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뭐 하는 겁니까?”도범이 전기스쿠터를 옆에 세우더니 차가운 얼굴로 상대방을 보며 말했다.“눈 안 달렸습니까?”하지만 한 도련님은 도범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박시율을 보며 말했다.“아이고, 말로만 듣던 중주의 미녀 박시율 씨가 아닙니까? 시율 씨, 내가 듣기로는 많은 도련님께서 시율 씨를 쫓아다녔다고 하던데, 모두 다 거절하셨다면서요. 그래서 뭐 순정 가득하게 쓰레기 남편을 기다리려는 줄 알았지!”말을 마친 한 도련님이 그제야 의심스러운 눈길로 도범을 보더니 말했다.“그런 시율 씨도 외로울 때가 있나 봐요, 어쩌나, 하필이면 그 모습을 나한테 들키고 말았으니.”“제 일입니다,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박시율은 한 도련님과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방금 일부러 그런 거죠? 차를 옆에 세웠다가 우리가 물웅덩이 옆을 지나갈 때쯤, 일부러 다가온 거죠?”“시율 씨, 말씀이 너무 심하시다, 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한 도련님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차에서 가방을 꺼내 350만 원을 박시율에게 건넸다.“여기 350만 원이요, 위자료라고 생각하세요. 돈이 많지는 않지만 모두 다 제 성의니까, 그리고 저 한 씨 집안의 도련님입니다. 괜찮다면 우리 친구할까요?”그는 박시율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350만 원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연락처라도 남길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락처만 얻을 수 있다면 그는 앞으로 박시율에게 연락을 해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수 있었다.“돈 필요 없으니까 당장 사과하세요.”도범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사과?”도범의 말을 들은 한 도련님이 멈칫하더니 기가 막히다는 듯 웃었다.“장난하는 거지, 옷 좀 적신 거 가지고 사과를 하라고? 돈 줬으면 된 거잖아. 거지 주제에 나한테 사과를 받겠다고 하다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내 체면은 생각 안 해? 내 체면이 얼마나 하는지 당신 알기나 해?”“문제는 우리가 돈을 필요
그들은 물웅덩이와 몇 십 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도범의 힘이 워낙 강했던지라 한 도련님은 도범의 발길질에 물웅덩이까지 밀려 더러운 물을 뒤집어썼다.“당신들, 지금 한 도련님에게 손을 대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금발의 여자가 놀라 뒤로 물러서며 도범에게 소리쳤다.하지만 도범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상대방을 보며 말했다.“내가 저기로 보내줄까, 아니면 혼자 갈래?”“저, 저 때리지 마세요…”여자는 도범의 눈빛을 보고 놀랐다. 그 눈빛은 피바다를 몇 번이고 헤치고 나온 이의 눈빛처럼 사나웠다.여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물웅덩이로 달려가 뒹굴었다. 짧은 치마는 물에 젖어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너, 너 이 자식, 딱 기다리고 있어.”한 도련님은 화가 나서 일어서려 했지만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팔뚝은 이미 껍질이 벗겨져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고 옷도 전부 더러워져 볼썽사나웠다.“자기야, 한 씨 집안 우리가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집안이야, 당신 정말 큰 사고를 친 거라고!”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린 채 다급하게 말했다.하지만 도범은 한 도련님의 차로 다가가더니 차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퍽!”굉음과 함께 한 도련님의 차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움푹 패어 들어갔다.“이게…”박시율은 그 무서운 힘을 보며 놀라움에 자리에 얼어버렸다. 저게 과연 인간의 힘이 맞을까?하지만 박시율 앞으로 돌아온 도범은 다시 온화한 모습으로 돌아갔다.“자기야, 가서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자.”“하지만 한 씨 집안에는 강자들이 많단 말이야, 그 사람들이 우리 집에 찾아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박시율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걱정하지 마, 그 사람들 나 못 이겨.”도범이 개의치 않는다는 얼굴로 전기스쿠터에 올라탔다.“얼른 가자, 가서 씻어야지, 아니면 감기 걸려.”박시율은 걱정스러웠지만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다고 해도 좋은 점이 없었기에 잠시 망설이다 도범의 뒤에 올라타 자리를 떴다.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자기 집 문 앞 담벼락에
“철거? 그럼 돈을 꽤 많이 받게 되는 거잖아.”도범이 여전히 멍청한 얼굴로 박시율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서니 거실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봉희, 박영호와 한창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시율아, 두 사람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그렇게 많은 흙을 묻혀온 거야?”서정이 두 사람을 보곤 놀라 물었다.“물웅덩이 옆을 지나가는데 차 한 대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에 저희 몸에 다 튀게 했지 뭐예요!”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하지만 도범이 한 씨 집안 도련님에게 손을 댔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께서 그 사실을 알고 난리를 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이 분이 박시율 씨인가 봐요.”그때, 한 중년 남자가 웃으며 일어서더니 말했다.“지금 가족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곳이 징용되었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찾아온 겁니다, 위치도 조용해서 양로원을 지을 생각을 하고 있어서 이곳은 철거될 예정입니다.”“양로원이요?”“네, 국가를 위해 공헌한다 생각하세요, 그리고 전문가를 찾아 검증을 한 결과, 이곳이 낡아서 사람이 살기에는 위험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니까 3일 안에 이사 나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남자가 웃으며 말했다.“사람이 살기에 위험하다고요?”박시율은 막막해졌다, 지금은 돈도 없어 집을 살 수도 없었기에 이곳에서 나가면 살 곳도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집이 낡기는 했지만 사람이 살기에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다.거기다가 큰 마당이 있는 집이라 대가족이 살기에 적합했다, 가족들도 전부 익숙해진 상황에 갑자기 이사를 가라고 하니 박시율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네, 이미 전문가께서 평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데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마당이 여기 있는 건 보기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승리를 거머쥐고 전쟁터에서 실력이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돌아왔다는 거 들었죠, 그분들도 이 집을 본다면 영향이 좋지 않을 겁니다.”“네, 3일 안에
“그리고 당신들이 여기에 불법 건축물을 세웠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벌금 내라는 소리를 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지금 우리는 당신들이랑 협상을 하러 온 겁니다, 이사 가라고 하면 갈 것이지 무슨 배상금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까?”중년 남자가 웃으며 얘기를 했지만 그 말은 나봉희 일가를 기분 나쁘게 했다. 철거를 하는데 배상금이 없다니?“그럴 리가 없어요, 여기는 박 씨 집안의 본가예요, 오래전부터 사는 사람이 없어서 할아버지께서 여기에 와서 지내라고 한 거라고요. 그리고 철거를 하는데 배상금을 주지 않는다뇨? 이 집이 왜 불법 건축물이라는 겁니까? 여기에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데!”박시율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돈이 없는 게 아니라 그 돈 당신들 주머니에 넣으려고 하는 거지? 우리 박 씨 집안사람들이야, 잘 알아보고 왔어야지. 돈 안 줄 거면 철거할 생각 일도 하지 마!”나봉희도 방금 전의 웃음을 지우고 말했다.“우리는 그저 통보를 하러 온 겁니다, 우리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전화 한 통만으로도 철거 인원을 당장 불러올 수 있습니다!”“그리고 불법 건축이 아니라고 하는데 집문서는 있어요?”직원이 물었다.그러자 나봉희가 얼굴을 굳히고 대답했다.“상업 주택이 아니라 박 씨 집안의 땅인데 집문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철거를 하는데 당연히 우리한테 배상금을 줘야죠.”“저희가 불법 건축이라고 하면 불법 건축인 겁니다, 집문서도 내놓지 못하는 걸 보니 오늘 당장 철거를 진행해야 할 것 같네요!”중년 남자가 말을 하며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박 씨 집안 당연히 잘 알죠, 하지만 이 프로젝트 책임자가 성 도련님, 성경일이라고! 이 양로원을 성 씨 집안에서 도와서 짓기로 했는데 당신들 그 집안을 감히 거스를 수 있겠어요?”“난 또 누구라고, 그 쓰레기 자식이었어!”도범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성경일이 도범에게 맞은 뒤, 이런 방법으로 복수를 해온 것이다.“성경일?”직원의 말을 들은 나봉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
“어머, 성 도련님, 어떻게 오셨어요? 오랜만이네요!”나봉희는 성경일이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을 보고 웃으며 맞이했다.“어머님, 오랜만도 아니죠, 우리 이틀 전에 봤잖아요!”성경일이 다시 자신의 이를 가리키며 말했다.“이거 보세요, 어머님 사위 덕에 말을 할 때마다 바람이 새요.”그 말을 들은 나봉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도 참, 저 사람 제 사위 아니에요, 어르신 칠순 잔치가 되어야 아는 거라고요.”“어머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박시율이랑 도범 혼인신고도 하고 아이가 벌써 몇 살인데 왜 어르신 칠순 잔치를 들먹이는 거예요?”나봉희의 말을 들은 성경일이 의아하게 물었다.“그게 도범이 돌아온 뒤에 이성 도련님이랑 오해가 생겨서 박이성을 때렸거든요. 그리고… 그래서 그때 60억을 내놓아야 하는 겁니다. 아니면 우리 박 씨 집안에서 쫓겨나야 합니다, 물론 저한테 20억을 주지 않으면 저랑 시율 아빠 저 자식 신분을 인정할 생각도 없고요!”나봉희가 말을 하며 성경일을 옆으로 끌고 가 조용하게 말했다.“그러니까 성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 도범이 그렇게 많은 돈을 내놓을 수 있을 리 만무해요. 저 자식이 돈을 내놓지 못하면 우리 시율이도 자유를 회복하게 될 거고 그때 성 도련님에게 기회가 생기는 겁니다.”그 말을 들은 성경일도 마음속으로 기뻐했다.고개를 돌려 박시율을 본 그의 눈이 반짝였다.방금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채 말리지 않은 박시율은 더욱 사람을 끌어당겼다. 새하얀 다리는 더욱 눈부셨다.하지만 아직 박 씨 어르신의 칠순 잔치가 되려면 20여 일이 남았다는 것이 생각난 성경일이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어머님, 아직 20여 일이 남았는데 저는 그렇게 오래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20억 일뿐이잖아요. 어머니께서 방법을 생각해 내서 시율이를 저한테 시집보내면 저는 200억도 상관없어요.”“200억!”나봉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도범이 좋은 일자리를 찾았다고 하지만 용신애가 그를 가지고 농담을 하고 있
나봉희는 고민해 보더니 박시율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딸, 성 도련님이 이 집에 대해서 너랑 얘기를 좀 나누고 싶다고 하니까 네가 얘기 잘 좀 해봐, 이 집을 철거해서는 안 된다는 거 알지. 이 집이 철거되면 우리는 어디에 가서 사니?”박시율은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경일에게 다가갔다.“이 집은 우리 박 씨 집안의 본가예요, 집문서가 없지만 그래도 박 씨 집안의 재산이니 이렇게 철거할 수는 없어요!”박시율이 성경일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도범이 돌아오기 전부터 성경일은 자주 집으로 쫓아와 박시율에게 매달렸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도범의 사망증명을 만든 뒤 이혼을 하고 자신에게 시집을 오라고 설득했었다.박시율은 성경일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왕호보다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수단을 쓸 줄이야, 박시율은 성경일을 혐오하게 되었다.“이게 다, 도시의 환경을 위한 일이고, 중주를 위한 일 아니겠습니까?”성경일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말했다.“시율 씨도 알잖아, 나 시율 씨한테 진심인 거. 다른 도련님들보다 훨씬 진정성이 넘친다고! 저 쓰레기랑 이혼을 하고 나랑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매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줄게, 물론 이 집도 철거시키지 않을 거고. 양로원이 이곳에 서느냐 마느냐는 시율 씨 태도에 달린 거야, 시율 씨만 허락하면 저 사람들 당장 돌아가라고 할게.”“성 도련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돈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할수록 당신을 더욱 깔보게 된다는 거 모르세요?”박시율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어쩔 수 없어, 시율 씨가 나를 깔보든 말든 나는 상관없으니까. 나는 시율 씨가 내 여자가 되기만 하면 돼, 당신한테 내가 저 배달부보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 보여줄 거야!”성경일이 다시 장난기가 다분한 얼굴로 말했다.“생각 잘 해, 허락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이 집을 철거할 거야.”“감히!”박시율은 화가 났지만 성경일이 데리고 온 사람들을 보니 무기력해
한편, 성 씨 저택저택에 도착한 장건은 성경일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렸다.“성 도련님은 어디에 계셔?”장건이 옆에 있던 경호원에게 물었다.“사람들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꽤 기분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박시율 그 여자를 손에 넣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경호원이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설마!”그 말을 들은 장건이 놀라 말했다.“저번에도 도범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말을 안 들으시는 거야!”도범과의 팔씨름에서 진 뒤로 장건은 도범의 무서움을 깨달았다.그런 실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부대에서 평범한 군인이었을 리가 없다, 적어도 괜찮은 지위에서 군 생활을 했을 것이다.그랬기에 장건은 최대한 도범을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성경일이 자신의 말을 들을 줄 알았지만 다시 박시율을 찾으러 갔을 줄이야.“장 팀장님,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도련님께서 이번에는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셨어요, 아니면 또 찾아갔겠어요.”경호원이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저를 데리고 가셨다면 흔쾌히 따라나섰을 겁니다, 박시율이 그렇게 예쁘다면서요. 어쩔 수없이 도련님의 말에 허락하는 그 얼굴이 보고 싶네요.”“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해? 그게 무슨 말이야? 또 돈을 주고 나봉희가 대신 설득을 하게 하려는 건 아니겠지? 박시율 성격에 허락할 리가 없어, 그리고 지금 남편까지 돌아왔으니 더더욱 허락하지 않겠지.”“아닙니다, 이번에는 도련님께서 힘을 좀 써서 박시율의 집을 철거하는 걸로 협박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도범이 나선다고 해도 무서울 게 없어요, 이번에 도련님이랑 같이 간 사람 중에는 부대에서 돌아온 중장도 있으니까요.”경호원이 웃으며 계속 말했다.“장 팀장님도 아시죠, 중장 칭호를 가질만한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지!”장건은 그 말을 듣자마자 놀라서 제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중장이 되려면 부대에서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녀야 했다. 소장도 아래에 수 천 명의 사람을 거느려야 했는데 중장은 아래에 삼 사백 명의 소장을 거느렸으니 그
“지금 벌써 성공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도련님께서 미녀를 품에 안고 돌아오는 중일 수도 있겠어요.”......“철거해!”성경일이 사람들에게 명을 내렸다.“뭐야? 도범 저 자식이 두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들은 건 가? 언제 저기에 간 거야?”나봉희가 성경일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 세 사람을 바라봤다.그녀는 자신의 딸이 성경일의 말에 허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누가 감히!”그때 도범이 대문 앞에 버티고 섰다. 그의 옷에는 흙이 묻어있어 지저분해 보였지만 그곳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기세가 남달랐다.“도범, 제법이네!”성경일이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중년 남자를 보며 다시 말했다.“형님, 나서주시죠, 저 자식 좀 혼내줘!”도범은 진작에 중년 남자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봤다. 남자는 가만히 서서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군인의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게다가 똑바른 자세까지, 이는 평범한 이에게서는 보기 힘들었다.상대방도 도범을 보며 사나운 기세를 느꼈다. 다른 이는 느낄 수 없었지만 전쟁터에서 무수히 많은 시체를 밟으며 살아온 그는 알 수 있었다.“당신도 금방 부대에서 돌아온 건 가?”중년 남자가 도범 앞으로 다가오더니 물었다.“그렇다! 당신 같은 사람이 저런 사람을 도와주고 있다니, 전쟁터에서 만났다면 당장 당신을 죽였을 거야!”“나를 죽인다고? 그럴 권리가 없을걸!”홍희범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들어가서 얘기 좀 나누자, 일을 그렇게 보기 싫게 만들 필요 없잖아, 너도 부대에서 돌아온 사람이니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구나.”홍희범의 말을 들은 도범이 웃었다.“재밌네, 그럼 들어가서 얘기 좀 하자.”“이 자랑 들어가서 얘기를 좀 나눌 테니 내 명령 없이 그 누구도 움직이지 말라고 전해주세요.”홍희범이 성경일을 보며 말했다.“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냥 못 쓰게 만들어주면 된다니까. 죽도록 패주고 꺼지게 하면 된다고, 아니면 죽여도 돼,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거야, 그럴 자격이 없는 놈이라고.”성경일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
“풍린수의 가장 큰 약점은 지능이 낮다는 거야. 이들은 그렇게 많은 꾀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무사들이 조금만 머리를 쓰면, 버티기만 해도 풍린수를 처치할 수 있지.”삼각눈의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혹시 구록종이 무슨 종문인지조차 모르는 건 아니겠지? 방금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표정이 어찌나 비웃음이 깃든지 말이야. 중주에 어떤 강력한 종문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 아니야? 넌 정말 중주 출신이 맞긴 한 거냐?”이 일련의 의심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점점 오수경을 변두리에서 나온 우물 안 개구리라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할 리 없었다. 오수경은 무심코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제야 도범이 왜 침묵을 즐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들과 다투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애초에 오수경은 이들과 말다툼을 할 생각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이들이 오수경을 끝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오수경은 인상을 찌푸린채 말했다.“물론 구록종은 중주 7품 종문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그러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오수경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런데 왜 내가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얼굴에는 비웃음이 서린 거냐?”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묻고 싶었다.‘네가 어떻게 내 얼굴 표정을 그렇게 자세히 본 거야? 난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있는지도 몰라.’이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오수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목소리를 높여 이들과 싸우려는 순간, 도범이 오수경을 막았다. 그러자 도범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했다.“이 사람들과 싸워서 뭐하겠어? 저들과 싸우는 건 네 시간만 낭비하는 거야. 이들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이 말에 주위는 순간 조용해졌다. 도범은 지금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사람들이 도범을 허세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도범의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오수경도 이미 충분히 오만했지만
“역시 숲이 크면 별의별 새가 다 있는 법이지. 거울이라도 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봐야 할 텐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그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앞쪽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흰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은 구록종 출신으로 친전 제자야. 그런데도 30분이 되서야 겨우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꿨다구! 방금 그렇게 큰소리쳤으니, 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서 보라색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한 번 볼까?”다른 사람도 거들며 말했다.“그래, 말 좀해봐. 네가 그렇게 치켜세운 저 친구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며 오수경을 계속 몰아세웠다. 그들은 오수경에게 도범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라고 강요하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이들 대부분은 6품 종문이나 자유 무사 출신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최소 4시간이 걸렸다. 출신이 뛰어난 천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오수경이 이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쓰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오수경은 도범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도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만든 일이니 네가 해결해.”도범은 오수경이 이미 여러 번 경솔하게 발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매번 오수경의 뒤처리를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고개를 들어 크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30분이 걸린다면, 도범 오빠는 15분이면 충분해!”오수경은 어차피 모든 것을 걸고 말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수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오수경의 말에 반
두 마리의 풍린수를 처치하면 수정구는 파란색에서 청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때 무사는 몇 배나 강력해진 풍린수와 마주하게 되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만 4층을 통과하여 5층에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도범의 설명을 들은 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물었다.“그러니까 4층은 사실 세 단계로 나뉜다는 말이지? 수정구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단계를 하나씩 통과하는 거야. 총 세 가지 색이 있는 셈이니까, 5층으로 가려면 세 번을 모두 통과해야 하네.”도범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수경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즉, 네 마리의 풍린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첫 번째 풍린수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풍린수는 좀 더 강해지지만, 가장 강력한 풍린수는 마지막 한 마리라는 거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 비로소 통과가 완료되는 거네.”도범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정리가 꽤나 명확했다. 오수경은 5층으로 순조롭게 진입하려면 이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네 마리의 풍린수를 모두 처치해야만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오수경은 웃으며 말했다.“4층은 도범 오빠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네. 그 무슨 풍린수라는 것도 결국 선천 후기에 불과하니까 말이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범이 답하기도 전에 주위의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섰다. 그들이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수경의 말이 크게 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이때, 눈이 삼각형 모양인 한 사내가 오수경의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너는 저 녀석의 부속인이겠지? 어디서 그런 배짱을 얻었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마치 4층이 이 어린 녀석에게는 쉬운 일인 것처럼.”그러자 삼각눈 사내 옆에 서 있던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 사람은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 풍린수가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입만 뻐끔했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