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 그런 옷 안 입었으면 믿을 뻔했네요!”박시연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안에 옷이 꽤 많아 보이는데 시율이한테도 사줬나 봐요. 합치면 적어도 몇 백만 원은 할 텐데.”박시윤은 말을 하며 쇼핑백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원피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아니, 이건 한정판인데. 이 원피스 적어도 몇 천만 원은 할 텐데, 그것도 최근에 나온 신상인데!”그 말을 들은 박 씨 집안사람들이 의아하게 서로를 쳐다봤다.이런 원피스를 그들도 살 수는 있었지만 도범이 이런 옷을 살 수 있다는 건 이상했다.더구나 시계나 액세서리도 아닌 원피스 하나를 사는데 몇 천만 원을 쓸 때에는 그들도 한 번쯤은 고민을 해봐야 했다.“치마 다시 넣어두세요, 괜히 만졌다가 시율이 원피스만 더럽히지 말고.”원피스를 꺼낸 박시연을 본 도범이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도범의 말을 들은 박시연이 생각에 잠기더니 원피스를 다시 넣었다. 그리곤 웃으며 말했다.“이제 알겠네요, 당신들 짝퉁을 산 거죠. 쯧쯧, 보기에는 정말 진짜 같아서 하마터면 믿을 뻔했네요.”사람들도 그제야 깨달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저렇게 가난한 세 사람이 한정판 원피스를 살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서정의 손에 들린 쇼핑백에 담긴 옷들이 전부 짝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박시연, 이게 진짜든 가짜든 너랑은 딱히 상관없는 거잖아, 이거 내 남편이 나한테 사준 선물이야. 우리 남편이 사준 게 진짜든 가짜든 나는 다 좋아!”박시율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얕잡아보는 박시연을 보다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나이도 적지 않은데 남자친구 하나 없는 누구보다는 낫지 않아? 설마 지금 나를 부러워하는 건 아니겠지?”“너…”박시연은 화가 났다. 자신도 누구에게 뒤처지는 외모를 가진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남자친구가 없었기에 박시율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언짢아졌다.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차갑게 웃으며 맞받아쳤다.“너를 부러워하다니? 농담하는 거지? 네가 박 씨 집안에서 쫓겨난 걸 부러워해야 하는 거니?
박 씨 어르신도 마음이 복잡했다. 그의 마음은 도범이 추측한 것과 비슷했다.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사람이 박이성을 전쟁터에 내보내지 않기 위해 도범을 데릴사위로 들인 것은 이미 박 씨 집안을 망신시킨 것이었다.그런데 그것보다 더 체면을 깎이는 일이 일어날 줄 그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박시율과 도범이 결혼을 한 이튿날, 도범은 전쟁터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시율은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그날 밤, 박시율이 술을 많이 마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도범이 박시율을 범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었다.하지만 박시율이 원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고 박 씨 어르신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었다.결국, 박 씨 어르신은 박시율과 그녀의 부모님, 그리고 14살이었던 그녀의 동생까지 박 씨 집안에서 쫓아냈던 것이었다.하지만 박시율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든 것은 박이성이 저지른 짓이었다.“정말 제 마음대로 적어도 되는 건 가요?”도범이 냉랭하게 웃으며 물었다.“그럼! 마음대로 적거라!”도범이 드디어 돈 때문에 마음을 바꾼 줄 알고 박 씨 어르신은 속으로 기뻐했다. 박시율은 얼굴도 예뻤고 비즈니스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도범과 이혼을 하고 나면 돈 많은 사람을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심지어 지금 성 도련님이 박시율을 따라다니고 있지 않은가.“당연하지, 우리 어르신께서는 한다면 하시는 분이야. 그러니까 얼른 적어!”나봉희가 흥분해서 말했다. 그리고 얼른 의아한 얼굴을 한 박시율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딸, 저거 봐, 내가 말했지. 도범은 그냥 배은망덕한 놈이야, 너는 도범을 위해서 아이를 낳고 5년을 기다리면서 고생했는데 저놈 결국 돈을 선택했잖아, 현실은 이런 거야!”박시율은 멍청하게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그동안 그 많은 고생을 하면서 기다렸는데 결국…“범아, 너, 너 바보야? 저렇게 좋은 마누라를 어디 가서 찾을 수 있다고? 설마 돈 때문에 마누라랑 딸까지 버리려고 하는 거야? 시율이 너를 위해서 5년 동안 온갖
“아니, 어르신, 지금 도범을 박 씨 집안의 데릴사위로 받아들이는 거예요?”어르신의 말을 들은 친척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예전부터 시율이를 예뻐하더니 화가 다 가라앉으셨나 보네. 하긴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가기도 했고 박시율 몸에는 우리 박 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그중의 한 사람이 속으로 생각했다.“할아버지!”박 씨 어르신의 말을 들은 박시율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그동안 할아버지께서 몰래 자신을 관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자신의 체면을 내려놓기가 어려워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박진천에게 있어서 체면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하지만 뭐요?”도범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그는 어르신의 입에서 나올 말이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네가 이성이 손을 저렇게 만든 건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박진천이 다시 덧붙였다.“배상을 해야 해!”“맞아, 할아버지 말씀이 맞아. 뼈가 부러져서 두 달이 지나도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의사가 그랬다고, 그것도 제일 좋은 약을 썼는데 말이야!”박이성은 박진천에게 한 소리 들은 뒤로 옆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하지만 지금은 자신을 대신해 말해주는 박진천을 보곤 신이 나서 말했다.“이렇게 하자, 도범, 너에게 한 달 시간을 주겠다. 한 달 뒤면 마침 내 칠순 잔치이니 그때 20억을 내놓을 수 있다면 너를 우리 박 씨 집안의 진정한 사위로 받아들여주겠다. 하지만 20억을 내놓을 수 없다면 우리 시율이랑 이혼을 해야 해, 그건 네가 능력이 없다는 걸 설명하는 것이니 우리 시율이랑 함께 할 자격이 없는 거야. 그리고 네가 이성이 손을 저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그 20억을 이성이한테 주는 거야, 어때?”박진천이 도범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할아버지, 지금 일부러 도범을 난감하게 하시는 거죠?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는 배달부 생활을 하다가 이제 막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람한테 한 달 안에 그렇게 많은 돈을 내놓으라고
“왕 도련님,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겁니까?”박이성이 왕 씨 집안 도련님을 보자마자 인사를 건네며 다가갔다.“왕 도련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100억이요? 예물로 100억을 내놓겠다는 겁니까? 진심인가요?”나봉희가 눈을 반짝이며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왕 씨 집안과 성 씨 집안은 모두 박 씨 집안보다 돈이 많은 집안들이었다.“당연하죠, 어머니. 제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 같아 보입니까? 저 왕 씨 집안 도련님입니다, 제 말 믿으셔도 됩니다!”왕 도련님이 웃으며 박시율의 예쁜 얼굴을 보더니 침을 삼켰다.그는 돼지처럼 뚱뚱한 몸매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먹고 노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여자라면 더더욱 사족을 못썼다.왕호는 처음 박시율을 봤을 때부터 그녀의 미모에 빠졌지만 박시율이 배달부에게 시집을 가서 임신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화가 났었다.하지만 박시율은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오히려 더욱 성숙된 분위기를 내뿜어 왕호는 어떻게 해서든 박시율을 손에 넣고 싶었다.그리고 박시율은 중주에서 이름난 미인이었기에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다른 도련님들 앞에서 체면이 서기도 했고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다.“잘 됐어요, 이건 왕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겁니다!”나봉희가 손뼉을 치더니 웃으며 박시율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시율아, 들었어? 도범이 20억이라고 했는데 왕 도련님께서는 100억을 줄 수 있대. 예전부터 너를 좋아하기도 했고 사람도 괜찮아 보이는데 고민 좀 해보는 거 어때? 너만 허락한다면 도범 저 녀석은 우리가 내쫓아줄게!”박시율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왕 도련님의 외모를 그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 도련님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얼굴은 봐 줄만 했다. 하지만 왕 도련님은 기름이 흐를 것 같은 모습이었다.“어머니, 딸을 시집보내려는 거예요, 아니면 팔려는 거예요? 누가 돈을 많이 준다고 하면 누구한테 주는 건가요? 차라리 저를 경매장에 내놓
용준혁은 부하의 말을 듣자마자 웃었다.“전신은 고고하신 분이라 환심을 사기 어려워, 그리고 여전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우리는 아는 게 없잖아.”말을 멈췄던 용준혁이 생각해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전신이 돌아왔으니 중주의 모든 세력들이 전신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을 거야, 우리도 어렵사리 전신이 타고 온 비행기 정보를 알게 된 거야,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용준혁의 말을 들은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저희가 전신에게 선물을 준다면 전신께서 받아주실까요?”“그래, 그거 괜찮구나. 우리가 준비해 준 집을 받아줬잖니, 돈은 전신의 흥미를 일으킬 수 없는 물건이야.”용준혁이 웃으며 말했다.“장진은 다른 사람이 아부를 떠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어,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전신의 환심을 살 수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고.”중년의 남자가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뗐다.“회장님, 그러니까 이 도범이라는 남자가 전신이랑 평범하지 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도범의 환심을 사게 된다면 간접적으로 전신의 환심을 사는 거랑 같다는 거네요. 그렇게 되면 전신께서 우리 용 씨 집안을 돌봐주실 테고 사업을 더욱 번창하게 할 수 있다는 거죠.”용준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 그 사람이 전신이랑 같이 개인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는 건 이미 모든 걸 설명해 줄 수 있어, 우리가 도범을 도와준다면 전신의 환심을 살 수 있을 거야.”“역시 회장님이십니다!”‘광재’라는 별명을 가진 중년 남자는 용 씨 집안을 보호하는 세 사람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여전신의 나이가 어려 보이지는 않던데…”그 말을 들은 용준혁이 미간을 찌푸렸다.“광재야, 설마 여전신을 탐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은 애초에 접어두는 게 좋을 거다. 전신에게 미움을 사서 분노하게 한다면 우리 용 씨 집안뿐만 아니라 중주 전체가 하룻밤 사이에 피바다가 될 거야!”용준혁의 말을 들은 광재가 웃으며 말했다.“회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나봉희에게 옷을 빼앗긴 박시율은 뒤늦게 호수에 버려진 옷을 보곤 소리쳤다.“어머니, 뭐 하시는 거예요? 저 옷 다 진짜예요, 누가 가짜라고 했다고 버리는 거예요?”박시율은 화가 나 발을 굴렸다. 그리고 다급하게 호수 옆에 다가가더니 눈시울을 붉히고 안절부절못했다. 이것은 도범이 그녀를 위해 처음으로 사준 옷이었다. 결혼을 하고 난 뒤, 수많은 고생을 한 끝에 처음으로 받아보는 선물이기도 했고 그녀가 5년 동안 헛고생을 하지 않았다는 증명이기도 했다.“진품이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저게 진품이라면 도범이 어떻게 저걸 살 돈이 있겠어?”나봉희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도범이 자신의 딸에게 브랜드 옷을 사 줄만큼 돈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사부인, 저 옷들 정말 진품이에요, 우리 세 사람이 매장에 가서 산 거라고요. 그런데 저게 가짜일 리가 있겠어요?”옆에 있던 서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5천만 원이나 되는 옷을 저렇게 호수에 버리다뇨!”“제가 가서 건져야겠어요!”박시율이 다급하게 호수로 뛰어들 준비를 하며 말했다.호수의 물이 더럽지도 않았기에 건져내 씻기만 한다면 계속 입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박시율의 그런 모습을 본 도범은 가슴이 아팠다.5년 전, 박시율은 불과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의 그녀는 박 씨 집안의 아가씨였을 뿐만 아니라 젊은 나이에 하람그룹을 위해 수많은 업적을 쌓았었다.그때의 박시율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된 옷을 입고 부잣집 아가씨처럼 대접을 받았는데 지금은 몇 벌의 옷을 위해 호수에 뛰어들으려고 하고 있었다.결국 도범이 앞으로 다가가 박시율을 저지했다.“자기야, 됐어. 옷 몇 벌일 뿐이잖아, 내가 다시 사줄게!”하지만 박시율은 고집스럽게 굴었다.“안돼, 저 옷 그렇게 비싼데. 다 도범 네 목숨으로 바꿔온 돈으로 산 거잖아, 그리고 네가 나한테 처음으로 사 준 옷이기도 하고. 나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옷 건져내야 해, 그리고 못 입는 것도 아니잖아!”박시율의 말을
“회장님, 회장님, 제가 드디어 도범에 대해서 조금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광재가 다급하게 용준혁에게 말했다.“이상한 점?”광재의 말을 들은 용준혁이 의아하게 물었다. 광재가 이런 말로 도범을 형용할 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이게 보세요, 부대 쪽 사람한테 부탁해서 비밀리에 알아낸 도범 정보입니다. 그런데 이름이랑 주민등록번호, 예전에 배달부로 일하다가 박 씨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결혼식을 올린 이튿날, 부대를 따라 전쟁터에 나갔다는 정황밖에 없습니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조사할 수 없습니다. 그저 5년 뒤에 다시 중주로 돌아왔다는 것이 전부입니다.”광재가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부대에 있을 때, 어느 부대에 귀속되어 있었는지도 알 수 없고 심지어 어머니인 서정은 지금 중주에서 청소부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아버지도 알 수 없고 부대에 있는 동안의 정보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용준혁이 생각에 잠겼다.“누군가가 일부러 도범의 정보를 지웠나 보네, 아니면 이 정보는 그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뿐인 거야. 어쩌면 도범의 개인비밀정보가 따로 있을 지도 몰라.”“회장님, 그렇게 되면 도범의 신분이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부대 쪽에서 이렇게 이 자의 신분을 감출 리가 없잖아요, 다른 사람이 도범에 대해 조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분명합니다.”‘부대 쪽에서 이렇게까지 감춰줄 필요가 있는 사람이라면 전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신이랑 결코 멀지는 않을 거야.’광재가 속으로 생각했다.“그래, 네 말이 맞아.”용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계속 조사를 해보거라, 지금 도범이 중주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봐. 박 씨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갔다고 했으니 박 씨 집안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도범이 박 씨 집안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전부 알
“신난다, 나가서 밥 먹는다!”수아가 예쁜 공주 원피스를 입은 채 마당에서 뛰어다녔다.“아가씨,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지유가 박시율을 보며 말했다.“너 또 남자친구 만나러 가는 거지? 그래, 얼른 가 봐.”박시율이 지유를 놀리며 말했다.마침 샤워를 마친 서정이 오늘 도범이 사준 새 옷을 입고 나왔다. 마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옷을 바꾸고 나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귀한 티까지 났다.서정은 원래 예쁘게 생긴 데다가 타고난 귀티 덕에 평소 청소부 옷을 입고 출근해도 다른 이의 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를 내뿜었다.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도범의 아버지가 그녀를 따라다녔었다.하지만 아쉽게도…“어머니, 이 옷 입으니까 너무 예쁘세요!”박시율이 서정을 보며 말했다.“얘는, 내가 나이가 얼마인데 예쁘기는.”그러자 문 앞에서 그 모습을 보던 나봉희가 비아냥거렸다.“누가 자기 친엄마인지도 모르겠네…”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박영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그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나봉희를 툭 치더니 말했다.“도범이 내 다리를 고쳐준다는 거 정말일까?”“저놈 말도 믿는 거야? 도범이 어떤 놈인지 당신 몰라서 그래? 그냥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돌아온 전사일 뿐이야. 그런데 당신 다리를 고쳐준다고? 안 부러뜨리면 다행인 거지.”“......”박영호는 말문이 막혔다.“이 자식은 샤워 하나 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배고파 죽겠구만.”나봉희가 화장실을 보며 구시렁거렸다.“이제 5분 지나갔어, 당신은 방금 반 시간 동안 씻었잖아.”박영호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집은 보기에는 낡았지만 그나마 시내와 가까이 있었기에 도범이 다 씻은 뒤, 그들은 산책도 할 겸 밥 먹을 곳을 고르기 시작했다.“이 집은 안 돼, 너무 후져.”“이 집은 더 안 돼, 만 원짜리 뷔페라니, 먹을 것도 없을 거야.”나봉희가 걸으며 도범을 비꼬았다.“도범, 네가 밥을 사 준다고 했으니 나는 좋은 데서 먹어야겠어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
두 번째 방법은 고도의 신법을 필요로 하며, 일반적인 무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첫 번째 방법도 강력한 실력이 필요하기에, 주위 사람들이 도범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빙봉천리의 감금 아래에서 도범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따라서 모두가 도범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범의 경맥이 감금되면 오양수가 도범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한편, 도범은 한 손에 장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연달아 법진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백 개의 영혼검이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영혼 검이 되어 회흑색 장검 속에 흡수되었다.도범이 전승 상태로 참멸현공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일지라도, 도범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범은 현재 참멸현공을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한 상태였고, 영혼검과의 융합으로 생성된 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힘이다.도범은 분노에 차서 큰 소리로 포효하며 단칼에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회흑색 장검에서 거대한 검기가 날아가면서 하늘을 뒤덮은 얼음망이 도범의 앞에 닥쳐왔다.모두는 쾅쾅하는 몇 번의 뚜렷한 소리를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해 보이던 빙봉천리가 도범의 한 줄기 검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게다가 이 검기는 빙봉천리를 부순 뒤에도 힘이 전혀 소모되지 않은 채 여전히 앞으로 돌진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뒤따라오던 오양수조차 반응하지 못했다.현재 도범의 참멸현공은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라 할지라도, 참멸현공 앞에서는 종이장처럼 부서질 뿐이었다.모두가 도범이 빙봉천리에 온몸이 봉쇄되어, 도살당할 어린 양처럼 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의 모든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검날이 빙봉천리를 부순 후, 곧장 반응하지 못한 오양수를 향해 돌진했다. 검날이 오양수의 면전 3척 앞에 닿기 직전에야 오양수는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오양수는 공격과 동시에
각양각색의 논조,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끝없는 토론. 그러나 도범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도범은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오양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오양수가 무기를 꺼내들자, 도범도 천천히 자신의 회흑색 장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 장검은 오랫동안 도범과 함께한 무기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오양수는 청란골패를 가볍게 휘두르자, 뚜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한기가 청란골패에서 뿜어져 나오며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었다.현재 오양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도범을 쓰러뜨린 뒤, 잔인하게 고통을 주어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알게 하는 것이었다.오양수는 크게 포효하며 두 손을 뒤집어 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오양수의 손바닥에 육각형 모양의 얼음 화살이 생겨났고, 4초 후,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오양수의 앞을 가득 메웠다.오양수는 다시 한번 포효하며 앞을 향해 힘껏 밀어붙였다. 그러자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도범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고, 이 화살들과 함께 엄청난 한기가 도범을 덮쳤다.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두 손으로 장검을 단단히 쥐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수많은 육각형 얼음 화살은 단숨에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그때,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도범 저 녀석, 실력이 정말 보통이 아니네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오양수가 수련한 무기는 지급 상급 무기, 빙봉천리에요! 그런데 도범이 단칼에 빙봉천리를 가르다니, 실력이 꽤 강한데요!”그 사람이 말을 끝내자마자 주변에서는 곧바로 반박이 나왔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바라문 세계를 둘러봐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방금 전의 공격은 단지 약간의 힘만 사용한 거에요. 오양수가 진심으로 도범을 죽이려 했다면, 반항할 틈조차 없었을 거에요!”오양수가 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눈살을 찌푸린 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무슨 말을 하든 네가 뭔 상관이야! 이 건방진 놈, 죽고 싶어! 마침 상대가 필요했는데, 너의 입탑영패를 가지고 와. 우리 한 판 붙자!”그러자 오수경은 콧방귀를 뀌며 태연하게 말했다.“내 앞에서 강자 흉내 내지 마. 내 가슴에 6품 연단사 휘장이 붙어 있는 걸 못 봤어? 그런데 네가 연단사인 나와 실력을 겨루겠다고? 차라리 연단술을 겨뤄보는 게 어때?”이 말에 검은 옷의 대장부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규칙이 없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오수경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오수경은 검은 옷의 대장부가 더 이상 말하지 않자, 더욱 신나서 비아냥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범이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너는 왜 이렇게 매사에 신중하지 못해?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해. 알겠어?”도범의 꾸짖음에 오수경은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전에 도범에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검은 옷의 대장부는 냉소를 머금은 채 다시 도범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들의 대화를 일부 들었기에 도범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네가 정말 8품 종문의 친전 제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해?”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검은 옷의 대장부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도범이 대답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았다.이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아마도 내기 때문이거나 도범의 냉담한 태도 때문인지 상황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도발적인 말이 다시 들리지 않았다. 제73회 대결이 곧 시작되려 할 때, 도범은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잠시 후, 도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내쉬고는 오수경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누구를 보든, 어떤 말을 듣든, 이 자리에서 떠나지 마.”그 말을 마치고 도범은 큰 걸음으로 대결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내기를 하려면 정식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 누구도 뒤집을 수 없도록, 우리 계약 하나 체결하자. 네가 이기면 내가 19만 개의 영정을 주고, 내가 이기면 너는 같은 수량의 영정을 줘야 해.”그러자 민경운이 눈살을 찌푸린채 말했다.“너는 사람들과 계약을 맺는 걸 참 좋아하네.”칠현대에서 민경운은 도범이 검은 옷의 대장부와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도범의 거래를 방해했었다. 그런데 도범과 내기를 할 때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하니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도범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민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계약을 맺고 싶지 않다면 솔직히 말해. 다른 핑계를 대지 말고, 계약을 맺는 것이 내기에서 가장 확실한 보증이라고 생각할 뿐이야.”이 말을 듣고 나서 민경운은 더 이상 도범과 쓸데없는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사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민경운에게는 유리한 일이다.도범은 자신의 실력만 믿고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에게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도범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19만 개의 영정을 내놓으려 한다면, 민경운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래서 민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면 어서 계약을 체결하자.”도범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평생 가장 빠른 속도로 계약 내용을 작성하고 자신의 정혈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계약서 두루마리를 민경운에게 건네주었고, 민경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그어 피를 떨어뜨렸다.계약서에 적힌 모든 문자가 즉시 뒤틀리며 두루마리의 속박을 벗어나 공중에 떠올랐다. 천지의 기운이 쏟아져 내려와 이 문자들과 얽히기 시작했고, 세 번의 호흡 후에 문자는 다시 두루마리에 합쳐졌다. 이것은 계약이 체결되었음을 의미했다.모든 절차가 끝난 후, 도범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계약 두루마리를 회수했다. 계약이 체결되면 변경할 수 없고, 거짓말할 수도 없다.한편, 민경운은 도범의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고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민경운은 콧방귀를 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