래에서 도범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따라서 모두가 도범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범의 경맥이 감금되면 오양수가 도범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한편, 도범은 한 손에 장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연달아 법진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백 개의 영혼검이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영혼 검이 되어 회흑색 장검 속에 흡수되었다.도범이 전승 상태로 참멸현공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일지라도, 도범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범은 현재 참멸현공을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한 상태였고, 영혼검과의 융합으로 생성된 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힘이다.도범은 분노에 차서 큰 소리로 포효하며 단칼에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회흑색 장검에서 거대한 검기가 날아가면서 하늘을 뒤덮은 얼음망이 도범의 앞에 닥쳐왔다.모두는 쾅쾅하는 몇 번의 뚜렷한 소리를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해 보이던 빙봉천리가 도범의 한 줄기 검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게다가 이 검기는 빙봉천리를 부순 뒤에도 힘이 전혀 소모되지 않은 채 여전히 앞으로 돌진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뒤따라오던 오양수조차 반응하지 못했다.현재 도범의 참멸현공은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라 할지라도, 참멸현공 앞에서는 종이장처럼 부서질 뿐이었다.모두가 도범이 빙봉천리에 온몸이 봉쇄되어, 도살당할 어린 양처럼 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의 모든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검날이 빙봉천리를 부순 후, 곧장 반응하지 못한 오양수를 향해 돌진했다. 검날이 오양수의 면전 3척 앞에 닿기 직전에야 오양수는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오양수는 공격과 동시에
각양각색의 논조,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끝없는 토론. 그러나 도범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도범은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오양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오양수가 무기를 꺼내들자, 도범도 천천히 자신의 회흑색 장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 장검은 오랫동안 도범과 함께한 무기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오양수는 청란골패를 가볍게 휘두르자, 뚜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한기가 청란골패에서 뿜어져 나오며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었다.현재 오양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도범을 쓰러뜨린 뒤, 잔인하게 고통을 주어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알게 하는 것이었다.오양수는 크게 포효하며 두 손을 뒤집어 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오양수의 손바닥에 육각형 모양의 얼음 화살이 생겨났고, 4초 후,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오양수의 앞을 가득 메웠다.오양수는 다시 한번 포효하며 앞을 향해 힘껏 밀어붙였다. 그러자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도범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고, 이 화살들과 함께 엄청난 한기가 도범을 덮쳤다.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두 손으로 장검을 단단히 쥐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수많은 육각형 얼음 화살은 단숨에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그때,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도범 저 녀석, 실력이 정말 보통이 아니네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오양수가 수련한 무기는 지급 상급 무기, 빙봉천리에요! 그런데 도범이 단칼에 빙봉천리를 가르다니, 실력이 꽤 강한데요!”그 사람이 말을 끝내자마자 주변에서는 곧바로 반박이 나왔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바라문 세계를 둘러봐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방금 전의 공격은 단지 약간의 힘만 사용한 거에요. 오양수가 진심으로 도범을 죽이려 했다면, 반항할 틈조차 없었을 거에요!”오양수가 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눈살을 찌푸린 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무슨 말을 하든 네가 뭔 상관이야! 이 건방진 놈, 죽고 싶어! 마침 상대가 필요했는데, 너의 입탑영패를 가지고 와. 우리 한 판 붙자!”그러자 오수경은 콧방귀를 뀌며 태연하게 말했다.“내 앞에서 강자 흉내 내지 마. 내 가슴에 6품 연단사 휘장이 붙어 있는 걸 못 봤어? 그런데 네가 연단사인 나와 실력을 겨루겠다고? 차라리 연단술을 겨뤄보는 게 어때?”이 말에 검은 옷의 대장부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규칙이 없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오수경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오수경은 검은 옷의 대장부가 더 이상 말하지 않자, 더욱 신나서 비아냥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범이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너는 왜 이렇게 매사에 신중하지 못해?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해. 알겠어?”도범의 꾸짖음에 오수경은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전에 도범에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검은 옷의 대장부는 냉소를 머금은 채 다시 도범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들의 대화를 일부 들었기에 도범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네가 정말 8품 종문의 친전 제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해?”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검은 옷의 대장부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도범이 대답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았다.이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아마도 내기 때문이거나 도범의 냉담한 태도 때문인지 상황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도발적인 말이 다시 들리지 않았다. 제73회 대결이 곧 시작되려 할 때, 도범은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잠시 후, 도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내쉬고는 오수경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누구를 보든, 어떤 말을 듣든, 이 자리에서 떠나지 마.”그 말을 마치고 도범은 큰 걸음으로 대결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내기를 하려면 정식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 누구도 뒤집을 수 없도록, 우리 계약 하나 체결하자. 네가 이기면 내가 19만 개의 영정을 주고, 내가 이기면 너는 같은 수량의 영정을 줘야 해.”그러자 민경운이 눈살을 찌푸린채 말했다.“너는 사람들과 계약을 맺는 걸 참 좋아하네.”칠현대에서 민경운은 도범이 검은 옷의 대장부와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도범의 거래를 방해했었다. 그런데 도범과 내기를 할 때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하니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도범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민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계약을 맺고 싶지 않다면 솔직히 말해. 다른 핑계를 대지 말고, 계약을 맺는 것이 내기에서 가장 확실한 보증이라고 생각할 뿐이야.”이 말을 듣고 나서 민경운은 더 이상 도범과 쓸데없는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사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민경운에게는 유리한 일이다.도범은 자신의 실력만 믿고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에게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도범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19만 개의 영정을 내놓으려 한다면, 민경운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래서 민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면 어서 계약을 체결하자.”도범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평생 가장 빠른 속도로 계약 내용을 작성하고 자신의 정혈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계약서 두루마리를 민경운에게 건네주었고, 민경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그어 피를 떨어뜨렸다.계약서에 적힌 모든 문자가 즉시 뒤틀리며 두루마리의 속박을 벗어나 공중에 떠올랐다. 천지의 기운이 쏟아져 내려와 이 문자들과 얽히기 시작했고, 세 번의 호흡 후에 문자는 다시 두루마리에 합쳐졌다. 이것은 계약이 체결되었음을 의미했다.모든 절차가 끝난 후, 도범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계약 두루마리를 회수했다. 계약이 체결되면 변경할 수 없고, 거짓말할 수도 없다.한편, 민경운은 도범의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고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민경운은 콧방귀를 뀌며
도범은 고개를 돌려 오양수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 순간 오양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도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진실한 눈빛은 마치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라는 믿음을 주려고 하는 듯했다.도범은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도범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양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했다. 그러나 도범이 말하는 강함은 오양수가 다른 사람들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양수는 다른 사람들을 화나게 만드는 재주가 훨씬 더 뛰어났다.평소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도범이지만, 오양수의 몇 마디에 지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으니 말이다. 도범은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네가 한 말 잊지 마.”그러자 오양수는 눈살을 살짝 치켜올린 채 말했다.“당연히 내가 한 모든 말을 기억할 거야!”도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대결 무대에 있는 실력이 비슷한 두 무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위는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오양수는 도범이 시선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불쾌해났다.오양수가 방금 한 말은 물론 의도가 있었다. 오양수는 자신의 말이 끝나면 도범의 얼굴에 두려움과 걱정이 스며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도범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몸서리치는 모습을 기대했었다. 도범이 자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도범은 냉소 외에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오양수는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이 충분히 잔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민경운의 얼굴도 역시 어두워졌다. 민경운은 오양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도범이 일어날 일을 미리 두려워하며 땅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도범의 반응은 너무나 작았다. 잠시 후, 민경운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오양수 옆에 털썩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양수 하나만이 자리하고 있었다.한편, 도범은 이들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아 다시 대결 무대에 집중하며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시간을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