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도련님,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겁니까?”박이성이 왕 씨 집안 도련님을 보자마자 인사를 건네며 다가갔다.“왕 도련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100억이요? 예물로 100억을 내놓겠다는 겁니까? 진심인가요?”나봉희가 눈을 반짝이며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왕 씨 집안과 성 씨 집안은 모두 박 씨 집안보다 돈이 많은 집안들이었다.“당연하죠, 어머니. 제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 같아 보입니까? 저 왕 씨 집안 도련님입니다, 제 말 믿으셔도 됩니다!”왕 도련님이 웃으며 박시율의 예쁜 얼굴을 보더니 침을 삼켰다.그는 돼지처럼 뚱뚱한 몸매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먹고 노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여자라면 더더욱 사족을 못썼다.왕호는 처음 박시율을 봤을 때부터 그녀의 미모에 빠졌지만 박시율이 배달부에게 시집을 가서 임신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화가 났었다.하지만 박시율은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오히려 더욱 성숙된 분위기를 내뿜어 왕호는 어떻게 해서든 박시율을 손에 넣고 싶었다.그리고 박시율은 중주에서 이름난 미인이었기에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다른 도련님들 앞에서 체면이 서기도 했고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다.“잘 됐어요, 이건 왕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겁니다!”나봉희가 손뼉을 치더니 웃으며 박시율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시율아, 들었어? 도범이 20억이라고 했는데 왕 도련님께서는 100억을 줄 수 있대. 예전부터 너를 좋아하기도 했고 사람도 괜찮아 보이는데 고민 좀 해보는 거 어때? 너만 허락한다면 도범 저 녀석은 우리가 내쫓아줄게!”박시율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왕 도련님의 외모를 그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 도련님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얼굴은 봐 줄만 했다. 하지만 왕 도련님은 기름이 흐를 것 같은 모습이었다.“어머니, 딸을 시집보내려는 거예요, 아니면 팔려는 거예요? 누가 돈을 많이 준다고 하면 누구한테 주는 건가요? 차라리 저를 경매장에 내놓
용준혁은 부하의 말을 듣자마자 웃었다.“전신은 고고하신 분이라 환심을 사기 어려워, 그리고 여전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우리는 아는 게 없잖아.”말을 멈췄던 용준혁이 생각해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전신이 돌아왔으니 중주의 모든 세력들이 전신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을 거야, 우리도 어렵사리 전신이 타고 온 비행기 정보를 알게 된 거야,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용준혁의 말을 들은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저희가 전신에게 선물을 준다면 전신께서 받아주실까요?”“그래, 그거 괜찮구나. 우리가 준비해 준 집을 받아줬잖니, 돈은 전신의 흥미를 일으킬 수 없는 물건이야.”용준혁이 웃으며 말했다.“장진은 다른 사람이 아부를 떠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어,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전신의 환심을 살 수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고.”중년의 남자가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뗐다.“회장님, 그러니까 이 도범이라는 남자가 전신이랑 평범하지 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도범의 환심을 사게 된다면 간접적으로 전신의 환심을 사는 거랑 같다는 거네요. 그렇게 되면 전신께서 우리 용 씨 집안을 돌봐주실 테고 사업을 더욱 번창하게 할 수 있다는 거죠.”용준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 그 사람이 전신이랑 같이 개인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는 건 이미 모든 걸 설명해 줄 수 있어, 우리가 도범을 도와준다면 전신의 환심을 살 수 있을 거야.”“역시 회장님이십니다!”‘광재’라는 별명을 가진 중년 남자는 용 씨 집안을 보호하는 세 사람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여전신의 나이가 어려 보이지는 않던데…”그 말을 들은 용준혁이 미간을 찌푸렸다.“광재야, 설마 여전신을 탐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은 애초에 접어두는 게 좋을 거다. 전신에게 미움을 사서 분노하게 한다면 우리 용 씨 집안뿐만 아니라 중주 전체가 하룻밤 사이에 피바다가 될 거야!”용준혁의 말을 들은 광재가 웃으며 말했다.“회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나봉희에게 옷을 빼앗긴 박시율은 뒤늦게 호수에 버려진 옷을 보곤 소리쳤다.“어머니, 뭐 하시는 거예요? 저 옷 다 진짜예요, 누가 가짜라고 했다고 버리는 거예요?”박시율은 화가 나 발을 굴렸다. 그리고 다급하게 호수 옆에 다가가더니 눈시울을 붉히고 안절부절못했다. 이것은 도범이 그녀를 위해 처음으로 사준 옷이었다. 결혼을 하고 난 뒤, 수많은 고생을 한 끝에 처음으로 받아보는 선물이기도 했고 그녀가 5년 동안 헛고생을 하지 않았다는 증명이기도 했다.“진품이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저게 진품이라면 도범이 어떻게 저걸 살 돈이 있겠어?”나봉희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도범이 자신의 딸에게 브랜드 옷을 사 줄만큼 돈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사부인, 저 옷들 정말 진품이에요, 우리 세 사람이 매장에 가서 산 거라고요. 그런데 저게 가짜일 리가 있겠어요?”옆에 있던 서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5천만 원이나 되는 옷을 저렇게 호수에 버리다뇨!”“제가 가서 건져야겠어요!”박시율이 다급하게 호수로 뛰어들 준비를 하며 말했다.호수의 물이 더럽지도 않았기에 건져내 씻기만 한다면 계속 입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박시율의 그런 모습을 본 도범은 가슴이 아팠다.5년 전, 박시율은 불과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의 그녀는 박 씨 집안의 아가씨였을 뿐만 아니라 젊은 나이에 하람그룹을 위해 수많은 업적을 쌓았었다.그때의 박시율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된 옷을 입고 부잣집 아가씨처럼 대접을 받았는데 지금은 몇 벌의 옷을 위해 호수에 뛰어들으려고 하고 있었다.결국 도범이 앞으로 다가가 박시율을 저지했다.“자기야, 됐어. 옷 몇 벌일 뿐이잖아, 내가 다시 사줄게!”하지만 박시율은 고집스럽게 굴었다.“안돼, 저 옷 그렇게 비싼데. 다 도범 네 목숨으로 바꿔온 돈으로 산 거잖아, 그리고 네가 나한테 처음으로 사 준 옷이기도 하고. 나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옷 건져내야 해, 그리고 못 입는 것도 아니잖아!”박시율의 말을
“회장님, 회장님, 제가 드디어 도범에 대해서 조금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광재가 다급하게 용준혁에게 말했다.“이상한 점?”광재의 말을 들은 용준혁이 의아하게 물었다. 광재가 이런 말로 도범을 형용할 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이게 보세요, 부대 쪽 사람한테 부탁해서 비밀리에 알아낸 도범 정보입니다. 그런데 이름이랑 주민등록번호, 예전에 배달부로 일하다가 박 씨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결혼식을 올린 이튿날, 부대를 따라 전쟁터에 나갔다는 정황밖에 없습니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조사할 수 없습니다. 그저 5년 뒤에 다시 중주로 돌아왔다는 것이 전부입니다.”광재가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부대에 있을 때, 어느 부대에 귀속되어 있었는지도 알 수 없고 심지어 어머니인 서정은 지금 중주에서 청소부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아버지도 알 수 없고 부대에 있는 동안의 정보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용준혁이 생각에 잠겼다.“누군가가 일부러 도범의 정보를 지웠나 보네, 아니면 이 정보는 그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뿐인 거야. 어쩌면 도범의 개인비밀정보가 따로 있을 지도 몰라.”“회장님, 그렇게 되면 도범의 신분이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부대 쪽에서 이렇게 이 자의 신분을 감출 리가 없잖아요, 다른 사람이 도범에 대해 조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분명합니다.”‘부대 쪽에서 이렇게까지 감춰줄 필요가 있는 사람이라면 전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신이랑 결코 멀지는 않을 거야.’광재가 속으로 생각했다.“그래, 네 말이 맞아.”용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계속 조사를 해보거라, 지금 도범이 중주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봐. 박 씨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갔다고 했으니 박 씨 집안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도범이 박 씨 집안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전부 알
“신난다, 나가서 밥 먹는다!”수아가 예쁜 공주 원피스를 입은 채 마당에서 뛰어다녔다.“아가씨,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지유가 박시율을 보며 말했다.“너 또 남자친구 만나러 가는 거지? 그래, 얼른 가 봐.”박시율이 지유를 놀리며 말했다.마침 샤워를 마친 서정이 오늘 도범이 사준 새 옷을 입고 나왔다. 마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옷을 바꾸고 나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귀한 티까지 났다.서정은 원래 예쁘게 생긴 데다가 타고난 귀티 덕에 평소 청소부 옷을 입고 출근해도 다른 이의 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를 내뿜었다.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도범의 아버지가 그녀를 따라다녔었다.하지만 아쉽게도…“어머니, 이 옷 입으니까 너무 예쁘세요!”박시율이 서정을 보며 말했다.“얘는, 내가 나이가 얼마인데 예쁘기는.”그러자 문 앞에서 그 모습을 보던 나봉희가 비아냥거렸다.“누가 자기 친엄마인지도 모르겠네…”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박영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그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나봉희를 툭 치더니 말했다.“도범이 내 다리를 고쳐준다는 거 정말일까?”“저놈 말도 믿는 거야? 도범이 어떤 놈인지 당신 몰라서 그래? 그냥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돌아온 전사일 뿐이야. 그런데 당신 다리를 고쳐준다고? 안 부러뜨리면 다행인 거지.”“......”박영호는 말문이 막혔다.“이 자식은 샤워 하나 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배고파 죽겠구만.”나봉희가 화장실을 보며 구시렁거렸다.“이제 5분 지나갔어, 당신은 방금 반 시간 동안 씻었잖아.”박영호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집은 보기에는 낡았지만 그나마 시내와 가까이 있었기에 도범이 다 씻은 뒤, 그들은 산책도 할 겸 밥 먹을 곳을 고르기 시작했다.“이 집은 안 돼, 너무 후져.”“이 집은 더 안 돼, 만 원짜리 뷔페라니, 먹을 것도 없을 거야.”나봉희가 걸으며 도범을 비꼬았다.“도범, 네가 밥을 사 준다고 했으니 나는 좋은 데서 먹어야겠어
레스토랑 내부, 얼굴이 새파래질 정도로 화가 난 나봉희가 씩씩거리고 있었다.도범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지난 5년간 다른 사람들의 무시와 비웃음을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 모든 것이 다 도범 때문이었다. 다 이 쓸모없는 사위 놈 때문이다.순간 그곳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성 씨 집안 도련님과 왕 씨 집안 도련님 모두 이류 가문(二流世家)의 도련님들로 박 씨 가문보다 더 큰 재벌가였다. 나봉희는 왕 씨 집안 도련님이 100억도 내놓을 수 있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이 퇴역한 망할 군인을 내쫓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녀는 도범이 몹시 증오스러웠다. 결혼식을 올린 그날 밤, 이 망할 자식이 자신의 딸아이가 술에 취한 틈을 타서 그녀의 순결을 빼앗아 갔을 것이다. 나봉희는 절대로 그런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도범이 어떻게 이 상황을 마무리 지을 것인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듣기로는 전장에서 돌아온 퇴역 군인들은 확실히 적지 않은 상금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보통은 5천~6천만 정도였고, 공을 세웠거나 말단 직책이라도 맡은 사람만이 더 많은 상금을 가질 수 있었다.확실한 것은 도범이 절대 그런 사람에 속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오늘 도범은 자신의 딸아이의 관심을 받으려고 이미 꽤 많은 돈을 썼었기에 이제 수중에 돈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여기서 만약 자신이 더 많은 음식을 시키면 도범은 아마 자신을 이 레스토랑에 팔아넘겨야 할 신세가 될 것이다.“이거, 이거 각각 두 개씩 주시고, 이것도 괜찮아 보이네요 주세요.”순간 메뉴판 아래쪽에 적힌 술 가격이 나봉희의 눈에 띄었다. 메뉴판에는 일반 사람들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몇 천 원에 한 병인 와인도 있었지만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와인도 있었다. 심지어 가장 비싼 와인은 한 병에 4백만 원씩 했다.“이 와인, 한 병에 4백만 원씩 하는 이거 스무 병 주세요. 시율이 아버지가 지난 몇 년간 심적으로
“아유 배불러. 진짜 맛있네. 정말 오랜만에 폭식했어!”나봉희가 음식을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지난 오 년간 정말 많은 고생을 했었는데 이 모든 것이 다 도범 그 자식 때문이었다. 그 자식 때문에 그녀의 딸이 집에서 쫓겨났고 덩달아 그들 노부부도 함게 고생하게 되었다.무려 오 년 이었다. 오 년간 이런 진수성찬은 구경조차 못했었다!오늘 그녀한테는 도범이 이 만찬을 계산할 수 있을지 없을지 같은 건 크게 상관없었다. 아무튼 난처해질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기에. 누가 도범더러 돈이 많은 것처럼 큰소리치면서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호언장담하라고 했는가.“대박 정말 부럽다. 저기 저쪽 테이블 한 8천만 원 정도 나왔을걸! 저거 여기서 제일 비싼 와인이잖아!”주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아직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 테이블에 놓인 맛있는 요리를 보고 부러워하고 있었다.“확실히 많긴 해. 특히 저 와인 스무 병 중 두 병 밖에 마시지 않았잖아. 참, 저렇게 많이 시키다니. 정말 부잔가 봐!”한 남자가 크게 감탄하며 말했다.“근데 저 남자 아무리 봐도 하루에 2억씩 벌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입은 것도 저렇게 평범한데 말이야. 정말 저걸 다 계산할 돈이 있는 거 맞아? 설마 무전 취식하려는 거 아니겠지?”다른 한 여자는 도범의 능력과, 과연 그가 정말 계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다.“다들 잘 드셨어요? 다 드셨으면 이제 계산할게요!”도범이 미소 지으며 계산하려고 했다.“그래 그러거라. 우린 다 먹었다. 아가씨, 여기 얼마죠? 여기 남은 술은 가져갈 테니 포장해 주세요!”나봉희가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과연 이 큰돈을 도범이 지불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었다.그때 뜻밖에도 종업원 대신 매니저가 미소 띤 얼굴로 다가와 도범에게 계산서를 내밀었다.“저기 손님, 저쪽으로 가서 계산해 주시겠습니까? 저희 레스토랑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도범은 그 남자의 미소가 석연찮게 느껴졌다. 남자의 미소가 어딘
“도범이 네가 방금까지만 해도 그렇게 계산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치더니? 네가 나더러 마음껏 시켜도 된다며? 이제서야 자신이 빈털터리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냐?”“돈이 없으면 없었지 그렇게까지 허세를 부릴 필요가 있었어? 봐라 시율아, 쟤가 이런 사람이야, 이런 사람한테 시집가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화가 난 나봉희가 박시율을 끌어당기며 말했다.“가자 시율아, 나랑 가자 응? 쟤 혼자 남아서 뭘 할 수 있나 두고 보자. 저런 사람은 맞아 죽어도 싸. 돈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잘난척한 거야?”“도범아, 정말 너한테 실망이구나!”박영호 역시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돈이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되지. 그러면 이렇게 망신스러운 일도 없었을 것 아니냐. 네가 없는 형편에 끝까지 밥을 사겠다고 했잖니. 어떻게 너 같은 사람을 믿고 내 딸을 줄 수 있겠어?”“도범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정말로 돈이 없어?”박시율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도범을 향해 물었다.도범이 씁쓸하게 웃더니 박시율에게 계산서를 건네며 말했다.“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이런 명세서를 보고 정말 계산할 수가 없는걸, 계산하고 싶지도 않고!”박시율이 의아한 눈빛으로 계산서를 보더니 순간 얼굴을 굳히고 매니저를 향해 쏘아붙였다.“저기요 매니저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저희는 8천만 정도의 소비밖에 하지 않았는데 왜 8억 몇천만 원이라고 찍혀있죠?”“뭐?”그 소리를 들은 나봉희가 다급히 계산서를 빼앗아 가서 자세히 훑어보더니 씩씩거리며 매니저를 바라보았다.“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지금 저희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거예요? 저 술은 한 병에 4백만 원짜리였잖아요? 왜 여기에는 4천만 원이라고 적혀있죠? 혹시 잘못 보고 동그라미 하나 더 입력한 거 아니에요?”“하하 죄송한데 가격표의 가격은 정확합니다. 이 스무 병의 술은 마침 오늘 공수해 온 것이라 특별히 열 배의 가격에 팔고 있답니다! 손님들께서 스무 병을 시키셨으니 8억 원이고 거기에 요리까지 더해서 모두 8억 1600
“풍린수의 가장 큰 약점은 지능이 낮다는 거야. 이들은 그렇게 많은 꾀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무사들이 조금만 머리를 쓰면, 버티기만 해도 풍린수를 처치할 수 있지.”삼각눈의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혹시 구록종이 무슨 종문인지조차 모르는 건 아니겠지? 방금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표정이 어찌나 비웃음이 깃든지 말이야. 중주에 어떤 강력한 종문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 아니야? 넌 정말 중주 출신이 맞긴 한 거냐?”이 일련의 의심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점점 오수경을 변두리에서 나온 우물 안 개구리라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할 리 없었다. 오수경은 무심코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제야 도범이 왜 침묵을 즐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들과 다투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애초에 오수경은 이들과 말다툼을 할 생각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이들이 오수경을 끝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오수경은 인상을 찌푸린채 말했다.“물론 구록종은 중주 7품 종문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그러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오수경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런데 왜 내가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얼굴에는 비웃음이 서린 거냐?”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묻고 싶었다.‘네가 어떻게 내 얼굴 표정을 그렇게 자세히 본 거야? 난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있는지도 몰라.’이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오수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목소리를 높여 이들과 싸우려는 순간, 도범이 오수경을 막았다. 그러자 도범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했다.“이 사람들과 싸워서 뭐하겠어? 저들과 싸우는 건 네 시간만 낭비하는 거야. 이들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이 말에 주위는 순간 조용해졌다. 도범은 지금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사람들이 도범을 허세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도범의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오수경도 이미 충분히 오만했지만
“역시 숲이 크면 별의별 새가 다 있는 법이지. 거울이라도 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봐야 할 텐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그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앞쪽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흰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은 구록종 출신으로 친전 제자야. 그런데도 30분이 되서야 겨우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꿨다구! 방금 그렇게 큰소리쳤으니, 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서 보라색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한 번 볼까?”다른 사람도 거들며 말했다.“그래, 말 좀해봐. 네가 그렇게 치켜세운 저 친구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며 오수경을 계속 몰아세웠다. 그들은 오수경에게 도범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라고 강요하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이들 대부분은 6품 종문이나 자유 무사 출신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최소 4시간이 걸렸다. 출신이 뛰어난 천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오수경이 이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쓰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오수경은 도범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도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만든 일이니 네가 해결해.”도범은 오수경이 이미 여러 번 경솔하게 발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매번 오수경의 뒤처리를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고개를 들어 크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30분이 걸린다면, 도범 오빠는 15분이면 충분해!”오수경은 어차피 모든 것을 걸고 말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수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오수경의 말에 반
두 마리의 풍린수를 처치하면 수정구는 파란색에서 청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때 무사는 몇 배나 강력해진 풍린수와 마주하게 되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만 4층을 통과하여 5층에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도범의 설명을 들은 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물었다.“그러니까 4층은 사실 세 단계로 나뉜다는 말이지? 수정구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단계를 하나씩 통과하는 거야. 총 세 가지 색이 있는 셈이니까, 5층으로 가려면 세 번을 모두 통과해야 하네.”도범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수경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즉, 네 마리의 풍린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첫 번째 풍린수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풍린수는 좀 더 강해지지만, 가장 강력한 풍린수는 마지막 한 마리라는 거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 비로소 통과가 완료되는 거네.”도범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정리가 꽤나 명확했다. 오수경은 5층으로 순조롭게 진입하려면 이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네 마리의 풍린수를 모두 처치해야만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오수경은 웃으며 말했다.“4층은 도범 오빠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네. 그 무슨 풍린수라는 것도 결국 선천 후기에 불과하니까 말이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범이 답하기도 전에 주위의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섰다. 그들이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수경의 말이 크게 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이때, 눈이 삼각형 모양인 한 사내가 오수경의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너는 저 녀석의 부속인이겠지? 어디서 그런 배짱을 얻었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마치 4층이 이 어린 녀석에게는 쉬운 일인 것처럼.”그러자 삼각눈 사내 옆에 서 있던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 사람은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 풍린수가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입만 뻐끔했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